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즈웨어 100년 - 군복부터 수트까지 남성 패션을 이끈 100년의 이야기
켈리 블랙먼 지음, 박지호 옮김 / 시드포스트(SEEDPOST) / 2014년 1월
평점 :
품절


큰 기대 안했는데 꽤 괜찮은 책. 희소성 있는 화보라기 보다는 시대순으로 패션 변천사를 정리한 약식 스크랩북에 가깝다. 정리 끝내주게 잘하는 우등생의 노트를 훔친 기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의 친애하는 적
허지웅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가끔 집에서 vod로 영화를 본다.

그 때마다 영화 선택의 문제로 같이 사는 이와 의견충돌이 생긴다.

한 지붕 아래 살고 있는데 취향이 하나에서 열까지 어떻게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확고한 블록버스터 취향인 동거인은 내가 좋아하는 영화들이 별로 보고 싶지 않은 졸리고 우울한 영화들이란다.

취향에 있어서 한치의 양보도 없는 그 친구 덕분에 나는 늘 양보만 하고 그 친구 취향의 영화를 선택하게 된다.

 

하루는 조심스럽게 내가 좋아하는 컬트영화를 화면에 띄워놓고 결제버튼에 커서를 올려놓았다.

벼락같이 그 친구가 리모컨을 빼앗아든다.

"무슨 영환데?"

"어... 이게 말이야. 사실은 평점이 이렇게 낮을 영화가 아닌데..."

변명하듯 이 친구가 좋아할 만한, 이 영화의 좋은 점들을 필사적으로 떠올려 본다.

없다!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없다!

아... 나는 왜 내 집에서 쉬려고 영화를 볼 때마다 팔기 힘든 물건을 팔아야 하는 영업사원의 기분이 되어야 하는가. 

그런데 웬일로 이 친구가 선선히 그 영화를 보자고 한다.

 "어어... 이거 컬트영환데. 괜찮아?"

말은 그렇게 하면서 마음이 변할까봐 허겁지겁 결제버튼을 눌렀다. 

이 영화 알아? 하니, 모르지만 허지웅이 추천한 영화라 보고 싶다고 한다.

허지웅이 좋게 말한 영화, 허지웅이 보라고 한 영화.

몇번 그런 일이 되풀이 되자 좀 짜증이 나서 난 허지웅 별로라고 퉁명스레 쏘아붙였다.

 

슬슬 궁금해졌다.

이런 벽같은 확고한 취향의 사람에게 취향 밖의 영화 영업을 이렇게나 잘하다니... 대체 영화에 관해 어떤 글을 쓰기에...

허지웅... 별로 관심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냥 티비에서 가끔 보이는, 좀 까칠하고 자존감 강해 보이는 방송인. 알고보니 글쟁이란다.

씨네 21에 영화평론도 기고하는 모양이다. 

 

 

몰래 그의 에세이를 하나 샀다.

이런! 의외로 여린 사람이다.

그 까칠함들은 자기방어적인 것이었던가?

의외롭게도 영화에 대한 시선 또한 꽤 따뜻했다.

이 영화에 이런 장면이 있었어? 란 생각이 들 정도로 의외로운 부분에 포지티브함을 던져주는 사람.

그래서 그 영화를 다시 보고 싶어지게 만드는 사람.

엄청나게 네거티브할 것 같은 영화에서 의외로운 포지티브함을 발견하면 간질간질해진다.

그게 사람에게서일 경우엔 더...

 

 

 

 

 

며칠 전, 영화를 보다가 넌지시 말했다.

"어,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이더라."

"누구?"

"허지웅."

"그렇지이?"

라며 동거인이 웃는다.

이 취향다른 동거인이 말하기를, 언젠가 허지웅이 다자이 오사무와 미시마 유키오의 허무주의 중에 자기는 아직까지는 미시마 유키오 쪽이라 했다 한다.그래서 나와 비슷하더라고... 비슷한 사람일 것 같았다고. 

그래서 허지웅이 좋다는 동거인의 말에 심사가 좀 뒤틀려서 또 툴툴 거렸다. "아니거든! 난 이제 다자이 오사무 쪽이거든!"

