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의 향기 - 싱그러움에 대한 우아한 욕망의 역사
알랭 코르뱅 지음, 이선민 옮김 / 돌배나무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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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의 향기라는 책은 손에 잡히자 마자 내 영혼이 본성에 끌리듯 나를 기억 속의 저편, 내 어릴적 고향의 풀 냄새로 향하게 하였다. 태어난 고향은 하회마을 위 병산서원과 가까운 낙동강을 바로 끼고 도는 시골이다. 부친(모친)의 타지 생활로 인해 서울과 대구, 기타 지역에 잠시 있었지만 나의 부모는 초등학교 4학년 때 내가 태어난 고향으로 오셨다. 그리하여 내 어릴적 추억은 은빛 물결을 비추는 낙동강 물결과 함께 풀내음새 가득한 정취로 내 온몸을 감싸주는 혜택을 누리게 되었다.

나는 다시 태어나도 이곳에 태어난다면 신을 향해 원망은 커녕 또 다시 감사하며 이곳에서 살아갈 것이다. 그만큼 나는 '풀의 향기'를 잘 알고, 좋아하고, 풀을 통해 장난도 치면서 동네 친구들과 풀을 헤치며 달려가는 천방지축의 소년이었다. 또한 소꼴을 베며, 소를 끌고 낙동강 둑방에 올라 소를 묶은 뒤, 해가 질 때까지 오염되지 않은 강에서 뛰어 놀다가, 해질녘 붉은 노을을 보며 소와 함께 돌아오는 삶을 살아간 매우 행복한 소년이었다.

그래서 풀없이는, 강물이나 바다를 보지 않으면 나는 살 수 없다. 도시로 오면서 나는 공원을 자주 찾았고, 자연 속으로 들어가 계곡에서 쉼을 누리며, 풀이 주는 아늑함과 향기를 누리는 일을 계속하고 있다. 주어진 업무 때문에 이것이 허락되지 않을 때는 내 영혼 어딘가는 고장이 나서 마치 마약 중독자처럼 금단 현상(마음 지진)이 일어나 미칠거 같아 나는 내 아내를 데리고 또 풀의 정취를 찾는 하이에나가 되고는 한다.

그런 중에 '풀의 향기'가 나에게 다가 왔다. 책 표지가 주는 아늑함과 책 안에서 펼쳐지는 싱그러운 글풀들이 읽으면 읽을 수록 글맛에 빠져 들었고, 귀스타브 플로베르가 루이즈 콜레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언급되었듯 "한 장의 풀잎에 대한 이야기에 무한한 사랑을 담아 낼 수 있겠지요."처럼 수만장의 풀잎이 지금 내 앞에 펼쳐지면서 나는 글풀에서 나는 냄새에 너무 황홀해 있다.


책을 펼치면 그림 8점이 나온다. 모든 그림이 '풀'과 연관되어 있다. 조금 더 선명했으면 좋겠지만 이 정도라도 만족한다. 책을 디자인하고 편찬한 이들에게 감사의 말을 하고 싶다. 개인적으로는 1번 그림인 《이니 목장의 다리, 아침 풍경》이 가장 좋다.

본격적으로 책에 대해 얘기해보자

《풀의 향기》는 프롤로그에도 언급되었듯 정말로 풀에 관한 이야기이다. 인간이 풀을 접하면서 그 풀을 통해 시가 태어나고, 문학 작품이 만들어지며, 화가의 손길을 통해 명화(名畫)가 탄생하였다.

풀이 주는 매력 때문에 너무나 많은 문인들과 화가들이 넋을 잃고 감성을 마구마구 풀어 헤치는데 책을 읽어보면 어떤 문학적인 책보다 뛰어난 책이며 무한한 인간의 감성을 '풀'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이렇게도 풀어 낼 수 있다니 너무나도 놀랍다.

풀은 본질적으로 태초의 정취를 간직한 듯 우리 기억 속 유년기의 원형적 장면을 이룬다는 저자의 말이 실감처럼 느껴진다. 그 이유는 '이브 본느프와'의 말처럼 풀을 만나는 순간 특별한 느낌과 마주 대하는 감동을 느끼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여기가 바로 내가 있을 자리이니. 결코 이론의 여지조차 없는 이곳." 랄프 에머슨 또한 풀을 마주하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여기가 나의 고향이구나"라고 생각하였다. 풀은 이렇게 인간의 감각과 욕망, 시간, 공간 인식, 감수성, 호감, 편안함, 욕망과 같은 다양한 감정을 느끼게 하며 우리 인간 곁에 머물며 미묘한 행복함과 기쁨과 평온함을 주고 있다.


여기에 관해 이 책은 너무나 잘 정리되어 있어 단지 그 글풀들을 가지고 와서 소개하면 될 것으로 생각된다. 풀이 주는 매력을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지 문학적 감성을 가진채 읽어보자!


풀은 인간을 바라본다. 풀은 인간에게 말을 건다. 풀이 건네는 말이 곧 자연의 말이다.

