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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론 ㅣ 고전의세계 리커버
존 스튜어트 밀 지음, 김만권 옮김 / 책세상 / 2025년 3월
평점 :
자유론을 읽는 과정은 처음 자유론의 제목을 들었을 때부터 예상했지만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읽기에 익숙한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내세울만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꾸준히 무언가를 읽어왔지만 읽기만 해도 괜찮았던 여타의 독서들과는 다르게 이해의 과정이 필요했다. 읽으면서 남들 다 자유론 찾아 읽는 대학시절에 뭐했을까 생각해봤는데 그때 안 읽어보고 이제와 초면인 책을 공부하듯 읽어내야 했던 자신에 대해서는 할말이 없다. 읽는 행위가 이해의 과정으로 소화되지 못하겠다 싶을 때면 서평을 쓰기 전까지 세번 읽어볼 작정이었으나 한번 읽고나니 서평을 쓰려고 마음 먹은 시점이 지나고 난 뒤였다. 사실 읽으면서 인상깊은 부분을 따로 옮겨적느라 시간이 더 많이 걸렸는데, 책의 대부분을 옮겨적은 것이 아닌가 싶게 많은 분량이었다. 초반에 읽으면서 옮겨적었던 부분들은 사실 그렇게 많은 부분을 기록하게 될 줄 예상하지 못해서 그때 어떤 생각을 했는지 기록해두지 않아 다시 봤을때 딱 떠오르는 인상이 없다면 서평 내용에서 제외했다.
자유론을 읽기에 앞서 가장 염두에 두었던 것은 표현의 자유를 무기처럼 휘두르는 언론과 대중의 행태였다. 마침 '들어가는 말'에서 " 하지만 이제 누군가는 원래의 목적과 상관없이, 내가 누군가를 혐오하고 차별하는 일에 국가가 간섭하지 말라는 목적으로 표현의 자유를 이용한다. 개인의 자유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과거와는 정반대의 모습이다. 자유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p8" 개인이 누리는 자유에 대한 의문이 가졌던 부분을 짚어주었기에 매력을 느꼈다. 대중의 심판이라는 도마에 오른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받고 심지어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일들이 벌어진다. 하지만 우리가 누군가의 언행과 삶에 대해 어떠한 판단을 내리기에는 지나치게 일부의 정보만을 가진 경우가 많다. 때때로 그 이면에 숨겨진 정보가 드러나 상황이 반전되는 일도 생긴다. 하지만 " 공중은 비난받는 사람들의 감정이나 편의를 완전히 무시한 채, 오직 자신들의 선호만을 고려하며 가장 냉담하게 판단을 내리곤 한다. 많은 사람은 자신들이 싫어하는 어떤 행위를 자신에 대한 피해로 여기고, 이를 자기감정에 대한 모욕으로 느끼며 분개한다. p166" 타인의 상황이나 사건의 진실같은 것은 중요치 않고 순간에 끼친 감정과 기분이 타인에 대한 비난과 혐오를 정당화하는 근간이 된다.
더불어 자유를 혐오와 차별의 수단으로 이용하지 않았나 생각해보게 된 지점이 있는데, " 어떤 것이 행동 규범이 되어야 하는가는 인간사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이지만, 가장 분명한 몇몇 사례를 제외하면 이에 대한 해결책은 거의 없다. 이와 관련해 어떤 두 시대도, 그리고 어떤 두 나라도 같은 결론을 내린 적이 거의 없다. 특정 시대, 특정 국가에서 내린 결론은 다른 시대, 다른 나라에선 놀라운 것이다. 그럼에도 특정 시대나 특정 국가의 인민은 이를 두고 마치 인류가 원래부터 합의해왔던 주제인 양 어떤 어려움도 느끼지 않는다. 그들이 성취한 규범을 자명하며 그 자체로 정당하다고 여긴다. p26" 부분을 읽으며 떠올린 것이 PC주의(Political Correctness)였다. 솔직하자면 트렌스젠더 문제에 있어서 보수적 입장으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하필이면 이와 같은 입장이 우파 포퓰리즘과 폭력적 극단주의를 표방하는 트럼프의 차별주의와 함께 언급되어 p255 마음이 쓰였다. 이는 페미니즘과 여성의 권리와도 연결되어 있는 문제라 젠더 문제가 시간이 지난 뒤에 어떤 시대로 해석될지 궁금해졌다.
