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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션 블루스 ㅣ B사이드 아카이브 1
슬리만 카데르 지음, 이수원 옮김 / 니케북스 / 2026년 6월
평점 :
아, 바로 이런 이야기였구나.
" 하지만 난 뒤로 물러서지 않았어. 언젠가는 하늘과 새, 그리고 엄마를 다시 볼 수 있을 거란 희망을 간직하고 있었으니까. 진짜로! 81"
솔직히 말해 배꼽 빠지게 웃기진 않는다. 아마 프랑스 식 유머가 일일이 약간의 해석을 붙여서 전달되어야만 했기 때문일 것이다. 유명한 인물이나, 지역, 비슷한 발음 같은 것들을 이용한 말장난들은 바로 알아채서 이해한다면 재미를 느끼지만 (발음이 비슷한 점을 이용한 농담) 이런 식으로 설명을 통해서 읽게 되면 웃을 수 있을만한 포인트를 잃어버리고 전달되기 때문이다. 좀 아쉽긴 하지만 왐은 상당히 정신사납고 수다스러운 주인공이기 때문에 그가 풀어내는 이야기를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금새 바쁘다.
자신이 어디에서 어떤 위치에 있던 일단 뭐든지 하고, 또 한번쯤은 배에 힘을 주고 앞으로 나서봐야 뭔가를 손에 쥘 수 있다는 걸 왐이 증명한다. 처음 영어를 할 줄 모르면서 덮어놓고 '예스, 예스'할 때부터, 아 주인공이라고 믿고 보기에 좀 찝찝한 느낌인데? 싶다가도 가진 능력도 없이 말도 통하지 않으면서 유람선 '오션킹'을 타기로 결정한 배짱과 자신이 꽤나 매력있다고 믿는 밑도 끝도 없는 자신감이 흥미를 끌었다. 그리고 왐과 함께 유람선에 오르자마자 바보같고 어리석은 언행만 보이는 그의 트롤력에 붙여보지도 못한 정이 다 떨어지는 기분을 맛본다.
여권 숨기기, 여자와 눈만 마주쳐도 착각하거나 느끼하게 굴기, 작업복 투정부리기, 작업시간 펑크내고 자기, 근무 빠지고 식당가기 같은 일들을 단기간에 해치우면서 한국인을 답답하게 만든다. 겉으로는 쎈 척하며 허세를 부리지만 속으로 진땀을 흘리고 때로는 남몰래 눈물마저 흘리다 잠드는 온갖 찌질한 모습을 다 보고 있자면, 얘는 그냥 여권 돌려주고 '오션킹'에서 그냥 쫓아내는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관리자 뽀빠이의 밀착 관리를 통해 시키면 모든 일을 다 해치우는 어엿한 '조커'가 되어가는 왐의 성장을 보다보면 왠지모를 기특함을 느끼게 된다.
대체 이 정신사나운 사람의 이야기가 언제 웃겨지지? 얘 때문에 나도 유람선 가장 밑바닥 칸에서 50리터 쓰레기 봉투 세 개를 가득 채울만큼 많은 바퀴벌레가 드글거리는 열악함을 강제 체험하고 있는데, 책의 절반이 넘어가도록 햇빛이라곤 더이상 찾아볼 수 없는 거대한 배의 바닥층에서 벗어날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으니 내리기 전에 갑판 위로 올라가 볼 수나 있을지 조급해진다. 이대로 물이나 푸고, 바퀴벌레 치우고, 로봇의 쓰레기를 비우고, 형광초록 마운틴 듀나 마시다 어느날 왐의 항해는 끝났습니다, 하고 하선하게 되려나 싶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인내심이 다 마를 것 같은 때에 드디어 왐에게도 볕들 날이 온다. 그리고 왐이 보여준 밑도 끝도 없이 일단 질러보는 배짱, 그리고 하면 하고, 가면 간다는 과감함이 긴 시간 시키는 일은 다 한다는 '조커'가 쌓아온 쓸모와 섞이면서 상승효과를 가져오기 시작한다. 거기에 약간의 우연한 행운들이 살을 더해 쓸모는 없는데 쓸데는 많았던 왐을 쓸모가 많고 쓸데는 적어지도록 만들어줬다. 더 나은 평판과 더 나은 근무 환경으로, 나름 성장해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처음부터 영 못마땅했던 주인공이지만 그래도 유람선 타서 일할 생각을 한 거 보면 애가 영 띠리하기만 한건 아니었다며 슬그머니 재평가하게 된다.
왐의 환경이 개선되면서 읽는 사람의 마음도 조금은 풀어진다. 어쩜 이렇게 수다스러운가 싶었던 왐의 세세하고 생생한 설명 탓에 정말 같은 선실 안에서 상대방이 만들어내는 사소한 소음, 풍기는 땀냄새 같은 것 마저도 짜증을 유발하는 피곤을 함께 쌓는 마음으로 몰입해서 지켜봤던 것 같다. 그래서 조금은 함께 고생해야 하는 시간이 필요하지만 마지막에 가서는, 결국엔 같이 웃게 되는 이야기다. 웃기다기 보다는 재미있다는 감상이 더 어울렸다. <오션 블루스>의 생생함 덕분에 생에 첫 크루즈 체험을 바닥층에서 시작한 기분이다. 그리고 바퀴벌레 얘기를 읽은 탓에 두번째 탑승은 하고 싶지 않아질 것 같다.
너무 더워서 바다로 여름휴가 가는 것조차 망설여지는 때, 가장 가깝게 찾을 수 있는 여행지가 되어줄 소설이다. 다만 바다가 보이는 창을 가진 깨끗하고 조용한 객실이 아니라 배의 가장 밑바닥, 이층침대 두개가 놓여진 좁은 공간에서 수다스러운 빌런과 함께하며 얘 언제 사람되긴 하겠지, 응원하는 마음으로 함께해야 한다. 그럼 왐이 당신에게 절묘한 운명과도 같은 이야기와 웃음으로 보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