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에서 하늘처럼
이민아 지음 / 열림원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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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아 목사에 대해선 이미 알고 있는 인물이었다. 초대 문화부 장관을 지낸 이어령 교수님의 맏딸이다. 1981년 이화여대 영어영문학과를 조기 졸업하고 결혼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그 결혼 대상자는 이름만 대면 아는 인물이다. 바로 김한길 전 의원이다. 결혼 5년 만에 파경을 하여 각자 다른 배우자와 살았다. 그 과정 속에 이민아 목사는 헤이스팅스 로스쿨에서 학위 및 변호사 자격을 취득하고 캘리포니아주 검사로 임용돼 1989년부터 2002년까지 일하게 된다. 돌연 2009년에 목사 안수를 받게 되는데 이때 미국, 아프리카, 남미, 중국 등지를 돌며 마약과 술에 빠진 청소년 구제활동에 전념하며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하였다. 특히 주목될 점은 이성주의자이자 무신론자였던 부친을 신앙으로 이끌어 세례를 받게 하였다. 이때 매스컴은 이어령 교수의 세례에 놀라움을 표현하며 그가 세례를 받게 된 배경을 소개한다.

그 세례에는 아픔이 서려 있는 세례였다. 그건 맏딸의 실명과 바꾼 세례였다. 이민아 목사는 사실 1992년 세례를 받은 이후 많은 시련이 겹쳤다. 바로 둘째를 낳은 이후 갑상선 암이 발병했다. 교회에서 다양한 훈련을 받고 새벽기도를 다니며 열심을 냈지만 1996년에 암이 재발됐으며 게다가 둘째 진성이가 자폐증으로 판정을 받게 되었다. 아이로 인해 힘들어 하는가운데 그녀는 2007년 망막이 찢어지는 가운데 실명 위기를 겪는다. 이때 아버지 이어령 교수는 딸의 눈만 나을 수 있다면 신을 인정하고 믿겠다고 하였다. 그런데 놀라운 건 한국에 와서 진료한 결과 망막이 찢어진 적이 없다는 판정을 받는다. 물론 그 눈은 회복되었다. 그리하여 시대의 지성은 딸에게 약속한 대로 세례를 받게 되었다. 일본에서 하용조 목사에게 세례를 받았을 때 모든 언론이 보도할 정도로 이슈가 됐는데 그런데 말이다. 세상사 이런 일을 맞이한다.

그로부터 3주일 후, 그녀의 첫째 아들인 유진이가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어떤 병명도 없이 갑자기 19일 동안 혼수상태에 빠지면서 아들은 눈을 감은 것이다. 외손주의 사망과 함께 2012년도에는 이민아 목사가 다시 암과 투병을 하게 되었고 결국 이겨내지 못하면서 남아 있던 이어령 교수의 신앙에 큰 의문을 갖게 했다. 이때 이어령 교수는 딸까지 숨지자 신앙이 흔들렸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이 책은 수없는 시련과 아픔을 맞이하며 살아간 인생이지만 아버지와는 다르게 그 속에 신앙의 꽃이 피어서 우리들에게 더욱 하나님을 바라보게 만든다. 그녀의 말이다.

"이 책을 쓰고 있는 저는 지금 위암 말기 환자라고 합니다. 그러나 제 마음에는 차고 넘치는 하늘나라의 의와 기쁨과 평강이 있습니다. [...] 그동안 저를 사랑하는 하나님은 저의 질병을 여러 번 고쳐주었습니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든지 이 땅에서 치유를 온전히 다 받아 누리지 못하고 내 몸이 죽는다 해도 저는 예수님을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그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습니다. 그 말씀 속에서 죽음은 이미 그 권세를 잃었고, 그래서 저는 죽음이 더 이상 두렵지 않습니다. 제게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에게 주신 승리가 관념적이거나 종교적인 것이 아니라 실재적인 것입니다."

들어가는 말 처음 부터 이 책은 독자들의 마음을 훔친다. 그리고 책 안에는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어떻게 믿어야만이 참된 신앙인인지 믿음이 무엇인지에 대해 쉬운 문체로 자신이 살아온 인생을 말씀 안에서 펼쳐 나간다. 무엇보다 시련 속에서도 얼마든지 하나님을 인정할 수 있고 하늘나라를 누릴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크리스천이라면 누구나 떠올려보았을 의문들에 대해 이 책은 답변을 주고 있는데 즉 “구원받은 우리가 왜 환난을 당하는 것일까?”, “믿음이 있는데 왜 병에 걸리는 것일까?”에 대해 현명한 답을 들을 이 책에서 듣게 될 것이다.

또 하나 이 책의 특징은 저자가 전하는 하나님의 사랑과 그분을 향한 믿음은 복잡하지 않다는 것을 알려 준다. 그녀는 우리와 하나님의 관계를 “아버지와 아들”, 혹은 “신랑과 신부”에 비유하면서 어렵게 느껴졌던 신앙생활의 모든 것을 쉽고 간결하게 설명해 주고 있다.

