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 주례사 - 행복한 결혼생활을 위한 남녀 마음 이야기
법륜스님 지음, 김점선 그림 / 휴(休)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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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앳된 학생들의 호기심 어린 눈망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1992년 11월 14일 각기 다른 삶을 살던 남녀가 결혼식을 치르고 새로운 둥지에 자리를 틀었다. 첫 직장에서 만난 남편은 자신과 결혼해 준다면 배우자를 왕비처럼 떠받들고 아내가 스트레스 받는 일 없이 가정에 충실하겠다는 감언이설(甘言利說)로 집요한 구혼 작전을 벌였다. 하늘이 정해 준 인연이었던지 2년 남짓 끌어당기고 밀어내기를 반복하다 결혼을 결정짓고 말았다. 부모 역할 훈련도 받지 못한 채 별 다른 준비 없이 결혼식을 치른 뒤 한 달이 채 안 되었을 때 결혼 생활이 녹록치 않은 일임을 절감하고 말았다. 신혼 초에는 서로 주도권을 쥐기 위해 신경전을 벌이며 상대를 자신의 틀 안에 넣어 다루기 쉽게 하려는 뜻을 쉽사리 꺾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내 안에 잠재된 이기심은 머리를 치켜들고 앞으로 결혼 생활이 편하려면 남편을 아내 뜻대로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는 욕심을 채우라고 종용했다. 그럴수록 남편은 보란 듯이 아내의 뜻과 괴리되는 행동을 일삼으며 지난한 결혼생활을 이어갔다.   

 

  해를 거듭할수록 결혼 생활은 부부가 서로를 존중하며 상대를 배려하는 가운데 서로가 상생하며 공존하는 협력체와는 거리가 먼 모습으로 변질되어 갔다. 배우자에 대한 기대가 높을수록 실망이 커서인지 소통하는 시간보다는 침묵으로 일관하며 상대를 향한 원망으로 점점 결혼생활은 위축되어 갔다. 직장 생활과 육아를 병행하며 스트레스는 더욱 가중되어 더 이상 함께 살기 힘들다는 판단이 설 무렵 다른 대안을 찾아야 했다. 열이 오를 대로 오른 머리를 식히고 그동안 잊고 지낸 자신을 찾기 위해 만행에 나섰다. 익숙했던 공간을 벗어나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고 혜안이 남다른 이들과 동행하며 비로소 내려놓음을 배우기 시작했다. 상대가 자신과는 다른 가치관으로 인생을 살아가고 있음을 인정해 주고 그대로를 조금씩 받아들임으로써 나를 에워싸고 있던 관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흔히 부부는 사랑으로 맺어졌다고 믿고 살지만 대부분은 서로의 필요에 의한 극도의 이기심으로 맺어진 관계임을 스님은 밝히며 상대에게 무리한 요구를 강요하지 않을 때 비로소 가정에 평안이 깃들 수 있다고 설하였다. 상대를 자신의 통제 안에 두려는 욕심으로 상대의 생각과 감정까지 알아내려는 마음을 내려놓을 때 결혼 생활은 평화로워질 수 있다니 참으로 힘든 생활 중 하나가 둘이 함께 뜻을 이루며 살아가는 삶이 아닌지 반문하게 된다. 결혼하고 나면 배우자를 자신의 소유물로 치부하여 언행을 함부로 하여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경우가 허다하게 일어난다. 상대를 한 인격체로 대우하며 존중할 때 비로소 서로에 대한 집착과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이혼율이 급격히 늘어나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부부가 자신만의 보금자리에서 잘 살아가기가 수월치 않다. 부부가 살면서 제각기 살아왔던 삶의 환경과는 괴리된 사회에 관계망을 엮으며 또 다른 질서를 유지하며 조화롭게 살아가는 일이 쉽지는 않다. 그 중에서 고부간의 갈등이 심한 경우는 더 견디기 힘든 부분이 있어 살면서 더욱 화합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하고 만다. 무지에서 온 어리석음으로 며느리는 부모 자식 간의 정을 끊을 수 있는 환경을 조장하고, 시어머니는 부부 간의 정을 끊는 죄를 저지를 수 있다는 말에 공감하며 집착하여 탐하는 마음을 내려놓아야 함을 일깨운다.

 

  결혼하고 직장 생활을 계속 잇느라 출근 시간 전에 아이를 놀이방에 맡길 때 엄마에게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바동거리던 아이를 뒤로 하고 직장으로 향하던 시절이 떠오른다. 무엇보다 자식이 안정적으로 잘 자랄 수 있도록 보호해줘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게 내내 마음에 걸렸다. 결혼하고 나면 수태에서 출산 후 3년 동안은 오롯이 아이를 키우기 위해 휴직을 내서라도 자식과 부모 간의 정을 쌓아야 함을 설하는 대목에서는 예민한 큰 애가 떠올라 마음이 무겁기만 했다. 돈벌이를 위해 정작 소중한 것을 간과하고 온 것은 아닌지 회의가 들었다. 남편이 바람을 피웠을 때 남편에 대한 미움으로 아이들까지 미워하여 자식들을 힘들게 하는 경우가 종종 생기는데 그럴 때는 부부 사이를 떠나 자식을 보호해야 한다는 점에서 감정에 치우쳐 행동해서는 안 될 듯하다. 설사 부부가 헤어지게 되더라도 그 사람의 행적을 증오하기보다는 내 안에 그를 깨끗이 지우고 내 삶의 주인공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점은 새겨둘 이야기이다.

