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과 에블린 민음사 모던 클래식 57
잉고 슐체 지음, 노선정 옮김 / 민음사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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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음사에서 나오는 시리즈들은 꽤 괜찮다. 그리고 아주 매력있다. 고전들, 가볍지 않게 읽을만한 양서들을 모아놓은 시리즈들을 보고있으면 책장을 온통 정갈한 민음사 시리즈들로 채우고 싶은 욕망을 갖게 한다. 그래서 실제로 한권 두권 모으고 있는 주변 사람들도 있다. 세계문학전집들도 그렇고, 모던클래식도 그렇고. 세계문학전집 275번과 모던클래식 57번을 같은 날 읽기 시작했는데 57번을 먼저 다 읽었다. 모던클래식 57번은 '아담과 에블린'이다. 그렇다면 세계문학전집 275번은 무엇일까!? 하는 건 장난이고. '아담과 에블린'을 떠올려보자.

 

 맨 처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이 책에서 느껴지는 독특한 호흡이다. 호흡이 들쑥날쑥하게 느껴진다. 그렇다고 해서 그게 부담스럽거나 읽는 이의 호흡까지도 흐트러지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강약조절이 잘되어 있다고 하나, 약 400쪽 가까이하는 분량을 지루하지 않게 읽도록 돕는다. 아담과 에블린의 감정 싸움에서 여행으로 카탸와의 만남까지 번져가며 촛점이 두사람에게서 벗어나며 흐름이 느리게 진행되는가 싶다가도 또 매우 빠르게 인물들이 주고 받는 대사만으로 처리된 부분이 나오기도 한다. 그런 부분을 보고 있을 때면 '거미여인의 키스'가 떠오른다.

 

 "난 나에 대한 배신이 그저 신발 문제로만 끝나기를 바랐어. 아니면 정원이나 그도 아니면 안락의자나. 그렇게 원한다면 그 여자 당신한테...... 당신이 그게 그렇게까지 필요하다면 말이야. 그렇게 원하는 일이라면 눈감아 줄 수도 있었다고! 하지만 난 알고 싶지 않았어. 보고 싶지도, 감 잡고 싶지도 않았다고. 알겠어? 내가 시청 지하식당에서 달려나갔을 때, 갑자기 내면의 목소리가 들렸어. 조심해, 조심하라고! 하지만 난 그 소릴 듣지도 않았어. 하지만 이젠 다 알아 버렸고. 봤어. 이걸로 끝이야. 전달 사항 끝이라고!"

 

 사건의 발단이다. 아담과 에블린의 아슬아슬한 일상이 어긋나는 순간이었다. 100% 신뢰하는 남녀관계가 있을 수 있을까 모르겠다. 신뢰. 아름다운 말이다. 남녀관계에서도 필요한 덕목 중 하나다. 신뢰가 없는 관계는 괴로울 뿐이니까. 그런데 신뢰라는 것이 어쩌면 상대방에 대한 오만이 될 수도 있다. 에블린은 아담을 신뢰하지 않았다. 다만 두 사람 사이의 문제를 회피했을 뿐이다. 아담은 에블린이 아담을 신뢰하지 않는 만큼, 에블린을 신뢰했다. 두 사람의 관계가 매우 위태로웠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도록 만드는 부분이었다. 에블린 내면의 경고, 그리고 피하고 있던 문제와의 마주침. 에블린은 그 순간 아담을 떠나기로 결심하고 그를 두고 여행을 떠나버린다. 그리고 그런 에블린의 뒤를 아담이 쫓는다.

 

 "서로 싸울 때라도 아담은 그녀에게 친밀하게 느껴졌다. 그녀는 이런 관계를 원하지 않았다. 그녀는 적어도 자신을 속이고 바람을 피우는 남자보다는 나은 사람을 만나야 마땅했다. 그렇지만 그녀는 얼굴을 남자보다는 나은 사람을 만나야 마땅했다. 그렇지만 그녀는 얼굴을 아담의 오른손에 묻었다. 그녀는 그의 팔을 쓰다듬으며 손을 그의 티셔츠 소매 안으로 넣었다. 그녀는 손바닥으로 어깨를 쓰다듬으며 목까지 올라가 손가락 끝으로 그의 목젖을 만졌다. 그의 목젖은 마치 동물처럼 이리저리 도망을 가다가도 이내 다음 순간에는 언제나 그녀에게로 돌아왔다."

 

 부정한 상대와 만나고 있는 사람들은 이런 생각을 하게 되지 않을까. 하지만 이런 생각이 반드시 실천으로 옮겨지지는 않는다. 대부분의 경우, 생각 뿐. 결국 감정적으로 또는 다른 여러가지 이유로 자신을 존중하지 못하는 길을 택하고 만다. 인생이 쉽지 않다는 것,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이 여기 있다. 나쁜 상대에게 끌리거나, 나쁜 상대를 나만은 이해하고 고쳐줄 수 있다는 맹신이 여기에도 적용되는지 모르겠다. 아담과 에블린의 관계를 보면, 왜 서로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됐는지 말도 안되는 거짓을 변명하고 있는 아담을 보면, 에블린의 괴로움이 전해져온다. 벗어나려 해도 벗어날 수 없게 끈질기게 따라붙는 아담. 그리고 결국 아담의 곁으로 돌아가는 에블린. 서로에게 나쁜 상대는 누구일까.

