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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8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0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고백을 처음 접한 것은 2011년 영화를 통해서였다. 그 왜, 책으로 읽는 것보다 영화로 보는 것이 더 빠르고 편하게 작품의 내용을 접할 수 있는 통로가 되는 것을 이용하고 싶을 때가 있지 않은가. 비록 아날로그적 감성을 가진 사람이라 스스로를 여기고 싶기 때문에 그리고, 원작이 주는 깊이를 다른 것은 따라올 수 없다고 몇 번이고 입에 담았던 전력이 있는 사람이라 책으로 이 작품을 먼저 봤어야 평소의 행실에 걸맞는 일이겠지만. 그때만큼은 가벼운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영화를 보면서 강렬한 화면에 끌린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책의 표지 역시 노란 해바라기의 뒷모습으로 인상적인 모습을 보였다. 새삼 이미 알고있는 내용의 책을 다시 본다는 것은, 특히나 고백처럼 숨겨진 진실을 향해 인물들의 결말을 향해 점점 접근해가며 몰입을 고조시키는 작품은 자칫 시시한 일이 될수도 있다. 그렇지만, 영화를 본지 오래되어서 그런건지 영화의 장면은 그저 책 속의 내용에 구체성을 심어주는 스틸 컷 정도로만 여겨질 뿐 몰입이 떨어지거나 흥미가 덜 하는 일은 없었다. 오히려 정교한 책의 서술에 점점 더 깊이 빠질 수 있었다.
고백은 서술 방식이 독특하다. 주된 인물들의 독백과, 작문으로 그 내용이 이어지게 된다. 한 사람의 호흡으로 전개되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다소 지루하거나 늘어질 수도 있을 법한데 딱 알맞을 만큼 읽는 이의 관심을 끌어올리고 다음 화자로 차례를 넘기는 점이 마지막 장을 향해 쉬지 않고 책장을 넘기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유코의 충격적인 고백을 통해 마나미를 희생시킨 소년 A와 B의 정체와 그들를 향한 복수의 과정까지 단숨에 첫장에서 밝혀내고 난 뒤, 다른 인물들의 시선에 놓여진 사건을 다시 묘사하고 있다. 한 가지 사건을 여러 각도에서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았다는 점이 '라쇼몽'을 떠올리게 한다.
서술 뿐 아니라 그 소재 마저도 세간의 이목을 끌만한 것이다. 발행 당시에는 충격적인 소재란 칭호가 어울렸을 것이고, 몇 년이 지난 지금은 오히려 세태를 반영한 문제작이란 말이 더 걸맞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이 법을 이용하기 시작하면서 갈수록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면모를 띄는 범죄가 발생하고 있다. 고백도 끔찍한 일이지만, 더 끔찍한 것은 현실의 문제들이란 생각이 읽는 내내 머리 속에서 따라왔다.
이 작품이 이토록 '강렬하고 충격적'이란 수식이 잘 어울리게 된 데에는 하나같이 정상적이지 않은 태도를 가지고 있는 인물들에서 비롯된 힘이 크다. 교사인 유코는 일견 자신의 생각이 확고하고 사리도 분명한 것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사랑하는 딸 마나미를 잃은데에 대한 복수의 방식이 도리어 냉혹하고 교묘하기 그지없다. 읽는 동안 소년 A와 B의 행태와 작금의 현실을 떠올리며 유코의 행동에 카타르시스와 당위를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한 걸음 떨어져 유코라는 인물을 생각해보았을때 그녀의 인간적인 면모 역시 어딘가 결여되어 있음이 느껴진다.
소년 A는 그야말로 어린 나이의 아이가 가질만한 미숙한 동기에 똑똑한 머리가 만나 잘못된 방향으로 재능을 낭비한 것에 지나지 않다. 중요한 인물이긴 하지만 내면에서부터 풍겨나오는 악의의 깊이는 덜했다. 자신을 인정받고 싶어하거나, 애정을 갈구하는 인물의 비뚤어짐은 이미 어디선가 만나본듯한 인물과 재회한듯한 느낌을 주었다. 대신, 소년 A로부터 시작되는 도덕성 결여에 대한 문제 의식은 다른 인물들에게 까지 이어져 사회 구성원들의 의식을 전체적으로 조망하는 시선을 보여준다.
소년 B의 모습은 차라리 소년 A에 비하면 현대적인 가정의 모습, 그 중에서도 드러나기 어려운 병폐를 반영했다고 볼 수 있었다. 소년 B의 어머니부터 아집과 맹신으로 단단히 굳어버린 인물이 등장한다. 주변 사람들에 대한 그녀의 태도를 바라보고 있으면 아찔한 현실성과 문제의식을 느끼게 된다. 방관자적인 태도로 일관해 온 소년 B의 아버지는 없는 인물과 다름이 없었고, 그의 누나들 역시 문제적 가정에서 도망치듯 벗어나는 방법을 택했다.
남겨진 소년 B에게서는 자신에 대한 무한한 긍정과 옹호, 기대 속에서 뜻대로 되지 않는, 되지 않을 자신에 대해 좌절하는, 하지만 자만심은 강한 소심한 인물에게 느낄 수 있는 동질감을 느낄 수 있었다. 가정 환경에 비해서는 비교적 평범한 인물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살인'이라는 사건에 휘말려 순간의 감정으로 사건을 '완성'하는 인물로 변모하는 순간이 있었지만, 생각과 행동의 반경이 다른 인물들에 비해서는 그럴 법 하다고 느껴졌다. 그 외에도 소년 A와 잠시 동조하는 듯 했으나 루나시가 곧 자신이라고 믿었던 가련한 여학생, 반장이 있었고 에고에 빠진 단순무식한 느낌의 교사 베르나르도 있었다.

아쉬웠던 것은, 탄탄한 서두와 중반부에 비해 후반부 마무리가 좀 급하게 끝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었다. 광기에 휩싸인 소년 A가 폭발물을 만들고, 자신의 고백을 인터넷에 올린다. 그리고 그를 단죄하기 위해 다시 한 번 유코가 등장하게 되고 그녀의 복수가 마무리된다는 것은 치밀했던 소설의 리얼리티를 한순간 사라지게 만든다. 그렇지만 이 소설이 제시하는 문제의식은 확실히 소설의 재미와 함께 독자의 머리속으로 옮아온다.
고백은 읽는 이를 여러번 놀라게 만드는 작품이다. 구성도 잘 되어 있고, 작품 자체의 몰입도도 재미도 좋다. 거기에 저자 미나토 가나에의 처녀작이란 점이 한번 더 독자를 놀라게 만든다. 숨죽였던 봉오리가 한꺼번에 터지는 듯한 느낌으로, 이렇게 강렬하게 자신을 피어내는 사람도 있구나. 하는 생각. 영화도 소설도 모두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