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미영 팬클럽 흥망사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55
박지영 지음 / 현대문학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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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죄다 쓰레기였다.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고 결국엔 쓰레기로 판명된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렇다면 설마 나도. 그러나 상관없었다. 이런 것은 다 맥거핀에 불과하다고, 그때의 복미영은 그렇게 생각했다. 40" 

 솔직하자면, '복미영 팬클럽 흥망사'를 보자마자 읽고 싶었다. 왜냐하면 그녀를 보고 웃고 싶었다. 덕질하던 최애의 병크에 현타를 맞고 방황하던 그녀가 결국 스스로 덕질의 대상이 되고자한다는 내용이, 직접 자신의 팬클럽을 만들고 팬이 복미영에게 입덕하는게 아니라 복미영이 팬을 선택해 가입시키는 전례없는 헤드헌팅 방식으로 운영하는 내용이 척 봐도 웃겼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복미영을 '그래도 되는 사람(165)'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녀의 고군분투를 지켜보며 공감도 하고, 알량한 훈수도 좀 두고, 못내 응원해보고 싶었다. 덕질만 하기엔 너무나 두툼한 두께를 보고 눈치챘어야 했는데, 그 안에는 그래도 되는 사람이 1이 아닌 2의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었던 것을. 

 " 김지은에게는 아무 관계없는 누군가를 열정적으로 좋아하거나 일방적인 애정을 쏟는 재능이 부족했다. 그런 건 확실히 재능이었다. 52" 

 복미영씨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던 처음, 나는 가볍게 낄낄 댔고 무방비하게 허를 찔렸다. 사실 나는 한번도 누군가의 팬이었던 적이 없다. 적당히 좋아하고 관심이 있는 척 했지만 한번도 마음을 다해 누군가를 좋아하거나 응원해본 적이 없었다. 중고등학교 때는 적당히 가장 인기많은 아이돌을 좋아한다고 했지만 사실 다른 친구들에 비하면 열정이 부족했다. 좋아하는 마음이 부족했던 것도 맞고. 음원이 잘되면 좋고 아니면 말고 컴백하면 좋고 해체하면 안됐고 흐지부지했다. 늘 모든걸 적당히만 좋아하게 되는데, 열정과 애정을 위장하려 해봐도 남들처럼은 잘 안됐다. 그런 나와 비슷한 지은의 등장에 놀랐다. 이것도 재능이라고 볼 수 있는 영역이구나. 그러자 마음이 편해졌다. 감정이 부족한 것보다는 재능이 없는 편이 훨씬 나으니까. 

 이 마음 편해짐의 다른 방식으로 미영씨는 침을 뱉었던 것일까. 미영씨의 침뱉기가 볼 때마다 당황스러웠는데,-아마 미영씨와 연인도 친구도 될 수 없었을 것이다- 은조의 손을 놓은 뒤로 미영씨의 관계맺기가 일그러진 형태, 상처의 모양이라 생각하니, 아니 그래도 이건 안된다. '재능'이 부족한 탓도 있지만, 미영씨의 침뱉기는 넘어설 수 없는 극복이 되질 않는 입덕할 수 없는 사유였다. 차라리 미영씨가 그냥 그래도 되는 사람이었더라면 이 요상한 팬클럽 흥망사를 더 가볍게 읽을 수 있었을텐데, 미영씨를 아낄 수는 없었어도 지은을 바라보며 점점 가까워졌다. 은수이모를 버리려는 지은의 결심이 너무나 현실적이어서 '그럴 수 있다'고 마음 속에서 은연 중 동조하는 자신을 깨닫고, 사실 난 재능이 없는게 아니라 감정이 부족한 것이 맞나보다고 생각했다. 

