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국방의 가성비 - 대한민국, 누가 어디까지 지킬 것인가
정욱식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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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인에게 있어 국방과 안보란 무엇일까. 확실히 분단국가라는 특수성 때문인지 한국인에겐 특유의 기질이 있다. 재미있는 특징 중 하나가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에서 한국인 유저들이 자꾸만 국경에 군대를 배치해두는 탓에 게임 상에서 이를 전쟁 준비 신호로 받아들이고 뜻하지 않게 싸움이 난다는 것이다. 언제나 휴전선 너머의 동향을 살펴야하는 한국인 입장에서는 국경을 경계하고 지키는 곳으로 인식하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에, 게임을 하지 않더라도 그럼 군대를 국경에 두지 않으면 어디에 두어야 하느냐면 모르겠고 적응이 안되는 것은 마찬가지다. 그만큼 휴전 상태라는 긴장이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는 것이리라. 그 어떤 나라들보다 국방을 강조하는 나라, 성인 남성 대부분이 국방의 의무를 갖는 나라. 우리나라 안에서 자주국방을 이루기 위한 정책과 논의는 어떻게 발전되어 왔는지, 자주국방을 위해 해결해야 하는 전시작전권 환수, 국방비 부담, 한반도 평화공존 같은 문제들이 어떤 상황에 놓여있고 어떻게 풀어져야 할지 '자주국방의 가성비'를 통해 알아보고자 했다. 

시작과 함께 '전시작전권'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는데, 그동안 워낙 전시작전권이라는 표현을 익숙하게 들어와서 '작전권'을 평시와 전시로 나누는 것이 기형적(50)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저 미군이 한국에 주둔하고 있는 상황에서 유사시 대처하기 위해 합의된 상황이라 여겼다. 하지만 그것이 기형적인 구조이며 전작권을 가져오기 위해 들인 노력이 정권에 따라 지연되고 무산되는 과정을 살펴보게 되면서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되는 문제임을 인식하게 되었다. 하지만 전작권을 가져오기 위해 국방력 강화라는 카드를 꺼내든 문재인 정권의 움직임에 북이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라는 단절로 맞대응 해왔다는 충격적인 사건도 염두에 두어야함이다. 전작권 환수를 위해 첨단 무기 도입과 연합훈련을 통한 국방력 강화가 오히려 한반도의 평화 대신 긴장과 경색을 불러일으키는 요인이 되는 딜레마를 어떻게 풀 것인가, 더 강력한 무기인 핵이 그 답이 되어줄 수 있는가 3장에서 이어진다. 

4장에 들어서는 책의 제목이기도 한 "자주국방의 가성비"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진다. '불사용의 사용 가치*'를 가지고 있는 군사력을 유지하기 위해 한국이 들이는 비용은 세계 평균에 비해 3배 이상 많다고 한다. 그럼에도 이재명 정부는 자주국방 실현을 위해 임기 5년간 매년 8% 정도씩 국방비를 인상할 계획(122)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비생산 분야에 해당하는 군사력을 강화하기 위해 드는 사회적 비용이 크게 소모되고 있기 때문에 가성비에 대한 논의가 따라붙게 되는 것이다. 'K-방산'같은 키워드처럼 우리가 구축해낸 첨단 무기 수출 산업을 통한 경제적 효과를 소폭 얻어내긴 했지만, 부담을 해소하기에 근본적인 해결책은 될 수 없음을 꼬집는다. 필자는 이 지점에서 '자원입대제' 방안을 제안하고 있어 생각을 정리하는데 참고가 되었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여성에게 국방의 의무를 분담하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이 점점 힘을 얻고 있는 것을 떠올렸다. 이전에는 성별갈등 끝에 종종 나오는 주장을 두고 마땅한 방안도 없는 억지라 여겼으나 책을 읽으면서는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단순히 왜 여성은 의무는 없이 권리만 누리려 하느냐, 남성에 대한 역차별이다라는 사람들의 의견에 동조하려는 것은 아니고, 현실적으로 여성인 내가 국방에 대해 너무 모르는, 무관심했던 부분이 컸다는 것을 느꼈다. 아무런 기반도 없는 상태에서 복무를 적용해야 된다는 것은 아니고, 최소한 몇 개월 간의 시간을 들여 기본적인 안보 교육, 체력/기술 훈련과 응급처치 등을 익히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인구 감소로 인해 절대적인 병역자원이 감소하는 문제를 두고 병역 면제 연령을 43세까지 상향한다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는 상황에서, 갈수록 국제 정세가 긴장되고 있는 배경을 두고 충분히 고려해볼만 하다.  

