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은 지나간 시대의 기록이 아니라
오히려 시간의 풍파를 견뎌낸 문장들이다.”
고전이란 그 말 자체에는 무언가 깊은 내공이 느껴진다. 현대인들이 쓰는 글과는 다른 인생 근저의 생각들이 언어적 원숙함과 함께 독특한 문체로 구성되어져 있다. 마치 오래된 보물을 캐내는 쾌감을 고전을 읽으면서 느낀다. 읽으면 읽을수록 가치가 품어져 나오는 책이 바로 고전이다. 그러나 어떤 고전은 마크 트웨인이 말하듯 지루함과 방대한 양에서 고개를 돌리게 만들기도 한다. 즉 트웨인은 고전에 대해 말하기를 "고전이란 누구나 읽어 두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읽고 싶은 생각이 없는 그런 것이다."고 말했다.
저자는 고전을 참 좋아하는 자임을 책을 읽으며 느낀다. 저자에게 있어 고전은 삶을 가로지르는 질문 앞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단단한 등불과 같은 것임을 밝혔다. 저자는 자신이 읽은 고전을 다시 자신의 삶으로 풀어내며 명문장을 독자들에게 들려준다. 책을 보면 알겠지만 책장을 넘기며 떠오른 기억들, 마음을 흔든 한 줄, 그리고 그 문장을 곱씹으며 자신을 다듬어온 시간들이 차분하게 펼쳐진다. 어떤 문장이라도 읽는 자에게 감동과 깨달음, 깊이 있는 사색을 주지 못한다면 고전이라고 하여도 결국 죽은 문장이다. 그러나 저자가 읽은 고전은 저자의 마음을 무수한 망치로 두들겨패며 훌륭한 가르침을 주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저자에게 필요했던 문장이, 독자인 나에게도 필요한 문장으로 다가올 때면 인간이란 존재는 결코 미래에 산다하여도 앞서지 못한 자가 아닌가 생각해 보게 된다. 인간이란 어쩌면 한치도 앞서 나가지 못하고 오히려 후퇴하는 존재로서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왜냐하면 고전에서 주는 통찰과 가르침은 상당히 깊은 차원에서 끌어 올려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일단 이 책은 읽기가 편하다. 저자 자신이 책 모임을 사랑하는 독서 활동가로서 고등학교, 시립도서관, 숭례문학당 등에서 독서와 글쓰기 강의를 하고 있기에 책이 반듯하게 편집되고 군더더기 없이 기록되어 있다. 한 쳅터마다 길지 않게 기록되어 있으면서 짧지만 임펙트 있는 가독성으로 독자들을 사로잡고 있다. 손에 들기 편하여 이번 여름 휴가철에 가지고 간다면 결코 후회가 없는 책이라고 본다.
책의 구성은 파트 1에서 왜 저자는 고전이 좋았을까를 시작으로 주제별로 다섯 파트를 나누어 구성되어 있다. 물론 어떤 지면은 더 고전의 내용을 소개해주면 좋겠는데 하며 아쉽게 끝내는 부분이 있다. 이것은 결국 독자의 몫으로 남아서 고전이란 숲을 향해 들어가게 만든다. 어쩌면 이 책은 저자의 삶을 바탕으로 고전에서 만난 보화와 같은 글귀를 독자들에게 전달해 주는 역할만 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어디인가? 내가 수고하지도 않은 것을 저자의 수고로 진리의 광맥을 안겨주니 감사할 따름이다. 또한 같은 고전을 읽었음에도 저자가 보는 시선과 독자가 보는 시선이 매우 다름도 보게 된다. 결국 읽는 이의 마음에 따라, 그 지식의 깊이에 따라 책은 읽혀지는 것이다.
책에서 처음 마음을 두드린 글은 동양 고전 《맹자》 진심 상(盡心 上)편에 나오는 글귀이다.
"유수지위물야(流水之爲物也) 불영과불행(不盈科不行)"이란 말이 나온다. "물이 흘러가다가 웅덩이를 만나면 그 웅덩이를 다 채우기 전에는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라는 뜻이다. 저자는 성경의 말씀 중에 하나인 욥기에 나오는 글을 함께 인용하며 말한다. 즉 욥기 23:10절 말씀에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같이 나오리라."
