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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예술은 사라지지 않는다 ㅣ 윤혜정의 예술 3부작
윤혜정 지음 / 을유문화사 / 2025년 6월
평점 :
제목만으로도 마음을 송두리째 빼앗아버린 '어떤 예술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그 존재만으로도 이틀의 시간을 방황하도록 만들었다. 좋아한다는 것과 사랑한다는 것의 간극에는 대상을 얼마나 이해하는가 역시 포함되어 있기에, 그저 좋아하는 마음으로 예술의 주위를 맴도는 이 헛된 움직임조차 때로는 버거운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저 너머에서 건네오는 초록의 불빛, '독자는 오직 저 초록색 불빛만을 믿*'고 책장의 이편에서 끝을 향해 나아가게 된다.
책을 읽는 동안 그동안 짧게 접했던 다양한 작품과 전시를 떠올려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는데, 다리 한 쪽을 염색한 개 '휴먼'에 대한 내용(312)에 이르렀을때 비슷한 작품을 본 기억이 어렴풋 떠올랐다. 어디서 봤는지 누구의 작품인지는 전혀 생각이 나질 않는데 다리 한쪽을 선명한 분홍색으로 염색한 개의 사진만이 기억 속에 강렬했다. 심지어 다리 염색을 비건 염료로 했다는 tmi도 생각이 났는데 다른 정보가 안 떠올라 한참을 찾았는데 찾고보니 기억하고 있던 그 사진이 바로 피에르 위그의 이 전시였다. 위그를 놓고 위그를 몰라봐서 헤매다니, 아마 이제는 못 잊지 않을까 싶어 우스우면서 씁쓸했다.**
" VR 헤드셋을 낀 사람이 천천히 움직이며 한창 어딘가를 '탐험 중'이었는데, 그/그녀를 바라보며 순서를 기다리는 다른 관람객들이 사뭇 흥미로운 구도를 형성하고 있었다. 이 대비되는 상태에 놓인 관람객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도 이 공간을 일종의 무대로 탈바꿈시킨다. 관람객이 의도치 않게 돌연 퍼포머가 되거나 퍼포머를 구경하는 또 다른 관람객으로 변신하는 형국이다. 37"
이 부분에서 [갤러리옳]에서 진행되었던 '멍미전(06.24~07.25)'이 떠올랐다. 관람객이 그림 앞에서 일정 시간동안 '멍을 때리는 챌린지'가 진행되는데 그 자체가 하나의 작품으로 이어지는 체험을 할 수 있다. 실제로 전시장의 작품 앞에는 수많은 멍 챌린지를 위한 장소가 놓여져있고, 이에 참여한 사람들의 모습도 전시 소개에서 함께 확인해 볼 수 있다. 이들의 뒷모습은 마치 '리히터의 작품을 바라보는 관람객[6 인생 전시 중]'의 모습 같다. VR을 통한 차원의 변화와 같은 분리도 없이 아무것도 하지 않음, 심지어 어느 순간에는 감상조차 배제되는 순간에 이 행위는 자연스럽게 그 의미를 전달받은 작품이 된다.
