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지와 왕국 알베르 카뮈 전집 개정판 4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 책세상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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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지와 왕국'은 카뮈의 유일한 소설집이다. 총 6개의 단편이 실려있는 '적지와 왕국'의 독특한 제목은 부조리로 가득한 ‘적지’에서 자기만의 ‘왕국’을 좇는 현대인의 삶을 그린다는 것에서 비롯되었다. 책을 읽으면서 이 제목이 가장 크게 와닿았던 두 작품이 [손님]과 [요나 혹은 작업 중인 예술가] 였다. 

 " 그는 불을 켜고 아랍인에게 식사를 갖다줬다. "자, 먹어." 아랍인은 전병 한 개를 집어 들고 부리나케 입으로 가져가다가 멈추었다. "너는?"하고 그는 말했다. "먼저 먹어. 나도 곧 먹지." 아랍인은 두툼한 입술이 약간 벌어지더니 잠시 망설였다. 이윽고 결심한 듯 전병을 덥석 깨물었다. 식사가 끝나자 아랍인은 교사를 건너다봤다. "네가 재판관이야?" "아니야. 내일까지 널 데리고 있을 거야." "왜, 그럼 나와 같이 식사하는 거지?" "배고파서." -손님 119"

 " "왜? 먹어." 
정우성 국수를 허겁지겁 먹는다. 함께 국수를 먹던 곽도원 수갑을 차고 불편하게 국수를 먹는 정우성을 본다. 
"손 줘봐." 
정우성의 수갑 한쪽을 풀어 자신의 팔에 채우는 곽도원.
"같은 편이다? 같은 편이야!" -영화 강철비 중"

 이 뒤로 이어지는 장면은 곽도원이 정우성의 팔에 남은 수갑마저 아예 풀어주는 모습이 나온다. 밥을 함께 먹는다는 것에는 이런 교류가 존재한다. 다뤼의 마음을 거북스럽게 했던 그 친밀감이 영화 [강철비]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결국 자신이 가야할 길을 가는 아랍인을 바라보는 다뤼의 마음처럼, 분절된 세계의 두 사람이 연대와 고독을 보여주던 영화의 내용도 비슷한 결말로 흘러갔음은 우연일까. 

  " 그때까지 살아온 것에 비하면 사막이나 무덤 속처럼 느껴지는 이 희미한 정적, 그리고 어둠 속에서 그는 스스로의 심장이 뛰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다락에까지 이르는 소리들은 그를 향해서 나는 것이었으면서도 이제는 그와 아무 상관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 집에서 깊이 잠들어 있다가 홀로 죽는다. 아침이 되어 전화 벨소리가 텅 빈 집 안에서 영원히 귀가 먹어버린 몸뚱어리 위로 요란하고 끈질기게 울려댄다. 그는 마치 그런 사람들과 같았다. 그러나 그는 살아 있었다. -요나 혹은 작업 중인 예술가 176"

 요나는 다락으로 들어간다. 그는 그림을 그리고 싶었고, 그를 방해하는 모든 것들에서부터 다락으로 벗어날 수 있었다. 요나의 화폭에 적힌 단어, 카뮈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고독 혹은 연대 어쩌면 그 둘 모두가 이 단편 안에 드러나 있다. 그리고 요나의 이야기 중 또 하나 그냥 지나치지 못한 부분이 있었다.  

 " 요나의 제자들은 요나가 그린 것을, 그리고 그것을 그린 이유를 그에게 오랫동안 설명하곤 했다. 그리하여 요나는 작품 속에서 스스로 생각해도 약간 뜻밖인 여러 의도와, 자기는 담아놓은 일이 없는 많은 것들을 발견했다. 그는 자신을 빈약하다고 여기고 있었는데, 제자들 덕분에 돌연 풍부해진 자신을 발견했다. -요나 혹은 작업 중인 예술가 149"

 최승호 시인의 일화가 떠올랐다. 그는 2004년 자신의 시로 출제된 수능 모의고사 문제를 풀었다 틀린 일화로 유명한데, 그의 작품 ‘북어’ ‘아마존 수족관’ ‘대설주의보’ 등은 수능 모의고사 등에 단골로 출제 돼 왔었다. 의도주의적인 해석이 무조건 옳다는 것은 아니지만, 의도와 다르게 오독되거나 확대되고 있는 상황이 쓴웃음을 짓게 하는 일이긴 하다.

 작품이 읽힌다는 것은 읽는 사람과 만나 새로운 시각을 통해 저마다의 생각으로 의미를 낳는 과정이라 생각했는데, 문득 그 안의 의도 역시 전달되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특히 이렇게 긴밀한 연결이 폭 넓은 이해와 사유를 거치길 필요로 하는 글에서는 더욱 그렇다. '적지와 왕국'의 후기를 적고 있는 동안에도 일방적인 의미 붙이기나 마찬가지의 상황이 반복되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고 생각하니 씁쓸하기도 하다.

 좋은 기회를 통해 알베르 카뮈의 '적지와 왕국'의 개정판을 먼저 만나볼 수 있었다. 출판사 책세상에서 카뮈의 전집을 개정판으로 출간하며 [시지프 신화]와 [반항하는 인간]의 북펀딩을 진행하고 있다. 국내 알베르 카뮈의 최고 권위자인 김화영 교수가 그 전권의 번역을 맡아 전세계 유일 한 명의 번역자가 번역한 판본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 특별하고 매력적이다. 11일이 마감인 펀딩은 이미 400% 가까운 금액을 달성할 정도로 관심을 끌고 있으니 서둘러 확인해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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