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론 고전의세계 리커버
존 스튜어트 밀 지음, 김만권 옮김 / 책세상 / 2025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자유론을 읽는 과정은 처음 자유론의 제목을 들었을 때부터 예상했지만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읽기에 익숙한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내세울만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꾸준히 무언가를 읽어왔지만 읽기만 해도 괜찮았던 여타의 독서들과는 다르게 이해의 과정이 필요했다. 읽으면서 남들 다 자유론 찾아 읽는 대학시절에 뭐했을까 생각해봤는데 그때 안 읽어보고 이제와 초면인 책을 공부하듯 읽어내야 했던 자신에 대해서는 할말이 없다. 읽는 행위가 이해의 과정으로 소화되지 못하겠다 싶을 때면 서평을 쓰기 전까지 세번 읽어볼 작정이었으나 한번 읽고나니 서평을 쓰려고 마음 먹은 시점이 지나고 난 뒤였다. 사실 읽으면서 인상깊은 부분을 따로 옮겨적느라 시간이 더 많이 걸렸는데, 책의 대부분을 옮겨적은 것이 아닌가 싶게 많은 분량이었다. 초반에 읽으면서 옮겨적었던 부분들은 사실 그렇게 많은 부분을 기록하게 될 줄 예상하지 못해서 그때 어떤 생각을 했는지 기록해두지 않아 다시 봤을때 딱 떠오르는 인상이 없다면 서평 내용에서 제외했다. 

자유론을 읽기에 앞서 가장 염두에 두었던 것은 표현의 자유를 무기처럼 휘두르는 언론과 대중의 행태였다. 마침 '들어가는 말'에서 " 하지만 이제 누군가는 원래의 목적과 상관없이, 내가 누군가를 혐오하고 차별하는 일에 국가가 간섭하지 말라는 목적으로 표현의 자유를 이용한다. 개인의 자유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과거와는 정반대의 모습이다. 자유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p8" 개인이 누리는 자유에 대한 의문이 가졌던 부분을 짚어주었기에 매력을 느꼈다. 대중의 심판이라는 도마에 오른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받고 심지어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일들이 벌어진다. 하지만 우리가 누군가의 언행과 삶에 대해 어떠한 판단을 내리기에는 지나치게 일부의 정보만을 가진 경우가 많다. 때때로 그 이면에 숨겨진 정보가 드러나 상황이 반전되는 일도 생긴다. 하지만 " 공중은 비난받는 사람들의 감정이나 편의를 완전히 무시한 채, 오직 자신들의 선호만을 고려하며 가장 냉담하게 판단을 내리곤 한다. 많은 사람은 자신들이 싫어하는 어떤 행위를 자신에 대한 피해로 여기고, 이를 자기감정에 대한 모욕으로 느끼며 분개한다. p166" 타인의 상황이나 사건의 진실같은 것은 중요치 않고 순간에 끼친 감정과 기분이 타인에 대한 비난과 혐오를 정당화하는 근간이 된다. 

더불어 자유를 혐오와 차별의 수단으로 이용하지 않았나 생각해보게 된 지점이 있는데, " 어떤 것이 행동 규범이 되어야 하는가는 인간사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이지만, 가장 분명한 몇몇 사례를 제외하면 이에 대한 해결책은 거의 없다. 이와 관련해 어떤 두 시대도, 그리고 어떤 두 나라도 같은 결론을 내린 적이 거의 없다. 특정 시대, 특정 국가에서 내린 결론은 다른 시대, 다른 나라에선 놀라운 것이다. 그럼에도 특정 시대나 특정 국가의 인민은 이를 두고 마치 인류가 원래부터 합의해왔던 주제인 양 어떤 어려움도 느끼지 않는다. 그들이 성취한 규범을 자명하며 그 자체로 정당하다고 여긴다. p26" 부분을 읽으며 떠올린 것이 PC주의(Political Correctness)였다. 솔직하자면 트렌스젠더 문제에 있어서 보수적 입장으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하필이면 이와 같은 입장이 우파 포퓰리즘과 폭력적 극단주의를 표방하는 트럼프의 차별주의와 함께 언급되어 p255 마음이 쓰였다. 이는 페미니즘과 여성의 권리와도 연결되어 있는 문제라 젠더 문제가 시간이 지난 뒤에 어떤 시대로 해석될지 궁금해졌다.  