 " 그렇게 불온하고 위험한 마음은 우리를 미친년으로 만들고야 말 거였다. 복미영은 미치고 싶지 않았다. 195" 

 베로니카와 은수이모가 만나고 가까워지는 동안 베로니카가 있는 순례 씨의 국수집까지 운전을 해서 은수이모를 데려다주었던 미영씨의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침을 뱉어도 피할 수 없던 사람을 사랑할 수 없는 누군가를 떠넘기려는/버리려는 것이었을까. 책임지고 싶지 않은 누군가를 버리기 위해, '돌봄'에서 벗어나기 위해 찾아냈던 이모를 돌봐야 할지도 모른다는 지은의 두려움과 같았을까. 미영씨와 지은, 은수이모와 베로니카의 관계를 통해 지난 '2013년 40년 동거한 여고동창의 비극적 죽음[SBS 2013.10.31]'을 다룬 기사의 내용을 책에서 만날 수 있었다. 그 전까지는 미영씨의 삶에 지은이 끼어들었다고 생각했는데, 누구의 이야기도 누가 주인공인 것도 아니라 누구나 저마다의 삶을 살아가고 있고 그저 각자의 삶에서 순간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얽혀있었다.  

 단순한 팬질 분투기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w의 병크와 미영씨의 탈덕은 하나의 사건일 뿐 복미영 팬클럽 흥망사 안에는 더 큰 흐름이 있었다. 뜬구름 같은 미영씨의 말에 귀 기울이다보니 어느새 입안에 쓴 침이 고여 자꾸만 침을 뱉고 싶어진다. ''복미영 팬클럽 흥망사'와 함께 도착한 굿즈들의 의미를 그제서야 다시 본다. 쏠쏠히 마련된 팬클럽을 위한 역조공은 관념적 버리기 아티스트였던 복미영씨를 강조하고 있었다. 그녀가 버렸던 것들을 하나씩 살펴본다. 처지에, 깜냥에, 네, 안, 못. 미영씨는 병크 터뜨린 최애가 아니라 이렇게 삶에서 하나씩 모나게 튀어나와 마음을 찌르던 것들을 하나씩 버리고 고치며 '그래도 되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 다른 사람에게 우습게 보인다는 건 뭔가 다정하고 귀여운 일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우스워지고 싶다. 더 우스워지고 싶다. 뜬금없이 그런 마음도 들었다. 97" 미영씨의 팬이 될 수는 없었지만, 잠시나마 그 우스움에 기댈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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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루먼 스쿨 악플 사건 미래인 청소년 걸작선 4
도리 힐레스타드 버틀러 지음, 이도영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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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사람들이 평소엔 절대 하지 않을 행동을 온라인에서는 거리낌없이 한다고 느낀 적 있지? 맞다, 사실이다. 예를 들어, 나라면 절대로 릴리한테 가서 "와, 너 정말 뚱뚱했더라."하고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온라인에서는 아무 거리낌 없이 그렇게 말할 수 있다. 인터넷은 참 별난 세상이다. 어느 누구도 내가 어떻게 말하고 행동하는지 모른다. 그러니까 얼마든지 원하는 대로 말하고 행동할 수 있다. 껄끄러운 상대가 있다고 한들 직접 만날 필요도 없다. 98" 

 학교는 작은 계급 사회다. 교실마다 '무리'가 있고 그 무리들은 각각의 특징에 따라 계급이 나뉜다. '트루먼 스쿨 악플 사건'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두 명의 존재감 없는 학생에게서 시작됐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 두 명의 학생 제이비와 아무르가 만든 사이트에서 시작됐다. 그들이 만든 <트루먼의 진실>은 트루먼 스쿨에 다니는 학생이라면 누구나 익명으로 접속해 무엇이든 표현할 수 있는 사이트다. 그 안에서는 인기가 있건 없건 누구라도 자유롭게 학교에 대한 비판을 하거나 자신의 창작물을 올리고 서로 고민과 의견을 나눌 것이라 생각했지만, <트루먼의 진실>을 달군 것은 '익명'의 누군가가 올린 폭로였다. 

