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다시, 우리
진성림 지음 / 지식과감성#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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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먹고 살아야 한다는 가혹하고도 절박한 생존의 무게는 가족 간에 따스한 사랑을 주고받는 법 대신, 서로가 알아서 자기 앞가림을 하며 사는 방식을 가르쳤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자신을 방어하는 생존 방식으로 얼룩진 유년 시절이었지만, 다행히 학창 시절 만난 다정한 선생님의 진심 어린 보살핌은 아버지의 빈자리를 채워주었다. 비록 서툴렀을지라도 사랑받고 자라는 삶이 무엇인지 그 온기를 가르쳐 준 소중한 기억이었다.

   타인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배려하는 법을 배우며 주변 어른들의 아낌없는 사랑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성인이 된 이후 남녀 간의 사랑이라는 감정 앞에서는 여전히 젬병이었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타인의 연애 이야기를 전해 들으면 가슴 한구석에서 설렘과 알 수 없는 회한이 동시에 밀려들곤 한다. 연인들이 겪어내는 아찔한 설렘과 다가올 이별에 대한 근원적 두려움을 멀리서 관조하며, 내가 감히 가보지 못한 길을 아득하게 동경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듯 상처와 두려움이라는 나름의 방어기제를 안고 살아가는 모습은, 비단 나만의 이야기가 아니듯 소설 속 인물들의 삶에서도 깊게 투영된다. 의사 성림의 삶 역시 온전한 여유와는 거리가 멀다.

  “저는 무너지기 전에 일단 버팁니다.”

  라는 성림의 고백처럼, 그는 환자의 생명을 지키는 거대한 책무 앞에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던지면서도 스스로를 돌보는 일에는 지독하리만치 인색하다. 그는 감정이 개입되기 전에 철저히 구조를 읽어내고, 상황을 파악한 뒤에는 냉정하게 거리를 조절하는 변호사 슬기를 환자로 만났다. 슬기 역시 누군가에게 마음을 허락해 생활의 리듬이 흐트러지는 일을 극도로 경계하는 인물이었다. 그녀는 사랑에 먼저 마음을 기울이면 더 크게 다칠 것이라는 방어기제 때문에 의사를 향해 자꾸만 향하는 마음을 억지로 붙잡았지만, 이미 가슴이 행하는 일은 이성의 통제 범위를 벗어난 지 오래였다.

  “미안, 갑자기 일이 생겼어.”

  성림과 마음의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불안감과 불편함을 견디지 못한 슬기는 일방적으로 약속을 파기하고, 종국에는 이별을 선언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슬기는 성림과 이별한 뒤 오히려 그를 더 깊이 떠올리며 그리움에 몸서리친다. 누군가 자신의 방식을 조금이라도 지적하는 순간 가시를 세우며 공격적으로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는 태도는, 평범한 연인 관계로 발전하기에 치명적인 걸림돌이었다. 감정에 달떠 한때의 불꽃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평범한 호흡 속에서 꾸준히 사랑하는 태도를 유지하며 누군가와 함께 보폭을 맞추는 일에는 깊은 연습이 필요한 법이다.

성림은 슬기와의 어긋난 인연으로 깊은 상심을 겪으면서도, 상대를 자신의 욕망이나 두려움의 잣대로 함부로 해석하지 않고 끝까지 냉철함과 품위를 유지한다. 마치 인생의 한쪽 문이 닫히면 다른 쪽 문이 열리듯, 그에게 또 다른 결의 인물인 정원이 다가온다. 형사 사건 관련 자문회의로 병원을 찾은 정원은, 성림이 굳이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그의 깊은 피로와 고립감을 먼저 알아차리고 조용히 온기를 건네는 사람이었다.

  말 없는 고요 속에서도 좋아하는 감정의 거대한 파란이 일렁였을지라도 이를 경솔하게 내색하지 않은 채, 단지 자신이 좋아하는 그 사람이 조금이라도 덜 아프고 덜 무너지기를 바랄 뿐이었다. 기관지 내시경 시술로 호흡기 중환자를 살려내는 임상적 역량이 뛰어난 성림이었지만, 극심한 스트레스 속에서 과호흡 발작을 일으키며 쓰러졌을 때 그의 곁을 묵묵히 지킨 이는 다름 아닌 정원이었다. 그녀는 그 위급한 아픔의 순간에, 이 사람을 잃어버리면 나 역시 살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거대한 감정의 소용돌이를 온몸으로 겪어내야 했다.