밀은 인간 발전의 필수 조건 중 하나인 '상황의 다양성'이 '낮은 계층을 끌어올리고 높은 계층을 끌어내리(p143)'는 교육의 확장과 통신 수단의 발전이 개별성을 위협하고 동질화를 가속하고 있다고 보았다. 더불어 " 모든 인간의 삶이 단 하나의 방식이나 소수의 방식에 따라 구축되어야 할 이유는 없다. 만약 어떤 사람이 어느 정도의 상식과 경험이 있다면, 그의 삶을 설계하는 방식은 그 자체로 가장 뛰어나서가 아니라 바로 그의 방식이기 때문에 그에게 가장 적합하다. 인간은 양과 같지 않다. 심지어 양조차도 서로 완전히 똑같지는 않다. 사람은 자신의 몸에 맞게 제작된 것이 아니거나, 창고에 선택할 수 있는 것들이 가득하지 않은 한, 몸에 꼭 맞는 코트나 신발을 얻을 수 없다. p134"
" 정부가 모든 아이에게 양질의 교육을 하기로 결단을 내린다면, 스스로 교육을 제공해서는 안 된다. / 일반적인 국가 교육은 사람들을 틀에 넣어 서로 똑같이 찍어내기 위한 단순한 장치에 불과하다. p206" 등의 내용은 요즘과는 방향성이 다르다. 과거보다 의무 교육 기간이 더 늘어났으며 모두에게 똑같이 제공되는 교육이 마땅히 제공되어야 할 복지로 여겨진다. 코로나를 겪으며 아주 기본적이라 여겨졌던 사회규범들이 제대로 학습, 훈련, 체득되지 않은 세대의 사례들을 보니 어느 정도 비슷한 기초 교육을 통한 지식과 교양이 '서로 똑같이 찍어내는 과정'으로 뒷받침되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또 하나 지금의 관점으로 논쟁적이라 여긴 부분은 " 이와 관련해 우리가 여전히 인정하지 않는 사실이 있다. 부모가 자녀에게 단순히 신체를 위한 양식뿐만 아니라 정신을 위한 교육과 훈련을 제공할 합당한 전망 없이 아이를 낳았다면, 그 불행한 자녀와 사회에 대한 도덕적 범죄라는 사실이다. p205" 는 내용이다. '가난하면 아이를 낳지말라'는 말과 유사하다. 이런 생각은 꽤 확고하여 "생명을 낳는 행위 자체는 인간 삶에서 책임이 가장 큰 행위 중 하나다. 이러한 책임을 맡아 축복이 될 수도, 저주가 될 수도 있는 생명을 낳으면서, 그 생명에게 최소한의 바람직한 삶을 누릴 기본적인 기회조차 주지 못한다면 이는 그 생명에 대한 범죄다. 더하여, 인구 과잉이거나 과잉 위협에 처한 국가에서 아이를 많이 낳는 행위는, 노동의 대가로 생계를 유지하는 모든 사람에 대한 심각한 범죄다. p210" 뒤이어 다시 이어지는데 그렇다면 반대로 인구절벽 위기에서 아이를 낳지 않는 행위는 마찬가지로 범죄가 되는가? 인구의 과잉이 아닌 인구 감소가 문제가 되는 사회를 밀은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궁금해졌다. 아이를 낳지 않는 행위는 심각한 범죄다,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 이 부분이 앞서 말했던 '특정 시대의 규범을 자명하고 정당하게 여기는 것p26'을 연상시킨다. 

슬프게도 밀 스스로가 가진 생각이 다수에게도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을 것이라 믿은 면이 있는데, " 어리석음에도 정도가 있다. (비록 반대할 수 없는 문구는 아니지만) 저급함이나 취향의 타락에도 정도가 있다. 그 정도를 넘어서게 되면, ..중략.. 비록 다른 사람에게 직접적인 해를 끼치지는 않더라도, 어떤 사람이 행동이 그를 어리석거나 열등한 존재로 판단하고 느끼게 할 수 있다. 개인은 누군가가 자신을 이렇게 판단하고 느끼는 일을 피하고 싶어 한다. 그렇기에 그가 어리석고 불쾌하게 행동하고 있다고 사전에 경고해주는 일은 그를 도와주는 일이다. p153" 현세태를 비추어 보면 이는 상당히 순진한 생각으로 보인다. 심심치않게 올라오는 무식논란 등에 빗대어 봤을때 요즘 나타나는 양상은 부끄러움이 없다. 도리어 남의 성과/앎을 경멸하고 경고하는 행위들이 대다수에게 일어나고 있다. 아는 것이 힘이라는 말은 뒤로하고 모르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는 말을 무기처럼 휘두른다.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의미를 알아야겠다고 생각하기 보다, 잘난척하는 것도 아니고 왜 그런 말을 쓰는지 행위자를 비난한다. 밀도 이런 흐름에서라면 화살을 피해가기 어려웠을 것이다. 

