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열 세계명작산책 2 - 죽음의 미학, 개정판 이문열 세계명작산책 2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외 지음, 이문열 엮음, 김석희 외 옮김 / 무블출판사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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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이라는 이름 하나에 이 책에 관심이 갔다.

 

더군다나 이 책은 죽음을 주제로 한 중단편 9편이 모아져 있어 죽음에 대한 통찰을 얻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죽음은 우리 모두의 중요한 관심사이며 분명한 현실이다.

 

2주간의 간격으로 장례식을 갔다 왔고, 고향에서 92세의 노인이지만 어머니가 아는 분이 돌아가셨다.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사람들과 어울려 얘기를 나눴으며 평상시처럼 음식을 드셨는데 그 다음 날인지, 아니면 그날 저녁인지 그 노인은 죽음을 맞았다는 것이다.

 

아참! 운동하면서 안 분이 있는데 내가 한 동안 바뻐 그분과 교류를 하지 못한 사이 간암 말기 판정을 받고 6개월만에 아내와 자녀를 놔두고 하늘나라로 갔다. 51세의 나이다. 좀 전의 장례는 평범한 장례식이지만 51세의 건강한 그 사람은 나에게 죽음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가르쳐 주고 갔다.

 

그래서 이 책은 더더욱 나에게 죽음에 대해서 다채롭게 무언가 말해줄거 같고, 이것을 통해서 내 삶이 더 의미있어 졌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죽음! 그것은 인간이 가진 모든 것을 가져가며 한 줌의 흙이 되게 한다.

 

머리말에 죽음의 의미를 매우 적절하게 잘 적은거 같아 옮겨 본다.

 

"허무가 존재의 조건인 것처러 죽음은 삶을 삶답게 하는 전제가 된다. 죽음이 없다면 삶은 어떤 끝없는 상태 혹은 지루한 상황의 연속으로서 그 독특한 의미를 잃고 말 것이다. 삶은 죽음 때문에 유한성에 갇히게 되지만, 또한 죽음 때문에 무한과도 견줄 만한 의미를 얻게 된다. p19

 

죽음은 이렇게 삶의 의미를 두게 하는 무게감을 준다. 그래서 문학 작품도 특히 소설이 죽음을 즐겨 다루는 것은 그만한 의미가 크기 때문일 것이다. 즉 고대로부터 죽음은 문학의 가장 진지한 주제이면서 또한 가장 감동적인 장치이기도 하다. 이번에 나온 <이문열의 세계명작산책> 작품에는 현대 단편 소설이 어떻게 죽음을 다루고 있는 지를 보여 준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톨스토이와 헤르만 헤세,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작품과 함께 이름은 들어보았으나 생소한 작품으로 죽음을 소개하는 작가들의 소설을 통해 죽음의 미학을 들여다 보는 기회가 되었다. 특히 번역을 새로한 작품이 있는데 바로 헤르만 헤세의 크눌프. 기존 중역을 직역으로 바꾸어 읽는 이가 새로운 맛을 보게 해주는 시간이 되었다.

 

이 책의 한 문장

 

이반 일리치의 죽음은 각자에게 전근과 승진의 계기가 될지 모른다는 기대감과 함께, 가까운 친지가 죽었을 때 으레 그렇듯이, 그 소식을 들은 사람들 모두의 마음속에 '죽은 건 그 사람이지 내가 아니야' 하는 안도감을 불러일으켰다. 그들은 저마다 '그래 그는 죽었지만 나는 이렇게 살아 있잖아!' 하는 생각이나 느낌을 가졌다. (...) 친구들은 예의상 장례식에 참석해 미망인에게 조의를 표하는 따위의 귀찮은 의무를 수행해야 할 것이라는 생각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가장 친한 친구가 있었으니 '표도르 바실리예비치와 표트르 이바노비치였다. 특히 표트로 이바노비치는 이반 일리치와 법률학교를 함께 다녔으며, 그에게 여러 가지 신세를 졌다고 스스로 인정하고 있는 터였다. 저녁을 먹으면서 표도르 이바노비치는 아내한테 이반일리치의 사망 소식을 전한 다음, 어쩌면 이번 기회에 처남을 이쪽 재판 관할구로 전근시킬 수 있을지도 모른자는 그 자신의 짐작을 털어놓았다. p27-28

 

이반 일리치의 작품의 한 부분이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톨스토이는 인간의 적나라한 모습을 마치 내면을 훤히 들여다 보듯 말하고 있다. 지금 사람이 죽어간 현장이며, 그것도 친분이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죽음 앞에 저마다 죽은 사람을 생각하거나 자신의 죽음을 바라보기 보다 자신이 얻을 수 있는 것만 바라보는 저질의 인간 군상들을 톨스토이는 이 작품에서 드러낸다.

 

 

그렇다. 인간이란 존재가 이렇게도 파렴치하며 이기주의적이며 자신의 삶을 돌아보지 않는 한심한 존재였던 것이다. 이반 일리치는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자신의 삶을 냉정히 돌아보면서 마침내 자신의 삶이 올바르지 않은 것임을 깨닫게 된다. 자신의 공직 생활, 자신의 삶 전체, 그리고 자신이 추종했던 상류층의 관습과 사고방식 모두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허비해버렸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또 하나의 대목을 가져와 본다.

