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정약용의 인생 수업
정약용 지음, 정영훈 엮음, 김창준 옮김 / 메이트북스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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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최고의 천재이자, 실학자, 개혁가로 알려진 정약용이란 분의 책을 또 다시 읽게 되었다. 그가 써낸 글들을 읽을 때면 마음 깊이 존경하는 마음과 경외감마저든다. 탁월한 인재를 넘어 그는 시대를 넘어 서있는 사람이며, 삶의 통찰을 명확히 꿰뚫어본 인물이라 생각이 든다. 정조의 총애를 받던 엘리트였지만, 마흔부터 시작된 정치적 격랑 속에서 18년이라는 긴 유배 생활을 놀랍게도 견뎌내고 승화시킨 존재다. 다른 사람 같았으면 복수의 마음을 갈거나, 좌절 속에 삶을 놓고 살 수 있었으나 그는 절망 속에서도 붓을 놓지 않았다.

특히나 유배지에서 아들들에게 수백 통의 편지를 보내면서 교육하고 가르친 대목에선 집요함과 함께 유배자의 자녀가 아닌 한 나라의 백성이며, 한 가문의 자녀답게 반듯하게 살기를 원하는 아버지의 눈물겨운 사랑을 보게 된다. 또한 『목민심서』와 『경세유표』, 『흠흠신서』를 비롯한 수많은 저술을 통해 백성들의 삶과 사회를 다시 세우는 방법을 고민하는 그 모습은 가히 신의 경지에 이른 사람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다산 정약용의 인생 수업』은 250년 전에 쓰여진 글이지만 그 치열한 기록과 사유 속에서 현대인들이 정말 삶의 기준으로 붙잡아야 될 내용이 가득한 책이다. 단순히 위인의 일화를 소개하는 정도의 책이 아니라, 다산이 실제로 살아내고 실천했던 삶의 원칙을 문단마다 보게 될 것이다. 삶의 본질은 시대가 흘러도 바뀌지 않는다. 여전히 우리가 사는 세상은 돈 때문에 흔들리고, 사람 때문에 치이고, 미래에 대한 불안 속에서 전전긍긍하며 살아간다. 눈 앞의 이익 앞에 배신자가 되기도 하고, 배신을 당하기도 하는 우리의 모습이 그 시대에 있었다.

이 책은 삶의 전 국면을 아우르는 실전 체계에 대한 기록으로서, 일곱 개의 틀 안에서 정리했다. 1장은 기록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말해주면서 기록하지 않은 것은 살지 않은 것과 같다고 말한다. 2장은 가계(家計)를 통해 재물을 다루는 태도가 삶을 만들기에 그 재물의 사용 원칙들을 상세히 다룬다. 3장은 수양을 통해 자신을 다스리는 법을 배우며, 4장은 관계를 통해 사람을 얻고 지키는 원칙을 알려준다. 5장은 공부를 통해 학문이야 말로 자신을 지켜주는 울타리임을 알려주며, 6장은 세상을 사는 처세술에 대한 기록이다. 마지막 7장은 애민 정신을 통해 공동체와 타인을 대하는 책임감을 돌아보도록 한다.

다산이 가문과 삶을 지키기 위해 세웠던 일곱 개의 기둥은 어쩜 이리도 우리 현실에도 유효한 삶의 기준이 될까하는 생각을 가진다. 책은 순서대로 읽어도 되지만 마음 가는대로 펴서 읽어도 된다. 삶의 중심이 흔들릴 때마다 이 책을 통해서 읽었던 것은 분명 우리 삶을 반듯하게 세우는 길잡이가 되리라 본다. 다산이 쓴 책을 읽을 때마다 느낀 것은 이런 분의 책은 학교 교육의 커리큘럼에 반드시 접목되어 가르쳐져야 한다고 생각된다. 지금의 지식은 지식 그 자체를 머리에 넣는 것으로 사람을 기계적 인간으로 살게끔 한다. 그러나 다산의 지식은 사회적 인간과 도덕적 인간으로서의 참 지식을 가르쳐준다. 인간성 상실 시대에 다산은 인간됨이 무엇인지 매우 섬세하게, 명확하게 가르쳐 준다. 연일 사회는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이러 저러한 사건을 통해서 보면 모두 죄다 인간성 상실이 불러온 범죄임을 보게 된다.

그래서 다산은 수양(修養) 부분에서 처음 언급하기를 "홀로 있을 때도 삼가는 것이 수양의 완성이라고" 알려준다. 또한 "남은 속일 수는 있어도 내 마음은 결코 속일 수 없음을" 알려주며, 자기 자신에게 부끄러운 존재가 되지 않도록 가르친다. 또한 "매일 밤 스스로를 살피며 하루를 차분히 돌아보라"고 한다. 자신의 허물을 감추기 보다는 작은 허물이라도 고치려는 습관을 가지라는 것이다. 또한 "남을 탓하기 전에 자신을 돌아보면 마음은 점점 넒어진다"고 한다. 타인을 비판하기 전에 남을 헤아리는 마음이 먼저라는 거다. 또한 "이익보다 옳은 길을 따라야 사람이 무너지지 않는다"고 가르친다. 이익과 옳음 앞에 타협 아닌 옳음을 선택하기는 쉽지 않지만 그러나 어려움 앞에서도 물러나지 않는 마음을 가질 때 참된 인간으로서의 존재 가치가 된다고 말한다.

이 책의 백미는 처음 기록에 대한 문장이다. "기억은 오래가지 않으니 깨달은 것을 곧장 적어라"는 문장과 "기록은 망각이라는 도둑을 이기는 유일한 길이다."는 가르침이 다시금 기록의 대가인 다산에게 들으니 새삼 달리 들린다. 천재조차도 "기록"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은 그만큼 기록의 산물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정말 영감은 어느 순간 찾아오는데 그때 문득 내가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지하고 나중에 그걸 다시 생각해 보면 기억이 명확치 않고 깨달음이 흐지부지하게 된 적이 많다. 그렇다. 이젠 다산처럼 밥상을 마주하다가도 깨달음이 머리에 머물 때 일다 적어볼 것이다. 그 집요함이 바로 2,400여 권 분량에 달하는 문서를 써 내려갔던 것이다.

