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 필사 노트
박경리 지음, 유선경 엮음 / 다산초당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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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그렇듯이 한 번쯤 도전하고 싶은 대상이 있다. 히말리야 산맥의 최고봉인 에베레트산처럼 말이다. 도서 가운데도 그러한 최고봉이 있다. 19세기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대문호인 톨스토이 대표작인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부활》과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죄와 벌》이 그것이다. 한국 작품으로는 단연 『토지』가 나에게는 에베레트산이다. 누구나 다 알듯이 토지는 한국문학사에서 가장 위대한 소설 중 하나로 꼽힌다. 1969년 9월부터 대하소설 『토지』가 집필이 되었으며 26년 만인 1994년 8월 15일에 완성되었다. 원고지 4만 장에 달하는 거대한 세계다. 출간된 책 권수는 20권이다.무려 9680페지이다. 지레 겁먹을 수준이다. 벽돌 책도 이런 벽돌 책이 없다. 그래서 논평이나 칼럼, 서평에서만 접했지 실제 접하질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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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토지 필사 노트』가 바로 그런 독자를 위해 탄생하여 우리 앞에 왔다. 이 책은 박경리 전작을 출간하고 있는 다산북스가 선보이는 최초의 토지문화재단 공식 『토지』 필사 노트다. 토지 작품 가운데 중요한 엑기스만(147개의 글귀)을 기록하여 독자들을 토지의 깊은 세계로 인도한다. 어쩌면 이 필사가 토지를 읽는 계기가 될지 모르겠다.


이 책을 엮은이는 유선경 작가이다. 그는 서문에서 “아무리 천재적인 작가라도 이와 같은 대하소설은 영원히 다시 나올 수 없을 것”이라고 썼는데 『토지 필사 노트』가 그 거대한 작품을 가장 가까이에서 만나도록 도와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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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토지』의 글귀들은 오래된 문장이 아니라 지금의 우리에게도 살아 있는 새로운 문장으로 다가온다.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당신에게 필요한 글귀』라고 엮은이는 말하는데 마치 오컴의 면도날처럼 인간의 본질과 세상의 모순을 명확하고 선명하게 드러낸다. 동시에 시대가 바뀌어도 변함없는 인간의 욕망과 사랑, 연민과 애달픔을 정과 한으로 승화하며,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위로와 지침을 건낸다. 즉 산다는 것에 대한 고민과 세상의 이치가 이 책 곳곳에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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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필사 노트』는 그냥 마음 가는대로 펼쳐 쓰면 된다. 목차를 벗어나 그날 마음에 다가오는 문장을 쓰고 곱씹으면 된다. 그렇게 하다 보면 어느새 『토지』가 품은 거대한 세계를 마주하게 되고, 그 문장들을 통해 나 자신의 삶을 새롭게 바라보게 된다. 즉 작품이 담고 있는 삶의 지혜와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이 생기며, 명징한 상태로 전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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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총 일곱 개의 주제로 엮어졌다.

1장 토지란 무엇인가?

2장 인간의 욕망과 사랑

3장 한국인의 한과 정

4장 우리 어떻게 살 것인가?

5장 꿰뚫어 본 인간 심리

6장 그래서 우리에게 있는 한 장면

7장 세상의 이치가 어떠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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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작품 가운데 147편을 가려 뽑아낸 글귀들은 모두 인간을 이해하도록 돕는다. 1장 토지에 보면 마지막 필사 구절인 "사람이나 짐승이나 자기 태생대로 사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일이오"라는 글이 나오는데 엮은이는 이 문장이 토지의 핵심 주제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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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세상에는 이치라는 것이 존재한다. 이것은 규범과 달리, 만든 것도 만들어진 것도 아니라 애초부터 있던 원리이다. 그 태생대로 살아갈 때 삶은 어긋나지 않는다. 그러나 "모든 인간은 자기가 공식일 수밖에 없다"는 원리와 한계를 인정하면 삶은 다르게 보인다. 아무리 이치를 말해도 인간은 결국 자유 의지에 따라 살아가는 존재이지만 결국 이러한 생각은 타인과 세상을 이해하는 열쇠가 된다. 즉 다른 이가 살아가는 삶을 통해 인간은 남들은 나와 어떻게 다른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그래서 관통하는 이치가 무엇인지 알게 된다. 토지는 그러한 깊은 삶의 이치를 체험 속에서 얻은 깨달음으로 들려준다. 한 순간에 듣고 마는 휘발성 문장이 아닌 한 생애를 처절하게 살아가면서 부딪힌 문장들이 이 토지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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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토지』는 흔히 ‘우리말의 보고’라 불릴 정도로 다른 작품에서는 쉽게 만날 수 없는 풍부한 어휘와 살아 있는 말맛, 치밀하면서도 아름다운 표현이 작품 곳곳에 스며 있다. 그래서 많은 독자들이 『토지』를 단순한 소설이 아니라 ‘문장의 교과서’라고 말한다. 낯설은 경상남도 방언은 구수하다못해 매우 인간적인 단어로 들린다. 한 자료를 보니 생전에 작가가 평사리를 무대로 선택한 것은 세 가지 이유가 있었다고 한다. 만석지기를 주인공으로 설정해 드넓은 평야가 있으며, 지리산이 안고 있는 우리 민족의 비극적인 역사가 뒷받침이 되는 곳이어야 했다. 그리고 주인공들이 쓸 토속적인 언어, 경상도 방언을 쓰고 싶어서 섬진강을 낀 경남의 끝자락, 평사리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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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는 각 주제마다 마음에 다가오는 문장들이 많았지만 그 중에 2장 인간의 욕망과 사랑, 4장 우리, 어떻게 살 것인가 5장 꿰뚫어 본 인간의 심리 부분에서 많은 통찰력을 얻게 되었다. 몇 문장을 실어보면...(아니 많은 문장을 실어 본다)

2장 인간의 욕망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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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chapter 이 세상 어느 누구보다 소중한 것은 돈, 오직 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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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 어느 누구보다 소중한 것은 돈, 오직 돈이었다. 그러나 비참했던 이력 때문에 버림당하지 않는 것만이 살길인 줄 믿었던 지난날의 임이네는 아니었다. 남편 없어도 돈 있으면 산다는 배짱이었다. 용이보다, 아니 이 세상 어느 누구보다 소중한 것은 돈, 오직 돈이었다. 돈에게만 그는 그 자신의 장래를 걸었다.