 

"나는 위로 올라가고 있는 줄 알았는데, 실은 그동안 줄곧 내리막 길을 걷고 있었던 모양이군. 아니 그런 모양이 아니라 실재로 그랬어. 사람들 눈에는 내가 위로 올라가고 있었지만, 그만큼 생명의 썰물처럼 나한테서 멀어져가고 있었던 거야. 그리고 이제 생명은 다 끝났고, 남은 건 죽음뿐이야. 그렇다면 이건 도대체 무얼 뜻하지? (...) 인생이 그렇게 무의미하고 끔찍한 것일 리가 없어. 하지만 정말로 그렇게 끔찍하고 무의미한 것이었다면, 나는 왜 죽어야 하지? 게다가 왜 이런 고통 속에서 죽어야 하지? 뭔가 잘못됐어!" p117-118

 

죽음은 이렇게도 우리에게 분명 많은 것을 가르쳐 주지만 살아있는 우리는 그 누구도 죽음을 직시하지 않는다. 어쩌면 그래서 삶에 집중하고 사는 지도 모르겠다. 진정 죽음은 인간에게 끔찍한 것이며 마주치고 싶지 않는 존재지만 그러나 누구나 거쳐가는 죽음의 길을 이 책을 통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되었다.


얼마 전에 읽은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에 이런 내용이 있다.

 

에픽테토스가 말하기를, "당신이 자녀와 입맞춤을 하는 순간에도 마음속으로 '어쩌면 너는 내일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라"라고 했다. 사람들이 너무 불길한 말씀이라고 투덜거리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그것은 전혀 불길한 말이 아니다. 단지 자연의 한 행위를 묘사했을 뿐이다. 이것이 불길하다면 잘 익은 옥수수를 수확한다는 것도 불길한 일이 아니겠는가!"

 

 

죽음... 그것은 우리와 어쩌면 가장 친한 친구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친구에게 우리는 잘 다가가지 않는거 같다. 이 책은 '죽음'을 다채롭게 살피며 우리 모두에게 죽음을 잘 맞이하게 해주는 소중한 책이다. 인간 존재의 본질이자 문학의 가장 진지한 주제인 죽음을 오늘 진지하게 읽었다. 죽음을 밀어내는 독자들이 있다면 이 책은 당신에게 가장 좋은 책이 될 것으로 본다. 그러니 밀어내지 말고, 적극적으로 당겨서 죽음을 당당하게 마주하자!

 

삶이란, 식어버린 마음으로 바라보니

 

덧없고 어리석은 장난이로구나

 

- 마하일 레르몬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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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 산문선 열린책들 세계문학 256
조지 오웰 지음, 허진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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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well pictured in 1943

얼마 전 스타북스 출판사에서 조지 오웰에 대한 신간인 『동물농장』에 대한 책을 보게 되었다.

눈에 딱 뛰는 돼지 그림이 표지를 장식하면서 무언가 강렬하게 독자들에게 말을 걸어 오는 것을 느꼈다. 책 소개에 따르면 동물농장은 20세기 영미문학의 가장 중요한 작가인 조지 오웰의 대표작이라고 말한다. 오웰의 작품 중 유일하게 유머가 가득한 작품으로서 간결한 문체와 예리한 풍자가 돋보이며 소설을 통해 사회 비판적 역할을 풀어내고 있는 소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스탈린주의를 비판한 최초의 문학작품이며 정치 풍자소설로는 가장 훌륭한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싶었지만 기회가 되지 않았는데 이번에 그의 산문집이 열린책들 출판사를 통해서 나오게 됨으로 그의 대표작은 아니지만 그가 쓴 에세이 중에 냉철한 통찰을 보여주는 빼어난 산문들을 분야별로 골고루 엄선한 선집을 보게 되는 기회가 생겨 기쁜 마음으로 보게 되었다.

"오웰의 최고 걸작은 바로 에세이들이다" -『데일리 텔리그래프』

<오웰의 글은 에세이에서 시작하고, 그의 에세이는 경험에서 시작한다>라는 평이 있다.

그만큼, 오웰의 에세이에는 그의 사상과 문학을 이루는 기초가 된 단상들을 넘어 그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경험들이 생생하게 담겨 있음을 보게 된다. 실제로 오웰은 에세이들을 발전시켜 여러 장편소설을 완성하기도 했으며, 자신에게 강렬한 영향을 미친 체험들과 사회 이슈들에 대한 생각을 에세이로 솔직하게 기록하였다고 그에 대해 평가한다. 그러므로 그가 남긴 에세이들은 그의 실제적인 내면 세계의 모습을 확연히 필체로 남기고 있어 소설 속에서 볼 수 없었던 오웰 자신의 사상을 면밀히 곁에서 지켜보는 시간이 되어 진다.

특히 이번 책에 세번째 나오는 「코끼리를 쏘다」의 글은 맨 처음 읽은 부분이면서 이 부분을 읽고 그의 팬이 되었다고 말할 정도로 너무나 재미있게 보고 많은 생각의 이념들을 남긴 에세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 에세이는 그가 버마에서 제국 경찰로 살았던 일의 경험을 쓴 에세이다.

이야기는 간단하며 마치 빨려들어가듯 읽었다. 어느 날 이른 아침이었다. 그는 5년간 버마 제국 경찰로 일할 당시 자신의 관할구역 내에 발정 난 코끼리가 사슬을 끊고 시장에서 난동을 피우고 있다는 전화 한 통을 받는다. 이 코끼리는 방금 말했다시피 야생 코끼리가 아닌 버마인들이 길들이는 코끼리였다. 큼직한 사슬로 묶어 두었지만 발정이 났기에 한 번에 끊어버렸다. 코끼리는 이미 대나무 집을 한채 부수고 암소 한 마리를 죽인 상태이다. 그리고 쓰레기차와 맞닥뜨렸을 때 그 차를 뒤집어 버리는 괴력을 보여줬다. 이윽고 그 코끼리는 인도인중 피부가 검은 드라비다인 '쿨리(하층 노동자)'를 무참히 뭉개 버렸다. 즉 사망케 하였다. 이에 오웰이 총을 들고 오자 동네 사람들은 그에게 코끼리의 행방을 적극적으로 알려주며 코끼리를 처리해 주기를 바랬다.

