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땀 소설향 앤솔러지 1
김화진 외 지음 / 작가정신 / 202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초록 땀]은 악마같은 소설이다. [초록 땀]을 읽기 시작하는 그 순간부터 독자의 평온은 깨어진다. 작가는 평범한 소설의 도입부인척 위장하여 숨을 쉬는 것, 침을 삼키는 것, 혀의 위치같이 그 전에는 의식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행하던 기능을 단번에 부자연스럽게 만드는데 성공한다. 의식하고 싶지 않은 모든 것을 귀신같이 골라내 숨 쉬고 침 삼키고 혀를 이리저리 굴리다가 책을 눈으로 읽는지 코로 읽는지 모르게 만든다. 이 부자연스러움은 반대로 책으로의 몰입을 유도한다. 읽다보면 다시 자연스럽게 숨쉬고 침을 삼키고 입안에 어정쩡하게 굳어있는 혀를 잊겠지 바라며, 읽는 것에 몰입하게 된다. 잊었던가? 

나만이 가진 작은 어떤 것을 담아두고 사는 모든 사람들은 아마 이 소설에 빠져들게 되지 않을까. 대체적으로 세상 사람 모두일테다. 책을 덮고 내 삶에 생겨나던 그 작은 것을 나는 누구와 은밀히 공유했을까 생각해본다. 어느 날 몰래 빠져나온 야자시간에 단짝친구의 옆얼굴에 속삭이던 때도 있었다. 술에 취했다는 핑계로 주정처럼 늘어놓던 때도, 퇴근하고 돌아와 입을 꾹 다물고 냉장고 안의 야채들을 잔뜩 꺼내 깍뚝 썰며 카레를 한솥 만들고 지쳐 잠들 때도, 그러려니 하고 창밖을 한 번 보고 하던 일이나 마저 하는 때도 생겨났다. 발각되거나, 조용히 말라 없어질 때까지 우리 모두 그저 혼자 품고 지내는걸까, 이 작은 것들을 우리 삶에서. 

이 작은 것들은 때로 조금 불편하고 때로는 조용히 잠못드는 더운 밤처럼 지긋지긋해도 그 이상으로 두드러지지 않는다. 잠을 잘못 잤는지 며칠 전부터 왼쪽 목 뒷부분이 뻐근하게 아팠다. 공교롭게도 이 책을 읽기 시작했을 무렵부터인데 근육통, 벌레 물린데, 어디든 좋대서 사온 그린오일을 발라보아도 싸한 냄새만 오래갈 뿐 목의 통증은 줄어들지 않았다.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거나 꺾을 때마다 급소를 눌린 것 같은 통증이 밀려와 고개를 젖혀 머리를 감을 때 조차도 멈칫거리기 일쑤였다. 이 통증은 남에게 발각되지도 않고 조용히 지금까지도 내 왼쪽 목에 붙어 있다. 남들에게 자연스럽지만 나에게만은 부자연스러운 것을 찬찬히 음미한다.  

" 그런데 나는 왜 여기에 있지? 70" [초록 땀]이 내부를 바라본다면 [나쁜 여행]은 외부를 훑는다. 관계 맺기의 어색함이 고스란히 드러난 글을 앞에두고 자신의 비겁함을 떠올리며 읽었다. 치앙마이 한달살기 같은 요소는 이제 지나치게 흔해서 시작을 조금 아쉽게 느꼈는데 읽을수록 불편함이 느껴지는 소설이어서 흥미롭기도 했다. [빛과 빗금]에서는 더 확장된 외부의 균열이 드러나는데, 지난 123 이후로 더욱 선명하게 그어진 선 앞에서 나도 불편해져서 그만 눈을 돌리고 싶은 내용이었다. 가까운 사람들 사이의 대립이 지나치게 날 것 같으면서도 이 조차 우회하고 싶어지는 현실감, 무력함 같은 것들이 느껴졌다. 남이 볼까 혹은 누구와 언쟁이라도 섞게될까 '초록 땀'을 재빠르게 훔쳐내는 것처럼 색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던 자신이 있다.

김사과의 소설은 외부에서 다시 내면으로 시선을 돌린다. '유행'이라서 유행인 것들 사이에서 유행을 따라하기도 이해하기도 포기하고 나니, 그럴 필요가 없는 나이가 되었다는 것을 실감했다. 유행을 받아들이고 좋아하는 일이 자연스러운 때에는 그것을 이해할 필요가 없었다. 그냥 그게 시선을 끌고 좋아서 저절로 그 흐름 속에 섞여들어간다. 더이상 유행이 좋아보이지 않아 왜라는 질문이 머리 속을 스치는 때가 되면 그건 그냥 그대로 좋아하는 사람들의 몫을 두어야 하는 때인 것이다. 물론 아직도 대체 그게 왜 좋을까 호기심에 넷플릭스에 들어가보곤 한다. 과연 어떤 것들은 좋고 어떤 것들은 좋아지지 않는다. 그게 나의 욕망을 자극하는 것이 맞을까, 요즘은 천천히 생각해보곤 한다. 그렇지않으면 타인의 욕망을 자신의 것으로 착각하고 살게 된다. 