밀은 인간 발전의 필수 조건 중 하나인 '상황의 다양성'이 '낮은 계층을 끌어올리고 높은 계층을 끌어내리(p143)'는 교육의 확장과 통신 수단의 발전이 개별성을 위협하고 동질화를 가속하고 있다고 보았다. 더불어 " 모든 인간의 삶이 단 하나의 방식이나 소수의 방식에 따라 구축되어야 할 이유는 없다. 만약 어떤 사람이 어느 정도의 상식과 경험이 있다면, 그의 삶을 설계하는 방식은 그 자체로 가장 뛰어나서가 아니라 바로 그의 방식이기 때문에 그에게 가장 적합하다. 인간은 양과 같지 않다. 심지어 양조차도 서로 완전히 똑같지는 않다. 사람은 자신의 몸에 맞게 제작된 것이 아니거나, 창고에 선택할 수 있는 것들이 가득하지 않은 한, 몸에 꼭 맞는 코트나 신발을 얻을 수 없다. p134"
" 정부가 모든 아이에게 양질의 교육을 하기로 결단을 내린다면, 스스로 교육을 제공해서는 안 된다. / 일반적인 국가 교육은 사람들을 틀에 넣어 서로 똑같이 찍어내기 위한 단순한 장치에 불과하다. p206" 등의 내용은 요즘과는 방향성이 다르다. 과거보다 의무 교육 기간이 더 늘어났으며 모두에게 똑같이 제공되는 교육이 마땅히 제공되어야 할 복지로 여겨진다. 코로나를 겪으며 아주 기본적이라 여겨졌던 사회규범들이 제대로 학습, 훈련, 체득되지 않은 세대의 사례들을 보니 어느 정도 비슷한 기초 교육을 통한 지식과 교양이 '서로 똑같이 찍어내는 과정'으로 뒷받침되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또 하나 지금의 관점으로 논쟁적이라 여긴 부분은 " 이와 관련해 우리가 여전히 인정하지 않는 사실이 있다. 부모가 자녀에게 단순히 신체를 위한 양식뿐만 아니라 정신을 위한 교육과 훈련을 제공할 합당한 전망 없이 아이를 낳았다면, 그 불행한 자녀와 사회에 대한 도덕적 범죄라는 사실이다. p205" 는 내용이다. '가난하면 아이를 낳지말라'는 말과 유사하다. 이런 생각은 꽤 확고하여 "생명을 낳는 행위 자체는 인간 삶에서 책임이 가장 큰 행위 중 하나다. 이러한 책임을 맡아 축복이 될 수도, 저주가 될 수도 있는 생명을 낳으면서, 그 생명에게 최소한의 바람직한 삶을 누릴 기본적인 기회조차 주지 못한다면 이는 그 생명에 대한 범죄다. 더하여, 인구 과잉이거나 과잉 위협에 처한 국가에서 아이를 많이 낳는 행위는, 노동의 대가로 생계를 유지하는 모든 사람에 대한 심각한 범죄다. p210" 뒤이어 다시 이어지는데 그렇다면 반대로 인구절벽 위기에서 아이를 낳지 않는 행위는 마찬가지로 범죄가 되는가? 인구의 과잉이 아닌 인구 감소가 문제가 되는 사회를 밀은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궁금해졌다. 아이를 낳지 않는 행위는 심각한 범죄다,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 이 부분이 앞서 말했던 '특정 시대의 규범을 자명하고 정당하게 여기는 것p26'을 연상시킨다.
