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한국 엄마에게 - 조작과 오류로 덧칠된 초국가적 입양 산업의 민낯
크리스틴 몰비크 보튼마르크 지음, 손화수 옮김 / 푸른숲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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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를 향한 내 사랑은 지금도 여전하다. 너는 내 사랑하는 소중한 아들이다. 그럼에도 나는 이 질문을 던져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왜 한국의 여성들을 외면했을까? 346" 

정확한 기억이 있다. 스무살 때 홍대에 갔다가 한국홀트아동복지회 건물을 보고 뭐하는데지? 하고 가벼운 의문을 가졌다가 일행이 입양기관이라고 알려준 말에 가벼운 충격과 같은 인상이 남았었다. 그 전까지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기관이었다는 점에서 오는 부끄러움, 입양기관이라는 말에 따라붙는 어딘지 모르게 부정적인 감상 같은 것들이 그날을 오래도록 기억하게 만들었다. 인식 이후에는 의식이 따라왔다. 어쩌다 기관 이름이 보이는 기사나, 입양과 관련된 사건들이 크게 불거져 나올 때면 전보다 조금 더 길게 눈길이 머물게 되었다. 하지만 그 뒤로도 자신을 둘러싼 세계와는 유리된 감각으로 낯설게 보았고 입양에 따르는 돌봄/양육자의 부재와 구원/시혜적 대상으로의 인식 같은 전형적인 감상에 머물렀다.
그러다 1980년대 활발히 진행된 해외 입양이 효자 수출 품목이나 다름없는 외화 벌이 수단으로 이용되었고, 부모가 있는 아이도 고아로 둔갑시켜 졸속으로 입양시켜 버리는 등의 문제가 고발*되면서 입양에 대해 가지고 있던 일반적이고 고착적인 인식이 깨지는 일이 생겼다. 가난한 나라의 어려운 사연이 있는 아기들이 부유한 나라의 행복한 가정으로 입양되는 것은 부모를 잃은 아이, 아이를 원하는 가정, 아이를 키울 여건이 되지 않는 생물학적 부모 모두에게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순진한 믿음은 대체 누가 만들어냈을까. 

" 대부분의 사람들은 입양을 인도주의적 선행으로 여겼다. 아이를 간절히 원하던 부부와 노르웨이에서 더 나은 삶을 약속받은 가난한 나라의 아이들이라는 이상적인 조합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아이들을 받아들인 가정들은 대체로 충분한 지원이나 준비 과정을 거치지 못했다. 그 결과, 그들이 그 역할을 감당할 수 있을지는 사실상 운에 달린 일이었다. 246" 

게다가 입양의 과정만이 졸속으로 진행된 것이 아니라 입양 이후의 생활에도 충분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는 고발이 연이어졌다. 한국사회에 널리 알려진 사건 중 하나가 외국의 유명 감독인 우디 앨런이 입양한 딸을 성적으로 학대했다는 고발과 함께 마찬가지로 딸인 한국계 입양인 순이와 부적절한 관계를 가졌다는 사건**이 알려지게 되면서, 그저 부유한 서구 가정으로 입양되어 새로운 삶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돌봄, 보호의 사각지대에서 학대 등의 위험에 놓여서도 아무런 도움을 청할 수 없는 상황에 몰려도 어찌할 방도가 없었을 입양아동들이 너무나 많았을 것이라는 깨달음이 따라왔다. 하지만 '입양 산업'에 얽힌 문제에 대한 관심은 우디 앨런과 순이의 스캔들에 대한 관심에 비하면 놀랍도록 짧고 적었다. 

" 수십 년이 흐른 뒤, 구매력을 지닌 서구의 부부들이 원하는 아기를 얻기 위해 이용하는 새로운 시장이 형성되었다. 그들은 카탈로그를 통해 선호하는 조건을 가진 여성을 대리모로 선택할 수 있었다. 미리 수정한 자신의 배아를 대리모의 자궁에 착상시켜 그 여성이 임신과 출산을 하도록 하는 방법이었다. 163" 

입양이라는 수단을 버린 서구의 '아기를 원하는 개인과 가정'은 그보다 더 비인도적인 여성 착취를 거래로 삼기 시작했다. 이 징그러운 아기 쇼핑을 적당한 댓가를 주고 받은 거래 명목으로 전시하는 부유하고 유명한 사람들의 삶을 SNS***로 지켜보게 된 사람들은 '차라리 입양을 하라'며 비난한다. 책을 읽기 전 그 비난이 언뜻 대리출산보다 더 나은 대안을 말하는 것처럼 보였었지만 지금은 다르다. 그 대안은 입양에 대한 맹목적이고 느슨한 믿음,까지도 미치지 못하는 짧은 감상에 지나지 않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진보 성향의 잡지 <더 프로그레시브>든 1월호 표지에 '한국인이 만들고, 미국인이 산다'라는 충격적인 문구를 실었다. 이 잡지는 기사에서 한국 정부가 입양 사업을 통해 매년 1500만에서 2000만 달러를 벌어들이고 있다고 주장했다.비평가들은 입양 사업을 두고 민간 자금을 바탕으로 한 '경제 외교'라고 불렀다. 100" 

