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의 언덕 윌북 클래식 브론테 세 자매 컬렉션
에밀리 브론테 지음, 박찬원 옮김 / 윌북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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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의 언덕 wuthering heights』이란 책에 관심을 가진건 1993년에 극장에서 본 영화 때문이었다. 이때 영화를 보면서 나의 영혼은 내용 보다는 영상미에 사로잡혀 가슴이 터질듯 했다. `폭풍의 언덕`은 히스꽃 이미지로 넘실대는 작품이다. 야생마 같은 캐서린과 야생초 이미지의 히스클리프를 대변해주는 꽃으로 보인다. 영화를 보면 음울한 구름, 매서운 바람에 이어 폭우가 쏟아지면 반쯤 미친 히스클리프와 제 멋에 겨운 캐서린은 온통 히스꽃 천지인 들판을 맨발로 쏘다니는 장면이 나오는데 왜 이렇게 나는 그때 가슴을 흔드는 지진과 같은 것을 느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언 30년이 흘러 영화와 함께 책을 출간한다는 소식을 듣고 기쁨에 겨워 책과 영화를 보고자 했다. 일단 영화는 평이 좋지 않는데다가 시간을 내기 어려워 미루고 있으며, 책을 통해 그때의 가슴을 흔든 장면으로 들어가 보고자 하였다.

책에는 '폭풍의 언덕'에 대한 자료를 제공한다.(아래 사진과 영상 참조)

'워더링 하이츠'는 히스클리프 씨가 사는 저택의 이름이다. 즉 '폭풍의 언덕'이라는 의미다. '워더링 Wateings'은 이 고장 특유의 표현이며,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씨에 휘몰아치는 거칠고 거센 바람을 묘사한다. 집이 높은 곳에 있으니 맑고 상쾌한 바람에 통풍은 좋다. 집 가장자리에 제대로 자라지도 못하고 과하게 기울어진 전나무 몇 그루에서 바람의 세기를 느낄 수 있다. 태양의 적선을 갈구하듯 전부 한쪽으로 뻗어 자란 앙상한 가시나무 숲에서도 언덕 위로 몰아치는 북풍의 힘을 짐작할 수 있었다. p.11



책은 마음의 상상력과 그림을 그려주고, 영화는 실제적 그림을 그려주기에 영화를 꼭 참고하기를 바란다. 그것도 1993년에 만들어진 영화를 추천하는 바이다.

에밀리 브론테(Emily Brontë)의 《폭풍의 언덕(Wuthering Heights)》은 1847년에 발표된 영국 문학의 대표적인 고딕 로맨스 소설이다. 브론테 자매 중 둘째인 에밀리 브론테가 서른 살의 나이에 요절하기 일 년 전 남긴 유일한 소설 작품이다. 안타깝게도 에밀리는 책이 나온 다음 해에 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 언니인 샬롯 브론테는 <제인 에어>를 써서 성공을 거둔 반면 에밀리는 죽고 나서야 작품성을 인정받게 되었고 고전의 반열에 올랐다. 삶이란 무엇이고, 성공이란 무엇인지를 깊이 생각하게 만든다. 그런데 더 안타까운 것은 브론테 세 자매는 위생 환경이 열악하고 질병이 만연했던 빅토리아 시대였음을 감안하더라도 젊은 나이에 모두 세상을 떠났다. <제인 에어>를 쓴 샬럿 브론테 또한 겨우 38세에 극심한 입덧으로 1885년 태어나지 못한 아이와 함께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마치 이 책 『폭풍의 언덕』의 우울한 배경처럼 그들의 삶은 무척 어두운 색채를 띤다. 그럼에도 이 책을 통해 요크셔의 장대한 자연을 장려하게 묘사하여 '호워트'를 유명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언니 샬롯 브론테의 제인에어(jane eyre)와 더불어 애정의 섬세함을 내면화한 작품으로 평가되어 시대가 아무리 흘러도 사람들의 가슴을 매만지고 있다.


『폭풍의 언덕』의 제목에서 보이듯 작품 전체에 흐르고 있는 어두운 분위기와 감정선은 빗나간 애정의 극단적인 복수심과 증오의 표현이다. 증오심과 복수심은 인간 내면 속에 거칠게 소용돌이치는 폭풍우이다. 사랑을 소유하기 위한 욕심은 집착일 뿐임을 소설은 보여준다. 그러나 황량한 하이드 언덕에서 벌어지는 인간 애증의 감동적 이야기는 "죄는 미워해도 인간 자체는 미워하지 않는다"는 주제를 던져주고 있지 않을까?

"내가 히스클리프를 사랑하는 이유는 그가 잘생겨서가 아니라, 넬리, 그가 나보다 더 나 자신이기 때문이야. 우리의 영혼이 무엇으로 빚어졌든, 히스클리프와 나는 같은 영혼을 가지고 있어. 그리고 린턴의 영혼은 우리와 전혀 달라. 달빛과 번개가 다른 것처럼, 서리와 불이 다른 것처럼"

p.137

이 책은 우리가 생각하듯 로맨스 소설은 아니다. 히스클리프와 캐서린, 넬리, 이저벨라를 포함한 주변 인간 본성을 여과없이 보여주는 소설이며, 인간이 어디까지 무너질 수 있는지, 악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벽돌과 같은 책을 읽고 나면 마음이 편안하지는 않다. 그러나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작품이다. 어떤 이는 “좋은 소설”이라기보다, “강렬한 소설”에 가깝다는 말을 한다. 이처럼 『폭풍의 언덕』이 지금까지 고전으로 읽히는 이유는 인간 감정의 본질을 너무나 솔직하게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이 책은 집착이 된 사랑은 결국 인간을 파괴한다는 이야기다.

