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이 필요한 순간 - 삶의 의미를 되찾는 10가지 생각
스벤 브링크만 지음, 강경이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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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을 들여 책을 천천히 읽었다. 어느 부분에서는 음독도 불사하였는데 쉽지 않았던 것 같다. '철학이 필요한 순간'이지만 어느 순간 '철학따윈 필요없어'하면서 도피해버리고 싶은 때도 있었다. 뭣보다 중간중간 내 생각이 끼어드는 때마다 좁은 생각으로 말도 안되는 시비나 걸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었다. 책은 책이지 경전이 아니야,라는 마음으로 꿋꿋하려고 애썼지만 잘 안됐다. 애초에 나는 목적을 위해 가치있는 것들을 도구화하는 셈에 익숙해있다. 책에서 말하는 10가지의 요건들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지만, 이를 통해 셈하는 것에 더 익숙하다. 그래선 안된다고 하지만 어떤 지점에서는 왜 안되야하는지 끝내 알 수 없을 때도 있었다. 불만스러우면서도 절망스러웠다.

 

 주로 반기를 들었던 부분 위주로 생각을 쓸 것이다. 시비걸기에 지나지 않겠지만, 시작하고 한동안 어려워서 정신을 못차리다 존엄에 대한 부분에서 불쑥 반발심이 일었다. 셰익스피어의 전집과 운동화(80)에 대한 비교였다. 나같은 사람은 가만히 있질 못하고 위대한 작가의 전집과 운동화가 같은 가치로 매겨지는 일이 비교조차 어처구니 없는 것으로 표현되어야 하는지 의문을 던진다. 운동화는 상품이기 때문에 그보다 못하다? 하지만 운동화-신발이 가지는 의미, 맨발로 거친 땅을 밟으며 살아야하는 이에게 있어 그 삶에 얼마나 중한 필요와 기쁨을 가져다주는지는, 그것도 존엄의 하나 아닌가 생각했다. 제 손으로 신 삼는 법을 몰라 오소리 영감의 종노릇을 해야 했던 원숭이가 원통해했던 것*(정휘찬 '원숭이꽃신')처럼. 어쨌거나 신발도 책만큼 중요하다.

 

 애초에 존엄에 대해 말하면서 침몰하는 타이타닉의 노부부(73)를 예로 들었을 때 나는 그들이 젊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했다. 그들이 헤라처럼 인간에게 내릴 수 있는 최고의 선물(257)로 그 순간을 삶의 완성으로 여겼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들이 좀 더 젊었더라면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잡기 위해 애쓰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그들은 존엄을 잃게 되는 것일까하고 의문을 갖게 된다. 오히려 갑판에서 음악을 연주한 연주자들이 보인 태도가 더 존엄에 가깝다고 여겨졌다. 그들은 자신의 품위만이 아니라 타인의 위안까지 도모했다. 그렇다고 해서 살기 위해 바다로 몸을 던지는 비명을 지르고 몸부림치는 사람들이 덜 존엄한 반응을 보인 것이냐는 아니라고 본다. 자신을 삶을 구하고자 하는 절실하고 불굴한 자세도 삶과 인간이 의지에 대한 존엄을 보인다. 그 끝이 비명과 공포에 물들었다 하더라도.

 

 가치있는 10가지 주제에 대해 읽으면서 한편으로는 찜찜한 느낌을 지울수가 없었는데, '진짜 사랑은 다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172)음을 이야기하며 오래된 흔들의자를 예로 들었을 때 그가 말하고자 하는게 현재와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지 깨달았다. 우리는 비우는 삶을 강조하는 시대에 살고 있잖은가. 미니멀, 심플, 심지어 비움의 미학 같은 것들이다.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 오래된 물건을 끌어안고 있지마라, 언젠가는 오지 않는다, 아까워하지마라' 같은 말들을 신조삼아 공간, 사람, 생각마저 비운다. 현재의 라이프 스타일에서는 '팔걸이가 계속 떨어지는 오래된 흔들의자'는 버려야 한다. 그리고 이케아로 달려가 가볍고 심플한 디자인의 철제의자를 하나 가져다 놓는다.

