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죽기 좋은 날입니다 - 어느 교도소 목사가 가르쳐주는 인생의 교훈
카리나 베리펠트.짐 브라질 지음, 최인하 옮김 / 다산초당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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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생은 축복입니다. 허비하지 마세요. 할 수만 있다면 언제든 좋은 일을 하고, 무엇이든 용서하세요. 그리고 그렇게 한 후에는 넘어가세요. 이번 생에서든 다음 생에서든 말이죠. 17"

 처음엔 흥미로 시작을 했는데 책을 읽으며 생각이 많아졌었다. 형목인 짐이 사형수들을 만난 이야기를 옮겨놓은 것이라 그가 비밀유지계약을 위반하고 털어놓은 얘기들은 누군가를 죽이고, 강간하고, 돈을 빼앗고, 또 죽인 사람들이 나왔다. 짐은 그들이 어떤 죄를 저질렀는지 알지만 그들의 태도에 따라 때로 동정을 보이기도 한다. 어린 소녀를 납치해서 끝내 죽이고 유기한 범인이 교도소에서 다른 수감자들에게 강간당하지 않으려고 제대로 씻지도 않고 버텼다(제임스 오토 에어하트229)는 얘기를 읽다보면 276명 중 어떤 누구라도 동정심을 보일 필요가 없게 느껴진다. 

 짐은 형목으로써 사형수들을 만나는 일에 자신의 소명과 가치를 느꼈다고 하는데 그가 일적으로 성취를 얻어감에도 가정에서 아내와의 관계는 돌이킬 수 없을 지경에 이르는 상반된 모습은 이 일이 중요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짐에게 있어 그 자신이  의식했던 하지 못했던 내면의 충격을 주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많은 사람들이 사형수들이 죽기 전에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 혹은 어떤 말을 남겼는지 궁금해하지만, 실제로 누군가의 정해진 마지막을 인도하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어린 시절부터 청년기까지의 시간을 숨김없이 드러내면서 짐이 완벽하게 선한 존재는 아님(인생 최악의 실수 138)을 밝힌다. 특히 아내와의 관계에서 '지금은 아니지만 과거에는 그랬다'며 자신의 지난 잘못과 그로인한 불만과 불화를 같은 방식으로 여러번 언급하게 되는데, 아내에게 돈을 많이 주고 싶었다던 트럭운전사(벤저민 보일 192)의 핑계를 보는 순간 그와 짐이 닮아보였다. 어쩌면 카리나가 피해자들을 찾아다니는 것처럼 그도 누군가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을 찾아다니는 것이 투영과 극복의 과정이었을까 생각해본다. 

 전혀 생각지 못했던 부분이자 또 하나의 불편한 내용은 사형수들이 짐의 앞에서는 자신의 범행을 시인했다가도 다른 사람들 앞에 서는 마지막 순간에 다시 거짓말을 한다는 것이었다. 그동안 영화 같은 곳에서 그 마지막 길을 걸어가는 '인간적인' 면모의 사형수들을 보여주어서 였을까, 같은 인간이라고 착각하고 있었던 탓일까 자신이 저지른 일을 끝내 부정하거나(칼 존슨 주니어 51/댈러스 소년 197), 어떻게든 판결을 피해보려고 거짓된 연기를 하는(후안 소리아 173) 사례들을 보고는 이러다 옥장판도 사겠구나 싶어 경각심을 잃지 말아야겠다 싶었다. 

 이런 비인간적인 범죄자들을 수백명 만나오면서 인간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았다는 점이 놀랍고 또 믿기 어렵다. 그는 스스로가 좋은 사람이거나 대단한 일을 한 사람이라고 평가되기를 마다하는데 그 겸손이 마음에 들면서도, 차분하고 예의 바른 태도를 가졌다거나 지난 범죄를 뉘우치고 신 앞에서 회개했음을(트로이 패리스 258) 이유로 누군가를 구해주고 싶었다는 마음을 내비치거나 좋은 평가를 할 때는 날 선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 자신으로서가 아니라 그저 그런 사람이 아니도록 만들어주는 자리(70)에 있기 위해서 보인 페르소나가 아닐까 의심했다. 