눈으로만 읽는 독서는 물 위에 글자를 쓰는 것과 같아 금방 사라지고 만다. 그러니 책을 읽다가 내 마음을 움직이는 대목이나 깨달음을 주는 문장을 만나면 반드시 붓을 들어 초서(抄書, 책의 핵심을 베껴 적음)하라. 초서란 단순히 글자를 옮기는 기계적인 노동이 아니라, 저자의 사유를 내 손끝으로 통과시켜 내면의 질서를 바로 잡는 수양이다. 이 과정에서 흩어진 정보의 파편들이 하나의 맥락으로 꿰어지는 기적이 일어난다. 기록은 망각이라는 도둑을 이기는 유일한 길이다. 네가 정성껏 베껴 적은 그 자료들이 쌓여 비로소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너만의 독창적인 체계가 탄생한다. p.25

_1장 기록(記錄) : 적지 않은 것은 살지 않은 것과 같다.

다산은 자녀 교육의 대가이다. 먼 유배지에서 끊임없이 자녀를 교육하는 모습은 어느 부모도 해내지 못할진대 위대하게 그는 자녀를 온전한 인간으로 키워냈다. 특히 그는 유산으로 자녀에게 물려준 것은 ‘부지런함〔勤〕’과 ‘검소함〔儉〕’,의 이 두 글자뿐라고 말하며 이를 가슴에 새겨라고 말했다. 그 내용을 그대로 적어보면 "부지런함이란,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않으며 아침에 할 일을 저녁으로 미루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아침에 비가 오면 오후의 일을 헤아리고, 밤에 잠자리에 들면 내일의 일을 미리 헤아리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검소함이란, 옷 한 벌을 마련할 때 훗날 해질 것을 생각해 아껴 쓰고, 음식 한 그릇을 대할 때 농부의 노고를 생각하여 낭비하지 않는 것이다. 재물은 한 번의 재앙으로 사라지고, 권세는 하루아침에 무너진다. 그러나 근검은 어떤 형편에서도 빼앗기지 않는다. 이 두 글자가 가문을 지키는 가장 단단한 기둥이다."

다산의 문장은 그냥 읽기만 하면 된다. 읽음 속에 배우며, 무릎을 치며, 삶을 고치게 된다. 70만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국내 최고의 고전 연구가인 조윤제 작가가 말하기를 "나는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다산을 읽고 또 읽었다."는 말이 정말 딱 들어 맞는 말이다. 본 책의 저자는 기존의 다산 기록이 주는 감성적 위로의 책을 벗어나 삶을 바로 세우는 날카로운 문장을 그대로 싣고 있다. 손에 들고 읽기에 가벼운 책이나 그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는 이 책을 휴가 기간에 읽으면 좋겠다.


- 이 글은 컬처블룸을 통해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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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혁명 - 인간은 내면의 목소리를 믿을 때 비로소 자유로워진다 내면혁명 1
랄프 왈도 에머슨 지음 / 이너스북스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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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마음의 한 줄기 섬광에도 주목하라.

단지 그것이 너의 것이라는 이유만으로.

Ralph Waldo Emerson

랄프 왈도 에머슨은 "너 자신을 믿으라"고 말한다. 그 이유는 "모든 심장은 그 쇠줄 위에서 떨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없이 흔들린다. 그럴 때마다 더 많은 답을 찾으려 책을 뒤지고 사람을 찾아 간다. 하지만 에머슨은 언제나 답은 자기 안에 있다고 말한다. 외부의 구원자가 아닌 자기 내부에 있는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라는 것이다. 왜냐면 그 어떤 영웅이나 철학자도 내 삶을 대신 살아줄 수 없기 때문이다. 진정한 평화는 오직 자기 자신에게서만 찾을 수 있다는 가르침은 그냥 흘려들을 얘기가 아니다.

우리는 부모의 우려, 선생님의 가르침, 사회적 상식이라는 부드러운 얼굴을 한 '조언'이라는 이름의 폭력을 늘 마주한다. 그런데 에머슨은 이것을 과감히 차단하고 기꺼이 철저한 고독 속으로 걸어 들어가 내면의 침묵과 정면으로 대면해야 한다고 말한다. 특히 국가의 합법적 명령 앞에서도 "이 더러운 법에 나는 결코 복종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적으며 양심의 이단아가 된 에머슨이 걸어간 그 길을 독자들도 걷기를 바란다.

내 안의 깊은 본성을 신뢰하고 직관을 따라 살라는 것은 한 자아가 걸어가야 할 사명과 같다. 에머슨이 말하는 자기 신뢰의 핵심은 "내 안에서 울리는 보편적 진리의 떨림을 신뢰하겠다"는 것으로서 결코 "내 멋대로 살겠다"가 아니다. 그건 바로 내 자신이 삶의 입법자가 되라는 것이다.

이 책의 목적은 저자가 다섯 가지라고 밝히는데 그래서 독자의 손에 망치 한 자루를 쥐여주면서 자신이 부술 내용을 인지하라고 한다. 무엇을 부수어야 할까? 첫째, 군중의 발소리를 이정표로 착각하는 습성. 둘째, 누군가의 성공을 자신의 성공 방식으로 따라하는 게으름. 셋째, 칭찬 한 마디에 들뜨고 비난 한 마디에 무너지는 자아. 넷째, 무해하고 둥글둥글한 사람이 되어 모두에게 사랑받으려는 위선. 다섯째, 세상의 허락이 떨어지기 전에는 한 발자국도 내딛지 못하는 노예근성. 이 다섯 가지를 과감히 부수어 자기만의 길을 가라고 알려 준다.

에머슨은 자기 신뢰의 첫 머리에 첫 머리에 이렇게 적었다. "당신의 마음 속에서 진실이라고 느낀 것을 말하라. 그것이 곧 모두에게 진실이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정반대로 살아간다. 모두가 진실이라고 말하는 것을 받아 적은 뒤, 그것을 자신의 마음으로 옮겨 적는다. 순서가 거꾸로 뒤집힌 삶. 이것은 바로 '순응'이다. 순응은 항상 남들과 맞추라고 한다. 다른 생각을 하면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 받는다. 그래서 "유난 떨지 마". "남들 하는 만큼만 하면 돼", "다를 그렇게 살잖아" 라는 이 세 마디는 한국 사회가 한 사람의 영혼에 가하는 가장 부드러운 마취제다. 이것은 군중 속에서 자신을 잃으라는 것이다.