책 안에는 한 번쯤 멈추어 생각해 보게 하는 문구가 많다. 그리고 책의 사이즈며, 글자 크기, 편집이 깔끔하게 되어 있어 읽기에 편하다. 책은 상상력을 주어 그 당시의 그림 세계로 빠져들게 하며, 특히 저자 에밀리는 매일 황야로 달려가 바람에 이리저리 나부끼는 억센 풀을 향해 마음을 던졌던 여인임을 알게 되었다.

'폭풍의 언덕'의 작가 에밀리 브렌테는 책과 함께 황야를 먹고 자란 사람이다. 에밀리는 낯선 사람들과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할 정도로 내성적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에밀리에게는 평생 가족 외에는 친구도 연인도 업었다. 에밀리가 열정적으로 좋아한 것은 황야였다. "저 언덕 위 히스가 가득한 황무지로 가면 다시 나 자신을 찾을 수 있을 거야. 창문을 활짝 열어. 연 채로 그냥 둬!" p.214

에밀리는 날씨와 관계없이 거의 매일 황야로 산책을 나가 신선한 공기를 듬뚝 마셨다. 그가 자주 걷던 황야에는 주로 억센 식물들이 자랐다. 황야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그의 얼굴에는 빛이 가득했다. "언덕에서 불어오는 바람마저 생명력이 가득해서 그 바람을 호흡하는 사람은 죽어가다가도 살아날 것 같았어요. p.448

영화를 봐서 그런지 에밀리가 걸었던 그 황야와 바람이 느껴진다. 그리고 책이 주는 맛은 얼마나 원작의 맛을 잘 번역하여 독자에게 안겨주냐이다. 어떤 번역은 다른 번역자보다 좀 부드럽고 시적인 느낌이 강조되어 브론테 자매 작품의 특유의 서정성을 잘 살려낸다. 요크셔의 황량한 풍경 묘사나 인물들의 내면 심리가 특히 아름답게 다가온다. 또 어떤 번역은 원작의 어두운 분위기와 강렬한 감정을 한국어로 자연스럽게 옮기며 고유의 문학적 가치를 잃지 않는다. 이번에 출간된 저자 박찬원의 번역본은 이런 모든 것을 아우르며 특히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의 복잡한 관계를 묘사하는 부분에서 번역자의 섬세함이 매우 잘 드러난다고 생각된다. 책을 좋아한다면 제인에어와 함께 폭풍의 언덕이란 책은 서재에 꼭 꽂혀 있어야 할 것이다.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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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살아내는 힘, 논어 - 나를 일으켜 세운 논어 한마디
한덕수 지음 / 지니의서재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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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를 알고 나서 공자에게 매료 되었다. 또한 그의 제자에 의해 쓰여진 논어는 읽으면 읽을수록 이 시대에 필요한 문장들이며 삶의 진리라 생각된다. 물론 한국 사회를 지배해온 유교적 가치가 문제가 되어 답답한 사회를 만들어 나갔지만 그의 가르침은 몇몇 가르침 빼고는 사회 전반에 가져와야 된다고 생각한다. 현대의 시각에서 공자를 바라보면, 그 사상 중 일부가 현대 법치주의와 평등주의 사상에 반대되는 부분이 있다. 특히 논어에서 공자가 "오직 여자와 소인은 다루기 어려우니, 가까이 하면 겸손하지 않고, 멀리 하면 원망하느니라" 라고 말한 부분과, 공자가어'삼종지도와 칠거지악' 부분 등은 여자를 매우 수동적인 존재로 묘사했을 뿐 아니라 평등주의적 관점에서 수많은 비판을 받았다. 여자를 밥짓는 존재로 보고 집밖을 나가지 못하도록 구속하는 것은 시대적 한계가 있는 가르침이다. 삼종지도는 말하나 마나다. 그래서 현대의 학자들은 공자는 사람을 그렇게 중시하고 '내가 싫어하는 일을 남에게 하지마라'라고 까지 말했는데, 과연 여자를 낮추어 보고 속박하는 일을 했을리가 만무하다고 본다. 이처럼 공자의 가르침 중에 반상(班常)의 구별이나 남존여비를 가져온 봉건적인 사상과 같은 것이 지금의 한국사회를 망쳤다는 비판까지 나오는 현실이지만, 공자의 가르침은 그리 단순한 것이 아니다. 매우 필요한 가르침이다.

 

그렇기에 매번 독자는 논어에 관한 책이 나오면 관심을 가지고 책을 읽어본다. 특히 지금 이 시대는 챗gpt가 인간의 질문에 즉각적인 답을 내놓고 정의를 해준다. 그러나 정작 어떻게 살아내야 하는가라는 물음 앞에서 챗gpt의 가르침을 받는 것은 인간이기를 포기한 거라 생각된다. 삶에 대한 가르침은 인공지능에 기댈 것이 아니다. 스스로 사유하는 동시에 수천 년의 시간을 견뎌온 인류의 고전과 같은 책인 논어를 통해 삶의 기술을 배워야 할 것이다.