이 책은 이민아 목사의 10주기를 맞아 『땅에서 하늘처럼』 개정판이다. 2011년 10월부터 11월까지 CTS기독교방송에서 강연을 한 것을 엮은 책으로서 책을 읽고 강연을 들으면 더욱더 은혜가 배가 될 것이다.


이 책 끝 부분에 보면 열 번째 장 '승리하는 신부의 삶'에 대해 다루는데 여기에서 그녀는 생명의 면류관을 마치 바울처럼 소망하는 것을 보게 된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딤후 4:7-8)

일화 가운데 하나가 굉장히 인상 깊다. 그런데 여기에 소개되는 여성은 바로 이민아 목사를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일화가 길지만 꼭 다루고자 하여 싣는다.

"어떤 목사님의 사랑하는 아내가 죽었습니다. 그래서 너무 슬퍼하니까 하나님이 꿈에서 천국에 있는 아내를 보게 해주셨어요. 그런데 그 아내가 세상에서는 좀 못생긴 사람이었는데, 너무 예쁘더래요. 얼굴이 해처럼 빛나면서 아름답고 온몸에도 빛이 나는데 그 중에서도 특별히 머리 위에서 빛이 더 나더래요. 몸에서 나는 빛보다 몇 배나 되는 빛이 머리 위애서 나니까 '왕관을 썼나?' 생각했다고 해요. 자세리 보니까 왕관도 안썼는데 머리에서 엄청난 빛이 나오도래요. 머리 위에서 동그랗게 다이아몬드처럼 빛나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 자매님은 예수님을 안 믿는 집으로 시집왔어요. 이 자매님은 원래 골수로 예수님을 믿는 분이셨습니다. 그래서 시아버지가 '절대로 교회 가지 말라'고 협박하는데도 시장가는 척하고 몰래 성경책을 숨겨 교회에 가다가 시아버지에게 들켰대요. 그런데 시아버지가 굉장히 포악한 분이셨는데 호미를 가지고 머리를 찍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엄청나게 피가 나서 상처를 꿰매었는데, 그 자리에 머리카락이 안 나서 굉장히 창피했다고 합니다. 여자가 머리카락이 안 나는 것이 얼마나 창피할까요? 또 얻어맞은 걸 생각하면 시아버지가 얼마나 미웠겠어요? 그런데도 시아버지를 끝까지 공경하고 온 식구가 다 예수님의 구원을 받게 하고, 남편을 목사님까지 만들고 먼저 간 거예요. 바로 이 아내가 꿈에 보였는데 호미로 맞아서 수치스럽게 여겼던 그곳에서 다이아몬드 같은 빛이 나는 것을 보았다고 합니다." p321-322

이 이야기 끝에 이민아 목사는 이렇게 적었는데

제가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생명의 면류관', 이 성경 구절을 생각했습니다. 저는 예수님께 이 면류관을 받고 싶습니다. 그래서 고난이 별로 두렵지 않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갈 때 이 세상만을 생각하고 살면 그리스도인의 삶은 가장 어리석은 삶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천국에서 벌어질 영광을 생각하면 그리스도인의 삶은 결코 어리석지도 바보도 아닐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천국의 영광스러운 상급과 면류관을 중요하게 생각지 않습니다. 단지 천국만 얻으면 된다는 식의 신앙생활을 합니다. 그러나 이런 속물적인 신앙은 하나님 앞에 갈 수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21)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입으로 믿는 신앙은 누구나 합니다. 그러나 행함으로 믿음을 보여주는 신앙은 아무나 하지 못합니다. 이 말씀 전에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이 책을 통해 우리의 신앙을 돌아보길 원합니다. 이 책은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다 죽어 있는 자들을 살려내는 인공호흡기 같은 책입니다. 아니 전기 충격기와 같은 책입니다. 이 책을 읽고도 살아나지 않는 다면 그는 이미 살아 있으나 죽은 자입니다. 소중한 책이 초신자만 아니라 오래된 신자들에게도 읽혀졌으면 합니다.

이 책의 한 문장

“그분은 한때 이기적이고 사랑 없이 살던 제 마음에 사랑을 채워주셨습니다. 제 이웃과 타인들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가르쳐주셨습니다. 그분을 만나고 저의 부서진 상처가 회복되기 시작하고 제 영이 사랑으로 가득차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사랑의 나라가 이 땅의 모든 분에게 임하기를 오늘도 기도합니다.” _「들어가는 글」에서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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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에 읽는 장자 - 복잡한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시간
김범준 지음 / 유노북스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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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덧 오십을 넘어 섰다. 분명히 나는 아직 2-30대 같은 마음인데 호적상으로 나를 이렇게 선을 그으니 뭔가 애잔스럽다. 불혹을 넘어 지천명의 나이가 되었다지만 공자가 생각하는 그런 이상적인 인간은 아직 이르지 못한 거 같다. 물론 공자도 그 가르침대로 살지 못하는 모습을 최근 읽은 논어(처음 시작하는 논어, 스타북스 2022)에서 보게 되었다. 말처럼 삶이란건 쉬운 게 아니다.