그러나 에머슨은 순응하는 동물이 되지 말고 거창한 반항을 하라고 한다. 대중의 견해에 기계적으로 고개를 끄떡이지 않는 일. 타인의 성취를 잣대로 삼아 자신의 위치를 의심하지 않는 일. 친구의 소식 앞에서 자동적으로 솟아오르던 비교의 감정을 한 박자 늦추는 일. 군중이 찬양하는 유행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그것이 내게도 유효한지 묻는 일 등등을 해보라고 한다. 나만의 나침판을 가지라는 것이다. 그럴 때 그는 어디에 있든 길을 잃지 않는 것이다.

인간이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세계에 살고 있다. 사교계는 물론 모임에 나갈 때마다 자신이 사회적 기준에 얼마나 부합하는지를 끊임없이 점검하면서 자기를 무장한다. 그런데 에머슨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것은 영혼을 죽이는 일이다"고 단언하나. 영혼이라는 것은 결국 한 사람이 자기 자신과 맺는 가장 내밀한 관계다. 그 관계가 외부의 시선에 의해 끊임없이 침범당하고 검열당하면, 영혼은 자신의 본래 형태를 잃는다.

흥미로운 사실을 책에서 언급하는데 그건 사람들이 실제적으로는 타인을 거의 보고 있지 않다는 거다. 한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우리가 어떤 실수를 했을 떄 타인이 그것을 기억하는 비율은 우리가 짐작하는 것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런데 우리는 시선의 무게를 자기 상상 속에서 만들어 낸다. 대부분 자신이 만들어 낸 환영이다. 세네카도 말했는데 "우리는 실제보다 상상 속에서 더 많이 고통 받는다"고 말했다. 즉 타인의 시선이 주는 고통의 9할은 한 사람 스스로가 머릿속에 증폭시킨 것이다. 외부에서는 한 점의 잉크였던 것이, 내면에 들어와 거대한 얼룩이 된 것이다. 그런데 그 얼룩을 닦아 내려고 평생을 허비한다.

따라서 에머슨은 "위인이란 군중 속에서도 완벽하게 다정한 태도로 고독의 독립성을 지키는 자다."고 말했다.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서도 그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내면의 방 하나를 만들어 굳건히 지켜나가는 것이야 말로 자기 신뢰의 시작이다.

우리는 우리의 인생을 남에게 채점받게 둬선 안 된다. 왜 우리의 인생을 남에게 채점받게 하는가? 왜 우리는 정답을 외부에서 구하는가? 자연을 보면 떡갈나무는 소나무가 되려고 하지 않는다. 강은 바다가 되려 하지 않으면서도 결국 바다에 닿는다. 별은 자신의 자리에서 빛나며, 다른 별이 더 밝다고 자신의 빛을 끄지 않는다. 오직 인간만이 자신이 되기를 거부하고, 다른 무엇이 되기 위해 자신을 학대한다. 자연 어디에도 정답은 없다. 오직 각자의 본성에 따른 펼쳐짐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또 말하길 "스스로를 주장하라. 결코 모방하지 마라."고 한다. 모방이라도 나만의 것으로 독창적으로 생각하며 그것을 변혁시켜 나가야 하는 것이다. 이처럼 내 안의 직관을 유일한 법으로 삼고 살면 된다고 한다. 나의 생각은 사실 놀라운 발견이다. 그런데 에머슨이 말하길 "우리는 우리 자신의 생각이라는 이유만으로 그것을 내버린다. 그리고 며칠 뒤 어떤 낯선 천재의 작품 속에서, 우리가 버렸던 바로 그 생각이 위엄 있게 되돌아오는 것을 보고 부끄러움을 느낀다."고 한다.

왜 인간의 자신의 본성을 의심하는가? 왜 가장 먼저 떠오른 직관을 가장 먼저 지우는가?

내게 준 내 안의 율법이야 말로 인간이 따라야 할 확실한 율법임을 에머슨은 알려준다.

그래서일까? 1838년 에머슨이 하버드 신학부에서 졸업 연설을 했을 때를 보면 그는 기독교의 역사적 전통과 기적을 맹신하는 당시의 군중을 향해, 개개인의 영혼이 직접 신성과 대면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이때 군중은 분노했고 모교는 삼십 년 가까이 그를 강단에서 추방했다. 그러나 그는 결코 자신의 나침반을 대중에게 내어주지 않았다. 자기 자신 외에는 그 어떤 것도 너에게 평화를 줄 수 없다며 타협이라는 단어를 그는 외면한다. 물론 모든 타협이 독은 아니다. 우리는 타협할 가치가 있는 것을 조율해 나갈 줄도 알아야 한다. 그러나 타협이라는 명목하에 자신의 핵심 가치와 충돌하는 그 지점을 슬그머니 내려놓는다면 그는 잘못된 타협을 하고 있는 것이다. 우선 그 타협으로 얻은 평온은 좋을지 모르지만 그것으로 인해 내 몸과 마음이 느끼는 스트레스를 기억해야 한다. 인간은 원치 않는 타협을 하면 몸과 마음이 기억하여 괴로움의 흔적을 남긴다. 따라서 나만의 제국, 스스로가 입법자가 되는 삶을 추구하라고 한다.

이 책은 바로 자기 자신을 충분하게 신뢰하고 따르라는 것을 설명한 책이다. 외부의 인정과 권위에 의존하는 삶에서 벗어나, 자신의 직관과 양심을 삶의 기준으로 삼을 때 비로소 내 안에서 진정한 자유와 평화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서둘러 읽기보다 한 쳅터나 두 쳅터씩 오래 곁에 두고 읽었으면 좋겠다. 문장 하나를 읽고 잠시 멈출 때, 잊고 있던 자기 자신의 목소리를 만나게 될 것이다. 우리는 매일 수많은 기준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무엇이 성공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떤 선택이 옳은지 끊임없이 듣고 배우며 살아가고 있는데, 정작 자기 삶의 기준을 세우는 법은 배우지 못한 채, 타인의 시선과 사회의 기대 속에서 자신을 맞춰 살아간다. 그렇게 우리는 조금씩 자기 목소리를 잃고, 흔들리는 삶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되는데 이 책은 당당히 자기 안에서 튀어 나오는 생각을 신뢰하고 받아들이며, 자기만의 길을 걸으라고 알려준다.

다시금 말한다. "너 자신을 믿으라 모든 심장은 그 쇠줄 위에서 떨린다."


