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우의 집
권여선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집 한 채에 얼마나 많은 식구들이 모여살았던 시절이 있었다. '토우의 집'만큼 오래전은 아니었더래도 나의 어린 시절도 그러했다. 우리 집 하나에 여섯 집이 들어 살았는데, 때때로 내 또래의 아이가 있는 집도 한두집 있었다. 원이나 은철이처럼 어울려 지냈으면 좋았을텐데 왜인지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 얌전히 지내야 하기도 했고, 다가가기에 숫기가 부족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런데 문득 한번 제대로 말도 나눠보지 않았던 그 어린 또래의 아이가 있던 게 떠올랐다. 아이들이 바글바글하게 뛰어다니느라 매일이 바빴던 어린 시절의 그 동네. 골목마다 무리지어 나이먹기를 하던 그 때. 옛일이 한숨처럼 떠오르는 소설이었다.

 

 난쟁이 식모가 손빠르게 일하는 우물집에 아이들을 때리지 않고, 제 남편을 사랑하는 새댁이 세들어 오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어딘지 남다른 새댁네는, 삼벌레고개보다는 삼악동에 살 것만 같은 특유의 묘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그 집 아이들은 영이 원이 그리고 희, 딸 셋인데 우물집 주인인 순분네 금철이 은철이와 또래가 맞았다. 금철은 새침하고 예쁜 영을 좋아해 곧잘 주변을 맴돌았고, 은철과 원은 서로 스파이가 되기로 약속하고 온 동네의 비밀을 함께 찾아다니는 등 어린 아이다운 모험을 하기도 했다.

 

 처음엔 그들의 지난한 삶이 이렇게 무거워지게 될 줄은 몰랐다. 그저 조금 지질하고 불편하지만 서로가 가깝게 사는 만큼 따뜻하고 엉뚱한 아이들이 이래저래 머리를 맞대로 자라는 만큼 재미있는 일들이 소소하게 펼쳐질 것이라 생각했는데, 불행의 전조가 점점 짙게 드리우면서 아아, 결국은 이렇게 되는구나. 싶게 우물집은 어둠에 삼켜져 버린다. 은철이의 앓는 소리, 자신을 잃어버리고 만 새댁, 말을 안하는 원이 모두를 신경써 우물집을 끌어안아야 했던 순분은 견디지 못하고 집을 팔아 우물집을 떠나기를 소망하기에 이른다.

 

 한 울타리 안의 두 가족이 캄캄하게 물들어가기 까지 너무나 단숨에 읽어내려 이렇게 금방 두 가족의 삶이 파괴되어도 되는 것일까 하는 생각에 골똘했다. 책장을 덮고 한참을 가만 있다가 다시 책장을 몇번 뒤적이며 어디서부터 이렇게 된 것일까 하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샤오홍의 황금시대 - 긴 사랑의 여정을 떠나다
추이칭 지음, 정영선 외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11월
평점 :
절판


 책을 받아들고, 분명 낯선 여류작가에 대한 책인데 왜 이렇게 귀에 익은 것처럼 느껴지는지 의아했다. 보다보니, 그녀의 이야기가 배우 탕웨이의 분으로 재탄생한 동명의 영화 '황금시대'가 개봉했었던 것이 떠올랐다. 그녀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는데, 천재 여류 작가인 샤오홍의 일대기를 자신이 연기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고, 촬영을 앞두고 그녀의 작품들을 읽으며 영화를 준비했다는 내용이 주였다. 그때 문득 그런 작가도 있었구나 하고 생각했었는데, 그런 그녀에 대한 책을 직접 읽게 되다니 또 새로웠다.