'자주국방의 가성비'는 개인적으로 다소 거리감이 드는 주제였지만, 그간 뉴스를 통해서 분절되게 접했던 사건들을 일목요연히 정리하여 흐름을 파악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교양서가 되어 주었다. 국방에 대해 자신이 어떤 인식을 가지고 있는지 점검하고 정리할 수 있는 바탕을 다져주는 계기가 되어 읽는 동안 다소 지난했으나 흥미를 잃지 않고 읽을 수 있었다. 다만 '흡수통일 정책에 얽매이지 말자(225)'며 국방의 범위를 군사분계선 이남으로 재설정하고 흡수통일을 내려놓고 다른 방안을 모색하자는 주장에는 '우리의 이익과 안전의 관점에서 기회를 찾아야 할 필요성(223)'에 대해 설명하고 있지만, 감정적인 혹은 오랜시간 굳어진 통일에 대한 주입식 인식이 굳게 남아 있어 수긍하기 어려운 지점이 있었다. 이또한 그동안 국제 정세를 다룬 한겨레추판의 교양서를 통해 많은 도움을 받았던 것처럼,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군사비 증액 압박과 패권 다툼이 심화되고 있는 국제 정세 속에서 남북관계와 주변국의 움직임을 다룬 새 교양서를 만나보게 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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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션 블루스 ㅣ B사이드 아카이브 1
슬리만 카데르 지음, 이수원 옮김 / 니케북스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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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바로 이런 이야기였구나. 

" 하지만 난 뒤로 물러서지 않았어. 언젠가는 하늘과 새, 그리고 엄마를 다시 볼 수 있을 거란 희망을 간직하고 있었으니까. 진짜로! 81" 

솔직히 말해 배꼽 빠지게 웃기진 않는다. 아마 프랑스 식 유머가 일일이 약간의 해석을 붙여서 전달되어야만 했기 때문일 것이다. 유명한 인물이나, 지역, 비슷한 발음 같은 것들을 이용한 말장난들은 바로 알아채서 이해한다면 재미를 느끼지만 (발음이 비슷한 점을 이용한 농담) 이런 식으로 설명을 통해서 읽게 되면 웃을 수 있을만한 포인트를 잃어버리고 전달되기 때문이다. 좀 아쉽긴 하지만 왐은 상당히 정신사납고 수다스러운 주인공이기 때문에 그가 풀어내는 이야기를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금새 바쁘다. 

자신이 어디에서 어떤 위치에 있던 일단 뭐든지 하고, 또 한번쯤은 배에 힘을 주고 앞으로 나서봐야 뭔가를 손에 쥘 수 있다는 걸 왐이 증명한다. 처음 영어를 할 줄 모르면서 덮어놓고 '예스, 예스'할 때부터, 아 주인공이라고 믿고 보기에 좀 찝찝한 느낌인데? 싶다가도 가진 능력도 없이 말도 통하지 않으면서 유람선 '오션킹'을 타기로 결정한 배짱과 자신이 꽤나 매력있다고 믿는 밑도 끝도 없는 자신감이 흥미를 끌었다. 그리고 왐과 함께 유람선에 오르자마자 바보같고 어리석은 언행만 보이는 그의 트롤력에 붙여보지도 못한 정이 다 떨어지는 기분을 맛본다. 

여권 숨기기, 여자와 눈만 마주쳐도 착각하거나 느끼하게 굴기, 작업복 투정부리기, 작업시간 펑크내고 자기, 근무 빠지고 식당가기 같은 일들을 단기간에 해치우면서 한국인을 답답하게 만든다. 겉으로는 쎈 척하며 허세를 부리지만 속으로 진땀을 흘리고 때로는 남몰래 눈물마저 흘리다 잠드는 온갖 찌질한 모습을 다 보고 있자면, 얘는 그냥 여권 돌려주고 '오션킹'에서 그냥 쫓아내는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관리자 뽀빠이의 밀착 관리를 통해 시키면 모든 일을 다 해치우는 어엿한 '조커'가 되어가는 왐의 성장을 보다보면 왠지모를 기특함을 느끼게 된다. 