   정원은 여전히 성림을 깊이 연모하고 있었지만, 그의 마음에는 여전히 슬기가 깊게 자리하고 있음을 잘 알기에 스스로 물러서는 길을 택한다. 상대를 향한 연정이라는 이유만으로 내 삶 전체를 송두리째 붙들어 매어둘 수 없다는 성숙한 자각 때문이었다. 자신이 그의 곁에 더 오래 머물수록 성림이 느껴야 할 미안함이 가중될 것을 알기에, 그를 사랑하였지만 다가설 수 없었다.

  “늦어도 돼, 근데 혼자 울게 두지는 않을 거야.”

  재엽이 건넨 한마디는 정원의 가슴속에 뚜렷한 파문을 일으키며 꽂혔다. 그는 정원의 마음속에 다른 사람이 존재함을 어렴풋이 알면서도, 자신의 감정을 화려하게 앞세워 밀어붙이지 않고 차분하게 자기만의 호흡으로 기다리는 사랑의 방식을 택했다. 공연장으로 와 달라는 재엽의 요청을 수락한 정원은, 비록 상처와 아픔이 남았을지라도 이제는 자기만의 속도로 인생의 길을 걸어가야 할 시간이 다가왔음을 깨닫고 그의 청혼을 받아들인다. 어쩌면 참된 사랑이란, 내가 나약해지고 무너져 내리는 순간에 끝까지 나의 곁을 지키며 함께 서 있어 주는 것이다.

의사로서 성림은 오직 환자의 상태와 병증만을 바라보며 진료하는 소신을 지켰고, 의료계와 자본의 권력이 결탁한 눈치를 보지 않은 채 십자성 전자 측의 부당한 비공개 진료 요구를 단호히 거부했다. 그러나 거대 기업의 평판을 흔들어 성림을 압박하려는 악성 글이 난무하여 법정 다툼으로까지 비화했다. 돈과 권력이 우리의 생명과 직결된 의료진까지 어떻게 포섭하고 짓누르려 하는지 그 추악한 실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성림은 음흉한 소문의 진상을 낱낱이 규명하고 다시는 이런 부조리가 재발하지 않도록 법적 방패 역할을 자처한 정원에게 미안함을 느꼈지만, 거대한 부조리 앞에서는 달리 도리가 없었다.

   성림의 시련을 관조하던 슬기도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상대의 상태보다 자신의 불안한 마음과 방어적인 감정 선을 먼저 살피며 도망치듯 살았다. 사랑에 눈을 뜬 그녀는 병원을 묵묵히 지키며 수많은 환자를 치료하느라 지칠 대로 지쳐 있는 성림을 진심으로 배려하기 시작하였다. 그의 겉모습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내면의 상처까지 깊이 들여다보며 진정한 위로의 말을 건네는 슬기의 모습은 뼈아픈 성장의 기록이었다.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대상을 향한 일방적이고 강렬한 감정만을 앞세우는 것이 아니다.

  생명이 경각에 달한 십자성 전자 회장의 긴급한 치료를 위해 병원 측은 기관지 내시경 시술의 권위자인 성림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만성적인 호흡기 질환을 앓고 있는 회장을 살려내면 다행이겠지만, 환자를 살리지 못할 경우 의사 개인이 감내해야 할 사회적 비난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런데도 성림은 그 모든 위험을 무릅쓴 채 시술을 감행했다. 보수적 상식에 안주하지 않은 과감하고도 소신 있는 치료 덕분에 성림은 회장의 목숨을 극적으로 살려내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성림의 환자 구명 행위가 현행 의료법의 엄격한 잣대에 가로막혀 형사처벌 위기에 처하는 부당한 일이 벌어졌다. 이에 맞서 변호인 정원은 응급 환자의 생명이 위급할 때 예외적 진료가 가능한 조항들을 치밀하게 파고들며 성림의 입장을 완벽하게 변론하였다. 정원의 정의롭고 적법한 변론 덕분에 기각 판결이 났으나, 성림은 오랜 친구를 잃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십자성 전자의 해외 비자금 흐름, 정치권 로비 자금, 의료계를 향한 협박 자료, 그리고 차명 법인 거래의 모든 기록이 고스란히 담긴 USB를 반환하지 않은 채 진실을 파헤치려 했기 때문이다.