얼마 전 집에 친구를 초대하면서 한가지 먼저 이야기해 둔 것이 있었다. 혹시 집에서 좋지 않은 냄새가 난다면 실례될까 염려말고 부디 말해달라는 것이었다. 후각은 익숙한 것에 둔해서 의외로 자신과 집에서 나는 냄새를 본인은 모르고 있는 경우가 있다. 벌써 개봉한지 5년이 넘은 영화 [기생충]에서 언급된 '집의 냄새', 그 날 것의 충격이 선명했는데 [이사]를 읽으며 나는 그 냄새를 떠올렸다. 아마 [이사]에서 냄새는 덮어두고 외면한 것에서 비롯된 것이었다면, 나의 냄새는 자신의 맨 얼굴과 같은 삶의 너절함이 숨겨지지 않고 드러나는 것으로 풍겨난다. 내 집에선 어떤 냄새가 날까 내가 느낄 수 없는 그 냄새를 맡아줄 사람을 찾았는데, 글쎄 그가 무슨 말을 했더라. 

'초록 땀'은 끊임없이 감각을 자극하는 독특한 주제가 인상적인 단편집이었다. 이 첫 시도가 독특해서 반가우면서 지나치게 예리하게 벼려져 때로는 불편함을 숨기지 못한 채 읽었다. 어떨 땐 빨리 마지막 장까지 달려가 금방 책을 덮고 싶었는데, "우리 삶의 방향과 소설이 향하는 곳을 함께 읽고 쓰고 그려나가고자"하는 이 시작부터 예사롭지 않으니 다음을 대체 누가 어떻게 풀어나갈까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금새 기다리게 된다. 읽는 동안 소진되는 감각들을 달래 줄 좋아하는 차, 마음에 드는 소품, 아껴 뿌리는 향수같이 자신만의 것들을 곁에 두고 읽으면 더 완벽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유무죄 세계의 사랑법 - 범죄 너머에서 발견한 인간에 대한 낙관
정명원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공소장의 세계에서 범죄사실의 다정한 도입부가 끝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없다. 관계에서 비롯되는 범죄들의 끝은 주로 관계의 파멸로 마무리된다. 그래서 첫 문장의 관계가 돈독할수록, 범죄는 잔혹하고 애잔하다. 17" 

텔레비전 프로그램 중 범죄수사와 관련된 내용을 담은 것들은 항상 인기가 많다. 어떤 사건에 이목을 집중시키기도 하고 보는 이로 하여금 경각심도 가지게 하며 사건을 해결하는 모습을 보며 사회 안전망에 대한 신뢰를 쌓고 죄를 지은 사람은 댓가를 치른다는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도 한다. 무엇보다 매체에서 접하는 사건들은 자극적이다. '유무죄 세계의 사랑법'에도 그런 요소들이 담겨있다. 거기에 인간미와 삶에 대한 사유를 한꼬집 더 첨가한 시선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알고싶다] [용감한 형사들] [궁금한 이야기] [사건반장] 같은 프로그램을 자주 챙겨보는 사람이라면 텔레비전을 왜 보나, '유무죄 세계의 사랑법' 읽으면 되는데. 

저자의 의도가 어느 부분에 더 중심이 맞춰져 있든, 읽으면서 솔직히 좀 웃겼다. [싸움의 기술 54] 같은 편에서 왜 남자들은 싸울 때 웃통을 벗는가에 대한 심도있는 고찰이 이루어지거나, 주민등록이 3으로 시작하는 피고인의 사건에 운을 떼면서 뒷자리 아니고 앞자리다. 42"하고 강조하는 부분에서는 웃음이 터졌다. 진짜 이상하고 상식에 맞지 않아 웃기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이런 사람들을 실제로 마주하면 웃기는 것을 넘어 공포스럽겠지만. 웃음이 지나는 길에는 눈물도 같이 흐른다. 얼마의 돈을 횡령했는가는 답하지 않아도 두부 만드는 과정은 설명하는 피의자(76)를 만나고, 우연히 이끌린 한 사건을 외면하거나 덮지 않고 10년을 고스란히 쏟아부어 마주한 선배 검사의 '쌩고생담'(129)을 소개한다. 웃다가 놀라다 바쁘게 읽다보면 어느 순간 마음이 따뜻해진다. 