 

  여행 중에 만난 한 사람은 자신과 너무나 다른 남편을 원망하고 미워하기보다는 오히려 감사하며 지낸다고 했다. 성격이 판이한 남편을 삶의 걸림돌로 여기기보다는 오히려 디딤돌로 여기며 살아간다며 남을 변화시키려 들기보다는 자신을 변화시켜 가는 게 훨씬 더 낫다는 판단이 섰다고 했다. 어찌 보면 부부가 가정을 이루고 자식을 키우며 살아가는 일 자체가 수행의 도량이라는 생각에 공감한다. 매순간 깨어 있기보다는 몸에 배인 습관대로 무의식적으로 살아 내 운명의 주인이 되지 못한 채 운명의 흐름에 몸을 의탁하고 살아가는 범부에 지나지 않았다. 유전자가 대를 이어가는 것처럼 습관도 대를 이어간다는 표현을 보면서 부부가 서로를 존중하며 화기(和氣)가 가득했을 때 자식들에게는 좋은 기운이 뻗쳐 잘 자랄 수 있음을 다시금 깨닫는다.

 

  18년 째 결혼기념일 아침 딸아이는 케이크에 정성스레 쓴 손 글씨 카드를 꽂아서는 부모님 감사하다는 문구를 적어 또 한 번 감동을 줬다. 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사회활동으로 바빴던 남편을 원망하고 갖은 스트레스를 딸에게 풀며 지냈던 시간이 회한으로 가득 차오른다. 유독 사춘기 열병이 심했던 아이를 볼 때면 유년 시절의 아픔이 무의식적으로 작용해 딸을 힘들게 한 것은 아닌지 반성한다. 마음속으로 수십 차례 헤어지기를 반복했던 남편이지만 돌려 생각하면 옆에서 가족을 지켜주는 든든한 울타리가 있어 감사하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 합심하여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는 이가 부부라는 생각에 조금 부족함이 있어도 채워 가야 할 내 반쪽임에는 틀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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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역사다>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여름방학 짬을 내어 8박 9일 일정으로 딸과 함께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를 찾아서 떠나는 역사 기행을 겸한 답사를  중국으로 다녀왔다. 동북아공정으로 우리 역사를 중국 것으로 만들고 우리의 흔적을 지우려는 의도가 곳곳에 드러나 씁쓸하면서 중국이 저러고 있을 때 우리는 뭘 했는지 반문할 정도로 회의가 들었다. 중국에서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 기행 단체가 심양을 기점으로 광개토대왕비, 장군총, 국내성, 5호묘가 있는 집안을 거쳐 영광탑이 있는 장백을 지나 발해 유적지를 찾아 나서니 늘 공안들이 일행에 따라 붙어 감시의 눈초리를 보냈다. 현장 답사 후 매일 밤 진행되는 역사 강의는 우리의 역사를 새롭게 작가하는 계기가 되어 그동안 무심히 살았던 날들을 반성하고 우리 민족의 혼이 담긴 역사에 관심을 더해야겠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그러다 새롭게 만난 유홍준 선생의 한국 미술사 강의Ⅰ은 술술 읽어 미처 챙기지 못했던 부분을 다시금 인식할 수 있게 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미술사를 이해하는 데는 예비지식이 필요한 점을 간파한 저자는 각 장의 첫머리에 시대의 역사적 개관, 불교의 전래 과정 등을 미리 설명해 뒀다. 한국 미술사의 통사(通史)인 점에 착안하여 동아시아 미술사 전체의 흐름 속에 한국 미술사를 이해하여 포괄적으로 다뤄 동양적인 문화 속에 깃든 한국 미술의 정체성을 추구하는 방편에서 강의한 내용을 정리하여 저자는 기술하였다. 한민족의 원류인 한반도 선사 시대에서부터 발해의 미술까지 아울러 통시적인 관점에서 살피고 공시적인 관점에서는 당대의 유물과 유적지를 살펴 그 속에 깃든 이야기까지 책 속에 담아 풍부함과 충실함을 더했다. 한반도에서 가장 오래 된 구석기 시대 유적은 평양시 상원군 검은모루 동굴에서는 뗀석기와 50만 년 전에 멸종된 동물 화석이 발견되었음을 밝혔다. 정착을 바탕으로 농경 생활을 시작한 신석기 시대는 간석기를 사용하였고 잉여 농산물 저장을 위한 토기를 제작하여 가히 혁명적이었다. 신석기 시대의 조형 활동은 울주군 반구대 암각화 발견은 어로에서 수렵으로 바뀌어 풍요로운 사냥을 위해 그림을 되풀이한 획기적인 문화의 한 양상이 조각들에 투영되었음을 알 수 있다.