이 세상 마지막이 온다 하여도 혼자만은 살아남을 것 같은 왕성한 생명력, 불모의 바위틈을 피 흘려가며 기어오르는 생명에의 의지, 무서운 힘이었다. 그런 뜻에서는 본시부터 임이네는 거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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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자식도 갖고, 국밥집도 갖고 월선이도 죽어버리고 미운 사람들도 다 죽어버리고 그래주었으면 임이네는 오죽이나 좋았을까. 참으로 욕망 무한, 슬픔 없는 목숨이며 비렁땅 꽃 한 포기 새 한 마리 없는 황막한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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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chapter 욕망의 완성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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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인생이란 겨울 햇볕과도 같이, 쏟아지는 폭설과도 같이, 쩡! 하고 굉음을 지르며 스스로 몸을 가르는 빙하와도 같이.... 물론 봄의 환히와 여름의 정열도 있지만, 어디 사람의 삶만이 그러했겠는가. 삼라만상, 억조창생 생명 있는 것은 그 모두가 시간과 자리, 혹은 공간이라는 엄련한 십자가 밑에서 만나고 이별하며 환희와 비애를 밟고 지나가는 것이다. 욕망의 완성은 없다. 그것은 인간의, 생명의 불행인 동시 축복이다. 종말이 없는 염원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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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chapter 혼자 살자니 적막강산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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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도 편허질 않고 혼자 살자니 적막강산이고

참말이제 워째 살아야 할지 모르겄어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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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chapter 뜻대로 살아볼려니까 피투성이가 되는 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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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노인은 두메며 길상이며 월선이 봉순이 모두 기찬 얘기책 속의 인물들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하나하나의 인생이 모두 다 기차다. '뜻대로 안 되는 것을 뜻대로 살아볼려니까 피투성이가 되는 게야. 인간의 인연같이 무서운 거이 어디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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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우리 어떻게 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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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chapter 마음을 굽히지 않고 산다는 것이 얼매나 좋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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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하고많은 일이 있고 어리석은 놈 등쳐서 깝데기 벳 기묵을 재간도 있는데도 와 하필이 이 짓을 하고 있제?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없는 것도 아니지마는 그러나 석아, 우리같이 설운 놈들이 마음을 굽히지 않고 산다는 것이 얼매나 좋노. 굽히도 굽히는 것이 아니요 기어도 기는 것이 아니라. 안 그렇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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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chapter 너는 너 자신을 살아야 하는 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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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메산골에 가서 나뭇짐을 지더라도 가난하고 사람의 대접을 못 받는 이치를 알아야 할 거 아니냐 말이다! 너의 가난과 너에 대한 핍박을 너의 아버지 너의 형 탓으로 돌리는 것은 네가 없다는 얘기가 된다. 네가 없다는 것은 죽은 거다. 아니면 풀잎으로 사는 거다. 너는 너 자신을 살아야 하는 게야. 너의 아버지는 너 한 사람을 가난하게, 핍박받게 했지만 세상에는 한 사람이 혹은 몇 사람이 수천만의 사람들을 가난하게 하고 핍박받게 하고, 한다는 것을 왜 모르느냐 말이다! 지금 당장 목전의 원수는 일본이지만, 따라서 너의 형도 목을 쳐야겠지만, 제발 일하라 않겠으니 숨지만 말아라. 너의 자손을 위해서도, 너의 아버지의 망령을 평생 짊어지고 다니 다가 너의 자손에게 물려줄 작정이냐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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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 꿰뚫어 본 인간의 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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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chapter 넌 지나치게 순수한 것을 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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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너에겐 가장 견디기 어려운, 그런 나이지만 여자, 술, 담배 하면서 크게 타락한 것같이 생각하고 또 남들도 그리 생각은 하겠으나 실상 넌 지나치게 순수한 것을 원하고 있다. 물론 너 어머니 성질이 남다른 것을 알긴 알지. 그만큼 너 자신도 성질이 남다른 데가 있는 게야. 순수한 것이 아니면은 다 부숴버리고 싶은, 그래서 너 자신을 짓이기고 있는 게야. 아무튼 지금 내 생각으론 이 어려운 고비만 넘기면은, 잘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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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chapter 칼을 뽑지 못하고 바늘을 뽑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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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언행에 중심이 잡혀 있고 심지가 꼿꼿한 윤도집인데 어찌 하여 환이에게만은 매번 신경이 곤두서게 되고 그러면은 신경이 바늘 끝으로 변하여 상대방을 찌르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히게 되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럴 때마다 윤도집은 환이의 그 살기 어린 야유에 부딪친다. 살기나 야유가 두려웠던 것은 아니다. 칼을 뽑지 못하고 바늘을 뽑았다는 의식이, 소인배라는 자의식이 그를 부끄럽게 했고 자신에 대한 능멸감 때문에 견딜 수 없게 한 다. 그럼에도 어찌하여 매번 환이에 대해서만은 늪과도 같은 도전의 유혹에 빠지는 건지 윤도집은 알 수가 없었다. 깊은 증오심도 없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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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 chapter 무서운 게 아니오 외로운 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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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만 목에 칼 걸어놓고 사는 건 아니잖소. 산다는 것은 목에다 칼 걸어놓은 거요. 사는 것 아니라니까요." "그거는 성님 말이 맞소. 항상 칼든 놈이 뒤따라오는 것 겉은 생각을 했인께요. 이서방이 허약해져서 그 생각을 많이 하는 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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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쇠가 거든다.

"무서운 게 아니오. 외로운 거요. 뭣이든 거머잡고 싶은 심정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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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 chapter 착한 사램이라고 어디 나쁜 마음 안 묵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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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나쁜 사람은 없네라. 다 처지에 따라서 나빠지기도 하고 좋아지기도 하고, 제 살기가 편하믄 머할라고 남을 원망하겄노, 안 그렇나? 사흘 굶으믄 엔간한 사람이 아니믄 맘 잘 못 묵기 쉽지.(…)

착한 사램이라고 어디 나쁜 마음 안 묵건데? 그라믄 부처님 안 되겄나? 사램이란 하루에도 몇 분은 나쁜 마음 묵지. 나쁜 사람도 하루에 한 분쯤은 좋은 마음 묵어보고 지은 죄도 무섭아해보고." 늘 그러던 봉순네였으나 귀녀에게 대해서만은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가지는 그 신뢰를 가질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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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치는 배부른 사람이 챙기는 거지, 너처럼 그랬다가는 굶어 죽을 기다."

"그거는 그렇지 않다." 호야할매는 끼어들었다.

"아무리 배가 고르고 기찹아도 염치를 채리야만 그기이 사람이제.

있고 없고가 상관없는 기라. 있다고 해서 어디 염치 채리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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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 chapter 늙은 탓이 아니야 세월이 달라진 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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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과 길상이 나간 뒤 이동진은 오열한다.