스티브 맥퀸의 <베이스> 2024. 비아 비컨 전시의 공간(184-186)은 경주에서 찾았던 작은 체험 공간***을 떠올리게 했다. 좁은 공간에 미디어 폴이 몇 개 세워져 있는데 여러 불빛들이 점멸하는 어둡고 화려한 방에 방문객의 얼굴이 여러 이미지로 나타났다 사라진다. "빛의 잔상과 소리의 잔향을 공감각적으로 담아내는 초현실적인 공간, 그 안에서 완전히 젖어 드는 관람객은 회화이기도 하고 조각이기도 한 <베이스>를 몰입형 설치 작품으로 격상시키는 존재가 된다. 183"는 의도가 그 안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는 것이 아니었나. " "어떻게 아닐 수 있겠어요?" 192"
" 반투명한 점을 온전히 렌즈로 인식하기 위해서는 최대한 작품에 다가가야 한다. 반면 작품과의 거리가 지나치게 가까울 경우에는 각각의 점만 눈에 들어올 뿐 외려 전반적인 형태를 알아보기가 힘들어진다. 그림과의 최적의 거리를 찾기 위해 나는 계속 앞뒤로 몸을 옮겨야 했다. 의미 있는 지각은 인간의 여러 자극을 하나로 엮어 내는 능력을 통해 발생한다고 했던가. 나와 작품, 그리고 전시장에 부재한 작가와 물리적. 심리적으로 적정한 거리감을 찾아내는 과정에서 관람객들은 '적극적 주체'가 되는데, 애초에 작가가 면밀히 의도한 것처럼 모든 과정이 자발적으로 자연스럽게 진행된다. 369"
다르지만 같은 것처럼 느껴져 신선했던 대목이다. 처음 다니엘 보이드의 그림을 보았을때 화폭 가득히 찍힌 점들을 보고 떠오르는 이가 있었다. 보이드가 영감을 받은 글리상의 '불투명할 권리'에 대해서 곱씹으며 한 번 더 다리안 메데로스의 극사실주의 그림들을 연상했다. 예술에 대해 아는 것이 없음에도 메데로스의 그림을 떠올린 데에는 잊히지 않는 독특함이 있기 때문이다. 보이드의 점은 렌즈가 되지만 메데로스의 그림은 우리가 뽁뽁이로 부르는 투명한 비닐포장에 덮여 있는 시각적 장애가 된다. 하지만 이 불투명함은 마찬가지로 관객과 작품 사이의 거리감을 만들어주며 의미를 던진다.
컬렉팅(4 소유하고 공유하고 사랑하라 130)에 대한 이야기는 스스로의 경험으로는 알 수 없는, 새로운 세계를 향한 문틈 같았다. 아인스타인 부부의 이야기 중 '어떤 작품이 좋은지 알고 싶다면 매우 좋은 걸 선택해서 그 옆에 두어 봐라 (137)'는 조언을 예술의 어법을 모르는 나는 가까스로 이어붙인 미식의 단어로 이 낯선 외국어를 번역한다. 왜 예술인가 묻는 작품, 좋아할 확신이 서지 않는 작품, 그렇기때문에 봐야 한다고 독려하는 작품을 구입하라는 조언 앞에서 지인의 말이 떠올랐다. 미슐랭 스타를 받은 한 레스토랑에 대한 아쉬움으로 모두가 좋아할만한 맛을 냈다고 한 적 있는데, 불편함이 없는, 익숙함을 뛰어넘지 못하는 접시를 내왔다는 평이 바로 이것이구나,싶었다.
" 작가 부재를 증명하는 가장 강력한 단서이자 상상 여행의 주인공 노릇을 하는 가짜 얼굴은 실로 기묘했다. 이상야릇한 이런 느낌을 두고 흔히들 '언캐니uncanny'라 한다. '언캐니'의 독일어인 'unheimlich'는 '내 집이지만 어딘가 친숙하지 않은 데에서 오는 기이함'의 의미가 전제되어 있다. 그의 가면이 정확히 '언캐니'의 느낌을 자아내는 것 역시 나(작가)임에도 불구하고 내(작가)가 아닌 낯섦 때문이다. 30"
언젠가 친구가 긴 여행을 다녀오며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낯선 곳에서 잠을 청하는 날이 많아지니까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했었는데, 집에 돌아와 내 방 침대에 누웠는데도 자꾸만 집에 가고 싶었'단다. 이미 집에 있는데 마음은 자꾸만 집에 가고 싶어 수런수런했다는 말을 들으며 이상하게 내 마음도 불안해지는 기분이 들었는데, 그 기분을 표현하는 단어가 독일어에 있었다. 독일어에는 세상 모든 표현에 대한 단어가 있다고 하던데 과연, 싶으면서 그 막막한 기분에도 이름이 있다는 사실을 그가 안다면 조금은 위안이 될 수 있을까 궁금했다.