 

 " "장벽이 무너졌어."라고 마레크가 말했다. "누가 그런 헛소리를 해?"라고 에블린이 물었다. "모두 다! 텔레비전은 베를린만 보여 주고 있어. 모두가 다 뛰어넘어 갔어. 지난밤부터 벌써. 너희들 말고 그걸 아직까지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거야! 내가 맹세한다니까!" 마레크가 손을 번쩍 들었다. "기다려 봐!" "마레크, 그러지 마. 제발!" 마레크가 나이 지긋한 부부에게로 다가갔다. "실례합니다. 제 여자 친구가 제 말을 믿지 않네요. 베를린 장벽이 없어졌다는 걸요." "이 사람 말이 맞아요."하고 남자가 말했다. 여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담은 동독의 재봉사다. 그는 동독에서 만족스러운 생활을 한다. 에블린은 동독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다. 에블린은 서독으로 넘어가길 원하고 그런 에블린을 따라 아담도 서독으로 간다. 서독과 동독은 문화와 환경이 다르다. 동독에서 어려움없이 자신의 생활에 만족하며 지내던 아담은 서독에서 좌절을 겪는다. 장벽이 무너진 뒤 동독으로 집으로 돌아가서 보게 되는 것은 엉망이 되어버린 자신의 소중한 것들 뿐. 아담과 에블린의 이야기를 보다 보면, 성경 속의 아담과 하와가 떠오른다. 하와로 인해 선악과를 먹게 된 아담이 만족스러운 에덴에서의 생활을 잃게 되는.

 

 읽고 난 뒤에 강렬한 느낌과 재미가 차오르는 책이다. 잘 만들어진 한 편의 좋은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어떤 울림이 있는, 어떤 울림을 주는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며 그 울림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단순히 아담과 에블린의 사랑에 대해서가 아니라, 베를린 장벽으로 가로막힌 독일, 장벽이 무너진 독일에 대해서도 함께 생각하고 느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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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대를 위한 직업 콘서트 - 행복한 꿈을 찾는 직업 교과서 꿈결 진로 직업 시리즈 꿈의 나침반 1
이랑 지음, 김정진 그림 / 꿈결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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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이/청소년을 위한 직업에 관한 책이 우후죽순으로 나오던 시기가 있었다. 대부분 만화와 인터뷰가 어우러진 형식으로 다양한 직업을 소개하고 직업의 전문가의 인터뷰를 따고 그림으로 직업인의 모습이나 환경을 묘사해놓은 형식이었다. 아이들은 꽤 좋아했는데 이내 흥미를 잃었다. 만화만 몇번보고 아이들 사이의 유망직종만 살펴보더니 말았달까. 가벼운 책은 가벼운 마음으로 만나는 법인가 했었다. 그래도 그 책들을 살피면서, 요새는 직업에 대해 소개하는 책도 이렇게 나오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꿈결에서 나온 이 청소년 교양서 시리즈, '십대를 위한 직업 콘서트'는 어떨까 궁금했다. 다른 책들과 차별화가 됐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표지 디자인을 봤을때, 초등학교 저학년에서 고학년 정도가 그 대상이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는데, 왠걸 내용은 중고등학생용이었다. 내용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 가장 내용이 충실하달까, 중고교생들 수준에 좀 맞을만한 내용이 있는데 표지가 아쉽다. 지금 다시 봐도 겉과 속이 좀 따로 노는 느낌이라 아쉽다. 초등학생용으로 알록달록한 표지를 보고 산다면 내용이 맞지 않을 것 같고, 요새 성숙하고 세련된 중고등학생용으로는 선뜻 손이 가지 않을 것 같아 안타까웠다. 내용은 괜찮은데.

 

 "직업의 세계에서도 하나의 직업은 다른 직업의 도움이 있어야 존재할 수 있다. 세상에 있는 직업은 나름대로 존재하는 이유가 있고, 서로서로 연결되어 있다.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해 나가는 사람들에게 감사해야 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내가 할 수 없는 것들을 누군가가 해 주기 때문에 나 역시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우리는 어렵고 위험하고 더러운, 3D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감사해야 한다. 누군가를 대신해 힘든 일을 하고 있는 걸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직업의 세계를 이해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삶을 이해한다는 것이다."

 

 직업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성숙한 사고를 하도록 요구하는 말들이 많다. 직업에 대한 설명을 해주면서 결국 직업을 갖는다는 건 우리 사회의 한 일원이 되는 것이고, 우리 사회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그리고 우리 사회의 다른 구성원들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져야 하는지도 말해주고 있다. 직업에 귀천이 없고, 늘 다른 사람들의 수고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이런 식으로도 알려줄 수 있다. 내가 앞으로 뭘하고 싶은지에 집중하는 아이들에게 내가 앞으로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알려준다. 무엇을 하는가도 중요하지만 어떤 자세로 어떻게 하는가도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 직업에 대한 정보 뿐만 아니라 사회와 직업에 대한 에티튜드를 함께 가르친다는 것이 장점이다.

