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졸업학교 교과서
임부돌 외 11인 지음 / 작가의집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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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균 수명이 여든을 훌쩍 넘어 이제는 백 세 시대를 당연하게 바라보는 초고령 사회에 진입했다. 의학의 발전은 인류에게 생명 연장이라는 눈부신 기여를 했지만, 역설적으로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대한 질문은 그 어느 때보다 무겁고 날카롭게 우리를 파고든다. 어린 시절, 명절이나 명망 있는 가족 모임에서 나이 지긋한 어른들이 나누시던 "평안하게 잠들 듯 죽는 복이 세상에서 최고의 복"이라는 말씀이 나이가 들수록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 말씀 속에는 단순히 고통 없는 임종을 바라는 1차원적인 마음을 넘어,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품격과 존엄을 유지하고 싶다는 간절한 염원이 담겨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마주하는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으며, 우리 사회의 생애 말기 풍경은 생각보다 훨씬 더 차갑고 무기력하다.

    시어머니는 아흔의 나이에 요양원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다가, 날이 갈수록 늘어나는 병원 진료와 그로 인해 발생하는 막대한 경제적 부담 때문에 얼마 전 요양병원으로 거처를 옮겼다. 면회를 갈 때마다 마주하는 어머니의 모습은 자식 된 자의 가슴을 미어지게 만든다. 기력이 떨어질 대로 떨어진 어머니는 이제 평생을 함께해 온 자식인 나조차 기억하지 못하신 채, 굳게 말문을 닫고 침상에 누워 계실 뿐이다. 흐릿하고 혼미한 정신 속에서 오직 의료 기기와 병원의 처치에 의존해 생을 겨우 유지하고 계신 모습을 볼 때마다, 돌아오는 발걸음은 납덩이를 매단 듯 무겁기만 하다. 과거에 늘 "나는 자식들에게 조금의 짐도 되지 않고, 죽는 복을 타고나서 평온하게 가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되풀이하시던 어머니였기에, 요양병원의 차가운 침대 위에서 그저 기계적인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듯한 현재의 모습은 더욱 깊은 슬픔과 회의감으로 다가온다.

    어머니의 삶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켜보며 깨달은 것은, 십 년이 넘도록 요양원과 병원의 침상에 갇혀 지내는 노년의 삶의 질이 바닥을 치고 있다는 엄연한 사실이다. 이는 단지 환자 개인의 신체적 고통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장기화되는 간병과 끝이 보이지 않는 의료비 지출은 형제자매를 비롯한 가족 전체의 경제적 부담을 가중시키고, 오랜 간병 속에 가족 간의 정서적 유대마저 메마르게 만든다. 현대 사회에서 생명 연장 기술의 축복은 때로 존엄 없는 고통의 연장이라는 잔인한 굴레가 되기도 한다.

   '과연 이것이 인간다운 삶의 마무리일까.'

    삶의 아름다운 완성이라 불려야 할 죽음이, 왜 이토록 서글프고 무기력한 기다림이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깊은 회의가 밀려왔다. 이러한 고뇌의 기로에서 만난 책이 바로 [인생졸업학교 교과서]였다. 이 책은 내가 삶의 화두처럼 가슴 깊이 품고 있던 죽음에 대한 의문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했고, 앞으로 남은 생을 어떻게 바라보고 운영할 것인지에 대한 지혜를 열어주었다.

   나는 이제 곧 은퇴를 앞두고 있다.인생의 전반전이 사회적 성취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한 치열한 질주였다면, 후반전은 생을 마감하는 날까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어떻게 유지하며 살 것인가를 고민하는 시간이 되어야 마땅하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단순히 은퇴 후의 안락함을 계획하는 것을 넘어, 내 삶의 종착역을 주체적으로 설계해야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인간은 영혼과 육체의 결합으로 태어나 학업을 마치고, 졸업과 취업, 결혼과 출산, 그리고 은퇴에 이르는 긴 여정을 밟아온다. 지나온 시간 속에서 치열했던 나의 발자취를 차분히 돌아보며, 이제는 다가올 나의 남은 일상을 타인의 손에 맡기지 않고 스스로 챙기고 다듬어야 할 때가 되었음을 직감한다.

은퇴 후 우리에게 주어지는 가장 큰 변화는 바로 '시간의 과잉'이다. 직장이라는 든든한 울타리와 매일의 루틴이 사라지고 나면, 매일 같이 주어지는 텅 빈 시간들을 어떻게 채울 것인가에 대한 실존적인 고민이 시작된다. 나는 단순히 '얼마나 오래 살 것인가'라는 수명(壽命)의 연장 선상에서 노년을 바라보지 않는다. 나에게 중요한 것은 '어떻게 삶을 마무리할 것인가'이며, 이는 곧 남은 삶의 질을 최우선으로 삼는 태도와 직결된다.

