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마이 갓 오 마이 로드 - 바이러스 · 종교 · 진화
방영미 지음 / 파람북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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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이 책은 흥미를 가진 자들에게는 이슈가 되며 자신을 대변해 주는 책이 되겠지만 종교에 신물이 나거나 종교를 넘어선 자들에게는 또 하나의 사설(辭說: 늘어놓는 말이나 이야기) 밖에는 되지 않는 글이지 않나 생각해 본다.

잘못된 제도 종교에 대해, 기독교에 대해, 카톨릭에 대해 이미 많은 이들이 종교가 혹세무민하는 종교로 전락하였음을 말해왔다. 이러한 종교의 해악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 종교가 있는 곳이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현상 중 하나다. 중국 명나라 때에 유약우(劉若愚)라는 사람이 자신의 저서 《작중지(酌中志)》에서 이런 말을 하였다. '불교를 매우 싫어하니, 혹세무민하므로 물리치고 끊어내야 마땅한 것들(極厭憎釋教, 以爲惑世誣民, 最宜擯絕者)'이라는 대목이 그것이다.

독자로서 이런 책을 여러 권 읽으면서 잘못된 종교를 까는 것에 대해 희열을 느끼며 열심히 까기도 했는데 이제는 뭐랄까? 무심한듯 바라보며 종교 너머의 세계를 바라보는 상태가 되었다고 말하고 싶다. 종교 본연의 깊은 관점에서 바라 본다면 종교를 까는 사람이나, 종교의 해악을 끼치는 존재들인 성직자들이나 '성직자를 타락시키는 신자들(p73)'이나 서로가 앙숙 관계이면서 서로를 필요로 하는 존재로 전락했다고 말하고 싶다.

언제나 가짜는 존재해 왔다. 굉장한 진품일수록 이미테이션한 제품은 어디에선가 만들어 지고 있다. 니체가 종교를 열심히 해체시킴으로서 종교 본연의 모습을 가져왔다고들 말하기도 하지만 그가 써낸 독소에는 썩 내키지 않는 글도 많아 오히려 진짜 신을 죽이고 있는 그가 바로 니체인지도 모른다.

이 책의 핵심 요지는 이것이다.

종교는 버려도 신앙은 버리지 말라!

잘못된 제도 종교, 사이비 종교로 인해 다른 나라 종교는 뒤로하고라도 한국의 교회는 이미 사람들에게 외면을 받아버린 맛을 잃어버린 소금이 되었다. 성경을 보면 그런 소금은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뿐이니라(신약성경 마태복음 5:13절)'고 말해 준다.

종교학 박사인 방영미 작가가 우리 시대의 종교에 대한 존재 양상과 신앙의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독설을 하지 않아도 이미 기존의 교인들에게나 가나안 성도들, 일반 시민들에게 교회는 침몰하는 존재가 되었음을 익히 아는 바이다. 여기에 미디어+정치가 많이 작용하였다는 것을 방영미 작가가 모르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세상이란게 진실(정의)이라는 잣대로 오히려 상배방을 더 심각하게 매도하고 짓밟아 버리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서 보니 그 진실(정의)이 누군가에 의해 네모라고 봐야 될 대상을 세모라고 바라보도록 하여, 진실이 역전되어 그게 악이라고 판명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멀리 보지 않아도 된다. 히틀러 시대에 그를 추종하는 자들은 그의 생각과 이념대로 움직이는 것이 신의 뜻처럼 여겨졌었다. 여기에 칼바르트라는 대신학자의 스승도, 본회퍼라는 목회자의 스승도 히틀러를 지지했으니 알만하다. 그러나 진실은 결국 순교 당한 본회퍼의 생각이었다.

따라서 이 책이 잘못된 종교의 관행을 들춰내며 교회의 속물적인 것을 긁어내는데 있어 누군가에게는 시원한 쾌감이 되고, 혐오하게 만드는데 큰 일조를 하는 책이 되는 지는 모르겠지만 그 가운데 잘못된 오해의 불씨도 있다는 것은 매우 안타깝다. 저자 또한 이 책에서 다루고 있지만 '목욕물을 버리려다가 그 안에 있는 아기까지 버리는 일'이 생기게 만들 수 있다.