 

 "사람들은 일을 하며 정당한 대가를 받고 싶어 한다. 일한 만큼 대가를 받지 못했을 때 사람들은 분노한다. "내가 이 돈을 벌려고 그 고생을 했단 말이야?" 돈의 액수보다도 그동안 들인 시간과 노력에 비해 제대로 된 대가를 받지 못했다는 것이 억울하기 때문이다. 결국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것은, 별 노력 없이 돈만 많이 주는 직업을 원한다는 뜻이 아닐 것이다. 그런 도둑놈 심보를 가진 사람들은 실제로 '도둑놈'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열심히 노력하겠다는 전제하에, 그에 대한 만족스런 보상을 바란다. 일에 대한 보상은 사회적 지위, 명예, 자아실현, 보람, 칭찬, 행복 등 다양하지만, 돈은 일에 대한 가장 상징적인 대가라고 할 수 있다."

 

 어쩌면 이 책을 읽는 아이들 중에도 커서 "내가 이 돈을 벌려고 그 고생을 했단 말이야?" 이 말을 그대로 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10년이고 20년이고쯤 뒤에 이 말을 그대로 말하고 놀랄 일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웃기지만 사실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한번쯤은 또는 몇번이고 하게 된다. 우리가 원하는 노동의 댓가는 우리에게 주어진 노동의 댓가보다 거의 매번 더 크기 때문이다. 누군든 내가 들인 시간과 노력이 지닌 가치를 소중하게 생각한다. 그런데 그 가치에 대한 보상을 '사회적 지위, 명예, 자아실현, 보람, 칭찬, 행복 등'으로 나눠 충당하지 않고 무조건적으로 돈으로만 받으려고 한다면 이런 말은 더 많이 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돈만을 따져서 직업을 선택하면 스스로가 괴로워지는 것이다. 저런 다른 보상과 함께 돈이 딸려있어야 그래도 그 안에서 만족감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돈을 더 많이 벌고 싶다는, 돈만 많이 주는 직업을 원하는 것은 무조건 도둑놈 심보만은 아니다. 다만 자신이 얻을 수 있는 다른 가치를 따로 찾지 못해서 돈에 더욱 집착하는 것일 수도 있다. 누구나 꿈꾸는 직업이 있을 것이고 진심으로 그 꿈에서 돈만 많이 벌기를 원하는 아이는 없을 것이다. 직업을 통해 다른 가치도 얻을 수 있는 꿈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비록 자신의 주체성없이 무조건 공부만을 하던 아이들에게 꿈을 갖고 거기서 돈 외에 가치있는 보상을 기대한다는 그 자체가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결국 진짜 유망직업은 '내게 희망을 주는 직업'이어야 한다. 성취감과 보람을 느끼게 해 주고, 가족들과도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희망을 주는 직업 말이다. 제아무리 미래에 유망하다 해도, 일할 곳이 없어지거나 스트레스가 너무 커서 가족까지 불행하게 만드는 직업은 희망을 줄 수 없다."

 

 이건 정말 중요한 말이다. 스트레스가 너무 커서 나와 남까지 힘들게 하는 직업은 돈을 많이 준대도 좋은 직업이 아니다.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도 그것을 상쇄시킬만한 다른 가치가 그보다 더 크지 않은 직업이라면 절대 좋은 직업이 될 수 없다. 특히 현대인은 정신적인 부담에 취약하다. 자신을 스스로 잃게 될 수도 있다. 물론 스트레스 없는 직업은 없지만, 그것을 상쇄시킬만한 다른 요소가 전혀 없는데 오로지 돈 때문에 그 일에 매달리고 있다면, 금방 사라질 돈 때문에 자신을 망치게 될수도 있다. 더불어 내가 행복하지 않다면 내 주위 사람들, 특히 가족들까지 나로 인해 불행할 수도 있다. 돈을 좀 덜 벌더라도 스트레스가 적거나, 다른 가치를 얻을 수 있는 직업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처음 몇 단락에서는 문과와 이과를 선택하는 것, 대학교, 학과 선택 등에 대한 실질적인 조언이 많이 있다. 직업 적성 검사 테스트를 할 수 있는 사이트도 정리되어 있어서 유용하다. 책을 읽으면서 직업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는데, 항공사에서 승무원을 뽑을 때 키를 암리치라고 해서 까치발을 하고 손을 다 뻗은 키가 208cm이상이어야 한다거나, 직업군을 나눌때 색깔별로 나눠서 블루칼라/화이트칼라, 골드칼라/실버산업, 녹색직업/갈색직업, 노란색직업/보라색직업 (색채의 상징, 색채의 심리/박영수/살림 참고) 등으로 나눈다거나, 요새 한참 책으로 나오는 도시 건설에 관한 직업 '도시계획가'에 대한 얘기, 자폐증을 앓고 있는 아이들의 마음을 읽기 위해 개발된 소셜 엑스레이에 대한 소개, 티비에서 본 적 있는 국내 최초 시각장애인 아나운서 이창훈 아나운서에 대한 얘기까지 정보가 다양하게 실려 있어 보면서 참고하며 읽었다. 새로운 것을 접한다는 것은 재미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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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의 빛깔 - 여성동아 문우회 소설집
권혜수 외 지음 / 예담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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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은이 목록이 엄청나다. 16인의 여성작가들이 16편의 단편을 담아냈다. 여자 셋이 모여도 접시가 깨진다는데 16인이나 모여있는 이 책에서 조분조분한 말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이 느껴진다. 그런데, 의외로 조용하다. 말 그대로 오후의 빛깔을 담아낸듯한 분위기가 전체에서 흐른다. 햇빛에 약간의 노란빛이 섞이는 시간, 그때의 한가로움, 어딘지 모를 약간의 처짐, 막막함같은 느낌이 묻어난다. 글 자체는 대체로 매우 여성적이다. 세밀하고 작은 것에 집중하여 피부에 묻어나는 것 같은 이야기를 써냈다.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 당선자들의 소설집이어서 그런가, 다른 듯하면서도 같은 느낌이다. 그쪽의 취향이 반영된 작가들이 선발되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도 해본다. 작가들의 사진과 꼬릿말이 달려있는데 어떨 땐 그부분을 보는 재미가 더 각별하고 기다려질 때도 있었다. 왜냐면 작품이 끝나고 난 뒤에 맨 끝에 공개되어 있어서다. 이 글은 어떤 사람이 썼을까 궁금해하다 정답을 맞추는 기분으로 확인을 한다. 내게는 낯선 작가들의 얼굴이 익숙해보이는 것이 재미있고 이상했다. 다들 어딘가에서 감쪽같이 살고 있는 주변의 아줌마들처럼 보였다. 숨어있는 그림처럼.