 

이 책은 난해한 원문을 나열하지 않고, 공자의 사유를 오늘의 언어로 풀어낸다. 삶이라는 다양한 상황에서 우리가 풀어낼 숙제는 참 많다. 그런데 저자가 편찬한 이번 논어는 매우 실용적으로 독자에게 다가간다. 다시 살아내는 힘, 논어는 고리타분한 훈계를 꺼내 들지 않는다. 그대신 우리 삶의 가장 아픈 지점을 정확히 건드리며 일상과 맟닿은 가르침을 준다. 또한 독자가 해설을 강요받지 않는다. 그저 고전의 문장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스스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생각하게 되고 이럴 때 이렇게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것이구나를 깨닫게 된다.

 

논어를 읽어 나갈 때 사실 현대인들에게 어려운 한자와 이해하기 힘든 해석으로 인해 책을 밀어낸 적이 있다. 그러나 이 책은 다르다. 오늘의 언어로 공자의 문장을 보여주고 있다. 아무리 좋은 진리도 오늘의 언어로 풀어내지 못한다면 그건 흙속에 파묻힌 진주와 같다. 이 책은 정말 삶의 결을 바꾸어 주는 문장들로 가득차 있다. 이웃 블로그에 보면 "밑줄은 생각의 자국이다"는 말을 하며 책을 제대로 읽으면 반드시 흔적이 남고, 아무 표시도 없는 책은 겉으로만 읽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말을 보았다. 논어책은 줄을 긋고 싶은 내용들이 많고 숙고할 가르침이 많다.

 

학이편에서 부터 태백편’, ‘안연편’, ‘자장편에 이르기까지 공자의 가르침은 단순히 지식을 쌓는 공부가 아니라 흔들리는 순간마다 다시 자신을 세워주는 공부이다. 인간관계의 문제, 배움, 삶의 기준, 군자의 품격, 리더십, 판단, 분별과 같은 수양의 장면에서 우리 모두는 배워야 될 것이 참 많다. 자고로 우리는 군자(君子)로서의 삶을 살아야 한다. 이상적인 삶이며, 독자가 추구하는 삶의 질(, Quality )이다.

 

책 장을 넘기게 되면 목차 다음에 나오는 문장이 이렇게 실려 있다. 첫 장의 문장부터 마음을 흡족하게 하며, 깊은 수긍으로 이끈다.

 

군자는 아홉 가지를 늘 생각한다. 볼 때는 분명하게 볼 것을 생각하고, 들을 때는 똑똑하게 들을 것을 생각하며, 안색은 부드러울 것을 생각하고, 태도는 공손할 것을 생각하며, 말은 성실하게 할 것을 생각하고, 일은 신중하게 할 것을 생각하며, 의심이 날 때는 물을 것을 생각하고, 화가 날 때는 훗날의 어려움을 생각하며, 눈앞에 이득이 있을 때는 옳은가를 생각한다.”_ p.15

 

사람이 바른길로 나아가게 하는 힘은 바른 마음에서 나온다. 마음은 몸과 삶을 다스리는 주인이기에 마음이 흐트러지면 행동도 쉽게 무너진다. 그런데 그 마음을 바르게 이끄는 가르침이 있으니 바로 공자의 가르침이다. 읽는이로 하여금 삶의 이치를 명확히 배우도록 하는 논어는 인류가 얻게 된 보물이라 평가된다.

 

다만 완전한 인간은 없다. 그래서 프랑스 작가 빅토르 위고는 잘못을 최대한 줄이는 것은 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이며, 잘못을 전혀 저지르지 않는 것은 천사의 꿈이다.”라고 말했다.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완벽함이 아니라, 잘못을 줄이고 다시 바로 서려는 자세가 아닐까? 공자가 제시한 이상적인 군자는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 끊임없이 자신을 단속하고 돌아보는 사람이다. 따라서 공자가 제시한 아홉 가지 마음가짐은 나를 스스로 돌아보게 하여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책을 통해서만 가르침을 받기에 공자의 가르침이 거칠지 않고 '()' 의 마음이 느껴지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어떻게 살아야 하며, 내게 현재 필요한 가르침은 무엇인지를 곰곰히 생각한 자들에게는 분명 이 책이 충분히 삶의 기술을 알려준다. 물론 공자의 사유는 단순한 삶의 기술이 아닌 삶을 살아내는 기술로서 현실에서 그것을 따라 견뎌내야만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기에 공자의 사유가 부담이 된다면 이미 삶을 배우려는 자세가 틀린 것임을 알고, 겸손과 배움의 자세로 이 책을 대한다면 성인의 경지는 아니더라도 소인의 삶에서는 벗어난 존재는 되리라 본다.