페이지 27, 32페이지를 보면 그런 얘기들이 나온다. "누구나 돈 때문에 현장 예배를 고집한다는 사실을 잘 안다.... 전 국민이 다 아는 사실을 교회만 모르는 척 아닌 척한다." 그리고 선민 의식까지 들먹이며 교회가 마치 지성적으로 아마베가 되어진 것처럼 얘기한다. 그리고 "한때 선진문화로 존경 받던 종교가 21세기에는 후진문화로 전락해 버렸으며, 미개하고 구태스러우며 무지한 사람들의 모임"이라고 치부한다. 또한 맹목적이며 개념이 없는 종교로 낙인을 찍는다.

한 외국인이 한국에 관광을 왔다. 소매치기를 당하고, 안 좋은 사람을 만났다. 그리고 그는 한국인만 아니라 아사아계 사람들을 다 나쁜 사람으로 보고 피한다고 할 때 그것이 과연 옳은 행위이며 지성적인 사고인가 묻고 싶다. 최근 뉴스이다. 한국계 미국인 자매에게 다짜고짜 “우한으로 돌아가라"며 폭언을 퍼부은 백인 남성이 있었다. 그런데 이 계기로 그는 직장에서 해고되었다. 그는 상황 파악이 안 되는 지성이 결여된 사람이리라.

이와같이 신천지 이만희나, 전광훈이라는 사람 하나로 모든 크리스천들을 이상한 사람 취급한다면 그 사람이야 말로 개독교 수준의 사람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즉 현장 예배를 드리려 하는 사람 보다 현장 예배를 드리지 않고 수칙을 지키는 교회가 더 많으며, 위선의 탈을 쓴 종교인 보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 또한 더 많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

세상을 전부 악한 세상이라고 보며 사는 사람이 있고, 세상이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답고 가치가 있다며 밝게 바라보며 사는 사람이 있다. 어떤 제품도 완점품은 없다. 똑같은 기계에서 찍어내는 아이폰도 뽑기라는 말을 하지 않는가? 선한 역할을 하는 종교가 있고 썩은내가 나는 종교가 있다. 그것을 가려주는데 있어 방법론을 종교학 박사라면 좀 더 다르게 표현해주는 방법도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물론 이 책은 펜데믹으로 인해 교회가 관행적으로 해왔던 신앙생활에 대해 심판을 제대로 당하고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페이지 16페이지에서 언급하듯 비대면 접촉은 신앙의 진화 과정을 겪는 중대한 전환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각종교마다 믿고 있는 신에 대한 정립이 새롭게 필요한 시대라고 말한다.

이 책은 종교와 신앙의 관계에 대해 종교학자답게 사회 속에서 신앙의 윤리를 어떻게 가져야 할지 말해주고 있다. 어쩌면 처음 이런류의 책을 읽는 자들에게는 신앙의 지각 변동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변동이 종교가 추구하고 있는 종교성에서는 결코 멀어지는 않는 길이 되기를 바란다.

모든 책이 그러하듯 어떤 것은 거르고, 어떤 것은 담아두면서 각자가 결국 택하며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더불어 진리를 추구하는 관점이 열려 있으면서 그 진리가 관습된 진리가 아닌, 사회적 시선에서 볼 때 정의의 관점, 사랑의 관점, 평화의 관점, 합리적이고 지성적인 관점을 유지하면서 주어진 종교성을 유지해 나간다면 관행적인 종교의 행위 또한 그렇게 썩 나쁘지는 않는 것임을 알면 좋겠다. 종교의 외적 행위는 내적인 신을 만나기 위한 불교 용어로 볼 때 '방편'인 것이다.

어떤 글을 봤는데 자료가 어딨는지 몰라 스토리만 써본다. 어떤 초자 스님이 성철 스님을 만나기 위해 3천배를 해야 된다는 말에 절을 하면서도 말도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3천 배를 하면서 그는 깨달았다고 한다. 3천 배는 단 한 번의 진짜 '배(拜)’를 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종교를 잘못 이해하여서 종교가 주는 유익을 버리려다가 그 안에 담겨 있어야 할 종교성(심) 마저 버린다면 그처럼 불쌍한 영혼은 없다. 이 책을 읽어나가데 종교의 핵심과 진리를 보면 좋겠다.

그렇다 종교는 삶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종교는 누군가에 의해 혹세무민 당해서는 아니 된다.