 

 이는 이상형의 조건에서 더 나은 사람이 나타났을때 얼마든지 새로운 사람을 선택할 수 있다는 우리가 생각하기에 나름 그럴듯한 변심의 변명이 되어준다. 사랑의 문제여서 더 비인간적으로 느껴지겠지만, 일자리에 대한 문자로 생각하면 합리적 선택에 더 가깝게 보일 것이다. 과거엔 평생직장이란 말이 있었지만 지금은 여러번의 이직이 당연하고 필수적이다. 자신의 가치를 높이고 좀 더 적성에 맞는 자리를 찾는 길이다. 이건 지켜져야할 것으로 믿는 약속같은게 아니다. 하물며 사랑, 특히나 아무리 검은 머리가 세다 못해 대머리가 된다해도 굳을거라 맹세하는 결혼이라도 함께하는 것보다 더 나은 혼자를 위한 선택도 현명하다 보는 것이 현재이다. 신경과학같은 것으로 본다면 사랑 역시 호르몬작용이고 중요한 가치이지만 영원해야 할 의무는 없어야 한다.  

 

 또한 도구화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사람을 인적자원(87)으로 보면 안된다는 내용에서 저출생 문제도 같은 관점에서 보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저출생이라 부르기 전 저출산이라는 명칭이 있었고, 이는 가임기여성의 출산율을 통계화하는 수치로도 계산되었다. 이는 여성과 출산을 인류의 원활한 생존 유지를 위한 도구로써 본 것 아닌가. 국가적 세계적으로 말이다. 이밖에도 개의 행동에 도덕적으로 분노할 수 없다(114)는 내용에서는 요즘 빈번히 보도되는 개물림사고를 떠올렸다. 개가 사람을 무는 사고가 생기면 개에게 목줄을 채우고 입마개를 하고 안락사를 시키라는 요구가 따라온다. 이와 같은 대처는 개에게 책임을 묻는 행위아닌가, 이보다는 개주인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는 것이라면 개주인이 벌금을 내고 실형을 살아야함이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개를 도구화한 생각 아래서는 개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기 때문에 개는 그대로 두고 개 때문에 사람만 처벌받는 일을 받아들이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다른 한 부분은 '오직 공격당하거나 피해를 입은 사람만이 용서할 자격을 갖습니다'(191)는 용서에 대한 내용이었다. 용서 부분을 읽으면서 줄곧 영화 '밀양'을 떠올렸다. 때로 사람들이 갖는 용서에 대한 시선이 어떠한지를. 영화에서 범죄자는 종교를 가졌고 그로인해 자신이 저지를 죄를 용서받았다고 한다. 그를 목적을 통한 용서를 하기 위해 찾아간 주인공은 범죄자의 말에 분노한다. 종교를 통해 받은 죄사함은 '오직 공격당하거나 피해를 입은 사람만이' 가진 '용서할 자격'을 빼앗은 것이다. 책은 용서할 수 없는 것을 용서함으로써 용서가 가능해진다는 어려운 내용을 강조하는데 이어서 '종교적 믿음은 쉽게 믿을 수 없는 것을 믿는 일'임을 말하며 종교도 비슷한 예시로 든다. 종교가 침범한 용서의 영역에 종교가 예로 들어가 있어 인상적인 부분이었다.

 

 책은 입바른 소리만 늘어놓는 귀찮은 사람같다. 우리는 때로 그것을 양심이라고도 한다. '철학이 필요한 순간'은 순간이 아니라 시도때도 없다. 순박하고 전통적인 가치관을 시종일관 강조한다. 그 안에서 삶의 깊은 의미를 떠올리다가도 불현듯 부정하고 싶어지는 경험을 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이 책이 어렵지만 큰 틀에서 보면 '어린왕자'에서 말하는 것을 심화하여 담아놓은 것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단순화했을지도 모르고, 오독했을지 모르지만 내가 느낀 것은 그랬다. 다른 무엇보다 다만 어떤 누군가는 이 책을 읽고 내가 왜 그렇게 느꼈는지 이해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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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ㅎ 2019-09-04 2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책을 읽으면서 너무나도 공감도 가지 않고 이해도 가지 않는 부분이 많아
다른 분들은 대체 어떻게 읽으셨을까 궁금해서
리뷰들을 살펴보다가 너무 공감가는 리뷰라 좋아요 눌러봅니다.