 책은 죽기 좋은 날보다 살기에 더 좋은 날을 말하며 이들의 길고 긴 대화의 끝을 맺지만, 사람과 죄, 용서, 사형제도 같은 문제들에 대한 긴 꼬리를 남겨두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인생을 낭비하지 말고 용서와 긍정으로 나아가며 살아가라는 조언을 가장 진하게 새겨주었다. 요즘처럼 흐린 날이 변덕스럽게 계속되는 때에, 곧 다가올 뜨거운 여름을 앞두고 내면을 고취시킬 수 있는 도움을 줄 수 있는 책이다. 흥미를 의미로 바꾸어주는 '오늘은 죽기 좋은 날입니다'를 만나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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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 개정증보판
홍세화 지음 / 창비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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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이제 읽게 되다니. 한번 들으면 잊혀지지 않을, 그리고 워낙 유명한 제목을 가진 이 책을 사실 살면서 한 번은 읽게 되리란 예감은 있었다. 그게 지금이었다니, 잊혀지지 않는 제목이 결국 책 앞으로 나를 이끌 줄 알았다며 책을 펼쳐든 욕심에 변명을 달았다. 무슨 노래와 함께 들어야할지 읽기 전부터 사실 그 고민이 앞섰다. 출판사 소개글에 어떤 노래와 함께 이 책을 읽을 것인지 물음이 있었다. 책을 읽기 전에는 막연히 프랑스나 택시와 관련된 노래여야 할까 싶다가 책을 읽으면서는 '지금도 마로니에는 피고 있겠지 ...'하는 노래가 대체 어떤 곡이길래 궁금해 들어봐야 하나 싶었다. 읽고 나서는 글쎄, 모르겠다. 

 '갈 수 있는 나라, 모든 나라. 갈 수 없는 나라, 꼬레.' 떠나올 적 영영 돌아가지 못하리란 것을 모른채 모국을 잃어버린 망명자의 신분이 된디아스포라의 비애와 자조적 애수가 담겨 있었다. 그 상실이 얼마나 절절한지 그러나 얼마나 유려히 쓰여졌는지, 순식간에 살이 베여 아픈지도 모른 채 생채기를 바라보는 기분이 들었다. 지난 세기에 쓰여진 글이 지금까지도 회자될 수 있는 이유를 몇몇 대목에서 이해할 수 있었는데 자본주의, 자본의 논리에 대해 지적한 내용이 인상깊었다. '주는 것은 곧 마이너스니까 손해 보는 것, 더 나아가 패배하는 것이라고 인식하여 되도록 주진 않고 마냥 받으려고만 하는 것(168)'이란 관점이 현대사회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혐오, 누구도 손해보지 않으려는 관계맺기를 꿰뚫는다. 