 

 16편의 단편은 파랑 빨강 하양으로 나뉘어 줄을 섰다. 그런 구분을 두고 나눠있어서 그런가 파랑에서는 파랑의 빨강에서는 빨강의 하양에서는 하양의 느낌이 났다. 그냥 두었으면 그런 생각 못했을테지만, 나눠놓으니 또 그런 것만 같이 느껴졌다. 마음에 들었던 것은 빨강의 느낌이 나는 빨강부분이었다. 파랑, 빨강, 하양이라는 말을 보고있으니 불현듯 프랑스가 떠올랐다. 또 그 비슷한 제목의 영화도 떠올랐다. 보고싶었는데 아직까지 보지도 못했고, 사실 내 취향이 아닐 것만 같은 영화였는데 다시 보고싶어졌다. 어쩌면 그 영화를 보면 이 책을 읽는 느낌과 똑같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아마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진심으로 신희는 떠나고 싶었다. 그러면 막막한 드라마도 풀리고 꽉 막힌 삶에 가라앉은 먼지도 날아가버릴 것만 같았다. 충동적인 사랑, 기꺼이 맞아들이고 싶었다. 푸른 새벽이라는 특정한 공간의 부추김에 기대어. "그러면 대하드라마가 재미있게 진행될 텐데 말이죠. 작가님한테 좋은 소재를 제공할 때가 있겠죠." 신희는 순간, 얼굴이 화끈했다. 남자는 그냥 드라마 작가한테 어울리는 농담을 했을 뿐인데, 진심으로 달아올랐으니."

 

 푸른 새벽이라는 말이 있듯이 파랑에 해당하는 단편 중 하나였다. 파랑은 어딘지 모르게 공상같은 이야기들이 많았다. 우연한 로맨스를 꿈꾸는 듯한 내용, 새벽과 얽혀있는 내용이. 드라마 작가가 되려고 노력하는 여자 앞에 곧 교도소에 들어가게 될 남자가 나타난다. 그 남자가 가진 묘한 분위기와 은근한 신호를 감지한 여자는 어찌할 바를 모른다. 아예 모르는 채 넘어가지도, 능숙하게 받아들이지도 못하고 모든 게 어색한 채 꿈만 꾸는 여자의 모습을 보면서 약간의 답답함을 느꼈다. 하지만 나도 결국 그런 사람일 것만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남자가 주인공인 소설도 좀 있지만 그대로 대부분 꽤 섬세한 편이라 부분 부분 공통점을 찾게 된다.

 

 "엄마가 주는 돈으로 스타벅스 커피를 마실 수 있다는 건 내게 상당한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 엄마가 내 몫으로 마련한 아파트가 없다면, 그 자본의 힘이 없다면, 내가 이렇게 우아한 백수가 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빈둥대는 내 저울추는 본의 아니게 자본의 힘에 있었다. 그래서 기부도 한다. 내 통장에서는 매달 일정 금액의 돈이 서너 군데의 복지재단이나 사회단체로 빠져 나간다. 만 원, 이만 원씩이 고작이지만 이 금액은 내가 이 사회에 부담하는 최소한의 책임의식이다."

 

 도대체 스타벅스라는 커피 체인이 주는 그 의미가 우리 사회에서 얼마나 큰 것일까 이제는 가늠하기도 어렵다. 능력은 없어도 돈 쓸 줄은 아는 여자들에 대해 말하려고 하면 가장 먼저 튀어나올 것만 같은 말이다. 스타벅스 커피컵을 자랑하는 여자는 이제 없다. 그래도 스타벅스 커피컵은 남에게 보이기 위한 허세, 무절제한 소비, 낭비벽, 생각없는 여자를 대표하는 말이 된 것 같다. 여기서도 이런 식으로 마주치고 싶지는 않았다.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면 우아하고 여유로운 능력있는 사람으로 보여지지도 않고, 보여진 적도 없는데 대체 왜 그런 이미지가 뿌리박혔을까 모르겠다. 오히려 이 단편 속의 여자가 분수에 맞지 않게 느껴지는 부분은 백수이면서 사회에 대한 책임의식을 운운하며 기부를 한다는 점이다. 동정은 자기 자신부터. 하는 생각이 들게 되는 부분이다.