그러나 마흔을 넘어 오십의 고개로 들어간 내 모습에는 이제 세상을 보는 눈과 통찰력이 남다르게 생긴거 같다. 육신도 조금씩 약해지면서 인생이란 것이 그렇게 달려 가기만 해서는 아니 되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장자의 글은 오쇼 라즈니쉬를 통해서 깊이 알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장자의 가르침은 공자의 가르침 보다 한 수 위라고 생각된다. 논어가 무릎을 치게 만든다면 장자의 가르침은 이미 도를 깨닫고 앉아 지긋히 세상을 바라보는 도인의 느낌이다. 거대 담론처럼 보이는 추상적인 이야기도 있지만 대부분 어른을 위한 동화처럼 글을 통해 무언가 머리 속에서 그려지며 보게 한다. 그래서 구체적이고도 재미가 있다.

장자는 춘추 전국 시대의 혼란을 극복하기 위해 나타난 도가 사상을 계승한 철학자이다. 그의 글 속에는 초연함이 존재한다. 사소한 것에 집착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하며 세상을 긍정적으로 살라고 그는 가르친다. 오십 전까지 얼마나 성공을 위해 고군분투하며 가족과 나라를 위해 수고한 인생이던가. 하염없이 달려만 온 인생을 위해 장자는 이제 그런 규율, 논리, 부와 명예를 강요하는 세상에서 벗어나 만물의 순리를 생각하며 자연에서 소요(逍遙)하기를 권한다.

그렇다. 장자는 오십의 인생에게 세상을 ‘빈 배’처럼 바라보라고 한다. 장자의 외편 중 〈산목山木〉에 실린 '빈 배'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는 장자의 내편 첫 편에 실려 있는 ‘나비의 꿈’과 함께 장자의 사상이 가장 잘 드러난 설화이다.이 두 설화는 읽으면 읽을 수록 놀랍다. 빈 배에 관한 얘기를 하자면 "빈 배와 부딪히면 화를 낼 일이 없으나 그 배에 사람이 타고 있다면 화를 내게 된다. 그러므로 스스로를 완전히 비우고 산다면 세상의 무엇도 나에게 해를 끼칠 수 없다."는 내용이다.

빈 배, 장자

한 사람이 배를 타고 강을 건너다가

빈 배가 그의 배와 부딪히면

그가 아무리 성질이 나쁜 사람일지라도

그는 화를 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배 안에 사람이 있으면

그는 그 사람에게 피하라고 소리칠 것이다.

그대로 듣지 못하면 그는 다시 소리칠 것이고

마침내는 욕을 퍼붓기 시작할 것이다.

이 모든 일은 그 배 안에 누군가 있기 때문에 일어난다.

그러나 그 배가 비어 있다면

그는 소리치지 않을 것이고 화내지 않을 것이다.

세상의 강을 건너는 그대 자신의 배를 빈 배로 만들 수 있다면

아무도 그대와 맞서지 않을 것이다.

아무도 그대를 상처 입히려 하지 않을 것이다.

장자를 읽고 난 후와 읽기 전은 분명하게도 차이가 난다. 세상과 사물을 보는 기준이 초연하다 못해 현실을 뛰어넘는 도취와, 망아(忘我) 상태로 빠져들게 한다. 망아 상태란 황홀한 상태를 말한다. 더 풀어서 얘기하자면 "어떤 사물(事物)에 마음을 빼앗겨 자기 자신을 잊는 상태"가 된다. 그만큼 장자의 가르침은 인생을 대자연에 철저히 순응하는 삶이 되게 하며, 삶과 죽음이 하나가 되는 무위자연적 달관의 경지에 이르게 한다. 어떤 이는 장자의 가르침은 현실 생활에서 실현될 수 없는 가르침이라고 하는데, 그런 가르침마저 없다면 우리의 삶은 비참함만이 남지 않을까 생각된다. 어쩌면 삶을 달관하게 하여서 현실을 살아내지 못하는 점이 없잖아 있다. 그러나 그런 현실을 마흔까지 살면 되었지 오십을 넘어서까지 현실과 싸우고 있다면 그자야말로 불생한 중생이라고 말하고 싶다.

장자의 글은 내 안의 찌꺼기를 '비움'이라는 그릇에 담아 버리도록 해준다. 오십이 되었다면 이 책은 어느 사람의 책장에든지 꽂혀 있는 책이어야 할 것이다. 만일 장자의 책이 책장에 없다면 나는 그와는 깊은 교제로 나아가는 것을 꺼려할 것이다. 아직도 비트코인이니, 주식이니 하면서 눈과 마음에 욕심으로 가득차 있는 오십의 친구들이 있다면 故강수연의 삶을 보면서 이제는 그 누구도 눈치보지 않는 자신만의 삶으로 살아가길 채근해 본다.