슬프게도 밀 스스로가 가진 생각이 다수에게도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을 것이라 믿은 면이 있는데, " 어리석음에도 정도가 있다. (비록 반대할 수 없는 문구는 아니지만) 저급함이나 취향의 타락에도 정도가 있다. 그 정도를 넘어서게 되면, ..중략.. 비록 다른 사람에게 직접적인 해를 끼치지는 않더라도, 어떤 사람이 행동이 그를 어리석거나 열등한 존재로 판단하고 느끼게 할 수 있다. 개인은 누군가가 자신을 이렇게 판단하고 느끼는 일을 피하고 싶어 한다. 그렇기에 그가 어리석고 불쾌하게 행동하고 있다고 사전에 경고해주는 일은 그를 도와주는 일이다. p153" 현세태를 비추어 보면 이는 상당히 순진한 생각으로 보인다. 심심치않게 올라오는 무식논란 등에 빗대어 봤을때 요즘 나타나는 양상은 부끄러움이 없다. 도리어 남의 성과/앎을 경멸하고 경고하는 행위들이 대다수에게 일어나고 있다. 아는 것이 힘이라는 말은 뒤로하고 모르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는 말을 무기처럼 휘두른다.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의미를 알아야겠다고 생각하기 보다, 잘난척하는 것도 아니고 왜 그런 말을 쓰는지 행위자를 비난한다. 밀도 이런 흐름에서라면 화살을 피해가기 어려웠을 것이다.
다른 결이지만 개별성에 대한 내용 중 " 한 사람이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것이야말로 각자가 자기 유형의 불완전성을 인식하고, 다른 유형의 우월성에 주목하거나, 두 가지의 장점을 결합하여 더 나은 것을 만들어낼 가능성을 끌어내는 첫 번째 계기라는 사실을 말이다. p140" 이 부분을 읽을 때는 제법무아가 떠올랐다. 이는 모든 것이 상호의존적으로 자아는 고정되어 있지 않고 조건에 따라 변화한다는 불교의 용어이지만, 그 '조건' 너와 나의 다름 즉 개별성이 결국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 되어 스스로를 인식하도록 만든다는 점이 비슷하게 여겨졌다. 앞서 꼽은 인간 발전의 필수 조건 중 하나인 '상황의 다양성'을 동서양에 공통된 철학안에서 읽어낼 수 있다는 것이 재밌다.
책을 읽는 과정에서 읽는 동시에 정보가 처리되는 과정이 이루어지지 않아 고생했다. 읽고 난 뒤에 주의깊게 생각하고 앞뒤문장을 살펴 이해의 과정으로 넘어가야 했는데 지적 능력 문제인지 주의력 결핍인지 집중력 부족인지 스스로에 대한 고민이 생겨났다. 혹 무엇 때문인지 아시는 분은 말씀주세요. 처음 생각했던 대로 세번 읽었더라면 더 많이 이해할 수 있었을텐데, 아쉽다가도 더 나은 서평을 쓰는 행위로 이어질거라는 확신은 할 수 없기 때문에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자꾸 사람들의 지적 수준을 구분짓길래 (인간 대다수는 지적 능력이 중간 수준일 뿐만 아니라 성향 역시 중간 수준이다. 그들은 비범한 일을 할 정도로 강한 취향이나 바람이 없으며, 따라서 그런 성향을 지닌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p136) 읽는 와중에 멈칫했는데 다 읽고 나서 재독하는데 도움을 좀 받을 수 있을까 싶어 기대를 가지고 살펴봤던 '해제-21세기에 왜 <자유론>을 읽는가? p223'의 내용에서 바로 그는 천재였다는 단언을 보고 깨달았다. 밀의 입장에서는 어떤 사람들은 일정 수준 이상으로 도달할 수 없고 그들에게서 느낀 한계 이상을 요구하지 않는 합리였다. 물론 해제의 내용은 그동안 읽은 내용을 다시 정리할 수 있는 좋은 길잡이였으나, 밀에 대해서는 호불호를 오가는 회전문 같은 정리였다. 보름 정도를 꼬박 쓴 독서였는데 느슨하면서도 치열한 시간이었다. 한동안은 휴식형 독서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다른 책도 읽어보고 싶어졌다. 이를테면 '공산당선언' 같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