 

 

  민무늬토기, 청동기 사용, 고인돌 장묘 문화로 대표되는 청동기 시대는 농경과 목축으로 생산력이 높아지면서 서서히 군장사회로 발전해갔다. 청동 검은 제관이나 지배층의 권위를 상징하는 의기로 파형동검에서 한국식 세형동검으로 변화해 갔다. 삶의 규모가 커지자 여러 기형의 생활 토기가 만들어졌고, 제의 용기에는 엄숙한 격식이 들어가 제의 분위기를 투영했다. 이 시대에는 고인돌을 축조할 정도로 사회 구성이 컸고, 부족끼리 협력했음을 알 수 있다. 한나라와 삼한 지역의 교역에 중요한 역할을 한 낙랑은 철기문화가 급속히 퍼져 여러 부족들이 고대국가로 나가는 기틀을 마련했다. 평안도 석암리 무덤에서 출토된 금허리띠장식은 금속 공예에 발전의 물꼬를 터 나갔다. 원삼국시대에는 철을 사용하고 장묘 풍습이 다양해져 생활문화의 변화가 거세졌다. 권위와 상징적 신비감이 더한 와질도기, 오리 모양에 계관 같은 볏을 덧붙인 도기 등이 다양하게 출토되었다. 낮은 화도에서 구워낸 대표적인 고구려 도기인 네귀항아리에는 힘이 강하게 느껴진다. 백제 도기는 우아한 곡선미와 부드러움, 신라의 화려함을 도기 사진과 함께 기술하였다.

 

 

  동방의 피라미드라 불리는 거대한 돌무지무덤인 장군총을 찾았을 때 규모와 그 위용에 놀랐다. 죽음 이후 영혼의 안식을 위해 장엄한 고구려 고분 벽화는 초상화에서 생활풍속화로 변화해 가다 후기에는 장식 무늬와 사신도로 옮겨졌다. 장식무늬 벽화가 가장 먼저 나타난 동명왕릉은 연꽃무늬를 600개 이상을 그려 간결하면서도 입체적인 느낌을 살렸다. 외래문화 수용에 적극적인 백제는 창의성을 토대로 외래문화를 토착화해 나갔다. 사비시대에는 고분미술은 약화되고 불교미술이 일어났다. 미륵사 창건과 미륵사 출토 사리함, 금동미륵반가사유상 등 뛰어난 불상 조각들이 만들어졌다. 검소하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되 사치스럽지 않은 백제는 일본에 불교를 전하고 칠지도와 상아 바둑알 같은 공예품을 전했다. 신라 시대에는 묘제를 간소화한 대신 사찰 건립과 불상에 열정을 바쳐 고분미술에서 불교미술로 미술사적 관심도 옮아갔다. 신라 고분 미술에 나타난 순금 공예품은 뛰어난 누금 세공 기법으로 금관에 샤먼 신앙을 투영한 산(山) 자 세움 장식에 사슴뿔 모양 장식을 덧붙여 장엄한 형태미를 갖추며 정형화했다. 금관의 화려함을 극대화하기 위해 관테에 드리개를 장식으로 장려(壯麗) 취미를 드러냈다. 이외에도 신라인은 달 모양의 곡옥을 가장 많이 아름답게 사용하였다.

 

 

  낙동강 유역에서 독자적 문화를 갖고 있었지만 신라에 병합되면서 역사 속에 사라진 미완의 나라 가야는 굴곡 많았던 역사만큼 쉽게 와해되고 말아 가야 고분 발굴은 일제의 임나일본부설을 강화하기 위한 도굴이라 더욱 안타까웠다. 부흥했던 국가가 망하자 융성했던 문화까지 무상하게 사라져 폐허 속에 남은 주춧돌과 석조물을 통해 가늠할 수밖에 없는 과거 역사다. 고구려의 궁성은 왕궁과 산성이 한 조를 이뤄 전쟁을 대비하는 체제를 갖췄고, 신라의 산성은 평시에는 비워뒀다가 전쟁 시에는 적의 공격을 막고 기습공격을 하는 진지다. 그래서인지 신라의 성은 공격하기 좋은 곳에 자리하여 조망이 넓고 경관이 수려하다. 낙랑은 삼국의 서예와 금석문에 결정적인 영향을 줬고, 금석문인 광개토대왕릉비에 거대한 규모의 비에 예서체로 대왕에 대한 존경과 예를 극진히 표하기 위한 의도였다니 고구려의 웅혼함이 느껴진다. 백제의 금석문으로 최고인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 사리장엄구에서 나온 은제도금 금강경판은 각필로 눌러 새긴 유려함이 더욱 도드라져 보인다. 신라의 금석문인 진흥왕 순수비는 비로소 법도에 맞는 문장과 글씨로 질박함과 왕의 순수성을 표현했다.

