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연애의 달인, 호모 에로스 - 내 몸을 바꾸는 에로스혁명, 개정증보판 달인 시리즈 4
고미숙 지음 / 북드라망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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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순간도 너만을 영원히 사랑할 것이라는 다짐을 하는 연인들의 밀어는 시절인연에 따라 또 다른 공허를 낳을 개연성이 높다. 우리는 상대를 사랑하면서 적지 않은 약속을 내세우며 지금 향하고 있는 사랑을 지켜가기 위해 안간힘을 쓰면서 살아간다. 모든 생명체는 생로병사의 과정을 거치며 사랑 또한 예외일 수 없다는 저자의 말에 공감하며 호모에로스를 읽고 그 감흥을 찾아 길을 떠난다. 어설프지만 설렘이 무엇보다 강렬했던 첫사랑, 첫키스 등을 추억 삼아 밋밋한 현재를 달래는 이들을 종종 만난다. 술만 마시면 과거의 연인을 불러 내놓고 함께 했던 시절을 주저리주저리 읊어대는 이를 연민하다가도 되레 염증을 일으킬 때가 있다. 사랑과 연애를 둘러싼 무수한 망상에 사로잡혀 사는 이들 또한 지금 살아하고 잇는 감정이 고유할 것이라 믿으며 착각 속에 살아가고 있음을 망각하고 있다. 사랑을 받으며 상대를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오만함에 빠져 편견을 낳으면서 그것을 채 깨닫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는 점을 전제로 저자는 오만과 편견으로 가득한 망상기제를 낱낱이 파악할 때 비로소 호모 에로스로 나갈 수 있다고 했다.

 

 

   자신이 하는 사랑은 로맨스고 타인이 하는 사랑은 불륜이라는 우스갯소리가 항간에 떠돌 정도로 어떤 방법으로든 사랑은 우리 생활 깊숙이 들어와 있다. 가끔 중독된 사랑의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충동성은 통제 불능의 상태로 치달아 서로를 힘들게 할 뿐이다. 하지만 열정은 사랑하는 대상을 감정의 노예로 만들어 구속하지 않고 평온함을 주어 순도 높은 합작품을 선물해 준다. 서른넷인 노총각 제자는 오늘도 추운 겨울 외로움을 상쇄할 만한 일이 있어야 하는데 애인이 없어 옆구리가 시리다며 구제를 해달라는 애교 섞인 문자를 전해 왔다. 잃어버린 반쪽이 어디에서 헤매고 있을 것이라 믿으며 그 반쪽을 찾고 싶은 욕망이 기저에는 자리하고 있다. 이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랑하는 대상을 밖에서만 찾으려고 노력하며 지낸다. 하지만 저자는 사랑은 대상이 아니라 자신의 문제로 한정지어 나의 반쪽을 만나는 일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자신 안에 잠재하고 있던 욕망이 표출될 때 사랑은 깃든다고 봤다.

 

 

 

   대학 시절 졸업을 앞두고 뒤늦게 사랑을 불태우던 친구는 오로지 연인과의 사랑에 모든 것을 걸어 친구들의 원성을 산 적이 있다. 연애를 둘만의 관계로 한정짓고는 다른 삶과는 분리하여 둘만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비등(沸騰)하여 들썩거리던 사랑은 1년이 채 안 되어 서로 원수처럼 등을 돌리고 말았다. 좌절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던 친구가 넘어진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을 가꾸는 공부를 통해 새로운 대상과 삶의 서사를 주고받으며 소담스러운 사랑을 키워 나가 결혼에 이르렀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말처럼 사랑이 너무 지나쳐도[태과], 사랑이 너무 모자라도[불급] ‘사랑과 연애의 달인’에 오르기는 힘들다는 점을 새삼 깨닫는다. 삶을 지속하는 한 공부는 지속되어야 하는데 1차적으로는 자신의 몸과 능동적인 소통을 시도하는 데 있음을 밝혔다. 자신을 관찰하고 상대를 돌아보며 몸과 마음의 간극을 줄여 나가 연인은 자신과 같은 시공간 속에 존재하는 친구처럼 여길 때 서로 조화를 이루고 화합하는 사랑을 가꿔나갈 수 있다.