 '트루먼 스쿨 악플 사건'은 잘 읽힌다. 책에 붙은 놀라운 기록들이 이해가 가는 재미다. 일단 아이들에게 재미있게 느껴지고 읽기 쉽게 다가간다는 것이 청소년 도서가 가져야 할 기본 소양이니까. 꽤 오래 전에 나왔음에도 지금 읽어도 어색하거나 시기가 지났다고 여겨지지 않는 점도 좋다. <트루먼의 진실>이라는 사이트는 에타나 조금 더 넓게는 블라인드 같지 않나 생각했다. 그렇다면 제이비와 아무르가 생각해 낸 이 익명의 사이트는 누구나 빼들어 아무데나 혹은 아무나 찌를 수 있는 무기를 만들어내기로 한 것이나 다름없이 여겨졌다. 서로 가진 정보를 나누고, 소소한 교류를 위해서 만들어진 사이트들이 지금 어떻게 되어 있는지 보면 <트루먼의 진실>이 없이도 '익명성' 뒤에 숨은 사람들이, 심지어 성인들마저도 얼마나 추해지는지 안다. 

 책을 읽으면서 인터넷에서 이루어지는 폭력에 대해서 경각심을 갖게 되는 한 편, 현실에서 직접적으로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인물들이 나올 때마다 어딘가 더 불편한 느낌이 들었다. 특히 트레버가 고작 인터넷에서 악플이 조금 달렸다고 난리가 난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겠다(35)고 할 때, 정말 최악의 사건(75)에 대해 말할 때 순간 릴리를 향해 가해지는 폭로나 악플의 고통을 자신도 모르게 '무엇이 더 고통스럽나' 비교하게 됐다. 뭐가 더 낫고 나쁘고를 따져서 누구의 괴로움은 이 정도고, 누구는 참아도 되고, 누구는 괜찮고 평가하려고 했던 것일까. 릴리에게 가해지는 폭력과 릴리가 저질렀던 잘못들을 비교해보면서 지금 이렇게 고통스러운 건 네가 잘못했었기 때문이라고 탓하고 책임 지우려는 마음이 생겼다. 눈에는 눈으로 반드시 갚아야 정의가 실현되는 것이 아닌데. 

 내 생각이 복잡해지니 책을 읽고 난 뒤에 아이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떻게 감상을 정리하게 될지 궁금해져서 미래인 출판사 도서 소개에서 본 <독후활동지>가 떠올랐다. 온라인 서점에 등록해두었다고 해서 찾아보았는데 다양하게 책 내용을 되짚어 보고 핵심 주제를 토론하며 정리해 볼 수 있는 질문들이 기대보다 알차게 들어있어 좋았다. '릴리가 혼자 있는 동안 어떤 마음이었을 것' 같냐는 질문을 보니, 책을 읽으면서 문득 영화 [올드보이]를 떠올렸던 것이 생각났다. 주인공 오대수가 과거에 저지른 잘못으로 원한을 사 15년 동안 감금되어 군만두만 먹으며 지낸다. 그는 그 안에서 대체 누가 무슨 일 때문에 자신을 가두었을까 자신의 지난 악행을 되짚어가며 적기 시작한다. 릴리도 혼자 있는 동안 대체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되짚어보지 않았을까. 이 밖에도 좋은 질문이 많으니 <독후활동지>도 함께 활용한다면 도움이 되겠다.   

 " [제이비] 내 말은, 릴리처럼 남자라면 어쩔 줄 모르는 애가 어떻게 레즈비언이냐는 거다. 106
 [브리아나] 릴리가 남자 친구 도둑이란 걸 다들 모르지는 않겠지? 40"
앞서서 '트루먼 스쿨 악플 사건'의 장점 중 하나로 재미를 꼽았는데, 이런 막말을 거리낌없이 하는 인물들이 나오고, 관계에서 배제되지 않으려는 치열한 다툼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자극적인 면이 흥미를 더한다. 
 " "너는 이 글이 남들에게 알릴 만한 가치가 있는지 정말 깊게 생각해 봤니?"
 "거기까지는 생각 못 했어요."
 "그렇다면 그걸 지워야지. 네가 그 일을 계속할 거라면, 엄마는 모든 글과 그림, 사진, 투표, 그리고 댓글까지 뭐 하나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해를 끼치는 것이라면 모두 지우라고 하고 싶다."
 "그렇게 되면 남는 게 거의 없을걸요."
 "그러면 사이트 전체를 폐쇄해야지." 166"
분명 읽고 난 뒤에는 이렇게 교훈을 남기는 책이긴 하지만, 재미와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이 이미 고전이 된 하이틴 영화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다. 실패하지 않을 탄탄한 이야기와 클래식한 소재들이 잘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이 왜 아직 영화로 안 만들어졌을까 궁금할 정도다. 

