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 주례사 - 행복한 결혼생활을 위한 남녀 마음 이야기
법륜스님 지음, 김점선 그림 / 휴(休) / 2010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앳된 학생들의 호기심 어린 눈망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1992년 11월 14일 각기 다른 삶을 살던 남녀가 결혼식을 치르고 새로운 둥지에 자리를 틀었다. 첫 직장에서 만난 남편은 자신과 결혼해 준다면 배우자를 왕비처럼 떠받들고 아내가 스트레스 받는 일 없이 가정에 충실하겠다는 감언이설(甘言利說)로 집요한 구혼 작전을 벌였다. 하늘이 정해 준 인연이었던지 2년 남짓 끌어당기고 밀어내기를 반복하다 결혼을 결정짓고 말았다. 부모 역할 훈련도 받지 못한 채 별 다른 준비 없이 결혼식을 치른 뒤 한 달이 채 안 되었을 때 결혼 생활이 녹록치 않은 일임을 절감하고 말았다. 신혼 초에는 서로 주도권을 쥐기 위해 신경전을 벌이며 상대를 자신의 틀 안에 넣어 다루기 쉽게 하려는 뜻을 쉽사리 꺾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내 안에 잠재된 이기심은 머리를 치켜들고 앞으로 결혼 생활이 편하려면 남편을 아내 뜻대로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는 욕심을 채우라고 종용했다. 그럴수록 남편은 보란 듯이 아내의 뜻과 괴리되는 행동을 일삼으며 지난한 결혼생활을 이어갔다.   

 

  해를 거듭할수록 결혼 생활은 부부가 서로를 존중하며 상대를 배려하는 가운데 서로가 상생하며 공존하는 협력체와는 거리가 먼 모습으로 변질되어 갔다. 배우자에 대한 기대가 높을수록 실망이 커서인지 소통하는 시간보다는 침묵으로 일관하며 상대를 향한 원망으로 점점 결혼생활은 위축되어 갔다. 직장 생활과 육아를 병행하며 스트레스는 더욱 가중되어 더 이상 함께 살기 힘들다는 판단이 설 무렵 다른 대안을 찾아야 했다. 열이 오를 대로 오른 머리를 식히고 그동안 잊고 지낸 자신을 찾기 위해 만행에 나섰다. 익숙했던 공간을 벗어나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고 혜안이 남다른 이들과 동행하며 비로소 내려놓음을 배우기 시작했다. 상대가 자신과는 다른 가치관으로 인생을 살아가고 있음을 인정해 주고 그대로를 조금씩 받아들임으로써 나를 에워싸고 있던 관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흔히 부부는 사랑으로 맺어졌다고 믿고 살지만 대부분은 서로의 필요에 의한 극도의 이기심으로 맺어진 관계임을 스님은 밝히며 상대에게 무리한 요구를 강요하지 않을 때 비로소 가정에 평안이 깃들 수 있다고 설하였다. 상대를 자신의 통제 안에 두려는 욕심으로 상대의 생각과 감정까지 알아내려는 마음을 내려놓을 때 결혼 생활은 평화로워질 수 있다니 참으로 힘든 생활 중 하나가 둘이 함께 뜻을 이루며 살아가는 삶이 아닌지 반문하게 된다. 결혼하고 나면 배우자를 자신의 소유물로 치부하여 언행을 함부로 하여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경우가 허다하게 일어난다. 상대를 한 인격체로 대우하며 존중할 때 비로소 서로에 대한 집착과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이혼율이 급격히 늘어나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부부가 자신만의 보금자리에서 잘 살아가기가 수월치 않다. 부부가 살면서 제각기 살아왔던 삶의 환경과는 괴리된 사회에 관계망을 엮으며 또 다른 질서를 유지하며 조화롭게 살아가는 일이 쉽지는 않다. 그 중에서 고부간의 갈등이 심한 경우는 더 견디기 힘든 부분이 있어 살면서 더욱 화합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하고 만다. 무지에서 온 어리석음으로 며느리는 부모 자식 간의 정을 끊을 수 있는 환경을 조장하고, 시어머니는 부부 간의 정을 끊는 죄를 저지를 수 있다는 말에 공감하며 집착하여 탐하는 마음을 내려놓아야 함을 일깨운다.

 

  결혼하고 직장 생활을 계속 잇느라 출근 시간 전에 아이를 놀이방에 맡길 때 엄마에게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바동거리던 아이를 뒤로 하고 직장으로 향하던 시절이 떠오른다. 무엇보다 자식이 안정적으로 잘 자랄 수 있도록 보호해줘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게 내내 마음에 걸렸다. 결혼하고 나면 수태에서 출산 후 3년 동안은 오롯이 아이를 키우기 위해 휴직을 내서라도 자식과 부모 간의 정을 쌓아야 함을 설하는 대목에서는 예민한 큰 애가 떠올라 마음이 무겁기만 했다. 돈벌이를 위해 정작 소중한 것을 간과하고 온 것은 아닌지 회의가 들었다. 남편이 바람을 피웠을 때 남편에 대한 미움으로 아이들까지 미워하여 자식들을 힘들게 하는 경우가 종종 생기는데 그럴 때는 부부 사이를 떠나 자식을 보호해야 한다는 점에서 감정에 치우쳐 행동해서는 안 될 듯하다. 설사 부부가 헤어지게 되더라도 그 사람의 행적을 증오하기보다는 내 안에 그를 깨끗이 지우고 내 삶의 주인공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점은 새겨둘 이야기이다.

 

  여행 중에 만난 한 사람은 자신과 너무나 다른 남편을 원망하고 미워하기보다는 오히려 감사하며 지낸다고 했다. 성격이 판이한 남편을 삶의 걸림돌로 여기기보다는 오히려 디딤돌로 여기며 살아간다며 남을 변화시키려 들기보다는 자신을 변화시켜 가는 게 훨씬 더 낫다는 판단이 섰다고 했다. 어찌 보면 부부가 가정을 이루고 자식을 키우며 살아가는 일 자체가 수행의 도량이라는 생각에 공감한다. 매순간 깨어 있기보다는 몸에 배인 습관대로 무의식적으로 살아 내 운명의 주인이 되지 못한 채 운명의 흐름에 몸을 의탁하고 살아가는 범부에 지나지 않았다. 유전자가 대를 이어가는 것처럼 습관도 대를 이어간다는 표현을 보면서 부부가 서로를 존중하며 화기(和氣)가 가득했을 때 자식들에게는 좋은 기운이 뻗쳐 잘 자랄 수 있음을 다시금 깨닫는다.

 

  18년 째 결혼기념일 아침 딸아이는 케이크에 정성스레 쓴 손 글씨 카드를 꽂아서는 부모님 감사하다는 문구를 적어 또 한 번 감동을 줬다. 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사회활동으로 바빴던 남편을 원망하고 갖은 스트레스를 딸에게 풀며 지냈던 시간이 회한으로 가득 차오른다. 유독 사춘기 열병이 심했던 아이를 볼 때면 유년 시절의 아픔이 무의식적으로 작용해 딸을 힘들게 한 것은 아닌지 반성한다. 마음속으로 수십 차례 헤어지기를 반복했던 남편이지만 돌려 생각하면 옆에서 가족을 지켜주는 든든한 울타리가 있어 감사하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 합심하여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는 이가 부부라는 생각에 조금 부족함이 있어도 채워 가야 할 내 반쪽임에는 틀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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