다른 결이지만 개별성에 대한 내용 중 " 한 사람이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것이야말로 각자가 자기 유형의 불완전성을 인식하고, 다른 유형의 우월성에 주목하거나, 두 가지의 장점을 결합하여 더 나은 것을 만들어낼 가능성을 끌어내는 첫 번째 계기라는 사실을 말이다. p140" 이 부분을 읽을 때는 제법무아가 떠올랐다. 이는 모든 것이 상호의존적으로 자아는 고정되어 있지 않고 조건에 따라 변화한다는 불교의 용어이지만, 그 '조건' 너와 나의 다름 즉 개별성이 결국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 되어 스스로를 인식하도록 만든다는 점이 비슷하게 여겨졌다. 앞서 꼽은 인간 발전의 필수 조건 중 하나인 '상황의 다양성'을 동서양에 공통된 철학안에서 읽어낼 수 있다는 것이 재밌다. 

책을 읽는 과정에서 읽는 동시에 정보가 처리되는 과정이 이루어지지 않아 고생했다. 읽고 난 뒤에 주의깊게 생각하고 앞뒤문장을 살펴 이해의 과정으로 넘어가야 했는데 지적 능력 문제인지 주의력 결핍인지 집중력 부족인지 스스로에 대한 고민이 생겨났다. 혹 무엇 때문인지 아시는 분은 말씀주세요. 처음 생각했던 대로 세번 읽었더라면 더 많이 이해할 수 있었을텐데, 아쉽다가도 더 나은 서평을 쓰는 행위로 이어질거라는 확신은 할 수 없기 때문에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자꾸 사람들의 지적 수준을 구분짓길래 (인간 대다수는 지적 능력이 중간 수준일 뿐만 아니라 성향 역시 중간 수준이다. 그들은 비범한 일을 할 정도로 강한 취향이나 바람이 없으며, 따라서 그런 성향을 지닌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p136) 읽는 와중에 멈칫했는데 다 읽고 나서 재독하는데 도움을 좀 받을 수 있을까 싶어 기대를 가지고 살펴봤던 '해제-21세기에 왜 <자유론>을 읽는가? p223'의 내용에서 바로 그는 천재였다는 단언을 보고 깨달았다. 밀의 입장에서는 어떤 사람들은 일정 수준 이상으로 도달할 수 없고 그들에게서 느낀 한계 이상을 요구하지 않는 합리였다. 물론 해제의 내용은 그동안 읽은 내용을 다시 정리할 수 있는 좋은 길잡이였으나, 밀에 대해서는 호불호를 오가는 회전문 같은 정리였다. 보름 정도를 꼬박 쓴 독서였는데 느슨하면서도 치열한 시간이었다. 한동안은 휴식형 독서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다른 책도 읽어보고 싶어졌다. 이를테면 '공산당선언' 같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낭만 사랑니 TURN 4
청예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겨우 찾은 이직처였지만 도망치는 곳에 낙원은 없다더니 진실로 그러했다. 인격적으로 무시당했고, 월급은 크게 줄었다. 스트레스는 서로 간에 어찌나 끈끈한지 매번 손을 잡고 단체로 찾아왔다. 누가 내 마음 좀 알아줬으면 좋겠네, 좆같은 세상. 속으로 욕만 할 뿐 꾹 참으며 사는 탓에 좆같은 세상은 매일매일 좆같기만 했다. p43 " 