《장자》는 내편, 외편 그리고 잡편으로 나뉘어져 있다. 이 책은 내편(內篇)에 관한 이야기다.

목차를 보면서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고 읽으면 더 좋다. 물론 마음 내키는 대로 읽어도 한 쳅터마다 감동과 깨우침을 줄 것이다.

그 가운데 두 가지만 소개 한다.

첫째, "평범한 하루를 지옥으로 만드는 시시비비의 덫"에 관한 내용이다.

聖人不由 而照之於天 성인불유 이조지어천

성인은 시시비비를 가리는 대신 하늘의 이치를 따른다.

살면서 시시비비를 가리는 경우가 있다. 특히 지인들과의 대화에서 그런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이 과연 그렇게도 중요한가 싶다. 오십이 되니 자기 기준이 뚜렷하다. 그래서 상대방의 생각을 바꾸려다가 도리어 관계를 망치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자연적으로 그런 시시비비에 얽매이지 않으려고 한다. 책에도 소개되는데 김삿갓이 쓴 '시시비비시'라는 작품에 이런 시가 있다.

옳은 것 옳다 하고 그른 것 그르다 함이 꼭 옳진 않고

그른 것 옳다 하고 옳은 것 그르다 해도 옳지 않는 건 아닐세

그른 것 옳다 하고 옳은 것 그르다 함, 이것이 그른 것은 아니고

옳은 것 옳다 하고 그른 것 그르다 함, 이것이 시비일세

조금은 어렵게 느껴지는 시지만 핵심은 "내거 옳고 너는 틀리다"는 것이 결국 서로의 관계를 악화시켜 논쟁으로 나아가게 하며 서로를 적대적이게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장자는 성인은 시시비비를 가리는 대신 하늘의 이치에 비추어 상대를 가르지 말고 있는 그대로 포용하여 받아들이길 원한다. 이것과 연관되는 내용이 뒤쪽 74페이지에 가면 나온다.

因是已(인시이) 已而不知其然(이이부지기연) 謂之道(위지도)라는 말인데 그 뜻은 "그렇게 할 뿐 그러한 까닭을 알지 못하는 것을 도라고 말한다"는 뜻이다. 즉 오직 도에 능통한 사람만이 만물과 하나임을 알기에 자신이 옳다고 고집하지 않고 그저 모든 사람에게 맡겨 둘 뿐이며 그렇게 할 뿐 자기가 그렇게 한다는 의식조차 없는 상태에 이르는 것(道)을 말한다. 이렇게만 된다면 세상은 벌써 도(道)에 이르러 이곳이 바로 신선이 머무는 공간이 될 것이다.

둘째, 모른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지혜롭다는 내용에 관해서이다.

四問而四不知 사문이사부지

네 번 물었으나 네 번 다 모른다고 답하다.

장자의 내편 〈옹제왕〉에는 요임금 시절의 전설적인 현자인 설결과 왕예라는 인물이 나온다. 설결이 자신의 스승인 왕예에게 무언가를 물었다. 네 번을 물었으나 네 번 다 모른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설결은 껑충 뛰면서 매우 좋아하며 포의자에게로 가서 그것을 알렸다고 하는 내용이다. 설결은 왜 기뻐했을까? 스승이 모른 것이 제자가 그렇게 기뻐할 일인가 할 때 장자가 말하려는 바는 설결의 오만함이 아니라 스승의 '모름' 속에서 '참된 앎'을 깨달았다는 것을 말해주려는 것이다. 즉 우리가 아는 것은 결국 모른다는 사실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왕예와 그런 왕예를 보고 기뻐하는 설결은 삶을 제대로 누리고 행복해지는 비결을 알고 있었다. 아는 척하지 않는 사람이 존경을 받는다.

또한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있을 때 인생은 겸허함이 갖혀지게 된다.

장자의 글은 삶 위에 삶을 만들어 준다. 조급하고 무언가를 채워야 하는 삶에서 자신을 비워냄으로 더 채워지는 삶을 가르쳐 준다.

이 책의 한 문장

이름을 알리고자 하는 욕망이 덕을 흔들리게 만든다.

서로를 미워하게 하는 명예와 경쟁하게 만드는 지식은 사람을 위협하는 두 개의 흉기다.