 

 

  불교는 고대국가의 이념으로 종교의 역할에 가장 잘 부응하는 종교여서 탑과 사찰이 많이 세워졌다. 고구려 가람은 목탑이 팔각목조건축으로 되어 있고, 부여의 사찰들은 1탑1금당식 가람배치를 보인다. 미륵사는 1탑1금당식 양 옆으로 날개 건물을 단 명쾌한 배치로 삼각형 구도로 안정감을 보여준다. 불교문화의 진수를 보여주는 신라는 불교 공인 이후 많은 사찰이 건립되었다. 호국사찰의 상징이자 신라의 국력을 대내외에 과시하는 황룡사는 1탑3금당식으로 병렬식 가람배치로 아늑함을 더한다. 불구와 사리를 장치하는 사리장엄구 중 백제 금동대향로로 삼국시대 불교 공예의 진수를 보여준다. 삼국시대 불상은 동아시아 불교미술의 보편적 흐름을 형성하는데 이바지했다. 고구려에서 불교는 민간의 구복 신앙 형태로 자리잡고 있었기에 백제와 신라와는 달리 불상의 수도 그리 많지 않았다. 백제는 석불과 마애불을 조성하여 창의적인 조형능력을 발휘하여 백제의 미소로 불리는 태안 마애 삼존불을 조성했다. 호국불교의 성격이 강했던 신라의 불상은 현세적 친근성이 더하고, 미륵신앙이 불상에 반영되어 미륵반가사유상이 만들어졌다.

 

 

  고구려 유민 대조영이 세운 발해는 고구려 정신을 이어 영토 확장으로 거대한 국가로 성장하며 문화를 형성해 갔다. 무덤 위에 전탑을 세운 분묘 형식으로 독특함을 더했고, 벽화에는 저승에서도 피장자를 변함없이 모시려는 소박한 마음을 담았다. 흑룡강성 영안 발해진 흥륭사에는 연꽃 돋을새김 위에 올려진 석등은 규모가 거대하고 형태가 장중하여 고구려의 기상이 역력해 보인다. 길림성 장백시에 영광탑은 발해의 유일한 석탑으로 각 층에 창문을 나타내 전탑의 답답함을 벗어난 디자인이 독창적인 탑이 전망이 좋은 곳에 위치해 있다니 더욱 찾고 싶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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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신간평가단 2010-11-25 17: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자성지님. :)
리뷰를 페이퍼로 작성해 주셨네요.

이후로는 '마이리뷰' 메뉴에 올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성실한 리뷰 고맙습니다.

이 리뷰는 '한국 미술사 강의'에 대한 리뷰이지요?

알라딘신간평가단 2010-11-25 1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리뷰 찾았어요! ㅎㅎ
 
<유홍준의 한국미술사 강의>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유홍준의 한국미술사 강의 1 - 선사 삼국 발해 유홍준의 한국미술사 강의 1
유홍준 지음 / 눌와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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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방학 짬을 내어 8박 9일 일정으로 딸과 함께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를 찾아서 떠나는 역사 기행을 겸한 답사를  중국으로 다녀왔다. 동북아공정으로 우리 역사를 중국 것으로 만들고 우리의 흔적을 지우려는 의도가 곳곳에 드러나 씁쓸하면서 중국이 저러고 있을 때 우리는 뭘 했는지 반문할 정도로 회의가 들었다. 중국에서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 기행 단체가 심양을 기점으로 광개토대왕비, 장군총, 국내성, 5호묘가 있는 집안을 거쳐 영광탑이 있는 장백을 지나 발해 유적지를 찾아 나서니 늘 공안들이 일행에 따라 붙어 감시의 눈초리를 보냈다. 현장 답사 후 매일 밤 진행되는 역사 강의는 우리의 역사를 새롭게 작가하는 계기가 되어 그동안 무심히 살았던 날들을 반성하고 우리 민족의 혼이 담긴 역사에 관심을 더해야겠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그러다 새롭게 만난 유홍준 선생의 한국 미술사 강의Ⅰ은 술술 읽어 미처 챙기지 못했던 부분을 다시금 인식할 수 있게 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미술사를 이해하는 데는 예비지식이 필요한 점을 간파한 저자는 각 장의 첫머리에 시대의 역사적 개관, 불교의 전래 과정 등을 미리 설명해 뒀다. 한국 미술사의 통사(通史)인 점에 착안하여 동아시아 미술사 전체의 흐름 속에 한국 미술사를 이해하여 포괄적으로 다뤄 동양적인 문화 속에 깃든 한국 미술의 정체성을 추구하는 방편에서 강의한 내용을 정리하여 저자는 기술하였다. 한민족의 원류인 한반도 선사 시대에서부터 발해의 미술까지 아울러 통시적인 관점에서 살피고 공시적인 관점에서는 당대의 유물과 유적지를 살펴 그 속에 깃든 이야기까지 책 속에 담아 풍부함과 충실함을 더했다. 한반도에서 가장 오래 된 구석기 시대 유적은 평양시 상원군 검은모루 동굴에서는 뗀석기와 50만 년 전에 멸종된 동물 화석이 발견되었음을 밝혔다. 정착을 바탕으로 농경 생활을 시작한 신석기 시대는 간석기를 사용하였고 잉여 농산물 저장을 위한 토기를 제작하여 가히 혁명적이었다. 신석기 시대의 조형 활동은 울주군 반구대 암각화 발견은 어로에서 수렵으로 바뀌어 풍요로운 사냥을 위해 그림을 되풀이한 획기적인 문화의 한 양상이 조각들에 투영되었음을 알 수 있다.