그러나 문제는 그가 코끼리를 쏠 생각이 없었다는 것이다. 마치 살인행위처럼 느껴졌고, 게다가 이 짐승의 주인도 생각해야만 했다고 한다. 그런데 군중은 그가 그 코끼리를 죽이고 어서 빨리 자신들에게 그 고기를 제공해 주기를 열망하고 있었다. 그는 코끼리 상태를 보니 이미 발정기가 이미 지나갔다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코끼리는 매우 평화롭게 풀을 뜯어 흙을 털고는 입에 넣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다시 날뛰지 않는지 조금 지켜보다가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는데 자신 뒤로 이미 적어도 2천 명의 군중이 그를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1분마다 사람들이 더 늘어났다고 한다.

분명 집에 갔어야 했는데 그는 "저항할 수 없을 정도로 등을 떠미는 2천명의 의지가 느껴졌다"고 말한다. 그리하여 그는 무기력하게 돌아가는 것을 포기하고 사람들이 그를 비웃을까봐 코끼리를 향해 총을 쏘기 시작했다. 인도인들은 그 모습을 보며 마치 극장의 커튼이 올라갈 떄처럼 숨죽이며 행복한 모습으로 지켜보았다. 코끼리는 총 다섯 번의 총소리와 함께 무너졌으며, 이후 그는 죽지 않는 코끼리를 향해 소총으로 코끼리의 심장과 목구멍에 수없이 발사를 하게 된다.

마취총에 맞는 모습이다. 하지만 인간이하의 짓임을 보게 된다

지켜보던 군중은 코끼리의 숨이 멎자 단숨에 달려들어 뼈만 남긴 채 해체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이다. 그는 "왜 코끼를 쏘았는가?"이다. 마지막 부분에 그의 말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나는 오로지 바보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서 내가 코끼리를 쏘았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하나라도 있을까 종종 생각했다." p40

오웰은 이 작품에서 "저자의 판단 아닌 외부의 시선"을 보여주고 있다.

분명 그는 코끼리를 쏘고자 하는 마음이 없었다. 코끼리를 쏘기 전 그는 분명 죄의식, 균열, 망설임으로 가득차 있었다. 그러나 총을 쏘지 않으면 비겁하다는 손가락질을 받으리라는 상상을 하는 순간 이미 코끼리는 총을 맞고 죽어 버렸다. 단지 바보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한 행동이 자신이 굳게 지켜야 할 중요한 생명을 하찮게 여기게 만든 것이다. 그건 생명이 아니었다. 그건 바로 그가 주체적으로 지켜내야 할 '자기 주관적 가치'였다.

그는 코끼리를 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자유'를 쏜 것이다. 분명 지켜내야 할 '윤리'가 있고, 인간이 가진 '삶의 기준'이 있것만 그는 그 모든 것을 단지 바보가 되지 않기 위해 살인자가 된다.

이후 그는 1972년 5년 만에 사직서를 제출하고 영국 경찰 제복을 벗어던지게 되는데 그 뒤 그는 스페인 내전에 참가한다. 이 행보는 무수한 함의를 지닌다고 하는데 그것은 이러하다. 즉 그는 언뜻 보면 제국주의의 실상과 폭압을 폭로하는 것 같지만 이 작품에서 그는 지배자 또한 피지배자의 모습을 갖추는 존재로 전락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즉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코끼리를 쏠 때 무언의 압박을 보내어 백인(그 자신) 폭압자의 소임을 다할 것을 종용한 것은 지배 계급이 아닌 피지배 계급인 군중이다. 다시 말해 군중이 원하는 지배자의 모습이란 “그 자신의 자유”마저 피지배자의 욕망에 할당하는 것, 끊임없이 서로를 식민화시키고 지배하고 있음을 이 책은 날카롭게 보여주고 있다.

다시 정리하면 "피지배 국가의 주민들뿐 아니라 지배자인 백인들의 자유와 인격마저 파괴하는 제국주의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 코끼리를 쏘다라는 에세이에 담겨 있는 것이다.

이후 영국으로 돌아온 오웰은 전업 작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사회 극빈 계층의 삶을 똑바로 인식하기 위해 일부러 런던과 파리의 빈민가를 떠돌며 부랑자와 막노동자 생활을 하였다고 한다. 그는 늘 소외된 사람들의 삶의 실상을 보고자 하였다.

이렇게 선별된 오웰의 산문은 단순한 에세이가 아닌 사회 문제를 진단하고 비판하는 냉철한 진보적 지식인이며 우리 시대의 삶을 깊이 있게 사고하게 만들어 인간이 주체적인 존재로 살아가길 바란다. 무엇보다 그는 시대적으로 양차 대전과 제국주의, 전체주의, 히틀러의 등장과 횡포 등을 생생하게 목도한 경험자로서 인간이 다른 인간을 부당하게 억압하고 학살하는 야만성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어 항거하고자 한 사상적 작가이다. 그 과정 속에서 오웰은 어떤 경우에도 압제자가 아닌 피압제자의 편에 서는 것이 옳다는 결론을 내리며 자신만의 세계를 그려 나간다. 이러한 생각은 이번에 나온 책에서 첫번째 쳅터인 「나는 왜 쓰는가」(1946)에 잘 담겨 있다.

이 책의 한 문장

"작가가 자신의 존재를 지우려고 끊임없이 싸우지 않는 한 읽을 만한 글을 쓸 수 없다는 것 역시 사실이다. 좋은 산문은 창유리와 같다. 나는 어떤 동기가 가장 강한지 단언할 수 없지만 어느 동기를 따라야 하는지는 안다. 내 작품들을 돌이켜 보면 항상 〈정치적〉 목적이 없을 때는 생명력 없는 글을 썼고 화려한 문단, 의미 없는 문장, 장식적인 형용사에 현혹되어 전체적으로 실없는 글이 되었다." p18

