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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든 - 우주의 건축가와 함께 나란히 걷고 싶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림원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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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 일은 유쾌한 소일거리였다. 마루가 더러워지면 아침 일찍 일어나 가재도구를 모두 집 밖의 풀밭으로 끌어냈다. 침대와 침대틀은 한 묶음밖에 안 된다. 그런 다음 마룻바닥에 물을 끼얹고, 호수에서 가져온 하얀 모래를 그 위에 뿌리고는 마루가 하얗게 될 때까지 솔로 북북 문질렀다. 마을 사람들이 아침 식사를 마칠 무렵이면 내 집은 아침 햇살로 충분히 말라서, 나는 다시 안에 들어가 명상을 계속 할 수 있었다.

살림살이가 모두 풀밭에 나와서 마치 집시의 봇집처럼 작은 무더기를 이루고, 책과 펜과 잉크가 그대로 놓여 있는 세발탁자가 소나무와 호두나무들 사이에 서 있는 광경은 보기에도 유쾌했다. 그 물건들도 밖에 나온 것을 기뻐하는 듯했고, 안으로 다시 끌려 들어가는 것을 싫어하는 듯했다. 이따금 나는 그 위에 차양을 치고 그 밑에 앉아 있고 싶은 유혹을 느꼈다. 이 물건들 위에 햇빛이 빛나는 광경은 볼만했고, 자유로운 바람이 그 위를 스치고 지나가는 소리도 들을 만했다. 아무리 익숙한 물건도 집밖에서 보면 안에 있을 때보다 훨씬 흥미로워 보인다.



소로는 노예제도를 지지하고 멕시코 전쟁을 추진하는 미국 정부에 항의하기 위해 인두세를 거부하고 납세거부라는 평화적 방법으로 국가부정에 저항할 권리를 갖는다는 시민불복종을 집필했다. 소로의 책들 중 가장 관심가고 읽고 싶은 책이라면 단연 시민불복종인데 공교롭게도 월든을 먼저 접했다. 이 책을 선택한 건 순전히 번역자의 영향이 크다. 아마도 김석희선생의 번역이 아니었다면 구매하지 않았을 책. 잘한 선택이었지 싶다.

몇 주동안 밤마다 느림을 몸소 체험하며 월든 숲속의 작은 오두막에서 소로와 함께한 기분. 때로는 고대 그리스어나 라틴어로 쓰여진 천재들의 작품을 읽는 것 외에는 독서란 무익하고 쓸데없는 짓이라며 후려치는 소로의 꽉막힘에 답답해 하기도 했지만, 대체로 힐링받는 좋은 시간이었다. 책 말미의 사족같은 역자 해설마저도 완벽하게 기분 좋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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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끄네 집 (양장) - 고양이 히끄와 아부지의 제주 생활기
이신아 지음 / 야옹서가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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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2016년 11월.

꼬박 1년 반을 투병한 막내를 떠나보냈다.

히끄 아부지가 '어머니'란 너무나 고귀한 단어인지라 히끄의 아부지가 되어주었듯이, 난 막내를 자식이 아닌 동생으로 삼았다. 부모가 되어줄 생각도 없었고, 그럴 자신도 없었기 때문이다.


막내가 투병할 때의 나이가 열다섯살, 이미 고양이 세상의 나이론 노인이지만, 난 여전히 막내를 아이 취급했다.

철없이 큰 비닐봉지에 들락거리면 중학교에 다닐 나이인데... 라며 혀를찼고, 의젓해지라며 잔소리를 했다. 표지의 히끄처럼 식탁에서 마주 보고 함께 맘마를 먹고, 식사를 마치면 똑같이 냅킨으로 입을 닦아주었다. 함께 자고 함께 tv를 봤다. 유일한 가족이고 동생이었다. 부르면 달려오고 현관 앞에서 내가 올때까지 늘 나를 기다렸다. 신기하게도 다른 사람의 발소리와 내 발소리를 구별하는 아이였다. 


신부전 판정을 받았을 때 의사가 막내를 팔순노인 취급을 해서 충격을 받았다.

아직 15살이라고 했더니 의사는 말끝마다 고령이란 말을 붙였다.

그 때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 애가 날 떠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는 걸.

몇년 전 막내의 부모묘가 그랬듯이 유일하게 남은 막내도 날 떠나려 하고 있다는 걸...