이 돈벌이 산업을 위해 여성들은 입양 기관으로부터 압박을 받아야 했고, 기관은 생물학적 부모에 관한 정보를 의도적으로 은폐하거나 제대로 기록하지 않았다. 때로는 동의조차 없이 입양이 결정되기도 했다. 그리고 아이들이 보내질 곳과 예비 보호자에 대한 검증과 준비 교육은 물론, 입양 후의 관리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세계가 한국의 입양 사업의 어두운 면을 고발하고 40년이 지난 지금, 2011년 한국은 경제규모 17위의 성장에도 불구하고 미국 해외 입양 1위 자리에 올랐고, 2020년 콜롬비아, 우크라이나에 이어 해외 입양을 가장 많이 보내는 나라 순위에 꼽혔다. 2025년 여전히 과거부터 이어져 온 '아동 수출국'이란 오명을 벗기 위한 방법으로 국가의 체계적 관리****를 주장하는 등 인간과 삶에 대한 존중과 한국 사회 안의 문제적 인식 개선에 대한 자정의 목소리는 적었다.  

물론 모두가 마치 쇼핑을 하듯 혹은 시혜적인 마음으로 과시하듯 해외의 아이를 구매한 것은 아니다. '너의 한국 엄마에게'의 저자처럼 아이를 원하는 상황에서 기관의 안내를 신뢰하고 입양을 결정하는 가정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자신이 입양 산업 안에서 이루어지는 이들에 알게모르게 가담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일은 쉽지 않았다. 한국 입양 산업의 실태를 고발하는 기사를 보고도 망설였으며(237), k98-135 현이 겪을 인종 차별과 미시적 공격, 그리고 배제와 소외의 경험(188)에 무지했다. 그가 의지할 또 다른 가족을 만들어주고 싶다는 소망으로 K-1112-유경/셀마를 입양한 것처럼 어떤 면에서는 위화감이 드는 결정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피하고 싶은 진실을 마주하기로 한다. 
중학생 때 한국행을 권유하자 한국에 관심이 없다며 뉴욕에 가고 싶다고 했던(166) 현은 대학 진학 후 스스로 한국 음식을 만들어 먹고, 이석증을 앓고 난 뒤 자신의 유전적 질환을 찾아보다 마주한 기록없음 앞에서 "꼭 알아내고 싶어요."(220)라고 다짐한다. 그 후 연락이 닿은 생물학적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 한국으로 직접 방문하기에 이른다. 어느 4월 1일 토요일 서울 시내 어딘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관광객 일행의 모습이었을 그들의 방문(331)을 떠올려본다. 스스로를 사과 바구니 안의 바나나, 겉은 노랗지만 속은 하얀 존재라 생각하던 사람이(209) 자연스럽게 바나나 상자 속에 있다는, 길을 묻고 자연스럽게 사과가 아닌 바나나를 향해 '우리'임을 암묵적으로 드러내는 태도에서 얻어지는 감각이 어떠했을까. 

책을 읽을수록 처음 느꼈던 건조한 문장들이 최대한 객관적으로 '아동의 최선의 이익', '입양인들의 서사를 대리하거나 빼앗지 않으려는 시도'로 이루어졌음이 느껴졌다.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지식과 이해를 바탕으로 깊이 있게 파고든 입양 산업과 생물학적 모친, 입양인, 입양 가정과 사회 문제를 내밀한 고백과 더불어 아울러 낸 책의 모든 이유가 그의 아이 현을 위해서였다는 것에 마음이 울리게 되는 순간들이 있었다. 내가 사는 세계는 한정적이다. 관심을 두지 않으면 눈 앞에 있어도 보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너의 한국 엄마에게'를 통해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 더 깊어짐을 느낄 수 있었다. 외면하지 않는 것, 볼 수 있으나 보지 않았던 세상을 보려하는 것, 본 것에 의문을 품고 문제를 제기하는 것, 그로 인해 나의 세계를 넓히는 것을 경험토록 해주는 시간이었다. 