 "너희 나라에 꾸데따는 일어나지 않니?"
나의 갑작스럽고 또 엉뚱한 질문에 그는 어리둥절해하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글쎄, 일어날 수도 있겠지. 알제리를 포기하려는 드골에 반대하여 그를 죽이려는 기도도 있었으니까. 그런데 그런 일이 일어나려면 미친 장군이 있어야 하고, 또 일이 벌어져도 바로 시민들이 모두 들고일어날 테니 몇 시간이나 지탱할 수 있을까?" (110)
 그리고 또 하나 책을 읽다 문득 멈춰선 일화였다. 그가 건너 들었던 프랑스의 모습이 지난 24년 12월 한국에서 실제로 일어났다. 수십년이 지난 지금 벌어져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난 것은 유감이지만, 마치 이를 지켜본 듯한 삐에르와의 대화를 그가 떠올렸다면 123 비상계엄 사태에 대해 어떤 생각을 했을까.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는 깨어있는 지식인의 모습과 구시대의 사회적 인식의 한계가 번갈아 드러나며 묘한 느낌을 받았다. 과연 과거 세대에 비하면 현 세대의 2030층은 미성숙하다. 개개인은 과거에 비해 인격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주체는 약하고 대다수가 고등교육을 받았음에도 의식이 심어질 바탕조차 다져지지 못했다. 대신 사회적 인식은 전에 비해 향상되었는데 여성의 역할과 권리에 대한 변화를 책을 읽으며 느낀 불편함으로 확인했다. 다른 하나 재미있는 감상을 한 부분은 '오오까의 밀감(277)'과 '개똥 세 개(303)'이다.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된 이야기인데 명료하고 재미있는 내용이 마음에 들었지만, 갑자기 끌려나와 심한 추궁을 받아야 했던 나오스까에게 많은 생각이 머물렀다. 겁에 질린 채 거짓말을 지어낸 스스로가 수치스럽지 않았을까. 사실은 거짓된 판이었음을 밝힌 오오까의 사과를 받으면서, 그는 세번째 개똥을 입에 넣은 기분을 느끼지 않았을까. 개똥 세 개가 있다면 그 세 개를 다 자기 입에 넣어야 할 사람은 짧고 명료한 이야기를 두고 한동안 곱씹었다. 

 2000년대 초반 즈음 똘레랑스라는 단어가 유행처럼 번졌던 기억이 난다. 오래 전 일이라 확실하진 않지만 아마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로 인한 여파가 아니었나 짐작해본다. 그때 주워들어 박힌 인식으로 똘레랑스=관용 이라 단어 암기가 되어 있듯 했는데, '관용이라기보다 용인이며 화이부동(400)'임을 강조하는 의미를 이제 다시 천천히 알아갈 수 있었다. 확실히 '차별과 혐오의 한국 사회를 다시 한 번 각성시킬'만한 울림을 가진 책이었다. 물론 다 이해하지 못한 것 같아도 걱정할 필요는 없다. 저자가 친절히 낙오된 독자를 다시 이끌어 줄 것이다. "그럼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똘레랑스란...(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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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켄슈타인 책세상 세계문학 13
메리 셸리 지음, 정회성 옮김 / 책세상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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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조주여, 
제가 간청했습니까, 진흙을 빚어 저를 인간으로 만들어달라고?
제가 애원했습니까, 어둠에서 저를 끌어내달라고?
- 존 밀턴, [실낙원] p7 " 

 처음 도입부를 보고 불현듯 기시감을 느꼈다. 워낙 유명한 문구라 전에도 본 기억이 있다. 하지만 지금 이 문구를 앞에 두고 보니 전과 다르게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요즘 종종 볼 수 있는 파괴적이고 굴절된 말이었다. '낳음당했다' 반출생주의라 칭해지는 기록적인 출생율 저하의 시대에 가난 혐오가 더해져 '돈이 없으면 아이를 낳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방송에서는 성인 진행자가 어린 출연자들에게 부유하지만 화목하지 못한 가정 환경과 가난하지만 화목한 가정 환경 중 어떤 조건을 고르겠냐고 묻고 그 대답을 그대로 송출한다. 물질적 조건을 앞세우는 것에 부끄러움이 없어지고 물질이 없는 것을 부끄러워 하는 사회가 되더니, 남과 비교하여 유복하지 못한 가정환경에서 태어나게 했다는 이유로 '낳음당했다'는 말을 쓴다고 한다. 경제적 요인으로 시작된 '낳음당했다'는 혐오표현은 개인이 가진 신체, 정신적 문제들이 더해져 확산된다. 그리고 이 정서는 넓고 얉게 퍼져나가 사회의 복지와 구조가 기성세대나 혹은 어느 한 성별에게만 유리하게 조성되어 피해를 보는 세대로 스스로를 위로하는 일부 집단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다시 '프랑켄슈타인'에서 마주한다.   