 재미와 의미를 모두 잡은 책이니 여름방학을 맞아 책을 한 권 읽어야 한다면 '트루먼 스쿨 악플 사건'으로 시작해도 좋겠다. 이 책을 재밌게 다 읽었다면 또 다른 이야기로 넘어갈 수 있는 힘이 생긴 것이니, 힘내서 책과 함께 여름을 보내는 청소년들이 더 많아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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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우 유튜브에서 아들을 구출해 왔다 교양 100그램 8
권정민 지음 / 창비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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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8월 1일 책에서도 언급된 서울서부지방법원 폭동 사건 가담자 중 한명이 징역 5년을 선고받고 억울함을 호소하며 오열했다는 기사가 나왔다. 법원 기물을 파손시키며 건물 안에서 난동을 부릴 때는 이런 결과를 예상하지 못했던 것일까. 무엇이 그들을 맹목적으로 행동하도록 만들었을까. 계엄을 옹호하는 극우와 그들을 따르는 이들, 심지어 공개된 판사의 이름을 부르며 위협을 가하려 협박하고 건물에 방화를 시도하려는 행동력을 가진 이 젊은 세대에게는 어떤 시작이 있었을까. 창비에서 나오는 교양 100그램 시리즈를 늘 반기지만, 특히 이번 책은 더더욱 반가웠다. '극우 유튜브에서 아들을 구출해 왔다'는 제목을 보았을 때 책이 이 질문과 현상에 대한 답이 되어줄 것 같았다. 

 아이를 대상으로 한 이야기이지만 아주 넓은 범위로 확대된 대상들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내용이라 생각하며 읽었다. 저자의 경우 어린시절부터 교육과 대화에 많은 노력을 들인 덕분인지 아이가 어떤 의견이 생기면 숨기지 않고 이야기하고 열린 자세로 대화를 이어나간다. 덕분에 저자는 아이가 지금 어떤 주장에 영향을 받아 어떤 상황에 있는지 바로 확인하고 대화로 풀어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 청소년기의 아이들은 아마 자신들이 하는 말, 물든 혐오가 사실은 떳떳하지 않다는 것을 은연 중 감지하고 보호자의 앞에선 티를 내지 않을 경우가 더 많다. 자신들이 보는 자극적인 말과 행동들이 나오는 쇼츠나 유튜브 채널을 보호자에게 공개하게 된다면, 거기서 얻게 된 혐오와 차별적인 자신의 말과 생각, 별 생각없이 그저 재미로 하는 정치인과 지역, 성별 등에 대한 비하와 욕설을 공공연한 장소에서 자신의 신상을 숨기지 않고 공표해야 한다면 이에 당당할 수 있을까? 사고가 굳어 신념이 되고 뿌리깊은 확고함이 생긴 어른의 경우라면 몰라도 아이들의 경우에는 대부분 그럴 수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사상에 노출되고 자신도 모르게 물들더라도 질문이나 직접적인 태도로 표내지 않고 은연중에 드러내거나 실수로 티내게 되는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보호자가 더욱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이런 변화를 알아봐야 할 것이다. 