" "제 서류에 동의서가 있나요?"
네가 물었다.
"아니, 없단다." 387"


* "전두환 정권, '아동 수출'로 한해 200억 벌었다"
[심층취재 -한국 해외입양 65년] 2.입양의 정치경제학 ②
20170912 프레시안 전홍기혜
** 우디앨런 근황에 순이 프레빈에 관심 UP “동거했던 배우 미아 패로우 양녀…치명적 스캔들” 20130830 아시아투데이
우디 앨런 “한국서 거리의 고아였던 순이, 나와 결혼 후 꽃 피워”
20160505 아시아투데이 
*** 대리모의 출산일에 '출산 연출'사진을 찍은 매건 트레이너
10명 동시 대리모 출산으로 논란을 일으킨 갈립 오즈터크
인도, 우크라이나 등 상대적으로 빈곤한 국가 출신의 여성들이 대리모 산업에 내몰려 공장과도 같이 대리 출산을 행하고 있는 현실 - KBS1 세계는 지금 20120602
“한국서 아이 입양해오던 미국, 이제는 전세계 대리모 출산 천국” 20140707 경향 
**** 美입양 한국아동 수, 17년만에 다시 부끄러운 세계 1위… 왜? 20111121 조선
세계 아동 수출국 3위 오명 벗을까…변화하는 '해외입양' 20230511 복음기도
국가·지자체가 입양 체계 관리…아동 수출국 오명 벗을까? KBS 9시뉴스 2025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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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금 대신 보석을 산다 - 취향과 안목이 부가 되는 희소성의 경제학
윤성원 지음 / 김영사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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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석을 살 때 가장 위험한 순간은 눈앞의 화려함에 마음이 앞설 때다. 277" 

예전에 다이아몬드에 더이상 예전과 같은 가치가 없다는 기사*를 보았다. 그 뒤로도 비슷한 전망은 계속되었고 금 시세가 끝도 없이 오르는 최근 흐름에 비해 다이아의 가격은 랩다이아의 품질 상승으로 하락 방어선 없이 가치가 계속적으로 하락할 것이라는 평이 주기적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작은 보석함 안에 놓아둔 그보다 더더욱 작은 나의 다이아가 떠올랐다. 보증서까지 알뜰살뜰하게 잘 보관하고 있는 그 다이아가 살때는 손이 떨리게 만들더니 사고나니 마음이 떨리게 한다. 금 가치는 오르고 보석의 가치는 떨어진다는 세상의 말과 달리 금 대신 보석을 산다는 제목의 책을 보고 한동안 가만히 작고 작은 나의 다이아를 생각했다. 기다려, 저 책을 읽어보고 너의 가치를 드높여(?)줄게. 

" 지금 놓치면 다시는 손에 넣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소유를 통한 과시, 경쟁에서 이기고 싶은 본능... 이것들이 진짜 가격이었다. 88" 

나의 작고 작은 다이아의 가치를 높일 방법은 소유주인 나의 서사를 쌓는 방법 외에 달리 없다는 사실을 초장부터 깨닫고 들어가야 했다. 이건, 이 방법은 틀린 것 같아. 보석에 이야기가 쌓이고 그 내력이 분명하다면 같은 값어치의 보석보다 더 가격이 높아진다는 것은 언뜻 매력적이었다. 어떤 유명인이 수십억을 들여 경매에서 샀다거나, 왕실이니 황실이니 하는 곳에서 가지고 있었던 내력(프로버넌스 provenance)을 가진 보석 이야기를 읽다보면 재밌기도 하다. 사라졌다가 우연한 계기로 수집가의 눈에 띄어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경우도 있는데, 8년 동안 주방 찬장에 들어있던 러시아 황실 달걀(48) 이야기를 읽다보니 한편으로는 이 가치에 대한 의문이 생기기도 했다. 고물상이 그 달걀을 벼룩시장에서 샀을 때 그의 눈에 달걀은 금값 500달러쯤의 현실적 가치가 매겨졌을 뿐이다. 그러니 값을 좋을대로 부풀리기 마련인, 그것도 우리와 먼 시장의 역사와 선호에 치중된 결과물이 아닌가 의심과 회의도 들었다. 

게다가 감정 기관마다 산지 판정이 갈리고 어느 기관의 감별서인지에 따라 가격도 달라진다(100)고 한다. 일반인이 진입하기에는 좀 어려운 구석도 있고 그 가치를 어떻게 보는지는 고무줄처럼 늘었다가 줄어드는 미심쩍은 면도 있어 보였다. 심지어 어떤 상자(티파니의 블루박스 162)에 담기냐에 따라서도 그 가치가 달라지지 않는가. 그러고보니 작고 작은 다이아를 살 때 우신에서 감정을 받은 것을 살지 GIA 감정서가 있는 것을 살지 잠깐 고민했던 기억이 났다. '나중'을 고려해서 GIA 감정서가 있는 것을 선택했는데 글쎄, 수십 수백년이 지나도 변치 않는 영원한 다이아가 내게 소유될 짧은 기간동안 나중을 고려할 일이 있을까 싶어진다. 그나마 다이아의 경우는 국제 기준가가 되는 '라파포트 가격표(108)'가 있지만 유색 보석에는 그도 없다고 하니 보석이 아니라 사람(역사, 사건, 운, 타이밍)을 사는 것과 비슷하다 느껴지기도 한다.  