"이 사람아, 석운(최치수의 호). 나는 이제 뭐가 뭔지 모르겠 네. 참말로 모르겠네. 이십 년을 방황하였건만 나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었고 생각은 호박오가리처럼 쭈그러들었네. 저네들은 싱싱 한 호박 넝쿨처럼 사방에다 줄기를 뻗고서 내 앞에 나타났단 말일세. 어떻게 그리 변신할 수 있었는지 모를 일일세. 철사 같은 그 신경의 줄이 나를 휘감더군. 옴짝할 수 없게시리 나를 휘감더군. 우리들이 아름답다고 생각한 것은 한갓 감상이요, 그네들이 추하다 생각하는 것이 현실이었네. 내 노여운 음성은 허울만 남은 호랑이 울음이었고, 그네들의 맞서는 음성은 발톱으로 먹이를 찢어발기는 이리 떼의 울음이었네. 이 사람, 석운, 늙은 탓이 아닐세 늙은 탓이 아니야. 내 나이 이제 오십을 넘겼을 뿐인데 세월이 달라진 게야. 그리고 우린 이조 오백 년의 무거운 세월을 싫든 좋든 짊어지고 있기 때문이지. 하기야 살아남으려면 의관이 무슨 소용이겠나. 맨발로 뛰어야 할 때는 맨발로 뛰고, 물구나무를 서야 한다면 물구나물 서야 하고. 한데 그게 안 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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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 chapter 그 후회스러운 날들이 그립단 말시

"지난날을 생각허믄 모두가 다 후회스러운 일뿐인디 그 후회 스러운 날들이 그립단 말시."

좋은 문장들이 넘쳐난다. 그러나 토지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보면서 선하거나 악하거나, 고귀하거나 천박하거나, 청렴하거나 탐욕스럽거나…… 생김새만큼이나 마음보들이 각양각색인 600여 인물을 통해 인간이란 존재에 대해 회의감도 든다. 결국 여기에 나오는 인물은 다른 사람도 아닌 바로 나를 비추기 때문이다. 안 그런척 하지만 토지의 각 인물은 내 내면을 비춘다. 따라서 『토지』는 우리에게 ‘어떻게 살 것인가’를 질문한다. 말맛이 살아 있는 이 문장들을 통해 나라는 존재를 마주하는 시간이 되었다. 정말 원고지 4만 장에 달하는 문장들을 일일이 읽어봐야겠다.


- 이 글은 컬처블룸을 통해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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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매일 각자의 오디세이아를 쓴다 ㅣ 서양철학전집 하이엔드 고전 2
호메로스 지음 / 클래시카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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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이 한 문장에 마음이 뺏겨 손길(서평 신청)이 갔다.

"참아라, 나의 마음이여.

너는 언젠가 이보다 더 끔찍한 일도

견뎌내지 않았던가."

이 말이 나오게 된 배경은 이러하다. 트로이 전쟁을 승리로 이끈 오디세우스는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는 길에 신들의 노여움을 사서, 1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거친 바다 위를 표류하며 전우들을 모두 잃고, 숱한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게 된다. 모든 것을 빼앗기고 가장 깊은 절망의 심연에 내던져졌을 때, 그는 하늘을 향해 자비를 구걸하지 않았고, 대신 자신의 가슴을 치며 묵묵히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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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아라, 나의 마음이여.

너는 언젠가 이보다 더 끔찍한 일도 견뎌내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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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니 절망의 순간을 마주한다. 숨이 턱턱 막힌다. 무엇이 문제였지하는 자책감과 함께, 문제의 늪이 더 크게 짓누른다. 한편으로 새로운 길을 찾는다는 희망도 있지만 어떻게 이 위기를 벋어나야 할지 모르겠다. 당연히 이런 상황에 신을 찾게 된다. 자비를 구하게 된다. 그런데 오디세우스는 지난 날을 회상하며, 그때는 더 심각한 상황도 이겨냈지 않느냐 하며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다짐하는 것을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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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산 넘어 산이다. 큰 산을 넘어 왔기에 이젠 어떤 산도 넉넉히 넘을 수 있고, 나를 괴롭힐 산이 없지는 않겠지만 더 이상 큰 산은 없을 줄 알았는데, 이번에도 또 큰 산맥이 나를 가로 막는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벌어지는 일들 앞에 처절히 무력해지는 모습에서, 이젠 어떡하라는 말입니까하며 누군가(신?)에게 하소연을 흘려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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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인간은 신들의 폭풍 속에서 노를 젓고 살아가야 하는 운명인 것을 알게 된다. 삶을 흔드는 무게가 하늘만큼 커보여도 이제는 세상을 원망하거나, 나 자신을 학대하거나 또는 신의 변덕에 분노하거나, 나의 무능을 저주하는 일은 집어 치워야 한다는 것을 직감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원망할 시간에 다음 파도를 넘을 준비를 해야한다. 이것이 오디세우스의 이야기에서 우리 모두가 배워야 할 가르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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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운명의 격량 앞에 그가 가진 지혜나 기도조차 무력했다고 한다. 그렇다. 세계는 정의로운 보상을 주지 않는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우리는 삶의 어느 지점에 반드시 부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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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만 이런가, 왜 나는 열심히 살았는데 이 모양인가, 반대로 왜 저 사람은 저렇게 쉽게 가는가." 억울함에 매몰되어 과거만 파고드는 따위는 이제 하지 말아야 한다. 과거만 파고들면 손에 쥔 노는 자꾸만 미끄러지는 법이다.


그렇다. 이 책은 낭만적인 위안을 건네지 않는다. 대신 오래된 화두를 던진다. 그건 당신의 이타카(Ithaca-오디세우스의 고향이자 그리스의 섬 이름, 문학적·상징적으로는 ‘귀향’이나 ‘목표’를 의미하는 용어)는 어디인가? 당신은 지금 어디로 돌아가려 하는가? 아니, 그 전에 돌아갈 곳이 있기는 한가하며 내가 가야할 종착지가 어딘지를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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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위대한 이유는 괴물을 이겼기 때문이 아니었다. 십년 동안 방향을 잊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의 이타카는 낙원이 아니었다. 작고, 척박하고, 돌 많은 섬이었다. 그래서 신들은 화려한 대안을 제시했다. 칼립소는 불멸을 주겠다고 했고, 키르테는 그를 왕처럼 환대했다. 그러나 파이아케스인들은 그를 붙잡거나 새로운 삶을 권한 것이 아니라, 이타카로 돌아갈 배와 선물을 마련해 주었다. 오디세우스는 그 도움을 받아 마침내 고향으로 향했는데, 여기에 대해 프롤로그를 쓴 편집부는 이렇게 언급한다. "그가 거절한 것은 귀환을 대신할 영원한 안락이었고, 그가 받아들인 것은 귀환을 가능하게 하는 타인의 환대였다. 그가 끝내 포기하지 않은 것은, 초라해도 자신의 것이어야 한다는 믿음이었다. 여기서 한 번 멈춰보자. 우리는 얼마나 자주, 자신의 초라한 이타카를 부끄러워하며 남의 화려한 섬에 눌러앉으려 하는가."