 '프랑켄슈타인'을 보면서 소설의 내용 그 자체에 빠져들지 않은 것은 아니다. 갖은 미사여구 속에서도 점점 짙어지는 갈등과 긴장감에 몰입하기도 하고, 괴물이자 악마로 불린 빅토르의 창조물이 처한 처지에 동정이 일었다. 특히 2권의 2장에서 마침내 빅토르와 창조물이 서로 마주하여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서 창조자에게 버림받고 세상에 상처 입었음에도 여전히 '선의와 동정을 갈구하는(137)' 창조물의 태도에 '유창한 말솜씨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298)'던 빅토르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깊은 안타까움을 느꼈다. 어쩌면 지금보다 더 이전에 마음이 여렸던 때라면 괴물이라 불리는 추한 외모의 창조물의 고독과 괴로움에 더 초점을 맞춰 깊이 공감하고 동정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읽어갈수록 그의 면면에서 어쩐지 지금 우리 사회의 병폐들이 보임을 외면할 수 없었다. 책을 읽고 있던 어느 주말, 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을(그것이 알고 싶다 1442회 소년의 시간 - 사천 크리스마스 살인 미스터리 편) 보는 순간 읽는 내내 찜찜했던 요인들이 하나씩 다시 눈에 들어왔다. 

 그 티비 프로그램을 통해 창조물이 처음 '보호자들(168)'이라 부르던 오두막 사람들에 대한 동경, 오랫동안 지속된 일방적인 관계 맺음과 망상, 스토킹이나 다름 없는 행위가 현실에서 좌절되었을 상황이 연상되었다. "보호자들이 떠남으로써 나와 세상을 이어주던 유일한 연결 고리는 끊어져버렸다. 주체할 수 없는 복수심과 증오심이 내 가슴에 가득 메웠다.(193)" 그리고 이 굴절된 관계 맺기에 대한 욕망과 좌절의 분노는 소설에서는 그들이 남기고 간 오두막의 파괴로 표출되고, 현실에서는 망상의 대상에 대한 보복 살해 후 자해-그러나 결코 자살로 이어지지 않는-로 드러난다. 그리고 괴물/악마는 여전히 살아서 또 다른 비논리적 권리를 욕망한다. "나는 인간의 탈을 쓴 다른 존재에게서 받으려고 헛되이 애썼다가 아무것도 받지 못한 정의를 당신에게서 얻어내기로 결심했다.(195)" 애써서 노력하면 받을 수 있는 정의로 표현되는 것, 현실의 범인은 심신미약과 어린 나이의 청년이 앞으로 살아가야 할 미래 등을 이유로 감형과 사회로의 재편입을, 소설 속의 창조물이 빅토르에게 요구하고자 하는 것은 '아내' 또 다른 여성 창조물이다. 

 창조물이 빅토르에게 요구한 것이 아내라는 점은 재미있다. 처음 창조자나 낯선 이들, 보호자들과 관계 맺기를 갈구했음을 떠올려 빅토르에게 자신을 인정하고 받아들여 달라고 요구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는 더 나아가 자신을 위한 아내를 만들어달라고 한다. 심지어 그 때하는 말마저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 "세상의 어떤 남자든 가슴에 품을 아내가 있고, 심지어 짐승도 저마다 짝이 있는데 왜 나만 혼자여야 한단 말인가?"(239)" 남자에게 아내가 반드시 주어지는 필수요소가 아님도, 심지어 그 짐승들조차 수많은 수컷들은 짝을 이룰 기회를 얻지 못함도 고려하지 않는다. 그동안 만난 모든 이들에게 외면 당했음에도 자신에게 주어질 여성에게서 외면 당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은 전혀 염두에 두지 않은 채다. 처음 창조물의 요구에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이기심으로 그를 승낙했던 빅토르는 이내 이성을 차린다. 창조물이 '요구한 여성 창조물'은 '아직 아무런 약속을 하지 않았(235)'음을 깨닫는다. 그녀에게도 사고 능력이 있고, 남성 창조물과 빅토르 사이의 계약에 책임이 없으며, 그녀가 무엇을 열망하게 될 것인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여성에게도 자유 의지가 있다는 것을 인식한 것이다. 