점잖게 말씀하셔서 입바른 소리만 늘어놓는 귀찮은 사람이라고 표현하셨지만,
제가 보기엔 앞뒤 꽉 막힌 사람이 본인의 주장만 내내 늘어놓고 있는
느낌이 들더라구요.

테일 2019-09-07 02:34   좋아요 0 | URL
공감하셨다니 반갑습니다.
읽으면서 저가 너무 꼬아보기만 한 건 아닐까 하는 마음이 있었거든요. 현실감이 덜하달까요..
리뷰 마지막에 누군가가 이해해주길 바란다고 썼는데, 그만큼 답을 남겨주셔서 감사하네요.
 
체리새우 : 비밀글입니다 - 제9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 문학동네 청소년 42
황영미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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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네에 새로 생긴 도서관에 찾아갔다. 좀 멀고 위치가 별로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찾아가보니 생각보다 금방 도착했고, 위치도 한적하니 좋았다. 낡고 오래된 동네를 지나서 긴 진입로를 따라 들어가니 작은 축구장 옆으로 아직 새것 티를 벗지 않은 도서관이 나왔다. 출입문 옆으로 보이는 통창에 여유롭게 대충 앉아 책을 읽고 공부를 하는 사람들을 보니 책 한 권 읽지 않고 그냥 갈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날 읽은 것이 '체리새우:비밀글입니다'였다.

 

 '체리새우:비밀글입니다'는 얼마 전에 서점 사이트에서 신간도서 소개로 몇번이나 제목을 본 적 있었다. 도서관 서가 신간 추천도서 코너에 새책으로 꼽혀있는 걸 보고 바로 집어들었다. 읽으려고 든 것은 아니고 전부터 궁금했던 '체리새우'가 대체 뭘까, 그것만 확인해보려고 들었는데 맙소사 그냥 다 읽어버렸다. 제목도 그렇고 주인공 인물 설정이 좀 유치하고 전형적이지 않나 싶었는데 이상하게 술술 읽히고 읽다보니 점점 재밌어서 다른책을 더 고르지 않고 그냥 앉은 자리에서 다 읽었다.

 

 다른애들이랑 생각이 조금 다르기 때문에 조심해야 하는 나. 나름의 가치관과 감성을 가지고 있는 나. 다른 친구의 잘못된 행동에 불편함을 느끼는 나. 와 같은 위치에 있는 주인공에 대한 묘사는 청소년 물에서 좀 흔한 설정이다. 이런 인물들이 주로 주인공이 된다는 건 대부분이 감정을 이입할 수 있는 일반적 성향이기 때문이라는건데 꼭 특별함으로 묘사된단 점이 의문이다. 진짜 책 읽으면 별종으로 보는게 정말이란 말인가. 그래서 이렇게 묘사되는 주인공은 책 읽는 타입의 일반적 성향인가.

 

 시작부터 매력을 느낀 것은 아닌데, 인물간의 관계변화를 천천히 바라보는 과정이 매력적이어서 끝까지 다 읽게 되었다. 다현이보다 은유라는 인물이 조금씩 보여주는 성숙되고 열린 자세가 호감이었다. 친구 무리에 휩쓸리면서 자잘한 선물을 나눠주는 것으로 환심을 사려고 노력하고 무려 심부름까지 해주는 다현이의 모습이 처음엔 별로였지만 한편으로는 다현이를 통해 십대 생활이라는 고단함을 다시 이해하게 됐다. 지금은 거의 잊었지만 십대때에는 친구 무리라는게 세상의 전부였었지.

