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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 세계명작산책 2 - 죽음의 미학, 개정판 ㅣ 이문열 세계명작산책 2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외 지음, 이문열 엮음, 김석희 외 옮김 / 무블출판사 / 2020년 10월
평점 :
이문열이라는 이름 하나에 이 책에 관심이 갔다.
더군다나 이 책은 죽음을 주제로 한 중단편 9편이 모아져 있어 죽음에 대한 통찰을 얻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죽음은 우리 모두의 중요한 관심사이며 분명한 현실이다.
2주간의 간격으로 장례식을 갔다 왔고, 고향에서 92세의 노인이지만 어머니가 아는 분이 돌아가셨다.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사람들과 어울려 얘기를 나눴으며 평상시처럼 음식을 드셨는데 그 다음 날인지, 아니면 그날 저녁인지 그 노인은 죽음을 맞았다는 것이다.
아참! 운동하면서 안 분이 있는데 내가 한 동안 바뻐 그분과 교류를 하지 못한 사이 간암 말기 판정을 받고 6개월만에 아내와 자녀를 놔두고 하늘나라로 갔다. 51세의 나이다. 좀 전의 장례는 평범한 장례식이지만 51세의 건강한 그 사람은 나에게 죽음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가르쳐 주고 갔다.
그래서 이 책은 더더욱 나에게 죽음에 대해서 다채롭게 무언가 말해줄거 같고, 이것을 통해서 내 삶이 더 의미있어 졌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죽음! 그것은 인간이 가진 모든 것을 가져가며 한 줌의 흙이 되게 한다.
머리말에 죽음의 의미를 매우 적절하게 잘 적은거 같아 옮겨 본다.
"허무가 존재의 조건인 것처러 죽음은 삶을 삶답게 하는 전제가 된다. 죽음이 없다면 삶은 어떤 끝없는 상태 혹은 지루한 상황의 연속으로서 그 독특한 의미를 잃고 말 것이다. 삶은 죽음 때문에 유한성에 갇히게 되지만, 또한 죽음 때문에 무한과도 견줄 만한 의미를 얻게 된다. p19
죽음은 이렇게 삶의 의미를 두게 하는 무게감을 준다. 그래서 문학 작품도 특히 소설이 죽음을 즐겨 다루는 것은 그만한 의미가 크기 때문일 것이다. 즉 고대로부터 죽음은 문학의 가장 진지한 주제이면서 또한 가장 감동적인 장치이기도 하다. 이번에 나온 <이문열의 세계명작산책> 작품에는 현대 단편 소설이 어떻게 죽음을 다루고 있는 지를 보여 준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톨스토이와 헤르만 헤세,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작품과 함께 이름은 들어보았으나 생소한 작품으로 죽음을 소개하는 작가들의 소설을 통해 죽음의 미학을 들여다 보는 기회가 되었다. 특히 번역을 새로한 작품이 있는데 바로 헤르만 헤세의 『크눌프』다. 기존 중역을 직역으로 바꾸어 읽는 이가 새로운 맛을 보게 해주는 시간이 되었다.