"책방은 어느 수준 이상으로 저속해지기 힘든 인간적인 장사이다. 기업 조합은 식품점이나 우유 배달부를 압박하여 없애 버렸지만, 소규모 독립 책방은 그렇게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근무 시간이 아주 길고 ─ 나는 시간제로 일했지만, 책방 주인은 책을 사러 끊임없이 원정을 떠나는 시간을 빼고도 일주일에 70시간씩 쏟아부었다 ─ 건강에 좋지 않은 삶이다. (...) 그러나 내가 책 장사에 평생 몸담고 싶지 않은 진짜 이유는 그 일을 하면서 책을 사랑하는 마음을 잃었기 때문이다. 책 장수는 책에 대해서 거짓말을 해야 하고, 그러면 책을 싫어하게 된다. 더 나쁜 것은 끊임없이 먼지를 털고 책을 이리저리 옮겨야 한다는 사실이다. (...) 그러나 나는 책방 일을 시작하자마자 책을 사지 않게 되었다. 5천 권이나 1만 권씩 되는 책을 한꺼번에 보면 따분해 보이고, 심지어 구역질까지 났다." p10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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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의 거짓말 두 번째 이야기 인문학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2
박홍규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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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먼저 저자의 프로필을 넘어 화려한 저술 활동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저자가 집필한 책만 하더라도 공저 포함해서 알라딘 공식 자료에 의하면 214종이나 된다. 번역한 책만해도 18권이 넘는다. 한 마디로 괴물이다. 단 한권의 책을 만들어 내는 것만해도 쉽지 않건만 어떻게 저자는 이러한 방대한 지식의 향연을 펼치는지 입을 다물지 못하겠다.

이 책은 인문의 출발과 고대의 인문 이야기인 『인문학의 거짓말』에 이어지는 중세의 인문에 대한 이야기다. 저자는 『인문학의 거짓말』에서 고대 인문에 대해 쓰면서 부처나 예수도 아나키스트라고 불렀다. 반면 서양의 주류 사상인 고대 그리스의 소크라테스나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렇지 않다고 비판했는데 그의 이런 주장에 대해서 관심이 가졌다. 그리고 그들과 대립한 사상가로 오쇼 라즈니쉬와 알렉산더 대왕을 통해 알게 된 디오게네스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즉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의 사상과 대립한 사상가로 디오게네스를 내세운다. 괴짜 철학자인 디오게네스는 예수로 이어졌으나, 예수의 아나키즘은 바울과 콘스탄티누스 등에 의해 배신당하여 서양 중세 1,000년의 세월 동안 왜곡되었다는 그의 주장이 어떻게 펼쳐질지 기대가 되었다. 그리고 서양이 자신들의 종교였던 기독교를 아나키스트 예수의 믿음으로 되돌려야 그 제국주의를 끝낼 수 있다는 그의 논지가 이 책을 통해 펼쳐지게 된다. 책 머리(프롤로그)에 나오는 그의 글을 통해 나오는 부분을 정리했는데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이 책에 대해 홍보를 다했다고 본다.

이어서 저자는 흔히 생각하는 중세에 대한 얘기를 서양 중심이 아닌 인도, 이슬람, 중국, 한반도의 중세 중심으로 이 책을 펼쳐나간다. 서양 중세는 이 책에서 4분의 1정도 언급되었다. 특히 암흑시대라고 알려진 서양 중세와는 달리 비서양 중세는 개명시대였음을 새롭게 주장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한국사에서도 삼국시대와 고려시대가 가장 찬란한 개방(개명)적 시기로 보고 있다.

무엇보다 비서양 근대가 암흑기가 찾아옴에 있어 서양 근대의 제국주의 침략으로 암흑시대로 전락했다고 하는데 이들의 영향은 즉 서양 중심의 근대는 2019년 '코로나 19'라는 결과를 결국 맞이하게 했다는 것이 저자의 논지다. 조금 더 길게 보면 16세기부터 시작된 제국주의 침략의 결과라고 하는데 이런 그의 주장이 더욱더 이 책을 읽게 만드는 요소인거 같다. 그래서 그는 흔히 신대륙 발견을 말할 때 '지리상의 발견'이라고 하는데 저자는 이것을 '지리상의 침략'으로 본다. 즉 저자가 이 책을 통해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서양 중심의 중세 인식을 비틀어 보고자한 것이다.

이것에 대한 저자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어보자. 저자는 1983년에 일본에 공부하러 간 이유 중에 하나가 노동법의 선배 교수로서 일본 교수들이 가장 훌륭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착각이었다. 일본의 역사학자로서 역사 교과서 논란을 일으킨 '이에나가 사부로'가 쓴 "일본 문화사"를 보면 적어도 우리가 아는 상식인 일본 중세 문화는 한반도에서 크게 영향을 받았다는 점을 거의 언급하고 있지 않음을 발견했다. 또한 미국에 가서도 일본 문화사에 대한 책을 읽어 보니 당시 유명했던 '폴 발리'의 '일본 문화사' 또한 한국에 대한 것은 없었다. 그러나 미국 책만 아니라 서양 책 모두가 그러하고, 여기에는 한국만 아니라 비서양이 존재하지 않았다. 즉 세계사 속에 중세란 오직 서양 중심의 중세였다. 비서양의 중세가 있지만 그러나 그건 서양이 바라본 중세였다는 것이다. 아니 세계사가 서양사였다. 조금 거기에 무엇을 보탠다면 중국사나 일본사 정도였다고 한다.

그래서 저자는 서양 중세를 암흑기라 보지 않으려고 하는 최근의 경향에 반론을 제기하고 반대로 인도, 이슬람, 중국, 한국의 중세를 그 각각의 역사에서 가장 찬란한 개방적 시기로 새롭게 보고자 한 것이다. 한 마디로 근대가 시작하면서, 즉 서양이 세계를 침략하기 시작하면서 비서양은 몰락하기 시작했으며 여전히 포스트모던이즘이니, 세계화니 라는 말이 나와도 서양 근대의 제국주의는 살아서 움직이고 있음을 이 책은 끝으로 말해주고 있다.

암튼 이분은 대단한 학자이며 범접할 수 없는 인문학자임은 틀림이 없다.