 

 '체리새우'를 다 읽고는 청소년 특히 소녀들의 우정에 큰 매력을 느껴서 내친김에 그동안 보려고 생각만하고 미뤄뒀던 '우리들'이란 영화도 봐버렸다. 확실히 두 작품 사이에서 비슷한 느낌, 알 수 없는 미묘한 공감대와 애틋함을 느꼈다. '체리새우'도 괜찮지만 그보다 '우리들'이 좀 더 거칠고 투명한 세계와 감정을 보여주는데 내용도 내용이지만 배우들의 연기도 대단하기 때문에 아주 몰입하며 봤다. 책 '체리새우'도 추천, 영화 '우리들'도 강력추천한다. 궁금했던 두 작품을 한번에 보게 된 계기가 되어 도서관 방문이 뜻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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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의 방문자들 - 테마소설 페미니즘 다산책방 테마소설
장류진 외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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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니까, " 친구네 집에 놀러갔더니 친구는 없고 친구 누나가 자고 있었다. " 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글은 오히려 편안한 태도로 '그래 한 번 들어보자'할 수 있었다. 만성적 낚시글로 이미 면역력이 생기고도 남았음이다. 오히려 저정도의 이야기는 모르는 척 하지 않고 대놓고 웃으며 들을 정도의 가벼운 이야기아닌가. 그런데 '새벽의 방문자들'에서 읽은 내용들은 '수위가 괜찮은가'싶은 걱정이 들었다. 단순히 "옆집 문을 열었는데 옆집 총각이 자고 있었다" 뭐 이런 내용이 있어서가 아니다. 걱정되는 수위는 사회에 용인되는 정도의 허락된 페미니즘을 말하고 있는가였다. 자고로 페미니즘 발언이란 듣는 사람이 불편하지 않으실 수위에서 농담을 섞어가며 은근히 해야하는거 아닌가. 아니면 *페미, *충, 메** 되는거 아닌가. 저런 딱지 하나쯤 이 책 읽은 나한테도 가져다 붙이는 거 아닌가. 포스트잇처럼.

 

 솔직히 몇몇 글들은 저절로 나오는 욕같은 추임새를, 추임새같은 욕을 삼키며 읽었다. 나도 나이먹은 사람이라 그런지 드라마보며 몰입해서 욕하는 것처럼 문장으로 그려진 여자들을 향해 꼰대같은 조언을 해주고 싶어서 달싹였다. 진짜 가짜 구분을 못해서 그런걸까, 과몰입을 해서 그런걸까. " 이거 다 소설이야 " 라고는 하지만 사실은 소설인 척 하는 진짜여서 그런걸까. 절대 인정하지 못할 사람들도 있겠지만, 알 사람은 안다. 이건 진짜라고. 저 유명한 재연 프로그램인 '사랑과 전쟁'에서 '이거 다 방송국 놈들이 시청률 올리려고 일부러 자극적으로 쓰는거야'라는 순진한 의심론자들을 향해 '실제 사연은 더한데 방송용으로 순화해서 내보낸거에요' 했더랬지. 이 방문자들이 '이거 순한맛이에요' 하고 말한대도 오버는 아닐 것이다. 여전히 ㅍ자만 봐도 질색하면서 피해의식이란 말과 피곤하다는 말을 애용하는 부류의 사람들은 믿지 않겠지만. 

 

 전부터 궁금했었던 영화를 이용하고 있는 플랫폼에서 서비스해주는 걸 발견하고 드디어 본 것이 며칠 전이다. 덕분에 '새벽의 방문자들'은 조금 묵혔다 읽게 됐지만 어쩐지 영화를 보고 책을 읽은 것이 더 괜찮은 흐름같이 느껴졌다. 영화는 가출청소년들의 생활을 단편적으로 그리고 비교적 순화하여 사실대로 보여준다. 이 얼마나 이상한 문장인가. 그런데 그렇다. 현실은 뭐 영화로 보여줄 수 있는 것보다 어떤 방면에서든 더할 것이고, 영화는 극히 일부의 모습만을 담아 최대한 사실적으로 보여주려고 애썼다. 그런데도 화면을 통해 보이는 주인공 소녀의 흔들리는 눈동자에 시선을 맞추려는 시도는 고역이다. 영화 줄거리는 간단하다. 절반은 담배를 피고 욕을 하는 장면이고 나머지는 침뱉고 맞고 때리고 술마시고 성행위를 하는 장면으로 채워져있다. 이 영화를 보고 난 다음의 반응이 '새벽의 방문자들'을 읽고 난 반응과 비슷할거라 생각했다. '진짜 저래?'