 처음, 책 두 권이 있었다. '플라스틱 세대'와 '낭만 사랑니' 뭔가 반대 느낌의 두 제목을 보고 있다가 아무래도 낭만은 뭔가 나랑 안 맞을 것 같아 순서대로는 아니지만 '플라스틱 세대'부터 읽었다. 사랑니는 이미 다 발치하고 난 뒤라 없기도 했고. '플라스틱 세대'를 기대 이상으로 재밌게 읽어서 '낭만 사랑니'를 읽으려니 영 집중이 안됐다. '플라스틱 세대'는 사건이 끊임없이 벌어져서 순식간에 다음 전개로 나가게 만드는데 '낭만 사랑니'는 이상한 말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염라와 나한이 나오고, 치위생사의 이름이 천직이면서도 불길하게도 이시린이고. 잠깐 보려다가 다 읽어버린 '플라스틱 세대'와는 다르게 '낭만 사랑니'는 읽어보려고 앉았다가 몇 번 딴짓하게 됐다. 결국에는 이렇게 감동하게 될 줄 모르고. 이 두 책이 동시에 손에 들어오게 된 것이,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더라 비교하게 되었던 것이 " 이처럼 우주만물은 상호작용을 하며 인연을 쌓고, 서로를 느끼고, 공명하며, 아름다운 개성을 얻는다. p101"는 것 아닐까. 

 "못난 자들은 자기만큼 못난 자도 견딜 수 없기 마련이라 과장은 오만한 자를 보면 혐오감을 이기지 못해 구역질했고, 지금은 위기 상황이었다. p81 " 아, '낭만 사랑니'의 장점이자 단점은 시린의 직장생활이 너무 안좋은 방향으로 진짜 같다는 것이다. 책을 읽다 가만히 눈을 감고 있자면 뭔가 떠오른다. 넓지도 않은 한국 땅 어딘가는 두 번 다시 근처도 가고 싶지 않은 지역이 있는데 '거지같은 전직장 구역'이다. 밥만은 맨날 갈수있는 한 가장 맛있는 집을 찾아다니며 먹어서 근처 맛집이 어디있는지 잘 꿰고 있지만 그 맛집 두 번 다신 안가도 괜찮을 그곳. 책을 읽다 문득 세상이 왜 이러냐며 성토하고 싶어지는데, 그럴때마다 심호흡을 하며 과거의 어딘가에서 밥벌이를 하다 겪은 일들을 줄줄이 펼쳐놓고 싶은 마음을 잘 갈무리한다. 시린의 일상과 주변인들이 너무 진짜 같아서 답답하고 피곤한데 공감도 됐다. 나와 다른사람 사이의 거리감이나 관계같은 것들을 생각해보며 읽었다. 서로에게 칼날같은 말을 내뱉으면서도 그 안에는 염려, 사랑, 불안, 관심, 슬픔 같은 마음을 품고 있는 인물들에게서, 나는 걱정이라고 이름 붙인 것들로 도리어 남에게 생채기를 낸 일들은 없었던가 떠올렸다. 속마음이 그대로 상대에게 전해지도록 노력하는 일도 용기가 필요하다. 

 "평소에는 사방이 암흑이라 본인이 꺼진 줄도 몰랐지만 환하게 타오르는 불을 목격하는 순간이 오면 어쩔 수 없는 조바심이 들었다. '혹시 나만 꺼져 있는 걸까?'하고. 목구멍 언저리가 아릿했다. p35" 청소년소설을 읽는 걸 좋아하는데 그 안에 야무지게 공감과 갈등, 극복, 성장같은 것을 넣어놓은 점이 마음에 든다. '낭만 사랑니'는 그 못지 않은 의미들을 꾹꾹 눌러담았다. 어른이 되어서도 흔들리는 어른들을 위한 성장소설이 아닐까 싶다. 어릴땐 내가 어떤 방향으로 가고 싶은지 고민하는데, 어른이 되고 나면 속도가 신경쓰인다. 방향은 이미 돌릴 수가 없을 것 같은데, 저마다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다른 사람들을 보면 남들이 가는만큼은 가고 있나 뒤쳐진 건 아닐까 불안해지고 만다. 나란했던 것 같은 사람들의 등만 보이는 것 같고, 내 등을 보고 있을거라 생각되는 사람들보다는 앞서있고 싶은 시기와 교만에 익숙해지는 것을 '어른이 됐다'고 핑계삼는다. 그러지말아야지.
 