 

 "아줌마들은 하나같이 '처녀 때' 허리가 십구 인치였다고 한다. 아줌마들은 "이 사람은 나를 평생 사랑해줄 것 같다, 라는 확신이 왔어요. 정말 따뜻하고 이해심 많은 사람이었죠" 이렇게 말했지만, 결론은 "하지만 웬걸요. 살아보니 정말 그때 그 맹세는 다 잊어버리고 무심한 사람이 되었지 뭐에요"로 끝났다. 그러면 아줌마들의 공감 어린 폭소가 터졌다. 그럴 때 엄마는 억지미소를 짓곤 했다."

 

 아줌마들이 리즈시절을 회상할 때 꼭 나오는 말이 저 개미허리라는 게 공감된다. 그럼 내 리즈시절은 초등학생 때 정도 되려나 모르겠다. 우습지만 아줌마들은 정말 그런 말을 한다. 추억은 원래 더 아름다운 법이다. 그리고 누구도 그 시절로 돌아가 그 개미허리가 19인치인지 29인치인지 확인할 수도 없다. 즐거운 일이다. 믿어야지 어쩌겠는가. 누구나 한번쯤은 허리가 19인치였던 때가 있었을테니까 말이다.

 

 " "엄마는 쓸데없이 전화해서 집중력을 떨어드려. 나는 지금 전쟁터에서 격렬하게 총질을 하고 있다고!" 이런 핀잔을 듣고부터는 딸이 그리워도 아예 연락하지 않았다. 향긋한 봄과 시퍼런 여름과 애틋한 가을과 순박한 겨울, 그들이 들려주는 다채로운 노랫소리를 윤씨는 홀로 음미했다. 그녀에게 고독은, 또한 인내는 일종의 장기(臟器)와도 같은 것이었다."

 

 나이든 사람은 외롭지 않아보인다. 언뜻. 조금만 자세히봐도 사무치게 외로워보일텐데, 그 나이가 되기 전까지는 나이든 사람을 자세히 보려는 생각을 하지도 못한다. 우리는 나이든 사람에게 많은 것을 당연시하고 있다. 마치 강요하듯이 그들을 획일화한다. 그들이 우리를 똑같이 바라보는 것은 참지 못하면서. 나이든 사람도 누군가 자신을 안아주었으면 하고 사람을 그리워하고, 지나간 일 투성이지만 이야기라도 나누었으면 하고 대화를 그리워하고, 때로는 요동치는 감정으로 고독을 느낄 때도 있을 것이다. 나이듦을 이유로 그것마저 인내하고 넘겨낸 것일 것이리라. 온 계절과 자기 안의 감정을 홀로 음미하면서 고독에 따라붙은 인내가 장기가 되었다는 표현이 안쓰럽다. 그립다는 말이 갑자기 사무친다.

 

 재미를 주는 소설집은 아니다. 어떤 느낌을 주는 소설집이다. 어떤 느낌인지 알것만 같은 느낌을 주는데, 그것을 공유할 수는 없는 듯한, 개인의 내면에 숨어있는 것들을 끌어올리는 느낌이다. 내밀하여 타인과는 공유할 수 없지만 사실 그 비슷한 것을 모두 각자 가지고 있는, 그 어떤 감각. 만약 남성 독자가 이 책을 읽는다면 어떤 느낌을 받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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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황은 아름답다
우은정 지음 / 한언출판사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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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의 이력을 살펴봤다. 이 책을 접하게 될, 대상은 그녀보다 더욱 젊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지 몰라도, 사실 그녀는 매우 젊기 때문에 이력을 살펴본다고 해도 크게 나올 것은 없다. 출신 대학, 그리고 그녀가 치른 몇 번의 시험, 그 후의 여행, 그리고 여행 후의 행보가 그녀의 이력이다. 그리고 그것이 그녀를 좀 더 특별한 젊은이로 만드는 것들이다. 소위 유행어처럼 말하게 되는 '이대나온 여자'가 바로 그녀이고, 스물 넷에 사법고시를 패스하였으며,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 등지를 일년간 여행하였고, 지금은 사법연수원에 재직중이다. 이 한문장이 그녀를 특별한 존재로 만들어준다. 물론 우리나라만의 줄세우기 필터를 거쳤을 때 그 효과가 더 큰 것이긴 하겠지만, 그녀가 채 서른도 안된 나이에 이 모든 일들을 해왔다는 것을 두고보면 젊음을 남김없이 사용하는 충실하고 치열한 젊은이임은 확실하다.    

 

 책은 세부분 정도로 나뉜다. 여행을 떠나기 전, 사법고시를 준비하던 그녀의 나날들. 공부하느라 힘들고, 남들이 신나게 꾸미고 놀 때 자신을 다독여가며 참아야 했던 많은 것들, 실패에 대한 부담, 공부와 병행해야 하는 일의 고됨 등이 꽤 솔직하게 표현되어 있다. 그리고 아프리카 지역을 여행하면서 보고 느낀 것들, 남아메리카 지역을 여행하면서 보고 느낀 것들 등으로 되어 있는데, 사진이 좀 적은, 자서전 비슷한 느낌이 나는 여행기라고 생각하면 좋겠다.

 

 "스물둘, 화장하고 예쁜 옷 입고 자신을 꾸미는 데 관심이 온통 가 있는, 그런 것들이 즐거울 때다. 남들 하는 것은 다 해보면서 그렇게 청춘을 채워가는 데에 바쁜 나이. 그러나 나는 조금 다른 스물둘을 살고 있다. 크고 빛나는 목표를 위해 하루하루를 정말 더 할 수 없을 정도 열심히 살고 있다. 비록 지금은 초라한 모습을 하고 있더라도, 평범한 스물둘의 삶과 조금 다르다 해도 그것은 중요치 않았다. 나는 내 방식대로 내 청춘을 채워가기에 바쁜 것뿐이니까."