무엇을 말하는가? 결국 우리가 바라는 이상적 삶은 타인의 의해 주어지고 만들어진 안락한 삶이 아닌 폭풍 속을 걷지만, 되는 일이 없지만, 모든 것을 잃어버렸지만 나 자신이 경험하고 부딪힌 삶만이 오로지 나의 이타카가 되는 것이다. 호메로스의 전작 『일리아스』가 전쟁터에서의 영웅적 죽음과 명예를 다루었다면, 이 책 『오디세이아』는 전쟁에서 살아남아 집으로 돌아가는 삶의 여정을 이야기한다. 특히 신의 뜻에 굴복하지 않고 끊임없이 방황하면서도 정체성을 찾아가는 오디세우스의 모습은 지금의 불확실한 시대와도 별반 다르지 않다. 수천년 전에도 거친 바다를 향해 했고, 지금도 동일하게 인간은 가혹한 폭풍 앞에 서게 된다. 그런데 오디세우스는 불명의 생을 주겠다는 칼립소의 달콤한 제안을 거절하고, 필멸의 인간으로서 고통과 늙음이 기다리는 고향으로 돌아갔다. 어쩌면 돌아간 자리는 그를 더 혹독하게 다루어 그곳이 그의 무덤이 될 수 있는 자리였다. 돌아간 이타카는 사실 폐허에 가까웠다. 왕궁은 구혼자들에게 점령당했고, 아내는 지쳐 있었다. 아들은 낯설었고, 자신은 다 늙은 상태였다. 그런데도 그는 이타카로 돌아갔다. 이타카가 좋은 곳이라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내 것이라서 돌아갔다는 것이다. 남의 낙원보다 내 폐허가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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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적인 문장처럼 들리지만 사실 그러하다. 화려하게 지어진 타인의 집보다, 허술한 집이지만 가족이 있고, 내 삶의 흔적이 있었던 그 자리가 내 자리인 것이다. 한때 미국 이민 갔던 자들이 나이가 들어 죽음이 가까웠을 때 미국 문화의 화려함 속에서 살기보다 구수한 된장 냄새가 나는 쓰러져 가는 고향 집, 들 길을 찾아 오듯이 우리는 우리가 끝내 가야 할 길을 걸어야 한다.


이 책은 다섯 겹의 항해로 이루어져 있다. 첫 번 째는 고난을 수용하는 법. 두 번째는 유혹을 경계하는 법. 세 번째는 희생을 감수하는 법. 네 번째는 심연을 응시하는 법. 다섯 번째는 이타카를 탈환하는 법에 대해 다룬다. 각 장마다 주는 깨달음과 삶에 대한 선명함이 주어질 것이다. 그 깨달음을 가지고 가혹한 운명을 마주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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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는 신의 이름이 자주 언급된다. 포세이돈, 아테나, 제우스, 헤르메스 등의 이름이다. 여기서 신은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모든 것의 이름으로서 신은 인간이 이길 수 없는 존재다. 무엇보다 인간의 위대함은 그 신들을 이기는 데 있지 않다는 것이다. 신은 이 길 수 없다. 하지만 인간의 위대함은, 이길 수 없는 폭풍 속에서도 자기 손으로 노를 잡는다는 사실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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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자료를 보았다. “20세기 프랑스 철학자 폴 리쾨르가 평생 붙들고 있었던 질문이 있는데 그건 "인간은 어떻게 자기 자신이 되는가?"이다. 그가 도달한 답은 단순했다. 자기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 자만이 자기 자신이 된다는 것이다. 그는 이것을 ‘서사적 정체성’이라 불렀는데 결국 오디세우스를 읽은 자는 오디세우스가 살아간 삶의 궤적을 따라 가는 것이 아닌 나만의 항해, 즉 나만의 오디세우스를 펼쳐나가야 하는 것이다. 신들은 각자마다의 가혹한 운명을 만든다. 그러니 그것을 대하는 자세 또한 각자의 선택이다. 다만 남들이 가는 길을 보고 끌려 가지 말고, 내 안에서 요구하는 욕망을 따라 오늘도 한 발자국을 내딛어야 한다.

​

마지막으로 이 문장이 마음에 들어 실어본다.

"신(神)은 불쌍한 자를 돕지 않는다, 오직 '닮은 자'에게 투자할 뿐이다."

"신들이 인간에게 이토록

가혹한 운명을 부여한 것은,

훗날 태어날 이들에게 불릴

노래를 만들기 위함이다.

-호메로스 『오디세이아』中


- 이 글은 컬처블룸을 통해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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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배할 것인가 평생 지배당할 것인가 - 진시황으로 알아보는 자신만의 인생을 세우는 지배의 법칙 ㅣ 동양철학전집 - 승자병법 시리즈 2
진시황 지음 / ORIGIN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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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시황으로 알아보는 자신만의

인생을 세우는 지배의 법칙

진시황제는 13세에 왕이 되었다. 그리고 중국 최초의 통일 제국을 건설한 위대한 설계자다. 진나라의 제 31대 군주이며 초대 황제이다. 화려한 이력은 그의 삶을 이미 금수저의 반열에 올리며 크나큰 어려움 없이 자란 인물로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그는 적국 조나라에서 볼모의 아들로 태어나 멸시와 불안 속에서 유년을 보냈으며, 어머니의 추문, 자신을 암살하려는 끊임없이 자객들의 위협 속에서 매일 밤 칼자루를 쥔 채로 잠들수 밖에 없는 불안한 존재였다. 이러한 위태로움이 있는 그였지만 세상을 원망하는 대신 자신을 단단한 무기로 벼려냈다. 그런데 놀랍게도 두려움은 이미 오래전, 그가 열세 살이 되기도 전에 다 써버린 감정이었다고 한다. 열세 살에 왕위에 올랐으나 어머니의 정부 노애의 반란을 가차 없이 진압하였고, 친자식처럼 길러주었다는 권신 여불위가 권력의 그늘아래 그를 길들이려 했지만 그 또한 제거하며 권력의 주도권을 완전히 장악했다. 핏줄이라는 이름, 은혜라는 이름, 모정이라는 이름, 보통의 인간이라면 한 번쯤은 흔들렸을 그 이름들 앞에서, 그는 한치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에게 인연이란 결국 자신의 영토를 갉아먹는 자와 지키는 자, 둘 중의 하나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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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눈에 띄는 명언을 보았다. 법륜 스님이 한 말이다. "함부로 인연을 맺지 말라. 그대의 모든 불행은 진실 없는 사람을 진심으로 대한 벌이오." 진시황이 살아간 삶을 두고 지나치게 냉혹하다 비판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우선 그는 잔혹한 폭군으로 기록되었다. 그가 실용서를 제외한 옛 제후국들의 기록을 불태우고, 자신을 기만하던 방사(方士)와 일부 유생을 가차 없이 생매장했으며, 장성 축조를 위해 막대한 인력을 동원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흔들림 없는 확고한 규율이 없었다면 춘추전국의 500년 난세는 결코 종식되지 않았을 거라는 말을 마음 깊이 새긴다. 세상의 무질서와 타인의 얄팍한 잣대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스스로 단단한 규칙 위에 서야 한다는 말 또한 흘려듣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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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에는 명암(明暗)이 있다. 진시황이라고 좋은 점만 있겠는가? 나쁜 점만 있겠는가?

