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제국의 발견 - 소설보다 재미있는 개미사회 이야기
최재천 지음 / 사이언스북스 / 199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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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어릴 때 누구나 한 번 쯤은 줄지어 기어다니는 것을 들여다 보았을 곤충 개미. 지금은 집에서 내몰아야 할 해충으로 광고되는 개미. 우리 주변에서 흔하디 흔하게 발견되는 개미이건만, 학교다닐 때 배웠던 개미에 대한 얕은 지식 - 여왕개미와 일개미, 진디와의 공생, 땅속에 집을 짓는다는 사실정도 - 외에는 사실 개미에 대해 아는바도 없었거니와 알려고도 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이번에 큰 애의 중학교 교과서에 실린 원작을 찾는 과정에서 이 책을 알게 되어 읽어보았는데, 개미라는 동물이 이렇게나 신비하고 재미있는 동물이었던가 새삼 놀라울 뿐이었다.

개미의 한문 표기는 의(蟻)인데 이는 옳을 의(義)자에 벌레 충(蟲) 부수를 붙인 글자다. 공익을 위해 사익을 희생하는 의로운 벌레라는 뜻이다.(p128) 저자는 중국 사람들이 그 옛날에 이미 개미들의 특성에 대해 알고있었던 것 같다고 추측하며 개미가 화려하고 아름다운 동물은 아니지만 그들의 생태가 우리 인간사회 못지않게 고도로 사회성을 갖춘 매우 경이로운 생명체라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개미제국의 발견>은 여러가지 장점이 많은 책이다. 이 책의 저자 최 재천씨는 동물행동학의 세계적인 권위자라고 하는데, 원래는 문학도의 꿈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문학도로서의 그의 재능은 책 내용의 곳곳에 드러나는데, 일단 개미의 생태를 인간사회와 비교하여 일반인들이 알기 쉽게 풀어쓰는 능력이 매우 탁월하다. 부제목인 "소설보다 재미있는 개미사회 이야기"가 딱 들어맞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개미사회를 경제, 문화, 정치적인 특성 세가지 부분으로 나누어 소개하고 있는데 그의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어찌나 개미들의 생태 구조가 인간사회와 흡사한지 인간이 개미로부터 진화한게 아닐까 싶어질 정도다. 특히 버섯농사를 짓는 개미와 가축을 기르는 개미들의 이야기는 인간 못지 않은 농사꾼이 또 있구나 하는 신기함을 느끼게 했고, 여왕개미의 눈을 피해 알을 낳는 일개미가 있다는 사실은 개미세계에서조차 왕권에 도전하는 이단아의 존재가 있다는것에 실소가 나오는것이었다.

둘째, 자칫 딱딱하기 쉬운 과학적 내용인데 비유적인 표현을 많이 사용하여 읽는이가 전혀 부담을 느끼지 않게 풀어나간 것이 돋보인다. "비가 내린 후 쑥쑥 자란 버섯은 밤새 천사들이 내려와 심어놓고 간 선물(p37)", "군대개미들을 따라다니는 개미새들(antbirds)은 군대개미들에게 놀라 갈팡질팡 놀라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온갖 풀벌레들을 잡아먹는 일을 전문으로 하는 새들(p54)"같은 표현은 그 문장을 읽는것만으로도 머리속에 온전한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가!! 이런 점 때문에 생물쪽에 관심이 있는 학생이라면 초등학교 고학년이 읽어도 전혀 무리가 없을것이라 생각된다.

그 중에서도 내가 가장 마음에 들었던 저자의 표현은 바로 "잎꾼개미"라는 단어였다. 이 개미는 나뭇잎을 물어다 그것들을 재료로 버섯을 기르는데, 원래는 잎을 자를 때 두툼한 턱을 사용한다고 해서 "가위개미"라 불린다고 한다. 하지만 사실 잎을 자를 때 턱을 가위처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톱처럼 사용하기 때문에 적절한 이름이 아니라고 생각한 저자는 이 개미에게 "잎꾼개미"라는 이름을 붙이기로 했다. 그 이유는 산에서 나무를 해오는 사람을 나무꾼이라고 부르는것처럼 이 개미들은 버섯을 키우기 위해 이파리를 물어오니까 "잎꾼"이라고 부르는것이 적당하다는 것이다. 과학자다운 정확함과 순우리말에 대한 애정과 센스까지 느껴져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던 부분이다.

셋째, 생생하고 다양한 개미들의 모습을 실어놓은 사진과 그림이 이 책의 강점이다. 왼쪽 사진은 잎꾼 개미들이 분홍꽃잎을 나르는 모습이다. 버섯을 키우기 위해 나뭇잎을 나르는 잎꾼개미가 무슨 이유로 분홍꽃잎을 나르는것일까? 사진만 봐도 개미들의 예쁜 행동이 너무 신기한데, 캄캄한 밤에 밀림에서 손전등을 켜고 혼자 이 모습을 봤을 저자는 얼마나 감동을 했을지 충분히 짐작이 된다. 저자는 이 모습을 보고 잎꾼개미들이 꽃잎을 나르는것을 최초로 발견한것이 아닌가 싶어 밤잠을 설쳤다고 한다. 아쉽게도 최초의 발견은 어느 유럽인이었다고 한다. 


다음 사진의 왼쪽은 열대 개미들이 기르는 다양한 뿔매미들의 모습이고 오른쪽은 깍지벌레(흰 점처럼 보이는것)를 좁은 사육실에 묶어놓고 젖을 짜는 아즈텍개미의 모습이다. 개미는 육식을 즐기는 포식자인데 몸도 연하고 자기방어능력도 없는 곤충들이 언제부터 개미에게 잡아먹히지 않고 서로 돕고사는 동반자관계가 되었는지는 진화학적으로 매우 흥미로운 연구과제라고 한다.(p45) 저자가 솔제니친의 수필을 읽고 개미세계에 빠져들었듯이 이 책을 읽은 어린 과학도들이 훗날 세계적인 동물행동학자가 되어 개미세계의 풀리지 않은 여러 의문점들을 해결하고 있을것이란 믿음이 든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책의 말미에 우리나라 개미의 분류검색표에 대해 설명함으로써 개미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전해주는데도 소홀함이 없다.  분류검색표란 자연에서 관찰 또는 채집된 동식물을 구분할 수 있도록 분류학자들이 연구해 마련한 길라잡이인데, 이 분류검색표를 이용해 개미를 구분하는 방법까지 상세히 설명해 놓았다. 

책을 덮고 나니, 그동안  무심히 지나쳤던 개미들의 다양한 종류와 생태가 쉽고도 친근하게 다가옴을 느끼게 된다. 거기다 세계적인 석학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개미연구를 해 온 저자의 열정까지 고스란히 전해져 오는것 같아 더 마음 뿌듯하고 자랑스럽다. 내가 어린 나이가 아니라 이 책을 읽고 삶의 방향을 정할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아이들과 산책하다가 함께 쭈그리고 앉아 개미를 관찰하며 개미들의 습성과 인간사회와의 흥미로운 유사성정도는 자세히 설명해 줄 수 있을터이다. 이 또한 책을 통해 개미를 관찰하고 연구하고 싶어하는 아마추어나 전문 개미학자가 많이 나오기를 바라는 저자의 희망에 일조하는것이라 믿으며 이 책이 개미와 동물, 나아가서는 자연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차 있는 보석같은 책이라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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