 " "내가 힘들다고 해서 남을 미워하면 안 돼. 그건 어리석은 짓이야. 남을 미워한다고 나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거든." 내가 힘들면 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하는데, 어렵고 고된 길이지요. 남을 미워함으로써 나의 문제를 가리려는 손쉬운 태도가 생겨나는 이유입니다. 이는 곧 혐오가 자라나는 토양이 됩니다. 이와 같은 마음가짐으로는 문제가 절대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결론적으로 행복하게 사는 방법이 아니라는 점을, 부모만이 알려줄 수 있는 공존의 가치관을 담백하게 들려줄 필요가 있겠습니다. 61"
 '여성가족부 폐지가 왜 남자인 너에게도 손해인지.(7)'를 설명하는 데에 손익으로 사회 구조를 헤아려야만 이해할 수 있다는 점도 안타까웠다. 누군가의 곤궁함이 그의 삶을 존중하고 사회의 구성원으로 함께 책임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빈곤층을 줄이고 안전망을 두텁게 하는 것이 사회 비용에 도움이 된다는 셈으로 더 간단히 이해된다는 현실이 아쉽다. 모두가 함께 살아가기 때문이지, 보다 너도 손해야, 라고 해야 생각을 바꿀 수 있다. 성인들 중에서도 쉽게 혐오와 차별을 말하는 사람들은 '나도 힘든데' 같은 말이나 '내가 낸 세금으로'라는 말을 잘 사용한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아동급식카드로 비싼 음식을 사먹는 것을 보았다며 세금 낭비라는 민원을 넣은 사람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타인을 끌어내려 나보다 낮은 자리에 두어야 만족하거나, 계급을 나눠 그 수준에 맞게 행동하고 소비해야만 한다는 틀에 묶어두려 하는 것이다. 제도와 복지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돌아가는 것이 나의 손해를 야기하는 일도 아니고, 그 혜택으로 인해 누군가 더 나은 삶을 살게 될 수 있다는 것이 나를 위협하는 일도 아니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셈을 한다. 그런 세상에 아이들이 무방비하게 노출되어 있다. 

 책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건강한 대화법 7계명 중 다섯번 째 ''나도 모른다'고 말하기를 두려워하지 말자'였다. 자신들의 논리로 꽉 차있는 강력한 주장 앞에서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 그저 말을 하지 않았었다. 다툼을 피하고 싶기도 했고, 그들이 두른 주장이 단단하고 믿음이 두터워서 무슨 말을 해도 통하지 않고 시간만 소모할 것 같았다. 혹여나 내 답이 빈약하면 그 꼬투리를 잡아 한겹 더 두터운 주장을 내세우겠지 싶었다. 마찬가지로 아이들의 단톡방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며 넓은 범위에서도 과시와 함께 혐오는 쉽게 표현되면서 그에 반하는 발언은 무시되거나 공격당하는 현상을 공감할 수 있었다. 익명에 기댄 인터넷 공간 안에서 얼마나 쉽게 여성과 장애인, 성소수자 등을 빗댄 욕설을 하는지. 그 비하와 욕설의 쓰임이 얼마나 마땅하고, 재미있고, 인정받는 행위로 여겨지던가 보면 알 수 있다.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려면 반발과 비난에 맞설 용기와 주장이 필요할 정도다. 진지하고 신중한 태도가 오히려 답답하고 분위기 파악 못하는 벌레로 불리며 비아냥 받는 문화에서 '말하기를 두려워 하지 않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어른도 그러한데 또래와 다름이 사회생활의 종료 선고나 다름없을 아이들에게는 더 어려우리라 여겨진다. 그러니 더더욱 성인들의 말과 행동도 달라져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인스타에서 기다리던 '극우 유튜브에서 아들을 구출해 왔다' 출간 소식을 듣고 반가워서 달려가 댓글을 남겼다. 저자의 글을 SNS에서 본 기억이 있었다. 그때도 관심있게 봤었는데 창비에서 관심있게 보고 있던 교양 100그램 시리즈로 출간된다는 소식이 기뻤었다. 인스타 알고리즘 때문인지 그 뒤로 다시 그 게시물이 피드에 떴는데 다른 게시물들에 비해 댓글이 유난히 많길래 들어가보니 차마 두고보기 어려운 댓글들이 그새 여럿 달려있었다. 주로 책과 관련된 내용이 올라오다보니 외면하기 쉬웠는데, 세상에는 분명 저런 의견을 저런 방식으로 표현하는 사람들도 다수 존재하고 있었다. 그들의 세계에서 굳이 자신의 어린 아들을 '구출'해왔다는 저자를 쫓아온 사람들은 다시 자신들의 옆으로 누구라도 끌어가려는 듯이 날선 말을 쏟아내고 있었다. 사실 삶을 살아보면 살아볼수록 안다. 선함이 얼마나 놀라운지, 옳은 행동을 하는 일이 얼마나 어렵고,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람이 얼마나 강한지. 거칠고 나쁜 말과 행동을 하고, 나하나 쯤이야 하는 약고 비겁한 행동은 또 얼마나 쉽고 남들도 다 하던데 하고 핑계대기도 좋은지. 이 모든 것들을 감내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낸 저자와 창비의 교양 100그램에 다시 한 번 반가움과 감사를 표하며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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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나라를 회복할 것입니다 - 독립운동가 45인의 말
김구 외 지음 / 창비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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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비의 이런 행보에 항상 감탄한다. 광복 80주년을 맞아 '우리는 나라를 회복할 것입니다'를 출간하는 것도 의미있지만 이를 기념하기 위해 대규모의 필사단을 모집한 기획력은 놀랍다. 책을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책을 읽는 사람을 키워내는 것도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심지어 책의 구성도 독립운동가들의 어록을 담은 본 책과 필사를 할 수 있는 작은 필사책, 8인의 독립운동가 일러스트를 담은 스티커를 포함해 신경써서 구성한 티가 난다. 더불어 독립운동가들의 말과 글을 문서나 어록으로 전해지는 자료를 토대로 발췌하여 독자들에게 좀 더 익숙한 표현으로 교열하여 실었다는 점에서도 배려가 느껴진다. 