대체 이 정신사나운 사람의 이야기가 언제 웃겨지지? 얘 때문에 나도 유람선 가장 밑바닥 칸에서 50리터 쓰레기 봉투 세 개를 가득 채울만큼 많은 바퀴벌레가 드글거리는 열악함을 강제 체험하고 있는데, 책의 절반이 넘어가도록 햇빛이라곤 더이상 찾아볼 수 없는 거대한 배의 바닥층에서 벗어날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으니 내리기 전에 갑판 위로 올라가 볼 수나 있을지 조급해진다. 이대로 물이나 푸고, 바퀴벌레 치우고, 로봇의 쓰레기를 비우고, 형광초록 마운틴 듀나 마시다 어느날 왐의 항해는 끝났습니다, 하고 하선하게 되려나 싶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인내심이 다 마를 것 같은 때에 드디어 왐에게도 볕들 날이 온다. 그리고 왐이 보여준 밑도 끝도 없이 일단 질러보는 배짱, 그리고 하면 하고, 가면 간다는 과감함이 긴 시간 시키는 일은 다 한다는 '조커'가 쌓아온 쓸모와 섞이면서 상승효과를 가져오기 시작한다. 거기에 약간의 우연한 행운들이 살을 더해 쓸모는 없는데 쓸데는 많았던 왐을 쓸모가 많고 쓸데는 적어지도록 만들어줬다. 더 나은 평판과 더 나은 근무 환경으로, 나름 성장해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처음부터 영 못마땅했던 주인공이지만 그래도 유람선 타서 일할 생각을 한 거 보면 애가 영 띠리하기만 한건 아니었다며 슬그머니 재평가하게 된다. 

왐의 환경이 개선되면서 읽는 사람의 마음도 조금은 풀어진다. 어쩜 이렇게 수다스러운가 싶었던 왐의 세세하고 생생한 설명 탓에 정말 같은 선실 안에서 상대방이 만들어내는 사소한 소음, 풍기는 땀냄새 같은 것 마저도 짜증을 유발하는 피곤을 함께 쌓는 마음으로 몰입해서 지켜봤던 것 같다. 그래서 조금은 함께 고생해야 하는 시간이 필요하지만 마지막에 가서는, 결국엔 같이 웃게 되는 이야기다. 웃기다기 보다는 재미있다는 감상이 더 어울렸다. <오션 블루스>의 생생함 덕분에 생에 첫 크루즈 체험을 바닥층에서 시작한 기분이다. 그리고 바퀴벌레 얘기를 읽은 탓에 두번째 탑승은 하고 싶지 않아질 것 같다. 

너무 더워서 바다로 여름휴가 가는 것조차 망설여지는 때, 가장 가깝게 찾을 수 있는 여행지가 되어줄 소설이다. 다만 바다가 보이는 창을 가진 깨끗하고 조용한 객실이 아니라 배의 가장 밑바닥, 이층침대 두개가 놓여진 좁은 공간에서 수다스러운 빌런과 함께하며 얘 언제 사람되긴 하겠지, 응원하는 마음으로 함께해야 한다. 그럼 왐이 당신에게 절묘한 운명과도 같은 이야기와 웃음으로 보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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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력 구제 금지
김성민 지음 / 황금가지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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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량한 사람만 살인하는 거 아니거든요?" 48" 

소연의 아빠이자, 아동학대범인 박민철이 죽었다. 초등학교 교사인 은아는 사정상 잠시 보호하고 있는 소연의 부탁을 받아 소연의 할머니네 집 마당에 살고 있는 고양이 밥을 챙겨주기 위해 들렀다가 현장을 목격, 최초 발견자가 된다. 박민철의 죽음을 수사하기 위해 은아를 찾아온 형사 장경준과 사건 때문에 마주할 일이 생길 때마다 둘은 은근한 신경전을 벌인다. 자신이 임시로 보호 중인 소연의 일이기에, 평소 추리소설을 즐겨 읽는 성향인 탓에 은아는 박민철의 죽음을 단순한 사고가 아닌 사건으로 보았고, 경준은 그런 은아의 관심을 지나치다 여기면서 호기심에서 비롯된 참견이라 탐탁지 않게 여긴다. 박민철 사건에 관한 의문점들을 해소하는 동안 은아와 경준 사이에 얽히는 사소한 오해와 짧은 입씨름이 두 사람을 전형적인, 하지만 그래서 더욱 풋풋한 관계로 만들어간다. 