투병 1년 반 동안 할수 있는 건 다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막내의 부모 때도 겼었던 신부전 투병이기에 처음도 아니건만, 유난히 힘들었고 떠올리기도 싫은 지옥같은 시간이었다.

막내가 아파하는 걸 바라보는 건 생각보다 더 힘든 고통이더라. 15년 동안 한 번도 그애를 어른이라고 생각해 본적이 없어서 더 그랬다. 그 애는 내겐 영원한 아가냥인데 자꾸 피를 뽑고, 수액을 맞히고, 어른도 견디기 힘든걸 시켜야 하니까....

투병 내내 참 많이도 울었다.

평생 사람이 그렇게 많은 눈물을 흘릴 수 있다는 걸 알지 못했다.

사람에겐 유난히 차가운 나이기에 어디가서 털어놓지도 드러내지도 못하고 아무도 없는 곳에 숨어서 참 많이도 울었다.

돈도 많이 깨졌다. 막내가 내곁에 머무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연장하기 위해 1년 반동안 중형차 한대 값 이상의 치료비를 병원에 가져다 바쳤다. 내가 암에 걸리면 그렇게까진 안할 것 같다. 하지만 막내의 생을 연장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신부전 투병에서 절실히 느끼는 건, 간병도 간병이지만, 실로 돈과의 싸움이란 거다.

인간의 암과도 흡사하다. 다르다면 보험조차 불가하다는 거다.

일단 아무 병원에서나 치료가 가능하지도 않거니와, 치료가 가능한 최상급의 기재를 갖춘 병원, 최상의 의사를 담당의로 두고있을지라도... 투자할 수 있는 총액에 따라 그에 합당한 치료가 결정된다. 참 냉정하기 짝이없는 자본주의 사회다.

그래도 무리를 해서라도 막내만큼은 최대한 오래 함께 있고 싶었다. 치료가 고통스러워도 강제로라도 오래 곁에 머물게 하고 싶었다.


경험상 조기에 발견한 신부전은 초기 입원때는 수치검사와 치료를 마치면 2~3일 안에 퇴원이 가능하며, 일단 치료를 받고 오면 몇주간은 상태가 호전된다. 모든 병이 초기엔 그렇듯...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 주기는 점점 짧아진다. 잔인하도록 짧아진다. 입원과 강도높은 약물치료를 받고 돌아와도 몇주가 아니라 단 하루이틀만에 다시 같은 증세가 발생한다. 시시각각 닥쳐오는 합병증의 위험도 무시 못한다. 섭식도 투약도 모든 것을 조심해야하는, 단 한순간도 방심할 수 없는 촉각을 곤두세운 전쟁과도 같은 시간들이다.

자다가도 일어나 4시간마다 곱게 체에 내린 처방식을 먹이고 주사기로 강제로 약을 먹이고, 거의 모든 생활리듬이 막내에게 집중되었다. 짧다면 짧지만 잠 한숨 제대로 못자고 보낸 1년 반이었다.

하지만 그토록 최선을 다해도 아무리 노력해도... 사경을 헤메는 밤이 잦아지고 입원의 주기도 점점 짧아진다.

단언하건데 신부전이란 불치병이다.

아무리 치료를 한들 절대 완치는 되지 않는다. 증세를 완화하고 병을 늦추는 것 뿐이다. 다른 고양이의 신장을 이식할 수도 없으니 그저 죽음으로 나아가는 수밖에, 강도높은 치료를 한들 죽음의 시간을 늦추는 방편일 뿐, 보호자는 치료에 최선을 다하되 늘 마음의 준비를 한 상태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심각하게 무너진다.

늘 의사가 이부분을 제대로 고지해 줬으면... 하는 생각을 해왔다. 막내의 부모 때는 담당의가 너무 희망적인 태도를 보여서 당연히 완치가 될거란 헛된 생각에 치료과정에는 희망이 넘쳤지만 종국에 닥친 절망과 멘탈붕괴 또한 엄청났었다. 

이젠 처음도 아니고 겪어낸 병이기에, 일단 발병하면 이 아이의 남은 생의 모래시계에서 모래가 쏟아져 내린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무리 모래를 그러모으고 늦춰보려 발버둥질을 쳐도 종국엔 병원에서 도저히 퇴원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는 것을...