" 공판검사는 세상의 끝으로 밀려나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맞은편에 서 있다. 거기에서 항변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본다. 세상의 질서에 어긋나는 행위를 했다고 기소된 사람들의 자백하거나 후회하거나 항변하거나 회피하는 얼굴을 탐구하는 방식으로 세상을 인식한다. 층층의 지층 속에서 지구의 역사를 읽는 지질학자처럼 인간의 사랑과 욕망과 감정의 역사들을 읽는다. 120" 

1부의 내용이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사건들로 이루어져 있다면 2부는 좀 더 감성적인 터치가 들어간다. 1부에서 느꼈던 자극이 줄어들어 좀 심심해지나 싶을 때 '덜 녹아든 소금 입자가 팍 터지는 슈팅스타 볶음밥(179)'처럼 진솔한 삶의 매력이 마음에 울림을 준다. 3부는 저자의 삶에서 주변으로 시선이 이동한다. 읽다보면 상주에는 다 이렇게 사람 마음을 들었다놓는 '심쿵요정(233)'들만 있나 싶어 상주에 가보고 싶어진다. 10월 말이면 요양원에 누워있던 노인마저 동원되어 곶감 만드는 일에 진심(242)이 되고, 사건 이름 마저도 어떻게 '노루궁뎅이버섯 사기 사건(253)'인, 상주 홍보나 다름없는 내용을 읽다보면 언젠가 중앙시장에 가서 남천식당 우거지국밥을 먹으리라, 후식으로는 징검다리를 건너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시겠노라고 특별히 밑줄을 그어두게 된다. 해외여행 너무 먼데 상주엘 가야지, 가서 긴 천을 따라 걸으며 곶감 맛을 봐야지 다짐해본다. 

검사라는 직업이라고 하면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천하무적으로 사건을 해결하거나 악의 세력과 결탁하여 타락하는 뭔가 보통과는 거리가 있는 삶을 살 것 같은 느낌이었는데, 장화를 새로 사면 전문가인 엄마의 평을 기다리기는 애송이 구매자(278)이기도 하고, '암흑 같은 상사(163)' 때문에 할말은 많지만 하지 않기도 하는, 후배 앞에서 '비주류(168)'라서 쪽팔리기도 한, 춤에 너무 진심(197)이라 읽는 사람이 어쩐지 민망해지는, 회식 자리에서 술 따르느냐 마느냐로 무려 2부에 걸친 고민(그 시절, 우리가 술잔에 담았던 것들1,2)을 하는 어디서 본 것 같은 비슷한 시간을 보내는구나 싶기도 했다. 다만 하나 궁금한 것은 저자에게 고등어란 무엇인가. 고등어 삼촌(61)부터 진술을 고등어 뒤집듯(102)할 때, 고등어 대신 문어가 등장했어야 더 맞지 않겠는가. 그랬더라면 문어론이 존재론적 반론에 부딪쳤던 과거(151)도 위로가 되었을텐데 싶었다! 

" 인간의 법정이 내어줄 수 있는 답은 유죄 아니면 무죄이지만, 그것으로는 다 담지 못하는 거대한 생이 있다는 사실 앞에 우리는 자주 좌절한다. 122" 

날이 더워 차가운 물을 틀어두고 얼굴을 닦다 잠시 멈췄다. 수도의 방향을 가장 차가운 방향으로 돌려둔 것이 무색하게 물은 차갑다기 보다 시원했다. 겨울에 틀어두었던 차가운 물을 떠올려보면 너무도 다르다. 같은 물을 계절에 따라 다르게 느끼는 것인지, 어떤 차가움은 주체에 따라 다르게 여겨지는 것인지. 마침 읽고 있던 '유무죄 세계의 사랑법'을 생각했다. 어떤 사건도 이 물처럼 상황이나 사람에 따라 다르게 읽힐 수도 있을 것이고, 차가우리라 예상했던 물이 그렇지 못했던 것처럼 생각과는 다를 수도 있을테다. 이 차가움을 내 예상보다 더하거나 덜하다고 속단하거나 불평하지 않는 사람으로 계절을 보내야겠단 생각을 했다. 내 나름의 사랑법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몸, 스펙터클, 민주주의 - 새로운 광장을 위한 사회학
김정환 지음 / 창비 / 202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요즘같은 때 무슨 계엄이야, 하는 말이 곧잘 들려왔다. 교과서나 영화같은 미디어에서 보던 계엄을 21세기를 살고 있는 현대인 MZ세대들이 직접 경험하리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물론 한쪽에서는 그들이 그런 짓을 저지르리라는 예상을 했던 근거도 있었지만, 더욱이 극우화가 가속화 되어가는 국제 정세를 보면 그만큼 무도한 자들이 또 나오지 않으리란 법도 없지만. 어느 한가로운 밤 텔레비전 아무 프로그램이나 틀어둔 화면 아래 계엄을 선포했다는 속보를 발견하는 당혹과 급격히 돌아가는 상황이 실시간으로 전해지는 새벽은 여전히 충격을 준다.  