  성림을 진심으로 사랑하면서도 끝내 먼저 다가서지 못하고 물러남으로써 자신의 자존과 영혼을 지키려 했던 슬기는, 자신과는 결이 완전히 다른 정원을 보며 미묘한 질시와 두려움을 느꼈다. 정작 자기를 향한 마음을 먼저 솔직하게 꺼내는 순간 한없이 약해질까 봐 염려하며 감정을 철저히 통제하는 것으로만 세상을 살아왔던 슬기였다. 하지만 진정한 사랑이란 혼자서 견디는 생존이 아니라, 누군가와 함께 발맞추어 세상의 풍파 앞에 당당히 서는 것임을 소설은 넌지시 일깨운다.

   사랑은 상처와 결핍으로 얼룩진 각자의 삶에서 도망치거나 숨는 대신, 불완전한 서로의 손을 잡고 다시 관계의 바깥으로 걸어 나오는 일이다. 과거의 상처가 남긴 회한과 이별의 두려움을 넘어, 서로의 부족한 모서리를 깎아내지 않고 그 존재 자체를 껴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진정한 의미의 우리로 거듭날 수 있다. 슬기와 성림이 거리를 두고 각자의 시간을 예비하는 기간은 인연의 실타래를 찾는 여정일 것이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서로에게 건네는 안부로

  다시 함께 나아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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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후회 없이 살 것인가 - 하버드 지성들을 사로잡은 가장 뜨거운 질문
클레이튼 M. 크리스텐슨.제임스 올워스.캐런 딜론 지음, 이영래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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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치 못한 기회를 추구하고 예기치 못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전략을 유연하게 수정해야 할 때가 있다. 창발적 전략은 사전 계획이나 정의 없이 조직이나 시스템이 환경에 적응하며 새로운 방향을 찾아가는 의도적 과정이다. 이는 이용할 수 있는 정확한 수치와 분석을 바탕으로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 전략을 재구성하게 만든다. 따라서 현재의 의도적 전략만을 고수할 것이 아니라, 새로운 기회를 포착할 수 있도록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명확한 비전만을 쫓다가 예상치 못한 기회를 놓쳐버려 정작 자신에게 맞는 방식을 찾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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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이 어디로 흘러가는지를 관찰하는 과정은 올바른 삶의 방향을 가늠하게 해주며,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자원이 필수적인 조건임을 일깨워준다. 개인과 기업이 가진 시간, 에너지, 재능, 부와 같은 자원은 한정되어 있다. 그렇기에 자원 배분을 어떻게 할지 지속적으로 검토하고 무엇을 우선할지 선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자신에게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판단하여 자원을 전략과 일치하는 방향으로 투자할 때 비로소 의미를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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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다가 미국 오토바이 시장 공략에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초창기 재정적으로 몹시 궁핍했기 때문이다. 당시 혼다는 '슈퍼 커브'에 집중해 수익을 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자연스럽게 수익 창출에 매진했다. 이후 안정적인 수익을 낸 뒤에는 성장에 초점을 맞추고 인내심을 갖고 전략을 실행하여 미국 내 혼다 오토바이의 입지를 공고히 할 수 있었다. 우리의 삶 역시 마찬가지다. 인간관계에서 오는 보상을 기대하기에 앞서, 내가 그 관계들에 얼마나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는지 반문해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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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른 방향으로 움직이며 가고 있는가?’