 

 샤오홍은 재능을 가진 여자로, 많은 재능있는 인물들이 그러했듯이 가까이서 보면 그녀의 삶은 그 재능과 그녀만의 열정이 가져다 준 희극이고 멀리서 보면 너무나도 짧고 강하게 빛났다 스러져버린 비극이었다. 사실 어떻게 보나 서른 한 살이라는 이른 죽음은 그녀의 삶을 비극에 좀 더 가깝게 만들지 모르지만. 샤오홍은 살아가면서 결국은 스스로의 의지대로 정해진 혼처를 버리고 도망을 가서 살거나, 자신의 재능을 발견해준 사람과 사랑을 나누게 되거나, 병이 들어 외로운 와중에도 끝까지 자신을 두고 떠나지 않은 두 남자를 만나 지냈던 일들이 본인에게는 삶의 매 순간이 변화와 운명이 흔들어대는 희망이거나 기쁨이었을 수 있어 그 여지를 남겨둔다.

 

 서른 한 살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뜨기까지 격변하던 당시 시대만큼이나 고난한 삶을 살았던 여자였던 그녀는 그럼에도 자신을 중국문학사에 천재 여류 작가로 이름 남길 번뜩이는 재능을 지녔다. 그 재능이 그녀를 사랑하는 남자들을 만들어냈고 또 그들로 하여금 그녀 곁에서 괴로움을 느끼거나, 그녀를 떠나가게 만들기도 했다. 책은 그런 그녀의 만남들을 끈기있는 눈으로 지켜보고 때때로 당시 그녀가 느꼈을 감정의 여백을 추측해내기도 한다. 책을 읽으며 때때로 그녀는 충분히 자유롭게 강렬하게 살았지만 만약 그녀가 더 자유로운 시대에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떠올리게 만든다.

 

 책으로 읽게 된 것도 세세한 흐름을 직접 짚어가며 볼 수 있어 좋았지만, 탕웨이가 찍은 영화의 스틸컷을 보니 읽으며 이럴 것이다 생각만 해봤던 샤오홍의 모습이나, 감정선이 마치 그 자체인 듯한 얼굴과 눈빛 속에서 살아있는 것처럼 여겨져 영화로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책을 읽게 되면 그 안에 몰입하여 읽었던 흔적 때문에 다른 창작물로 나온 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편이었는데, 샤오홍의 이야기는 그녀가 살았던 시대나 그녀 주변의 상황에 대해 일일이 떠올리기 힘들었던 부분도 있어서 그런지 영화의 스틸컷들을 찾아본 것이 다시 감상을 정리하는데 도움이 많이 된 편이다. 책의 표지에 있는 샤오홍의 사진을 보다 탕웨이가 분한 그녀의 모습을 보면 또 그 눈빛이 어딘지 모르게 잔상이 남아 비슷하게 여겨져 몰입이 잘 되는 면도 있었다.

 

 기회가 된다면 영화로도 그녀의 삶을 다시 한 번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더불어 그녀의 작품들도 읽어보고 싶어졌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미인초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5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4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몇 번을 더 해 읽으면서 이제, 소세키의 글에는 좀 익숙해졌구나 싶었다. 익숙해졌다고 생각하니 사실 조금은 읽기에 나태해진 면도 있던 것 같다. 가장 느린 호흡으로 중반을 다다르니 마치 히에이잔에 오르다 지친 고노의 심경이 되살아난다. 산에 오르는 것 같이 벅찬 호흡으로 첫 부분을 읽었던 것 같다, 나는.

 

 소세키만의 표현법이라고 해야할지, 대체적으로 길고 긴 서술의 끝에 간신히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말하자면 방이 하나 있다, 소세키는 자신이 보여주고자 하는 그 방의 크기부터 시작하여 벽지의 색, 놓여진 가구의 위치나 빛이 들어오는 모양을 천천히 짚어 설명해주고 난 뒤에야 그래서 그 방에서 찾고자했던 인물이- 혹은 물건이 거기에 있었다고 말하는 식이다. 거의 매 장면이 그러한데, 책의 중반정도 가보니 어느 정도 서술이 시작되면 금새 그 방의 윤곽이 잡히고 이번엔 무엇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지 설명이 귀에 들어오게 된다. 그 뒤부터는 금방이었다. 정상을 지나 내려가는 길만 남은 것처럼 빠르게 지나간다. 그리하여 곧 내려오는 끝이 아쉽게 느껴진다.