 "마치 극장에서 작품을 관람하는 관객이 그러하듯 공통의 스펙터클을 바라보면서 역사에 대한 특정한 감각을 배양한다. 119"는 내용처럼 123 이전까지의 계엄과 독재같은 단어들은 20세기와 21세기를 나누는 세기적인, 마치 영상물을 보듯 혹은 인쇄된 단어로 존재하는 차원의, 바다와 국경을 넘어 구역이 나눠진, 거리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123의 현장은 그 거리감이 순식간에 시간과 차원, 구역을 좁혀 실제가 되어 중계되었다. 속보와 갖은 중계를 실시간으로 확인하면서 느껴지는 혼란과 분노, 어지러움은 장갑차 앞을 홀로 막아선 한 시민의 뒷모습과 함께 인간이 '언제든 두부처럼 썰릴 수 있다는 폭력 앞에 놓여진(113)' 과거를 소환했다. 

 처음엔 어려울까봐 책을 앞에 두고 고민했다면 읽는 동안에는 마주하기가 어려워 시간이 굉장히 오래 걸렸다. 초반 도입부를 정립해나가는 시간이 필요하기도 했지만 광주의 참상을 반복적으로 게시하고 있는 텍스트 사이에서 참담, 분노, 슬픔의 감각을 넘어선 실제적 고통을 느끼는 경험을 동반했기 때문이다. 다양한 경로로 민주화 운동과 관련된 증거 자료와 영상물, 창작물 등을 접해왔지만 '몸, 스펙터클, 민주주의'에서 민의 몸으로 다시금 증언된 과거의 폭력 앞에서 현기증과도 같은 구토감이 밀려왔다. 더 솔직하자면 어떤 증언들은 더 읽어내지 못했다. 

 책의 인상적이었던 내용 중 하나는 과거에는 정보를 외부로부터 고립시켜 그들의 입맛대로 이용해왔다면 123의 순간들은 SNS로 실시간 공유되어 민의 연대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24년 12월 21일 남태령 고개에서 고립된 농민들의 곁으로 2030 여성들이 향했던 일명 '남태령의 기적'에서 폭력과 강제 연행없이 행진이 재개될 수 있었던 경험은 처음이었다는 농민들의 고백이 있었다. 과거의 진압이 고립 안에서 대상을 향한 의도된 '전시(66)'로 은밀히 폭력을 사용해왔던 반면, 수백의 지지와 수천의 도움, 수만의 관심 아래 정보의 흐름이 있었다는 점이다. 

 123 이후의 시간동안 거리로 나온 시민들과 자신의 주머니를 털어 이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전달한 시민들의 움직임은 " 6월항쟁에서도 물품과 식량의 공유는 결집한 민의 활력을 북돋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명동성당 인근에 위치한 계성여고의 학생들은 도시락을 걷어서 농성단으로 가져왔고, 근처의 빌딩에서는 빵, 우유, 속옷, 현금 등을 전해 주었다. 286" 는 과거와 일치한다. " 죽음을 목격한 민이 슬픔과 공포의 정서 속에서 몸이 굳고 위축되었다면, 거리로 나와 한곳으로 향해 가는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함께 동원의 흐름을 만들어내는 민은 희망과 확신, 환희, 등 기쁨의 정서 속에서 활동력이 증대된다. 259" 이는 음악과 응원봉이 함께한 거리에서 우리가 발견한 것들과 같다. 

 지금의 '정보'는 이처럼 중요한 구심점이 되는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혐오와 갈등을 퍼뜨려 세대와 성별, 외부(미중)로 시선 돌리기에도 이용되고 있다. 80년대의 시선 돌리기가 컬러화면의 등장과 에로티시즘(125)으로 말초적 감각을 자극하는 방법을 사용했다면 2000년대의 시선 돌리기는 시각보다 더 원초적인 자극을 도구로 한다. 이 갈등은 대학이라는 공간의 변질로도 이어진다. MB정부에서 키워낸 일베키즈들에게 과거의 정보와 정치는 조롱과 굴절된 분노를 표출할 재미, 자극요소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저항의 공간을 대학에서 거리와 인터넷(128)으로 변화 시키는 역할도 한다. 

 다른 하나는 토머스 제퍼슨의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63)'는 말처럼 과거부터 민주주의가 위기의 순간에 다시 회복되는 과정에서 항상 민의 죽음, 희생이 그 계기가 되어 왔다는 것이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폭군이나 독재자가 아니라 그 반대편에 선 이들, 특히 수많은 민의 몸에서 흘러나온 피를 흡수하며 무럭무럭 자랐다. 64" 여전히 탄핵된 대통령을 부모로 부르는 집단과 이 균열을 이용해 갈등과 혐오를 조장하는 세력이 존재하지만, 계속될 재판을 통해 수감번호 3617이 그 댓가를 치룰 차례가 왔음을 보여주길 희망한다.  