"불변의 상형문자"를 만들어내듯, 풀을 바라보고 글을 쓰면 풀처럼 담백한 말들을 찾아 쓰게 된다.

풀은 시의 근원이 된다. 그 이유는 풀의 존재는 비관념적 언어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풀은 대지의 수많은 비밀을 담고 있으며 땅 그 자체를 담아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풀은 안과 밖 사이의 연속성에 관한 환상을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월트 휘트먼의 눈에는 풀이 지상 최고의 예술작품처럼 보였다.

미셀 콜로는 풀을 "감정적 물질"로 정의했으며, 풀에 관해 글을 쓴 수많은 문호들은 그것이 가진 무수한 특징들을 끊임없이 찬양해왔다. 그중에서도 그들이 입을 모아 찬양한 것은 바로 풀의 온화함과 명료함, 깨긋함, 순수함이다. 빅토르 위고는《내면의 목소리》에서 그 누구도 밟지 않은 풀을 상상한다. (...) 풀이 지닌 수많은 특징들 가운데 하나를 더 말한다면 '기인한 간결함'이다. 풀은 세상과 생각을 단순하게 만든다.

풀은 눈부시고도 "명백한 빛"을 지닌 강한 존재이자, 온화한 퇘와 근원을 상징한다. 그런데 이보다 더 놀라운 것은 바로 풀이 지닌 타고난 순수함이다. 인간은 "구름의 푸른 자매"인 풀의 "한없는 품속"으로 저도 모르게 파고들게 된다. 또한 필립 자코테가 말했듯 풀은 "진중하면서도 유쾌하고, 잘 웃으면서도 과묵하며 다정하면서도 억세다." (...) 풀이 주는 다양한 교훈적 가치에는 풀의 끈기, 에너지, 솟아나는 능력이 있는데 '장 피에르 리샤르'는 풀이 차분한 힘을 지녔다고 말했다. "풀은 포기할 줄 모른다.", "풀은 자신의 존재를 붙들고 인내한다." (...) 이렇게 풀은 순수함과 고요함, 일렁임을 통해 때로는 우리를 환상으로, 무위의 상태로, 혹은 영혼의 평안함으로 이끌기도 한다. p10-12

중세 문학을 보면 봄을 찬양하는 대목, 즉 초록색에 매료된 자들이 품어내는 작품들이 많다.

그 중에 대문호인 괴테는 봄을 이렇게 노래했다.

“하늘은 고요하고 바람도 잔잔할 제,

어린 풀은 물결 이는 냇가에 자기를 비추네.

봄은 즐거이 일하며 살아가누나.”

《풀의 향기》는 이렇게 ‘풀’이라는 미시적인 소재를 분석하면서 과거부터 오늘날에 이르는 풀과 관련된 풍부한 감정들을 폭넓게 다루어 준다. 그 중에 대문호들과 유명 화가들의 이름이 나오는데 참고해서 먼저 기대하며 읽으면 도움이 될 것이다. 그 이름들은 익히 귀에 익숙한 자들이니 빅토르 위고, 에밀 졸라, 보들레르, 릴케, 헤르만 헤세, 셰익스피어와 같은 대문호인들과 조르주 쇠라, 조르조네, 앙투안 셍트뢰유 등등의 유명 화가들이 있다.

이 책을 보며 저자가 누구일까하며 다시 보게 되었다. 그는 근대사와 미시사를 전문 분야로 삼고 있는 프랑스의 역사학자이다. 저자인 알랭 코르뱅은 역사가다운 통찰력과 방대한 지식으로 많은 작가들의 문학 작품과 그림을 깊이 있게 분석해 주면서 마치 에세이를 읽는 듯 한 편안함을 주는 인문역사서를 완성시켜 우리에게 선사해 주고 있다. 이런 말이 있다. 만일 섬에 홀로 떨어진다면 가져 갈 책 중에서 몇 권을 고른다면 어떤 책입니까할 때 몇 권 중에 들어갈 만한 책이 오늘 내가 보고 있는 《풀의 향기》라고 망설이지 않고 말하리라!

마지막으로 에필로그에서 언급한 대목도 새겨들을 필요가 있어 가져와 본다.

이제는 풀이 더욱더 환영을 받고 치워버려야 할 대상이 아님을 알아야 된다고 말한다. 즉 이제는 보도에 자란 잡초를 뽑아보리지 않고 그대로 두고, 창가와 건물 지붕에 화분을 올려두는 일뿐만 아니라 19세기부터 파라의 나무들 주변에 쳐져 있던 철책들을 치우고 그 자리에 풀을 위한 자그마한 공간들을 마련하는 일을 두 팔 벌려 환영할 때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 풀은 우리 삶의 공간에서 낫을 들고, 살충제를 들고 훼손해도 되는 당연함이 아닌 우리의 정서와 감성을 위해 함께 동행하는 소중한 개체로 봐야한다. 해로운 풀이 존재할까? 어쩌면 인간이 해로운 풀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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