 " 그녀는 늘 일어나지 않은 일을 고민하며 살았다. 눈앞에 실체 없는 장막을 두고 사는 그녀에겐 앞으로 나아가는 일보다 제자리에 멈춰 있는 일이 편했다. 남들에게는 손끝으로 가벼이 밀어내는 문일지라도 그녀에게는 부딪칠 엄두가 나지 않는 벽이었다. 시린은 콧잔등을 간질이는 강아지풀 같은 고민 하나로도 온 세상의 파멸을 상상했으니, 매사가 무서웠다. p133 " 주인공 시린의 나약함은 나를 돌아보게 하는 거울이었다. 망했다, 끝났다고 생각하는 실수가, 막힌 길이 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 상황, 그 일의 과정이나 결과일뿐 나의 시간은 계속된다. 막상 상황 앞에서는 그게 전부인 것 같지만 과정 속에서는 한 순간일뿐이고 내가 나아가고자 하면 나는 망하지도 끝나지도 않고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 것을 한때는 몰랐다는 걸 곱씹으며 읽었다. 

 아쉬운 것이 책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을 소개하려면 내용이 너무 많이 드러나게 될까 피해야한다. 처음에 뜬구름 잡는 소리인가 싶었던 시작을 나처럼 어렵게 여기거나 진부하거나 지루한 소재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갈수록 관계와 세상에 대한 더 깊은 이해와 감동을 주는 좋은 책이었으니 꼭 읽어보길 바란다. 특히 수보리와 나호라의 이야기에서 감동했다. 이 둘의 갈등은 이미 결말을 어느정도 예상했음에도 사건을 풀어내는 말들이 깊이있는 울림을 준다. 언젠가부터 책 선물도 취향이 타는 조심스러운 선택지가 되었지만, 이 감동을 전하고 싶어 친구에게도 책을 선물하고 싶어졌다. "벗이여. 그대를 보고 나는 내가 되고, 그대 또한 나를 보아서 그대가 된다네. p222" 읽고나면 떠오르는 사람에게 선물하고 싶어지는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플라스틱 세대 TURN 5
김달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람들에게 갑자기 나타나는 이상 식욕! 플라스틱에 대한 탐닉으로 이성이 마비되고 목숨까지 위협받는 새로운 세대의 등장. 

 시작이 어려웠다. 읽어야 할 책들이 몇 권 있었고, 그 중에는 오랜 시간을 요할 것 같은 책도 있고 도서관 대출기한이 끝나가 금방 반납해야 할 것도 있었다. '플라스틱 세대'는 그에게는 애석하지만 나에게는 다행히도 둘 다 해당되지 않았다. 거기다 다른 책들에 비하면 읽기도 편할 것 같아 뒤로 미뤄두고 나중에 읽어볼까 싶었다. 다른 일을 하다가 하루가 거의 끝나갈 무렵, 뭔가를 제대로 시작하기엔 부담스러운 시간에 가벼운 마음으로 한두장 읽어보다 순식간에 빠져들었다. 속도감있는 빠른 전환은 몰입도 빠르게 만들었다. 재밌다. 재난물을 좋아하는 취향과도 맞았다. 

 " "웃기지 않아요? 연간 몇천만 톤씩 플라스틱 쓰레기를 배출해서 환경을 망쳐왔던 인간들이 이제 그걸 다 먹어 치우기 시작했다는 게. 적어도 지구는 덜 아프겠어요." p36"
솔직히 좀 뻔하다고 생각한 면도 있다. 주로 인간이 파괴한 환경이 자연의 분노로 돌아와 그 댓가를 치른다는 메시지는 자연보호 표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 안에 담긴 선한 의도를 넘어서는 특별함을 갖거나 매력을 찾기 어려운 주제다. '플라스틱 세대' 역시 특유의 공익광고스러움을 가지고 있지만 특별했다. 플라스틱을 먹는 이상식욕 증상이 나타났습니다,에서 끝나지 않고 세대로 이어지는 변화를 꾀했다. 이야기의 범위가 길어지면서 전개에 속도감을 더하고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구체적으로 상상하도록 유도한다. 가끔 인류의 진화는 어떻게 이루어질지 생각하곤 하는데, 인간을 인간으로 규정하는 조건은 무엇인지를 두고 신체와 심장, 폐 같은 장기를 대신하는 것이 인공물이라면 사람과 로봇을 나누는 기준은 무엇으로 두는가, 기억을 저장하고 학습을 보조할 수 있는 칩이 이용된다면 사람과 AI의 경계는 어떻게 되는가 같은 문제를 떠올렸다. '플라스틱 세대'는 새로운 진화를 맞이하는 인류를 상상하게 한다.  