- 이 글은 컬처블룸을 통해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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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를 경계하지 않는 자는 결코 남을 벨 수 없다 한국철학전집 1
이순신 지음 / 결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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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고 영웅으로 여기는 이순신에 관한 책이다. 읽어 가면서 역시나 이순신은 대한민국 반만년 역사 속에서 우리가 닮고 배워가야 할 위대한 인물임을 수긍하게 된다. 책 표지에 보면 "세상의 모든 해답은 이미 백 년도 전에 쓰여 있다"는 문장이 나온다. 그 전에는 이순신에 대해 막연하게 알았다면 이 책을 읽고는 저자의 평가가 확실히 근거 있는 말을 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프롤로그를 읽으면서 이순신의 기개(氣槪)를 보았다. 아래의 문장이 이토록 가슴 한 켠을 묵직하게 하며 먹먹하게 하는지...

맑음. 옥문을 나왔다.

1597년 4월 1일, 이순신은 의금부의 옥문을 나왔다. 한 달이 넘는 고문으로 다리는 제대로 펴지지 않았고, 등에는 곤장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살이 헤졌다는 말이다. 한때 그는 정이품 삼도수군통제사였었다. 그 직함을 지닌 채, 죄인의 신분으로 그는 백의를 입고 남쪽으로 걸어가야 했다. 하늘은 무심할 만큼 맑았는데 그날의 일기는 단 한 줄로 시작한다. 바로 "맑음. 옥문을 나왔다." 그뿐이다. 억울함도, 한탄도, 분노도 원망도, 자기 연민도 없다. 한 나라의 바다를 지켰던 장수가, 자신을 파멸시킨 임금에 대해 단 한 줄의 변명이나 비난도 남기지 않다니 내 입장에서는 놀라울 따름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백의종군의 첫걸음을 내딛는 이 참담한 기록이, 칠 년간 이어진 『난중일기』에서 가정 처절한 전환점이라는 사실이다.

그는 옥문을 나서는 순간 한 가지를 분명히 했음을 본다. 그건 자신을 향한 동정을 거부하는 일이다. 그를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그들의 안쓰러운 시선을 자기 연민의 자원으로 쓰지 않았다. 즉 자신이 부당하게 당했다는 감각, 세상이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다는 감각, 나만 억울해 하는 감각 등은 한 번 빠지면 좀처럼 헤어 나오기 어려운 감정이다. 그는 그 늪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또한 한 때의 영광(직함)을 생각하지 않았다. 사람을 가장 오래 붙잡아 두는 것은 실패가 아니라 과거의 영광이라고 한다. 한 번도 가져 본 적이 없는 것은 쉽게 포기가 된다. 그러나 한때 손에 쥐었던 것을 놓는 일은 그렇지 않다.

그는 과거의 직함도, 한때의 성취도, 현재의 처지도 생각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저 옥문을 나서며 걸었다. 한 걸음, 또 한 걸음을 옮기면서 비장한 다짐이나 거창한 결심도 없이 통제사가 아닌 죄인의 신분으로 다만 걸어 갔다. 여기서 생각해 볼 것은 이러하다. 자존심과 자존감은 다르다. 자존심은 외부의 평가에 반응하는 감정이다. 누가 나를 무시했다. 누가 내 직함을 깎아내렸다. 누가 나를 함부로 대했다. 이런 감정은 외부의 사건이 있을 때마다 흔들린다. 그러나 자존감은 다르다. 외부와 무관하게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는 감각이다. 자존심이 강한 사람은 외부의 작은 신호에도 쉽게 격해진다. 자존감이 단단한 사람은 외부가 흔들어도 쉽게 흔들이지 않는다. 옥문을 나선 이순신이 보여 준 것은 강한 자존심이 아니라 단단한 자존감이었다. 즉 자신이 통제사가 아니어도 자신임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옥문을 나선 그날, 이순신은 무엇 하나 손에 쥔 것이 없었지만 자신을 정확히 보는 눈. 그 눈 하나로 그는 다시 일어섰고, 결국 바다를 되찾았다. 참으로 모든 것이 무너졌던 사람이다. 직위도, 명예도, 건강도, 가족도(가장 사랑하는 어머니를 잃었고, 아들마저 잃었다), 그에게는 없었다. 철저한 몰락 속에서도 그는 그저 남은 배의 숫자를 세고, 남은 군사의 숫자를 세고, 다음에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그가 통제사로 돌아 왔을 때는 남은 것은 배 열두 척과 흩어진 병사들과 굶주린 병사들만 있었다. 보통의 인간이라면 그 자리에서 무너지거나, 누구를 탓하거나, 하늘을 원망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다시 종이를 펴고 숫자를 적기 시작했다.

배 열두 척을 어떻게 운영을 할지, 어디에 배치를 할 수 있는지, 어떤 물길에서 싸워야 하는지를 가늠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래서 절망의 그 자리에게 그가 꺼낸 말은 한탄이 아니라 계산이었다.

"신에게는 아직 열두 척의 배가 남아 있습니다."

이 문장이 후대에 길이 남는 까닭은 비장함 때문이 아니었다. 그 안에 있는 계산 때문이다. 그는 없는 것을 아수워하지 않고, 있는 것의 정확한 수치를 말했다. 열두 척. 더도 덜도 아닌 열두 척. 그 정확함이 모든 결정을 가능하게 했던 것이다.

실패하고 좌절을 겪을 때 한탄만 하고 원망 하고 안 좋은 상황만 보는 것은 자기 삶을 갉아 먹는 것이다. 이순신은 우리에게 무너진 자리가 막연한 위로로 채우길 원치 않는다. 무너진 자리에서 가장 먼저 해야 될 일은 바로 종이 한 장을 펴고, 지금 나에게 남아 있는 것을 적어 보는 일임을 배운다. 무엇이 남아 있는가. 어떤 기술이 남아 있는가. 어떤 관계가 남아 있고, 어떤 시간이 남아 있는가. 어떤 몸이 남아 있는가를 살피면서 직시를 할 때 내일의 하루는 분명 달라질 것이다.

이순신의 장계(狀啓)는 이것을 알려준다. 즉 감정을 처리하는 자리와 상황을 처리하는 자리를 분리하라는 것이다. 감정은 일기 안에서 처리하고, 상황은 장계 안에서 처리하는 것이다. 두 가지를 그는 썩지 않았다. 분노한 채로 장계를 쓰면 거기에는 사실이 사라지고, 사실만 쫓으며 일기를 쓰면 거기에는 사람이 사라진다. 그는 두 가지를 따로 두는 법을 알았다. 즉 밤에는 인간 이순신으로 울고, 낮에는 통제사 이순신으로 계산했다.