 

 아마 그녀와 비슷한 꿈을 갖고 있거나 상황에 처한 젊은이들에게 매우 큰 위안이 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맞다, 그녀는 목표가 있고 그 목표를 위해 지금 자신이 하지 못하는 경험들은 충분히 참을 수 있는 것들이고 그녀에게 중요치 않은 문제이다. 사람마다 가치있게 생각하는 인생의 경험은 다른 것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지금의 인생을 즐겨야 미래의 인생도 즐거울 수 있다는 사람이 있고, 미래의 인생을 즐기기 위해 지금은 조금 인내해야 한다는 사람도 있다. 모두가 크고 빛나는 목표를 위해 앞으로 나가지 않아도 된다. 각자의 방식대로 자신의 인생을 채워가면 된다. 어차피 자신의 인생에서 즐거움을 찾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다. 스스로 만족하는 삶을 살도록 하루를 보내면 그것으로 괜찮다.

 

 " "그럼 빈곤한 사람들은 어떻게 하니?" "그냥 죽죠." 순간 교실은 조용해졌다. 빈곤한 사람들은 그냥 죽는다는 그의 대답보다 모두를 놀라게 한 것은 그의 태도였다. 티 없는 얼굴로, 그것이 당연하다는 식으로 거리낌 없이 말하는 그의 태도에 일순간 모두 할 말을 잃었다. '너 같은 바보가 나중에 엘리트랍시고 돌아가서 정치한다고 나서대니까 너희 나라가 지금 그런 상황인 거다. 정치, 경제 공부하기 전에 법과 인권을 존중하는 법부터 배워라.' 그에게 쏘아붙여 주고 싶었다."

 

 그녀가 젊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바른 생각이 책 속에서 많이 나타난다. 그녀의 글을 읽고 있다보면 추진력이 강하고 젊고 똑부러진 모습이 연상된다. 사회보장제도에 대해 이야기하다 자신들의 나라에서는 비곤한 사람들은 그냥 죽는다고 답한 그루지야 청년에 대해 그녀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물론 그의 태도는 사람을 존중하는 마음에서 볼 때 꽤 화나고 이해안되는 모습이기도 하다. 그런데, 내 입장에서는 그가 저렇게 말하게 된 배경을 짐작해보며 동정적인 생각이 더 크게 든다. 당연하고 익숙한 일이라 잘못됨을 느끼지 못하는 그 나라의 환경이 씁쓸한 것이다. 마치 빵이 없다는 국민들을 향해 빵이 없으면 케익-또는 과자, 어쩌면 고기?-을 먹으라고 했다는 누군가의 천진함과도 닮아보인다.

 

 이 외에도 여행지에서 무례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의 나라가 비교적 정해져 있다는 것과 가죽 염색을 하는 사람들을 사진찍는 일에 대한 단상, 자신들의 지능이 낮다고 자기 민족을 비하하는 사람과 한 이야기, 외국인 여성에 대해 성적으로 지나치게 개방적인 태도를 취한 외국인 친구와의 에피소드 등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표현한 내용들이 많다. 그녀의 당당한 태도를 보면서 미래를 꿈꾸고 여행을 꿈꾸는 많은 젊은이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자신을 표현하려고 생각하게 된다면 좋을 것 같다. 그녀처럼 행동하고, 그녀처럼 살라는 것은 아니고, 그녀처럼 행동하는 사람도 있다고 알았으면 한다.

 

 "여행을 시작하는 순간부터, 나는 카메라를 손에서 놓은 적이 거의 없었다. 내 눈 앞의 어떤 장면도, 그 순간의 분위기와 감동을 잡고 싶어 연신 셔터를 눌러댔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나는 무언가를 남겨야겠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중요한 것을 잊고 있었다. 정말 남기고 싶은 것을 찍는다기보다는 무엇을 보아도 무조건 카메라를 들이대는 것이 숩관이 되었던 것이다."

 

 이 부분은 꽤 공감한 내용이다. '남는 건 사진 뿐'이라는 말도 있듯이 우리나라 사람들은 사진을 엄청, 정말 좋아한다. 외국, 아프리카나 남아메리카 같은 곳에서는 사진을 찍는다는 것이 그렇게 일반적인 일이 아니어서 사진을 찍는 것을 좋아할 수 있는데 매일같이 언제든지 사진을 찍을 수 있으면서 이렇게 지치지 않고 사진을 좋아하는 걸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사진을 엄청, 정말 좋아한다고 생각한다. 본인이 찍히는 건 싫은 사람들도 있겠지만 자신의 특별한, 또는 일상적인 겸험이라도 찍어서 남기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데 기대하던 것에 대해서는 특히 찍어서 남기자는 생각이 더 집요해져서 그것을 즐기는 것을 뒤로하고 사진에 더욱 집착하게 되는 경향이 있긴 하다. 주객이 전도된 상황인데 고치기 쉽지 않고 뒤늦게 깨닫고 아쉬워하는 때가 있다. 기대하고 있던 것은 사진으로 남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순간 그것을 즐기는 것에 충실해야 한다.