이 책의 한 문장
이반 일리치의 죽음은 각자에게 전근과 승진의 계기가 될지 모른다는 기대감과 함께, 가까운 친지가 죽었을 때 으레 그렇듯이, 그 소식을 들은 사람들 모두의 마음속에 '죽은 건 그 사람이지 내가 아니야' 하는 안도감을 불러일으켰다. 그들은 저마다 '그래 그는 죽었지만 나는 이렇게 살아 있잖아!' 하는 생각이나 느낌을 가졌다. (...) 친구들은 예의상 장례식에 참석해 미망인에게 조의를 표하는 따위의 귀찮은 의무를 수행해야 할 것이라는 생각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가장 친한 친구가 있었으니 '표도르 바실리예비치와 표트르 이바노비치였다. 특히 표트로 이바노비치는 이반 일리치와 법률학교를 함께 다녔으며, 그에게 여러 가지 신세를 졌다고 스스로 인정하고 있는 터였다. 저녁을 먹으면서 표도르 이바노비치는 아내한테 이반일리치의 사망 소식을 전한 다음, 어쩌면 이번 기회에 처남을 이쪽 재판 관할구로 전근시킬 수 있을지도 모른자는 그 자신의 짐작을 털어놓았다. p27-28
이반 일리치의 작품의 한 부분이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톨스토이는 인간의 적나라한 모습을 마치 내면을 훤히 들여다 보듯 말하고 있다. 지금 사람이 죽어간 현장이며, 그것도 친분이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죽음 앞에 저마다 죽은 사람을 생각하거나 자신의 죽음을 바라보기 보다 자신이 얻을 수 있는 것만 바라보는 저질의 인간 군상들을 톨스토이는 이 작품에서 드러낸다.
그렇다. 인간이란 존재가 이렇게도 파렴치하며 이기주의적이며 자신의 삶을 돌아보지 않는 한심한 존재였던 것이다. 이반 일리치는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자신의 삶을 냉정히 돌아보면서 마침내 자신의 삶이 올바르지 않은 것임을 깨닫게 된다. 자신의 공직 생활, 자신의 삶 전체, 그리고 자신이 추종했던 상류층의 관습과 사고방식 모두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허비해버렸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또 하나의 대목을 가져와 본다.
"나는 위로 올라가고 있는 줄 알았는데, 실은 그동안 줄곧 내리막 길을 걷고 있었던 모양이군. 아니 그런 모양이 아니라 실재로 그랬어. 사람들 눈에는 내가 위로 올라가고 있었지만, 그만큼 생명의 썰물처럼 나한테서 멀어져가고 있었던 거야. 그리고 이제 생명은 다 끝났고, 남은 건 죽음뿐이야. 그렇다면 이건 도대체 무얼 뜻하지? (...) 인생이 그렇게 무의미하고 끔찍한 것일 리가 없어. 하지만 정말로 그렇게 끔찍하고 무의미한 것이었다면, 나는 왜 죽어야 하지? 게다가 왜 이런 고통 속에서 죽어야 하지? 뭔가 잘못됐어!" p117-118
죽음은 이렇게도 우리에게 분명 많은 것을 가르쳐 주지만 살아있는 우리는 그 누구도 죽음을 직시하지 않는다. 어쩌면 그래서 삶에 집중하고 사는 지도 모르겠다. 진정 죽음은 인간에게 끔찍한 것이며 마주치고 싶지 않는 존재지만 그러나 누구나 거쳐가는 죽음의 길을 이 책을 통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되었다.
얼마 전에 읽은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에 이런 내용이 있다.
에픽테토스가 말하기를, "당신이 자녀와 입맞춤을 하는 순간에도 마음속으로 '어쩌면 너는 내일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라"라고 했다. 사람들이 너무 불길한 말씀이라고 투덜거리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그것은 전혀 불길한 말이 아니다. 단지 자연의 한 행위를 묘사했을 뿐이다. 이것이 불길하다면 잘 익은 옥수수를 수확한다는 것도 불길한 일이 아니겠는가!"
죽음... 그것은 우리와 어쩌면 가장 친한 친구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친구에게 우리는 잘 다가가지 않는거 같다. 이 책은 '죽음'을 다채롭게 살피며 우리 모두에게 죽음을 잘 맞이하게 해주는 소중한 책이다. 인간 존재의 본질이자 문학의 가장 진지한 주제인 죽음을 오늘 진지하게 읽었다. 죽음을 밀어내는 독자들이 있다면 이 책은 당신에게 가장 좋은 책이 될 것으로 본다. 그러니 밀어내지 말고, 적극적으로 당겨서 죽음을 당당하게 마주하자!
삶이란, 식어버린 마음으로 바라보니
덧없고 어리석은 장난이로구나…
- 마하일 레르몬토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