" 드비어스가 "다이아몬드는 영원히"라는 문장을 세상에 던진지 80년이 넘었다. 이제 그 '영원'의 의미가 달라졌다. 누군가에게는 수십억 년의 지질학적 시간이고, 누군가에게는 그 반지와 함께할 삶의 시간이다. 200" 

처음 이야기했던 랩그로운 다이아몬드에 대한 이야기를 책의 4장에서 만날 수 있었다. 다이아의 가치 하락에 대한 불안을 드러냈지만 투자 시장에서의 보석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금 대신 보석을 산다'를 읽으며 오해했던 부분이 있다면 고치고, 새롭게 알게 되는 세계가 있으리라 기대되었다. 이런 막연한 불안과 궁금증이 비단 나만의 것은 아니었던지 강연이나 방송, 인터뷰 등의 자리에서 랩그로운에 대한 질문이 많았다고 한다. 처음 떠올렸던 랩그로운과 천연 다이아와의 경쟁은 '상업용 시장(171)'에 국한된 정보였고 '희소 시장'은 이와 분리해서 봐야하는 것이었다. 당연히 상업용 시장이 전체로 대표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를 두고 이제 다이아의 가치는 하락한다/할 것이다 라고 말할 수 없지만, 일반 소비자에게 가까운 시장은 영향을 받기 때문에 실구매를 고려한다면 흐름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172)고 책은 조언한다. 

이 아름답고 한정적인 욕망의 시장을 우리는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가,에 대한 내용이 5장에서 나온다. 투자에 있어 자연스레 따라오는 금을 살 것인가, 보석을 살 것인가에 대한 질문(249)도 나오고, 고맙게도 그렇다면 과연 보석은 어디서 살 수 있는가를 알려주기도 한다. 예전에 이베이같은 온라인 사이트로 원석을 구매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는데 애정과 열정을 가진 사람의 길에도 " 산지 시장은 낭만적인 직구 현장이 아니라, 프로들이 칼을 품고 마주하는 판에 가깝다. 68"는 경고가 떠오를만큼 사건과 사고와 사기가 많았다. 감별서의 보증에도 허점을 이용한 기망(266)이 있으니 보기엔 재밌지만 뛰어들기엔 두려운 세계였다. 보석을 고를때 피부톤이 웜톤인지 쿨톤인지 따지는 내용도 나오는데 한참 MBTI가 유행할때는 아마 MBTI별 맞춤 보석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어 재밌었다. 소장과 투자로써의 보석을 고려하고 있다면 5장 내용을 눈여겨보면 도움이 되겠다. 

보석의 가치를 높이는 것 중 하나로 그 안에 담긴 내력이 주요하게 작용한다는 것도 흥미롭지만, 보석이 인류사에서 어떻게 그 가치를 가지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3장의 내용이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었다. 객관적인 기준으로 가치가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보석의 내력이 가치를 더한다는 것에 잠시 의문을 품기도 했지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이야기의 힘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보석에 사랑의 약속이나 인어의 눈물같은 별칭도 붙이고 브랜드에도 왕의 보석상이나 로마의 관능(163)같은 정체성을 내세우는가 보다. 서사와 의미가 이렇게 물질의 가치를 올리기도 하고,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기도 하는 것을 보니 재미있기도 했다. 어린시절부터 반짝반짝 하는 것들을 홀린듯이 바라보길 좋아했던 까마귀의 마음을 흡족하게 만들고, 보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매력적인 책이었다. 

" 마젤 우 브라하** 79" 

* 다이아 원석 가격 1년새 40% 급락…"인조 다이아 수요 급증 영향" 20230904 금융소비자뉴스 기사
** Mazal u'Bracha 행운과 축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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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밖에서 비명 소리가 - 뉴 블랙 호러 앤솔러지
N. K. 제미신 외 지음, 조던 필 엮음, 이나경 옮김 / 황금가지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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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사람 심장을 보고 싶어 할 줄 알았는데
내가 훔친 거 112 또 하나의 존재" 

서문에 나온 '토옥(oubliette)'의 개념이 나온 영화를 2024년에 즐겁게 본 기억이 난다. 이쪽의 상황을 감옥 안에서는 보거나 들을 수 있는데 감옥에서 지르는 비명은 외부로 전달되지 않는다는 것에 영화 '히든페이스'가 떠올랐던 것이다. 조여정 배우만의 캐릭터 성과 매력이 잘 드러난 인상적인 영화였다. '겟 아웃'에 나오는 침잠의 방이라는 소재가 인상적이었다면 이 영화에서 사용되는 토옥과 같은 숨겨진 공간의 쓰임도 확인해보면 좋겠다. 