이 책은 진시황을 미화하거나 옹호하기 위한 책이 아닌 그가 자신을 다루었던 엄격하고도 철저한 방식, 자신의 삶을 하나의 제국처럼 설계하고 운영했던 그 방법론에서, 흔들리는 우리가 건져낼 수 있는 무엇이 있다면 그것을 건져내자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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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에 말하듯이 세상은 친절해 보이지만 결코 친절하지 않다. 내가 흔들리면 누군가는 그 틈을 비집고 들어와 나의 자리를 차지한다. 내가 결정을 미루면 누군가가 대신 결정해 주게 된다. 내가 기준을 갖지 못하면 누군가의 기준이 나의 삶 전체를 도배하게 된다. 즉 지배하지 않으면 지배당한다는 말이다. 이 말은 잔인하지만, 잔인하기 때문에 진실에 가깝다. 요즘들어 그러한 세상을 체험하게 된다. 마키아벨리가 쓴 「군주론」이 마음 깊이 이해가 된다. 그건 군주가 권력을 얻고 유지하려면 때로는 권모술수를 써야 하며, 사악한 행위도 서슴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 말이다. 한 마디로 “결과가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것인데, 이게 군중이 갖는 무지함 때문이다. 이 비유가 적절할지 모르지만 조선 제3대 왕인 태종(太宗)이 조선이라는 나라를 세우기 위해 때론 정몽주도 제거해야 했고, 또한 함께 혁명을 꿈꾸며 고려의 반대파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뜻을 함께했던 가장 강력한 정치적 동지였던 정도전도 결국 목을 베어 버렸다. 그리하여 피의 숙청 속에 태종 이방원은 500년 조선조 국가 운영의 밑그림을 완성한 군왕이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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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시황은 인간의 선의를 믿지 않은 사람이다. 그는 사람이 좋은 마음을 먹어 좋은 일을 한다고 보지 않았다. 사람은 룰이 있을 때 룰대로 움직이고, 룰이 없으면 본능대로 무너진다고 보았다. 그래서 그는 법을 세웠고, 그 법에 예외를 두지 않은 것이다. 자신의 어머니에게도, 자신을 키워준 스승에게도, 자신과 함께 천하를 도모한 공신에게도 말이다. 이 단호함은 잔인함의 다른 이름이 아니라, 자신이 만든 세계를 단 한 치도 양보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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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다섯 개의 키워드로 진시황을 다시 읽어준다.

1장 통일: 내 삶의 영토를 온전히 장악하라.

2장 도량형: 흩어진 잣대를 부수고 기준을 독점하라.

3장 만리장성: 타인이 침범할 수 없는 성벽을 쌓아라.

4장 법가: 무자비한 규율이 가장 강력한 무기다.

5장: 천하제일: 세상의 꼭대기에서 나만의 역사를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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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단락, 단락이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그러나 핵심은 단순하다. 내 삶의 영토를 하나로 묶고, 내 잣대를 하나로 세우며, 나를 지킬 성벽을 쌓고, 흔들리지 않을 규율을 만들어, 끝내 내 이름을 내 삶의 가장 높은 자리에 새기는 일에 관한 것이다. 즉 진시황은 낡은 호칭인 '왕'이라는 호칭을 버리고 '황제'라는 새로운 단어를 만들었다. 나아가 도량형과 화폐, 문자, 수레의 규격까지 하나로 통일해 자신만의 질서를 구축했다. 따라서 이 책은 이러한 그의 결단력과 통치 철학을 통해, 타인의 기준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원칙을 세우는 삶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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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 삶에 결정자는 누구인가? 타인인가 아니면 나라는 주체자인가? 오늘자 뉴스에 ‘헬리콥터 부모’에 관한 기사를 보았다. 기가 막혔다. 왜냐하면 최근 수도권 한 제조 중견기업의 신입사원 면접날. 한 지원자의 어머니가 회사로 찾아왔다. 그 여성은 면접장으로 들어가는 면접관들의 손을 잇따라 붙잡고는 “우리 아이가 낯을 가리니 압박 질문은 줄이고 부드럽게 해달라”고 당부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과는 무관하게 최종 합격하여 부서 배치를 마친 상황에 얼마 뒤 인사팀에 다시 그 어머니의 전화가 걸려왔다. “우리 아이 부서는 업무 강도가 너무 높아 보이니 다른 팀으로 바꿔달라”는 요청이었다. 또 다른 중견기업의 인사팀장은 얼마 전 ‘대리 퇴사 통보’를 받았다. 무단결근한 신입사원의 모친이 이튿날 전화해 “우리 애가 어제 퇴근하고 회사가 삭막해 다니기 싫다고 울었다”며 “오늘부터 출근 안 하니 사직 처리하고 우리 아이 자리에 둔 텀블러와 카디건은 착불 택배로 보내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물론 이 자녀들은 자신의 생각을 부모에게 언급하여 원하는 것을 얻었지만 결코 이 자녀는 자신의 삶의 결정자로서 온전히 살아가지 못하는 자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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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배할 것인가 평생 지배당할 것인가』는 결국 인생의 주도권을 내가 가지고 있는가를 묻고 있다. 남이 만든 규칙 속에서 살아갈 것인지 아니면 스스로 규칙을 만드는 사람이 될 것인지는 이 책을 읽고 대답해 보면 좋겠다. 세상의 평판에 혹 흔들려 무언가를 결정하지 못하는 자인가? 타인의 척도에 영토를 내어주는 나약함을 가진 자인가? 또는 낡은 관성에 묶여 결단을 유예하는 비겁함을 가졌는가? 이러한 상태라면 일단 부끄러워 할 필요가 없다고 말해주겠다. 다만 자신을 정확하게 마주 보는 일이 필요하다고 알려준다. 정확하게 보아야, 정확하게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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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이 한 가지만을 얻게 된다면 아마도 그는 천하를 얻은 진시황의 자리에 오른 것이다. 그건 바로 「지배할 것인가, 평생 지배당할 것인가」를 분명히 하고, 이제 내가 삶의 자리를 주체적으로 가져 온전한 나로 살자는 것이다. 헤르만 헤세가 쓴 '데미안'의 한 문장이 생각난다.