 

그래서 또 내가 고른 영화를 보았다.

허지웅 덕분에...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munsun09 2017-08-24 17: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토닥토닥 거리는 동거인과의 모습이 눈이 보이는 듯하네요. 즐거운 토닥거림이 느껴지는 글이에요^^

아나킨 2017-08-24 18:30   좋아요 1 | URL
실상은 토닥토닥... 이런 느낌이 아니고, 투덕투덕... 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ㅠㅠ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친 짐승 - 잃어버린 사랑 할란 엘리슨 걸작선 3
할란 엘리슨 지음, 신해경.이수현 옮김 / 아작 / 2017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sf 역사상 잠시 반짝 하고 사라졌던 뉴웨이브 사조에 편승했던 작가란 걸 사전에 알았다면 절대 사지 않았을 책.

 

잠시 짚고 넘어가자. 

sf 소설 장르의 뉴웨이브란, 60년대 누벨바그로 대표되는 장뤽 고다르와 프랑소아 트뤼포 같은 거장들을 배출했던 영화사에 확고히 자리매김한 장르적 사조인 뉴웨이브와는 전혀 다르다.

1964년 마이클 무어콕이 편집장을 맡은 잡지 뉴월드를 필두로 한동안 유행처럼 반짝했던 sf 소설의 하위장르로서... 우주 외부로 눈을 돌리는 기존의 하드 sf가 아닌, 인간 무의식 내부로 눈을 돌리는 경향이 짙으며, 전위적인 실험정신으로 무장했던 하위장르의 한 갈래를 일컫는다.

 

그런데 문제는...

이 장르가 걸출한 거장들을 배출하며 sf장르의 한 부분으로 자리매김하긴 커녕, 한 때의 반짝 유행으로 그쳤다는데 있다.

이 장르의 작가 중 그나마 성공을 거두고 좋은 평가를 받으며 살아남은 작가라고 해봐야 로저 젤라즈니 정도?

전위문화라는 허울좋은 외피를 쓰고 있으나 사실 이 장르의 작품 중 걸작이나 널리 회자되며 살아남은 작가는 전무하다고 봐야겠다. 아마도 이 장르가 반짝 주목을 끌 수 있었던 건, 당시 붐처럼 일어나던 히피문화의 전위적, 실험적, 그리고 마약에 대해 관대한? 사회 분위기를 등에 업었었기에 가능하다고 보여진다.

역시나 어마어마한 다작을 했던 할란 엘리슨 또한 뚜껑을 열어보니 시종일관 약빤 것 같은, 불안정한 의식의 흐름 속에서 불친절하고 몽롱한 이미지들의 짜깁기같은 글들에 작가 본인의 오만을 한겹 덧씌워 예술이라 주장할 뿐...

(할란 엘리슨의 마니아들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sf라는 장르를 널리 사랑하고 즐기는 독자로서 내가 유일하게 싫어하는 하위장르가 바로 이 시절 뉴웨이브(랍시고 등장했던)장르다. 

마이클 무어콕이 발굴해낸 치기와 실험정신 밖에 없는 작가로서의 기본기 조차 전무한 작가들.

로저 젤라즈니도 그리 좋아하는 작가는 아니지만, 그는 그나마 양반인 편, 아무래도 그 정점에 있는 작가는 할란 엘리슨인 것 같다.  

 

게다가 그는 쌈닭에 인성마저 쓰레기라고 하니...

프랭크 시나트라와의 주먹다짐 일화나, 시상식에서 짜증을 내며 진행자이자 작가인 코니 윌리스의 가슴에 손을 댔다는 일화를 보니 작가라기 보다는 관종 락스타 같은 삶을 살던 사람인 듯 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카탈로니아 찬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6
조지 오웰 지음, 정영목 옮김 / 민음사 / 2001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전쟁의 가장 끔찍한 특징 가운데 하나는 모든 전쟁 선전물, 모든 악다구니와 거짓말과 증오가 언제나 싸우지 않는 사람들에게서 나온다는 점이다. 내가 전선에서 알게 된 통일사회당 의용군 병사들이나, 이따금씩 만나는 국제 여단의 공산주의자들은 나를 결코 트로츠키주의자나 배반자라고 부르지 않았다. 그런 일은 후방의 기자들이 담당했다. 우리에게 반대하는 팸플릿을 쓰고 신문에서 우리를 헐뜯는 사람들은 모두 안전한 집에, 혹은 기껏해야 발렌시아의 신문사 사무실에 있었다. 총알과 진창으로부터 수백킬로미터는 떨어진 곳이었다.