 

이 책의 한 문장

 

임금을 섬길 떄 자주 간언하면 욕을 보고, 벗을 사귈 때 자주 충고하면 소원해진다. _자유 p.86

 

군자는 마음이 평온하여 너그럽지만, 소인은 마음이 불안하여 늘 걱정한다. p.141

 

공손하면서 예가 없으면 수고롭기만 하고, 신중하면서 예가 없으면 사람을 두렵게 한다. 용감하면서 예가 없으면 난폭해지고, 정직하면서 예가 없으면 각박해 진다. 군자가 친지에게 후하게 대하고, 오랜 친구를 버리지 않으면 백성들 사이에는 자연스레 어진 기풍이 일어난다. p.148

 

작은 고을일지라도 충실하고 믿음직스러운 사람은 반드시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배우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p.102

 

바른말을 따르지 않을 수는 없으나, 잘못을 고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부드러운 말을 좋아하지 않을 수는 없으나, 그 속뜻을 찾는 것이 더 중요하다. 좋아하기만 하고 뜻을 찾지 않으며, 따르기만 하고 잘못을 고치지 않는다면, 나도 어찌할 도리가 없다. p.178

 

사람이 도를 넓히는 것이지, 도가 사람을 넓히는 것이 아니다. p.248

 

내가 하루 종일 먹지 않고 밤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한 채 생각에 잠겨 보았으나 아무런 이익이 없었다. 글을 읽고 실천을 통해 배우는 것만 못하다. p.249

 

군자는 말만 듣고 사람을 등용하지 않으며, 사람만 보고 말까지 버리지 않는다. p.254

 

군자를 모실 때 저지르기 쉬운 잘못이 세 가지 있다. 말을 하지 않아야 할 때 말하는 것은 조급함이고, 말을 해야 할 때 말하지 않는 것은 숨기는 것이며, 안색을 살피지 않고 말하는 것은 눈치가 없는 것이다. p.266

 

군자는 경계할 것이 세 가지 있다. 젊었을 때는 혈기가 안정되지 않았으니 여색을 조심해야 하고, 장년이 되었을 때는 혈기가 굳건하니 남과 다투는 것을 조심해야 하며, 늙었을 때는 혈기가 쇠약해졌으니 욕심을 경계해야 한다. p.267

 

가장 지혜로운 사람과, 가장 어리석은 사람은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p.276

 

너희들은 어찌하여 시를 배우지 않느냐? 시는 감정을 북돋아 주고, 주위를 세심하게 살피게 하며, 남들과 어울리게 하고, 잘못을 바로잡아 준다. 가까이는 부모를 섬기게 하고, 멀리는 임금을 섬기게 하며, 새와 짐승은 물론 풀이나 나무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알게 해 준다. p.280

 

 - 이 글은 컬처블룸을 통해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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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녹서 - 사해 문서로 다시 보는
Daniel 지음 / 하움출판사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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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녹서에 대해 알고 나서 인터넷을 통해 자료를 살펴보게 되었다. 그 가운데 슬라브어Slavonic 에녹서라는 자료를 먼저 읽게 되었다. 놀라웠다. 이후 에티오피아어로 써진 제1 에녹서를 발견하고 열심히 그 자료를 살펴보게 되었다. 외경이라는 특수성과 함께 신약성경 유다서에 짧게 기록된 그 내용의 확장이 제1 에녹서에서 기록되어 있다는 흥미가 이 책을 보도록 하였다. 또한 에녹의 영계 체험, 창세기14장, 히브리서 7장에서 언급되는 멜기세덱의 출생에 관한 이야기, 창세기에서 말하지 않는 창조 이야기의 배후와 천사들의 세계, 천국과 지옥, 종말과 심판 등이 기록되어 있어 영적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에녹서는 성경의 위경 중 하나로서 노아의 조상인 에녹이 승천해서 본 환상을 기록한 것이다. BC 1, 2세기에 기록된 것으로 추정되며 저자 불명의 문서로서 남아 있다. 그런데 초대교회에서는 《에녹서》가 자주 읽혀졌고, 교부들도 이 책을 상당히 애용하여 많이 인용하였다.

그러나 타락천사들의 본질과 행위에 관한 표현으로 인해 논란이 불거지면서 교부들이 이에 대해 분노하는 가운데 그 중 한 명인 필라스트리우스는 아예 공개적으로 에녹서를 이단이라고 규탄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랍비들 또한 굳이 수치를 무릅쓰고 천사에 대해 가르치는 에녹서에 신빙성을 부여하려 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에녹서는 맹렬히 비난 받고 금지되며 저주 받았을 뿐만 아니라, 찢겨지고 불태워져 끝내 천년 동안 사라지고 말았다.

그런데 신은 그 자료가 세상에 드러나기를 원했다. 독자가 본 자료에 의하면 이 책의 가치를 높게 평가한 소수의 초자연적인 노력이 있었고, 200년 전부터 다시 에녹서가 유통되기 시작하게 된다. 1773년에 에녹서의 사본이 남아 있다는 소문이 스코틀랜드의 탐험가인 제임스 브루스의 발걸음을 먼 에티오피아로 이끌었다. 전해지는 풍문대로 에티오피아 교회가 자신의 성서 바로 옆에 에녹서를 꽂아 보관하고 있었다. 브루스는 그곳에서 에녹서 에티오피아 사본 세 권을 확보하여 영국으로 가지고 돌아왔다. 이후 1821년에 옥스퍼드 대학교의 히브리어 교수인 리처드 로렌스가 이 사본의 영어 번역본을 최초로 제작하면서 현대 세계가 금지되었던 비밀스러운 에녹서를 다시금 우리 손에서 펼쳐보게 되었다.