로맨틱 코미디 장르에서 전형적으로 나올법한 바로 그 단어, '어? 그 싸가지?'(144) 가 나오면 처음엔 서로 손가락질 하다 나중엔 둘이 손잡고 다닌다는 것 아니겠나. 근데 경준아 은아야, 사람이 죽었는데 지금 너희 아는 길 자꾸 돌아서 가자고 해야겠니. 물론 보는 나는 광대가 너무 올라가서 코보다 높아졌지만. 철벽으로 유명한 은아가 처음 본 순간부터 얼평부터 하게 만들었던 해리 홀레*가 누군지도 찾아봤지만. 넷플릭스에서 발견한 그의 얼굴을 보고는 티존과 광대를 보니 한국 사람 중에서 닮은 꼴을 찾기는 어려울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장경준 형사에게 끌리고 있는가, 왜 끌리는가 고민할 이유가 어디있단 말인가, 은아 선생님 남자 얼굴 보는 거 같으신데. 

어찌됐든 중요한 건 '자력 구제 금지'안에서 이미 사람이 하나 죽고, 또 소연의 할머니인 최금례씨는 실종됐고, 은아의 과거도 뭔가 심상치 않은 느낌을 주는 바람에 신경 쓰이는데, 자꾸만 경준과 은아가 성큼성큼 가까워져 연애하려는 걸 보니 눈앞에 쌓여있는 사건이 자꾸만 흐릿하게 뒷전으로 간다. 사건의 비밀을 파헤치고 싶은 독자는 정신 꼭 붙들고 사건을 살펴봐야 한다. 처음엔 <백야행>*과 비슷한 내용이 아닐까 소연이와 우형의 관계가 나이에 비해서 성숙하고 끈끈해보여서 의심했다가, 역시 이럴 땐 사건 수사에 어떤 진척이 있는지 캐묻는 은아같은 사람이 범인이겠지 의심했다가, 실종됐다던 민철의 모친 최금례 할머니가 아들 앞으로 보험을 들어놨다길래 의심하게 되었다. 나만 빼고 다 수상해보이는 상황이다. 불량한 사람만 살인하는게 아니라면 또 어떤 사람이 살인하게 되는 것일까. 

" 집 안에서 괴물을 키우고 있을 여자가, 지친 몸으로 돌아와 편히 쉬어야 할 자신의 집에서 얻어맞고 욕을 먹으며 사는, 그러면서도 그 관계를 끊지 못하는 어리석고 한심한 여자가 자꾸 떠올랐다. 고요한 가운데 흐느끼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짜증이 났다. 123" 

책을 읽기 전, '로코풍 헤어질 결심'이라는 평을 보고 대체 어떤 내용이길래 이런 강력한 수를 던졌을까 궁금했다. <헤어질 결심>*의 결말이 인상적이기도 했고, 워낙 깊은 애정을 가진 팬층이 많은 작품이라 웬만해선 공감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했다. 마침 형사인 지환과 '박민철 관계자 2(109)'인 은아가 사건을 통해 얽혀들어가는 과정이 영화와 비슷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밀물처럼 모르는 사이에 성큼 밀려들었다 썰물처럼 잡을 수도 없이 쓸려나가는 감정과 관계를 바라보다보니 과연 그렇구나 공감이 됐다. 그럼 '자력 구제 금지'도 <헤어질 결심>처럼 영화로 만들어져도 좋지 않을까. 누가 어떤 인물을 하면 좋을까 생각해본다. 