 

 [다른 두 세계는 8시발 밤기차에서 뜻하지 않게 엇갈린다.

 내 세계와 내 세계가 엇갈렸을 때 할복을 하는 일이 있다. 자멸하는 일이 있다. 내 세계와 다른 세계가 엇갈렸을 때 둘 다 무너지는 일이 있다. 부서져 날아가는 일이 있다. 혹은 길게 열기를 끌며 무한한 것 속으로 사라지는 일이 있다. 생애에 한 번 굉장한 엇갈림이 일어난다면 나는 막을 내리는 무대에 서는 일 없이 스스로가 비극의 주인공이 된다. 하늘로부터 받은 성격은 그제야 비로소 제일의로 약동한다. 8시발 밤기차로 엇갈린 세계는 그다지 맹렬한 것이 아니다. ]


 

 읽다가 모든 인물들과 관련된 첫 교차점이 보이는 것 같은 순간이 바로 여기서부터 였다. 삼분의 일 정도 읽었을까 싶었는데, 시치조의 밤 기차에 탄 채로 '서로의 세계가 어떤 관계로 엮어질지 모르는' 사람들이 같은 장소와 시간 안에서 운명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얼핏 꽤나 중대한 운명에 대한 이야기같이 느껴지지만 삼각 혹은 사각 정도 되는 관계의 클리셰라고 할 수 있는 설정이 주를 이룬다. 얽힌 관계에 놓여있는 네 남녀는, 후지오를 결혼상대로 생각하고 있는 무네치카와 장래가 유망하지만 가진 것이 없어 자신 앞에서 약할 수 밖에 없는 오노를 결혼상대로 생각하고 있는 후지오, 오노가 힘든 시절 보살펴 준 은사의 딸로 오노와 결혼할 것이라 여기고 있던 사요코, 책임을 느끼는 사요코와 자신이 필요로 하는 것을 가지고 있는 후지오 사이에서 선택의 갈등을 하고 있던 오노이다. 계속되는 오노의 치졸한 행동을 두고 무엇을 위해 두 여자가 그렇게도 신경쓰고 괴로워해야 하는지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오노는 변했다.

 5년 동안 하루도 잊을 수 없었던, 목숨보다 확실한 꿈속에 있던 오노는 이런 사람이 아니었다. 5년 전은 옛날이다. 서쪽과 동쪽으로 갈리고, 길고 짧은 옷소매로 갈리고, 이별의 슬픔을 가리는 저녁 구름이 서로 그리워하는 마음의 빗장이 되어, 만나는 일이 점점 더 힘들어진 지난 세월 동안 변하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바람 불면 변할 거라고 생각하고, 비 내리면 변할 거라고 생각하고, 달밤에 핀 꽃을 보고도 변할 거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그러나 이렇게는 변하지 않았기를 빌며 플랫폼에 내려섰다.]

 

 오노의 달라진 모습을 두고 사요코가 떠올린 생각을 읽으며 오래 전에 쓰여진 것이지만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감정, 기대와 실망, 부질없어진 믿음의 변절이 얼마나 그대로 인간의 내부에서 선연히 이루어지고 반복되고 있는지 곱씹었다. 세계가 관통하는 느낌이 들었던 부분이었다. 이렇게 많은 시간을 두고도 그대로인 사람의 마음들이 지속되는 세계를 만들고 있다고. 또, 누군가를 만나고 또 짝을 이뤄 결혼을 하는 일이 복잡하고 미묘한 완력의 차이를 두고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그때나 지금이나 오래두고 만나온 사람과의 도의적 책임이나 앞으로 주어질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은 욕심 사이에서 갈등하는 남자라는 인물을 둘러싼 이야기는 또 참 흥미진진하다는 것도 느끼게 된다.