막내의 증세악화를 늦추려 발버둥질 치고, 숱한 합병증들과 싸우고... 그러기까지 1년 반...

막내는 눈이 흐려지고 말을 하고 싶어도 입만 벙긋대거나 아예 의식이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되었다. 컨디션이 조금만 좋아져도 쉴새없이 말을 걸고 졸졸 따라다니는 아이인데... 화장실까지 안아서 데려다 줘야만 갈수 있고 거의 운신조차 못하는 그런 상태에 다다르니, 지켜보는 사람의 멘탈이 온전할 수 있다면 그게 거짓일 거다.


눈이 오는 겨울에 태어난 막내는, 역시 눈이 하얗게 쏟아지던 날에 떠나갔다.

소파에 혼자 앉아 눈이 벚꽃잎처럼 흩날리는 창 밖을 보면서... 하얀 눈송이같은 그 애가 이제 내 옆에 앉아 그걸 볼수 없다는 사실에 와락 눈물이 났다.

우리 막내는 눈을 보는 걸 정말 좋아했는데... 

소파의 오른쪽 팔걸이가 왼쪽보다 더 꺼져있었다.

막내가 늘 앉던 자리...

그 애가 없는데도 그 애의 흔적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냉장고 아래에서 막내가 숨겨놓은 장난감들이 쏟아져 나오고 그애의 조그만 응가 한덩이도 나왔다. 화석처럼 말라붙은 응가 한 덩이에 또 와락 슬픔이 치받는다.

그애의 물건들은 모조리 안 보이는데로 치워버렸다. 그래도 독처럼 치받는 슬픔은 영원히 곁에 남아 사라지지 않을것 같았다.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벌써 2018년이란다.

막내가 떠난지 만으로 1년 이상이 흘렀다.

이제 남의집 고양이를 봐도 전처럼 와락 슬픔이 치받지 않는 모양이다.

고양이 등신대를 준다기에 주섬주섬 히끄네 집이란 책을 장바구니에 담은 걸 보면...

히끄는 우주 대스타라던데, 난 히끄를 처음 알았다. 

히끄는... 막내를 닮았다.

아니, 정확히는 울 막내보다는 막내의 아빠고양이를 꼭 닮았다.

뚱뚱한 장모종인데다 털이 너무 날려서 다음 생엔 단모종으로 만나자고 했었는데... 목욕을 시킬 때마다 물에젖어 털이 꺼진 모습이 머리가 크고 뼈대가 굵은 브리티쉬숏헤어 같아서 다음 생엔 꼭 브리티쉬숏헤어로 태어나란 말을 했었는데...

막내의 아빠가 세상을 떠난 해가 2013년이니 혹시 히끄 나이가 4~5살 쯤이면 혹시 막내 아빠가 정말 브리티쉬 숏헤어 히끄로 다시 태어난 건 아닐까... 란 생각까지 했다.

그래서인지 막내도 히끄를 많이 닮았다.




반려묘를 유일한 가족으로 둔 세상의 모든 이들이 고양이와 이별하는 순간이 좀 덜 힘들기를 바란다.

내가 너무나도 힘들었기에...

죽는 날까지 아마 난 다시는 새로운 반려묘를 들이지 못할 거다.

막내가 베어내서 가지고 간 마음의 조각이 너무 커서, 더이상 다른 아이에게 줄 여분이 가슴 속에 전혀 남아있지가 않다.

막내가 내 마지막 가족이고 마지막 반려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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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란 없습니다 - 모지스 할머니 이야기
애나 메리 로버트슨 모지스 지음, 류승경 옮김 / 수오서재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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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을 늘 새로운 하루처럼 살다간... 이 얼마나 멋진 할머니신가.

별 기대없이 모지스 할머니의 예쁜 그림들에 힐링이나 받을까... 싶어 구매했던 책. 

그런데 기대조차 하지 않은 즐거운 선물을 잔뜩 받아버린 느낌의 책.

사실 새하얀 모슬린 블라우스를 입고 야외에서 그림 작업을 하시는 할머니 사진을 보고, 감수성 풍부한 그린 게이블즈의 앤 같은 소녀셨거나 클래식한 타샤할머니같은 정적인 삶을 살아오셨겠거니... 상상했었다. 하지만 세상에! 모지스 할머니는 상상했던 이미지와 전혀 다르셨다.