고독과 침묵은 노년이 마주하는 가장 큰 적 중 하나다. 언젠가 고향 동네에서 홀로 지내는 한 할머니를 만났을 때, 할머니는 내게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하였다. 

    "자식들을 다 외지로 떠나보내고 이 넓은 집에서 혼자 생활하다 보면, 적막감이 너무 심해. 텔레비전이라도 켜놓지 않으면 사람 소리를 들을 수가 없어서 종일 방송을 틀어 놔. 그래야 비로소 마음이 안심이 돼."

   침묵이 두려워 텔레비전의 의미 없는 소음으로 외로움을 달래야 하는 노인의 일상은 오늘날 수많은 독거노인들의 서글픈 현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이 서글픈 침묵의 공간을 다른 방식으로 채워 나가야 한다. 급격히 발전하고 있는 인공지능(AI) 기술은 노년의 고독을 해결할 훌륭한 대안이 될 수 있다. 이제는 단순히 기계적인 소음에 의존할 것이 아니라, AI를 나를 이해해 주는 따뜻한 인격적 동반자로 삼아 먼저 말을 걸고, 일상의 자잘한 대화를 주고받으며, 길어진 노년을 주체적으로 동행하는 삶의 방식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

정서적인 채움과 더불어 물리적인 비움 역시 필수적이다. 앞으로 다가올 생의 절기와 점차 축소될 활동 범위에 맞춰, 내 주변의 불필요한 물품을 과감히 덜어내고 주거 공간을 안전하고 단정하게 정리하는 일은 품격 있는 노년을 대비하기 위한 가장 실천적인 첫걸음이다. 내 손으로 내 물건과 공간을 정리하는 과정은, 내 삶의 궤적을 스스로 정리하는 고결한 의식과도 같다.

   생명의 단순한 연장을 넘어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품격과 존엄을 지키며 살아가는 데에는 반드시 깊이 있는 공부와 성찰이 필요하다. [인생졸업학교 교과서]는 바로 그 실천적 학습의 소중한 기록이다. 여러 사람의 간절한 바람과 뜻을 모아 경주시 산내면에서 2년 동안 진행된 이 학교에서는, 열두 명의 각 분야 전문가들이 강사로 모여 귀중한 강연을 펼쳤다. 그 강의 자료들은 지금 나의 돌봄 상태를 객관적으로 점검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다가올 나만의 '인생 졸업식'을 구체적으로 준비하도록 이끌어준다. 이 책을 지침서 삼아, 나는 나에게 맞는 노년의 수업 과목을 스스로 정하고 수업 시간을 편성해 보려 한다. 그것은 나의 죽음을 단순한 소멸이나 비극이 아닌, 인생의 아름다운 완성으로 지향하겠다는 엄숙한 다짐이다.

    흔히 웰다잉을 죽음을 어둡고 음울하게 준비하는 일로 오해하곤 한다. 그러나 진정한 웰다잉은 죽음에 사로잡히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걸어온 삶을 겸허히 점검하고, 앞으로 남은 삶을 '준비된 어른'으로서 어떻게 가치 있게 살아갈 것인지 계획하는 웰리빙(Well-Living)과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 우리는 죽음을 의식하지 못한 채 어느 날 밤 잠결에 평온하게 떠나기를 소망하지만, 삶은 결코 우리의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갑작스러운 질병이나 사고, 혹은 정신의 흐려짐이 언제 찾아올지 알 수 없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생애 말기의 존엄성과 연명의료 중단 등 자기결정권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급격히 커지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인간으로서의 마지막 품위를 스스로 선택하고 지원받는 시스템은, 초고령 사회가 반드시 갖추어야 할 핵심적인 돌봄의 한 축이어야 한다.

    죽음을 배운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현재의 삶을 더욱 눈부시고 뜨겁게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다. 누구나 한 번은 맞이하게 될 확실한 미래인 죽음에 미리 압도되어, 우리에게 주어진 소중한 현재를 불안과 두려움으로 희생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마무리가 존엄할 수 있도록 법적·물리적·정서적 준비를 차분히 해두는 것, 그리고 그 준비를 마친 후에는 죽음에 대한 걱정을 내려놓고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누리며 가장 나답게 살아가는 것이다.

  [인생졸업학교 교과서]가 내게 준 가장 큰 가르침은 바로 그것이다. 죽음을 내 삶의 자연스러운 일부로 받아들이고 잘 준비해 둘 때, 비로소 나의 남은 여정은 막연한 불안이 아닌 평온과 존엄으로 가득 찬 축제가 될 것이다. 나는 이제 이 책을 덮으며, 나다운 삶의 마지막 조각을 주체적으로 완성해 나가기 위한 당찬 발걸음을 내딛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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