 책속에서 과거 광주의 자료를 마주하며 민주주의를 빚진 부채감이 송곳처럼 불거졌다. 그러나 지역에 대한 차별과 비하, 조롱이 이어지는 무도함은 여전하다. 불균형과 외면, 기만은 어디에서 오는가. 갈등과 혐오를 경계해야 함을 말하면서도 민주주의를 기만하는 자들 역시 그 볕과 그늘 아래에 있다는 것이 아쉽게 느껴지도록 마음이 좁아졌음을 느꼈다. 책을 읽는 동안 카페에 간 적이 있는데 그 공간 안에 이어폰 없이 핸드폰으로 영상을 보는 사람이 있었다. 그가 보던 영상의 내용은 123 주체자인 수감번호 3617을 옹호하는 내용이었다. 한 공간 안에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이 각자의 매개체로 세상과 사건을 돌아보고 있는 동안 저자가 던진 질문을 다시 찾아보았다. 

 " 민주주의를 마지막 순간에 지켜내는 것이 아니라 무너지지 않도록 미리미리 고치고 수선해나갈 수는 없는 것인가? 박근혜와 윤석열을 탄핵시키는 것이 아니라, 뽑지 않을 수는 없던 것일까? 329" 그 카페 안에서의 시간은 질문에 대한 답이 됨과 동시에, 그와 한 공간에 있는 불편함과 블랙유머나 다름 없는 아이러니를 곱씹는 동안 " 민주주의를 지향하고 지지하는, 민주시민이라 생각해왔던 나는 과연 어떤 민주주의를 만들어온 어떤 종류의 민이었던가? 그런 나는 과연 지금과는 다른 존재가 되어 다른 민주주의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인가? 53" 하는 물음에 대한 성찰의 계기가 되어 주었다. 논문에 뿌리를 둔 내용이라 다소 읽기 까다로울지 모르나 123의 시간을 함께 보내온 사람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떤 예술은 사라지지 않는다 윤혜정의 예술 3부작
윤혜정 지음 / 을유문화사 / 202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목만으로도 마음을 송두리째 빼앗아버린 '어떤 예술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그 존재만으로도 이틀의 시간을 방황하도록 만들었다. 좋아한다는 것과 사랑한다는 것의 간극에는 대상을 얼마나 이해하는가 역시 포함되어 있기에, 그저 좋아하는 마음으로 예술의 주위를 맴도는 이 헛된 움직임조차 때로는 버거운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저 너머에서 건네오는 초록의 불빛, '독자는 오직 저 초록색 불빛만을 믿*'고 책장의 이편에서 끝을 향해 나아가게 된다. 

 책을 읽는 동안 그동안 짧게 접했던 다양한 작품과 전시를 떠올려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는데, 다리 한 쪽을 염색한 개 '휴먼'에 대한 내용(312)에 이르렀을때 비슷한 작품을 본 기억이 어렴풋 떠올랐다. 어디서 봤는지 누구의 작품인지는 전혀 생각이 나질 않는데 다리 한쪽을 선명한 분홍색으로 염색한 개의 사진만이 기억 속에 강렬했다. 심지어 다리 염색을 비건 염료로 했다는 tmi도 생각이 났는데 다른 정보가 안 떠올라 한참을 찾았는데 찾고보니 기억하고 있던 그 사진이 바로 피에르 위그의 이 전시였다. 위그를 놓고 위그를 몰라봐서 헤매다니, 아마 이제는 못 잊지 않을까 싶어 우스우면서 씁쓸했다.** 

 " VR 헤드셋을 낀 사람이 천천히 움직이며 한창 어딘가를 '탐험 중'이었는데, 그/그녀를 바라보며 순서를 기다리는 다른 관람객들이 사뭇 흥미로운 구도를 형성하고 있었다. 이 대비되는 상태에 놓인 관람객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도 이 공간을 일종의 무대로 탈바꿈시킨다. 관람객이 의도치 않게 돌연 퍼포머가 되거나 퍼포머를 구경하는 또 다른 관람객으로 변신하는 형국이다. 37" 

 이 부분에서 [갤러리옳]에서 진행되었던 '멍미전(06.24~07.25)'이 떠올랐다. 관람객이 그림 앞에서 일정 시간동안 '멍을 때리는 챌린지'가 진행되는데 그 자체가 하나의 작품으로 이어지는 체험을 할 수 있다. 실제로 전시장의 작품 앞에는 수많은 멍 챌린지를 위한 장소가 놓여져있고, 이에 참여한 사람들의 모습도 전시 소개에서 함께 확인해 볼 수 있다. 이들의 뒷모습은 마치 '리히터의 작품을 바라보는 관람객[6 인생 전시 중]'의 모습 같다. VR을 통한 차원의 변화와 같은 분리도 없이 아무것도 하지 않음, 심지어 어느 순간에는 감상조차 배제되는 순간에 이 행위는 자연스럽게 그 의미를 전달받은 작품이 된다. 

