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가 한 마리도 죽지 않던 날 (양장)
로버트 뉴튼 펙 지음, 김옥수 옮김, 고성원 그림 / 사계절 / 2005년 6월
평점 :
절판


과연 '돼지가 한 마리도 죽지 않던 날'은 어떤 날이었을까? 이 책의 제목을 보자 마음속에 이런 궁금증이 자리잡았다. 주인공 소년 로버트에게 생애 최초의 소중한 소유물이 바로 돼지이고 로버트의 아버지는 바로 돼지를 죽이는 것을 직업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면 이 한 줄의 제목에 인생의 아이러니, 험난함과 함께 소년과 아버지의 마음 속 깊이 품고 있었을 법한 소망까지도 함축하고 있는 듯 하다.

이웃집 태너 아저씨네 소의 출산을 도와 준 답례로 받은 귀여운 돼지 핑키! 핑키는 로버트에게 안기는 순간 로버트의 친구이자 희망으로 자리잡는다. 그러나 인생은 늘 그렇듯이 뜻대로는 되지 않는 법! 어느 날 로버트는 아빠 헤븐에게 병이 있음을 듣게 되고 더군다나 소중한 돼지 핑키가 새끼를 갖지 못함을 알게 된다. 가을이 깊어가고 겨울이 오자 아빠의 병세는 더 악화되고 도저히 삼킬 수 없을 정도로 형편없는 아침식사를 하던 날, 결국 아빠는 로버트와 함께 핑키를 죽인다.

생애 최초로 갖게 된 유일한 소유물이자 소중한 친구를 죽음으로 몰아넣어야 하는 고통......결국 로버트는 아빠에게 말한다. 가슴이 찢어질 것 같다고.....'어른이 되려면 그런 건 이겨내야 해. 어차피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하는 아빠가 미웠지만 눈물을 닦아주는 아빠의 울퉁불퉁한 손가락과 시선을 다른 데로 향하며 흘리는 아빠의 눈물을 느끼는 순간 로버트는 아빠를 용서할 수밖에 없는 자신을 발견한다.

로버트가 아빠의 죽음을 의연하게 맞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핑키와의 이별이 주는 고통을 극복했던 과정이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13살 로버트! 장례식 때 입을 양복조차 없어 하느님께 사는 게 지옥 같다고 절규하지만 자신을 사랑하는 가족과 이웃 앞에서는 어른스럽게 장례절차를 처리할 줄 안다. 그는 이제 더 이상 '아버지'라는 울타리 안의 소년이 아니라 스스로 울타리를 만들어 가는 가장의 역할을 해야 하는 어른으로 성장한 것이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천진난만한 소년 로버트의 모습, 그리고 따뜻한 가족과 이웃간의 사랑을 느끼게 되어 흐뭇한 마음이 들 때가 많다. 우연히 이웃집 태너 아저씨의 소 행주치마의 출산을 돕다가 무조건 소의 목구멍으로 손을 넣어 혹을 떼어 내다가 팔을 물리는 장면에선 12살 어린 소년의 무모하기까지 한 용기가, 매티 이모에게 영어교습을 받는 장면에선 순진함과 장난기가, 러트랜드 전시회에서 핑키가 파란 리본을 탔다고 좋아하는 장면에선 동심이 잘 표현되어 있어서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떠오르곤 했다. 또 늘 지독한 냄새가 나서 미안하다고 말하는 헤븐에게 '성실하게 노동한 냄새이니 창피하게 여길 필요 없다'고 격려하는 엄마, 이웃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존중할 줄 아는 태너 부부의 모습은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하고 이웃을 돌아볼 줄 모르는 각박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어른들이 꼭 배워야 할 미덕이라고 강조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검소하고 욕심부리지 않는 셰이커 교도들의 생활상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고, 과연 인간에게 종교란 무엇인가 하는 의문도 새삼스레 가져 보았다. 여기서 나오는 아빠의 이름이 '헤븐'인 것은 두 가지 종교적 의미를 담고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첫 째, 셰이커 교도로서 자긍심을 갖고 하느님의 교리를 생활 속에 늘 실천하는 모습을 아들 로버트에게 보여주는 헤븐의 삶은 그 자체로서 아들에겐 인생의 모델이자 종교적 가르침이었을 것이다. 둘 째, 제목에서 풍겨지는 암시처럼 결국 아빠는 죽을 것이라는 즉, 하느님의 나라로 가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작가는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두 번, 세 번 거듭 읽을 때마다 표현은 투박하지만 자상하고 든든한 아빠의 사랑이 마음 속 깊이 커다란 울림이 되어 퍼지는 그런 책..... 나는 과연 진정한 어른으로서 오늘날을 살아가고 있는지, 나의 아이들을 사랑하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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