 " 재현이 온라인에 남긴 증언은 과연 세계적인 현상이었다. MZ세대라고 불리는 1990년대생을 중심으로 퍼진 알 수 없는 플라스틱 섭취 현상은 그동안 체내에 축적된 환경호르몬이 내분비계에 영향을 미쳐 끝도 없이 플라스틱을 원하도록 세포 변형을 일으킨 결과였다. 그들의 뇌는 플라스틱을 음식으로 인지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연약한 인간의 몸은 자기가 원해서 받아들인 것에 의해서도 쉽게 파괴됐다. 플라스틱으로 인해 죽어가는 해양 포유류의 전철을 밟게 된 것이다. p55 " 애석하게도 MZ세대들이 그 플라스틱 세대의 첫 걸음이 되었는데, 안타까웠다.  MZ라는 명명도, 그걸 대표하는 이미지도 기성세대의 마음대로 규정지어졌는데 플라스틱 세대로도 꼽히다니. 자원을 마음껏 써온 MZ보다 더 윗세대는 이상식욕이 발현하지 않는데, 빨대도 종이로 대신하게 되었던 MZ세대들은 플라스틱 빨대를 그리워했던 만큼 플라스틱을 먹고 싶어하게 된다. 영원히 고통받는 MZ 살려. 

 재난영화에서 앞으로 닥쳐올 재난을 가장 먼저 알아차린 주인공 집단이 늘 그러하듯, 이 이상식욕과 그 뒤에 숨겨진 거대한 비밀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주인공 예인 역시 고단한 길 앞에 놓여진다. 그리고 그 길을 걸어야만 하는 주인공의 숙명을 안고 세대의 흐름을 거슬러 나아간다. " 예인은 두렵고 무서웠다. 그래서 견딜 수가 없었다. 자신을 강하게 결박한 경찰의 팔에 얼굴을 파묻고 매달렸다. 당신도 죽을 거야...... 비로소 예인의 중얼거림을 알아들은 경찰이 힘을 풀었다. 괜찮다고, 아무 일도 없을 거라고 예인을 달랬다. "죽는다고요, 진짜 다 죽는다고." 예인은 현실감을 되찾지 못하고 몸을 떨었다. 아니, 그것은 뒤늦게 찾아온 현실감이었다. p108 " 누가 모든게 안전하고 검증되었다는 말 대신 모든게 망가졌고 결국 다 죽을거라는 말을 믿고 싶겠는가. 듣기 조차 싫을 현실을 폭로한 예인은 재난의 중심으로 끌려간다. " 사람, 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들의 눈은 완전히 풀려 있었다. 먹잇감을 찾으려 필사적으로 쓰레기통을 뒤지고 차도로 뛰어들었다. 충희의 시선을 따라 이 광경을 함께 보게 된 예인이 차게 얼어붙었다. 충희는 예인에게 등을 내보이며 업히라고 했다. 다른 말은 필요 없었다. p156 " 좀비를 다룬 아포칼립스 물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소요처럼 책을 읽으며 플라스틱으로 인해 상실된 인간성과 치안이 무너진 도시의 모습을 상상하기에 어렵지 않다. 인지의 순간은 부정과 함께하고, 진정한 혼란은 인식과 인정 사이에서 발생한다. 현실의 혼란에서 우리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잃지 않아야 하겠지만. 

 하루가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읽기 시작한 책은 다음날의 시작이라는 넉넉함을 맞이했다. 조금만 읽어봐야지, 생각했는데 순식간에 빠져들어 멈출 수가 없었다. 아주 잠깐 사이에 남은 책장의 두께보다 읽은 책장의 두께가 더 두꺼워진 것 같았다. 그만큼 빨리 줄어드는 책장이, 어차피 조금만 더 읽으면 되니까 그냥 마저 읽어버리라고 부추겼다. 모자란 잠은 지금이 아닌 나중의 내가 감당하면 될 일이니까. 자연과 건강을 해치는 플라스틱을 다음 세대에게 넘기는 무뢰한처럼 생각했다. 다음날을 피곤하게 하는 소설이었다. 부디 충분한 여유를 가지고 첫 장을 열길 바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른을 위한 고전의 숲 - 삶이 풍요로워지는 여덟 번의 동양 고전 수업
강경희 지음 / 포레스트북스 / 2025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요즘 필사를 시작했는데, 정말 이제 막 시작했는데 '어른을 위한 고전의 숲' 출간 소식을 봤을 때 지금 딱 필요했던 책이라 여겨졌다. 아무래도 고전은 필사하기 좋은 문구들을 많이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예상은 틀리지 않았는데 다르긴 했다. 읽다보니 필사하기 좋은 문구들이 지나치게 많았다. 예전에는 뻔한 소리라 그런가보다 하고 넘겼을 내용도 이것도 내 마음 같고, 저것도 내 마음 같아졌다. 그동안 나이만 헛먹었나 싶었는데 드디어 어른이 된 것일까 고전이 지루하거나 고루하게 느껴지지 않고 흥미롭고 재미있다니 좋으면서도 어떤지 씁쓸하다. 어쩌면 이 책이 사회초년생, 이제 막 성인이 된 이들에게 더 필요한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제야 공자님 말씀을 좀 알겠구나 싶은 중년만이 아니라, 좀 더 넓은 연령층에게 공감과 의지가 될만한 내용이 많다. 더불어 저자가 글을 잘 써서 받아들이기 쉬웠던 점도 있다. 