 여기서 현실의 결혼문제가 끌려나온다. 남성들이 사회와 여성에게 불만을 품은 지점이 맞물린다. 성비불균형과 결혼기피현상, 성별 갈등이 심화되어 결혼상대자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현 상황에서 창조물과 비슷한 몇 가지 문제적 태도를 보인다. 여성들의 결혼에 대한 인식과 태도 변화를 맹비난하여 성별 갈등의 심화를 초래하거나, 사회에 이 문제를 해결할 방안을 내놓고 자신들을 구제하기 위한 도움(여성 교육, 사회 진출 제한, 조혼 장려 등의 극단적 방안을 주장하기도 한다)을 줘야 한다고 요구한다. 실제로 이와 비슷한 의도를 가진 정부의 대책 방안*이 공개되어 논란이 된 적도 있다. 하지만 이런 시도는 해결 방안이 될 수 없다. 여성이 환경과 조건에 떠밀리지 않고 스스로의 의지로 결혼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인식은 빅토르가 여성 창조물을 남성 창조물에게 만들어주기 전 깨어난 '이성'으로, 아직 책 안에서는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들보다 경제적으로 낮은 처지에 있는 상대자를 찾아 '금전적 보상을 댓가'로 결혼 상대자를 구매해오게 변질된다. 하지만 빅토르의 예상대로 그들이 찾은 결혼 상대자들 중 일부는 '여자가 떠나면 어떻게 될까?(236)'는 질문에 대한 답을 보여준다. 

 창조물은 사랑받고 선택받지 못함을 대상 뿐 아니라 사회를 향한 공격으로 표출한다. 그것도 애초에 본인이 인정을 갈구했던 대상 창조자인 빅토르가 아닌 그 주변인들을 공격함으로써 대상을 압박하고 자신이 원하는대로 행동하도록 조종하려 한다. 사귀던 사람이 관계를 정리하려고 할 때 이에 대한 보복으로 가족까지 해치겠다고 협박하는 범죄의 패턴과 닮아있다. 빅토르의 거절을 거절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창조물은 계속해서 강조한다. 처음부터 나는 나쁜 존재가 아니었다, 누군가 나를 받아주고 기댈 사람만 있다면 나쁜 행동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를 나쁘게 대하는 사람들이 더 나쁘다며 자신의 악한 행동에 대한 원인을 외부로 돌리기 바쁘다. "세상에 있는 수 없이 많은 사람 중에 나를 불쌍히 여기거나 도와줄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런 몰인정한 사람들을 무턱대로 호의적으로 보아야 할까? 말도 안 된다! 나는 그 순간 인간이란 종족, 특히 나를 만들어내 도저히 참기 힘든 고통의 구렁텅이로 처박은 그자와의 끝없는 전쟁을 선포했다.(191)" 