이순(耳順)의 나이에도 필자는 스스로에게 이 질문을 던지며 살아간다. 부모가 아이에게 더 많은 말을 건넬수록 아이 뇌 속의 시냅스 경로가 활발히 자극되어 더욱 정교하게 다듬어진다는 연구 결과는 자원의 우선순위를 결정할 때 깊이 고려해야 할 요소이다. 아이에게 올바른 사고 패턴을 쉽고 빠르게 전달하는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보호자는 적절한 시기에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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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이 주기적으로 수행해야 하는 일(Job-to-be-done)을 중심으로 사업을 구성한 이케아는 고객이 '완수해야 할 일'을 스스로 찾도록 돕는 가구를 구매하게 만든다. 학생들이 학교에서 성취감을 느끼고 친구들과 함께 무언가를 해내는 경험을 할 때, 그들은 비로소 자신들이 하려는 일을 완수하게 된다. 결혼 생활 또한 '완수해야 할 일'이라는 관점으로 바라본다면, 서로에게 충실한 부부는 상대방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일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그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해 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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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는 자식이 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올바르게 성장하기를 바란다. 보호자는 아이들이 어려운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며 가치관을 정립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이때 학교 성적으로 아이의 성공 가능성을 성급하게 판단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덧붙여 자녀가 '경험의 학교'에서 다양한 수업을 거치며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갈 수 있도록 올바른 경험을 쌓는 것을 도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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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는 의도적으로 구축될 수도 있고, 의도치 않게 저절로 형성될 수도 있다. 가족 문화는 구성원 간의 생활 방식, 전통, 가치관 등이 세대를 거쳐 이어지며 다양한 양상으로 형성된다. 무엇보다 가족 문화의 핵심 가치가 구성원이나 조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도록 얼마나 노력하느냐에 따라 문화는 원하는 방향으로 자리잡을 수 있다. “이번 한 번쯤은 괜찮겠지”라며 비도덕적인 원칙과 타협하다 보면 어느새 나락으로 빠지는 지름길을 걷게 된다. 원칙을 세우기로 마음먹었다면 철저히 지켜 범법과 후회의 수렁에 빠지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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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이 의도적인 목적 하에 구상되고 선택되었다면 그에 걸맞은 추구가 뒤따라야 한다. 저자는 지적인 성찰 과정을 중시하는 학자로, 학생들이 제각기 자기 목적을 정의하며 살아가기를 바랐다. 기업을 운영하는 경영자 역시 기업의 지표를 정하고 그에 맞는 전략을 수립·실행하는 과정에서 유연성 있게 전략을 응집해 가는 창발적 과정을 중시한다. 목표한 대로 결과가 나오지 않더라도 개인과 조직의 성장을 돕는 도전과 책임을 스스로에게 물으며 동기를 부여할 때, 우리는 비로소 조금씩 성장하고 발전하는 틀을 다지며 진화해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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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세계사 1 - 우리가 꼭 알아야 할 ㅣ 지금 세계사 1
최태성 지음, 류경은 그림 / 다산어린이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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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을 넘어 동경하던 나라들을 여행하며 문득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촌은 어느 특정 누군가의 소유가 아니라, 인류 전체가 함께 가꾸어 나가는 삶의 터전이라는 사실입니다. 다름을 인정하고 문화의 차이를 차별하지 않는 포용의 태도. 이것이야말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와, 앞으로 이 땅을 살아갈 미래 세대가 지구촌에서 함께 숨 쉬기 위해 반드시 품어야 할 마음가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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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대한민국 역사를 넘어 세계사로 시선을 확장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세계사는 결코 우리와 무관한 딴 세상 이야기가 아닙니다. 나와 세상을 연결하는 커다란 고리이자, 한국사와 한 줄기로 맞물려 흐르는 거대한 물결입니다. 그 거대한 흐름 속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고 그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살피는 일은, 우리의 시야를 비약적으로 넓혀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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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항로 개척 이전, 유럽인들에게 바다는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나침반과 별자리에 목숨을 맡긴 채 아득한 항해에 나선 까닭은, 역설적이게도 향신료 '후추'를 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스페인의 이사벨 1세는 막대한 경제적 이익을 기대하며 콜럼버스에게 자금을 대었고, 그 길로 항해에 나선 콜럼버스는 원주민들의 일상을 참혹하게 짓밟았습니다. 저자는 콜럼버스를 영웅인가 아니면 침략자인가 묻고 있습니다. 문명의 만남 뒤에 숨은 역사의 윤리적 무게를 깊이 새기게 하는 대목입니다. 신항로 개척으로 대륙 간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고추가 전래되었고, 조선의 흰 떡볶이가 오늘날 우리가 즐기는 빨간 떡볶이로 변모했습니다. 세계사의 한 장면이 우리의 식탁과 일상에 생기를 불어넣은 흥미로운 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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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역사는 도약과 고민의 연속이었습니다.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를 결정지은 불의 사용과 농경의 시작은 인류를 자연의 위협으로