무슨 말인가? 살면서 웅덩이로 상징되는 어떤 고난이나 역경을 만날 때, 그 웅덩이를 다 채우는 '인내'의 시간과 자신을 '단련'하는 시간이 지나가야 마침내 '순금'과 같은 인생으로 만들어 진다는 것이다. 원치 않는 삶을 우리는 살다가 만난다. 저자는 그것이 몸의 병으로 나타났다. 그래서 자신이 계획했던 것을 다 멈추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를 만났다. 그러나 저자는 이때 조바심에 발을 동둥 구르기보다는, 깊이 파인 웅덩이를 보며 지금 건널 수 없는 고비라면 기꺼이 물을 채우며 기다리자고 말하며 조용히 도서관으로 나가 내공을 쌓는 시간으로 견녀냈다. 즉 원치 않는 몸의 질병, 회사 생활의 슬럼프, 인간관계의 갈등과 같은 갑자기 튀어나온 복병 같은 웅덩이 앞에, 맞서기 보다는 책장을 넘기며 밑줄을 긋고, 발췌하고, 단상을 적는 시간으로 물을 채워나갔다.
《맹자》에 글중에 또 다른 울림을 주는 문장이 나온다. "유위자비약굴정(有爲者辟若掘井) 굴정구인(掘井九軔) 이불급천(而不及泉) 유위기정야(猶爲棄井也)" 즉 "우물을 아홉 길이나 팠어도 샘물에 이르지 못하면, 그것은 결국 버려진 우물이다."라는 뜻이다. 이 말은 웅덩이를 채우는 시간만큼이나 깊이 파내려가는 끈기가 필요함을 일컫는 말이다. 요즘 문장으로 보면 "중요한 건 꺽이지 않는 마음"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삶이 힘들더라도 자살이란 것으로 인생을 끝내는 것은 어리석다. 인생은 누구나 고난이란 과정을 겪으며 웅덩이의 물을 채우는 시간을 견뎌내야 한다. 독자도 여러 번의 아픔과 시련을 겪으면서 시간이 해결해 주는 순간을 겪었다. 물론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기다린 것이 아닌 그저 살아내고자 하는 마음으로 버텨내고, 때론 꿈틀되면서 내 자신의 물웅덩이에 물을 채워나가는 시간을 가졌다. 결국 맹자의 말처럼 물이 채워지기까지의 시간이 지나면 결국 다시 흐르게 되어 있음을 경험적으로 알게 되었다.
이와 같이 이 책은 고전과 싸운 흔적들이 많이 보인다. 저자 자신이 삶의 문제를 모두 고전이란 문장 앞에서 멈추고 사색한 결과로 얻어진 글이다. 저자를 통해 새로운 고전 정보를 알게 되는 시간이 되어 좋았다. 이제 독자에게 남는 건 책을 살 것이냐 아니면 도서관으로 발걸음을 내딛느냐이다.
이 책의 한 문장
사랑은 존재의 자격을 묻지 않는다. 누구나 사랑받아야할 이유를 증명하지 않고도 사랑받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사랑할 자격 역시 따로 정해져 있지 않다. - 에밀 아자르 《자기 앞의 생》 p.127
한 달도 안 돼서 그는 이 결혼이 실패작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1년도 안 돼서 결혼생황이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버렸다. 그는 침묵을 배웠으며, 자신의 사랑을 고집하지 않았다.
그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인생에서 넌 무엇을 기대했나?"
- 존 윌리엄스 《스토너》 p.168, 170
간소하게, 간소하게 살라.
제발 바라건대 그대의 일을 두 가지나 세 가지로
줄일 것이며, 백 가지나 천 가지가 되도록 하지 말라!
자신의 인생을 단순하게 살면 살수록 우주의 법칙은
더욱더 명료해질 것이다.
-헨리데이비드 소로우 《월든》 p.233
인간은 패배하도록 창조된 게 아니다. 인간은 파괴될 수는 있어도 패배할 수는 없다.
- 어니스트 헤밍웨이 《노인과 바다》 p.2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