 그리고 창조물과 빅토르 사이의 관계는 현대사회에서 다시금 되살아나 피해를 입고 있는 젊은 세대와 기성세대의 구도를 가진다. 창조물은 빅토르의 존재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한다. "너에 대한 나의 지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계속 살아 있어라. 그러면 내 권능은 완벽해질 것이다. 나를 따라와라. 나는 끝없이 펼쳐진 북극의 얼음 바다로 갈 테니까. 나는 거기에서도 아무렇지 않지만 너는 추위에 고통을 받을 것이다.(293)" 빅토르가 자신을 쫓고 있다는 사실, 빅토르의 목표가 자신이 되었다는 사실에 창조물이 생의 의미를 두는 것은 점차 사회문제로 대두되는 캥거루족을 연상시킨다. 단순 거주지를 독립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닌 장기 불황에 일자리를 얻지 못한 지난 세대가 7~80대 부모의 연금에 기대 4~50대가 될 때까지 근로소득없이 살아가는 일본의 '패러사이트 싱글' 문제*와 닮아있다. 부모가 죽고 나면 소득원이 사라져 남은 자녀의 생계 수단이 끊기게 된다는 점이 빅토르의 죽음 이후 창조물도 생의 의지를 잃고 사라져버린다는 결말 마저 닮았다.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프랑켄슈타인'이 이런 식으로 읽히게 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처음 '프랑켄슈타인'을 읽을 때까지만 해도, 이런 서평을 남기게 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이전에 어린이용으로 각색된 내용으로 접했을 때는 별다른 인상을 남기지 못했던 작품이고, 나중에 어떤 내용인지 줄거리를 알았을 때도 큰 매력을 느끼지 못했었다. 창조물 이름이 프랑켄슈타인이 아니라 창조자의 이름이라는 것을 알고 나서도 괴물 혹은 이것저것 이어붙여 만들어진 것을 비유적으로 지칭할때 여전히 프랑켄슈타인이라 부르기도 했다. 하지만 이렇게 완역본으로 다 읽고 나니 그 전과는 다른 감상을 할 수 있어서 좋았다. 작품이 가지고 있는 재미는 물론이고 나름의 생각을 덧붙여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2017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제13차 인구포럼의 저출산대책 일부 내용이 드러나 논란이 된 적이 있다. '여성의 하향선택결혼을 유도하기 위한 문화적 콘텐츠 개발이 이루어져야 함. 이는 단순한 홍보가 아닌 대중에게 무해한 음모수준으로 은밀히 진행될 필요가 있음' 

*2019년 일본 도쿄에서는 이로 인해 존속 살인이 일어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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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라도 전주 - 전주의 멋과 맛과 책을 찾아 걷다 언제라도 여행 시리즈 1
권진희 지음 / 푸른향기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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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누가 책을 보고 여행 계획을 짜나요. 핸드폰 하나로 해결하지. 물론 나도 종종 그런다. 하지만 정보만을 얻을 때가 아니라 감성까지 챙길 때는 책만이 주는 고요하고 느릿한 매력이 있다. 언젠가 여행을 가면서 개인적으로라도 기록을 해볼까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 계획과 동선, 비용을 기록하고, 사진 찍고, 소소한 경험과 감상을 잊어버리기 전에 적어두고, 심지어 그것을 보기 좋게 정리하는 과정은 보통일이 아니었다. 그때 여행책을 가볍게 여겼던 것을 크게 반성했다. 이런 꼼꼼한 사람들이 날 길 위로 이끌어 낯선 곳에서 잠들게 할 수 있었구나 깨달았다.  

 기억하기로 전주를 서너번, 확실하진 않지만 대여섯번은 다녀왔으리라.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지역을 여행을 목적으로는 적지 않게 다녀왔다고 생각한다. 나의 의지가 반영되지 않은 방문을 제외하고 전주를 다녀온 가장 첫 기억은 '내일로'라는 기차 여행 상품을 이용한 방문이다. 어설프고 시간은 없는 여행자가 그렇듯, 전주에 도착하자마자 육회비빔밥을 비비고, 초코파이를 몇 개 사먹고, 전동성당과 한옥마을에서 인증 사진을 찍고, 밤에는 막걸리골목에 갔다가 다음날 해장으로 콩나물국밥을 먹었다. 오래 전 기억인데도 뭘 먹었나 떠올려보니 선명히 기억나는 동선이다. 기억을 떠올려보니 더욱더 반드시 '언제라도 전주'를 읽어야되는 사람이 나구나 싶어졌다. 