 

 대부분은 재밌게 읽었다. 아마 리트머스 시험지처럼 ㅍ에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사람이 아니라면 책 읽고 난 다음 친구를 만나 자기 인생에서 발견한 좀 '모잘랐던' 누군가를 떠올리며 썰을 풀고 한참을 웃거나 질색팔색 소름 돋을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의 현관 모니터에 박제될만한 얼굴을 가진 사람들도 떠올릴지 모른다. 읽으면서 공감도 되고 재밌었는데, 다만 페미니즘 소설이라는 말이 괜찮은건지 생각이 들었다. 이젠 여류작가란 말도 안쓰는데. 너무나 이르지만 앞으로는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이 방문자들이 새벽, 아침, 낮, 밤, 오후 언제든 또 찾아온다면 좋겠다. 아직도 남아있다던 그 이야기를 마저 해준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더 관심을 갖겠지. 앞으로 교보문고와 출판사에서 책에 참여한 작가들과 순차적으로 북토크를 갖는다고 하니 책을 재밌게 읽은 사람들이라면 이것도 신청해서 가볼만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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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의 마음 - 최고의 리더는 어떻게 사람을 움직이는가
홍의숙 지음 / 다산북스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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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디에서도 리더가 되겠다는 생각은 없지만, 외부로 향하는 기본적인 에티튜드는 비슷한 결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읽었다. 마음 속 한편으로는 이런 책에서 나올만한 얘기는 다 뻔하지 않나 회의적인 생각도 가지고 있었다. 반 정도는 맞고 반 정도는 틀렸다. 우선 책의 편집이 괜찮았다. 목차를 보면서부터 나름 눈에 더 들어가게 하려고 신경을 썼구나 싶었다. 어디선가 봤던 명언들이 책의 구석구석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건 좀 고루하게 느껴지는 면이 있지만 전체적으로 어조가 명료한 편이라 읽기에는 좋았다. 부담없이 책장이 넘어가는 바람에 익숙한 글귀들이 공감을 끌어내기엔 더 좋지, 하고 납득해보기도 했다. 페이지 전체를 할애해서 사진과 색을 많이 썼다는 점이 단조로움을 없앤 것 같아 좋았다.

 

 책에 나오는 사례들을 보며 내 주변에 어떤 인물이나 사건과 매치하면 좋을까 생각하며 읽었더니 재밌었다. 이런 유형은 전에 같이 일했던 누구와 비슷한 것 같고, 이런 태도는 저번에 누가 보였었지, 아니면 내가 혹시 다른 사람에게 이렇게 대했었나 떠올려보기도 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특히나 자신이 무심결에 어떤 행동을 했었는지 알 것 같기도 하고 앞으로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감이 오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연차가 쌓이니 윗사람도 많지만 함께 이끌어가야 할 아래 동료들도 생긴 탓에 여러모로 신경이 쓰였던터라 다른 사람을 대할 때 어떻게 하면 좋을지 생각해보며 읽었다. 점점 윗사람보다 아랫사람 대하는 것이 더 어렵다는 말을 실감할 때가 많아서 책임감, 공감성, 예의같은 것들에 대해 생각하는 때가 있었는데 책을 읽으며 도움도 받았다.  

 

 특히 칭찬에 대한 카테고리가 마지막 부분에 따로 나올만큼 칭찬을 하고 받는 것이 자주, 중요하게 언급된다. 최근 들어서 느낀점인데 요즘은 다른 사람을 칭찬하면 상대방이 '감사합니다.' 라고 하거나 '네, 그런 얘기 많아 들어요.' 하고 대답해오는 일이 많다. 예전에는 '아니에요.' 라고 하거나 '좋게 봐주셔서 그렇죠.' 같은 대답이 익숙하게 돌아왔었다. 으례 그렇게 대답해야 하는 것인 줄 알았는데, 처음 상대방이 수긍하는 대답을 했을 때 속으로 조금 놀랐다. 내심 겸손하지 않은 응답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씩 지나고 책에도 나왔듯이 자신있는 태도(51)를 가지는게 자신을 남에게 어떤 사람인지 알리는데에 더 도움이 된다는 것을 이해하게 됐다. 천천히 나 자신의 생각과 태도도 바꿔가는 중이라 공감하며 읽었다.