 

  민무늬토기, 청동기 사용, 고인돌 장묘 문화로 대표되는 청동기 시대는 농경과 목축으로 생산력이 높아지면서 서서히 군장사회로 발전해갔다. 청동 검은 제관이나 지배층의 권위를 상징하는 의기로 파형동검에서 한국식 세형동검으로 변화해 갔다. 삶의 규모가 커지자 여러 기형의 생활 토기가 만들어졌고, 제의 용기에는 엄숙한 격식이 들어가 제의 분위기를 투영했다. 이 시대에는 고인돌을 축조할 정도로 사회 구성이 컸고, 부족끼리 협력했음을 알 수 있다. 한나라와 삼한 지역의 교역에 중요한 역할을 한 낙랑은 철기문화가 급속히 퍼져 여러 부족들이 고대국가로 나가는 기틀을 마련했다. 평안도 석암리 무덤에서 출토된 금허리띠장식은 금속 공예에 발전의 물꼬를 터 나갔다. 원삼국시대에는 철을 사용하고 장묘 풍습이 다양해져 생활문화의 변화가 거세졌다. 권위와 상징적 신비감이 더한 와질도기, 오리 모양에 계관 같은 볏을 덧붙인 도기 등이 다양하게 출토되었다. 낮은 화도에서 구워낸 대표적인 고구려 도기인 네귀항아리에는 힘이 강하게 느껴진다. 백제 도기는 우아한 곡선미와 부드러움, 신라의 화려함을 도기 사진과 함께 기술하였다.

 

  동방의 피라미드라 불리는 거대한 돌무지무덤인 장군총을 찾았을 때 규모와 그 위용에 놀랐다. 죽음 이후 영혼의 안식을 위해 장엄한 고구려 고분 벽화는 초상화에서 생활풍속화로 변화해 가다 후기에는 장식 무늬와 사신도로 옮겨졌다. 장식무늬 벽화가 가장 먼저 나타난 동명왕릉은 연꽃무늬를 600개 이상을 그려 간결하면서도 입체적인 느낌을 살렸다. 외래문화 수용에 적극적인 백제는 창의성을 토대로 외래문화를 토착화해 나갔다. 사비시대에는 고분미술은 약화되고 불교미술이 일어났다. 미륵사 창건과 미륵사 출토 사리함, 금동미륵반가사유상 등 뛰어난 불상 조각들이 만들어졌다. 검소하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되 사치스럽지 않은 백제는 일본에 불교를 전하고 칠지도와 상아 바둑알 같은 공예품을 전했다. 신라 시대에는 묘제를 간소화한 대신 사찰 건립과 불상에 열정을 바쳐 고분미술에서 불교미술로 미술사적 관심도 옮아갔다. 신라 고분 미술에 나타난 순금 공예품은 뛰어난 누금 세공 기법으로 금관에 샤먼 신앙을 투영한 산(山) 자 세움 장식에 사슴뿔 모양 장식을 덧붙여 장엄한 형태미를 갖추며 정형화했다. 금관의 화려함을 극대화하기 위해 관테에 드리개를 장식으로 장려(壯麗) 취미를 드러냈다. 이외에도 신라인은 달 모양의 곡옥을 가장 많이 아름답게 사용하였다.

 

  낙동강 유역에서 독자적 문화를 갖고 있었지만 신라에 병합되면서 역사 속에 사라진 미완의 나라 가야는 굴곡 많았던 역사만큼 쉽게 와해되고 말아 가야 고분 발굴은 일제의 임나일본부설을 강화하기 위한 도굴이라 더욱 안타까웠다. 부흥했던 국가가 망하자 융성했던 문화까지 무상하게 사라져 폐허 속에 남은 주춧돌과 석조물을 통해 가늠할 수밖에 없는 과거 역사다. 고구려의 궁성은 왕궁과 산성이 한 조를 이뤄 전쟁을 대비하는 체제를 갖췄고, 신라의 산성은 평시에는 비워뒀다가 전쟁 시에는 적의 공격을 막고 기습공격을 하는 진지다. 그래서인지 신라의 성은 공격하기 좋은 곳에 자리하여 조망이 넓고 경관이 수려하다. 낙랑은 삼국의 서예와 금석문에 결정적인 영향을 줬고, 금석문인 광개토대왕릉비에 거대한 규모의 비에 예서체로 대왕에 대한 존경과 예를 극진히 표하기 위한 의도였다니 고구려의 웅혼함이 느껴진다. 백제의 금석문으로 최고인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 사리장엄구에서 나온 은제도금 금강경판은 각필로 눌러 새긴 유려함이 더욱 도드라져 보인다. 신라의 금석문인 진흥왕 순수비는 비로소 법도에 맞는 문장과 글씨로 질박함과 왕의 순수성을 표현했다.