 책을 읽다 마주치는 풍경들에 놀란다. 전주가 이런 곳이었나? 분명히 몇 해 전에도 갑자기 콩나물국밥이 먹고 싶다고 전주에 가서 콩나물국밥 박물관까지 관람하고 돌아왔는데, 건지산 둘레길이나 전주수목원의 풍경 앞에서 그동안 눈은 어디에 두고 입으로만 여행을 해왔나 민망해진다. '언제라도 전주'는 특히나 눈을 통한 여행을 '2부 책 여행'이라는 순서로 하나 더 강조해두고 있어 특별했다. 즉흥시를 지어주는 책방 '조림지'의 이야기를 만났을 때는 보던 책을 내려두고 언제 전주에 내려갈 일정이 비어 있을까 성급히 달력을 확인했다. [시가 돈이 된다는 걸 보여주겠다]라니 정말 멋있다. [손님이 주무시는 시간에도 육수는 끓고 있습니다]는 말처럼 좋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여행의 가장 큰 핵심은 '음식'이다. 어떤 책들은 그 내용을 미리 알게 되는 것이 싫어 굳이 목차를 읽지 않고 넘어가지만, '언제라도 전주'를 손에 넣자마자 확인한 것은 목차였다. 그리고 마침내 '3부 맛 여행'에서 원하던 내용을 확인하고 이 책의 신뢰도를 상향 조정하기로 마음 먹을 수 있었다. 그동안 입만 달고 여행다녔나 반성했다지만, 남의 결혼식장 가서도 결국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식사인 것처럼 아무래도 먹는 것을 소홀히 할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1부나 2부의 내용보다 3부의 분량이 조금 더 많았던 것이 가산점을 얻어내었다. 급한 분들은 일단 3부의 내용을 확인하고 여행을 떠나면 됩니다.   

 여행보다는 생활이 살아온 흔적이 가득한 애정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내가 이 도시를 이렇게 아끼고 사랑하며 살아왔는데, 좋은점이 가득합니다.하고 자랑하듯 소개하듯 보였다. 그 마음이 전해져서 '언제라도 전주'를 믿고 전주로 떠나면 아쉬울 일은 없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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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지의 힘 꿈꾸는돌 42
이선주 지음 / 돌베개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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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 나 좋아하냐?" 
유익표는 상대를 모욕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p14" 

 가만히 읽으려고 했는데 참지 못하고 웃음이 터졌다. 쉽게 마음을 열고 웃어주지 않으려 했는데 금방 웃어버려 왠지 모르게 자존심이 상했다. 걱정했던 익표와 여준이는 학폭이 아니었고 3년 동안 삐지고 달래던 사이가 회복됐으니 안심이었는데, 어른의 색안경도 함께 빠지는 장면이었다. 애들은 잘못이 없다. 어른이 문제였다. 하지만 익표의 잘못은 분명했다. " 애들은 유익표가 하는 말은 다 거짓으로 들었기 때문에 유익표가 나와의 사이를 인정하자 우리 둘이 아무 사이 아니라고 확신하게 됐다. 뜻밖의 효과였다. p127" 익표야, 대체 어떤 삶을 사는거니? 

 매번 웃음이 터지는 것은 아니지만 '검지의 힘'은 정말 재밌다. 게다가 그 안에 감동도 가득하다. 이렇게 짧고 잘 읽히는 글 안에 재미와 감동, 게다가 현실적인 고민들까지 다 채워넣은 이 장르를 어떻게 안 좋아할 수가 있을까. 막상 청소년 시기에는 반드시 읽어야 할 현대문학과 고전 명작, 머리 터지는 SF, 자극적인 추리소설 같은 것을 읽느라 몰랐던 것이 아쉽다. 살짝 유치한 것 같으면서도 어설프게 요즘 유행하는 말 같은 걸 끼워넣지 않은 덤덤함도 매력이다. 정말 추천해주고 싶은데 주변 아는 청소년중에 책을 좋아하는 청소년이 드물다는 것이 안타깝다. 

