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7년 4월 1일, 이순신은 의금부의 옥문을 나왔다. 한 달이 넘는 고문으로 다리는 제대로 펴지지 않았고, 등에는 곤장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살이 헤졌다는 말이다. 한때 그는 정이품 삼도수군통제사였었다. 그 직함을 지닌 채, 죄인의 신분으로 그는 백의를 입고 남쪽으로 걸어가야 했다. 하늘은 무심할 만큼 맑았는데 그날의 일기는 단 한 줄로 시작한다. 바로 "맑음. 옥문을 나왔다." 그뿐이다. 억울함도, 한탄도, 분노도 원망도, 자기 연민도 없다. 한 나라의 바다를 지켰던 장수가, 자신을 파멸시킨 임금에 대해 단 한 줄의 변명이나 비난도 남기지 않다니 내 입장에서는 놀라울 따름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백의종군의 첫걸음을 내딛는 이 참담한 기록이, 칠 년간 이어진 『난중일기』에서 가정 처절한 전환점이라는 사실이다.
그는 옥문을 나서는 순간 한 가지를 분명히 했음을 본다. 그건 자신을 향한 동정을 거부하는 일이다. 그를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그들의 안쓰러운 시선을 자기 연민의 자원으로 쓰지 않았다. 즉 자신이 부당하게 당했다는 감각, 세상이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다는 감각, 나만 억울해 하는 감각 등은 한 번 빠지면 좀처럼 헤어 나오기 어려운 감정이다. 그는 그 늪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또한 한 때의 영광(직함)을 생각하지 않았다. 사람을 가장 오래 붙잡아 두는 것은 실패가 아니라 과거의 영광이라고 한다. 한 번도 가져 본 적이 없는 것은 쉽게 포기가 된다. 그러나 한때 손에 쥐었던 것을 놓는 일은 그렇지 않다.
그는 과거의 직함도, 한때의 성취도, 현재의 처지도 생각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저 옥문을 나서며 걸었다. 한 걸음, 또 한 걸음을 옮기면서 비장한 다짐이나 거창한 결심도 없이 통제사가 아닌 죄인의 신분으로 다만 걸어 갔다. 여기서 생각해 볼 것은 이러하다. 자존심과 자존감은 다르다. 자존심은 외부의 평가에 반응하는 감정이다. 누가 나를 무시했다. 누가 내 직함을 깎아내렸다. 누가 나를 함부로 대했다. 이런 감정은 외부의 사건이 있을 때마다 흔들린다. 그러나 자존감은 다르다. 외부와 무관하게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는 감각이다. 자존심이 강한 사람은 외부의 작은 신호에도 쉽게 격해진다. 자존감이 단단한 사람은 외부가 흔들어도 쉽게 흔들이지 않는다. 옥문을 나선 이순신이 보여 준 것은 강한 자존심이 아니라 단단한 자존감이었다. 즉 자신이 통제사가 아니어도 자신임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옥문을 나선 그날, 이순신은 무엇 하나 손에 쥔 것이 없었지만 자신을 정확히 보는 눈. 그 눈 하나로 그는 다시 일어섰고, 결국 바다를 되찾았다. 참으로 모든 것이 무너졌던 사람이다. 직위도, 명예도, 건강도, 가족도(가장 사랑하는 어머니를 잃었고, 아들마저 잃었다), 그에게는 없었다. 철저한 몰락 속에서도 그는 그저 남은 배의 숫자를 세고, 남은 군사의 숫자를 세고, 다음에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그가 통제사로 돌아 왔을 때는 남은 것은 배 열두 척과 흩어진 병사들과 굶주린 병사들만 있었다. 보통의 인간이라면 그 자리에서 무너지거나, 누구를 탓하거나, 하늘을 원망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다시 종이를 펴고 숫자를 적기 시작했다.
배 열두 척을 어떻게 운영을 할지, 어디에 배치를 할 수 있는지, 어떤 물길에서 싸워야 하는지를 가늠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래서 절망의 그 자리에게 그가 꺼낸 말은 한탄이 아니라 계산이었다.
"신에게는 아직 열두 척의 배가 남아 있습니다."
이 문장이 후대에 길이 남는 까닭은 비장함 때문이 아니었다. 그 안에 있는 계산 때문이다. 그는 없는 것을 아수워하지 않고, 있는 것의 정확한 수치를 말했다. 열두 척. 더도 덜도 아닌 열두 척. 그 정확함이 모든 결정을 가능하게 했던 것이다.
실패하고 좌절을 겪을 때 한탄만 하고 원망 하고 안 좋은 상황만 보는 것은 자기 삶을 갉아 먹는 것이다. 이순신은 우리에게 무너진 자리가 막연한 위로로 채우길 원치 않는다. 무너진 자리에서 가장 먼저 해야 될 일은 바로 종이 한 장을 펴고, 지금 나에게 남아 있는 것을 적어 보는 일임을 배운다. 무엇이 남아 있는가. 어떤 기술이 남아 있는가. 어떤 관계가 남아 있고, 어떤 시간이 남아 있는가. 어떤 몸이 남아 있는가를 살피면서 직시를 할 때 내일의 하루는 분명 달라질 것이다.
이순신의 장계(狀啓)는 이것을 알려준다. 즉 감정을 처리하는 자리와 상황을 처리하는 자리를 분리하라는 것이다. 감정은 일기 안에서 처리하고, 상황은 장계 안에서 처리하는 것이다. 두 가지를 그는 썩지 않았다. 분노한 채로 장계를 쓰면 거기에는 사실이 사라지고, 사실만 쫓으며 일기를 쓰면 거기에는 사람이 사라진다. 그는 두 가지를 따로 두는 법을 알았다. 즉 밤에는 인간 이순신으로 울고, 낮에는 통제사 이순신으로 계산했다.
