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루먼 스쿨 악플 사건 미래인 청소년 걸작선 4
도리 힐레스타드 버틀러 지음, 이도영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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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사람들이 평소엔 절대 하지 않을 행동을 온라인에서는 거리낌없이 한다고 느낀 적 있지? 맞다, 사실이다. 예를 들어, 나라면 절대로 릴리한테 가서 "와, 너 정말 뚱뚱했더라."하고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온라인에서는 아무 거리낌 없이 그렇게 말할 수 있다. 인터넷은 참 별난 세상이다. 어느 누구도 내가 어떻게 말하고 행동하는지 모른다. 그러니까 얼마든지 원하는 대로 말하고 행동할 수 있다. 껄끄러운 상대가 있다고 한들 직접 만날 필요도 없다. 98" 

 학교는 작은 계급 사회다. 교실마다 '무리'가 있고 그 무리들은 각각의 특징에 따라 계급이 나뉜다. '트루먼 스쿨 악플 사건'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두 명의 존재감 없는 학생에게서 시작됐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 두 명의 학생 제이비와 아무르가 만든 사이트에서 시작됐다. 그들이 만든 <트루먼의 진실>은 트루먼 스쿨에 다니는 학생이라면 누구나 익명으로 접속해 무엇이든 표현할 수 있는 사이트다. 그 안에서는 인기가 있건 없건 누구라도 자유롭게 학교에 대한 비판을 하거나 자신의 창작물을 올리고 서로 고민과 의견을 나눌 것이라 생각했지만, <트루먼의 진실>을 달군 것은 '익명'의 누군가가 올린 폭로였다. 

 '트루먼 스쿨 악플 사건'은 잘 읽힌다. 책에 붙은 놀라운 기록들이 이해가 가는 재미다. 일단 아이들에게 재미있게 느껴지고 읽기 쉽게 다가간다는 것이 청소년 도서가 가져야 할 기본 소양이니까. 꽤 오래 전에 나왔음에도 지금 읽어도 어색하거나 시기가 지났다고 여겨지지 않는 점도 좋다. <트루먼의 진실>이라는 사이트는 에타나 조금 더 넓게는 블라인드 같지 않나 생각했다. 그렇다면 제이비와 아무르가 생각해 낸 이 익명의 사이트는 누구나 빼들어 아무데나 혹은 아무나 찌를 수 있는 무기를 만들어내기로 한 것이나 다름없이 여겨졌다. 서로 가진 정보를 나누고, 소소한 교류를 위해서 만들어진 사이트들이 지금 어떻게 되어 있는지 보면 <트루먼의 진실>이 없이도 '익명성' 뒤에 숨은 사람들이, 심지어 성인들마저도 얼마나 추해지는지 안다. 

 책을 읽으면서 인터넷에서 이루어지는 폭력에 대해서 경각심을 갖게 되는 한 편, 현실에서 직접적으로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인물들이 나올 때마다 어딘가 더 불편한 느낌이 들었다. 특히 트레버가 고작 인터넷에서 악플이 조금 달렸다고 난리가 난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겠다(35)고 할 때, 정말 최악의 사건(75)에 대해 말할 때 순간 릴리를 향해 가해지는 폭로나 악플의 고통을 자신도 모르게 '무엇이 더 고통스럽나' 비교하게 됐다. 뭐가 더 낫고 나쁘고를 따져서 누구의 괴로움은 이 정도고, 누구는 참아도 되고, 누구는 괜찮고 평가하려고 했던 것일까. 릴리에게 가해지는 폭력과 릴리가 저질렀던 잘못들을 비교해보면서 지금 이렇게 고통스러운 건 네가 잘못했었기 때문이라고 탓하고 책임 지우려는 마음이 생겼다. 눈에는 눈으로 반드시 갚아야 정의가 실현되는 것이 아닌데. 

 내 생각이 복잡해지니 책을 읽고 난 뒤에 아이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떻게 감상을 정리하게 될지 궁금해져서 미래인 출판사 도서 소개에서 본 <독후활동지>가 떠올랐다. 온라인 서점에 등록해두었다고 해서 찾아보았는데 다양하게 책 내용을 되짚어 보고 핵심 주제를 토론하며 정리해 볼 수 있는 질문들이 기대보다 알차게 들어있어 좋았다. '릴리가 혼자 있는 동안 어떤 마음이었을 것' 같냐는 질문을 보니, 책을 읽으면서 문득 영화 [올드보이]를 떠올렸던 것이 생각났다. 주인공 오대수가 과거에 저지른 잘못으로 원한을 사 15년 동안 감금되어 군만두만 먹으며 지낸다. 그는 그 안에서 대체 누가 무슨 일 때문에 자신을 가두었을까 자신의 지난 악행을 되짚어가며 적기 시작한다. 릴리도 혼자 있는 동안 대체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되짚어보지 않았을까. 이 밖에도 좋은 질문이 많으니 <독후활동지>도 함께 활용한다면 도움이 되겠다.   

 " [제이비] 내 말은, 릴리처럼 남자라면 어쩔 줄 모르는 애가 어떻게 레즈비언이냐는 거다. 106
 [브리아나] 릴리가 남자 친구 도둑이란 걸 다들 모르지는 않겠지? 40"
앞서서 '트루먼 스쿨 악플 사건'의 장점 중 하나로 재미를 꼽았는데, 이런 막말을 거리낌없이 하는 인물들이 나오고, 관계에서 배제되지 않으려는 치열한 다툼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자극적인 면이 흥미를 더한다. 
 " "너는 이 글이 남들에게 알릴 만한 가치가 있는지 정말 깊게 생각해 봤니?"
 "거기까지는 생각 못 했어요."
 "그렇다면 그걸 지워야지. 네가 그 일을 계속할 거라면, 엄마는 모든 글과 그림, 사진, 투표, 그리고 댓글까지 뭐 하나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해를 끼치는 것이라면 모두 지우라고 하고 싶다."
 "그렇게 되면 남는 게 거의 없을걸요."
 "그러면 사이트 전체를 폐쇄해야지." 166"
분명 읽고 난 뒤에는 이렇게 교훈을 남기는 책이긴 하지만, 재미와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이 이미 고전이 된 하이틴 영화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다. 실패하지 않을 탄탄한 이야기와 클래식한 소재들이 잘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이 왜 아직 영화로 안 만들어졌을까 궁금할 정도다. 

 재미와 의미를 모두 잡은 책이니 여름방학을 맞아 책을 한 권 읽어야 한다면 '트루먼 스쿨 악플 사건'으로 시작해도 좋겠다. 이 책을 재밌게 다 읽었다면 또 다른 이야기로 넘어갈 수 있는 힘이 생긴 것이니, 힘내서 책과 함께 여름을 보내는 청소년들이 더 많아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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