 

 

 

   시절인연에 따라 사랑이 찾아들고 사랑의 꽃이 피어나는 것으로 본 저자는 내 몸과 천지의 기운이 상응하는 타이밍을 잘 포착해야 함을 강조했다. 더 나가서는 화폐 권력이 쳐 놓은 그물망을 벗어나 낯설고 새로운 매트릭스를 찾아 자기로부터 벗어나 더 큰 인연의 장을 만들어갈 발원을 세우고 그 바람대로 맞닥뜨릴 사랑을 꿈꾸길 희망한다. 어떤 특별한 '시공간적 배치' 속에서 사랑이란 특별한 감정이 생기고 그 관계를 형성해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고유한 사랑 법을 창안하길 바라며 대상에 대해 집착하기보다는 삶의 지평을 새로운 흐름으로 안내해 주는 사랑의 진정성을 떠올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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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리만자로의 눈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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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멍 난 주머니를 차고 끝없는 욕심을 채우며 바동거리며 살아가느라 지난한 삶을 보낸 이들의 모습이 안쓰럽게 다가오는 날 진초록으로 뒤덮인 산길을 오르며 위로를 받는다. 그동안 일상에 매여 사느라 떠나보낸 시간들이 기억 속 심연에 자리하여 머리를 내밀고 올랐다가 내려가기를 반복한다. 선택적인 출생은 아니지만 누군가의 자식으로 태어나 사회인으로 자리하며 살아오는 동안 한 개인이 겪는 일상은 별반 다를 것이 없어 보이면서도 개인이 처란 상황에 따라 특별함이 곳곳에 끼어들어 일생의 한 축을 이루기도 한다. 닉 애덤스는 의사인 아버지를 따라 인디언 여인의 분만 현장에 동행했다가 제왕절개로 태어난 생명의 신비에 전율하기보다는 또 다른 생명의 죽음으로 혼란을 겼어야 했다. 질병의 고통 속에 놓인 아이 아버지는 현세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죽음을 선택하였고 살아남은 자는 생로병사의 멍에를 지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운명에 놓였다. 누군가는 새롭게 태어나 삶의 길 위에 섰고 어떤 이는 목숨을 끊고 인생의 종지부를 찍는 일련의 상황은 현실의 고락(苦樂)을 일깨운다.

   만년설로 뒤덮인 아프리카 대륙의 최고봉인 킬리만자로의 서쪽 봉우리에는 얼어붙은 표범 한 마리의 시체가 있다는 노랫말이 떠오른다. 표범이 무엇을 찾아 험난한 길에 들어섰는지는 알 길이 없으나 많은 이들이 채워지지 않는 뭔가를 찾아 킬리만자로를 동경하며 그곳으로 향하는지도 모른다. 순백으로 오점을 뒤덮어 정화하는 정념의 끝자락 자연의 장엄함 앞에 한없이 미약한 인간이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음을 절감하며 발길을 돌리는 이도 있을 것이다. 가지 않은 길을 갈망하며 새로운 공간을 찾아 나서는 이들에게 아프리카 여행은 원시 본연의 생명을 찾으려는 움직임으로 비춰진다. 작가 해리는 아프리카여행에서 사냥하던 중 부상을 입고 다리가 썩어 들어가 감각마저 느끼지 못하는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자신의 다리가 썩어 들어가는 것을 지켜봐야 하는 이의 고통에 좌절하여 삶의 희망까지 저버린 해리에게 곧 치료를 받으면 건강을 회복할 것이라는 말은 소귀에 경 읽기에 지나지 않았다.  다리가 썩어 들어가 그의 목숨을 갉아먹는 형벌을 수용함으로써 그는 숙명적인 죽음을 통해 허무한 인생을 갈무리할 수 있다고 믿었는지도 모른다.

   자신에게 짐 지워진 의무를 뒤로 하고 자연 속에서 지친 심신을 달래며 살아가는 일은 소소한 즐거움을 선물한다. 낚싯대를 들고 강으로 내려가 메뚜기를 미끼로 송어를 낚는 닉은 혼자만의 시간 속으로 들어가 유영하는 송어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물고기를 낚으며 상처 입은 마음을 치유하는 일을 즐겼다. 궤도를 이탈해 살고 싶은 바람을 가지고 살면서도 선뜻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 채 일상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사는 이들에게 닉의 모습은 부러움을 더한다. 작은 송어보다는 크고 멋진 송어를 낚기 위해 힘을 적절히 조율하느라 골몰하던 그가 낚은 고기는 성취욕의 산물로 집중이 낳은 선물이었다. 얕은 물에 사는 작은 송어는 그의 관심 밖이었고, 그는 큰 송어를 낚기 위해 관심을 기울였다. 블랙 강에서 놀며 행복했던 시절을 떠올리며 여행 중에 만난 진지한 친구를 그 후로는 다시 볼 수 없었지만 그는 홉킨스를 추억하며 가슴에 품고 불행과 슬픔을 녹여내는 위로제로 삼아 현재적 삶을 살아갔다.