이 책의 한 문장

버트런드 러셀은 방대한『서양의 지혜』에서 이 책에 대해 단 서너 줄로 말한다.

"내용의 대부분은 오로지 골동품 연구가나 흥미를 느낄 정도의 것이다." 이 책이라 할 때 중세 인문학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진 책인 아우구스티누스의 『신국론』을 말한다. 저자는 러셀의 말을 가져와 이 책만 아니라 중세 문헌의 대부분이 해당된다고 말한다.

반면 종래 무시되었던 중세인이라도 지금 우리가 생각해볼 필요가 있고 재조명해야 될 사람이 있으니 바로 '펠레기우스'다. 펠라기우스는 원죄설을 부정하고, 누구나 착하게 살면 영혼은 구제를 받는다고 가르쳤다. 아우구스티누스는 펠라기우스를 반박해 바울의 편지에서 숙명론, 즉 예정조화설(예정론)을 이끌어냈고, 이를 종교개혁 때 장 칼뱅이 채택했다. 나는 러셀처럼 가톨릭에서 그것을 폐기한 것을 매우 현명한 것이었다고 보고, 마찬가지로 '츠베탕 토도로프'처럼 그 둘의 논쟁이 지금까지 우리의 정신세계를 지배하고 있다고 본다. p25

"적어도 1,000년까지 기독교의 이단 배척으로 중세에는 인문이 없다시피 했다. 철학을 비롯한 인문학도, 건축이나 회화를 비롯한 예술도, 대학을 비롯한 각종 학교도, 도서관도 이단이라는 이유로 배척되었다. 우리 사회에 떠도는 지진을 신이 정권에 내린 저주라고 보는 요설은 과학과 의학을 배척한 중세 기독교에서 나왔다. 서양에서도 중세에는 분서갱유가 끊이지 않아 책이 사라졌다. 그래서 히틀러 시대에 유대계를 포함한 반체제 지식인들이 대거 미국으로 이주했듯이 기독교 치하의 지식인들이 아랍권으로 대거 이주해 인문을 이전시켰다.

이슬람국가가 저지른 성상 파괴 운동도 서양 중세에서 시작되었다. 그래서 중세 인문은 서양이 아니라 아랍과 인도와 중국 등에서 꽃을 피웠다. p22

이 책은 세계를 보는 눈을 달리해 주는 책이다. 그동안 우리는 서양 중심의 세계관에 비춰 동양과 비서양권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저자의 통찰력을 통해 그 모든 눈꺼풀이 하나씩 풀어헤쳐진다.

처음 이 책을 대할 때는 어려울 것이라 생각되었는데 저자가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이 아주 논리정연하고 글을 연결하는 기법이 뛰어나며 저자 특유의 관점이 보인다. 저자가 발견한 관점인지 아니면 저자 또한 다른 글을 통해서 얻은 통찰력인지 모르겠지만 다른 저자의 관점을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해주고 있는거 같아 기존의 인문학적 세계관을 벗어나는데 큰 도움을 얻게 된다.

그래서 이 책만 아니라 먼저 나온 책을 통해서 저자의 시선으로 세계를 다시 새롭게 사유하고 싶은 마음이다. 물론 저자가 말하는 바가 때론 편향적인 입장에서 바라봄으로 서양적 사고나 기독교 세계관을 이렇게 바라보아도 되는가 하는 의구심 또는 아쉬움도 있다. 어차피 양쪽에서는 서로의 입장에서만 보니까 진정한 객관적 사실은 보기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서양 중심으로 똘똘뭉쳐 있거나 기독교 중심으로 생각하는 이성을 향해 흔히 니체를 일컬어 '망치를 든 철학자'라고 하듯 '망치를 든 인문학적인 책'이라고 생각한다.

역시 책을 열심히 읽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정중와부지대해(井中蛙不知大海) 우물 안 개구리가 되어 세상을 내 아집으로만 바라보는 고집센 영감이 될 것이다.

정약용이 이런 말을 하였다. "열집 남짓사는 시골에서 퉁소좀 분다고 이름나도 서울기생방 일급연주자 앞에선 고개도 못드는 수준이며 잘 모르는 것들이 조잡한 운구로 스스로를 도연명이나 사령운에 빗대고 어설픈 글로 왕희지나 왕헌지에 빗댄다고 했다."

그렇다. 겸허히 책을 보게 되는 시간이 되어 좋았다. 세계를 좀 더 인문학적인 눈으로 볼 수 있는 기회를 준 저자에게 심심한 감사를 보낸다.

단 한권의 책밖에는 읽은 적이 없는 사람을 경계하라

-디즈레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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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레이하 눈을 뜨다 <5+5> 공동번역 출간 프로젝트 3
구젤 샤밀례브나 야히나 지음, 강동희 옮김 / 걷는사람 / 2020년 9월
평점 :
절판


러시아의 신예 작가 구젤 샤밀례브나 야히나의

‘톨스토이 문학상’ 수상작

한・러 수교 30주년을 기념하는 <5+5> 공동번역 출간 프로젝트의 세 번째 작품집

이 책은 표지에서 주는 묘한 매력으로 인해 책을 선택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책에 대한 찬사가 또한 책을 읽게 만드는 요인임을 말하고 싶다.

'톨스토이 문학상'을 받은 것만으로도 이런 책은 독서의 계절에 맞게 서재에 꽂혀 있어야만 하는 책이다. 그리고 한・러 수교 30주년을 기념하면서 공동번역으로 출간했으니 다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보게 되었다.

저자인 그녀는 러시아의 신예 작가로서 '혜성'처럼 나타났다. 이 책 『줄레이하 눈을 뜨다』는 저자의 데뷔작이자 구소련을 대표했던 유배문학의 미덕을 갖춘 정통 소설로 평가받는 장편소설이라고 한다. 이 책의 서문을 쓴 류드밀라 울리츠카야는 서문에서 이런 말을 했다.