"길가에 버려진 녹슨 병뚜껑에서조차 누구든 어느 순간 가슴이 뭉클한 보임이 있을 때가 있다. 108"는 이우환의 문장에서 오래 전 과거를 떠올린다. 어린 나의 오빠를 위해 특별하고 깨끗한 병뚜껑을 발견하면 기뻐했던 더 어렸던 나, 어쩌다 유리구슬 몇 알을 얻게 되면 자랑스레 오빠의 구슬통에 더해 넣었던 나. '한 가지에 나고 가는 곳 모름****'을 무상히 읊던 싯구와 함께 지금 현재의 우리들이 지나온 시간이 함께 떠오른다. "누군가에게 예술은 삶의 사소하지만 결정적인 단편이 된다 125"는 말처럼 '어떤 예술은 사라지지 않는다' 안에서 삶을 더불어 음미할 수 있는 순간들이 참 좋았다.
" 이제는 여름을 좋아하지 않을 도리가 없습니다. 습하고 무더운 바람을 싫어할 수가 없습니다. 내게 여름은 어떤 경험과 기억을 통해 완연하게 다른 계절이 되었습니다. 어디선가 여름 바람이 훅 하고 불어오는 날, 여러분도 이 책을 통해 한 번도 가닿지 않은 낯선 그곳에 잠시나마 다녀오시길 청합니다. 혹여 거기서 내내 사라지지 않는 무언가를 만난다면 짧은 소식이라도 전해 주십시오. 언제 들어도 몹시 좋을 겁니다. 예술의 자리에서 기쁜 마음으로 기다리겠습니다. 14"
수많은 공간들을 오가는 동안 멀고, 유명하고, 내밀한 공간들 사이에서 시차같은, 미술관 피로(60)같은 압박, 유리됨을 느낄 때도 있었다. 글에서 전달되는 특유의 현장감도 좋았지만 어쩐지 닿을 수 없는 세계에서 부유하고 있나 싶은 느낌이 들 때, 서울 명동의 한 영화관이나 익숙한 카드회사의 이름, 의정부 미술도서관 같은 익숙한 지명들이 현실로 붙잡아왔다. 닿을 수 있는 곳들이 있고 그 공간 안으로 직접 찾아들어갈 수 있다는 점이 독자를 관객으로 변화시킨다.
덕분에 책을 읽는 동안 새로운 전시를 몇군데 살펴보고 마음에 드는 곳-'칸딘스키 같은 진짜 예술품을 보러(255)' 가는 한계 안에 머물러 있지만-은 표를 예매해두었다. 가는 길, 그날의 날씨와 계절의 풍경마저 감상을 위한 도입부로 열어두었던 '어떤 예술은 사라지지 않는다'를 읽으며 흘러가는 마음을 막을 수가 없었다. 가서 마주해야 한다는 열망과 저자의 다정한 독려가 어우러져 발자국이 되었다. 그 앞에 서서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걸음을 옮긴다해도 영혼과 내면에 스쳐갈 티끌을 말하는 흐릿한 부추김을 타인에게도 전달하고 싶어졌다. 이 책도 좀 읽어보세요.
풀 한 포기의 생을 앗아가는 일도 버거워 화분 하나조차 들이지 않는 실용주의적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어떤 예술은 사라지지 않는다'를 읽으며 우리 삶의 아름답고 무용한 것들에 시대를 초월하는 영원함에 더 많은 곁을 내어주어도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찰나의 생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예술적인 하루가 되길.
* 위대한 개츠비 - 스콧 피츠제럴드
** 피에르 위그 '휴먼'의 영상과 전시에 대한 정보는 @artiel.art 인스타그램 계정에서 볼 수 있다.
*** 경주 감포 송대말등대 빛체험전시관
**** 제망매가 <삼국유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