 

 그녀의 방황이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은 그녀의 방황이 무의미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목표의식이 분명하고, 자신의 미래를 구체적으로 현실화할 줄 아는 의지를 가졌다는 것이 그녀의 방황을 아름답게 만든다. 사실 그런 점 때문에 그녀가 방황이라 일컫는 그녀의 여행이, 방황이 아닌 여행으로 보이게도 만든다. 목표와 현실적 미래가 구축된 바탕 위의 떠남은 실제로는 방황이 아니다. 말 그대로 여행이 될 뿐이다. 목표도 의미도 없이, 현실성도 없이 그저 꿈만 꾸고 갈피를 못잡는 것이 방황이다. 방황은 아름답지 않다. 답답하고 자신이 작고 초라해지는 만큼 거칠어지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니 혹 누구라도 그녀만큼 아름다운 방황을 하려거든 꼭 자신을 갈고 닦은 다음에 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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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들면 버려야 할 판타지에 대하여
노라 에프런 지음, 김용언 옮김 / 반비 / 2012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노라 에프런'이라는 그녀의 이름을 들었을 때 그녀가 누구인지 바로 알아차릴 사람은 많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유명하지 않은 인물이라는 것은 아니다. 그녀의 이름보다 먼저 그녀가 쓴 영화들이 우리의 눈에 들어왔을 뿐이다. 그녀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유브 갓 메일',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줄리&줄리아' 등의 영화를 쓴 영화감독이자 작가이다. 이제 우리는 그녀를 안다. 그리고 그녀가 만들어 낸 작품들을 얼마나 좋아했는지, 또 얼마나 사랑스러웠는지도 다시 깨닫는다. 깜짝 놀랄 정도로 고령이 된 그녀가 '철들면 버려야 할 판타지에 대하여'말한다. 우리에게 철들어도 변치 않을 판타지를 심어주었으면서.

 

 "저녁 늦게 욕실 거울을 들여다보고 나서야 한 시간 반 동안 이빨에 시금치를 붙이고 돌아다녔다는 걸 깨닫고 나면 너무나 슬퍼진다. 위험 수위가 훨씬 더 높은 파슬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친구 중 아무도 그 사실을 지적할 만큼 나에게 관심이 없었다는 사실도 슬프다. 특히 이빨에 시금치가 붙어 있다는 걸 말해주는 건 너무나 쉬운 일이기 때문에 더욱 상처받게 된다. 그냥 "이빨에 시금치 붙었어요."라고 말해주면 그만인데."

 

 이런 대목을 읽다보면 그녀가 몇 살인지 잊고 만다. 1941년 생인 그녀가 마치 초등학교 다니는 꼬마 남자아이를 보이는 듯한 느낌이다. 한 시간 반 동안 시금치를 붙이고 다닌 자신을 보고 상처받는데, 왜냐면 그것을 말해주는게 사실 너무나 쉬운 일인데 아무도 그렇게 해주지 않아서라고 말하는 게 엉뚱하다. 성인의 관계에서는 그게 굉장이 미묘한 문제로 느껴지는 일 아닐까. 지적한다면 상대방이 민망해 할 것 같아서 말이다. 어쩌면 이런 부분이 문화의 차이일 수도 있겠다. 우리가 고춧가루를 위험하게 여기는 데 비해 파슬리를 걱정하는 문화의 차이가 있는 것처럼.

 

 "내 생각에 현대인의 삶에 있어 진정한 기적 중 하나는, 극장에 들어가 신용카드를 기계에 갖다 대면 미리 예매했던 바로 그 좌석의 표가 바로 내 앞으로 튀어나오는 순간이다. 이 기적이 일어날 때마다 매번 소리 지르고 싶다."

 

 이것도 좀 다른 부분인 것 같다. 신용카드를 기계에 읽혀 예매한 표를 찾는다는 방식은 처음 들어서 특이하게 생각됐다. 이 뒤로 바뀐 예매발권 방법에 대해 약간의 불만을 표하는 내용이 이어지는데, 우리나라 극장도 매번 달라지고 있는 모습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녀의 이런 '변화에 대한 불만족'에 공감했다. 그녀만큼의 나이는 아니어도 변하기 전 것에 더 애착이 가고 가슴이 뛴다고 생각하는 건 같다. 예전에는 극장에서 영화를 보면 표를 줬는데, 지금은 얇디 얇은 영수증으로 끊어져 나온다. 그건 극장이 주는 메리트에서 하나를 없애버린 것이다. 그날 본 영화와 그에 얽히게 된 추억, 그리고 남은 표. 이 표도 버려야 할 판타지가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테플론 제품을 제조해온 듀퐁사는 최근 미국환경보건국으로부터 165만 달러의 벌금 제출을 명령받았다. 아마 듀퐁사는 테플론이 건강에 유해한다는 사실을 쭉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참으로 미국적이고도 진부한 내용이다."

 

 환경과 사람에 좋지 않은 행위를 한 거대 기업이 사실은 그 유해함을 알고 있었으나 숨기고 있었고, 그것이 밝혀지자 기업이 숨기고 있던 비밀까지 폭로된다는 내용은 매번 이슈가 되면서도 사실은 꽤 흔한 뉴스다. 그녀가 그 점을 '미국적이고도 진부한 내용'으로 꼬집은 점이 재미있다. 그녀의 글을 읽다보면 거침없고 유쾌하다는 느낌이 든다. 이런 얘기를 언급해도 될까 싶을 정도로 솔직한 내용도 있다. 거기다 이런 얘기를 언급해도 될까 싶을 정도로 자질구레한 내용도 있다. 사실 버려야 할 판타지에 대한 내용은 없다. 버리지 못한 판타지가 그대로 묻어나고 판타지를 버릴 필요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책이다. 그녀처럼 유쾌하게 나이든다면 말이다.