“현시대 문학의 필수 요건을 갖추었으며 제대로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 여주인공의 운명과 부농추방운동 시기의 타타르 농민들에 관한 이야기는 최근 몇 십 년간의 현대 산문들에서는 흔히 볼 수 없었던 사실적이고 진정성 있는 흥미로운 주제를 담고 있다.”

그리고 그는 한 마디를 더 했는데 "개인적으로 어떻게 젊은 작가가 지옥에서 피어나는 사랑과 연민을 통해 이토록 강렬한 작품을 만들어 냈는지 믿기 힘들 따름이다. 나는 진심으로 작가에게는 훌륭한 데뷔를, 독자들에게는 위대한 작품을 만나게 된 것을 축하하고 싶다."

그는 이 신예 작가인 '구젤 샤밀례브나 야히나'를 러시아 문학의 전통을 잇는 ‘위대한 작가 대열’에 기꺼이 올려 놓는다.

이 책은 현재 베스트셀러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가운데, 35개의 언어로 번역되고 있다.

구젤 샤밀례브나 야히나 (ГУЗЕЛЬ ШАМИЛЕВНА ЯХИНА, 1977~)

책의 스토리

유배문학의 미덕을 갖춘 정통 소설 - “지옥에서 피어난 사랑의 대서사시”

『줄레이하 눈을 뜨다』는 1930년에서 1946년 사이 행해진 러시아 부농의 '시베리아 강제이주'를 배경으로 펼쳐진 이야기다. 매서운 눈보라가 치는 겨울, 타타르스탄의 척박한 시골마을인 율바시(러시아 바시키르 공화국 쿠가르친스키 군의 한 마을 지명)에서 이 책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주인공인 줄레이하는 숨죽인 발검음을 내딛고 있다. 조심스럽게 누군가 깰까봐 노심초사하며 한 곳을 향해 움직이는 긴장감을 처음부터 주면서 이 책은 한 여성의 인생으로 초대한다. 그녀는 열다섯 살에 나이 많은 부농 무르타자와 결혼하여 네 명의 딸을 낳았지만 모두 얼마 안 돼 죽어 버리는 아픔을 겪었다. 이런 경우 주변에 따뜻한 남편이나 시어머니가 있다면 그래도 마음에 위안을 안고 살아가겠지만 줄레이하는 서른 살이 되도록 악귀 같은 시어머니 우프리하(타타르어로 잔인한 악귀 노파, 마녀를 뜻한다)에게 온갖 구박과 천대를 받으며 식모와 다름없는 결혼 생활을 하며 고된 노동에 시달린다. 그리고 그녀의 남편은 엄격하면서 무시를 일삼는다.

그러던 어느 날 이그나토프가 이끄는 공산주의(붉은군대)자들에게 남편이 살해 당하고 전 재산을 몰수당한 후, 태어나서 한 번도 떠나 본 적 없는 율바시를 떠나 강제이주의 장소인 머나먼 시베리아로 향하는 열차에 오르게 된다. 이때 그녀는 임신한 상태였다. 수 개월간에 걸친 수송 과정에서 이주자들의 대탈주가 벌어지고 안가라강에서 바지선의 침몰에도 최후까지 살아남은 이들은 마침내 끝없이 펼쳐진 타이가 숲을 마주하고 있는 시베리아에 도착하게 되는데 이곳에서의 정착은 쉽지 않았다. 굶주림과 혹독한 추위, 강제 노동으로 그들의 삶은 피폐했지만 이주민들은 혹독한 환경을 이기며 노동수용소를 짓고 이곳에 정착하게 된다. 얼마 후 유배지에 도착하자마자 아들 '유주프'를 낳게 되는데 이 여정을 그려내는 작가의 솜씨와 글은 가을밤 나에게 문학의 행복을 일구게 하였다.

그 문장 가운데 특히 다가온 문장을 적어 본다.(특히 아들은 그녀 인생에서 처음으로 낳은 남자아이다. 그래서인지 더 애착적인 마음도 있음을 보게 된다.)

그녀는 아들과 상관없는 모든 것은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어딘가 먼 곳에 남겨진, 지난 삶의 무르타자(그의 씨에서 태어난 아이라는 것을 잊기로 했다), 그녀에게 끔찍한 예언을 남긴 우프라하, 그리고 딸들의 무덤도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운명이 어떻게 될 것이며 내일은 무슨 일이 일어날지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바로 오늘이고, 지금 이순간이었다. 어느 날 아침 옷 속에서 작은 숨소리가 들리지 않더라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아들의 생이 멈춘다면 그녀의 심장도 곧바로 멎을 거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이 그녀를 버티게 했고 힘을 충만하게 했으며, 어떤 알 수 없는 용기를 불러일으켰다.

기도는 가끔, 그리고 일하는 사이사이에 빨리했다.... 갑자기 알라께서 다른 일로 바빠서 시베리아 밀림의 외딴곳에 머물게 되어버린 배고픈 서른 명의 사람들을 깜박한 걸까? (...)

고뇌에 지친 불쌍한 사람들을 못 보고 지나쳤으며 그들이 사라진 것도 잊어버린 걸까? 그녀는 기도의 끝을 맺을 수가 없었다(두려웠다!). 대신 조용히 기도했고, 하늘에서 알아듣지 못하도록 속으로 중얼거렸다. p392-393

그리고 인생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것인데 엄청난 시련 속에서 자신의 삶을 싸워나가는 중 남편 무르타자를 죽인 붉은군대의 간부이자 유배지의 감독자인 이그나토프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이 사랑은 아들 유주프를 수용소 바깥으로 탈주하도록 하는데 도움이 되었고, 그 아들은 자신이 살지 못한 자유로운 세상으로 나아가도록 함으로 새로운 미래를 꿈꾸게 하고 있다.