에녹서는 복음의 진리와 신앙을 위한 필독서는 아니지만, 하나님의 말씀, 특히 요한계시록이나 그에서 드러나는 천년왕국을 더 명확하게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하니, 성경에 관한 자료를 더 확장 시키기 위해서는 에녹서를 꼭 읽어볼 필요가 있다. 위에서 잠깐 다뤘지만 유다서의 저자이며 예수님의 동생인 유다는 유다서를 읽을 수신자들이 에녹서의 내용을 알고 있는 것을 전제로 에녹서를 인용하며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고 권하고 있다. 유다는 에녹1서 1:9을 유다서 1:14-15에서 직접 인용하였다. 그래서 에녹1서의 저자가 아담의 칠대손 에녹이라고 인정하고 있다.

본 저자 Daniel의 『에녹서』는 에티오피아어 역본에 과도하게 의존해 온 기존 번역 관행에서 벗어나고자, 사해 문서에서 발견된 아람어 단편과 그리스어 전승을 기본 자료로 삼아 번역하고 편찬하였다. 그래서 제2성전 시대 유대인들의 사상과 세계관을 보다 가까이에서 조망해 주고 있다. 또한 신비주의적 외경으로 소비해 온 관행에서 벗어나, 텍스트 자체와 그 전승 환경을 중심에 두고 재해석한 번역·해설서이다.

저자에 대해 알아야 할 필요가 있는데 저자는 미국에서 엔지니어로 활동하며 공학적 분석력과 고대 문헌 연구를 결합해, 사해 문서의 아람어 단편과 그리스어 전승을 바탕으로 에녹서의 원형에 가까운 의미를 추적하는데 공을 들였다. 기존 번역의 한계를 분명히 인식한 번역이다.

전문적인 독자가 아니기에 그 부분이 어떻게 다른지는 모르나, 본 『에녹서』는 학문적이고도 전문서적 느낌이다. 그 부분은 차치하고 독자는 그저 신비적인 관점에서 이 책을 대하며, 우리가 보지 못한 새로운 영적 가르침에 집중하고자 한다. 그러나 에녹서는 성경 본문을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역사적·사상적 배경 문헌으로서 필요한 것이지, 성서 정경 목록과는 구별되는 위치를 차지한다는 것을 기억하면 좋겠다. 그럼에도 에녹서는 특별한 매력이 넘치는 책이다. 읽은 사람과 읽지 않는 사람의 시야는 분명 다를 것이다.

본 『에녹서』는 에녹 1서 전체 108장을 수록하되, 각 부분의 형성 시기와 신학적 성격을 구분하여 읽을 수 있도록 주석과 해설을 덧붙여 주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에녹서의 핵심 주제는 "메시야의 재림과 회개, 그리고 마지막 심판에 대한 경고"라고 말할 수 있다. 마지막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다. 따라서 『에녹서』를 통해 마지막 때와 회개, 심판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함으로 좀 더 신앙적인 사람이 되면 그것으로 이 책은 소임을 다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에녹서는 읽음 너머의 세계를 언급하고 있어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다. 에녹서가 가지는 우주관이 성서와 현대 과학 모두와 불필요한 충돌을 일으키는 부분도 사실 인간의 이해로는 접근이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에녹서는 기존 성경이 보여주지 못한 부분들을 보충하고 있어 정경을 비추는 거울로서 훌륭한 자료다. 저자의 노고가 보이며, Side Notes 또한 다른 책과 다른 차별성을 두며, 에녹서를 더 이해하도록 해준다.


- 이 글은 컬처블룸을 통해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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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사람을 배웁니다 - 잘 익어가는 인생을 위한 강원국의 관계 공부
강원국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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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먹어도, 사람이 가장 어렵다라는 말을 요즘은 여실히 느끼고 있다. 오늘 소개할 책은 《다시, 사람을 배웁니다》 라는 책이다. 이 책은 관계를 잘 맺는 요령을 알려주지만, 어른다운 관계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다. 사람은 평생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관계를 통해 행복도, 즐거움도, 기쁨도 누리지만, 상처와 오해로 인해 사람이 싫어지기도 한다. 믿었던 관계가 말 한마디로 틀어지고, 선의로 건넨 마음이 아픔으로 돌아올 때 내 안에 이런 물음이 생긴다. 도대체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할까? 저자는 대통령 연설비서관 시절부터 직장과 가족, 자신의 과거에 이르기까지 사람에 대해 오래 고민해온 사람이다. 직장에서 나와 홀로 서야 했던 쉰 살 무렵, 지난 삶을 돌아보며 문득 깨닫는 바는 수많은 사람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왔지만 정작 '관계'에 대해 제대로 배우지 못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저자는 "앞으로 나는 어떻게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야 하는가"를 고민하며 완벽한 관계가 아닌 더 나은 관계를 위해 이 책을 쓰게 되었다.

제자가 준비되면 스승이 나타난다는 말이 있다. 현재 나에게 필요한 책이 도착했고, 독자인 나는 그것을 배우며, 책장을 넘겼다. 눈에 들어오는 글귀들이 마음을 긁었고, 깨우침을 주었다. 인간관계에 대한 배움이 학교 '커리큘럼'에도 필요하다는 사실이 나만의 생각일까?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의 책은 각자도생으로서 읽어야 할 것이 아니라 교과과정으로서 꼭 필요함을 느낀다.

책을 읽으며 다가 온 문장을 먼저 실어본다.

