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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우 유튜브에서 아들을 구출해 왔다 ㅣ 교양 100그램 8
권정민 지음 / 창비 / 2025년 7월
평점 :
지난 8월 1일 책에서도 언급된 서울서부지방법원 폭동 사건 가담자 중 한명이 징역 5년을 선고받고 억울함을 호소하며 오열했다는 기사가 나왔다. 법원 기물을 파손시키며 건물 안에서 난동을 부릴 때는 이런 결과를 예상하지 못했던 것일까. 무엇이 그들을 맹목적으로 행동하도록 만들었을까. 계엄을 옹호하는 극우와 그들을 따르는 이들, 심지어 공개된 판사의 이름을 부르며 위협을 가하려 협박하고 건물에 방화를 시도하려는 행동력을 가진 이 젊은 세대에게는 어떤 시작이 있었을까. 창비에서 나오는 교양 100그램 시리즈를 늘 반기지만, 특히 이번 책은 더더욱 반가웠다. '극우 유튜브에서 아들을 구출해 왔다'는 제목을 보았을 때 책이 이 질문과 현상에 대한 답이 되어줄 것 같았다.
아이를 대상으로 한 이야기이지만 아주 넓은 범위로 확대된 대상들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내용이라 생각하며 읽었다. 저자의 경우 어린시절부터 교육과 대화에 많은 노력을 들인 덕분인지 아이가 어떤 의견이 생기면 숨기지 않고 이야기하고 열린 자세로 대화를 이어나간다. 덕분에 저자는 아이가 지금 어떤 주장에 영향을 받아 어떤 상황에 있는지 바로 확인하고 대화로 풀어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 청소년기의 아이들은 아마 자신들이 하는 말, 물든 혐오가 사실은 떳떳하지 않다는 것을 은연 중 감지하고 보호자의 앞에선 티를 내지 않을 경우가 더 많다. 자신들이 보는 자극적인 말과 행동들이 나오는 쇼츠나 유튜브 채널을 보호자에게 공개하게 된다면, 거기서 얻게 된 혐오와 차별적인 자신의 말과 생각, 별 생각없이 그저 재미로 하는 정치인과 지역, 성별 등에 대한 비하와 욕설을 공공연한 장소에서 자신의 신상을 숨기지 않고 공표해야 한다면 이에 당당할 수 있을까? 사고가 굳어 신념이 되고 뿌리깊은 확고함이 생긴 어른의 경우라면 몰라도 아이들의 경우에는 대부분 그럴 수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사상에 노출되고 자신도 모르게 물들더라도 질문이나 직접적인 태도로 표내지 않고 은연중에 드러내거나 실수로 티내게 되는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보호자가 더욱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이런 변화를 알아봐야 할 것이다.
" "내가 힘들다고 해서 남을 미워하면 안 돼. 그건 어리석은 짓이야. 남을 미워한다고 나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거든." 내가 힘들면 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하는데, 어렵고 고된 길이지요. 남을 미워함으로써 나의 문제를 가리려는 손쉬운 태도가 생겨나는 이유입니다. 이는 곧 혐오가 자라나는 토양이 됩니다. 이와 같은 마음가짐으로는 문제가 절대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결론적으로 행복하게 사는 방법이 아니라는 점을, 부모만이 알려줄 수 있는 공존의 가치관을 담백하게 들려줄 필요가 있겠습니다. 61"
'여성가족부 폐지가 왜 남자인 너에게도 손해인지.(7)'를 설명하는 데에 손익으로 사회 구조를 헤아려야만 이해할 수 있다는 점도 안타까웠다. 누군가의 곤궁함이 그의 삶을 존중하고 사회의 구성원으로 함께 책임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빈곤층을 줄이고 안전망을 두텁게 하는 것이 사회 비용에 도움이 된다는 셈으로 더 간단히 이해된다는 현실이 아쉽다. 모두가 함께 살아가기 때문이지, 보다 너도 손해야, 라고 해야 생각을 바꿀 수 있다. 성인들 중에서도 쉽게 혐오와 차별을 말하는 사람들은 '나도 힘든데' 같은 말이나 '내가 낸 세금으로'라는 말을 잘 사용한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아동급식카드로 비싼 음식을 사먹는 것을 보았다며 세금 낭비라는 민원을 넣은 사람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타인을 끌어내려 나보다 낮은 자리에 두어야 만족하거나, 계급을 나눠 그 수준에 맞게 행동하고 소비해야만 한다는 틀에 묶어두려 하는 것이다. 제도와 복지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돌아가는 것이 나의 손해를 야기하는 일도 아니고, 그 혜택으로 인해 누군가 더 나은 삶을 살게 될 수 있다는 것이 나를 위협하는 일도 아니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셈을 한다. 그런 세상에 아이들이 무방비하게 노출되어 있다.