 

  불교는 고대국가의 이념으로 종교의 역할에 가장 잘 부응하는 종교여서 탑과 사찰이 많이 세워졌다. 고구려 가람은 목탑이 팔각목조건축으로 되어 있고, 부여의 사찰들은 1탑1금당식 가람배치를 보인다. 미륵사는 1탑1금당식 양 옆으로 날개 건물을 단 명쾌한 배치로 삼각형 구도로 안정감을 보여준다. 불교문화의 진수를 보여주는 신라는 불교 공인 이후 많은 사찰이 건립되었다. 호국사찰의 상징이자 신라의 국력을 대내외에 과시하는 황룡사는 1탑3금당식으로 병렬식 가람배치로 아늑함을 더한다. 불구와 사리를 장치하는 사리장엄구 중 백제 금동대향로로 삼국시대 불교 공예의 진수를 보여준다. 삼국시대 불상은 동아시아 불교미술의 보편적 흐름을 형성하는데 이바지했다. 고구려에서 불교는 민간의 구복 신앙 형태로 자리잡고 있었기에 백제와 신라와는 달리 불상의 수도 그리 많지 않았다. 백제는 석불과 마애불을 조성하여 창의적인 조형능력을 발휘하여 백제의 미소로 불리는 태안 마애 삼존불을 조성했다. 호국불교의 성격이 강했던 신라의 불상은 현세적 친근성이 더하고, 미륵신앙이 불상에 반영되어 미륵반가사유상이 만들어졌다.

 

  고구려 유민 대조영이 세운 발해는 고구려 정신을 이어 영토 확장으로 거대한 국가로 성장하며 문화를 형성해 갔다. 무덤 위에 전탑을 세운 분묘 형식으로 독특함을 더했고, 벽화에는 저승에서도 피장자를 변함없이 모시려는 소박한 마음을 담았다. 흑룡강성 영안 발해진 흥륭사에는 연꽃 돋을새김 위에 올려진 석등은 규모가 거대하고 형태가 장중하여 고구려의 기상이 역력해 보인다. 길림성 장백시에 영광탑은 발해의 유일한 석탑으로 각 층에 창문을 나타내 전탑의 답답함을 벗어난 디자인이 독창적인 탑이 전망이 좋은 곳에 위치해 있다니 더욱 찾고 싶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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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톨이 - 제8회 푸른문학상 수상 청소년소설집 푸른도서관 39
김인해 외 지음 / 푸른책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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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갈림길에 서서 방향을 잃고 어디로 가야할 지 갈등하는 순간에 놓일 때 지금 자신이 선택한 길이 잘한 것인지 자신할 수 없을 때가 늘어날수록 삶의 고뇌는 깊이 자리해 번민의 시간을 보낼 때가 종종 있다. 얼굴을 내밀고 있는 성장 소설을 읽다 보면 예전에 미처 생각지 못했던 일상에 물음을 던지고 돌이켜 생각하게 된다. 때때로 변화하는 청소년들과 함께 생활하며 그들의 생각이 기성세대인 자신과 많이도 다름을 인정하면서도 그들의 생각을 쉽게 수용할 수 없는 것은 어쩌면 내 안에 배인 습성에서 쉽게 벗어날 수 없음이리라. 어느 세대에도 쉽게 끼이지 못하는 주변인이라 불리는 아이들은 자신을 둘러싼 일상의 변화에 혼란을 겪으며 정체성에 회의하며 조금씩 성장해가는 자신을 맞닥뜨리며 살아가고 있다.

  학교에서나 다른 단체 생활에서 존재감 없이 외톨이로 살아 본 적이 있는 아이들은 쉽게 공감하며 읽을 만한 <<외톨이>> 속 주인공 나는 너라 불리는 친구와의 관계를 새롭게 구성하며 인간관계의 단면을 그려내고 있다. 자신의 이름이 번연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별명으로 불리며 생활하는 아이들 속에 존재감을 회복하는 일이 수월치 않았다. 키다리 재민이의 서슬에 눌려 자신의 생각을 제대로 말하지 못하고 지내던 샤프는 재민이 회장 직 사퇴를 계기로 자신의 입장을 전하기 위해 힘으로 그를 제압하고 말았다. 그동안 존재감 없이 키다리 옆에 기생하던 샤프가 작은 영웅으로 떠오르는 순간 그는 키다리가 그토록 숨기고 싶어 했던 새엄마와 살고 있다는 사실을 폭로하여 또 다른 외톨이 신세가 되고 말 듯한 인상을 더했다.  

  사랑을 나누며 살아가는 일은 삭막한 세상 마음에 희망의 꽃을 피우는 일 중 하나이다. 성적지상주의에 사로잡혀 학교 공부만을 파고드는 병폐를 벗기 위해 특별활동으로 봉사 활동 시간을 누적해 주고 있다. <<캐모마일 차 마실래?>>에서는 수동적으로 학교봉사 시간을 채우기 위해 시설에 온 주인공이 장애인들에게 대한 편견에서 벗어나 차별의식 없이 서로의 다름을 받아들이며 조화로운 생활로 이끄는 구성이 돋보인다. 봉사 활동 실적에 관심이 있는 석이는 교통사고로 후천적 장애를 입은 왕재수 지연이와 불화하다 사랑의 하모니를 이뤄내는 과정이 아름다운 풍경으로 비춰진다. 몸이 불편한 이들이 사용하는 화장실은 덕지덕지 붙은 오염으로 심한 악취가 나고 메스꺼움이 더해 청소하는 일이 힘들었지만 석이는 성찰하는 가운데 조금씩 닫힌 마음을 열어 갔다. 리듬악기 연주회가 열리는 날 진정한 봉사를 나가 장애인 수용 시설에서 생활하는 이들과 교감하며 성장해가는 모습은 경험 속에 체화하는 일의 소중함을 일깨워 준다.