P. 9를 보면 "젊은 시절에는 관계의 양을 늘리는 데만 급급했다.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더 넓은 인맥을 갖는 것이 성공의 열쇠라고 믿었다. 시간이 흐른 뒤 깨달았다. 상처받지 않는 관계는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관계의 확장이 아니라 상처를 극복하고 다시 손을 내미는 마음 근력이다."

인맥을 위해 이 사람, 저 사람과의 관계를 맺으려고 사람들은 노력한다. 개인적으론 그렇게 하는 모습을 좋아하지 않지만 나도 모르게 어떤 유형의 사람과는 친밀해지고자 다가간다. 그러나 거기에서 상처가 있었고, 마음 문이 닫혔다. 그러나 저자 말처럼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관계의 확장이 아닌 그 상처를 극복하는 것이며, 사람과의 관계를 닫기보다 더 단단한 마음으로 좋은 관계를 맺어가는 것이리라.


P. 25을 보면 "물은 산과 돌을 만나도 스스로 길을 만들어 흘러간다. 남을 의식하지 않는 삶은 그 강물처럼, 외부의 장애물을 만나도 자기 길을 찾아간다. 굽이쳐 흐르지만 끝내 바다를 포기하지 않는다."

저자 말처럼 남을 의식하지 않고 산다는 것은 힘들다. 그렇다고 독불장군처럼 사는 것 또한 좋지 않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가면서 저자처럼 남을 의식하는 강도가 점차 옅어진다. 누군가의 말처럼 "내가 뭘해도 열 명 중 여섯 명은 관심이 없고, 두 명은 나를 싫어하고, 두 명만 좋아한다"고 하듯이 누군가에게 맞추는 삶이 아닌 나만의 삶을 살아내는 것이 중요함을 깨닫는다. 그래서 저자는 "우리는 때때로 고독해야 한다. 사람 사이에서 시달릴 때, 주위 사람들에게 지칠 때 고독은 안식처가 된다. 고독한 시간에 우리는 자신을 들여다보고 돌아본다. 자신과 대화하고 스스로에게 다정해지며 영혼이 성숙해진다"고 말한다.(P. 46)

따라서 우리에게는 이런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우선, 홀로 서야 한다. 홀로 서는 것이 먼저다. 자신을 유지하면서 타인과 연결돼야 한다. 특히 가까운 관계일수록 감정의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공자는 "군자君子는 화이부동和而不同하고, 소인小人은 동이불화同而不和"한다라고 말했다. 즉 "가까이 가되 같아지려 하지 마라. 하나가 되고자 욕심을 부리면 도리어 관계를 해친다"는 뜻이다.

우선, 홀로 서야 한다.

홀로 서는 것이 먼저다.

자신을 유지하면서

타인과 연결돼야 한다.

P. 55

그러므로 우리의 관계는 많은 것을 수정하며 새롭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특히 저자가 ‘편안한’ 사람과 ‘편한’ 사람은 다르다. [...] 나도 누군가에게 편안한 사람이고 싶다. 언제든 만나면 마음을 놓을 수 있는 상대가 되면 좋겠다. 그러나 편한 사람이 되는 건 사양한다. 편한 사람은 쉬운 사람이 된다. 함부로 대해도 되고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쉬운 사람이 되긴 싫다는 말을 하고 있다. 즉 관계를 위해 내 자신의 외로움을 덜고자 홀로 있음을 두려워하다보면 상대에게 편한 사람으로 다가 가는 잘못을 저지르게 되는데 이것을 위해 단단한 마음의 각오가 필요하다.

여기에서 한 문장이 생각이 나서 가져와 본다.

내 인생은 내가 산다

우리의 목표는

다른 사람들의 인정을 얻는 게 아니다.

그것은 공허하고 덧없는 것일 뿐이다.

우리의 목표는 누가 칭찬하든 말든,

모든 잠재력을 발휘하며

내게 주어진 인생을

사는 것이다.

- 조슈아 베커의 《삶을 향한 완벽한 몰입》 중에서 -

그렇다. 쇼펜하우어는 "우리는 다른 사람과 같아지기 위해 인생의 4분의 3을 빼앗기고 있다."고 말했다. 관계를 위해서는 너무 다른 사람의 마음에 매달릴 필요가 없다. 불편한 사람은 멀리하고, 편안한 사람과의 관계를 지속해 나가면 된다.

내 인생이 원치 않는 사람들과의 관계로

흔들리지 않도록 불필요한

관계는 훌훌 털어내자.

P. 215

관계는 정말 풀기 힘든 숙제이며 평생의 고민이라고 생각된다. 저자 말처럼 나이가 들면 좀 만만해질 법도한데 그렇지 않다. 오히려 더 어렵다. 그래서 상처받은 경험은 먼저 손 내밀기를 주저하게 만들고, 때로는 견고하다고 믿었던 관계가 말 한마디에 무너진다. 이 모든 것은 결국 나 자신의 부족함이고, 상대방에 대한 잘못된 관계에서 뒤틀어진 관계다. 울고 싶을 정도로 힘든 관계가 계속된다. 왜 이런 관계의 틀어짐이 나에게 왔는지를 보며, 그 삶에서 도망치고 싶은 심정도 있다.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라는 말이 있듯이 그곳에서의 삶에서도 고충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연인을 보면 세상만사가 편안한거 같다. 물론 나 보기에 그럴 것이다.