 

1974년부터 미국 nbc 방송국에서 무려 203부작으로 방영했던 인기  미드 초원의 집을 기억하는 분들이 있을까.

모지스 할머니가 들려주는 지나온 삶의 이야기들에서 계속 이 미드가 떠오르더라.

 

 

척박한 1800년대, 결혼 후 미국 남부 농장으로  이주해 당찬 여장부처럼 생활하셨던 할머니의 삶은 서부개척민 시대 포장마차를 타고 이주해 정착한 로라 잉걸스네 가족처럼 역동적이고 활기에 넘친다.

왜 미국인들이 할머니의 그림을, 거기 담겨 있는 삶을 그렇게나 사랑하는지 알것 같다. (할머니의 그림카드는 1억여장이나 팔려나가고, 독립기념일이란 작품은 백악관에 걸려있다고 한다.)

여자들은 경제활동을 하지 않던 당시 통념과 달리 농장시절 혼자 73kg이나 버터를 제조해 파시던 할머니(당시 남편보다 돈을 더 잘 버심), 뉴욕시절엔 생계를 위해 또 손수 와플을 만들어 파신 할머니, 취미인 자수를 놓다가 손가락 류머티즘 때문에 더이상 취미인 자수를 못하게 되자 그림을 시작하셨던 할머니. 76세에 그림을 시작하셨는데도 무려 1600여점이나 작품을 남기신 할머니.

남편인 토마스가 협심증으로 세상을 떠나기 전, "난 내가 죽는 건 두렵지 않아요. 내가 죽는 건 정말 두렵지 않지만, 당신 혼자 여기 두고 나 먼저 가느니 차라리 당신이 설원 아래 묻혀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 낫겠어요." 라고 말하자, 남편에게 "토마스, 난 당신을 만나기 전에도 혼자 잘 살았거든요." 라고 하시던 당차고 시크한 할머니...

모지스 할머니의 그림과 삶은 개척정신으로 가득하던 그 시절 미국의 역동적인 정신과 삶 그 자체더라.

 

모지스 할머니가 살아계시다면...할머니의 그림카드에 진심어린 감사인사를 써서 보내고 싶다.

할머니의 삶 이야기들, 어떤 순간엔 감동하고, 어떤 순간엔 즐거워하며 많은걸 배웠어요. 할머니의 살아온 이야기들을 읽으며 내내 행복했어요. 마치 백년을 하루처럼 하루하루를 새롭게 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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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빌리의 노래 - 위기의 가정과 문화에 대한 회고
J. D. 밴스 지음, 김보람 옮김 / 흐름출판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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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물안궁스러운 추천인들 목록하며... 호들갑스런 추천사에 절대 안 살 목록에 들어있던 책.

이것저것 사라고 등 떠미는 이벤트 덕에 마지못해 구매했던 책.

읽고나니 볼 가치는 충분히 있었던 책.

미국 사회의 백인 빈민 레드넥 계층이 왜 복지정책에 그렇게 거품을 물고 분노하며 차라리 복지정책을 대폭 줄이겠다는 트럼프를 지지하는지...그 이면을 조금이나마 들여다 볼 수 있었던 책.

평생을 쉬지않고 노동하며 성실하게 살아도, 같은 빈민계층의 소위 복지여왕이라 불리는... 일자리조차 갖지 않고 실업수당으로 놀고먹으며 복지정책을 악용하는 이들에게 늘 세금을 뜯기고 있다는 박탈감과 분노를 가진 계층.  그들에 대한 분노를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만드는 책.

 

하지만 이 책이 미국사회에서도 복지여왕들 때문에 복지가 근로의지를 결여시킨다는 근간으로 삼거나... 복지 정책을 없애야 한다는 근거로 삼게 되는 건 매우 우려스럽다.

실제로 내 주변엔 복지를 대폭 축소하는 트럼프 정책을 지지하고 그 예시로 소위 복지여왕들에 대한 비난을 주워 섬기던 미국 시민권자인 지인이 있다. 그는 백인이 아니고 부유한 한인이고 힐빌리 레드넥과는 거리가 먼 사람임에도... 선거 때 공공연히 트럼프를 지지했고 또 그를 찍었으며 그의 정책들을 여전히 지지하고 있다. 사실 그가 트럼프를 지지하는 건 수십만평의 땅을 상속받는 증여세를 없애줬다는 이유다. 그는 트럼프가 정권을 잡으면 자신의 세금이 얼마나 절약될 것이며 사업에 금전적 이득이 된다는 것을 구체적 액수와 함께 공공연히 떠들고 다닐만큼 속물이기도 하다. 그는 공공연히 가까이 겪어보지도 못한 백인 빈민층도 트럼프를 지지한다는 걸 방패막이처럼 내세우기도 한다.(이 책의 내용에서 필요한 부분만 그런 이들에게 악용되기도 한다는 것. j.d 밴스가 그러라는 의도로 책을 쓴 건 아니겠지만...)