 티비 프로그램 중에 일반인이 나오는 연애프로그램을 자주 본다. 다양한 사람들이 나와서 서로의 감정을 주고 받는 프로그램은 매번 논란을 불러 일으키고 놀라움과 재미를 준다. 굉장히 자극적이다. 방송이란 것에 준비되지 않은 일반인 출연자들이 미처 염두에 두지 못했던 말과 행동이 모든 사람에게 고스란히 보여진다는 것은 물론이고, 천천한 흐름에서라면 이해가 될 만한 면도 빠르게 편집되어 오해를 유발한다. 대체 왜 저런 언행을 하는 것일까 상대방을 어리석게 여기는 마음이 들 때면 '그 상황'에 처해보지 않고서는 판단하면 안된다는 말을 떠올린다. 누군가의 언행을 보고 그를 평가하고 비난하고 싶어질 때 쉽지는 않지만 "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이 사태의 일부라는 것, 입장이나 관점이 달라지면 얼마든지 다른 면이 보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면, 내가 옳고 네가 틀렸다는 시비판단이나 독선, 아집 등으로 다른 사람을 불행하게 만드는 일이 많이 줄어들 것이다. p120 " 는 내용을 떠올릴 것이다. 어떤 사건들이 시간이 지난 뒤에 다른 국면을 제시하여 놀라움과 반성을 야기하는 것처럼 남보다 자신을 우선하여 되돌아보기를 또다시 다짐한다. 

 " 동파는 아직 닥치지 않은 미래를 걱정하며 불안해하거나 전전긍긍하지 않았다. 어쨌거나 미래는 아직 다가오지 않았으므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현재의 자신이 손쓸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자신이 컨트롤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을 때, 그것을 받아들이고 그냥 놓아두는 것 이야말로 마음의 짐을 가볍게 하는 최선의 방법이다. p114 "
 첫 직장을 다닐 적 일이다. 금요일 퇴근 전에 내가 했던 일에 큰 실수가 있었음을 발견했다. 퇴근시간 이후엔 프로그램이 막히기 때문에 일이 어찌되었든 집에는 갔고, 그 주말 내내 알 수 없는 공포감에 사로잡혀 '어떡하지' 걱정하느라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잠도 제대로 잘 수 없고 입맛도 없었다. 월요일이 되면 문제를 발견한 누군가 나를 혼낼 것 같고, 큰일이 난 것만 같고, 어찌됐든 다 망해버린 것만 같았다. 늘 그렇지만 그때는 더욱더 월요일이 오지 않기를 바랐다. 세상이 망해서 출근을 안해도 된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커다란 불안과 공포를 안고 회사에 갔더니 주말 내내 나를 괴롭혔던 문제는 사실 내 업무 과정에서의 실수가 아니라 회사 시스템 내에서의 오류로 야기된 것이었다는 결과가 나왔다. 그때 나는 뭔가를 깨달았었다. 내가 그토록 걱정하고 불안해했던 문제들은 생각보다 아무런 힘도 영향력도 없었다. 내 인생은 그런 문제 한두가지를 이유로 내가 걱정하는 것만큼 망가지거나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내 시간을 낭비하고 괴롭게 만드는 것은 나의 불안이었다. 한때 너무나 중요하다고 여겼던 것들, 이게 전부라고 생각했던 것들은 지나고보면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 그 뒤로 '이 또한 지나가리라(278), 실수는 날 어떻게 하지 못한다, 하지만 난 실수를 어떻게 할 수 있다, 어쩌라고' 같은 직장인 마음가짐을 얻었다.