공사가 분명한 형사의 마음도 흔들어버리는 은아는 얼마나 매력적인 사람인걸까, 지환이 쥐고 있는 은아의 과거에는 어떤 사건이 있었던걸까, 최금례 할머니는 대체 어디 계신걸까, 박민철 사망 사건의 진실은 뭘까, 경준과 은아는 사건을 해결하고 무사히 사건 관계자와 형사 말고 그냥 아는 사람(194)으로 관계를 발전시켜 나갈 수 있을까, 보호자 없이 남겨진 소연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그리고 범근아 안됐지만 너도 좋은 일 생길거야. 너무 나쁜 놈의 죽음엔 자연사도 아깝다며 사건 안으로 성큼 들어서는 은아와 평소엔 나뭇가지 잘 피해다니는 경준의 러브, 스릴, 서스펜스가 한가득 담긴 매력적인 로맨스릴러 '자력 구제 금지'를 추천한다. 


* 요 네스뵈 범죄소설 <해리 홀레 시리즈> 주인공 해리 홀레 형사
* 히가시노 게이고 추리소설 (1999) 
* 박찬욱 2022년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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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없는 세계 - 제6회 넥서스 작가상 대상 수상작 ㅣ 넥서스 작가상
이태희 지음 / &(앤드)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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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 사람들에 관한 책을 읽은 적 있다. 찾아보니 약 10년 전 <인간 증발>이라는 제목으로 된 책이었는데, 매년 10만명의 사람들이 말 그대로 없어져, 증발되어버리는 일본의 사회현상에 대한 내용이었다. 실패와 관계 압박이 강한 분위기의 일본 사회에서 스스로의 존재를 지워버리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고, 갈수록 늘어나지만 이를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기 때문에 어떠한 조치없이 방치되고 있는 문제를 독특하게도 프랑스인 저자가 파고든 책이었다. 자의로 자신의 삶 밖으로 나가버린다는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있고, 또 그 수가 상당하다는 사실에 당시 꽤 놀라서 '내가 없는 세계'의 소개글을 보자마자 <인간 증발>이 떠올랐다. 

'내가 없는 세계' 안의 사람들 역시 세계의 밖으로 걸어 나간다. '걸어나가다'(13)라고 되어 있지만, 갑자기 사라진, 증발되어버린 현상인지 알 수 없다. 그저 어느날 갑자기 모든 것을 두고 사라져버린다. 많은 사람들이 갑자기 사라지는 통에 국가에서는 걸어나간 사람들을 신고할 수 있는 사이트도 구비해두었다. 주로 혼자 있을때 '걸어나가기' 때문에 숙박업소의 1인 숙박을 금지하는 권고를 내린다. 왜, 어디로 가는지, 돌아오긴 하는지, 돌아온다면 얼마나 지나야 돌아오는지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은 '걸어나가다' 현상은 사람을 불안하게도, 반대로 평온하게도 만든다. 

" "그렇게 생각하면 혼자 있어도 괜찮은 거 아니에요? 걸어나가지 않기를 선택하면 그만인데......"
"그러게요. 내심은 기회가 오면 걸어나가고 싶은가 봐요." 39" 

민정이 어떤 사람일까 생각하며 읽는다. 오래 사귄 남자친구 경현과 권태로운 헤어짐을 앞두고 있고, 3년 정도 같이 동거하던 가족같은 은서언니가 있고, 담배를 끊은지도 3년,  꽃가루 알레르기, 약간의 우울 증세와 적당히 예민하고 무던하다. 하지만 나와는 절대 맞지 않는 면이 침대에 외출했던 그대로 눕는 사람이라는 점(24)이었다. 경현과 6주년 기념 데이트가 있던 날, 민정에게서 은서와 경현이 '걸어나갔다'. 언젠가 잃게 될 것을 예감했지만, 걸어나가는 방식으로 사라지리라 예상하지 못했던 상실 앞에서 민정은 조금씩 이들의 걸어나감에 접근하기 시작한다. 

은서가 사라지던 날 샀던 책이면서 유일하게 은서와 함께 사라진 물건인 [걷거나 가라앉기], 우연히 찾아 들어가게 된 레코드 가게, 843번의 익숙함 같은 것들이 경현의 사라짐과도 조금씩 아주 오랜 시간을 두고 겹쳐들어간다. 어쩌면 이렇게 조용히 걸어나가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은서와 경현이 같은 날 사라진 이유가 사실은 뻔하고 추잡한 남녀 사이의 이야기였다면 그래서 차라리 폭발시키고 복수하고 다 정리해버리는 과정이 있었다면 오히려 나았을까. 결국은 이렇게 되려고 이 모든 것들을 쌓아왔던 걸까 생각하면 조금 섭섭함이 남는다. 