부터 구하고 안전한 삶을 선물했습니다. 훗날 증기기관의 발명으로 시작된 산업혁명은 인간의 육체노동을 기계로 대체하며 대량생산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기술은 인류에게 비할 데 없는 편리함을 가져다주었지만, 동시에 '이 거대한 힘을 어떻게 지혜롭게 사용할 것인가'라는 무거운 질문을 던졌습니다. 기술의 발전 속도에 발맞추어 인류의 지혜 또한 한층 더 깊어져야 함을 일깨워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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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에 이르러 서양 세력이 강한 힘을 앞세워 몰려왔을 때, 조용한 아침의 나라 조선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병인박해를 구실로 프랑스 군함이 침략한 병인양요, 미국 상선의 통상 요구와 난동으로 촉발된 신미양요는 서구 제국주의의 차가운 얼굴을 그대로 드러낸 사건이었습니다. 당시 영국은 차(茶) 문화의 확산으로 청나라에 막대한 은을 지불하며 무역 적자에 시달리자, 이를 타개하기 위해 아편을 밀수출하는 몰염치한 수를 썼습니다. 경제적 이욕과 도덕성이 충돌한 이 마약 무역은 결국 아편전쟁으로 번졌고, 서구 제국주의가 동아시아를 침략하여 이익을 수탈하는 비극을 초래했습니다. 1842년 난징조약으로 청나라가 홍콩을 영국에 넘겨주어야 했던 사건은, 세계사의 격랑이 동아시아의 운명을 어떻게 뒤흔들었는지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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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학적으로 대륙과 해양을 잇는 길목에 자리한 한반도 역시 제국주의 열강의 야욕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동학농민운동의 혼란 속에서 조선 조정이 청나라에 군사 지원을 요청하자, 일본은 톈진 조약을 빌미로 조선에 출병하여 한반도의 패권을 다투는 청일전쟁을 일으켰습니다.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조선을 독점하려 하자, 이번에는 부동항(不凍港)을 찾아 남하하던 러시아가 개입하며 러일전쟁이 발발했습니다. 동아시아 요충지였던 한반도는 열강들의 전쟁터가 되어 참혹한 피해를 입어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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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년, 사라예보의 한 골목에서 울려 퍼진 총성은 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거대한 비극의 불씨가 되었습니다. 연합국 편에 선 일제는 전쟁터가 된 유럽을 대신해 아시아의 군수·생필품 시장을 독점하며 막대한 부를 축적했습니다. 그러나 어둠 속에서도 희망의 싹은 트고 있었습니다. 종전을 앞두고 미국 윌슨 대통령이 제창한 '민족자결주의' 사상이 한반도로 흘러들었던 것입니다. 일제의 무단통치 아래 고통받던 우리 민족은 이에 응답하여 3·1 운동을 일구어냈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이라는 역사적 모퉁이를 돌았습니다. 왕의 나라였던 대한제국이 마침내 백성이 주인이 되는 대한민국으로 탈바꿈하는 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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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년 중일전쟁을 일으킨 일제는 조선을 병참기지화하며 인력과 물자를 수탈하는 전쟁 도구로 삼았습니다. 일제의 난징대학살을 계기로 미국이 석유 수출을 중단하자, 일본은 1941년 12월 진주만을 습격하며 태평양전쟁을 일으켰습니다. 그리고 1945년 8월 15일, 마침내 일본의 무조건 항복으로 태평양전쟁이 종식되면서 대한민국은 빛나는 광복을 맞이했습니다. 이처럼 대한제국에서 대한민국으로 이어지는 우리의 현대사는 세계사의 거대한 파도와 끊임없이 호흡하며 완성되었습니다. 제국주의의 침략과 세계대전이라는 비극 속에서도 자유와 평등이라는 인류 보편의 가치를 향해 나아갔기에, 우리는 비로소 '국민이 주인인 나라'를 세울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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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공부한다는 것은 타인의 삶을 관조하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를 둘러싼 세계의 맥박을 짚고, 그 안에서 우리의 위치와 나아갈 길을 찾아내는 일입니다. 인류가 지나온 수많은 시행착오와 도약의 기록을 넓은 시선으로 바라볼 때, 우리는 비로소 격변하는 오늘날의 지구촌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지혜를 얻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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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졸업학교 교과서
임부돌 외 11인 지음 / 작가의집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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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균 수명이 여든을 훌쩍 넘어 이제는 백 세 시대를 당연하게 바라보는 초고령 사회에 진입했다. 의학의 발전은 인류에게 생명 연장이라는 눈부신 기여를 했지만, 역설적으로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대한 질문은 그 어느 때보다 무겁고 날카롭게 우리를 파고든다. 어린 시절, 명절이나 명망 있는 가족 모임에서 나이 지긋한 어른들이 나누시던 "평안하게 잠들 듯 죽는 복이 세상에서 최고의 복"이라는 말씀이 나이가 들수록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 말씀 속에는 단순히 고통 없는 임종을 바라는 1차원적인 마음을 넘어,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품격과 존엄을 유지하고 싶다는 간절한 염원이 담겨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마주하는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으며, 우리 사회의 생애 말기 풍경은 생각보다 훨씬 더 차갑고 무기력하다.