 

 모든 등장인물이 한 자리에 서서 마주했을때 매력적인 인물이라 여기고 있던 사요코가 처참하게 무너지는 모습은 안타까웠다. 손 위에 놓여진 쉬운 상대라고 생각했던 사람에게 오히려 먼저 단절을 선고받고야 만 입장이라지만, 그녀의 자존심을 두고 더 강하게 대처할 수도 있었을텐데 하는 나름의 응원을 보냈던 인물이라 더욱 그러했다. 마지막 장에 이르러서는 그저 장을 덮고 시선을 멀리 두고 가만히 읽어온 시간을 반추했다. 누군가에게 함께 읽기를 권하기보다 그저 읽었다면 그 곁에서 따뜻한 겨울의 볕을 두고 마지막 장의 침묵을 함께 즐기고 싶다고 생각했다. 독특한 아우라가 남았다. '이곳은      만이 유행한다네.'

 

 

# 함께 들은 음악

김지연 Oblivion ; 학생 때 처음 들었던 탱고 곡이다. 음울한 느낌이 전반적이지만 그 중 열정적이면서도 관능적인 느낌이 묻어 있어 읽으며 자주 떠올라 들었다.

 

 

http://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embedded&v=n6idiKuDiZM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해변빌라
전경린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10월
평점 :
절판


저자의 책은 아주 오래 전, 그런데 그다지도 멀지 않은 과거에 '검은 설탕이 녹는 동안'을 읽어봤을 뿐이다. 그런데도 그 이름은 너무 익숙해 내가 잘 알고 있는 저자의 신작을 본 듯한 기분이 들었다. 사실 어떤 작가를, 또 그의 책을 봤다고 하여 그에 대해 잘 알게 되겠느냐 마는, 실로 오랫만에 읽은 저자의 책이었고 독특한 분위기가 느껴져 천천히 오랜 시간을 들여 멈춘듯이 읽은 책이었다.

 

 '해변빌라'는 표지 안에 책장 하나하나에 저자가 마치 그림을 그려넣은 듯 했다. 하얀 도화지 위에, 다른 것도 아니고 그저 도화지 위에 소녀가 꿈꿀 수 있는 애틋하고도 로맨틱한 장면들을 한장씩 그려넣어 놓은 듯한 소설이었다. 아버지나 혹은 어머니 같은 뿌리에 대한 부재가 전체적으로 푸르스름한 빛깔을 드리웠다고 해서 이 글이 소녀스럽지 않게 다가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등장인물들의 이름 하나 하나, 외향에 대한 묘사 하나 하나가 전부 여성스럽고 그것이 지나치다 못해 소녀스러운 듯한 느낌을 준다. 약간은 극적이기도 한 구석이 있다는 점도 그렇다. 원래 소녀들의 상상은 어딘가 모르게 비극적이고 또 약간은 현실성이 부족하여 극적인 전개로 이어지는 일이 잦은 법이니까. 거기에 비밀스럽고 로맨틱한 요소들이 차례로 깔려있고.


  "여자의 진짜 능력이란, 제 남자를 알아보는 거란다."

 "남자의 진짜 능력은요?"

 "남자란 세상의 들판을 지나가는 바람과 같아. 하지만 자기를 알아보고 계산 없이 인생을 내놓는 여자를 만나면 자기가 줄 수 있는 것을 몽땅 주지. 거기에 제 생명을 쏟는 거다. 그게 남자와 여자 사이의 비밀 논리야."

 "그런 여자를 못 만나면요?"

 "바람처럼 들판을 떠돌다가 덧없이 세상 밖으로 사라지는 거지. 여자도 마찬가지야.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 흩어지는 거지."