 

 "하지만 진실은, 이런 종류의 로맨스가 끝장날 때에는 어떤 변명이든 늘어놓게 된다는 것이다. 세부사항들만 조금 다를 뿐 이런 이야기는 항상 똑같이 진행된다. 젊은 여성이 나이 든 여성을 우상화한다. 젊은 여성이 나이 든 여성을 따라다닌다. 나이 든 여성이 젊은 여성을 받아들여 준다. 젊은 여성은 나이 든 여성이 그저 인간에 불과했음을 깨닫는다. 이야기 끝. 젊은 여성이 작가라면, 언젠가 그 나이 든 여성에 대해 글을 쓰게 된다. 세월이 흐른다. 젊은 여성이 나이가 든다. 그리고 로맨스가 그렇게 끝장난 것에 대해서만큼은 사과하고 싶어지는 순간을 맞는다. 지금 쓰는 글을 바로 그런 종류의 사과문이다."

 

 한때 빛났던 사람의 빛을 바라보고 그 빛에 가깝게 다가가기 위해 노력한다. 자신이 젊게 빛나는 동안은 그 빛을 자랑스럽게 내뿜으며 한때 빛났던 자의 스러짐을 바라본다. 자신의 빛이 다 스러지고 나서야 나이든 자가 스러지고 난 빛의 여운을 남기고 있음이 얼마나 가치있는 일인지 깨닫게 된다. 하지만 그 사이에 세월이 흐르고 난 뒤에나 가능한 일이다. 영화 '은교'가 떠오른다. 소설은 아직 다 못 읽었기 때문에 영화부터 떠오른다. 나이 듦이 나이 든 자의 잘못으로 오는 것이 아니고 젊은 자의 젊음이 그들이 가진 특권이 아니라는 내용의 대사가 있었는데, 이 부분도 늙음이 오기 전의 젊음이 저지를 수 있는 착오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게다가 '은교'에서 스승과 제자 사이의 관계와도 비슷하다. 비록 제자가 먼저 죽어서 이런 사과문은 나올 수 없었겠지만. 누군가를 존경하고 동경한다는 건 그를 이상화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대상이 자신의 이상과 부합하는 인물이라면 좋겠지만 글쎄, 이상적인 인물 그대로 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존재할까. 우리는 종종 자신이 좋아하는 대상에 비현실적인 이미지를 부여하곤 하지 않는가. 냉정히 생각해보면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상대방을 자신보다 높게 보고 존경하고 동경하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하고 생각하곤 한다. 누군가를 자신이나 남보다 높게 생각한다는 것은 좋은 일이기도 하지만, 그로인해 대상에게 실망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는 좀 씁쓸한 일인 것 같다.

 

 "얼마 전 내 친구 그레이든 카터가 뉴욕에 레스토랑을 열겠다고 했다. 나는 그 계획에 대해 경고했다. 식당 경영이야말로 모두가 철들면서 버려야 하는 보편적인 판타지의 일종이라는게 내 지론이다. 그러지 않으면 식당이라는 무거운 짐을 떠안게 된다. 식당 경영에는 수많은 문제점이 따라붙는다. 주인 스스로 매일 거기서 식사를 해야 한다는 건 가장 사소한 문제에 불과하다. 식당을 열겠다는 판타지를 포기하는 것이야말로 심리학자 피아제의 인지 발달 단계의 최종 심급이다." 

 식당 경영에 대한 그녀의 생각이 너무나 재미있었다. 게다가 동의한다. 주위를 보면 특히 '카페'를 경영하고 싶어하는 자유로운 영혼들이 많다. 그래서 우리나라에 그렇게도 카페가 많은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하나같이 여유롭고, 알음알음으로 사람들이 찾아오는 깔끔하면서도 따뜻한 공간을 꿈꾼다. 그리고 그 안에서 인생을 느긋하게 커피향 맡으며 즐기는 주인이 되고 싶어한다. 그렇게 된다면 곧 경영부진으로 문을 닫게 될 것만 같다고 생각이 드는데, 어쨌든 그렇다. 그런데 이런 꿈을 꾸는 사람들이 미국에도 보편적으로 있다니. 그렇다면 이것이야말로 철들면 버려야 할 판타지 중 하나임은 분명하다. 피아제의 인지 발달 단계까지 들먹이지 않아도 말이다.

 

 노라 에프런의 책을 이제 막 다 읽었는데, 그녀는 약 일주일 전 죽었다. 이제 막 그녀의 영화 뿐 아니라 그녀도 사랑스럽게 여기기 시작했는데, 그 기분은 다 느끼기도 전에 애도를 해야할 순간부터 찾아왔다. 그녀에게 이빨에 붙은 시금치에 대해 미처 말해주지 않은 친구들도, 그녀를 몰라도 영화만은 좋아했던 수많은 사람들도 그녀의 죽음을 아쉬워했을 것이다. 그녀 식의 로맨틱 코미디 영화가 더이상 개봉되지 않는다는 것이 서운하다. 우린 철이 들었어도 아직도 많은 판타지를 그러안고 지내고 있고, 또 지내야만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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