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친애하는 적
허지웅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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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집에서 vod로 영화를 본다.

그 때마다 영화 선택의 문제로 같이 사는 이와 의견충돌이 생긴다.

한 지붕 아래 살고 있는데 취향이 하나에서 열까지 어떻게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확고한 블록버스터 취향인 동거인은 내가 좋아하는 영화들이 별로 보고 싶지 않은 졸리고 우울한 영화들이란다.

취향에 있어서 한치의 양보도 없는 그 친구 덕분에 나는 늘 양보만 하고 그 친구 취향의 영화를 선택하게 된다.

 

하루는 조심스럽게 내가 좋아하는 컬트영화를 화면에 띄워놓고 결제버튼에 커서를 올려놓았다.

벼락같이 그 친구가 리모컨을 빼앗아든다.

"무슨 영환데?"

"어... 이게 말이야. 사실은 평점이 이렇게 낮을 영화가 아닌데..."

변명하듯 이 친구가 좋아할 만한, 이 영화의 좋은 점들을 필사적으로 떠올려 본다.

없다!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없다!

아... 나는 왜 내 집에서 쉬려고 영화를 볼 때마다 팔기 힘든 물건을 팔아야 하는 영업사원의 기분이 되어야 하는가. 

그런데 웬일로 이 친구가 선선히 그 영화를 보자고 한다.

 "어어... 이거 컬트영환데. 괜찮아?"

말은 그렇게 하면서 마음이 변할까봐 허겁지겁 결제버튼을 눌렀다. 

이 영화 알아? 하니, 모르지만 허지웅이 추천한 영화라 보고 싶다고 한다.

허지웅이 좋게 말한 영화, 허지웅이 보라고 한 영화.

몇번 그런 일이 되풀이 되자 좀 짜증이 나서 난 허지웅 별로라고 퉁명스레 쏘아붙였다.

 

슬슬 궁금해졌다.

이런 벽같은 확고한 취향의 사람에게 취향 밖의 영화 영업을 이렇게나 잘하다니... 대체 영화에 관해 어떤 글을 쓰기에...

허지웅... 별로 관심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냥 티비에서 가끔 보이는, 좀 까칠하고 자존감 강해 보이는 방송인. 알고보니 글쟁이란다.

씨네 21에 영화평론도 기고하는 모양이다. 

 

 

몰래 그의 에세이를 하나 샀다.

이런! 의외로 여린 사람이다.

그 까칠함들은 자기방어적인 것이었던가?

의외롭게도 영화에 대한 시선 또한 꽤 따뜻했다.

이 영화에 이런 장면이 있었어? 란 생각이 들 정도로 의외로운 부분에 포지티브함을 던져주는 사람.

그래서 그 영화를 다시 보고 싶어지게 만드는 사람.

엄청나게 네거티브할 것 같은 영화에서 의외로운 포지티브함을 발견하면 간질간질해진다.

그게 사람에게서일 경우엔 더...

 

 

 

 

 

며칠 전, 영화를 보다가 넌지시 말했다.

"어,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이더라."

"누구?"

"허지웅."

"그렇지이?"

라며 동거인이 웃는다.

이 취향다른 동거인이 말하기를, 언젠가 허지웅이 다자이 오사무와 미시마 유키오의 허무주의 중에 자기는 아직까지는 미시마 유키오 쪽이라 했다 한다.그래서 나와 비슷하더라고... 비슷한 사람일 것 같았다고. 

그래서 허지웅이 좋다는 동거인의 말에 심사가 좀 뒤틀려서 또 툴툴 거렸다. "아니거든! 난 이제 다자이 오사무 쪽이거든!"

 

그래서 또 내가 고른 영화를 보았다.

허지웅 덕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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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nsun09 2017-08-24 17: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토닥토닥 거리는 동거인과의 모습이 눈이 보이는 듯하네요. 즐거운 토닥거림이 느껴지는 글이에요^^

아나킨 2017-08-24 18:30   좋아요 1 | URL
실상은 토닥토닥... 이런 느낌이 아니고, 투덕투덕... 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