나는 내 속에서 스스로 솟아나는 것,

바로 그것을 살아보려 했다.

그것이 왜 그토록 어려웠을까?


- 이 글은 컬처블룸을 통해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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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킬 수 없는 과거 앞에 서성이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 강태공으로 알아보는 천하를 낚는 삶의 태도 ㅣ 동양철학전집 고전보감 시리즈 2
강태공 지음 / PHILO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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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공을 말할 때 흔히 낚시로 세월을 낚는 ‘낚시꾼’으로 상기된다. 그러나 그는 단순한 낙시꾼이 아닌 동양 최고의 전략가이자 책사이다. 자료를 찾아 보면 그는 전략가이자 제나라의 초대 군주이다. 쉽게 말해 주나라 재상으로 왕을 도와 상나라를 뒤집어엎고, 그 포상으로 제나라 땅을 맡아 본인이 국군(國君)이 되어 일종의 제후 국군이 된 인물이다. 언뜻 보기에는 유유자적하며 낚시를 즐기던 자였다. 그러나 그가 재상에 오른것이 대략 72세~80세 사이 쯤 되었으니, 그는 단순한 낚시꾼이 아니라 '기다림과 때를 아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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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시대 상황을 보면 중국 고대 주(周)나라가 세워지기 전, 세상은 은(殷)나라 말기의 혼란으로 백성들의 삶이 피폐한 상태였다. 그러나 훗날 나라를 바로 세울 큰 인물이 세상 어딘가에 숨어 있다는 믿음이 사람들 입에서 전해졌다. 그 무렵 강태공은 뛰어난 학식과 정치적 식견을 지녔지만 세상에 자신의 뜻을 펼칠 기회를 얻지 못했다. 그리하여 그는 조급하게 권세를 좇지 않고 스스로를 갈고닦으며 올바른 임금을 기다리기로 결심한 것이다. 사람들은 그를 이해하지 못했다. 벼슬길을 포기한 채 강가를 떠도는 늙은이로만 여겼다. 그러나 강태공은 자신의 재능을 아무에게나 바칠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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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그는 기다렸고 인내했다. 책을 보면서 그의 숨겨진 일화를 보게 된다. 그가 강가에서 띄운 것은 곧은 낚싯바늘이었다고 한다. 미끼도 없었다. 물고기를 잡을 생각이 아예 없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그는 무엇을 잡으려고 했는가. 바로 그는 시대를 잡으려 했다. 자기를 알아볼 사람이 올 때까지, 자신을 헐값에 팔지 않겠다는 결의, 굽실거리며 유세객처럼 이 나라 저 나라를 떠돌지 않겠다는 자존. 소모품이 되지 않겠다는 냉철한 통찰로서 그는 때를 기다렸다. 그래서 그가 기다린 것은 무기력이 아닌 전략이었다. p.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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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공의 병법서 『육도六韜』를 보면 명확히 그걸 알게 된다. "사나운 새가 사냥감을 칠 때는 낮게 날며 날개를 거두고, 맹수가 먹이를 덮치기 전에는 반드시 귀를 내리고 엎드린다." 즉 가장 사나운 공격은 조용한 자세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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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냥할 능력이 없으면서도 날개부터 펼치며 허세를 부린다. 내실을 다지기 전에 제후들의 연회를 전전하며 알량한 지식을 뽐내고, 세상을 꿰뚫는 안목을 갖추기도 전에 유세객을 자처하며 입방아를 찧는다. 실력을 증명할 진짜 기회가 오기 전에 자신의 얄팍한 패부터 사방에 전시를 한다. 그러나 이렇게 나아 간다면 마지막 판에 가장 큰 것을 가져 올 수 없다. 실제 강태공이 위수(渭水)에서 낚시한 세월은 무려 십수년이라 전해진다. 누군가에게는 한 늙은이가 한가롭게 보내며 세월을 낚는 것으로 보였을 것이다. 특히 그의 아내에게는 사람 같지 않는 변변찮는 한심한 노인네로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 시간 동안 천하의 지도를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다. 즉 상나라의 약점을, 주변 제후들의 마음을, 백성들의 굶주림과 원망을, 군대의 배치와 보급의 흐름을 읽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무엇도 발설치 않고, 자랑하지도 않았다. 그저 곧은 낚시 바늘을 강물에 드리우고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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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대단한 인물이며 범상치 않는 인물이다. 책을 읽으면서 연신 고개가 끄덕여지고, 숙여진다. 그에 관한 일화나 사고(思考)는 과히 내가 배워야 할 자세며, 마음 가짐이었다. 그는 이미 재상이 될 인물이었다. 시대가 요구했고, 그가 준비했다. 여기서 독자인 나는 얼마나 준비를 하며, 때를 기다리고 있는지 묻게 된다. 아니 때를 기다리며 전략적으로 준비한다는 것이 힘겹다. 빨리 결과를 내고 싶은 마음에 조급함도 생긴다. 그러나 강태공을 통해 명확히 배우게 된다. 전략적 대기를 하며, 무언가를 속에서 준비하는 것이다. 매가 하늘에 그냥 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매를 모르고 하는 소리이듯이, 정확하게 바람의 방향을 읽고, 들판의 그림자를 측정하고, 토끼의 호흡까지도 가늠하는 자세를 가져보도록 할 것이다. 외부로 드러나는 행동의 부재가 내부의 무위를 뜻하는 것이 아니듯 강태공처럼 낚시대를 드리운 채 가장 격렬하게 사고하듯 독자 또한 준비할 것이다. 문왕이 위수에 나타났을 때 강태공을 알아 본 것은 그가 단순히 늙어간 존재가 아니라 준비된 존재였기 때문이다. 기회란 준비된자에 온다는 단순한 진리를 한 수 배우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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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또 한 가지 이 책에서 배우는 대목은 "엎드러진 물 앞에서 등을 돌리는" 사건이다. 그는 위수 강가에서 문왕의 수레에 올라 타면서, 단 한 번도 강물 쪽을 돌아보지 않았다. 가난과 설움 속에서 지내던 그 위수의 자리를, 자신을 알아주지 않던 세상에 대한 원망도, 끝내 떠나간 아내에 대한 감정도, 백정으로 살았던 조가의 새벽도, 주막을 접고 떠나야 했던 맹진의 황혼도, 모두 강물위에 떠 내려 보내고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은 떠나는 순간 한 번쯤은 돌아본다. 그래서 과거를 반추하며 설움에 복받치거나, 다른 선택을 했었다면 어땠을까하는 미련을 가진다.