  때 이른 추위로 겨울나기가 녹록치 않은 이들이 떠올라 마음이 무겁기만 하다. 제대로 된 난방 시설도 갖추지 못하고 냉기와 싸우며 혹독한 추위를 견뎌야 하는 이들은 한파 주의보라는 말만 들어도 섬뜩할 듯하다. <<한파주의보>>는 아버지의 재혼으로 선택의 여지없이  가정의 구성원으로 새로운 관계를 형성해가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설을 쇠러 간 사이 한파 속에 수도관이 얼어 물 공급이 끊긴 상태에 물을 사러 간 사이 주인공이 불량스런 청소년들에게 당할 위기에서 새엄마가 그를 도와줘 냉랭한 기운을 회복하여 가족애를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소 작위적인 구성이지만 서로에게 냉담했던 이들이 서로 화해하는 구도를 통해 인간관계 회복을 위해 노력해야 할 가치가 있음을 표현했다.

 




  각기 다른 길을 걸으며 일상을 사는 청소년들의 모습은 단편 소설 속 주인공으로 한 단면을 그려내고 있다.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 서서 갈등하고 번민할 때 조금만 달리 생각하면 삶의 이정표가 될 만한 일들은 눈에 띈다. 넉넉한 마음으로 인생을 살기보다는 개인주의적 성향을 보이며 자신만을 챙기는 아이들 모습에 오늘도 화를 내며 훈계를 잊지 않았지만 때로는 단편 소설 한 편이 더 의미 있을 때가 있다. 허브 향 가득한 캐모마일 차를 지연이와 석이 함께 마시며 교감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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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역사다 - 한국 영화로 탐험하는 근현대사
강성률 지음 / 살림터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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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궁벽한 남단의 섬마을에는 영화관이 없어 영화를 보려면 인근 도시로 나가야 하는 불편함이 따르기에 학생들은 불법으로 영화를 다운로드해 보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럴 때마다 저작권을 보호해야 영화인들이 나은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다며 영화는 영화관에서 보는 게 바람직하다는 말을 놓치지 않는다. 기말 고사를 치르고 난 뒤 방학을 며칠 앞둔 2007년 여름 노는 토요일 희망 학생들과 함께 화려한 휴가를 단체 관람하고 눈이 퉁퉁 부은 채로 나와 슬픔을 진정하기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1993년에 출생한 딸아이 또래들은 죄 없는 시민들을 폭도로 몰아 잔혹하게 사살할 수 있는지 납득하기 힘들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국사 책에서 간단히 언급되었던 광주 민주 항쟁을 그냥 두루뭉술하게 넘겨 왔을 뿐인데 영화를 보니 5.18 광주 항쟁이 왜 일어났는지 점점 궁금해지고 수많은 인명을 앗아 간 이들에 대한 처벌이 따르지 않은 점을 의아스럽게 여기는 눈치였다. 군사들의 총칼 아래 처참하게 스러져 간 이들의 넋을 위로하고 피해자의 슬픔에 남은 자의 슬픔이 더해진 듯하다. ‘영화는 역사다’라는 책을 읽으며 날카로운 관찰력과 분석적 통찰력으로 영화를 읽어가는 행간을 좇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저자의 글에 빠져들고 만다.  

  지나 온 시간을 기록하여 후대에 본보기를 보이려던 뜻에 사관들은 전문성을 인정받으며 그들만의 사료를 정리해 나갔다. 때로는 삼엄한 경계 속에 시류에 영합하는 글을 남기기도 했지만 과거의 기록이 남아 있기에 새로운 비전을 품고 질적인 발전을 이뤄가는 토대를 마련해 가는 길에 서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특정 시기의 역사를 다룬 드라마나 영화가 많이 제작되어 세인들의 관심을 끄는 점만 보더라도 과거는 사장되어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명확히 알 수 있다. 영화평론가인 저자는 특정한 시대의 소재를 연출 모티브로 삼아 극적인 사건으로 재해석하는 영화감독의 작품을 통해 관객들이 기억해야 할 부분을 다시금 되새기게 한다. 영화 한 편을 보더라도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 위 연결 선상에서 영화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하는 지를 궁구하여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대답을 담았다.
 

  역사와 영화의 문제는 해석의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이념적인 문제까지 결부지어 영화감독의 역할에 대해 영화를 예로 들어 시대적 흐름 속에 그것을 적절히 융해하여 분석했다. 그의 역할이 특정 시기를 영화로 재해석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과거 속의 사건이지만 새롭게 인식하려는 관객들의 의중을 간파한 감독은 그들과 소통하려는 작업을 해나가고 있음을 알아차릴 있었다. 1903년에 영화 상영이 보편화되어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국 영화는 100년이 넘는 역사 속에 세계적인 영화제에서도 한국 영화의 권위를 인정받으며 발전해 왔다. 일제 강점기에는 민족의 처참한 현실을 폭로하여 풍자하고 외압에 저항하기보다는 신파에 젖어 망국의 현실을 잊으려 했다. 1920년 당시에는 경술국치와 삼일 운동의 실패로 허무주의에 젖은 민족 정서를 영화에 담는 경우가 많았지만 나운규 감독의 ‘아리랑’은 패배의식에 젖어 있던 조선 영화계에 충격적이었다. 카프 계열의 감독이 만든 작품은 일제의 검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일제와 해방 후 정부의 억압에 맞서 저항하며 <유랑>, <화륜> 등의 영화를 통해 이상적인 이념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해 왔음을 알 수 있다.