걸어나간 수많은 사람들은 대체 어떤 시간을 보내고 있을까, 검색창을 열어 [걷거나 가라앉기]를 입력해보고 없구나 안심한다. 누군가 걸어나가 사라질 걱정은 없겠구나. 아니, 그런데 아주 오래전부터 정말 자신의 삶에서부터 '걸어나간' 사람들이 있었다는 걸 다시 깨닫는다. 그렇다면 이 '증발'은 겹겹이 쌓인 '증발'의 신호가 될까? 어쩌면 일상적인 안녕을 나눈 뒤로 더는 서로 만나지도, 연락하지도 않고 영영 다시 닿을 일 없이 기억 속에 접어둔 수많은 사람들이 사실은 전부 걸어나갔던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내가 없는 세계'가 남기는 진짜 레몬보다 더 레몬같은 레몬 사탕의 묘한 단맛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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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만큼 성실하게 - 교유서가 소설
이소호 지음 / 교유서가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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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래의 내가 24개월 동안 매달 조금씩 도살당할 거라는 사실 같은 건 내 명석한 두뇌에 끼어들 틈이 없었다. 그저 총액을 24로 나누면 나오는 그 가벼운 숫자, 한 달에 밥 몇 번과 커피 몇 잔 값을 아끼면 되니까. 그 만만한 금액이 내 눈앞에 선명한 마법처럼 떠올랐을 뿐이다. 당장 내 수중에는 십 원 한 장 없어도 세상을 24조각으로 쪼개서 살 수 있다니, 이 얼마나 완벽하고 경이로운 경제학인가. 41" 

아, 이 얼마나 날카롭고 지저분하고 잔인한 이야기인가. 

어떤 이야기는 마치 쓰는 사람의 생을 적나라하게 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겁이 나서 마음이 불안해질 때가 있다. '이자만큼 성실하게'가 그런 이야기였다. 수진이라는 인물의 속내와 행동, 배경을 고스란히 봐도 어떻게 왜 이럴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어떻게 수진을 책 속에 담아냈을까, 뭘 알아야 써도 쓸 것 아닌가. 혹시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이자만큼 성실하게' 역시 한번에 쭉 써내려간 글은 아니겠지. 아무래도 저자와의 만남이 있다면 한번 쫓아가서 손을 들어 질문을 해야할까, 바보같은 생각이지 그럼 추리소설 작가들은 다 지하실 있는 집에 살게? 한번도 가본 적 없는 도시를 샅샅이 둘러볼 수 있는 구글맵을 켠 것처럼, 한번도 살아본 적 없는 누군가의 삶도 검색해볼 수 있었을거야. 불안을 잠재우며 읽었다. 지나치게 현실적이고 생생해서 재미있는데 재미를 느낄 수 없다니. 그런데 작가님 정말 아니죠, 덮인 책 표지를 보다 어딘가를 향해 괜히 간절한 눈빛을 보내본다. 너무 몰입해서 생긴 부작용이다. 

항상 주인공에게 가장 이입하고, 좋아하는 인물을 고를 땐 주인공을 선택하곤 하는데 수진이는 글쎄, 사랑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렇다고 미워할 수도 없었지만, 복잡한 생각이 들게 만드는 인물인 것만큼은 맞다. 너도 잘못하긴 했는데 세상도 너한테 나빴던 것 같기도 하고, 안아주고 싶다가도 뺨을 때리고 싶어지기도 했다. 수진이를 볼 때면 예전에 인터넷에서 봤던 <도박중독자의 가족>*이라는 웹툰이 떠올랐다. 아주 예전에 조금씩 연재가 될 때 봤었는데 보는 것만으로도 상식이 무너지는 기분이 들만큼 부담이 됐던 기억이 있다. 계속해서 도박을 하고 빚을 내고 또 도박을 하고 가족들의 돈까지 끌어다 쓰고 울고 고통받고 화내고 반성하다가 또 도박을 하는 지독한 굴레가 수진의 쇼핑 중독에서도 보였다. 게다가 자꾸만 빚을 갚아주고 돈을 보내주는 가족들마저 같았다. 중독자 본인이 아닌 가족/주변인의 입장에서 중독된 삶을 보고 싶다면 <도박중독자의 가족>도 추천한다. 