名也者 相軋也ㅠ 知者也 爭之器也 二者凶器 명야자 상알야 지자야 쟁지기야 이자흉기

덕은 명성을 좇느라 흔들리고 지식은 다투면서 드러나게 됩니다. 명성이란 건 결국 서로를 반목하게 만들고 이로 인해서 다툼이 일어날 지식이 도구로 이용됩니다. 명성을 쫓는 것 그리고 지식을 다투는 것, 이 두 가지는 흉기와도 같습니다. p148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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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하는 사람, 조광조
조성일 지음 / 시간여행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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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개혁'이라는 낱말과 떼레야 뗼 수 없는, 조선 중종 때 대사헌을 지낸 정암靜庵 조광조趙光祖의 삶과 사상을 다룬 팩션(Faction)이다. 이 책을 통해 조광조의 개혁 정신을 선명하게 이해할 수 있다. 살가죽이 벗겨지는 고통을 감내하며 개혁에 목숨 바친 그의 삶을 처음으로 독자는 마주하게 된다. 과연 이 시대에 그런 인물이 있을까? 개혁이라는 것을 외치는 현재의 정부 관료들도, 야당으로 밀려난 민주당도 개혁은 외치는데 그들에겐 개혁을 입에 담을만한 깨끗한 자가 보이지 않는다.

무엇을 위한 개혁을 추구하는지 국민들은 안다. 오직 자신의 당을 위한 것과 국민을 위하는 척하는 달콤한 개혁만이 나부끼는 형태다. 청문회를 해보면 괜찮은 인물 같은데 하나같이 구정물과 같은 모습이다. 오죽 했으면 '정치인들 똥은 개도 안 먹는다'는 말이 있겠는가?

전북 완주에 있는 우석대학교 문학창작학과 교수인 안도현 시인은 정치인들에 대해 시장에서 생선 고르듯 국회의원 출마자들을 고르면 그만일 텐데 쉽지 않은 이유가 “대다수 정치인은 다량의 방부제와 표백제를 몸에 칠하고 다닐 뿐 아니라 선거철만 되면 유권자의 코를 유혹하는 향수를 ‘징하게’ 뿌리고 다녀 ‘총체적으로 썩은 정치인들을 가려내기가 어렵다' 라고 말했다.

그러나 조광조의 모습은 이렇게 드러난다. 그는 학문에 뜻을 두었다가 관직을 추천받자 불공정하다며 과거를 보고 정정당당하게 벼슬길에 올랐다. 또한 서슬 퍼런 기득권층의 거짓 공훈을 삭탈했다가 목숨까지 내놓게 되는 양심적인 인간으로 그려진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기묘사화'라 불리는 사건이다.

어느 시대나 세상을 새롭게 개혁 하고자 할 때 반대의 세력에 부딛히게 된다. 개혁의 초점은 항상 기득권을 향해 서 있게 되는데 그들 또한 살아 남기 위해 저항과 더불어 갖은 모략을 통해 신진 세력을 위협해 간다. 얼마 전 TV 사극인 태조 이방원을 보니 개혁은 목숨을 내놓은 강단이 있어야 함을 알게 된다.

조광조가 조선시대 최고의 개혁가라고 불리는 이유는 중종반정을 통해 연산군을 몰아낸 후 당시 관료사회가 별 탈 없이 안정적인 정치생활을 하기 위해 너도 나도 몸을 사리기만 하던 시절이었는데 갑자기 등장한 조광조는 4년이라는 짧은 시간 만에 훈구파를 견재하고 왕권을 강화하는 계기를 만들며 큼직큼직한 개혁들을 이루어 낸다. 즉 1515년 중종은 사림파의 추앙을 받던 조광조를 등용해 소격서를 폐지하고 도승 제도를 폐지했으며 현량과를 실시해 사림 세력을 대거 등용하는 등 유교의 이상 정치를 목표로 개혁 조치들을 단행하였다.

그러나 역사는 재밌게도 사림 세력의 급속한 진출과 과격한 개혁 정치는 훈구파의 반발을 불러일으켰고 중종도 그들에게 불안과 염증을 느끼게 되었다. 그리하여 1519년 남곤 · 심정 등이 기묘사화를 일으켜 이를 기회로 조광조를 사사하고 조광조에 의해 이룩된 개혁 조치들을 모두 되돌려놓게 된다.

개혁이란 돌맞을 각오를 하고 하는 것이리라. 남다른 강직함과 떡잎부터 남달랐던 그의 삶은 이렇게 허무하게도 끝을 맺었다. 휘어지느니 부러지는 것을 택한 조광조를 통해 우리 시대 필요한 개혁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는 기회가 되었다.

이 책은 특이하게도 역사 속에 있던 '조광조'라는 후손이 쓴 책이다. 조광조를 정암 할아버지라고 부르는 저자는 대학 시절 은사의 부탁을 뒤늦게 실천하는 마음으로 가문의 선조인 조광조에 관한 책을 지금 써서 출판을 하였다. 애착이 많이 가는 책일 것이다.

현 정부가 들어선지 얼마 되지 않는 시점이다. 얼마나 제대로 된 개혁을 하며 국민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할지 지켜보고자 한다. 그의 좌우명이 마음에 새겨진다. 현 정치인이나 우리들도 마음에 두고 새겨야 할 문장이다. 즉 ‘도를 밝히는 것[明道]’과 ‘혼자 있을 때를 조심하는 것[愼獨]’이 일생의 철학이며 그의 '삶' 그 자체였다.