'아기 강탈자들의 침공'은 SF와 호러가 접목되었으면서 초반에 만난 단편들 중 가장 가독성이 좋았다. 환상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한 단편들이 많았기 때문에 어떤 단편들은 불안정한 화자의 심리 상태를 그대로 반영해 이해하기 어렵거나 주어진 것들이 진실일까 의심하게 되는 면들이 섞여 있었다. 19편의 단편들 중 '아기 강탈자들의 침공'은 외계 존재들의 공격성이 드러나는 기괴하고 섬뜩한 장면들과 혼란스러운 대치를 속도감있게 전개하면서도 생생하게 표현해 '라시렌'과 함께 영상으로 만들어진다면 어떨까 가장 많이 기대해 본 작품이었다. 

앞서 언급한 '라시렌'은 " 물속에 혼자 있는 여자를 믿으면 안 돼. 130" 같은 경고를 통해 우리에게도 익숙한 물귀신 같은 공포적 대상을 연상시키기도 하고, 인어라는 환상적 존재의 원형-디즈니가 꾸며낸 빨간머리의 공주가 아닌 사람을 꾀어내 홀리는 괴물, 사악한 존재-을 떠올리게 만들기도 한다. 환상적인 면모를 가진 이야기여서 이 기묘한 존재와 "하나를 주지 않으면 셋 다 가져간다(131)"는 경고이자 선언의 반복은 무섭다기 보다는 마치 동화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단편 '건방진 눈빛'의 제목은 조던 필 감독의 영화 '놉'에서 주인공 OJ가 광고 촬영장에서 주의사항을 전달할 때 보이던 태도를 연상시키는 면이 있었다. 백인 앞에서 흑인의 시선이 부적절해 보이지 않도록 눈을 내리떠야 한다는 인종차별을 역으로 흑인 경찰의 왜곡된 시선에서 보이는 환각처럼 활용하고 있다. 이 밖에도 여러 단편들 안에서 반복적으로 사용된 '마법(33 / 57 / 371 /476)'은 조던 필 감독의 '놉'에서 '나쁜 기적'으로 표현되는 불길하고 불온한 사건, 증표를 뜻하는 듯 했다. 마법을 주로 긍정적인 느낌으로 연상하게 되는 편이라 부정하고 불온한 것으로 쓰이는 차이가 독특하게 여겨졌다. 

" 존중하지 않을 나라에서 존중을 얻기 위해 그가 바친 희생을 알기 때문이었다. 세계 대전에서 싸움으로써 노블과 흑인들은 자신을 증오하는 세상에 애정을 구걸했다. 그러니 어쩌면 흑인 칸에서 그가 받는 시선과 묵례는 존경이나 경의가 아니라 동정일지도 몰랐다. 428" 

이 블랙 호러라는 장르는 조던 필의 영화가 신선한 방식으로 충격과 공포를 전달해주었던 것처럼 확연한 개성과 함께 또렷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최근 개봉을 앞둔 한 영화 안에서 동양인 캐릭터를 전형적인 인종차별적 요소를 담아 이용한 것을 두고 이들이 저지르는 혐오에 우리가 얼마나 관대하고 감수성과 인지가 부족한지 지적하는 경각의 목소리도 나왔다. 흑인들의 대응이 과하다고 말하는-그러나 양쪽 모두에서 혐오와 차별을 당하는- 아시안의 입장에서도 우리가 인정과 호의를 구걸하고 있지는 않은가 생각해보게 되었다.  

이 19편의 단편들은 저마다 불쾌함을 가지고 있다. 왜 불쾌함을 주는가 생각해보면 그 안에 자리한 폭력성, 혐오가 그늘 속에서 우리의 눈과 마주칠 때 본능적으로 드는 거부감의 영향인 듯 하다. 사람을 인격적 존재가 아닌 사물이나 가축처럼 다룰 때, 더이상 사람의 마음이 남아있지 않은 행동을 보이는 대상이 위장을 하고 있을 때. 블랙 호러 장르는 그들이 당해온 차별의 비인간성을 고발하면서 동시에 인간성에 대한 메시지를 인상적으로 전달하고 강조하기 때문에 앞으로 더욱 기대가 된다. 단순히 파격적이고 잔인하기만 한 이미지로 점철된 공포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저 밖에서 비명 소리가'를 흥미롭게 읽는 동안 조던 필의 영화 또한 다시 해석해 볼 만한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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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일동맹이라는 거울 - 한미일 안보 체제의 한계와 가능성
지지와 야스아키 지음, 길윤형 옮김 / 한겨레출판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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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은 일으켜서는 안 되는 것이다. 180" 

2차 세계대전 이후로 국제사회의 주된 흐름이었던 세계평화의 시대는 끝이났다. 약 70년간 이어진 세계평화의 시대 역시 허울뿐인 말일수도 있다. 어디선가 항상 전쟁은 벌어지고 있었다. 국제적인 분쟁이 아니더라도 내전이 일어나는 곳들은 있었으니까. 하지만 협력 기구, 조항 등을 만들어 전쟁을 피하려고 했던 최소한의 움직임도 지금 우경화 된 국제 정세 아래 끊겨버렸다. 더불어 이란 전쟁에 협력하지 않는 우방국들의 목록을 만들어 맹렬히 비난하는 미국 대통령의 SNS가 하루가 멀다하고 올라오며 동맹이라는 개념조차 흔들리고 있는 때에 '미일동맹'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어떤 비전을 제시하려 하는지 궁금했다. 