이렇게 인간관계에 어려움이 있는 자들에게 이 책은 단비처럼 많은 생각을 주고 있다. 좋은 책이며, 자신을 돌아볼 시간을 갖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쇠렌 키에르케고르Søren Aabye Kierkegaard'가 한 말을 되새겨 본다.

“사람의 행복은 90%가 인간관계에 달려있다.”


이 책의 한 문장

사이가 좋아야 관계가 좋다. 사이가 좋다는 건 거리가 적당하다는 의미다. P. 73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가는 인간에게 평판이란 어쩌면 숙명인지도 모른다. 그런 면에서 평판은 관계의 출발점이면서 종착점이라고 할 수 있다. P. 130

남의 말을 깎아내리는 뺄셈 대화보다는 그 말을 보완하고 보충해주는 덧셈 대화를 하자. 편을 가르는 나눗셈 대화가 아니라 연결하고 결합하고 융합하는 곱셈 대화를 해야 한다. P. 167~168

친절한 사람은 감정이 죽 끓듯 하지도 않는다. 감정의 기복은 누구나 겪지만, 여유 있는 사람은 감정이 끓어오르는 임계점이 높아 대체로 평온함을 유지한다. P. 175

뭐니 뭐니 해도 가장 큰 용기는 용서다. 용서가 관계를 완성한다. 용서는 약함의 표시가 아니라 강함의 증거다. 용서할 수 있는 사람만이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고, 용서받은 경험이 있는 사람만이 타인을 깊이 이해할 수 있다. [...] 용서를 거친 관계는 이전보다 훨씬 견고해진다. 서로의 약점을 알되 그것을 무기로 사용하지 않는 성숙함을 갖게 된다. P. 227-228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며 상대를 인정하고 다름을 있는 그대로 두는 것, 그게 바로 관계의 여백을 만든다. 여백이 없는 관계는 언제든 부딪힐 수 있고, 부딪히면 쉽게 부서진다. 하지만 여백이 있는 관계는 충돌해도 다시 회복된다. P. 273

다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성숙의 시작이다. 인간관계의 성숙은 다름으로 차별하지 않는 데서 완성된다. -칼 융

다름은 우리를 확장한다. 똑같은 사람들 사이에선 배움이 일어날 수 없다. 나와 다른 의견, 다른 취향, 다른 세계를 접할 때 우리는 넓어진다. P. 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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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뮈의 인생 수업
알베르 카뮈 지음, 정영훈 엮음, 이선미 옮김 / 메이트북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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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뮈는 일찍이 “행복과 부조리는 같은 땅에서 나온 두 아들”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들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로, 인간의 삶을 지배하는 큰 기둥이기도 하다

고등학교 1학년 때인가 어느 때에 아버지가 대화 중에 갑자기 힘든 시절을 말씀하시고는 이런 시를 읊어주었다. 알렉산드르 푸시킨이 지은 시인데 처음 듣는 것이었지만 또렷이 기억이 난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슬픔의 날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살고 현재는 늘 슬픈 것

모든 것은 순간에 지나가고

지나간 것은 다시 그리워지나니...

내 삶에도 여러 번 아버지가 읊었던 것이 생각날 때가 많았다. 삶은 우리를 속이고, 아프게하고, 심하게 때린다. 이럴 때 참으로 슬프고 노여움이 일어 난다. 그런데 이 시는 참고 견뎌내라고 하고 있다. 그러면 기쁨의 날이 오고야 만다나...ㅠㅠ

삶이주는 괴로움은 누구나 겪는다. 쇼펜하우어가 인생에 한 부분을 말하길 ‘인생은 고통과 권태 사이를 오가는 시계추와 같다.’고 했다. 고통과 권태를 왔다 갔다하는 인생이라니...

참 쉽지 않는 인생 때문에 많은 이들이 울고, 괴로워하고, 극단적으로는 자살을 한다. 왜 그럴까? 한 마디로 '부조리한 세상' 때문일 것이다. 세상살이는 부조리함을 겪는 자들로 가득차 있다. 아니 세상은 부조리하기 때문에 모두가 부조리한 삶에서 허덕이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름 깊은 생각과 고민을 하고, 철학책을 읽고, 상담을 하고, 종교를 찾아서 이 문제를 해결함 받고자 노력한다. 이것을 해결함 받지 못하면 어떤 이는 미쳐버리기 때문이다. 실제 이 때문에 미친 사람이 많기는 하다. 그러나 나머지는 고통에 직면하면서 그저 버텨내고 살아내고 있다.

이 책을 소개하는 책 뒷편에는 그래서 "세상이 부조리해 보인다면, 불안과 공허에 지쳤다면 카뮈를 만나자!"라고 소개한다. 부조리 앞에서 고독에 무너져 가짜 인생을 살아가지 않기 위해선 이 책이 희망이 된다는 것이다. 한 직장인은 "세상이 던지는 무의미함 속에서 길을 잃고 불안할 때 이 책을 펼쳤습니다. '왜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응시할 용기를 주었고, 카뮈의 언어가 이렇게 쉽고 명료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부조리를 외면하지 않고 껴안는 것이 진정한 반항이자 자유라는 메시지에 깊은 위로를 받았습니다. 이 책은 불안한 마음을 다잡아주는 가장 든든한 철학적 길잡이입니다."라며 추천사로 적극 이 책을 권한다. 그렇다 인생을 볼 때 마치 시지프의 형벌처럼 무거운 바위를 매일 들어 올려야 하는 이유가 뭘까하며, 인생 자체를 원망하며 저주할 때 카뮈는 오히려 부조리한 세계가 우리 인간을 위대하게 한다고 말해주고 있다.

