결혼에도 휴가가 필요해서
아리(임현경) 지음 / 북튼 / 2020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은 한 여성이면서 '한 사람'인 자아 찾기를 실현하며 원하는 것을 이룬 사람의 얘기다.

어쩌면 나의 얘기인지도 모른다. 그건 말이다. 내가 이루지 못한 자아 찾기를 저자는 저자가 대신 자아 실현을 이루고 살기 때문이다. 이 책을 소개하는 출판사 리뷰를 보면서 이 책은 내 손에 들어와 있어야 하는 책이라 생각되었다. 거기에 나오는 어떤 내용이 내 마음을 흔들었는지 이제 소개한다면 이러하다.

그녀는 "결혼 휴가를 선언하고 인도네시아 발리의 우붓으로 떠났다. '무릇 여자라면, 엄마라면, 아내라면 이러이러해야 한다'라는 당위와 제약, 간섭이 없는 그곳에서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의 마음을 따르는 매일을 살며 다시 자신의 일상과 가족을 끌어안을 힘을 회복한다.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우붓 사람들의 틈에서 순간을 사는 법, 현재에 집중하는 법, 가끔은 삶이 던지는 문제에 바짝 엎드려 항복하고 수용하는 법을 배우며 부부생활의 또 다른 주체인 남편과 공존하는 지혜도 터득해나간다."

아이 부럽다. 그리고 대단한 여성이라 생각된다. 결혼 후에 한 여성의 삶은 많은 것으로 덧칠해 진다. 그건 바로 엄마, 아내, 며느리이다. 물론 남자 또한 가장, 남편, 아버지, 사위로서 존재하며 직장의 삶을 끼고 살아간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과감히 던지고 결혼 후에 그녀는 휴식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4년여의 시간동안 '결혼 휴가'라는 어쩌면 조금 생소한 이름을 걸고 과감히 일상을 탈출하고 있다. 바로 그러한 여성의 이야기가 담긴 에세이다.

그녀는 어쩌면 일반적인 여성과는 다른 여성인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이 말하는 그런 말들을 쉽게 털어낼 수 있는 용기를 가졌기 때문이다. 즉 '엄마가 어떻게 그래?' '결혼한 여자가 그래도 되는 거야?'라는 구시대적인 발상, 가부장적인 시선, 부당한 모성신화로부터 심리적으로 주저없이 결단하는 것을 보며 이제는 그 남편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졌다.

이런 여성인지 알고 결혼을 했나? 알았지만 설마 이렇게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남편은 한 여성의 자아 찾기를 보면서 아마도 체념하였을 것이다.

책을 보다 보면 남편의 심정과 얼굴이 보이기도 한다.






미안하지만, 나라도

"나라도 가야겠어. 자기가 안 간다면 나라도 당분간 떠났다가 돌아올게. 학비도 이미 보냈잖아. 2년 정도 아이 학교 보내고 올게." 둘 다 한동안 말이 없었다. 미안한 마음도 없지 않았지만, 이기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겠지만, 나도 간절했다. 모험이 필요했다. 지금 이곳이 아닌 새로운 곳에서.

이국의 땅, 낯선 사람들, 새로운 사고방식 --- 무엇이든 '새'것이 필요했다. 20대 시절, 워킹 홀리데이를 가서 경험했던 나다운 삶을 다시 살고 싶었다. 이미 알아버린 다른 삶에 대한 가능성을, 그렇게 살고 싶다는 미련을 버릴 수 없었다. 그렇게 추운 계절이 지나갔고, 꽃피는 봄이 돌아왔다. 이별의 시간도 다가왔다. 그가 눈물을 보이기 전에 등을 돌렸다. 공항 엘리베이터 문이 천천히 닫혔다. 아이가 울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는 울지 않았다. 이별의 안타까움보다 나라도 먼저 갈 수 밖에 없다는 비장함이 더 컸다. 그가 마주할 상황이 안타까웠지만 우리가 없는 시간을 그가 알차게 보내길 기원했다. 사람 만나기를 좋아하고 사람들 틈에서 에너지를 얻고 타인의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그가 홀로 자신을 조금 더 들여다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시간이 그에게 뭉근한 성찰의 기회가 되길 바랐다." p122-123