    시어머니는 아흔의 나이에 요양원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다가, 날이 갈수록 늘어나는 병원 진료와 그로 인해 발생하는 막대한 경제적 부담 때문에 얼마 전 요양병원으로 거처를 옮겼다. 면회를 갈 때마다 마주하는 어머니의 모습은 자식 된 자의 가슴을 미어지게 만든다. 기력이 떨어질 대로 떨어진 어머니는 이제 평생을 함께해 온 자식인 나조차 기억하지 못하신 채, 굳게 말문을 닫고 침상에 누워 계실 뿐이다. 흐릿하고 혼미한 정신 속에서 오직 의료 기기와 병원의 처치에 의존해 생을 겨우 유지하고 계신 모습을 볼 때마다, 돌아오는 발걸음은 납덩이를 매단 듯 무겁기만 하다. 과거에 늘 "나는 자식들에게 조금의 짐도 되지 않고, 죽는 복을 타고나서 평온하게 가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되풀이하시던 어머니였기에, 요양병원의 차가운 침대 위에서 그저 기계적인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듯한 현재의 모습은 더욱 깊은 슬픔과 회의감으로 다가온다.

    어머니의 삶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켜보며 깨달은 것은, 십 년이 넘도록 요양원과 병원의 침상에 갇혀 지내는 노년의 삶의 질이 바닥을 치고 있다는 엄연한 사실이다. 이는 단지 환자 개인의 신체적 고통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장기화되는 간병과 끝이 보이지 않는 의료비 지출은 형제자매를 비롯한 가족 전체의 경제적 부담을 가중시키고, 오랜 간병 속에 가족 간의 정서적 유대마저 메마르게 만든다. 현대 사회에서 생명 연장 기술의 축복은 때로 존엄 없는 고통의 연장이라는 잔인한 굴레가 되기도 한다.

   '과연 이것이 인간다운 삶의 마무리일까.'

    삶의 아름다운 완성이라 불려야 할 죽음이, 왜 이토록 서글프고 무기력한 기다림이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깊은 회의가 밀려왔다. 이러한 고뇌의 기로에서 만난 책이 바로 [인생졸업학교 교과서]였다. 이 책은 내가 삶의 화두처럼 가슴 깊이 품고 있던 죽음에 대한 의문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했고, 앞으로 남은 생을 어떻게 바라보고 운영할 것인지에 대한 지혜를 열어주었다.

   나는 이제 곧 은퇴를 앞두고 있다.인생의 전반전이 사회적 성취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한 치열한 질주였다면, 후반전은 생을 마감하는 날까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어떻게 유지하며 살 것인가를 고민하는 시간이 되어야 마땅하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단순히 은퇴 후의 안락함을 계획하는 것을 넘어, 내 삶의 종착역을 주체적으로 설계해야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인간은 영혼과 육체의 결합으로 태어나 학업을 마치고, 졸업과 취업, 결혼과 출산, 그리고 은퇴에 이르는 긴 여정을 밟아온다. 지나온 시간 속에서 치열했던 나의 발자취를 차분히 돌아보며, 이제는 다가올 나의 남은 일상을 타인의 손에 맡기지 않고 스스로 챙기고 다듬어야 할 때가 되었음을 직감한다.

은퇴 후 우리에게 주어지는 가장 큰 변화는 바로 '시간의 과잉'이다. 직장이라는 든든한 울타리와 매일의 루틴이 사라지고 나면, 매일 같이 주어지는 텅 빈 시간들을 어떻게 채울 것인가에 대한 실존적인 고민이 시작된다. 나는 단순히 '얼마나 오래 살 것인가'라는 수명(壽命)의 연장 선상에서 노년을 바라보지 않는다. 나에게 중요한 것은 '어떻게 삶을 마무리할 것인가'이며, 이는 곧 남은 삶의 질을 최우선으로 삼는 태도와 직결된다.