그런데 강태공은 "복수불반분(覆水不返盆)"의 마음으로 살았다. 엎으러진 물은 다시 그릇에 담을 수 없다는 말이다. 이것은 훗날 강태공이 제나라 제후가 된 후, 가난을 견디지 못하고 떠난 아내가 자신을 찾아오자, 그 앞에서 물을 부으며 단호히 선을 그으면서 한 말이다. "이 물을 다시 동이에 담을 수 있다면 당신을 받아주겠소." 이는 단순한 매정함이 아니라, 끝난 인연과 헛된 미련을 베어내는 단호함이었다. 강태공은 아내가 떠난 뒤의 그 모습을 절대로 그리워하거나 그녀의 뒷모스을 향해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고 한다. 즉 그녀를 그리워하지도, 미워하지도, 자책하지도 않고 그저 자신의 일을 했다. 위수의 강물에 곧은 바늘을 드리우고, 책을 펴고, 천하의 판을 그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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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했던 정이 있었고, 미안함도 있었을 것인데 강태공은 너무나 차가울 정도로 금을 그었다. 이것은 과거에 사로잡히지 않고 현재의 일에만 집중하며 앞만 보겠다는 것이다. 특히나 강태공은 엎어 버린 것이 물이 아니라 그가 칠십년을 견딘 시간, 새벽 도축장의 피비린내, 주막에서 외상값을 받지 못하고 돌아오던 밤, 그리고 그 모든 시간을 함께 견디지 못한 한 사람에 대한 정직한 평가로서 아내의 사과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 이유라면 가장 어려울 때 등을 돌린 사람은 또 다시 어려움을 겪게 되면 또 다시 등을 돌리는 법이다. 그래서 그는 길게 말하지 않고, 또한 따지거나 원망하지 않고 그저 물을 엎었다. 인연을 끝내는 일이란 단호해야 한다. 다시금 마음을 주게 되면 모든 것이 흔들리게 되고, 현재의 일도 그르치게 된다. 사람을 잃어 본 적이 있다. 그때의 시간을 돌아보면서 여러 생각이 든다. "그때 그 선택을 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그 사람의 말을 더 귀담아 듣고 내 원칙을 접었다면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을까?" 혹은 "그 회사를 그만두지 않았다면, 그 시험을 한 번 더 봤더라면, 그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이라는 가정을 해본다.


그런데 강태공은 한 번 금이 간 신뢰를 결코 되돌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한 벙은 상나라의 폭군 주왕 밑에서 관직 생활을 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그 조직이 구제 불능임을 간파한 순간, 주저 없이 등을 돌렸다. 미련이라는 낡은 족쇄에 얽매이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은 이미 쏟은 정성과 세월이 아까워 그 자리를 맴도는 심리, 어긋난 관계, 끝난 꿈에 매여 있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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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책을 통해 강태공이 살아간 삶의 흔적 속에서 삶의 방법을 터득하게 된다. 참으로 그는 오랜 무명의 시간을 견뎠고, 스스로를 단련했다. 그리하여 마침내 문왕을 만나 천하의 흐름을 바꾸는 인물이 되었다. 이 책은 크게 두 가지만 붙들면 된다. 그건 기회는 준비된 사람에게 찾아온다는 것과, 이미 지나간 과거는 과감히 버려야 한다는 결단이다. 요즘 광고에 새로운 인물이 자주 보인다. 드라마 김부장에서 박진철 역으로 배우 윤경호의 광고이다. 15년의 무명생활은 그에게 큰 산과 같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그 지겨움과 알아주지 못하는 그 시간, 생활고를 견녀냈다. 그리고 드디어 그를 알아봐 주는 드라마를 통해 확실히 대중에게 그의 얼굴을 알렸다. 그는 준비된 기회적 전략가였다. 독자 또한 현재의 괴로움과 성과가 없는 삶에 마음의 큰 짐이 있다. 그러나 강태공을 통해 내면을 다지고, 더욱더 준비된 자로서 오늘의 할 일을 하려고 한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미래가 있음을 보며 마음의 희망을 품어 본다.