  해방과 분단을 겪으며 파란 많은 시대의 우울한 모습은 전후(戰後)의 폐허 위에서 국민들의 오락물로 영화는 자리를 잡아 갔다. 다소 많은 작품들이 제작되어 영화의 황금기를 맞기도 했지만 군부독재 시대를 맞아 영화법을 새롭게 정하여 반공을 국시로 삼던 시절에는 반공 영화 제작을 재촉하였다. 영화를 문화 예술로 여기지도 않던 신군부 시대를 겪으며 암흑기였던 한국 영화도 새로운 인식의 변화를 통해 검열의 철폐 등을 끌어내 뚜렷한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일제시대 위안부 여성들의 비극적 삶을 재조명한 <낮은 목소리1~2>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존재를 알리고 그들의 싸움의 정당성을 밝히는 가운데 할머니들의 인간적인 모습까지 전하며 관객들과 교감하였다.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는 한 위안부 할머니의 고단한 삶과 소송 과정을 다뤘지만 향후 뚜렷한 성과가 없어 아쉬움이 더했다. 이에 글쓴이는 과거 청산의지가 부족한 정부의 안이한 태도까지 꼬집었다.

  한국 현대사의 가장 큰 비극인 한국전쟁은 4•3항쟁에서부터 전면적으로 확대된 한국전쟁이 야기한 분단은 빨치산, 이산가족, 비전향 장기수, 조총련의 삶까지 영화 속에 그려냈다. 이범선 원작 소설을 토대로 만든 <오발탄>은 분단이 초래한 동족상잔의 비극이 빚어낸 인간의 황폐화와 가정 해체는 분단의 그림자를 반영하고 있다. 냉전 시대를 방불케 하는 분단 고착화는 국책 대결의 수단에서부터 민중의 절절한 현실 속 아픔, 형제애 등을 영화 속에서 다양하게 다루며 분단이 진행형인 시대를 평화적으로 극복해야 함을 넌지시 알리고 있다. 4•3항쟁의 피해자들을 만나 그들의 아픔을 재확인하며 제주도민들의 무참한 학살을 자행한 세력에 대한 응징이 채 이뤄지지 않아 미완의 과제로 남은 사건을 <끝나지 않은 세월>에서 살아남은 자들의 고통스러운 고백을 담았다. 

  분단으로 가족의 생사도 모르고 지내던 이산가족 상봉이 언론에 보도될 때마다 울고 불며 매달리는 그들을 보면서 분단을 극복하여 온 가족이 한 자리에 모일 수 있는 평화로운 세상이 오기를 바라는 마음이 크다. 하지만 반세기가 넘는 분단 고착화는 개인의 정서까지 이질화해 생각의 간극이 커 서로 화합하지 못하는 모습을 일으켜 만남 자체가 또 하나의 문제를 파생하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다.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에서는 헤어진 자매가 서로를 쉽게 인정하지 못하고 갈등하는 양상을 드러냈다. 감정의 간극이 빚어낸 갈등을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이산가족이 자유롭게 만날 수 있도록 배려하는 정부의 노력이 요구됨을 저자는 놓치지 않았다. 지금 이 시대까지 이어지는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봉준호 감독은 자신의 영화에서 현 사회의 모순점을 고발하여 풍자하고 있다. <백색인>은 현 사회의 계급 문제를, <지리멸렬>은 지배층의 모순된 모습을, <살인의 추억>은 군부정권의 허상을 꼬집고 있다. 이처럼 영화는 역사와 무관하게 존재하기보다는 시대적 흐름의 급물살을 타고 있는 셈이다.
 

  '영화는 역사다'를 통해 저자는 과거든 현재든 우리 역사에 대한 감독의 독특한 시각과 해석이 영화에 고스란히 담겨있다고 보았다. 과거는 현재의 필요에 의해 Fact+Fiction으로 재구성해 스크린으로 담을 수 있는 과거를 새롭게 구성한다는 의미이다. '이재수의 난' '웰컴 투 동막골' '피아골' '태백산맥'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화려한 휴가’등은 비극적 현대사를 다루고 있지만 각 사건을 조명하는 감독들의 시각과 해석에는 차이가 드러났다. 몰락한 좌익 집안에서 태어나 갖은 고생을 하다 충무로에서 영화 생활을 시작해 굴지의 영화감독으로 점점 사라져 가는 우리 민족의 전통을 영화 속에 불러내 교감하고 그것이 사라져 가는 것을 아쉬워하고 있음을 프레임에 담았다. 임순례 감독은 무한 경쟁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 양적인 팽창을 위해 질주하는 2000년대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흥미롭게 변주하여 점점 행복과는 거리가 먼 현대인들의 모습을 통해 진정한 행복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영화감독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영화를 관객들이 보고 소통해 나갈 때 독특한 시각을 담은 영화들이 많이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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