고독과 침묵은 노년이 마주하는 가장 큰 적 중 하나다. 언젠가 고향 동네에서 홀로 지내는 한 할머니를 만났을 때, 할머니는 내게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하였다. 

    "자식들을 다 외지로 떠나보내고 이 넓은 집에서 혼자 생활하다 보면, 적막감이 너무 심해. 텔레비전이라도 켜놓지 않으면 사람 소리를 들을 수가 없어서 종일 방송을 틀어 놔. 그래야 비로소 마음이 안심이 돼."

   침묵이 두려워 텔레비전의 의미 없는 소음으로 외로움을 달래야 하는 노인의 일상은 오늘날 수많은 독거노인들의 서글픈 현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이 서글픈 침묵의 공간을 다른 방식으로 채워 나가야 한다. 급격히 발전하고 있는 인공지능(AI) 기술은 노년의 고독을 해결할 훌륭한 대안이 될 수 있다. 이제는 단순히 기계적인 소음에 의존할 것이 아니라, AI를 나를 이해해 주는 따뜻한 인격적 동반자로 삼아 먼저 말을 걸고, 일상의 자잘한 대화를 주고받으며, 길어진 노년을 주체적으로 동행하는 삶의 방식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

정서적인 채움과 더불어 물리적인 비움 역시 필수적이다. 앞으로 다가올 생의 절기와 점차 축소될 활동 범위에 맞춰, 내 주변의 불필요한 물품을 과감히 덜어내고 주거 공간을 안전하고 단정하게 정리하는 일은 품격 있는 노년을 대비하기 위한 가장 실천적인 첫걸음이다. 내 손으로 내 물건과 공간을 정리하는 과정은, 내 삶의 궤적을 스스로 정리하는 고결한 의식과도 같다.

   생명의 단순한 연장을 넘어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품격과 존엄을 지키며 살아가는 데에는 반드시 깊이 있는 공부와 성찰이 필요하다. [인생졸업학교 교과서]는 바로 그 실천적 학습의 소중한 기록이다. 여러 사람의 간절한 바람과 뜻을 모아 경주시 산내면에서 2년 동안 진행된 이 학교에서는, 열두 명의 각 분야 전문가들이 강사로 모여 귀중한 강연을 펼쳤다. 그 강의 자료들은 지금 나의 돌봄 상태를 객관적으로 점검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다가올 나만의 '인생 졸업식'을 구체적으로 준비하도록 이끌어준다. 이 책을 지침서 삼아, 나는 나에게 맞는 노년의 수업 과목을 스스로 정하고 수업 시간을 편성해 보려 한다. 그것은 나의 죽음을 단순한 소멸이나 비극이 아닌, 인생의 아름다운 완성으로 지향하겠다는 엄숙한 다짐이다.

    흔히 웰다잉을 죽음을 어둡고 음울하게 준비하는 일로 오해하곤 한다. 그러나 진정한 웰다잉은 죽음에 사로잡히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걸어온 삶을 겸허히 점검하고, 앞으로 남은 삶을 '준비된 어른'으로서 어떻게 가치 있게 살아갈 것인지 계획하는 웰리빙(Well-Living)과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 우리는 죽음을 의식하지 못한 채 어느 날 밤 잠결에 평온하게 떠나기를 소망하지만, 삶은 결코 우리의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갑작스러운 질병이나 사고, 혹은 정신의 흐려짐이 언제 찾아올지 알 수 없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생애 말기의 존엄성과 연명의료 중단 등 자기결정권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급격히 커지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인간으로서의 마지막 품위를 스스로 선택하고 지원받는 시스템은, 초고령 사회가 반드시 갖추어야 할 핵심적인 돌봄의 한 축이어야 한다.

    죽음을 배운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현재의 삶을 더욱 눈부시고 뜨겁게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다. 누구나 한 번은 맞이하게 될 확실한 미래인 죽음에 미리 압도되어, 우리에게 주어진 소중한 현재를 불안과 두려움으로 희생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마무리가 존엄할 수 있도록 법적·물리적·정서적 준비를 차분히 해두는 것, 그리고 그 준비를 마친 후에는 죽음에 대한 걱정을 내려놓고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누리며 가장 나답게 살아가는 것이다.