이 책은 우리에게 거창한 위로를 주려고 쓴 책이 아니다. 그저 그 한 가지, 자신을 정확히 보는 눈을 어떻게 길러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그것이 모든 시작이다. 그는 단 한 번도 자신을 영웅으로 여기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자신을 늘 '신(臣, 임금을 섬기어 벼슬하는 사람)'이라 칭했고, 자신의 모자람을 일기에 적었으며, 잠 못 이루는 밤마다 어머니와 자식과 죽은 부하들을 떠올렸다. 그래서 저자 왈 "그는 강철 같은 사람이 아니라, 강철처럼 살기로 매일 결심한 사람이었다." 그 결심의 흔적이 『난중일기』에 남아 있고, 그 결심의 결과가 명량과 한산의 바다에 새겨져 있는 것이다. 그가 우리에게 건네는 가장 정직한 가르침은 《강한 사람은 태어나지 않는다. 매일 자신을 베어 낸 자리에서 만들어진다》는 말이다.

이 책은 위인전으로서 쓰여진 책이 아니다. 이순신이라는 한 사람의 삶을 통해 자기관리, 책임감, 리더십, 인생 경영, 준비의 힘을 배우게 하는 책이다. 삶이라는 파도가 세차게 우리를 혼돈케 하며 좌절을 불러 올 때에 자신만의 기준으로 무너지지 않을 시스템을 세우고 싶다면, 이순신이 남긴 가장 강력한 교훈을 이 책에서 만나게 될 것이다. 참으로 한반도 유사 이래 최고의 경영자로 불려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우리의 인생을 다잡아 주리라 본다.


이 책의 한 문장

그는 천재가 아니다. 적어도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의미에서는 아니다. 그는 감으로 싸우지 않았고, 영감으로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 그의 무기는 숫자였다. 적의 함선 수, 조류의 방향, 바람의 세기, 아군의 식량과 화약의 잔량. 이런 것들을 끊임없이 세고, 기록하고, 다시 점검했다. 『임진장초』에 남은 장계들을 들여다보면 알 수 있다. 그것은 영웅의 호언장담이 아니라, 철저한 보고서다. 숫자가 맞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았고, 조건이 갖춰지지 않으면 싸우지 않았다. 임금이 채근해도, 그는 자신이 계산해낸 승률 바깥으로는 한 걸음도 나가지 않았다. p.05

그가 가장 두려워 한 적은 왜군이 아니었다. 자신 안에서 자라나는 '괜찮을 것이다'라는 안일함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이 책의 출발점을 만난다. 스스로를 경계하지 않는 자는 결코 남을 벨 수 없다. 이 문장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다. 그것은 이 책 내내 깔려있는 일종의 원리에 가깝다. 외부의 적을 베기 위해서는 먼저 내부의 적을 베어야 한다. 내부의 적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알량한 자존심이고, 과거의 직급이며, 남이 알아 주지 않는다는 억울함이고, 누군가 내 인생을 구해줄 것이라는 거짓된 안전망이다. 또 이만하면 됐다는 만족이고, 결국엔 '나는 잘하고 있다'는 오만이다. 이 오만이 베어지지 않은 칼은, 아무리 날이 서 있어도 자기 자신을 향해 휘어진다. p.06

이쯤에서 당신은 묻게 될지 모른다. 그렇다면 이 시대에 이순신을 다시 읽는 일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가. 우리는 전쟁 중이 아니고, 칼을 쥘 일도 없으며, 모함당해 옥에 갇힐 일도 없지 않은가. 그러나 가만히 들 여다보면, 현대인의 삶은 그와 닮은 구석이 많다. 매일 아침 우리는 작은 옥문을 나선다. 우리는 타인의 평가 에 갇히고, 얄팍한 자존심에 베이며, 끊임없이 밀려오는 세상의 소음에 떠밀리며 하루를 시작한다. 손쉬운 변명과 막연한 위로 속에서 우리는 점차 자신을 직시하는 눈을 잃어간다. p.07

배를 띄우는 일은 늘 계산에서 시작된다.

신에게는 아직 열두척의 배가 남아 있습니다.

今臣戰船尙有十二

p.031

이순신이 거부했던 것은 바로 이것이었다. 그는 자기 자신과 어떤 흥정도 하지 않았다. 컨디션이 좋지 않아 도 일지를 썼고, 비가 와도 활을 쏘았으며, 몸이 아파도 회의를 열었다. 『난중일기』의 무서운 점은 영웅적인 자 면이 많아서가 아니다. 오히려 영웅적인 장면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 무섭다. 그는 매일 거의 비슷한 일을 반복 했고, 그 반복을 빠뜨리지 않고 기록했다. 그 기록의 단 조로움이야말로 그가 자기와 맺은 약속을 지켜 왔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였다. p.121

이순신이 안위에게 던진 말은 그래서 무겁다."도망간 다고 살 것 같으냐." 이 물음은 그 시대의 부하 장수에 게만 던져진 것이 아니다. 그것은 회피의 끝자락에 선 모든 사람에게 던져진 물음이다. 비켜서면 정말 무사할 것 같은가. 미루면 정말 사라질 것 같은가. 모른 척하면 정말 없던 일이 될 것 같은가. 대개는 그렇지 않다. 비켜 선 자리에서 더 큰 파도가 다시 밀려온다. 그때는 피할 시간조차 남아 있지 않다. p.139


- 이 글은 컬처블룸을 통해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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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사유가 아니라 돌파다 - 러시아 대문호 톨스토이가 죽음 직전 깨달은 인생의 법칙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이경희 옮김 / 페이지2(page2)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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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살아야 하냐고 묻는 당신에게

이 책의 백미는 이 글의 서문에 모두 실렸다. 톨스토이가 생각하는 모든 인생의 의문과 답이 이 책을 여는 글에 다 실렸다는 말이다. 나머지는 거기에 따른 설명과 이해를 풀어낸 것에 불과하다.