이 책은 우리에게 거창한 위로를 주려고 쓴 책이 아니다. 그저 그 한 가지, 자신을 정확히 보는 눈을 어떻게 길러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그것이 모든 시작이다. 그는 단 한 번도 자신을 영웅으로 여기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자신을 늘 '신(臣, 임금을 섬기어 벼슬하는 사람)'이라 칭했고, 자신의 모자람을 일기에 적었으며, 잠 못 이루는 밤마다 어머니와 자식과 죽은 부하들을 떠올렸다. 그래서 저자 왈 "그는 강철 같은 사람이 아니라, 강철처럼 살기로 매일 결심한 사람이었다." 그 결심의 흔적이 『난중일기』에 남아 있고, 그 결심의 결과가 명량과 한산의 바다에 새겨져 있는 것이다. 그가 우리에게 건네는 가장 정직한 가르침은 《강한 사람은 태어나지 않는다. 매일 자신을 베어 낸 자리에서 만들어진다》는 말이다.
이 책은 위인전으로서 쓰여진 책이 아니다. 이순신이라는 한 사람의 삶을 통해 자기관리, 책임감, 리더십, 인생 경영, 준비의 힘을 배우게 하는 책이다. 삶이라는 파도가 세차게 우리를 혼돈케 하며 좌절을 불러 올 때에 자신만의 기준으로 무너지지 않을 시스템을 세우고 싶다면, 이순신이 남긴 가장 강력한 교훈을 이 책에서 만나게 될 것이다. 참으로 한반도 유사 이래 최고의 경영자로 불려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우리의 인생을 다잡아 주리라 본다.
그는 천재가 아니다. 적어도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의미에서는 아니다. 그는 감으로 싸우지 않았고, 영감으로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 그의 무기는 숫자였다. 적의 함선 수, 조류의 방향, 바람의 세기, 아군의 식량과 화약의 잔량. 이런 것들을 끊임없이 세고, 기록하고, 다시 점검했다. 『임진장초』에 남은 장계들을 들여다보면 알 수 있다. 그것은 영웅의 호언장담이 아니라, 철저한 보고서다. 숫자가 맞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았고, 조건이 갖춰지지 않으면 싸우지 않았다. 임금이 채근해도, 그는 자신이 계산해낸 승률 바깥으로는 한 걸음도 나가지 않았다. p.05
그가 가장 두려워 한 적은 왜군이 아니었다. 자신 안에서 자라나는 '괜찮을 것이다'라는 안일함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이 책의 출발점을 만난다. 스스로를 경계하지 않는 자는 결코 남을 벨 수 없다. 이 문장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다. 그것은 이 책 내내 깔려있는 일종의 원리에 가깝다. 외부의 적을 베기 위해서는 먼저 내부의 적을 베어야 한다. 내부의 적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알량한 자존심이고, 과거의 직급이며, 남이 알아 주지 않는다는 억울함이고, 누군가 내 인생을 구해줄 것이라는 거짓된 안전망이다. 또 이만하면 됐다는 만족이고, 결국엔 '나는 잘하고 있다'는 오만이다. 이 오만이 베어지지 않은 칼은, 아무리 날이 서 있어도 자기 자신을 향해 휘어진다. p.06
이쯤에서 당신은 묻게 될지 모른다. 그렇다면 이 시대에 이순신을 다시 읽는 일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가. 우리는 전쟁 중이 아니고, 칼을 쥘 일도 없으며, 모함당해 옥에 갇힐 일도 없지 않은가. 그러나 가만히 들 여다보면, 현대인의 삶은 그와 닮은 구석이 많다. 매일 아침 우리는 작은 옥문을 나선다. 우리는 타인의 평가 에 갇히고, 얄팍한 자존심에 베이며, 끊임없이 밀려오는 세상의 소음에 떠밀리며 하루를 시작한다. 손쉬운 변명과 막연한 위로 속에서 우리는 점차 자신을 직시하는 눈을 잃어간다. p.07
배를 띄우는 일은 늘 계산에서 시작된다.
신에게는 아직 열두척의 배가 남아 있습니다.
今臣戰船尙有十二
p.031
이순신이 거부했던 것은 바로 이것이었다. 그는 자기 자신과 어떤 흥정도 하지 않았다. 컨디션이 좋지 않아 도 일지를 썼고, 비가 와도 활을 쏘았으며, 몸이 아파도 회의를 열었다. 『난중일기』의 무서운 점은 영웅적인 자 면이 많아서가 아니다. 오히려 영웅적인 장면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 무섭다. 그는 매일 거의 비슷한 일을 반복 했고, 그 반복을 빠뜨리지 않고 기록했다. 그 기록의 단 조로움이야말로 그가 자기와 맺은 약속을 지켜 왔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였다. p.121
이순신이 안위에게 던진 말은 그래서 무겁다."도망간 다고 살 것 같으냐." 이 물음은 그 시대의 부하 장수에 게만 던져진 것이 아니다. 그것은 회피의 끝자락에 선 모든 사람에게 던져진 물음이다. 비켜서면 정말 무사할 것 같은가. 미루면 정말 사라질 것 같은가. 모른 척하면 정말 없던 일이 될 것 같은가. 대개는 그렇지 않다. 비켜 선 자리에서 더 큰 파도가 다시 밀려온다. 그때는 피할 시간조차 남아 있지 않다. p.139
- 이 글은 컬처블룸을 통해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