" "100걸음당 1캐시."
사람들은 이 숫자를 비웃겠지. 고작 1원을 위해 무릎 연골을 소모하는 나를 비천하다 할 것이다. 하지만 보라, 이것이야말로 니체가 그토록 갈구했던 힘에의 의지가 아니고 무엇인가! 나는 지금 1원을 줍는 것이 아니다. 나는 나의 노동을 수치화하고, 그 비루한 수치를 다시 예술적 숭고함으로 치환하는 모든 가치의 전도를 수행중이다. 138" 

읽으면서 자꾸만 돈쓰고 다니는 수진이도 싫었지만, 돈을 갚아주는 엄마도 싫고, 수진이를 까내리면서도 지금 연애하고 있을 때가 아닌 애를 데리고 결혼은 못하겠고 연애나 하자는 도윤은 더 싫었는데, 잘난 것도 없는 내가, 다를 것도 없으면서 그래도 수진이보다는 내가 낫지, 하고 걱정을 담은 척 수진이라는 인물을 평가하고 있는 것도 싫었다. 수진이는 정말 열심히 성실하게 살기라도 했지. 돈을 쓰는 일에도, 남들 앞에 서는 일에도, 글을 쓰는 일에도, 1원씩 10원씩 앱테크도 하고, 강의며 원고청탁이며 과외에 심사까지 일도 다, 열심히했다. 수진이란 인물은 그래, 연탄재. 마치 그만큼 뜨거웠던 적 없으면 함부로 차지도 말라던 연탄재*같았다. 불같이 타올랐던 흔적이 가득하지만 글쎄 가까이하면 검댕도 묻을까 굳이 차내버릴 생각도 들지 않는 연탄재였다. 차서도 안되고, 찰 생각도 안드는. 

현실적이고 자극적일수록 소설은 재밌었다. 그런데 그래서 오히려 점점 마음이 술렁이고 불안해지는 소설은 처음 만났다. 너무 적지도 또 많지도 않은 "60만 5,000원 때문에(7)". 괜히 카드어플에 들어가 이번달엔 얼마 썼지, 훑어본다. 혹시 나도 뭐 사는게 중독 아닌가, 가끔 보면 필요없는 걸 보상심리로, 때로는 싸다고 그냥 사버리는 것 같은데 'KCP-NHN링크' 결제 항목이 너무 많아 초조했다. 진짜 망하고싶지만은 않은데 망하지 않고 버티는게 평균 이상은 되어야 가능할 것 같은 세상이니까. 이 초조함이 나만의 것이 아니라 수진의 것이기도 하고 또 어딘가의 누구의 것이기도 한 것 같단 생각이 자꾸만 찾아왔다. 수진을 보다가 너무 남 욕하고 살지 말아야지 한다. 한문철 역대급 갱신이 떠도, A씨의 녹취록이 폭로 되어도, SNS 공론화가 올라와도 한번쯤은 스스로도 자기 자신을 어쩔 수 없었을 순간이 있었을거라 생각해보기로 한다. 

망하지말라는 말은 늦은 것 같고. 죽지는 마, 망할년아. 욕은 하지 않기로 했으니 욕같은 응원을 한다. 숨을 쉬고 있는 것만으로도 돈이 나가는 어른의 삶, 소득과 소비 사이를 험난하게 넘나드는 밥벌이의 험난함을 같이 버텨내는 묘한 연대를 느끼며 이 이상한 소설 '이자만큼 성실하게'를 추천한다. 돈을 벌어도 빚을 지는, 열심히 살수록 막막해지고, 싫은데 안타깝고, 재밌는데 씁쓸한, 반대의 마음을 바쁘게도 오가는 동안 나의 추는 어디로 기울어져 있을까 곰곰히 생각해보게 되는 이야기다. 


*이하진 작가 카카오웹툰
*안도현 <너에게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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