밴스가 복지여왕들에게 공공연히 분노와 경멸을 표출할 때마다 공감이 가기도 하는 한편, 예전 ebs에서 방영해줬던 북미와 유럽의 복지정책에 관한 다큐가 생각나더라. 

다큐에선 다리 밑에 살던 알콜중독 노숙자 가족이 복지정책 덕분에 트레일러 집에서 살게되고 중독 치료도 받고 아이들이 학교에도 다닐 수 있게 되었다며, 덕분에 그 전까지는 한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삶의 의지도 희망도 생겼다고 했다.

설령 빈민계층의 다수가 복지 정책을 악용해 부당한 실리를 취하고 있다 하더라도. 출구 없는 나락에 빠져 생의 의지조차 없던 단 한 가정이라도 구원받을 수 있다면... 과연 그 복지를 대폭 축소하거나 없애는 게 옳은 일인가...

실리만을 추구하며 기업 운영하듯 손실만 따져가며 복지에 접근하는 게 옳은 일인가... 개인적으론 결코 아니라고 생각한다.

꼭 정답이 아닌 잘못된 도움이라도 전혀 아무런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

절대 비교할 수조차 없는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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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고흐, 영혼의 편지 (반양장) 반 고흐, 영혼의 편지 1
빈센트 반 고흐 지음, 신성림 옮김 / 예담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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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삶 전반에 걸쳐 깊게 묻어나는 가난과, 불운, 죄책감과, 정신적 고통들...

늘 그에 대한 영화나 전기를 읽기 전엔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그다지 처세를 잘하지도 성품이 둥글지도 못했던 사람. 가진 게 없지만 자신보다 가난한 이를 돕는데 주저함이 없던 사람.

그가 바라던 아주 작은... 소박한 성공 조차도 늘 그를 빗겨갔으니 평생에 걸쳐 너무나 불운하기만 했던 화가.

사랑하는 동생 테오와의 서간문은 좀 우울함이 덜할까 했으나.

역시, 책의 말미로 갈수록 점점 더 강하게 묻어나는 우울... 자신의 생계를 책임지던 동생에 대한 그의 죄책감, 경제적 어려움에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그의 고통과 슬픔에 마음만 더 무거워졌다.

 

고흐는 생전 단 한점의 그림밖에 팔지 못했으나, 죽음 뒤에는 찬란하게 인정받은, 사후에야 성공한 화가로 늘 거론되지만,

글쎄 그게 온전히 그가 바라던 성공인지는 모르겠다.

계속되는 소더비와 크리스티 경매에서의 최고가 낙찰액 경신. 

현재 최고 낙찰가 668억에 낙찰되었던 자신의 작품의 경매가를 또다시 경신해 그의 풍경화가 717억원에 낙찰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이런 게 그가 원하던 성공은 결코 아니었을 터.

에밀 졸라의 제르미날에 깊게 감명받고 밑바닥 계층들의 진짜배기 일상을 그려내길 원하던 고흐.

그가 진정으로 원했던 것은 단지 가난한 이들의 소박한 벽을 장식할 그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는데... 

그의 그림들은 이제 가난한 이들의 벽에 걸리기엔 너무 고가인...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세계 정상급 부자들 만이 소유할 수 있는 부의 상징, 투자용 고가의 미술품이 되어버렸으니 사후의 성공이라기엔 참 아이러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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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nsun09 2017-12-22 12: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갑자기 에밀 졸라 소설을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갑니다^^
올 한 해도 건강하게 보내시고 새해도
행복한 시간들 가지시길 바랍니다

아나킨 2017-12-30 15:41   좋아요 1 | URL
네, 저도 제르미날 다시 읽어보고 싶어지더군요.
munsun09님도 한해 마무리 잘하시고 행복한 새해 맞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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