이그나토프가 줄레이하를 보며 사랑에 빠지게 되는 시초를 적어 본다. 만일 책 표지에 나오는 여성이 주인공 줄레이하라면 나 또한 아마도 마음이 몹시 그녀를 향해 눈길을 줬을 것이다.

"괜찮은 여인이다. (...) 이그나프는 쓸데없는 생각을 하지 않기 위해 그 여인을 바라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녀의 몸매가 눈에 들어오는 것을 어찌 막을 수 있겠는가? 말에 올라탄 모습이 마치 왕좌에 앉아 있는 듯하다. 안장에 앉아 걸어갈 때는 몸이 사뿐사뿐 흔들린다. 허리를 꼿꼿히 세우고, 흰색 털코트로 가려진 가슴을 앞으로 내밀며, 마치 고갯짓으로 '이그나프 동지, 있잖아, 응 자기야, 그래 .....' 하며 말을 하는 것 같다. p125

혹독한 세상을 마주한 여성이, 시베리아라는 춥고 황량한 불모지에서 한 여성이자 어머니가 돠어 세상을 어떻게 싸워 나가며 자아를 발견해 나가는지 이 책은 매우 큰 스케일의 무게감으로 독자들을 찾아간다. 지옥 같은 노동수용소 안에서 따뜻하게 데워주는 모닥불 같은 ‘성스러운 모성’애를 여기서 보게 될 것이며 더불어 ‘사랑과 연민’이 빚어낸 강렬한 대서사시와 같은 깊은 묵직함을 이곳에서 발견하게 될 것이다. 영화나 다큐에서 봤던 눈보라치는 황량한 시베리아가 눈에 그려진다.

책 속에서

신이여, 모든 것이 당신 뜻에 달렸습니다! 줄레이하가 깨진 창가로 가 몸을 숙인다. 무르타자가 셔츠를 열어젖히고, 모자도 쓰지 않은 채 도끼를 들고 밖으로 뛰쳐나간다. 도끼로 거칠어진 눈보라를 위협하며 주위를 둘러본다.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다행히다. 만약 누군가에게 잘못 휘두르기라도 했다면, 그는 마음의 죄책감을 느꼇을 것이다. p83

죽음은 누구에게나 다가온다. 모두의 안에 숨어 있거나 바로 가까이에 있기도 하며, 고양이가 되어 발아래에서 애교를 부리고, 먼지가 되어 옷 위에 앉고, 공기가 되어 폐 속으로 침투한다. 죽음은 어디에나 있다. 늘 전투에서 패배하는 어리석은 삶보다 더 교활하고, 똑똑하며 강력하다. 죽음은 백 년은 거뜬히 살 것 같았던 강한 무르타자에게도 찾아왔고 그를 데려갔다. 이제 자신만만한 우프리하도 곧 데려갈 것이다. 새로운 농사를 기대하며 남편과 함께 딸들의 묘지 사이에 묻어두었던 곡물들 또한 비좁은 나무 상자에 갇혀 봄 동안 썩어 죽음의 제물이 될 것이다. (...) 줄레이하가 방 구석에 있는 크고 깊숙한 양청 양동이로 만들어 놓은 화장실에 갔을 때, 그녀는 부끄러움에 얼굴이 달아올랐고, 그제야 아직 죽은 게 아니라는 것을 확신했다. 죽은 이는 부끄러움을 알지 못한다. p194-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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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83가지 새 이야기
가와카미 가즈토.미카미 가쓰라.가와시마 다카요시 지음, 서수지 옮김, 마쓰다 유카 만화 / 사람과나무사이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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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 권위의 조류학자가 들려주는

사람보다 더 사람 같은 83가지 기상천외한 새 이야기!

이 책은 새에 관한 이솝우화이다. 지어낸 이솝우화가 아닌 실제하는 이솝우화라 생각된다.

읽으면서 새에 대한 정보나 지식을 얻을 뿐 아니라 새에 대해 달리보게 되는 기회가 되었다.

중세 신학자인 토마스 아퀴나스가 한 말이다. '한 권의 책만 읽은 사람을 조심하라.'

다양성 있게 책을 보기 위해, 책이 보이자마자 '이 책, 읽고 싶은데' 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더군다나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새 이야기라고 하니 재미있게 읽고 싶었다.

머리를 무겁게 하는 책도 읽으면 도움이 되지만 때론 가볍게 읽고 쉽은 책도 있는 것이다.

그것도 옛날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처럼 이 책이 나왔다면 패스했을 것이지만 만화와 함께 간략하면서도 흥미를 주게 만든 이 책은 독자들을 가볍게 새의 이야기로 뛰어가게 만든다.

우리가 흔히 새에 대해 가지는 잘못된 상식이 있다. 그건 바로 머리 나쁜 사람을 ‘새대가리’라는 말로 새에 대해 조롱하고 폄하하여 본다. 그런데 새는 머리 나쁜 동물일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된다.

얼마 전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프로에 참새에 대한 방송이 방영 되었다. 참새가 아파트 에어컨 관을 통해 들어와 새끼 네 마리를 키우는 과정을 보여줬다. 새끼는 네 마리였다. 새끼 네 마리에게 먹이를 준다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참새 어미는 정확하게도 새끼 네 마리에게 골고루 먹이를 주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한 달 후에 첫 비행을 하게 하는데 날도록 유도하는 그 모습을 보며, 참새는 그저 새 중에서 제일 하찮은 새가 아니라, 위대한 새임을 새삼 알게 되었다.

이 책은 유독 참새에 대해 많은 부분을 얘기한다. 아래의 내용이 그것이다.

5. 참새가 위험천만한 변압기를 둥지로 삼는 이유

6. 참새는 왜 ‘모래 목욕’을 즐길까?

7. 참새?직박구리?동박새?오목눈이의 지혜로운 겨울나기

18. 참새는 왜 쉴 새 없이 짹짹 지저귈까?

28. 참새는 왜 씨앗이 아닌 모래를 먹을까?