- 이 글은 컬처블룸을 통해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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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정약용의 인생 수업
정약용 지음, 정영훈 엮음, 김창준 옮김 / 메이트북스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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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최고의 천재이자, 실학자, 개혁가로 알려진 정약용이란 분의 책을 또 다시 읽게 되었다. 그가 써낸 글들을 읽을 때면 마음 깊이 존경하는 마음과 경외감마저든다. 탁월한 인재를 넘어 그는 시대를 넘어 서있는 사람이며, 삶의 통찰을 명확히 꿰뚫어본 인물이라 생각이 든다. 정조의 총애를 받던 엘리트였지만, 마흔부터 시작된 정치적 격랑 속에서 18년이라는 긴 유배 생활을 놀랍게도 견뎌내고 승화시킨 존재다. 다른 사람 같았으면 복수의 마음을 갈거나, 좌절 속에 삶을 놓고 살 수 있었으나 그는 절망 속에서도 붓을 놓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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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나 유배지에서 아들들에게 수백 통의 편지를 보내면서 교육하고 가르친 대목에선 집요함과 함께 유배자의 자녀가 아닌 한 나라의 백성이며, 한 가문의 자녀답게 반듯하게 살기를 원하는 아버지의 눈물겨운 사랑을 보게 된다. 또한 『목민심서』와 『경세유표』, 『흠흠신서』를 비롯한 수많은 저술을 통해 백성들의 삶과 사회를 다시 세우는 방법을 고민하는 그 모습은 가히 신의 경지에 이른 사람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다산 정약용의 인생 수업』은 250년 전에 쓰여진 글이지만 그 치열한 기록과 사유 속에서 현대인들이 정말 삶의 기준으로 붙잡아야 될 내용이 가득한 책이다. 단순히 위인의 일화를 소개하는 정도의 책이 아니라, 다산이 실제로 살아내고 실천했던 삶의 원칙을 문단마다 보게 될 것이다. 삶의 본질은 시대가 흘러도 바뀌지 않는다. 여전히 우리가 사는 세상은 돈 때문에 흔들리고, 사람 때문에 치이고, 미래에 대한 불안 속에서 전전긍긍하며 살아간다. 눈 앞의 이익 앞에 배신자가 되기도 하고, 배신을 당하기도 하는 우리의 모습이 그 시대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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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삶의 전 국면을 아우르는 실전 체계에 대한 기록으로서, 일곱 개의 틀 안에서 정리했다. 1장은 기록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말해주면서 기록하지 않은 것은 살지 않은 것과 같다고 말한다. 2장은 가계(家計)를 통해 재물을 다루는 태도가 삶을 만들기에 그 재물의 사용 원칙들을 상세히 다룬다. 3장은 수양을 통해 자신을 다스리는 법을 배우며, 4장은 관계를 통해 사람을 얻고 지키는 원칙을 알려준다. 5장은 공부를 통해 학문이야 말로 자신을 지켜주는 울타리임을 알려주며, 6장은 세상을 사는 처세술에 대한 기록이다. 마지막 7장은 애민 정신을 통해 공동체와 타인을 대하는 책임감을 돌아보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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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이 가문과 삶을 지키기 위해 세웠던 일곱 개의 기둥은 어쩜 이리도 우리 현실에도 유효한 삶의 기준이 될까하는 생각을 가진다. 책은 순서대로 읽어도 되지만 마음 가는대로 펴서 읽어도 된다. 삶의 중심이 흔들릴 때마다 이 책을 통해서 읽었던 것은 분명 우리 삶을 반듯하게 세우는 길잡이가 되리라 본다. 다산이 쓴 책을 읽을 때마다 느낀 것은 이런 분의 책은 학교 교육의 커리큘럼에 반드시 접목되어 가르쳐져야 한다고 생각된다. 지금의 지식은 지식 그 자체를 머리에 넣는 것으로 사람을 기계적 인간으로 살게끔 한다. 그러나 다산의 지식은 사회적 인간과 도덕적 인간으로서의 참 지식을 가르쳐준다. 인간성 상실 시대에 다산은 인간됨이 무엇인지 매우 섬세하게, 명확하게 가르쳐 준다. 연일 사회는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이러 저러한 사건을 통해서 보면 모두 죄다 인간성 상실이 불러온 범죄임을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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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다산은 수양(修養) 부분에서 처음 언급하기를 "홀로 있을 때도 삼가는 것이 수양의 완성이라고" 알려준다. 또한 "남은 속일 수는 있어도 내 마음은 결코 속일 수 없음을" 알려주며, 자기 자신에게 부끄러운 존재가 되지 않도록 가르친다. 또한 "매일 밤 스스로를 살피며 하루를 차분히 돌아보라"고 한다. 자신의 허물을 감추기 보다는 작은 허물이라도 고치려는 습관을 가지라는 것이다. 또한 "남을 탓하기 전에 자신을 돌아보면 마음은 점점 넒어진다"고 한다. 타인을 비판하기 전에 남을 헤아리는 마음이 먼저라는 거다. 또한 "이익보다 옳은 길을 따라야 사람이 무너지지 않는다"고 가르친다. 이익과 옳음 앞에 타협 아닌 옳음을 선택하기는 쉽지 않지만 그러나 어려움 앞에서도 물러나지 않는 마음을 가질 때 참된 인간으로서의 존재 가치가 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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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백미는 처음 기록에 대한 문장이다. "기억은 오래가지 않으니 깨달은 것을 곧장 적어라"는 문장과 "기록은 망각이라는 도둑을 이기는 유일한 길이다."는 가르침이 다시금 기록의 대가인 다산에게 들으니 새삼 달리 들린다. 천재조차도 "기록"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은 그만큼 기록의 산물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정말 영감은 어느 순간 찾아오는데 그때 문득 내가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지하고 나중에 그걸 다시 생각해 보면 기억이 명확치 않고 깨달음이 흐지부지하게 된 적이 많다. 그렇다. 이젠 다산처럼 밥상을 마주하다가도 깨달음이 머리에 머물 때 일다 적어볼 것이다. 그 집요함이 바로 2,400여 권 분량에 달하는 문서를 써 내려갔던 것이다.

눈으로만 읽는 독서는 물 위에 글자를 쓰는 것과 같아 금방 사라지고 만다. 그러니 책을 읽다가 내 마음을 움직이는 대목이나 깨달음을 주는 문장을 만나면 반드시 붓을 들어 초서(抄書, 책의 핵심을 베껴 적음)하라. 초서란 단순히 글자를 옮기는 기계적인 노동이 아니라, 저자의 사유를 내 손끝으로 통과시켜 내면의 질서를 바로 잡는 수양이다. 이 과정에서 흩어진 정보의 파편들이 하나의 맥락으로 꿰어지는 기적이 일어난다. 기록은 망각이라는 도둑을 이기는 유일한 길이다. 네가 정성껏 베껴 적은 그 자료들이 쌓여 비로소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너만의 독창적인 체계가 탄생한다. p.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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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1장 기록(記錄) : 적지 않은 것은 살지 않은 것과 같다.

다산은 자녀 교육의 대가이다. 먼 유배지에서 끊임없이 자녀를 교육하는 모습은 어느 부모도 해내지 못할진대 위대하게 그는 자녀를 온전한 인간으로 키워냈다. 특히 그는 유산으로 자녀에게 물려준 것은 ‘부지런함〔勤〕’과 ‘검소함〔儉〕’,의 이 두 글자뿐라고 말하며 이를 가슴에 새겨라고 말했다. 그 내용을 그대로 적어보면 "부지런함이란,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않으며 아침에 할 일을 저녁으로 미루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아침에 비가 오면 오후의 일을 헤아리고, 밤에 잠자리에 들면 내일의 일을 미리 헤아리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검소함이란, 옷 한 벌을 마련할 때 훗날 해질 것을 생각해 아껴 쓰고, 음식 한 그릇을 대할 때 농부의 노고를 생각하여 낭비하지 않는 것이다. 재물은 한 번의 재앙으로 사라지고, 권세는 하루아침에 무너진다. 그러나 근검은 어떤 형편에서도 빼앗기지 않는다. 이 두 글자가 가문을 지키는 가장 단단한 기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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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의 문장은 그냥 읽기만 하면 된다. 읽음 속에 배우며, 무릎을 치며, 삶을 고치게 된다. 70만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국내 최고의 고전 연구가인 조윤제 작가가 말하기를 "나는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다산을 읽고 또 읽었다."는 말이 정말 딱 들어 맞는 말이다. 본 책의 저자는 기존의 다산 기록이 주는 감성적 위로의 책을 벗어나 삶을 바로 세우는 날카로운 문장을 그대로 싣고 있다. 손에 들고 읽기에 가벼운 책이나 그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는 이 책을 휴가 기간에 읽으면 좋겠다.


- 이 글은 컬처블룸을 통해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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