 유지와 노부인의 대화였다. 중간중간 생략된 부분이 있는데 두 인물의 대화만을 모아놓아 따로 옮겼다. 이런 식으로 읽는 이의 감성을 자극하는 내용들이 주를 이룬다. 그런 부분이 좋게 다가오면서도 현실에서 한참이나 붕 떨어진 것을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어떤 소설들은 비현실적인 부분이 드러나서 좋은데, 어떤 소설들은 비현실적인 부분이 느껴질 때마다 아쉬움이 느껴지곤 한다. 해변빌라는 후자에 가까웠다. 세상에 저런 분위기를 가진 사람이 있다면 흐리거나 변질되지 않은 채 성인이 되어 살아갈 수 있을까, 저런 어조로 마음을 찌르는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가끔은 너무나 연극적으로 느껴져 그 조차도 꾸며낸듯이 보이지 않을까 하고 의심하게 된다.

 

 책을 읽으며 문득 남에게 다정하면서도 건조하고 자신에게 애틋하면서도 무모한 유지나 이린, 이사경같은 사람이 되어 보고 싶다고 느껴진다. 그렇다면 굳이 이해하거나 해석하지 않으려 해도 순순하게 페루의 사과나 얼룩말을 떠올릴 수 있을 것 같다. 그렇지만 굳이 생물 선생님 앞에서 옷을 벗는 유지의 표정도 떠올려 보지 않았다. 나-읽는 이의 이해를 바라지 않는다는 듯한 태도로 그저 인물들은 어디까지나 주어진 캐릭터 안에서 살 수 있는 삶을 살고, 행동을 하고, 이야기를 나눴다. 모든 정황을 관조적으로 바라보고 마지막 장에 가서야 서서히 페이드 아웃되는 슬라이드 필름 상영을 본 듯한 기분으로 책장을 덮었다. 가공된 것 같으면서도 자연스러운 삶의 단면들을 찍어 나열해놓은 이야기, 이야기라기 보다는 화면에 가까운 소설. 제 모습을 잃지 않으면서도 그 안에 담겨있는 의미는 어딘가 다른듯한 균열이 모여 있는 듯한 독특함이 특징적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해리 미용실의 네버엔딩 스토리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49
박현숙 지음 / 자음과모음 / 2014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시종일관 궁금했다.

어떤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걸까. 그걸 궁금하도록 만드는 것이 목적이었을까 생각해보는데, 아마 그건 아니었을 것 같다. 그것보다 더 깊은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일거다. 저자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녹아있는 작품이다 보니 아무래도 더 단단한 마음으로 하고 싶었던 얘기를 꺼내보자고 했을텐데, 글쎄. 꺼내기가 쉽지도 스스로에게도 전혀 가벼울 수도 없는 이야기라 모든 것을 좀 깊숙이 담아두고 드러내지 못했단 생각이 들었다. 누구에게라도 쉬울까, 남겨진 사람의 심정을 드러내는 일이. 그런데도 아쉽다는 생각을 거두기는 힘들다. 기왕이면 더 생생하게 속을 열었더라면 공감이 많이 됐을 것 같다는 여지가 남았다.

 

 아빠와 둘이 사는 태산은 학교에서 늘 자신의 뒤에 산처럼 버티고 있을 것만 같았던 아빠의 부고를 듣는다. 황망한 정신으로 장례를 치른 태산에게 남은 것은 가게집인 쌀집과 도움이 될 듯 되지 않는 친구 기형, 좋은지 아닌지 모르겠는 효미, 조력자가 될지 아닐지 애매한 담임, 확실하게 돈을 노리고 들어앉은 오촌 아저씨, 믿을만 하지만 어쨌든 남일 수 밖에 없는 떡집 아줌마 아저씨, 아빠가 남긴 사진 한 장. 너무나도 어린 나이에 혼자 남겨진 태산은 슬픔을 다 풀 새도 없이 '해리 미용실을 찾아가라'는 말을 남겼을 뿐인 아빠의 흔적을 좇아 무작정 부산으로 떠나게 된다. 