 스티브 맥퀸의 <베이스> 2024. 비아 비컨 전시의 공간(184-186)은 경주에서 찾았던 작은 체험 공간***을 떠올리게 했다. 좁은 공간에  미디어 폴이 몇 개 세워져 있는데 여러 불빛들이 점멸하는 어둡고 화려한 방에 방문객의 얼굴이 여러 이미지로 나타났다 사라진다. "빛의 잔상과 소리의 잔향을 공감각적으로 담아내는 초현실적인 공간, 그 안에서 완전히 젖어 드는 관람객은 회화이기도 하고 조각이기도 한 <베이스>를 몰입형 설치 작품으로 격상시키는 존재가 된다. 183"는 의도가 그 안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는 것이 아니었나. " "어떻게 아닐 수 있겠어요?" 192" 

 " 반투명한 점을 온전히 렌즈로 인식하기 위해서는 최대한 작품에 다가가야 한다. 반면 작품과의 거리가 지나치게 가까울 경우에는 각각의 점만 눈에 들어올 뿐 외려 전반적인 형태를 알아보기가 힘들어진다. 그림과의 최적의 거리를 찾기 위해 나는 계속 앞뒤로 몸을 옮겨야 했다. 의미 있는 지각은 인간의 여러 자극을 하나로 엮어 내는 능력을 통해 발생한다고 했던가. 나와 작품, 그리고 전시장에 부재한 작가와 물리적. 심리적으로 적정한 거리감을 찾아내는 과정에서 관람객들은 '적극적 주체'가 되는데, 애초에 작가가 면밀히 의도한 것처럼 모든 과정이 자발적으로 자연스럽게 진행된다. 369" 

 다르지만 같은 것처럼 느껴져 신선했던 대목이다. 처음 다니엘 보이드의 그림을 보았을때 화폭 가득히 찍힌 점들을 보고 떠오르는 이가 있었다. 보이드가 영감을 받은 글리상의 '불투명할 권리'에 대해서 곱씹으며 한 번 더 다리안 메데로스의 극사실주의 그림들을 연상했다. 예술에 대해 아는 것이 없음에도 메데로스의 그림을 떠올린 데에는 잊히지 않는 독특함이 있기 때문이다. 보이드의 점은 렌즈가 되지만 메데로스의 그림은 우리가 뽁뽁이로 부르는 투명한 비닐포장에 덮여 있는 시각적 장애가 된다. 하지만 이 불투명함은 마찬가지로 관객과 작품 사이의 거리감을 만들어주며 의미를 던진다.    

 컬렉팅(4 소유하고 공유하고 사랑하라 130)에 대한 이야기는 스스로의 경험으로는 알 수 없는, 새로운 세계를 향한 문틈 같았다. 아인스타인 부부의 이야기 중 '어떤 작품이 좋은지 알고 싶다면 매우 좋은 걸 선택해서 그 옆에 두어 봐라 (137)'는 조언을 예술의 어법을 모르는 나는 가까스로 이어붙인 미식의 단어로 이 낯선 외국어를 번역한다. 왜 예술인가 묻는 작품, 좋아할 확신이 서지 않는 작품, 그렇기때문에 봐야 한다고 독려하는 작품을 구입하라는 조언 앞에서 지인의 말이 떠올랐다. 미슐랭 스타를 받은 한 레스토랑에 대한 아쉬움으로 모두가 좋아할만한 맛을 냈다고 한 적 있는데, 불편함이 없는, 익숙함을 뛰어넘지 못하는 접시를 내왔다는 평이 바로 이것이구나,싶었다. 

 " 작가 부재를 증명하는 가장 강력한 단서이자 상상 여행의 주인공 노릇을 하는 가짜 얼굴은 실로 기묘했다. 이상야릇한 이런 느낌을 두고 흔히들 '언캐니uncanny'라 한다. '언캐니'의 독일어인 'unheimlich'는 '내 집이지만 어딘가 친숙하지 않은 데에서 오는 기이함'의 의미가 전제되어 있다. 그의 가면이 정확히 '언캐니'의 느낌을 자아내는 것 역시 나(작가)임에도 불구하고 내(작가)가 아닌 낯섦 때문이다. 30" 

 언젠가 친구가 긴 여행을 다녀오며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낯선 곳에서 잠을 청하는 날이 많아지니까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했었는데, 집에 돌아와 내 방 침대에 누웠는데도 자꾸만 집에 가고 싶었'단다. 이미 집에 있는데 마음은 자꾸만 집에 가고 싶어 수런수런했다는 말을 들으며 이상하게 내 마음도 불안해지는 기분이 들었는데, 그 기분을 표현하는 단어가 독일어에 있었다. 독일어에는 세상 모든 표현에 대한 단어가 있다고 하던데 과연, 싶으면서 그 막막한 기분에도 이름이 있다는 사실을 그가 안다면 조금은 위안이 될 수 있을까 궁금했다. 