탐욕으로 거대해진 권력형의 교회는 어느새 길을 잃어버리기도 했다. 그러나 성경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셨듯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는 말씀처럼 보완해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완전하게 걷어 낸들 이 세상에서는 그 완전함이 언제나 불완전함을 갖춘 상태임을 안다면 너무 곧세워 날을 갈 필요는 없을 것이다.

성경의 또 한 구절이 생각이 난다. 신약성경 누가복음 11:42절에 나오는 말씀이다. 후반부의 말씀을 인용해 본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어떤 면에서는 이런 책도 버리지 말고, 그리고 기존의 종교적 행위 또한 지나치게 버리지도 말아야 할 것이다. 어리석게도 막 걷어내다 보면 남아 있는 것이 먼지만 쌓인 빈공간만 덜렁 남아 있게 된다. 즉 또 다른 십자군 전쟁이며, 마녀 사냥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저자의 생각과 일치하지 않는 것을 한 가지 적고 이 책에 대한 나의 담론을 마치고자 한다.

동성애에 대한 생각이다. 그녀는 교회가 이 문제를 가지고 문제 삼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즉 그녀는 동성애 옹호론자다. 저자의 말이다. "만약 동성애자들이 아직 사회적 약자라서 외면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종교가 그리고 신앙인이 할 짓이 아니라고 하겠다."

이 말에 이런 말이 떠오른다. "말이야 방구야!" 즉 허튼 소리라는 말이다.

저자가 가진 종교학자적인 생각은 대표적인 퀴어신학인 '테드 제닝스' 교수가 얼토당토 않게 말한 거와 다를바 없는 몹쓸 짓이다.(짓이라는 말은 저자의 말을 따온 것이다.) 즉 테드 제닝스의 퀴어적 성경 해석은 동성애를 지칭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성경 구절을 자의적으로 재해석할 뿐 아니라 성경의 몇몇 등장인물을 게이나 레즈비언으로 보려는 시도로 이어지면서 그들의 관계를 동성 간 사랑으로 해석하는 무지한 논지를 가진다. 이건 무지를 넘어 억지요, 악의적이며 검은색을 굳이 흰색으로 보겠다는 희한한 발상이다. 동성애자나 옹호론자들은 '틀림'이 문제를 '다름'의 문제로 가지고 와서 전략적으로 선천성을 주장하며 입증하려 하지만 엄연히 후천적인 것임이 연구 결과가 드러나고 있다. 신체는 각자의 역할이 있다. 대변을 누는 곳으로 대변을 누고 생식과 사랑에 필요한 것으로 생식기가 존재한다. 이거 어거지로 입이 있으면서 밥을 코로 넣어버리려는 격이다.

따라서 신학적으로 의학적으로 상식적으로 직관적으로 평이한 생각으로도 동성애는 합리화할 것이 아니라 수정하고 개선할 것으로 정의되어야 할 것이다. 약자를 포용하고 생각한다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다. 종교학을 공부하는 자들을 보면 모든 다원적인 진리를 받아들이는 것이 마치 지성적 우위에 있는 존재로 여기면서 자신들을 치켜세우고 있지만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하는 단순한 진리조차도 모르는 궤변이며 사변적인 허상이다.

따라서 절대적인 진리를 인정하지 않는 다원주의 사회에서 '관용을 베풀어야 할 영역'과 '타협 없이 대결해야 할 영역'을 알고 제대로 말해 줄 필요가 있다. 또한 선과 악의 기준이 각자의 소견에 따라 정해지는 도덕적 상대주의의 시대에서 '선해 보이는 것'과 '선한 것'을 분별할 수 있는 예리한 영성 및 지성적인 자격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물론 저자는 무지몽매한 종교에 사로잡혀 제도적 종교속에 헤매이는 자들에게 길을 알려주는 안내자의 역할을 하는 부분이 있으나 지나치면 무엇이든 문제가 있는 법이다. 암튼 저자가 이 책에서 말해주고자 하는 부분인 "종교는 버려도 신앙은 버리지 말라!"는 말을 새김질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더 나은 종교 "종교성"에 이르면 좋겠다. 건강한 종교는 사회와 조화해야 한다는 저자의 말이 진리이면서도 진리가 아님을 저자 또한 깊은 의미로 말해졌다고 해석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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