 

 조금 엉뚱한 질문일 수는 있지만 리더가 되겠다면서 리더십에 대한 책을 읽는 사람이 어떠한가. 혹은 리더의 자리에 있으면서 리더십에 대한 책을 읽는 사람은? 이상하게도 신뢰가 가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능력도 없으면서 그조차도 안하는 사람보다는 낫겠지만. 마치 선장이 되겠다며 배를 모는 법을 읽는 사람처럼 보이거나, 선장이 배를 모는 법을 읽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더 나은 리더가 되기 위한 노력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어쩐지 카리스마가 부족하다. 그러니 혼자 몰래 읽기를 추천한다. 때로 노력이란 보이지 않는 곳에서 행해져야 더 깊은 인상을 주지 않던가. 마치 물 위의 백조도 수면 아래에서 치열하게 발을 젓고 있는 것처럼. 속은 어떨지 몰라도 자기 자신과 그룹의 목표에 대해 이미 알고 있는, 확신을 가진 것처럼 보이는 리더에게로 마음이 움직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리더는 어떤 리더가 될 것인가, 어떻게 보여질 것인가도 요구받는 자리라 생각하니 참 어려운 일이다. 

 

 나의 경우는 아니지만, 지인은 일터에서 믿을만한 리더를 만난 것 같았다. 조직의 방향성에 대해 명확하게 제시하고, 단기/장기적인 목표를 수립하여 실행하도록 조직원들을 움직인다. 노동의 가치에 맞는 분배를 하고 더 나은 복지를 제공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 솔선하여 일하고 책임을 전가하지 않는다. 가끔 밥벌이에 대한 얘기를 나눌때면 전해듣는 말인데, 마치 그린 것 같은 리더의 모습이었다. '리더의 마음'같은 책을 읽으며 에이, 이런 리더가 어디있어. 싶은 생각이 드는 사람에게 대다수는 불운하게도 일 시키고 책임을 묻고 경제가 어렵다는 핑계로 직원 복지나 쥐어짜고 낡은 사내구조를 개선할 생각도 없는 리더의 밑에서 일을 하지만, 실제로 리더의 역을 제대로 해내는 사람이 어딘가에서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싶다. 나도 지인의 얘기를 듣지 않았다면 유니콘처럼 생각했겠지만,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으니 희망을 잃지 않고 좋은 리더를 만나게 되길, 혹은 스스로가 그렇게 될 수 있다고 믿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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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까만 단발머리
리아킴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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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아킴이 누구인지 몰랐지만, 이미 그녀를 알고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익숙한 사람이었다. 정말 '들으면 알만한', '내노라하는', '유명한' 수식어를 달아도 어색하지 않은 유명한 가수들의 춤선생님이자, 노래의 안무를 담당한 댄서다. 소녀시대, 선미, 트와이스, 24시간이 모자라, TT 등. 책을 두른 띠지에는 '춤이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라고 했지만 사실 그녀가 사랑한 것이 춤이었으니 춤에 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아니 전부다. 삶에 대한 고민, 인간관계 이런 주제들도 결국은 다 같은 방향을 향해 있으니 이건 리아킴의 이야기이자 춤에 대한 이야기다.

 

 춤같은 일에는 담을 쌓고 사는터라 건너다보듯 읽었다. 어렴풋이 갖고 있는 선입견, 춤추는 일을 업으로 삼으면 돈을 잘 못 번다던데 관절쓰는 춤을 많이 추면 나중에 고생한다던데 하는 고루한 말들을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실제로 책에서 만난 그녀는 성공했고, 당연히 경제적인 부분에서도 여유있을만큼, 매일 아침 사과와 생강, 시금치를 간 주스를 마시며 자기관리를 한다. 내가 아무렇게나 떠올렸던 생각들처럼 누군가도 내 삶을 잘못 해석하고 있지는 않을까 궁금해졌다. 리아킴에 대해 읽으며 다시 머리속으로 말을 건넨다. '반갑습니다, 제가 오해했네요.' 전혀 다른 삶을 사는 누군가에 대해 새롭게 알아가게 된다.