 "길가에 버려진 녹슨 병뚜껑에서조차 누구든 어느 순간 가슴이 뭉클한 보임이 있을 때가 있다. 108"는 이우환의 문장에서 오래 전 과거를 떠올린다. 어린 나의 오빠를 위해 특별하고 깨끗한 병뚜껑을 발견하면 기뻐했던 더 어렸던 나, 어쩌다 유리구슬 몇 알을 얻게 되면 자랑스레 오빠의 구슬통에 더해 넣었던 나. '한 가지에 나고 가는 곳 모름****'을 무상히 읊던 싯구와 함께 지금 현재의 우리들이 지나온 시간이 함께 떠오른다. "누군가에게 예술은 삶의 사소하지만 결정적인 단편이 된다 125"는 말처럼 '어떤 예술은 사라지지 않는다' 안에서 삶을 더불어 음미할 수 있는 순간들이 참 좋았다.   

 " 이제는 여름을 좋아하지 않을 도리가 없습니다. 습하고 무더운 바람을 싫어할 수가 없습니다. 내게 여름은 어떤 경험과 기억을 통해 완연하게 다른 계절이 되었습니다. 어디선가 여름 바람이 훅 하고 불어오는 날, 여러분도 이 책을 통해 한 번도 가닿지 않은 낯선 그곳에 잠시나마 다녀오시길 청합니다. 혹여 거기서 내내 사라지지 않는 무언가를 만난다면 짧은 소식이라도 전해 주십시오. 언제 들어도 몹시 좋을 겁니다. 예술의 자리에서 기쁜 마음으로 기다리겠습니다. 14" 

 수많은 공간들을 오가는 동안 멀고, 유명하고, 내밀한 공간들 사이에서 시차같은, 미술관 피로(60)같은 압박, 유리됨을 느낄 때도 있었다. 글에서 전달되는 특유의 현장감도 좋았지만 어쩐지 닿을 수 없는 세계에서 부유하고 있나 싶은 느낌이 들 때, 서울 명동의 한 영화관이나 익숙한 카드회사의 이름, 의정부 미술도서관 같은 익숙한 지명들이 현실로 붙잡아왔다. 닿을 수 있는 곳들이 있고 그 공간 안으로 직접 찾아들어갈 수 있다는 점이 독자를 관객으로 변화시킨다. 

 덕분에 책을 읽는 동안 새로운 전시를 몇군데 살펴보고 마음에 드는 곳-'칸딘스키 같은 진짜 예술품을 보러(255)' 가는 한계 안에 머물러 있지만-은 표를 예매해두었다. 가는 길, 그날의 날씨와 계절의 풍경마저 감상을 위한 도입부로 열어두었던 '어떤 예술은 사라지지 않는다'를 읽으며 흘러가는 마음을 막을 수가 없었다. 가서 마주해야 한다는 열망과 저자의 다정한 독려가 어우러져 발자국이 되었다. 그 앞에 서서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걸음을 옮긴다해도 영혼과 내면에 스쳐갈 티끌을 말하는 흐릿한 부추김을 타인에게도 전달하고 싶어졌다. 이 책도 좀 읽어보세요. 

 풀 한 포기의 생을 앗아가는 일도 버거워 화분 하나조차 들이지 않는 실용주의적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어떤 예술은 사라지지 않는다'를 읽으며 우리 삶의 아름답고 무용한 것들에 시대를 초월하는 영원함에 더 많은 곁을 내어주어도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찰나의 생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예술적인 하루가 되길.


* 위대한 개츠비 - 스콧 피츠제럴드
** 피에르 위그 '휴먼'의 영상과 전시에 대한 정보는 @artiel.art 인스타그램 계정에서 볼 수 있다. 
*** 경주 감포 송대말등대 빛체험전시관
**** 제망매가 <삼국유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꽃길 따라 열두 달 여행 - 사진작가 위드선샤인이 추천하는 국내 여행지 90
박선영(위드선샤인) 지음, 박선영(위드선샤인) 글.사진 / 푸른향기 / 2025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이를 먹을수록 꽃과 자연이 좋아진다. 왜 이런 변화가 생기는지 모르겠지만 사진첩에 하나둘 늘어가는 꽃사진을 보며 실감한다. 또 하나 주말이면 가까운 어디론가 나들이를 다녀오고 싶어진다. 번화가로 나가 늦은 밤까지 시간을 보내곤 했는데 언젠가부터 주변이 트인 강이나 바다를 찾거나 산에도 가본다. 봄에는 꽃이 폈다고, 여름엔 날이 더워서, 가을엔 단풍이 들고 겨울엔 눈이 내려서 자연을 찾게 된다. 이럴 때 마침 '꽃길 따라 열두 달 여행'이 반갑게 나타났다. 아직 우리나라 구석구석 어디를 언제가면 좋을지 잘 모르는 초보 여행자에게 희소식이었다. 