47. 참새가 새끼 시절 '육식'을 하다가 다 자란 뒤 '채식'을 하는 까닭

51. 참새가 무서운 참매 둥지 아래에 둥지를 짓는 이유


그 가운데 51번째 나오는 얘기를 보자. 기막힌 얘기이니 관심 가지고 보면 좋겠다.

참새는 우리와 가장 친근한 야생 조류로서 동시에 자연에서 가장 입지가 약한 새다.

참새의 먹이는 풀씨인데 가끔 벼를 먹기에 '저 새는 해로운 새'라며 농민들의 타도 대상인 되기도 한다. 또 풀이 많은 탁 트인 환경에 살아 포식자에게 발견되기 쉬운 사냥감이다. 참매 먹이 중 가장 인기 있는 것이 바로 가여운 참새이다. 연약한 참새에게 무리를 짓는 습성은 몸을 지키기 위한 중요한 수단인데 무리가 커지면 포식자에게 습격받았을 때 각각의 개체가 잡아 먹힐 확휼이 낮아지기 때문이다. 즉 한 반에 학생이 많으면 많을수록 수업시간에 선생님에게 지목당할 확륭이 낮아지는 것과 마찬가진 것이다. 그래서 먹이사슬 밑바닥에 사는 참새가 몸을 지키는 비결을 발견했으니 바로 천적인 매를 아군으로 활용하는 방법이다. 참매나 솔개 등의 맹금류는 나무 위에 가지를 잔뜩 포개 겉보기에도 위풍당당한 둥지를 짓는다. 그런데 그 둥지 바로 아래 틈에 참새가 둥지를 짓는 과감한 결단을 간혹 한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처럼 옛말을 몸소 실천하는 슬기로운 생존법인 것이다.

내는 발아래 사냥감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다른 포식자는 매가 무서워 감히 다가오지 못한다. 이렇게 안전한 장소가 또 어디 있을까. 약자 나름의 생존 방식이 있는 법이다. p125

이렇게 참새 하나를 다르게 보고 이해할 수 있는 알기 쉽고 재미있는 책이 바로 이 책이 가지는 특징이다.

말나온김에 참새에 대한 47번째 이야기 하나를 더 보자.

왜 참새는 새끼 시절 육식을 하다가 다 자란 뒤에 '채식'을 할까?

그건 이러하다. 새끼 기간이 길수록 적에게 공격당할 위험이 커진다 그래서 부화한뒤 약 2주 사이게 뼈를 만들고 날개를 만들고 근육을 만들어 성조(成鳥)와 같은 수준의 크기로 자라나야 한다.

이 시기는 그래서 단백질이 풍부한 동물성 먹이가 필요하다. 새들은 곤충이 급속하게 늘어나는 초여름 무렵, 새끼의 식욕이 가장 왕성해지는 시기에 맞추어 번식한다. 식욕이 왕성한 성장기 아동이나 청소년은 밥상에 고기 반찬이 없으면 시무룩해지듯 새나 사람이나 성장기에는 고기가 당기며, 필요한 것이다.


이 외에도 이 책은 새에 대한 알고 싶은 정보를 가지고 와서 흥미를 준다.

먼저 눈에 들어온 부분을 언급해 보면....

• 시체처리반 까마귀가 지구를 살린다?

• 참새는 왜 쉴 새 없이 짹쨱 지저귈까?

• 딱따구리가 '숲속의 가정파괴범'으로 불리는 까닭

• 까마귀는 왜 철사 옷걸이를 건축 재료로 사용할까?

• GPS도 없는 제비는 어떻게 정확히 같은 장소로 찾아올까?

• 검둥수리의 기막힌 생존 전략, ‘형제 살인’

• 오스트레일리아 대화재의 방화범은 독수리와 매라는데?

• 곤충에게 잡아먹힌 새가 있다는데, 사실일까?

• 육아를 수컷에게 맡기고 다른 수컷과 밀월을 즐기는 호사도요 암컷

이렇게 책은 새에 대해 생활사를 간략하게 재미있게 유익하게 다루어주고 있다.

길다면 지루할 것이며, 너무 짧다면 정보가 부족하지만 이 책은 이 두 가지를 잘 조합해서 길지도 않고, 짧지도 않는 글을 통해 우리가 알아야 할 새에 대한 기상천외한 이야기를 가져온다.

이 책은 조류학자인 '가와카미 가즈토' 외 두 명의 저자가 있고, 거기에 만화가인 '마쓰다 유카'에 의해 지어진 상당히 전문적인 책이다. 특히 만화가인 마쓰다 유카의 그림은 저자가 표현하고 싶은 것을 매우 잘 표현해 주고 있다. 그는 시즈오카현 출신으로서 무사시노미술대학교 시각전달디자인학과를 졸업했으며 대학 재학 당시부터 조류의 생태에서 착안한 일러스트와 만화를 제작했다고 한다. 주요 저서로 『시조새짱』 『메추라기의 시간』 등이 있다.

이렇게 필요 적절한 사람들이 서로 만나 새에 대해 관심있는 사람들이나, 새에 대해 무관심해 있는 사람들에게 똑똑한 과학잡학사전으로 다가와서 신선한 '지적 충격'을 주게 될 것이다.

앞으로 나는 하늘 높이 나는 새를 보며 다른 이와는 다른 눈을 가지며 보게 될 것이다.

이 책의 한 문장

박새나 참새와 비교했을 때 기온이 높아도 발가락까지 깃털로 감싸곤 하는 작박구니는 아무래도 추위를 많이 타는 모양이다. 한편 동박새와 오목눈이는 한 나뭇가지에 두 마리에서 열 마리까지 옹기종기 모여 앉아 온기를 나누는 방식으로 추위를 함께 견딘다. 멀리서 보면 꼭 새가 조롱조롱 열린 것 같은 모습으로 매서운 찬바람을 마주하는 것이다. p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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