그의 강직한 삶은 사약을 받을 때도 남달랐는데 사약을 마셨지만 쉽게 목숨이 끊어지지 않자 군졸들이 달려들기 전에 호통을 치며 이런 말을 했다. "임금께서 내 몸을 보존하고자 사사의 명을 내린 것이다. 너희들이 어찌 감히 이럴 수가 있는냐?" 하며 사약을 더 가져오라고 하여 한 사발을 더 마신 다음에 절명을 하였다. 향년 서른 여덟 살이었다.

아! 얼마나 젊디 젊은 나이며 안타까운 죽음인가?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 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 가운데 퇴계 이황의 말이다. 조광조의 <행장>에서 그는 세 가지 이유를 들어 그의 희생을 아쉬워 했는데 "첫째 불행은 등용되어 발탁된 것이 너무도 갑작스럽웠다는 것이고, 둘째 불행은 벼슬에서 물러나기를 구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는 것이고, 셋째 불행은 귀양 가서 일생을 마친 것이다."

그의 죽음에 하늘도 마음을 드러 내었는데 장례를 치르자 흰 무지개가 해를 둘렀는데, 동쪽과 서쪽으로 세 번, 남쪽과 북쪽으로는 각각 한 번씩 둘렀다. 그리고 저녁이 되자 길이 열자 남짓 한줄기의 무지개가 얼마 동안 있다 사라졌다고 한다.

이 책은 한 사람의 일대기지만 역사 속에서 우리가 어디를 향해 가고 있으며, 개혁이란 무엇이어야 하는 지를 선명하게 보여주는 책이라 생각된다. 아무리 좋은 개혁도 시대가 따라주지 못하고, 지지 세력이 없는 한 그 개혁은 한 줄기 시원한 바람 밖에는 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런 시원한 바람이라도 불었으면 좋겠다.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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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처음 시작하는 논어 - 지혜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인생 공부 슬기로운 동양고전
김세중 지음 / 스타북스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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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책!

지혜와 지식과 지략이 집약된 고사성어의 보고

『논어』는 어떻게 조선왕조를 지배하는 철학이 되었나?

논어를 처음 대하면서 나는 마치 장자처럼 덩실덩실 춤을 추며 기뻐하게 되었다. 이런 문장을 왜 학교에서는 가르치기를 잊었는지 모르겠다. 우리나라에 가장 강력하게 영향을 미친 『논어』는 사서오경의 첫 번째 책으로 중국 최초의 어록이자 유가의 경전이라 한다. 이런 경전을 외면하는 것은 삶의 진수를 하찮게 여기는 것이리라.

논어는 삶의 이치가 풍부한 철학이다. 서양 철학과는 다르게 사변적이지도 않고 비꼬면서 힘들게 봐야 하는 문장도 아니고, 그냥 읽게 되면 무릎을 치게 만드는 명언 중의 명언과 같은 문장이다.

무엇보다 이 책은 명언 한 문장을 중심으로 ‘명언이 생겨난 배경’과 함께 ‘지혜가 꼬리를 무는 역사 이야기’가 함께 실려져 있다. 이 두 가지 관점에서 분석과 해석을 가미하여 주었기에 논어를 처음 대하는 독자들은 더욱 읽는 재미가 쏠쏠하게 느껴질 것이다.

논어에는 공자와 그 제자와의 문답이 주된 내용이고, 공자의 발언과 행적, 그리고 제자들의 발언 등 인생의 교훈이 되는 말들이 간결하면서도 함축성 있게 기록되어 있다. 논어의 첫 문장은 이러하다.

"배우면서도 때때로 익힌다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벗이 먼 곳에서부터 오고 있다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화를 쌓아두지 않는다면 또한 군자가 아니겠는가?"

참으로 명문장이다. 이 책을 읽으며 처음 알게 되었는데 『논어』의 ‘논’은 공자가 제자 및 여러 사람들의 질문에 대답하고 토론한 것이고, 제자들에게 전해주는 가르침을 ‘어’라고 부른다. 쉽게 말해 논하며 가르침을 주는 내용들이다. 아무래도 '어'에 깊은 내용이 있지 않나 싶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공자는 중국보다 조선에 더욱 강력하게 영향을 미친 성현이다. 이 책 한 권이 조선의 정치사회와 가족관계를 좌우한 실로 대단한 책으로 지금도 그 영향이 존재한다. 이미 중국은 공자가 사라진 나라라고 평가 된다. 그와 다르게 한국은 선비 정신과 함께 인의예지(仁義禮智)가 있는 나라라 생각된다. 물론 간혹 지하철과 같은 곳에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예(禮)가 사라진 인간들이 있지만 그럼에도 한국은 공자가 준 영향 속에서 사회구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생각된다.