  [인생졸업학교 교과서]가 내게 준 가장 큰 가르침은 바로 그것이다. 죽음을 내 삶의 자연스러운 일부로 받아들이고 잘 준비해 둘 때, 비로소 나의 남은 여정은 막연한 불안이 아닌 평온과 존엄으로 가득 찬 축제가 될 것이다. 나는 이제 이 책을 덮으며, 나다운 삶의 마지막 조각을 주체적으로 완성해 나가기 위한 당찬 발걸음을 내딛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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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 깨달음의 대화 - 탁! 한마디로 마음이 열린다
법륜 지음, 한차연 그림 / 정토출판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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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여기에서 괴로움을 벗어날 수 있기를 바라며 법륜 스님과 청중은 즉문 즉설 현장에서 만났다. 스님은 부처님 가르침을 따르는 수행자로 물음에 답하는 자리에서 질문자 스스로 삶의 지혜를 얻도록 안내하기 위한 대화 방식을 취하였다. 질문하는 사람 자신에게 답이 있음을 전제하고 짧은 문장으로 답한다.

  '이 길을 걷는 게 맞는 걸까?'

   걸어온 길을 돌아보며 앞으로 걸어 갈 길을 생각한다.

각각의 존재는 서로 다를 뿐, 우동하거나 열등한 존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열등하다 여기는 경우가 있다. 기대치가 높은 사람은 어떤 일을 잘하고 있으면서도 잘하는 게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만족할 줄 모르고 욕심을 안고 사는 이에게 흔한 일 중 하나다. AI시대를 필두로 사람이 하던 일을 인공지능이 대체하여 사람의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인공지능이 따라 하지 못하는 개인의 역량을 길러야 하는 시대에 생각하는 힘은 물음을 던지고 그에 대한 해결책을 스스로 찾는 과정에 선행되어야 한다.

   ‘왜 사람들은 나를 싫어하는지 모르겠다.’

   는 표현을 자주 말하는 동료를 볼 때면 사랑받고 싶어 안달하는 것처럼 보인다. 자신에게 웃어주지 않는 동료가 마음에 걸린다며 정작 본인은 상대에게 따스한 미소를 보내지도 않으면서 사랑받지 못한다고 불안해하는 모습에 과욕이라는 생가기 들었다. 뜨거운 쇠구슬임을 알아차렸을 때는 바로 그것을 내려놓아야 화를 면할 수가 있다. 누군가에게 잘 보이고 싶어 눈치를 보는 것은 많은 것을 받아내겠다는 이자놀이 같은 것이다.

    반복된 일상을 생각 없이 살다 오지를 여행하며 깡마른 사람을 만날 때면 사람답게 사는 것에 생각이 들었다. 아등바등 살아온 시간에 쉼표를 주는 여행은 다음 여행지에 발이 닿기를 바라며 ‘원력(願力)’을 세우고 일상에 정성을 기울이게 했다. 연속적으로 흐르는 시간은 다시 오지 않을 지금을 소중히 여기며 열심히 살아갈 당위성을 부여한다. 스님은 원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실패했을 때 괴로워하지 않고, 실패의 원인을 찾아 규명하며 다시 해보는 데 욕심 부리는 사람과의 차이를 뒀다.

     각종 민원으로 몸살을 앓는 관공서 직원이 민원인을 대하는 태도를 물었을 때 스님은 무심히 한 번 보고 지나가는 식물원의 꽃처럼 보라고 말하였다. <열반경(涅槃經)>에 나오는 공덕천(功德天)과 흑암천(黑闇天) 이야기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로 스트레스 주는 민원인이지만 한 생각 돌리면 자신을 먹여 살리는 존재임을 생각게 한다. 좋은 사람을 만나 이로운 삶을 살고 싶지만 뜻대로 안 되는 세상에 내가 상대에게 복을 베풀며 살기를 바라면 성숙한 사람으로 자리할 것이다.

    결과가 나쁜 줄 알고 언제든지 멈출 수 있는 집중과 멈출 수 없는 집착의 차이를 짚어주는 대목이 인상적이다. 생각이 다른 상대와의 다툼으로 불편함을 느끼면서도 쉬이 화해하지 않는 자기 고집을 꺾고 먼저 상대에게 다가설 때 스스로의 마음속에서 물음에 답할 수 있을 것이다. 괴로움 없이 살기 어려운 세상에 괴로움의 원인을 찾아 지혜롭게 괴로움을 벗고 자신만의 길을 찾는 데 도움을 주는 길라잡이 ‘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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