 필사를 꾸준히 하기는 힘들어서 한동안 닫아두었던 공책을 펼쳤더니 풀어진 마음처럼 글씨도 엇나간다. 여러번 다시 쓰기를 거쳐 겨우 첫번째 필사를 마쳤다. 당연하다는 듯 필사용 책에 실린 문구 들 중 하나를 골라서 적었는데, 다 적고 보니 직접 문장을 찾아 적을 걸 아쉬움이 남았다. 그냥 한 장 씩 읽을 때는 그 안에 담긴 강한 의지와 기운이 아직까지도 전해지는 듯해 그저 감탄하며 지나갔던 문장들인데 따로 적어볼 문장을 찾으려니 '고른다'는 행위 또한 어려웠다. 이들이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내놓은 문장들이라 생각하니 참 무거웠다. 

 책을 읽으면서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우리 사회와 문화, 교육과 시민의 의식에서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감사와 경의가 제대로 전해져왔던가. 아직도 삼일절과 광복절마저도 티비에서 일본과 관련된 프로그램이 음습하게 방영*되고 있지 않은가, 국경일을 휴일이라고 일본으로 여행을 가는 사람들은, 제국주의와 우익을 상징하는 요소가 나오는 컨텐츠**들을 그저 재미로 소비하고 있지는 않은가,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역사와 지리적 과오를 문제삼는 일을 지겹다며 입 막으려는 사람들은 혹시 없는가 생각했다. 최소한의 존중과 성의마저 흐려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80주년을 맞아 '우리는 나라를 회복할 것입니다'의 출간 소식이 반가웠는데, 독립운동과 광복의 의미를 다시 새길 수 있는 더욱 많은 기획이 생기고 우리 생활에서도 자연스럽게 향유될 수 있었으면 한다. 이런 의미가 담긴 책을 더 많은 사람들이 접하고, 특히 더 많은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읽을 수 있도록 추천되길 바란다. 