한 번은 공자에 대한 다큐를 보게 되었는데 공자의 삶을 보면 참으로 열정적인 인간이었고, 고뇌와 절망을 반복하면서 자기의 꿈을 세상의 꿈으로 바꾸고자 평생 방황했던 인물로 그려졌다. 기원전 497년 54세의 공자는 안회, 재아, 자로, 자공 등 4명의 제자와 함께 세상을 바로 잡아 보고자 14년간 기나긴 유랑생활을 하였다. 수천 킬로미터를 걸어 다녔으며 무려 일곱 나라를 두루 돌아다녔다.

그러나 노년에 이르러 그의 꿈이 현실에 펼쳐지지 않자 ‘하늘이 나를 버렸구나’, ‘나의 도가 끝났구나.’,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며 실현되지 못한 현실에 아픔을 표하는 것을 보았다. 극진히 아끼는 제자 안연이 죽었을 때 공자는 이렇게 탄식했다고 하는데 "顔淵死. 子曰: “噫! 天喪予! 天喪予!" 즉 공자는 “아! 하늘이 나를 버리셨구나! 하늘이 나를 버리셨구나!”고 말했다. 또한 제자 자로(子路)가 죽었을 때도 “아, 슬프다! 하늘이 나를 망쳐버렸다[天喪予]”라고 했다. 노나라 서쪽의 사냥에서 기린이 잡히자 "나의 도가 궁하게 되었다[吾道窮矣]”고 말했다.

그만큼 이상적이라서 그런가? 아니면 그 도(道)를 따르는데 있어서는 국가로서는 불가능하고 개인으로서만 성취되는 도(道)이어서 그런가?

그것이 무엇이든 논어는 2500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시대에도 충분히 귀울여 들을 내용이 가득차 있다. 죽이면 죽일수록 불사신처럼 다시 살아나는 논어라고 말하고 있다. 이미 서양은 논어에 흠뻑 취해 있다. 논어를 아는 사람 또한 논어를 손에 놓고 싶어하지 않는다. 씹을수록 영양가가 있는 음식이 있다. 바로 논어가 그렇다.

어디든 펼치면 '어떻게 이런 문장이 있지'하는 문장이 가득하다. 두 가지만 언급하고자 한다.

不以言擧人, 不以人廢言. “군자불이언거인, 불이인폐언.”이라는 문장이다.

그 뜻은 "군자는 말만 듣고 사람을 천거하지 않으며 사람만 보고 그 말을 버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품행이 바르지 못한 사람이라고 해서 그 사람의 좋은 말까지 버리는 실수를 하지 말라는 것이다.

매스컴을 통해 괜찮게 본 인물이 있다. 그래서 그 사람의 강연과 글이 좋았는데 어느 날 그 사람이 내 기준으로 볼 때 잘못된 선택을 한 것이다. 그 이후로 그 사람이 말한 것은 좋은 말이라도 아예 쳐다보지 않고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런데 책을 보면 공자도 그러했다. 본인은 이렇게 명문장을 쏟아 냈지만 정작 공자는 제자 '재아'가 곤란한 질문을 하자 재아의 질문이 무례하고 고약하다고 여겼다. 또 한 번은 재아가 오제(五帝)의 덕행에 물었는데 평소 제자들을 온화하게 대하던 공자는 차갑게 힐난하듯 대답했다. "너는 그러한 질문을 할 만한 위인이 못된다." 아뿔싸 공자도 사람인 것일까?

또 하나의 문장을 소개한다. 道不同, 不相爲謀. “도부동 불상위모”

이 뜻은 “추구하는 길이 다르면 함께 일을 도모하지 말라.”는 말이다. 이른바 친구를 사귈 때는 무엇보다도 도덕을 중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추구하는 길이 같으면 친구가 될 수 있지만 추구하는 길이 다르면 함께 일을 도모해서는 안 된다. 서로 추구하는 목표가 같으면 실천 방법 역시 비슷하다. 그리되면 쉽게 의기투합할 수 있어서 서로 간에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고 상대방의 인물 됨됨이를 훤히 꿰뚫어 보기 때문에 헛소문이나 악담에도 서로를 오해하는 일이 없다. 이렇듯 목표가 같으면 상대방에게 유익한 도움을 주며 함께 미래를 창조할 수 있지만 반면에 각자가 추구하는 목표가 다르면 자연스레 헤어지기 마련이다.

이 책은 처음 논어를 시작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쉽게 읽혀지는 책이다. 명언도 좋지만 명언에 관계된 배경과 꼬리를 무는 역사 이야기가 이 책을 더욱 빛나게 한다.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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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가 묻고 성경이 답하다
차준희 지음 / 도서출판CUP(씨유피)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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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다니는 사람에게 성경은 귀한 책인 동시에 의문으로 가득차 있다. 마치 하와처럼 호기심 가득하며, 도마처럼 끊임없이 의심이 되는 내용이 가득하다. 믿음만 있다면 이 모든 것은 잘 소화가 되지만 그럼에도 초신자 포함 기존 신자들은 설교를 듣다가, 성경을 읽다가 자신이 믿고 있는 내용에 대해 자연스럽게 질문이 나온다.