 

스페인 내전의 한 복판에서 목에 총알이 관통했을 때, 오웰이 기적적으로 살아남지 못했더라면, 이 르포르타주가 세상에 태어나지 못했겠구나 싶어 오싹해진다.

모든 것이 생생하다. 마치 그곳에 있는 것처럼...

 

조지 오웰의 '나는 왜 쓰는가'를 읽다말고 '카탈로니아 찬가'를 먼저 손에 들었다.

"어떤 책도 진정한 의미에서 정치적 편견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예술은 정치와 무관해야 한다는 견해 자체도 하나의 정치적 태도이다."라던 조지오웰의 정치적 환멸의 계기가 된 스페인 내전의 실상이 궁금했던 탓이다.

 

억울하게 트로츠키주의의 낙인이 찍혀버린 통일노동자당의 입장을 변론하겠다는 오웰의 개인적 의도에서 서술되었건 어쨌건, 이것이 객관적으로 현상을 보려 애쓰며 스페인내전의 한복판에서 기록된 생생한 르포르타주란 사실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때문에 최소한 전장에서 멀리 떨어진 사무실에서 정적을 제거하기 위해 음해에 활용되던 신문이나 언론보다는 그가 더 진짜 저널리스트에 가까워보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
은유 지음 / 서해문집 / 2016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최근 격무에 시달리다보니 자꾸 휴식의 의미로만 독서를 활용하게 된다.

덕분에 앞뒤 재지 않고 닥치는대로 힐링용 에세이들을 사들이는 우를 범했다.

그 중 가장 거하게 낚인 책.

앞으로는 가벼운 에세이라도 절대 앞 뒤 재고 사겠다는 결심을 해본다.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

다분히 페미니스트 전사 냄새가 풀풀나는 이 제목은 대체 출판사에서 지어준 걸까? 아니면 작가 본인의 아이디어일까?

올해 읽은 책들 중 가장 실소가 나오는 페이크 마케팅이 아닐 수 없다.

한국에서의 페미니즘이란, 분명 관심을 끌 수 있는 뜨거운 화두요. 잘 팔리는 상품이긴 한가 보다.

페미니즘 붐이 몰아치니 아예 기획을 그렇게 잡았던 것인지, 저자도 초반부엔 양념처럼 페미니스트 냄새를 풍기려 애쓴다.

김제동의 말말말을 비판하거나 남녀 가사노동의 차이 같은 걸로 부당함을 토로하는 등 sns나 블로그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는, 상식적이고 짧은 글들로 말이다.

허나 시종일관 기묘한 느낌.

저자가 도통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다는 불편한 느낌이 가시질 않는다.

관심도 없고, 그냥 팔리는 옷이니까 겉핥기 식으로 억지로 걸쳐봤다는 느낌?

 

 

하이힐을 신고 나갔다가 집에와서 벌겋게 달궈진 발이 아파 투덜거리던 저자의 일화다. 

14살 아들이 대뜸, 그러게 왜 하이힐은 신었냐며, 엄마는 결혼도 했으면서 누구한테 잘 보이려는 거냐며 잔소리를 한다.

그만 실소가 나왔다.

하이힐이 젊은 미혼여성들의 전유물이던가? 책에서 수차례 언급되었듯 저자는 고작 40대.

아들의 견해에 의하면 하이힐은 누군가에게 잘보이려 젊은(?) 여자들만 신는 전유물이며 나이들면 졸업해야 하는...40대 이상기혼녀에겐 맞지않는 물건이다.

제 깐엔 엄마의 발건강을 염려한다고 한 소리겠지만, 필시 어딘가의 어른에게 주입된 요상한 논리를 펼치는 아들의 말에, 나는 페미니스트이자 워킹맘인 저자가 내 좁은 시야조차 뻥 뚫리게 해줄 멋진 한마디라도 툭 던져줄 줄 알았다.