동아시아의 국제 정세 상 휴전국인 한국과 근접국가인 일본에 미국의 영향력이 매우 크다. 언제 다시 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남북한의 긴장감과 중국과의 견제를 위해, 힘의 균형을 맞추고 유사시 즉각적인 대응을 하기 위해 한국과 일본 내 약 9만에 달하는 집중된 규모의 군대를 주둔시켰다. 하지만 2기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서며 한미동맹과 미일동맹이 그동안 유지해왔던 골조에서 벗어나, 동맹적 관계에서 발생하는 부담을 전가하고 미국의 입맛에 맞는 국제분쟁 개입을 요구하며 판을 흔들고 있다. '미일동맹이라는 거울'은 미국의 또다른 동맹국가인 일본이 현 상황에 맞춰 어떤 식으로 시류를 읽고 미국과 협상해왔는지 파악하고 이를 통해 국내의 독자들에게 한미동맹의 흐름을 읽어나갈 수 있는 외부의 시선을 제시하고자 한다. 

" 이런 일본의 내부 사정은 [국제정치의] 엄혹한 현실 앞에선 완전히 무력할 뿐 이었다. 그 앞에 어떤 파멸적인 결말이 기다리고 있었는지에 대해선 이제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 국제정치의 현실과 '일본의 시점' 사이의 괴리를 파악하고, 이것이 어떤 비극을 불러왔는지를 파악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역사 수업을 통해 배워야 하는 것 아닐까? 18" 

역사 수업을 통해 배워야 하는 건 전범국가라는 것이고 반성과 사죄다. 순진하게도 '국제정치의 엄혹한 현실'을 파악하지 못한 과오로인해 파멸적인 결말을 얻은 비극적 과거가 아니라.  '일본이 엄청난 희생을 지불하며 얻은 교훈(18)'같은 문장이 나올 때마다 이런 부분에 있어서 더이상 책을 읽기 어려운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미일동맹이라는 거울'을 통해 무엇을 얻어야 하는가, 말꼬리를 하나씩 잡고 싶지는 않지만 피해자성을 놓지 않으려는 태도가 불쾌하고 회의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1장에서는 미일동맹의 시작점과 주변국과의 관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극동 105년 체제'가 반복해서 언급되는데 들어간 적도 없는 체제 아래에 남의 나라를 갖다붙여놓는 것은 뭔가 싶었다. 일본은 관계 없는 전쟁에 말려들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극동 지역의 안전과 평화를 위해 긴밀한 협력을 요하는 중요한 위치에 있다고 시종 강조하고 있는데, 한국은 이런 일본을 향해 적대적인 신호(85)를 보내고 대만 유사사태 등의 문제에 미온적인 태도를 취하며 거시적인 관점이 부족하다는 관점(89)을 흘린다. 이 또한 불편한 지점이다. 2장에서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동맹의 지휘권에 대한 변화와 분석이 주를 이루는데 장황한 설명을 표로 정리해놓은 부분들이 이해를 도와 1장보다 더 읽기 편하고 이해가 쉽게 되었다. 

3장에서는 분쟁 상황이 발생했을때 일본이 어떻게 대응하는지를 상정하고 있는데 "일국평화주의는 일본이 일본 이외의 외국 사이에 발생하는 분쟁에 말려드는 것을 싫어한다. ...중략... 즉, '일본적 시점'에 서서 우리 나라는 "말려들지 않는다"는 논리를 아무리 예리하게 만든다고 해도, '제3자적 시점'에 서서 보면 애초에 상대가 이를 받아들여야 항 이유가 전혀 없다고 할 수 있다. 160" 그토록 강조하는 일국평화주의는 사실 타국의 이해관계에 얽혀 괜한 압박이나 피해를 받는 상황을 피하고 싶다는 뜻과 같다. 하지만 그 앞에 평화를 붙여 원치 않는 분쟁에 말려들어가는 상황에 처할 수 밖에 없고 타국은 이런 일본의 입장을 이해하지 않고 오히려 약점으로 보고 이를 이용할 것이라는 논조로 일본의 이미지를 고수하고 있다는 점이 웃긴다. 일본은 과오에 비추어보아 자위권을 두고 "행사해선 안 되는 권리이기 때문에 행사해선 안 된다고 말하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 166" 는 사실을 일본적 시점이든 제3자적 시점이든 명확히 돌아봐야 하는 것 아닐까. 