 " 슬정아가 웃었다. 슬정아처럼 잘 안 웃는 애들의 장점은 한번 웃을 때마다 상대방에게 뿌듯함을 안겨 준다는 데 있다. 내가 웃겼어, 하는 뿌듯함. 성적이 오를 때보다 남을 웃길 때 더 큰 희열을 느낀다. p43" 책 읽다가 깜짝 놀랐다. 광대 역할을 하느라 전에는 몰랐는데 나중에 깨닫고 보니 남들 얘기에 웃어주는 역할이 추구미였다. 이루질 못해서 그렇지. 웃기는 애는 우스운 애 되기도 쉽다는 씁쓸한 현실과 웃기는 애보다 웃어주는 애가 더 매력있게 보인다는 사실을 다 웃기고 나서 알았다. 잠깐의 뿌듯함 때문에 지은 수치의 산이 백두산은 아니어도 동네 뒷산 만큼은 된다. 남은 생은 평탄화 작업 하는데 써야지. 

 '검지의 힘'에서도 이별이 나오는데, 하지와 영인의 이야기를 읽다가 며칠 전 사거리 횡단보도 한 가운데서 우연히 친구를 만났다고 반가워 펄쩍 뛰어오르며 소리를 지르던 여고생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사람은 언제 늙고 어른이 되는가 했더니 그 모습이 풋풋하고 예뻐보이면 그때 되는가보다 싶기도 했다. 요즘은 길다가 학생들이 웃고 떠드는 모습을 보면 그게 그렇게 예뻐보인다. 어두운 골목길에서는 좀 무섭고. 나에게도 그런 친구들이 있던 때가 있었다. 하교할 때 헤어져놓고 동네 길목 어딘가에서 마주치기만 해도 반가웠던 얼굴들, '야'하고 뛰어가 온몸을 내던져 서로를 안으며 반겼던 투명함. 

  그렇게 세상 영원할 줄 알았던 친구들과 어느새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지금이 책을 읽으며 차례대로 '강물처럼 흘렀다'(3. 우정은 강물처럼 흐른다). " 초등학교 3학년에 만나 고등학교 1학년까지 나의 부모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했던 친구가 떠나간다. 나비와 함께 나의 일부도 떠나보낸 듯 공허했다. 그러나 따라갈 수는 없다. 친구는 그곳에서, 나는 여기에 남아 각자의 인생을 꾸려 갈 것이다. p123" 하지와 영인의 이별을 아름답고 성숙하게 보여주었지만, 현실에서는 아무런 준비도 예감도 없이 지나고보니 평범했던 그 날이 마지막 만남이 된 인연들이 많다. 자연스럽게 정리된 인연들이었지만 맛있는 것 사주고 좋은 말 해주고 꼭 한 번 안아줄 걸 아쉬웠다. 그저 가끔 마음으로나마 '친구의 미래에 영광이 함께 하기를, 나는 하늘의 구름처럼 온몸으로 친구를 축복(124)' 할 수 밖에. 

 청소년도서를 좋아하는데 가끔은 읽다가 지칠 때도 있다. 아주 작은 부분이 계기가 되어 잊고 있었던 과거가 떠오를 때다.  조금 기분 나쁘고 말았던 혹은 그때는 별 생각 없던 사소한 일들이 기억도 나지 않고 있다가 단 한 장면을 통해 떠오른다. 다른 책들을 읽을 때 개인적인 경험이나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청소년도서를 읽을 때 되살아나는 것들은 어쩐지 그중 가장 예리하고 연약한 부분을 찔러온다. 그때의 내가 그랬던 것처럼. 어쩌면 다른 소설들이 그냥 검지라면, 청소년도서는 특별히 힘이 센 검지라서 가끔 부주의하게 '검지의 힘'을 써버렸는지도 모르고. 하지만 찔릴 것이 두려워 읽지 않기엔 너무 재밌고 매력있는 책이다. 검지의 힘을 옮길 때처럼 간절하게, 이 매력을 전달하고 싶다. "(읽어)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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