처음 여는 글을 읽었을 때 독자가 평소에 느꼈던 감정과 소용돌이치는 괴로움을 톨스토이 또한 느끼고 '치명적인 속병'처럼 앓았음에 반가움과 더불어 흥분이 되었다. 즉 "삶은 무엇이고, 어디로 향하는 것인가?"라는 의문이 밤낮 그를 괴롭혔던 것이다. 그는 계속해서 말하기를 이런 의문들은 마음만 먹으면 해결될 수 있는 것이며, 별거 아닌 문제라고 생각하면서, 지금은 시간이 없지만 내가 원한다면 쉽게 답을 낼 수 있는 문제라 생각하며 지냈다. 그러나 그런 의문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자주 떠올랐고, 끈질기게 답을 요구했다. 마치 한곳에 계속 떨어지는 잉크 방울처럼 어느새 마음속에 크고 시커먼 얼룩을 남길 정도로 말이다. 그리고는 삶이 멈췄다. 숨을 쉬고 음식을 먹고 잠을 자지만 이런 것은 진정한 삶이 아니기에 삶은 그냥 멈춘 상태로 죽음까지 생각했다. 그러나 죽음이 두려웠기에, 스스로 목숨을 끊지 않기 위해 방도를 찾아내며 또 다시 절박한 마음으로 삶이 무엇인지 탐닉했다.

그가 겪은 과정이 독자에게도 있었기에 흡수되듯 읽어갔다. 폴 고갱의 그림 가운데 긴 제목의 그림이 있다.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가 그것이다. 즉 이러한 물음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질문하며 가는 것이라 생각된다. 그런데 이 질문을 갈구하듯 절박한 심정으로 찾는 자가 있으니 바로 톨스토이였다.


그는 이런 삶의 의문들을 위대한 현인들과 인간의 지혜에서 찾았었다. 그러나 오히려 그들에게서 허상적이며, 공허한 외침을 듣고서는 더 절망적인 상황으로 나아갔다. 지혜의 대가들이 내린 결론은 삶은 덧없고 허망하며, 세상에 태어나지 않는 자는 행복하고, 죽음이 삶보다 낫다. 그러니 삶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궤변을 들었다. 처음엔 톨스토이 또한 솔로몬과 쇼펜하우와 같은 자들이 삶의 의문을 아주 정확하게 제기했다고 확신하며, 일반 대중들은 이 의문을 깊이 이해하지 못한다고 단정까지 하며 비하했다.


그러나 그는 어느 날부터 정직하게 일하는 사람들에 대해 어떤 별난 본능적인 애착에 끌리면서 오히려 노동자 계층의 사람들이 더 평온하게 기쁜 마음으로 고통을 받아들이며 죽음을 향해 다가가는 것을 보게 된다. 즉 탈출구는 뜻밖의 곳에 있었는데 그것은 책이 아니라 삶에서 찾았다. 평생 힘들게 일하면서도 삶에 만족하고, 가진 것 없이도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그들을 깊이 들여다볼수록 그는 살아가는 것이 편안해졌다. 머리로 쌓은 모든 지혜가 답하지 못한 질문에, 땀 흘려 일하는 이들의 삶이 답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그는 귀족의 옷을 벗고, 손수 부츠를 꿰어 신고 밭을 갈며, 몸으로 살아 내기 시작했다. 아래에 그 한 대목을 싣는다.

나는 그런 사람들을 사랑하게 되었다. 그런 사람들의 삶과 죽음을 책 속에서나 사람들이 전해 주는 이야기 속에서 깊이 탐구할수록 그들을 더욱 사랑하게 되었고, 살아가는 것이 편안해졌다. 이렇게 2년이 흐르자 내 안에서 큰 변화가 일어났다. 오래 전부터 내 안에서 진행되고 있었던 변화였다. 부유한 지식인이었던 나와 같은 부류에 속한 사람들의 삶이 혐오스러워졌을 뿐 아니라, 모든 의미를 잃은 것이다. 우리의 모든 활동이나 논증, 학문, 예술이 그저 탐닉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 안에서는 아무런 의미를 찾을 수 없었다. 그보다는 땀 흘려 일해서 스스로 삶을 창조하는 사람들의 행위가 바로 참된 삶이었다. 나는 이러한 삶에 부여된 의미야말로 진리라는 사실을 깨닫고 받아들였다. p.11


이어서 그는 인간이 자신만을 위해서 살면 불행해지고, 타인을 위해 살면 행복해지는 단순한 원리를 깨닫는다. 즉 이성적 의식은 사람들에게 분명하게 말한다. "모든 사람이 너를 위해 살고, 자신보다 너를 더 사랑하기를 바라는가? 그 소원이 성취될 수 있는 조건은 단 하나다. 모든 존재가 다른 사람의 행복을 위해 살고, 다른 사람을 더 사랑하는 것이다. 그럴 때만이 너와 모든 존재가 모든이의 사랑을 받을 수 있고, 행복을 얻을 것이다. 모든 존재가 자신보다 다른 이를 더 사랑할 때만 네가 행복할 수 있다면, 살아 있는 존재로서 너는 자신보다 다른 존재들을 더 사랑해야 한다." p.102

소크라테스나 쇼펜하우어, 그 외의 많은 현인들은 모든 존재의 인생은 불행하고 무의미한 것일 뿐이라고 생각하도록 이끌었고 자신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한 단계 더 깊이 나아가자 그는 인생이 인간 속에 존재하는 이성의 법칙을 실현하는 것임을 이해하게 되었고, 각 개인이 모든 사람에게 봉사하고, 모든 사람으로부터 봉사받는다는 이 법칙만 이루어진다면 모든 인간이 무한하게 커지는 최대의 행복을 얻을 것임을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제목 그대로 『삶은 사유가 아니라 돌파다』는 깨달음을 얻은 그는 생각의 존재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을 넘어서 땀 흘려 일하며 스스로 삶을 창조하는 일에 적극 참여케 된다. 즉 오직 걷고, 일하고, 사랑할 때 비로소 삶은 고요해진다는 것을 몸소 체험하면서 생각의 미로 속에서 탈출을 하게 되었다.

평생을 사유했으나 그 어떤 문장도 나를 구하지 못했다. 걷고, 일하고, 사랑할 때 비로소 삶이 고요해졌다.

Leo Tolstoy

마치 공자가 말하기를 “내가 일찍이 하루 종일 밥도 먹지 않고 밤새도록 잠도 자지 않고 생각만 해보니 아무 유익이 없었다. 배우는 것만 같지 못했다”는 말을 하듯이 인간은 사유의 동물이지만 사유 속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또한 배우는 일에만 몰두하고 한 발자국도 내 딛지 않으면 그 배움은 아무 소용이 없다. 오로지 단순히 걷고, 땀 흘려 일하고, 사랑하며 살 때 삶은 이상한리만치 안정을 되찾는 것이다.