4장에서는 유사시 유리한 방향으로 전쟁을 끝내기 위해 어떤 전략을 써야 할 것인가를 분석하고 하고 있는데, 시작부터 태평양전쟁 당시 실패했던 출구전략으로부터 교훈을 얻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남북간에 전쟁이 발생했을때의 상황이나 중국과 대만 사이에 전쟁이 발생했을 때를 두고 상당히 구체적으로 시나리오를 짜, 장래의 위험을 제거하는 것과 현재의 희생을 회피하는 것에 대한 비교분석을 엿볼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5장에서는 핵과 관련된 내용을 담고 있는데 직접 핵무장을 하는 것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을 보이는 것이 의외였다. 다만 비핵 3원칙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가 핵으로 유린됐다는(273) 사실을 배경으로 만들어졌음을 말하는 부분에서는 역시나 '왜 이런 일이 발생했는가'가 결여된 피해자성 강조가 다시금 드러나고 있다.  

평소 관심을 두고 잘 아는 분야가 아닌만큼 책을 읽는 동안 오랜 시간이 들었다. 하지만 점차 국제 정세와 한미일 더 나아가 중국과 대만 러시아 등의 극동 관계에 대해 점점 더 생각이 트이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물론 동맹 관계에 대한 맹렬한 비난과 의구심을 표현하는 2기 트럼프 행정부의 돌발적인 행보와 불안정한 기운이 더해가는 초불확실성 시대에 끈은 더욱 약해지는 위기의 시점에 지난 관계에 대한 분석이 큰 영향을 주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본이 극동 관계를 두고 어떤 식으로 자신들의 위치를 조절해왔는지 그 흐름을 통해 속내를 파악하고 우리의 입장도 정리할 수 있는 도움을 받기에는 충분했다. 보기에 편한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은 아니지만 생각에 자극을 주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133쪽 마지막 줄 한미연군합사령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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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세요, 맞춤법 때문에 전화했습니다 - 국립국어원 상담실 연구원의 365일 노동기
이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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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어는 곧 세상의 이치를 비추는 거울인 것만 같다.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작동하는 문법과 어휘에 대한 훌륭한 식별 능력이 그저 경이로울 따름이다. 스스로는 그 하나하나의 근거를 인식하지 못하고 자연스럽게 언어를 구사하지만, 개개인에게 잠재된 언어 구조는 거대하고 정교한 성과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중략... 자세히 살펴보면 살펴볼수록 사람들의 언어 사용 구조는 당사자도 미처 인지하지 못하는 대단한 짜임새를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45" 

최근 신발을 사러 한 매장에 들렀을 때 재밌는 표현을 들었다. 사이즈를 물어보니 직원이 '해당 제품 사이즈는 5단위가 아닌 10단위로 전개가 된다'고 답해온 것이다. 사이즈의 전개라니 문학적이다. 그런데 이 낯선 표현은 맞는 것일까 틀린 것일까?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고객과의 괜한 갈등 상황을 피하기 위해 생각지도 못한 쿠션어와 존대(존칭의 인플레이션198)를 만들어 사용한다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긴 했지만, 사이즈의 전개라는 표현은 간만에 신선하게 느껴졌다. 저자 역시 "성함이 어떻게 되실까요?"(107)라는 질문을 받고 문법적으로는 교정이 필요한 이 완곡한 의문형 표현이 실생활에서는 어떻게 쓰이고 받아들여지는지 생각해보기도 했다. 매번 새로운 표현이 나오고, 새로운 말의 뜻이 암묵적으로 이해되어 퍼져나가는 것을 보니 언어가 살아있다는 것 말고는 다른 감상이 떠오르지 않았다. 

책을 읽기 시작하고 가장 먼저 놀래킨 것이 '돼지고기미나리찜'이다. 처음 듣는 메뉴 이름이기도 한데, 이것이 방송 자막일 때와 교재에 쓰일 때(18)에 따라 정확한 답변이 달라질 수도 있다는 말인가? 돼지고기미나리찜은 시작에 불과했다는 듯이 낯선 단어들이 튀어나온다. 생세일(24)이라니 뭘 판다는 건 줄 알았다. 여러분이 알고리즘이라고 쓰는 단어가 사실은 알고리듬(31)으로 발음되어야 하고 이는 혼용 가능합니다,라는 말 없이 자연스럽게 사용되는 알고리듬은 또 어떤가. 재밌는 점은 국립국어원에서 매일 맞춤법 상담을 하며 연구해도 아밀라아제가 아밀레이스(47)가 됐다는 사실은 낯설다는 것이다. 읽다보면 이게 그렇게 중요한가 싶은 아주 작은 차이 띄어쓰기 한 번, ㅅ이 들어가느냐 마냐의(160) 일, 미묘한 의미 차이같은 것들이 아주 맹렬한 토론 주제가 되는데 듣다보면 정말 이렇게 중요한 일이 맞구나 싶어진다. 