그녀의 삶과 남편의 삶은 어쩌면 나와 닮았다. 즉 저자의 남편은 '북적북적 사람들과 어울리며 충전하는 사람'이었다. 반면에 저자는 '혼자 있을 때 차오르는 사람'이었다. 바로 내 아내가 저자의 남편 성격이며 나는 저자의 성격이다. 둘(함께)이 있는 것을 좋아하지만 나 혼자 자아 찾기를 즐기는 존재가 바로 나다. 나 또한 하루에도 열두 번 캐리어 짐을 쌌다가 푼다. 내가 좋아하는 TV 프로는 '세계테마기행', '트레킹 노트 세상을 걷다', '넷지오 와일드'와 같은 세계와 자연을 향한 다큐 프로그램이다. 수없이 이런 프로를 보며 대리만족을 하면서 나 어느 날 은퇴후에는 꼭! 가리라고 다짐하는데 그런데 '아리'라는 저자는 추진력과 결단력이 1000%정도 되는 범접할 수 없는 여성이라 생각된다.

만나고 싶은 여성 중에 한 사람이 되었고, 언젠가 우붓에 가게 된다면 이 여성과 우연히 만나는 가운데 많은 얘기를 하며 자아 찾기의 여정을 계속해 나갈 것임을 다짐해 본다.

그렇다. 그녀는 자신의 내면 찾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내면 찾기에는 장소 또한 중요하다. 책을 펼치면 우붓의 향취가 물씬 풍기는 사진이 나온다. 책에 나오는 사진은 우붓이 어떤 곳인지를 선명하게 보여주는 또 다른 볼거리다. 특히 저자가 우붓에 매료된 이유 중에 '나는 푸르른 논이 드넓게 펼쳐진 조용하고 소박한 그 시골 마을이 마음에 들었다'고 말하고 있는데 푸르른 이국적인 정취가 너무나 멋지게 글 요소요소마다 적절히 넣어져 있다.


무엇보다 그녀의 글 안에는 독자인 내 내면의 무엇을 건드려 준다. 글솜씨가 헤르만 헤세처럼 뛰어나다고 하면 헤세가 인상을 찡그릴지 모르겠지만 헤세의 여행지에 대한 얘기가 담긴 '헤세가 사랑한 순간들(을유뮨화사)'이라는 여행담 에세이와 견주어도 될 정도의 책이라고 칭찬하고 싶다.

번역자이며 작가로서 지켜보고 싶고, 더불어 더 나은 책과 새로운 세상에 대한 탐험을 멈추지 않고 글을 쓰면서 우리들에게 내면이 추구하는 길을 보여주면 좋겠다 생각된다.

이쯤에서 작가의 얼굴이 궁금해서 찾다가 이 책 끝부분에 드디어 해먹에 누워서 아주 편안한 미소로 두 손 모아 나마스테하는 그녀가 보인다. 이미 작가의 모습에는 한국 땅은 그저 자신을 태어나게 해 준 고향일 뿐이며, 우붓과 같은 세상이 자신이 있어야 할 곳처럼 너무나 '나답게 살아가고' 있는 자신을 보여 준다. 이 책은 이렇게 작가가 궁금해질 정도로 내 삶을 요동치게 만드는 글솜씨, 자아 찾기를 풀어가는 과정, 우붓의 아름다움, 해내고 싶은 삶을 살고야 마는 그녀의 결단 때문인지도 모른다. 많은 경험을 통해 숙고를 통해 저자의 책이 또 다시 내 손에 들어오기를 기대해 본다.


책 속에서

그래, 답은 없다. 내 인생에도, 그의 인생에도, 함께 하는 인생에도, 그것이 유일한 해답이다. 각자 자기만의 답을 찾아야 할 뿐. 지금부터 그 답을 찾는 것이 우리의 몫일 테지. p223

우붓에서 더 살고 싶은 마음은 쉽사리 없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내 우붓에서의 삶이 내게 일러준 바들을 떠올렸다.

순간을 살아라.

현재에 충실해라.

가끔은 삶에 바짝 엎드로 항복하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