이 책은 톨스토이가 극심한 허무 속에서 써 내려간 『참회록』과, 그 사유가 더욱 깊어진 때 쓴 『인생론』에서 가려 뽑아 새롭게 엮어낸 책이다. 그가 고뇌했던 흔적들이 고스란히 실려있다. "나는 왜 사는가? 나는 왜 뭔가를 원하거나 행하는가?" 또한 "나의 삶에 죽음도 파괴하지 못하는 중요한 의미가 있는가?"하는 고민이 나에게도 문득 찾아온다면 톨스토이가 겪고 깨달았던 삶의 진정한 의미의 해답을 여기서 발견해 보면 좋겠다.

나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몰랐다.

삶이 두려워 도망치려고 하면서도,

여전히 삶에 무엇인가를 기대하고 있었다.

p.29

여는 글을 읽고는 그 다음 부터는 책과 씨름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단순하게 읽으면 톨스토이가 전하고자 하는 인생의 맥락을 못 읽고 책을 덮게 된다. 버지니아 울프가 말했듯 "톨스토이는 모든 것을 꿰뚫어 본다. 사소한 손짓부터 내면의 가장 깊은 곳까지" 보는 자이기에, 그가 마주대한 삶의 의문과 고민을 통해 영혼의 자유를 느껴봤으면 좋겠다. 그렇다. “왜 살아야 하는가?” 하는 물음에 답을 찾지 못한 그의 마음은 끝내 자살 충동까지 느껴, 혹시나 스스로 목숨을 끊을까봐 방도를 찾을 정도였다. 그에게 있던 부도, 명예도, 재능도 그를 구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 진리는 책이나 현인들의 말에서가 아닌 뜻밖에도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서 찾게 되었다. 즉 삶이란 머리로 헤아려 풀어 내는 문제가 아니라, 온몸으로 부딪쳐 통과하는 과정인 것이다.

영화 인턴中 한 대사가 매우 인상적이다.

- 사랑하고 일하라, 일하고 사랑하라! 그게 삶의 전부이다.

- Work and love, love and work. That's all life.

어떤 책제목에서도 봤는거 같은데 찾지 못했다. 그러나 그 내용은 기억하는데 바로 "먹고,일하고,사랑하라."이다. 꽃도, 짐승도, 살아 있는 모든 것은 행복하다. 오직 인간만이 삶의 이유를 잃고 헤메는데, 이유를 찾아 헤메기 보다 단순히 먹고 일하고 사랑할 때 인간은 행복감을 얻는다. 이게 바로 톨스토이가 만났던 참된 삶이었다. 이 책은 그저 삶이 따분하고, 삶이 무엇인가를 알 수 없고, 마음의 공허함이 있을 때 손에 들고 진지하게 읽으면 도움이 된다.

이 책의 한 문장

5년 전부터 마음속에서 아주 이상한 일이 일어나기 시작 했다. 어떻게 살아야 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전혀 알 수 없는 회의의 순간들, 삶이 멈춰 버린 듯한 순간들이 찾아왔 고, 그럴 때면 당혹감을 느끼며 절망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그런 순간들은 이내 지나갔고, 나는 이전처럼 아무 일 없었다 는 듯 삶을 이어 갔다. 하지만 그런 혼란스러운 순간들은 늘 같은 모습으로 점점 더 자주 찾아왔다. 그럴 때는 또다시 삶 이 멈춘 듯 느껴졌고, "삶은 무엇이고, 어디로 향하는 것인 가?"라는 똑같은 의문이 고개를 들었다.

"새는 하늘을 날고 먹이를 모으고 둥지를 지으며 살아갈 운명이고, 그렇게 살아가는 새를 볼 때면 나는 기쁨을 느낀다. 염소와 토끼와 늑대는 먹이를 먹고 새끼를 낳아 기르며 살아갈 운명이고, 그렇게 살아가는 동물을 볼 때면 나는 그 동물의 삶이 행복하고 의미 있다는 확신이 든다. 그렇다면 인간은 무엇을 해야 할까? 인간도 동물과 마찬가지로 생존을 위해 살아가야 하지만, 자신만을 위해 살아간다면 파멸하고 만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을 위해 살아가야 한다는 점이 동물과 다르다. 나는 인간이 자신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을 위해 살 때 행복하고, 또 그런 삶에 의미가 있다고 확신한다."

_ 언젠가 행복할 사람은 영원히 행복할 수 없다 중에서 P. 79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사람들은 천체까지의 거리를 밝혀 냈고, 그 무게를 규정하며 태양과 별의 성분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개인적 행복에 대한 요구와 그 행복을 부정하는 현실 세계의 삶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이냐의 문제는 5,000년 전과 마찬가지로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P.101

"우리는 한 인간의 내면에서 참된 생명이 완성되어 가고 있는지 아닌지 알 수 없다. 오직 자기 내면에서 참된 생명이 완성되고 있는지 아닌지를 알 뿐이다. 사람이 죽지 않아야 할 때 죽는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날리가 없다. 사람은 자신의 행복을 위해 죽음이 꼭 필요할 때 비로소 죽는다. 이는 사람이 자신의 행복을 위해 필요할 때 비로소 성장하고 성숙해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P. 226


- 이 글은 컬처블룸을 통해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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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영 성공 명언 - 현대를 만든 정주영의 꺾이지 않는 불굴의 태도
김옥림 지음 / 미래북(MiraeBook)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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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런한 사람은 기회를 살리고 위기를 넘기자만,

게으른 사람은 기회를 놓치고 불운을 키운다.

이 책 프롤로그에 보면 이런 문장이 나온다. "정주영은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인물이다. 그를 배우고 싶다면 그래서 자신만의 성공을 이루고 싶다면 반드시 이 책을 읽어라."

요즘 들어 위대한 위인들의 삶을 새롭게 보고 있다. 정주영이라는 분은 대한민국이 다 아는 굴직한 인물로서 대한민국 경제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상징적인 인물이 되었다. 최근 한 자료에 의하면 아산 정주영 회장은 78년 대한민국 경제사에 가장 걸출한 인물로 기록된 입지전적인 기업인이자 위인이라고 소개하였다. 누가 뭐래도 위인의 인물 대열에 올라가도 충분하다. 특히 정주영의 25주기를 맞아 지난 2월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아산 정주영 서거 25주기 추모 음악회가 열렸다. 그런데 6월 27일 CNN TV 시리즈 '쇼타임'을 통해 우리나라의 자랑스런 인물인 그가 세계에 소개되었다.