책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건강한 대화법 7계명 중 다섯번 째 ''나도 모른다'고 말하기를 두려워하지 말자'였다. 자신들의 논리로 꽉 차있는 강력한 주장 앞에서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 그저 말을 하지 않았었다. 다툼을 피하고 싶기도 했고, 그들이 두른 주장이 단단하고 믿음이 두터워서 무슨 말을 해도 통하지 않고 시간만 소모할 것 같았다. 혹여나 내 답이 빈약하면 그 꼬투리를 잡아 한겹 더 두터운 주장을 내세우겠지 싶었다. 마찬가지로 아이들의 단톡방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며 넓은 범위에서도 과시와 함께 혐오는 쉽게 표현되면서 그에 반하는 발언은 무시되거나 공격당하는 현상을 공감할 수 있었다. 익명에 기댄 인터넷 공간 안에서 얼마나 쉽게 여성과 장애인, 성소수자 등을 빗댄 욕설을 하는지. 그 비하와 욕설의 쓰임이 얼마나 마땅하고, 재미있고, 인정받는 행위로 여겨지던가 보면 알 수 있다.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려면 반발과 비난에 맞설 용기와 주장이 필요할 정도다. 진지하고 신중한 태도가 오히려 답답하고 분위기 파악 못하는 벌레로 불리며 비아냥 받는 문화에서 '말하기를 두려워 하지 않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어른도 그러한데 또래와 다름이 사회생활의 종료 선고나 다름없을 아이들에게는 더 어려우리라 여겨진다. 그러니 더더욱 성인들의 말과 행동도 달라져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인스타에서 기다리던 '극우 유튜브에서 아들을 구출해 왔다' 출간 소식을 듣고 반가워서 달려가 댓글을 남겼다. 저자의 글을 SNS에서 본 기억이 있었다. 그때도 관심있게 봤었는데 창비에서 관심있게 보고 있던 교양 100그램 시리즈로 출간된다는 소식이 기뻤었다. 인스타 알고리즘 때문인지 그 뒤로 다시 그 게시물이 피드에 떴는데 다른 게시물들에 비해 댓글이 유난히 많길래 들어가보니 차마 두고보기 어려운 댓글들이 그새 여럿 달려있었다. 주로 책과 관련된 내용이 올라오다보니 외면하기 쉬웠는데, 세상에는 분명 저런 의견을 저런 방식으로 표현하는 사람들도 다수 존재하고 있었다. 그들의 세계에서 굳이 자신의 어린 아들을 '구출'해왔다는 저자를 쫓아온 사람들은 다시 자신들의 옆으로 누구라도 끌어가려는 듯이 날선 말을 쏟아내고 있었다. 사실 삶을 살아보면 살아볼수록 안다. 선함이 얼마나 놀라운지, 옳은 행동을 하는 일이 얼마나 어렵고,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람이 얼마나 강한지. 거칠고 나쁜 말과 행동을 하고, 나하나 쯤이야 하는 약고 비겁한 행동은 또 얼마나 쉽고 남들도 다 하던데 하고 핑계대기도 좋은지. 이 모든 것들을 감내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낸 저자와 창비의 교양 100그램에 다시 한 번 반가움과 감사를 표하며 책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