 그럼에도 " 실패라는 말은 언제나 두렵다. 그래서 인간은 누구나 살아가는 동안 가능한 한 실패를 경험하지 않기를 바란다. 실패로 인해 겪는 마음의 고통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만큼 아프다. 그처럼 자신이 초라하고 쓸모없고 무능해 보이는 때가 없다. 때론 남 탓, 부모 탓, 세상 탓 등 문제를 외부로 돌리기도 하지만, 실패가 가져다주는 쓰라림의 가장 밑바닥에는 결국 자기 자신의 무능함을 마주해야 하는 고통이 똬리를 틀고 있다. 특히 능력만 있으면 뭐든지 할 수 있다고 '믿는' 사회에서는 그 쓰라림이 더 클 수 밖에 없다. p177 "  과거의 나를 불안에 떨게 했던 것도 실패가 두려웠기 때문 아닐까. 그때의 나는 실패가 부끄러웠다. 아마 요즘의 실패는 그보다 더 할 것이다. 실패 후에 회복이 어렵기 때문이다. 다시 시작하기가 어려운 사회에서 실패의 리스크는 치명적이다. 실패하는 것이 스스로의 무능을 드러내는 수치와 고통뿐이라면 차라리 낫다. 지금의 실패는 생존에의 위협에 닿아있다. 실패를 하지 않으면 나아갈 수 없다고? 실패를 하면 길이 막힌다. 요즘 세대는 앞에 놓여진 길이 최대한 막히지 않도록 가장 안전한 길을 찾아 나아갈 수 밖에 없다. 막힌 길 앞에서 뛰어넘을 계단을 만들기도, 뚫을 구멍을 내기도 시간을 너무 많이 소요할 수 없기 때문이다. 거창한 뜻을 세우기보다 그저 남들만큼만 되고 싶은 세대에게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노력을 믿으란 말을 할 수 없다. 대신, " 실패의 모든 원인이 자신의 능력하고만 결부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안다는 것은, 실패를 전적으로 자기 무능의 탓으로 보지 않는 것이다. 많은 다른 요인이 함께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에 마음을 열어놓는 것이다. p203 " 탓을 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지만 실패는 복합적인 요인과 상황의 산물이라는 점을 기억하라고 해두고 싶다. 

 앞서, 필사를 시작하면서 '어른을 위한 고전의 숲'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는 말을 했는데 책 안에서도 글로 쓰기에 대한 내용이 나와 반가웠다. " 그런데 말로 표현하는 것보다 더 확실하고 효과적인 방법이 있다. 바로 글쓰기다. 글로 적는다는 것은 모호하고 이해되지 않는 것을 종이 위에 문자로 옮기는 행위다. 종이에 적힌 것은 하나의 실체로 존재하므로 직관적인 관찰 대상이 될 수 있다. 다시 말해 머릿속에서 어지럽고 복잡한 실타래처럼 엉클어진 것을 종이 위에 문자 형태로 고정시켜 놓는 것은 모호하고 종잡을 수 없는 생각이나 감정을 구체적으로 실체화시키는 일이다. p213 - 그리고 적은 것을 다시 처음부터 읽어보면 현재 자신의 감정이 어떠한지, 사건에 대한 자신의 해석이 어떠한지 객관적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그렇게 자기 자신과 고통 사이에 틈이 생기면 그 고통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고, 마침내 자신의 삶에 닥친 고통을 다른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때 비로소 치유와 성장이 시작된다. p225 " 전자책의 등장으로 종이책의 입지마저 흔들리는 때에 직접 종이 위에 손으로 글을 적는 필사는 또 얼마나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확신이 없었다. 그래서 필사에 매력을 느끼면서도 항상성을 가질 수 없었다. 하지만 글로 적는다는 행위 안에서 얻어질 수 있는 것들이 분명 존재한다는 내용을 보니 좀 더 의지가 다져졌다. 

​ 기대보다 재미있게 읽었고 얻어가는 것이 많았다. 선입견을 버리고 고전에 발을 들여보라고 권해주고 싶은 책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필사도 유행이 될 수 있을까? 
간만에 필사를 시작해서 필사에 대한 ㅇ이야길 쓰려고 했더니 상품도 이미지도 넣을 방법이 없다 
글씨크기 조차 바꿀수없는데 투표넣기는 활성화되어 있다.. 페이퍼 어렵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