그는 정말 ‘입지전적(立志傳的)’인 인물이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맨손으로 시작해 세계적인 기업을 일구었다. 학력이나 환경이 아닌 ‘생각과 태도’가 인생을 결정한다는 사실을 몸소 증명해낸 놀라운 인물이다. 이 책을 읽는 목적은 내가 현재 하는 일에 동기부여를 받기 위함이다. 처음 부분에서도 언급했지만 위인들의 삶은 그저 이루어낸 것이 아니다. 그들은 특별하며, 남다른 부지런함이 있으며, 끈질긴 인내와 무한한 긍정이 숨쉬는 자들이다. 자주 읽는 성경에 보면 이런 문구가 나온다.

잠언 10:4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손이 부지런한 자는 부하게 되느니라

잠언 12:24 부지런한 자의 손은 사람을 다스리게 되어도 게으른 자는 부림을 받느니라

정회장의 삶은 결코 위의 말씀대로 이루어진 인물로서 사람을 다스리는 인물이 될 수 밖에 없다. 이 땅의 부자는 모두 게으른 자가 없다. 게으름에서는 가난만 마주할 뿐이다. 그러므로 열등감에 사로잡혀 부자를 욕하는 어리석음을 피해야 한다. 기업을 일군다는 것은 결코 구멍 가게를 일구는 거 하고는 다른 마인드다. 그래서 정회장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이 책을 대하며 읽는다.

첫 장부터 마음을 두드린다. 수긍가는 문장이 나온다. 그 다음 문장도 또 그 다음 문장도 모두 고개를 숙이며 배울 점이 많다. 이 책 전부는 과히 인생을 바꾸고 싶은 자들에게 매우 필요적절한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정회장이 직접 남긴 말들과 함께 그 말이 어떤 삶의 맥락에서 나왔는지를 풀어낸 해설이 함께 담겨 있어 읽는 것도 지루하지 않고 가독성도 뛰어나다.

정회장의 명언은 이미 왠만하면 다 아는 바이다. 아산병원을 방문하면 '아산 기념 전시실'이 있는데 우리가 잘 아는 명언이 기록되어 있다. ‘시련은 있으나 실패는 없다’, ‘길이 없으면 만들어라’, 특별히 자주 했던 촌철살인의 '이봐, 해봤어?'는 우리가 가슴 깊이 명언으로 새겨 넣어야 할 글귀다.

무엇보다 그의 메시지는 단순한 격언이 아닌 실제로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꿔낸 실행의 기록의 산물이다. 독자들은 모두 이 책을 통해 성공을 이루는 사람들의 공통된 사고방식과 태도를 자연스럽게 체득하는 유익을 얻게 된다.


이 책에 대해 다시금 언급하자면 단지 읽기만 해도 삶의 자세가 바뀌는 책이다. 물론 시중에는 그러한 책이 즐비하지만 아산(峨山) 정주영이 뱉어낸 귀중한 말과 저자가 풀어낸 서술(敍述)은 남다른 열망과 삶의 에너지를 끓어 오르게 한다. 저자 또한 이 책을 쓰는 내내 낙관적이고 긍정적인 에너지가 몸과 마음 속에 넘쳐흐르는 것을 느꼈다고 하듯이 이 책 정회장의 성공 명언을 통해 독자 또한 인간이 확고한 신념과 불굴의 노력만 있으면 얼마나 강한 존재가 될 수 있는지 또한 사람이 해서 안 되는 일이 없다는 것을 분명 자각하게 되었다.

인생을 대충살거나 게으름을 피우면서 남의 부를 욕하거나 세상은 불공평하다며 자신의 삶을 개선할 의지가 없는 자들이 있다면 이 책으로 달려와 겸손히 배웠으면 한다. 사람마다 어려운 고비를 당하며 좌절하며 멈출지 아니면 극복해 나갈지를 선택한다. 그런데 정회장은 어려운 고비마다 특유의 창의적인 발상과 근면 성실, 남다른 긍정적인 마인드로 위기를 극복해 나가는 것을 선택했다. 그가 가진 삶의 태도를 보면 왜 어떤 사람은 같은 조건에서도 해내고, 어떤 사람은 멈추는지에 대한 답을 얻게 되는데 어쩌면 그건 남다르기 보다는 마음 자세가 남달랐다.

많은 이들이 정회장을 초인적인 사람, 매우 뛰어난 능력의 소유자로 말할 때 그는 늘 이렇게 말했다고 하니 귀를 기울여 보라.

"나는 결코 특별한 사람이 아닙니다. 나는 오직 확고한 신념과 불굴의 노력으로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일 뿐입니다." p.22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해내는 법이다. 의심하면 의심하는 만큼밖에는 못하고,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 할 수 없다." p.19

"모든 일의 성패는 그 일을 하는 사람의 사고(思考)와 자세에 달렸다." p.18

그렇다. 그는 마음에 힘이 있었다. 불굴의 의지도 있었다. 그리고 실행하는 부지런함이 있었다. 평생을 새벽에 일어나 하루를 시작한 것으로 유명한데 이것이 그가 대성할 수 있었던 비결이다.

"부지런히 노력하는 사람은 좋은 때도 놓치지 않고 잘 잡아 쓰고, 좋지 않을 때는 더욱더 부지런히 노력해 수습하며 비켜 가기 때문에 나쁜 운이 작용하지 못한다." p.136

"편안하고 쉽게 저절로 되는 일은 없다." p.138

"똑같은 조건에서 똑같은 일에 부딪쳐서도 어떤 이는 찌푸리고 어떤 이는 웃는다." p.143

책은 한 쳅터마다 짧게 이루어졌기에 그냥 아무 시간에 되는 대로 읽으면 된다. 그만큼 읽기 쉽게, 압축적으로 책을 만들었다. 그러나 그 내용을 읽을 때는 내 인생이 달린 것이라고 생각하며 읽어야 한다. 그럴 때 이 책은 우리에게 정회장의 마인드를 심어줄 것이다.


- 이 글은 컬처블룸을 통해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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