 

 책의 흐름이 좋은 편은 아니다. 갑자기 이런 내용이 왜 들어가있지, 싶은 부분도 있고 좀 더 확실한 주제로 잡아 묶였으면 좋았을 것 같은 내용도 있었다. 특히 가수들에게 춤을 가르쳐주고, 안무를 짰던 일들이 들어간 4장이 그랬다. 아이돌들에 대한 얘기와 자신에 대한 얘기가 뒤섞여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거기다 여자아이돌와 남자아이돌을 가르칠 때의 차이점에 대해 언급하는 부분은 굳이 넣었어야 하는 내용인가 싶었다. 춤추는 사람에 대한 선입견을 깨려고 노력하는 것에 비해 본인도 비슷한 틀을 갖고 다른 사람을 대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부분이었다. 그게 참 많이 아쉬웠다.

 

 계속 이유를 찾으며 읽었다. 이 책이 나온 이유가 뭘까, 하고. 쉽게 이유가 어딨어, 꼭 이유가 있어야만 나오나. 할 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고싶었다. 이만큼의 열정을 가진 사람이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냈을때에는 꼭 해야만 했던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당연하게도 역사적 사명이라도 가진 그런 거창한 이유가 나오진 않았다. 그런데 지나고보니 어느 한 순간이 떠올랐다. 어쩌면 바로 이 부분이 내가 찾아 헤맨 이유가 되어줄지도 모르겠다. 리아킴이 이루어낸 성취들에 대한 것은 아니다. 그 부분은 오히려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에 더 가깝다.

 

 " 연습실 한쪽 다용도실. 간이침대에 몸을 뉘인 나는 왼쪽벽을 보고 누워 있다가 다시 오른쪽으로 몸을 돌린다. 어둠속에서도 싱크대, 작은 냉장고, 선풍기, 이런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자연스럽게 수도세, 전기세, 연습실 관리비가 떠오른다. 이번 달 연습실 월세는? 생활비는? 지난달보다 수강생이 줄었으니 레슨비도 줄 것이고. 대회에서 탄 상금은 밀린 공과금과 카드값 메우는 데 써야 하고.... 복잡하다. 모르겠다. 나는 억지로 그날의 기억을 다시 떠올린다.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웃고 있던 그때를. (p.102) "

 

 리아킴이 세계 대회에 나가 챔피언이 된 3일 뒤의 이야기다. 우리는 때로 삶에서 바라던 성취를 이루고 난 뒤를 생각하지 못한다. 목표와 그것을 향해가는 과정은 익숙하지만 거기에 집중해 그 뒤에도 인생이 계속되고 있음을 잊게 된다. 그런 시기를 경험해본 적 있을 것이다. '나의 까만 단발머리'에서 만난 가장 공감되는 부분이고 매우 현실적이라 생각했다. 대회 성적 부진, 서툰 인간관계같이 그녀가 삶에서 겪었던 어려움으로 꼽은 일들보다 빛나던 순간은 짧고 현실은 계속된다는 사실. 삶이 눅눅하고 팍팍해질 때 가끔 그때 그 빛을 떠올리며 위로를 삼는다는 저 마음이 공감됐다.  

 

 책을 한 권 다 읽었는데, 여전히 리아킴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중간에 몇 페이지에 걸쳐 실린 그녀의 사진들처럼 단편적이고 짧은 순간의 모습만 조금 엿본 것 같다. 다만 앞으로 몇몇 노래들을 우연히 들으면 아마 유행했던 그 춤동작들과 함께 까만 단발머리의 깡마른 여자의 이미지를 떠올릴 것이다. 좀 아쉽지만, 그녀의 남은 삶이 앞으로 아쉬운 부분들을 더 채워주지 않을까 기대한다. 시간이 더 지나고 난 뒤에 어쩌면 또 다른 에세이로 다시 만날지도 모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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