 

목차에 나온대로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는데 우리 손에 오기까지 어떤 과정으로 형성'되었는지 궁금하다. '말씀 묵상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는데 말씀 묵상은 과연 어떻게 하는 지도' 궁금해 진다. 또한 교회에서는 '믿음을 강조하는데 참된 믿음이 무엇인지' 때론 알고 싶기도 하다. 더군다나 매주마다 고백하는 사도신경은 어떤 의미가 있으며, 왜 매주 고백을 하고 있는 지도 알고 싶어 진다. 그리고 교회는 어떻게 생겨났고, 무엇을 지향하는 지에 대해서도 성도는 기본적으로 알고 싶다.

 

구약 인물 가운데 모세의 삶이 크게 차지하고 있는데 왜 그는 왕자의 자리에서 벗어나 살인자가 되었으며 그를 최종적인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하지 않으셨는지 궁금하다. 또한 모세와 결이 다른 여호수아에 대해서, 고집스런 요나의 모습을 어디까지 받아 들여야 하는 지에 대해 궁금하다. 신약의 인물 가운데는 가장 알고 싶은 대목이 있는데 왜 예수님은 마르다 보다 마리아를 칭찬했는 지에 대해서도 명확하게 알고 싶다. 그리고 십자가에 달린 두 강도의 태도는 왜 끝에 가서 상반된 태도를 보였는지, 간통죄가 폐지된 이후 성경은 여전히 여기에 대해 무어라고 말씀하며 가르치고 있는 지에 대해 알고 싶다.

 

어쩌면 가장 알고 싶은 궁금증은 '하나님은 왜 선악과를 만드셔서 인간이 죄를 짓게 하셨을까?'에 대해서 매우 궁금할 것이다. 특히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데 성경은 여기에 대해 무어라고 정의 내리고 있는 지에 대해 궁금하다.

 

이 책은 우리가 흔히 가질 수 있는 질문에 대해 성격학자로서 원어 성경에 근거한 성경 해석을 해주고 있는 책이다. 지나치기 쉬운 성경과 사회 이슈에 대해서 저자는 신학자로서 전문가적인 해박한 지식과 깊이 있는 해석으로 군더더기 없는 핵심을 찌르는 답변을 해주고 있다.

 

신앙인들에게 기본기는 너무나 중요하다. 인간에겐 기본적인 알고자 하는 욕망이 있다. 이 책은 CBS 올포원 프로그램을 위해 준비했던 내용으로서 그리스도인들이 궁금해 하는 엄선된 질문으로 구성되었다. 그런데 어떤 질문에 대해선 조금 의아한 질문이 있다. 이 질문이 과연 궁금했을까 하는 생각을 가진다. 그리고 이 책은 일반 성도들뿐 아니라 설교자들과 신학생들에게도 큰 도움이 된다고 하는데 설교자들에게나 신학생들에게는 조금은 밋밋한 내용과 답변이지 않나 생각된다.

 

따라서 초신자에게 필요한 책이며 일반 성도들이 보면서 성경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된다. 처음 쳅터 1에 나오는 신앙의 기본기는 매우 도움을 주며 명료하면서도 실속 있게 답변을 주고 있다. 그 외 질문에 대한 답변은 이미 기존 교회 설교자들로부터 들어온 내용이기에 조금은 신선함이 떨어진다. 물론 초신자나 일반 성도들 기준으로는 새로울 수 있다.

 

그런면에서 처음 신앙생활 하는 성도들과 교회는 오래 다녔지만 성경을 깊이 읽지 않는 이들에게는 이 책이 큰 묘미를 주는 책이라고 생각된다.

 

이 책의 한 문장

 

선악과의 존재 의미: 사랑의 질서

 

하나님은 첫 사람에게 단 한 가지만을 못하게 제한함으로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반드시 지켜야 할 마지노선을 그으신다. 모든 것이 가능한 사람이지만, 한 가지의 제한과 한계를 두신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사람은 사람이 되고, 하나님은 하나님이 되신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무엇이든지 간에, 사람은 이를 금지하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통치권을 인정하며 동시에 인간의 제한성을 수용하는 것이다. 이 금지명령은 인간을 속박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있어야 할 사랑의 질서를 제시한 것이다. p.244

 

오늘도 선악과는 여전히 우리 안에 존재한다. 하나님으로부터 벗어나서 스스로 하나님이 되고 싶은 충동이 우리 안의 선악과다. ‘인간이 하나님처럼 된다는 것은 인간이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됨을 의미한다. 즉 인간이 하나님께 대한 의존 관계에서 벗어나 자신의 의지대로 독립하게 됨을 말한다. [] 인간이 의존자임을 망각하고 스스로가 자존자가 되려는 욕망이 죄의 본질이다.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 존재해야 하는 관계를 파괴하고 하나님으로부터 이탈하려는 욕망의 시도, 이것이 인간의 죄악이며 타락이다. p.246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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