*2024 광복절 KBS 1TV 나비부인 편성, 광복절에 기미가요가 방영되었으나 이를 두고 일제 찬양 미화 의도가 없었다는 변명을 내세웠다.
** 20250809 귀멸의 칼날 우익 애니메이션 시구 논란


안중근의 말 (신한민보 1935.5.2)
마지막 말
내가 죽은 뒤에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두었다가
우리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반장해다오.
나는 천국에 가서도
마땅히 우리나라의 회복을 위해 힘쓸 것이다.
너희들은 돌아가서 동포들에게
각각 모두 나라의 책임을 지고 국민 된 의무를 다하며
마음을 같이하고 힘을 합쳐서 공로를 세우고
업을 이루도록 일러다오.
대한 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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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 2025.하반기 - 제51권 2호
한국문학사 편집부 지음 / 한국문학사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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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 들려오는 한국문학의 반년간지 출간 소식은 항상 반갑다. 

떠남과 부고로 시작하는 하반기여서일까,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글들 사이로 울적함이 쌓였다. 여름이 가는 것은 반가웠는데 한 해의 가장 뜨거운 부분이 함께 지나버린 듯하다. 입추가 지나고 난 뒤로 한국인들은 단체로 벌써 가을이 온듯한 착각에 빠진다고 하던데, 착각이 아니라 진짜로 공기가 달라, 하는 말이 옮아 닿은 것처럼 하반기 호에서는 짙은 분위기가 묻어나는 듯 했다. 이야기에는 사건과 갈등이 반드시 들어가야 하는 법인데, 알면서도 이 감각은 비단 나만의 것이 아니었다고 죽음과 이별이 어디쯤 나타나서 증명해줄지 헤아리며 읽었다. 근데 진짜 하반기라 그런가 분위기가 좀 다르다니까, 하면서. 

시에서는 고명재의 '당신 뒤를 따라 걷는 게 좋았다'를 읽는 동안 좋았다. 귤 향이 나는 사람은 제주도에서 왔고, 솔 향이 나는 사람은 절에서 자랐고, 손이 따뜻한 사람은 목조건물에서 살았고, 목소리가 따스한 사람은 쑥차를 즐겨 마셨다고 삶의 흔적이 사소한 것들에서 비롯된 것들이라고 발견하기/믿기 좋아하는 소소함이 마음에 들었다. 마치 [월요일의 아이는 예쁘고], 하는 '마더구스'의 동요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이런 바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어떠한 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얘기는 큰 근거가 없는데도 늘 관심을 끈다. 혈액형이나 별자리, mbti도 그런 것처럼.  

'혼모노'가 정말 상반기를 장악한 소설이나 다름 없었나 싶게 등장했다. 배우 박정민의 추천사로도 유명한 이 소설을 안 읽고 잘 버티고 있었는데, 임정연의 '구심과 원심의 풍경들'에서 마침내 혼모노를 발견했을때 찾아 읽어야지 어쩔 도리가 없구나 싶어졌다. 이전 좌담의 주제가 '우리 시대 2030세대의 문학 트렌드'였는데 요즘 눈에 많이 띄는 것이 연예인, 특히 아이돌과 연관된 팬 문화를 주제로 한 소설들이다. 이런 소설들은 팬질에 익숙한 세대에게 소름돋게 현실적이고 웃픈 내용으로 문학에 대한 접근성을 높인다. 

이 흐름을 피해갈 수 없었는지 대학생 창작교실에서도 '죽여주는 생일/이채원' 아이돌 제이스를 덕질하는 황서윤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요즘 '복미영 팬클럽 흥망사/박지영'를 읽고 있는데 이 연예인과 팬의 관계성 때문인지, 병크와 탈덕의 광기같은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는 점은 좀 아쉽게 느껴졌다. 하지만 확실한 '재미'를 보장해주는 핫한 주제를 다루고 있는 것은 맞기 때문에 이 소설과 함께 좌담과 비평의 눈을 관심갖고 즐겁게 읽었다.  

떠남을 만남으로 고쳐 볼 수 있을까, 25년 하반기호를 읽으며 성급히도 26년의 상반기호를 헤아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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