 책에서는 열두 달 동안 계절의 변화와 함께 국내에서 찾아가 볼 만한 아름답고 특별한 여행지 90곳을 소개하고 있다. 여행을 기념할 수 있는 사진은 필수인데 '꽃길 따라 열두 달 여행'을 따라찍기만 해봐도 제법 멋진 추억을 남길 수 있을 것 같다. 소개된 곳들 중 내가 가본 곳이 있을까 헤아려보는데 생각보다 많지 않다. 가본 적이 있는 곳들도 다른 계절 다른 풍경을 보게 되니 낯설었다. 한번 다녀왔다고 해서 그 장소를 알게 된 것은 아니구나 싶었다. 우리나라에 이렇게 예쁘고 좋은 곳이 많구나 또 깨닫는다. 

 읽다보면 짧게 곁들여진 글을 읽는데 집중하기보다는 계절과 자신을 눈여겨보면서 어디를 가보면 좋을까 세세히 살펴보는데에 눈이 더  바쁘다. 의외의 장소들도 만난다. '충남 당진 합도초등학교 127'에 가득히 늘어진 등나무꽃의 청량한 빛은 어쩐지 동심과 어울렸다. 다음 봄에 가보고싶었지만 꽃을 보고 사진을 찍고 싶다고 초등학교에 함부러 들어가도 되나 싶기도 했다. '경기 시흥 관곡지 211'의 연꽃은 때마침 7월에 가까운 거리이기도 하니 주말에 나들이 다녀와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사진작가인 저자가 책 안에 담아낸 사진들을 보다보면 국내 여행이나 집밖으로 나가는 것에 별로 관심이 없던 사람이어도 분명 눈길이 가는 장소가 생길 것이다. 장소와 계절에 따라 어찌나 분위기에 잘 어울리는 옷차림까지 갖추고 예쁘게 사진을 찍었는지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든다. 특히 가을에 친구들과 함께 "경북 경주 대릉원 312"에서 찍은 사진들은 가을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담아낸 듯해 인상적이었다. 커다란 은행잎 사진(경기 여주 강천섬 300)도 보는 재미가 있었다. 

 특별한 순간이나 일상에서도 사진을 종종 찍지만 가끔은 사진으로 남기는 것에 너무 매몰된 것은 아닐까 싶어질 때도 있다. 오늘은 옷을 대충 입어서, 얼굴이 피곤해보여서 같은 이유로 사진을 안찍을 때도 있고. 그런데 '꽃길 따라 열두 달 여행'을 살펴보다보니 순간을 더욱 특별한 기억으로 남겨둘 수 있는 가깝고 쉬운 수단 중 하나가 사진 아닐까 싶다. 우리가 늘 가지고 다니는 핸드폰에도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기능이 충분히 있으니 조금만 더 신경 쓴다면 이렇게 멋진 추억으로 남길 수 있겠구나 싶어졌다. 

 표지의 수선화(충남 예산 추사고택 100)를 바라보다 문득 서산(충남 서산 유기방가옥 104)에 갔던 날이 떠올랐다. 서산은 그리 멀지 않아 사람들이 많이 간다던 소문을 듣고 찾아갔었는데 주차장부터 어쩐지 한적해 뭔가 이상하더라니 이미 끝물이라 방문객이 줄어든 시기였다. 그리하여 꽃도 사람도 적은 한적한 수선화 군락지였던 산책로를 돌아보니 조금은 섭섭했지만 그 자체가 추억이 된 여행이었다. 

 저자처럼 예쁘게 차려입고 꽃이 만발한 멋진 장소에서 사진을 남겼어도 좋았겠지만 그렇지 못했어도 떠남은 어떤 형태로든 남아 간직된다. 그 점을 다시 확인할 수 있어서 좋았다. 물론 이제 '꽃길 따라 열두 달 여행'을 손에 들고 다시 멋진 여행을 도전해볼 수 있어서 더 좋을 것이다. 책 말미에 더 많은 장소들을 함께 소개하고 있으니 가까운 곳, 더 궁금한 곳들을 잘 살펴보고 모든 계절을 꽃으로 채워보아도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