" 언어의 요소가 문장이나 글 전체의 의미에 어떻게 기여하는지 확인하기보다, 더 정확한 표현을 찾아 교정하는 일에 익숙해진 탓이겠지. 우리는 일종의 기술자가 된 것 같다. 그런데 기술이 지나치게 정교해지면, 오히려 시야를 좁히기도 한다. 92" 

짜장면(67)을 짜장면이라 부르지 못하고 자장면이라 불러야 했던 때가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부를려면야 자장면이든 짜장면이든 부를 수 있지만 짜장면이 틀렸다고 옳고 그름이 퍼져나가던 때가 있었다. 그때 닭도리탕도 닭볶음탕이 되어서 한동안 여러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도 하고 아직도 알쏭달쏭하게 혼용되고 있다. 그런데 로브스터가 랍스터도 된다(132)는 사실은 왜 아직도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것일까! 상대적으로 덜 소비되기 때문에 알려질 기회도 적었던 것일까? 이 단어들이 논의가 되고 논란이 되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연스럽게 품어지는 과정을 지켜봤던 것을 떠올려보니 역사의 산증인이 된 것 같기도 하고 새삼 재밌었다. 책을 읽다보니 개인적으로 궁금한 것은 '어머니, 민수를 1시까지 어머니 댁에 데려다 드릴게요(84)'의 소제목으로 시작해서 본문의 내용에는 '어머니, 제가 민성이를 어머니 댁에 1시까지 데려다줄게요/드릴게요.(85)'로 되어 있는 것이다. 세상에 별 걸 다 전화를 해서 물어보는 사람들도 있으니 덩달아 갑자기 민수가 왜 민성이로 바뀌었는지 물어보고 싶어졌다. 

이처럼 '여보세요, 맞춤법 때문에 전화했습니다'를 읽고 갑자기 '우리말 365'에 물어보고 싶은 것들이 생기는 것 같고 전화를 해보고 싶은 호기심이 들 독자들이 있을텐데, 책의 중간중간 무례한 상담자들이나 예상 외의 질문을 하는 독특한 상담자들, 화장실 문제처럼 어찌할 수 없는 생리적 욕구 앞에서도 순번부터 고려해야 하는 솔직히 열악하다고 밖에 볼 수 없는 상담 환경 등도 등장하며 그런 호기심을 자제하도록 해준다. 맞춤법에 대한 정보만 담은 내용이 아니라 노동 환경에 대해서도 함께 접할 수 있어 읽다보면 고생하십니다,하고 절로 위로를 보내게 된다. 저자가 직접 조언한 것 중 가장 유용한 '우리말 365' 이용팁은 하루에 다섯 개까지 질문할 수 있다(158)는 것이고, 우리가 기억해야 할 가장 중요한 팁은 상대방에 대한 존중을 갖추고 통화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핸드폰 너머에 사람이 있으니까.  

" 문장은 그 자체로 살아 움직이며, 우리가 어디에 시선을 두고 어떤 길로 뜻을 전하느냐에 따라 그 움직임의 방향도 완전히 달라진다. '더 잘 쓰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더 분명하게 전하는' 것이 목적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192" 

종종 어떤 사람이 좋고 싫은지 꼽으라는 질문에 맞춤법 잘 못 쓰는 사람이 싫다고 밝히는 사람들이 있다. '싫다'고 할 수 있는 그들의 과감함이 부럽고, 때로 무섭고, 종종 서운하고, 가끔 공감된다. 잘못된 단어나 문법 없이 글을 잘 쓰면야 참 좋겠지만 솔직히 쉽지 않다. 일부러 무시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잘 쓰기를 추구는 하지만, 완벽하지 않다고 해서 상심하지 않을 정도의 마음을 가지는 동안 가장 많이 배운 것은 자신의 부족함이었다. '낉여오다(173)'는 유행어나 '보리꼬리'같은 틀린 단어가 불쾌함 대신 유쾌함을 주는 것처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얼마나 이해하냐에 따라 잘못 쓴 단어나 문장도 정 떨어지는 무식함이 아니라 실수나 사건이 될 수도 있다. 어차피 모두가 바른 문장을 쓸 수는 없다.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은 실수를 할 텐데 그때마다 창피를 주고 그거 몰라도 잘사네 못사네 싸울 수도 없다. 그러니 웃음과 이해로 품고 살며시 고쳐나갈 수 밖에. '여보세요, 맞춤법 때문에 전화했습니다'를 읽은 기념으로 격조했던 친구에게 "너 나 안 본 지 두 달 다 돼 감"(113) 안부를 물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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