 

 내용 자채는 끊임없이 그래서 해리 미용실과 태산이 사이에는 어떤 연결 고리가 있을까 궁금하게 만드는 점이 흥미로웠다. 그러나 읽을 수록 그럴 수 밖에 없었던 태산의 상황 때문이었는지 캐릭터들이 정돈되어 있지 않다는 인상을 많이 받았다. 가장 안정적인 인물은 가장 혼란스러울 법한 태산이었고 다른 캐릭터들은 어떤 입장에 서 있는지 알 수 없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그렇게나 예쁘고 몸매도 좋다는 효미가 왜 자꾸 태산의 주위를 맴도는지에 대한 이유도 알 수 없고, 돈 한푼 없이 사진 하나만을 보고 태산의 뒤를 따라 부산으로 온 기형의 뻔뻔스러움은 막장 드라마에 나오는 캐릭터가 보여주는 비호감에 맞먹었다. 오촌이라는 아저씨도 한밤중에 용식을 습격해 쇠파이프로 머리를 내려쳤을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극단적인 인물이기도 했다. 고아가 된 먼 친척 아이의 등을 쳐먹으려는 그저그런 인물이 아니라 좀 더 흉악한 범죄자에 가까운 인물인데 대낮에는 부동산에 내놓은 쌀집을 안 팔고 도배 다시 하겠단 꼬마애들의 말에 약올라하는 좀 어수룩한 사기꾼처럼 보이기도 하고. 떡집 아저씨 아줌마는 태산을 도와주려다가도 결국 우리는 남이니까... 하는 애매한 태도로 발을 뺀다. 미용실에서도 미용실 주인보다 더 들고 뛰는 건 손님으로 온 할머니다. 아무래도 이해가 안가는건 고등어 먹으면 알레르기 반응이 온다는 말을 못해서 억지로 할머니가 먹이는 고등어를 두 점이나 먹은 태산이의 우유부단함. 음식에 알레르기 있는 사람들은 보통 확실히 얘기하거나 절대 먹지 않으려 하는데 그걸 넣어준다고 먹었다는 것이 상식적이지 않았다. 심하면 위험하기까지 한 부분인데 할머니 힘이 세서 먹게 되었다 그래서 알레르기 반응이 올라왔다는게 좀... 해리 미용실의 미용사도 지나치게 말도 없고 왜 태산이 해리 미용실을 찾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답이 되어줄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그저 자기 안의 사연에 파묻힌 사람일 뿐이었다. 좀 더 극적인 인물이 되었어도 좋았을 인물은 오히려 약하고 극단적일 필요가 있을까 싶은 인물들은 그러했다. 속이 시원한 인물이 없이 전개되는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니 이 인물은 왜 이러지, 왜 이런 생각을 하고, 왜 이런 행동을 하지 계속 의문스럽게 떠올리며 읽을 수 밖에 없었다.

 

그리워하면 언젠간 만나게 된다는 어느 영화와 같은 일들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는 노래 가사를 담아놓은 작가의 생각과 일견 다른 부분이 있어서 대립각처럼 읽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항공 사고로 잃은 친구에 대한 마음을 담아놓은 글이고 남겨진 사람들에 대한 위로를 건네기 위한 글이었다면 좀 더 정리된 내용으로 다가갔으면 어떨까 싶었다. 그래서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을까 궁금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런 말이 하고 싶었구나 하고 확 와닿을 수 있는. 인물들도 이런 행동을 하거나 말을 하는 이유가 이것 때문이었구나 하고 납득할 수 있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친구 앞에서 우리 아빠의 과보호가 숨이 막힌다는 말을 늘어놓는 무신경한 기형이가 유일한 친구가 아니라고 좀 더 상식적인 선에 위로가 될 수 있는 인물이 주위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도록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