나 조차도 내 아들이고 조카였다면 여자들이 누구한테 잘보이려고 힐을 신는 게 아니란 말 정도는 해줬을 것 같거든. 

헌데 저자는 이제 나이를 먹어서... 하이힐을 신을 수 없는 나이가 되었다며 자신의 늙음만을 서글피 한탄한다.

아들은 엄마의 표정이 안 좋으니 그저 어리둥절...

그렇구나.

저런 아이들이 그대로 자라 사회에 풀려나니, 지성의 장이라는 대학에서도 노브라인 여학우의 가슴을 빤히 바라보다 학내 게시판에 자기가 봤는데 노브라더라. 브라 좀 하고 다니라는... 선배요 오빠의 탈을 쓰고, 걱정해서 그런다는 허울 좋은 무례한 잔소리를 해대는... 자신의 행동의 어느 부분이 잘못된 건지 도통 모르는... 그런 어른으로 자라는 거구나.

 

문득, 지금은 은퇴하셨지만 아직도 가끔 힐을 신으시는 존경하는 노교수님이 떠올랐다. 

요즘 젊은 사람들의 킬힐과는 다르겠지만, 칠순이 다되셨음에도 누구에게 잘보이려 신거나 입는 것이 아닌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분명히 보여주는 그 교수님의 패션을 나는 무척이나 좋아하고 존경한다.

나도 빨리 노인이 되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게 만드는 분들 중 하나이다.

헌데 저자는 또 한번 어이없는 에피소드로 나를 불쾌하게 만들었다.

 

어리바리하다 잘못 내린 지하철 역에서 정장 재킷 입고 안전요원 띠를 두른 할아버지께 잔소리를 들었을 때의 일화다.

"젊은 사람이 정신을 어디다 놓고 다니나. 나처럼 늙은이도 아니고. 파란색 버튼 눌러요. 문열라니까." 하시니, 

"죄송합니다. 고맙습니다." 연신 고개를 주억거리면서 저자는 기분이 아주 좋았단다.

<하루종일 무료하고 심심했을 할아버지에게 잠시나마 존재의 이유를 제공해드렸으니> 야단을 맞아도 기분이 좋더란다.

여기선 실소조차 안나왔다.

엄연히 일터에서 일하고 계신 분께 이 무슨 망발인지.

노인들이란 존재의 이유가 없는 부류인가?

젊은 사람을 야단치게 해드리는 걸로 잠시나마 존재의 이유를 제공해 드렸다?

장애인은 동정받는 존재가 아님에도, 사회가 나서서 동정해야 하는 존재란 프레임을 씌운다며 애석해하던 작가가,

노인들은 늘 무료하고 할일 없는 존재라는 요상한 프레임을 씌워버린다.

이 오만에 격렬한 불쾌감을 느끼는 내가 이상한가?

 

 

 

이 책은 사람들이 널리 공감할 만한,(귀여운 딸과의 일상이나 돌아가신 엄마와의 에피같은...) 꽤 감상적인 이야기들에 워킹맘 페미니스트의 양념을 뿌린 채 잘도 팔려나간다. 베스트셀러란다.

숱한 세상의 영화 중, 하필 홍상수 감독의 영화 속 사랑들을 유달리 좋아하며, "여고생이 왜 남자랑 자는줄 아세요? 외로워서요." 라는 은교의 대사가 자몽처럼 시고 시큼한 분홍즙이 나올것 같다는 저자가 페미니스트와는 일백만광년은 멀어 보이는데도 말이다.

 

해괴하다. 진짜 해괴한 책이요 해괴한 페이크마케팅이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3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Jeanne_Hebuterne 2017-08-17 1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기웃거렸는데 다스베이더 님 리뷰를 읽은 것이 정말 다행!!

akardo 2017-08-17 1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 안 읽어봤지만 홍상수 영화 좋아하고 은교에 관해 의아한 얘기 늘어놓는 거 보니 안 읽길 잘한 것 같습니다.

베란다위에뜬달 2019-02-09 17: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뿐히 피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