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영의 밥도둑
황석영 지음 / 교유서가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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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작가의 창작물인 소설은 별로이나 사적인 영역인 산문이나 인터뷰는 유난히 끌리는 작가가 있는 반면,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소설은 너무 좋지만 작가가 드러내는 인품이나 사상에 너무 심하게 거부감이 들면 도저히 그 작가의 작품마저 볼 수 없는 지경이 되는데... 

설마 황석영이 내게 그런 케이스가 되리라곤...

 

황석영 선생은 존경을 넘어 성역같은 경외감을 가지게 했던 작가다.

치열했던 삶도... 글도... 글은 이런 사람이 쓰는 거라며 동경하고 표본으로 삼았던 작가다.

 

선생에게 묻고 싶다.

청춘이라니...

막을 내린 청춘이라니....

진심으로 그게 마른오징어를 씹으며 청춘의 끝자락을 떠오르게 하는 흐뭇한 일화라 생각하시는 건가요?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에 나옴직한 라스콜니코프 같던 선생의 친구는 짝사랑 하던 시골분교 여교사가 청혼을 받아주지 않자 군대가기 전 표적이라도 남기겠다며 밤의 보리밭에서 강제로 덮친다. 하지만 술에 취해 힘으로 어찌하지 못하고 여교사의 구두만 덜렁 가져오는데...

나타난 친구가 덜렁 여교사의 구두를 던져놓자 황석영 선생이 하시는 생각이 가관이다.

 

통금이 되어서도 그는 돌아오지 않더니 한시가 넘어서야 술에 만취해서 방문을 벌컥 열었다. 그는 아무말 없이 그 무렵에 젊은 여자들 사이에 대유행이던 흰색 하이힐을 비좁은 방 가운데로 던졌다. 나는 이불 위에 떨어진 여자구두를 내려다보았다. 잠이 번쩍 깨는 느낌이었다. 엽기적인 생각과 함께 그가 성공을 했을지 모른다는 부러움이 동시에 지나갔다. 

 

엽기적인 생각이란 뭡니까?

청혼을 안받아주면 욱해서 강간이라도 하는 거요?

친구가 보리밭에서 강간에 성공했으면 참 부러우셨을까요?

이후 제대한 그 친구와 재회해 마른오징어를 씹으며 그 때 그 여자가 자기보다 힘이 세더라. 밀치니 되려 나동그라졌다며 낄낄거렸을 두 남자.

여자가 오죽했으면 신발을 벗어두고 맨발로 도망쳤을까.

어두운 보리밭에서 남자가 다리를 덥석 안았을 때 그 여자는 얼마나 무서웠을까. 글로 보고 있던 나조차 싸늘한 얼음물이 발끝에서부터 차오르듯 섬뜩한 느낌이 드는데...

때로는 그런 기억이 20년 30년이 지난 뒤 외상후 장애로 발현되기도 한다. 외상후 장애가 그렇게 무섭다는 걸 나 또한 최근에야 알았다.

라스콜니코프 같던 선생의 친구에겐 그저 스쳐가는 청춘의 무용담이었겠지. 과연 그 분교 여교사에게도 청춘의 추억이었을까? 내가 그 여교사고 선생의 산문에 그 악몽이 무용담처럼 써갈겨진 걸 본다면 정말 소름이 끼쳤을 것 같건만.

 

예전 어느 아침프로에서 개그맨 양원경이던가...

어리고 예쁜 아내와 어떻게 하면 결혼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중 선배인 서세원이(역시 그 방법으로 결혼한) 우선 자빠뜨리라고 조언해줘서 강간이 결혼계기가 된걸 자랑스레 떠들던... 그게 일부 인성 쓰레기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정말 강간이 자랑이고 무용담인, 보편적 남자들의 정서가 야만스런, 이 나라는 그런 나라구나. 그게 아니고서야 아무리 예전에 연재한 글이라 해도 2016년 책이 나온 날짜가 최근이니 교열은 하셨을 터. 세월이 이렇게 흘러도 철없던 그 시절로부터 지금까지 아무런 의식의 변화나 거리낌이 없으셨을 수가 있나.

기분좋게 읽고 있던 책에서 갑자기 똥물을 뒤집어 쓴 듯한 모멸감. 그럼에도 선생의 글들은 여전히 마음을 끌어당긴다. 그래서 더 입맛이 쓰다. 모른 척 하는 것인가? 아니면 정말 모르는 것인가. 무지는 죄가 아니라고 하던가? 그 또한 변명치곤 우습다. 인식조차 못하는 거라고 치자. 꼰대라서... 그 단어를 정말 싫어하지만, 선생도 "남자는 감성적이면 못써!" "강간시도 정도는 남자다운 거지!" 라고 교육받고 자란 이땅의 불쌍한 꼰대라서.

잘못인 걸 알고도 외면한다기엔 너무 악하고 잔인하지 않은가. 단테의 11번째 인페르노가 알고도 모른척 하는 자들이 가는 지옥이던가?

쓰다. 쓰다. 정말 쓰다.

존경하던 소중한 별 하나를 잃어버린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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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씨(BookC) 2020-08-26 14: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고은, 안희정, 박원순에 이어 황석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