삶의 의미는 없지만

사는 것 자체는 의미 있다.

이 책은 알베르 카뮈의 사유가 121개의 명쾌한 아포리즘 형태로 우리의 마음을 흔들어 버리고 있다. 특히 『카뮈의 인생 수업』은 소설과 에세이, 수첩, 철학적 성찰 등 그의 방대한 전작에서 '현대인에게 가장 필요한 문장'만을 선별하여 작업해낸 책이다. 저자가 얼마나 심혈을 기울여 압축해 놓았는지를 알 수 있다.

카뮈의 '이방인'을 본적이 있는데 그때부터 카뮈라는 작가의 책에 관심이 가졌다. 그런데 이번에 '부조리'에 근거한 그의 삶의 철학을 이렇게 직접 선별된 글을 통해 맛보게 되니 카뮈가 얼마나 깊은 관념과 주시(注視, gaze) 속에서 세상을 바라보았는지를 더욱 알게 된다. 삶은 얼마나 '응시'하느냐에 따라 삶의 성숙을 이룬다. 현대인들은 그저 살아가고 있지만 철학자들은 삶을 깊게 관조하며 산다. 종교인 또한 관조를 하지만 그것은 신에게 귀의하며 맡기는 차원이라면, 철학자는 고민과 원인을 따지며 고통의 인과관계를 끝없이 추구하는 자이다. 그래서 인간적 차원으로 뭔가를 풀어내려고 노력하며 풀어낸다. 물론 이것을 읽는다고 해서 속 시원하게 세상의 만사가 풀리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읽다보면 "부조리한 세계를 사랑하는 법"을 만날 수 있다.

한 문장, 한 문장이 뇌와 가슴을 파고든다. 그리고 점점 부조리한 세상이 결코 나쁜 것이 아니고, 필요한 것임을 깨닫게 된다. 더군다나 그동안 시지프 신화를 언뜻 설명으로 들었을 때, 인간은 그렇게 부조리한 세상을 살아야만 하는 고통에 벗어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으로만 알았는데, 시지프의 신화가 주는 메세지가 오히려 인간에게 희망적 서사임을 알게된 것이 큰 소득이다.

인간은 이 부조리한 세상을 당당하게 마주대하며 살아야 한다. 부조리가 끊임없이 삶에 들이 닥쳐도 인간은 그것을 밀어 내버리려는 야망을 갖고 살아가야 한다. 그렇다. 인간은 고통에 짓눌리기도 하지만 그 고통을 이겨내어 다이아몬드를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래서 카뮈는 책 본문에서 "바다의 파도처럼, 인간은 무의미한 운명에 맞서 매 순간 새로운 의지로 반항을 재개해야 한다"고 말한다. 즉 바다는 모든 것이 항상 다시 시작된다는 증거라는 거다. 그러므로 부조리는 피하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것임을 역설한다. 인간은 살아있는 모순이며, 삶의 의미는 없지만, 사는 것 자체는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살아가는 것 외에 아무것도 의미를 갖지 않는다는 카뮈의 역설적 진리는 우리의 삶을 더욱더 숨쉬게 만든다.

세상이 부조리한 것은 분명 맞다. 그러나 불합리해 보이는 세상을 보며 화를 내며, 이해가 되지 않는 다고 해서 삶의 의욕을 꺾고 주저 앉거나 불평과 원망을 하기 보다는 카뮈가 전해주는 책으로 한 벌 발을 담궈보면 좋겠다. 불안과 공허함을 다잡아주는 훌륭한 철학적 에세이다.

"인간의 삶은 본질적으로 부조리합니다. 세계는 우리의 질문에 침묵하고, 죽음은 모든 기획을 무너뜨리는 피할 수 없는 한계 입니다. 우리는 이 우주의 무관심 앞에서 근원적인 고독에 홀로 남겨집니다. 그러나 바로 이 고독 속에서, 우리는 반항을 결단합니다. 초월적 구원이나 거짓 희망에 의탁하지 않고, 부조리와 고독을 정면으로 마주해 받아들일 때 비로소 실존적 자유가 열립니다. 운명에 굴복하지 않고 '아니오'라고 외치는 이 고독한 반항은, 결국 부조리한 삶 자체를 열정적으로 긍정하는 태도로 이어집니다. 우리는 태양과 바다, 대지를 동반자로 삼아 현재의 삶을 끝 까지 밀어 올리고, 이 현세적 충실함 속에서 비로소 타인과 연대하고 사랑하게 됩니다" p.178

매일 아침, 빛은 우리에게 새로운 시작을 선사한다.

이것이 자연의 충실함이다.

세상의 모든 아침에는 행복의 약속이 있다.

이 약속은 영원한 구원에 대한 신적인 보증이 아니라, 부조리한 운명에 맞서 오늘 하루를 다시 한번 긍정하겠다는 인간 스스로의 반항적인 의지에서 비롯된다. 자연의 변함없는 충실함처럼, 우리도 현재의 순간에 모든 것을 바치는 관대함을 통해 삶의 무한한 가치를 획득한다. 매일의 빛 속에서 삶을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부조리에 대한 우리의 최종적인 승리이다. p.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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