   예기치 않은 전쟁은 기존의 관계가 배태하는 삶의 균형을 깨고 상흔을 남긴 채 일상을 파괴하여 치유하기 힘든 아픔을 안고 살아야 하는 숙명적 고통을 낳을 때가 있다. ‘이제 내 몸을 뉘며’에서 주인공은 자신이 아는 이들을 위해 기도하며 쉬지 않고 흐르는 물줄기에 내면의 무료함과 답답함을 씻어내리며 전쟁의 공포에서 비껴날 수 있었다. 냇물을 보기 위해 걸어가는 동안 지금껏 알고 있던 냇물과 다른 점을 들추며 의미를 부여하는 일은 무미건조한 전선에서 찰나나마 벗어나려는 움직임으로 애잔함이 더했다. 극도로 예민한 신경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했던 장교와 결별하며 기쁨을 토로하는 주인공은 전선에서 함께 생활하는 이 때문에 겪는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은 소망이 컸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이 목숨처럼 걸고 지키고 싶은 목표를 이루기 위해 실천하는 열정을 거두고 적대시하며 목숨을 걸고 싸워 살아남아야 하는 전쟁은 인간의 존엄성과는 괴리되는 일들을 아무런 죄책감도 없이 자행하는 야욕의 시대에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 묻어난다. 통치하거나 통치할 수밖에 없는 전쟁과는 다른 길을 찾고 싶어 하였던 닉은 쉽사리 도달하기 힘든 ‘가지 못할 길’을 향해 가슴이 시키는 대로 따르고 싶은 열망으로 길을 나섰다. 가지 않은 길로 나섰다가 길을 잃고 떠나왔던 길로 다시 돌아와야 하는 의무가 지워지더라................

   어떤 이유에서인지 사랑하던 여자 친구를 떠나보내고 괴로워하며 모든 것이 끝났다고 여기며 사냥감을 향해 총을 쏠 수 없을 정도로 부는 바람에 자신을 맡긴다. 거센 바람이 혼란스러운 감정의 파편들을 거두어 갔다며 새로운 희망으로 달뜬 닉은 ‘사흘 간의 바람’에 여과 없이 드러난다. 닉은 심드렁한 모습으로 여자 친구를 떠나보내고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낚싯대를 들고 나서는 광경은 ‘어떤 일의 끝’이 끝나는 일이 아니라 어떤 일을 다시 시작하게 하는 원천임을 일깨운다. 카페에 밤늦게까지 앉아 있고 싶어 하는 웨이터는 잠들고 싶지 않은 사람들 중 하나인 노인의 태도를 수용하며 젊음과 자신감으로 일을 해나가는 젊은이를 부러워하며 밤이 이울도록 카페 안을 환히 비추고 싶은 소망을 ‘깨끗하고 불이 환한 곳’에 담았다. 어둠과 밝음은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 하는 공생체로 어둠을 두려워하는 이들의 음울함이 엄습하기를 거부하는 자기만의 저항 방법으로 불을 환히 밝혀 둔 것이리라.

 

   궁극적으로 행복한 삶을 살고 싶은 욕구가 강한 만큼 행복의 조건을 충족하려는 일련의 활동으로 기운이 빠지는 일상을 반복한다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다. 목표물을 설정해 두고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느라 제대로 한번 쉬어보지도 못하고 안달재신하며 지냈던 삶은 회한을 낳아 가던 길을 멈추고 걸어 온 길을 돌아보게 한다. 자신이 걸어 온 만큼 인생이라는 말이 예삿말이 아닌 것처럼 특별한 경험은 개인의 의미 있는 역사를 이루는 순간이기도 하다. 직업 사냥꾼 윌슨과는 달리 사냥에 대한 지식이 많지 않은 프랜시스 머콤버는 사냥감의 어느 부위를 맞추어야 포획할 수 있는지 알 길이 없었고 공포가 자리하여 실천에 제약이 따랐다. 머콤버는 우여곡절 끝에 사자를 맞히었지만 치명상을 입지 않은 사자는 사위어가는 목숨의 끈을 부여잡고 총기를 든 인간들에 맞서 사력을 다했다. 절체절명의 위기에 달한 짐승이 끝까지 버티며 목숨을 지키려는 몸부림에 공포를 느낀 머콤버는 주춤하며 돌아섰고, 차에서 남편의 당당하지 못한 모습을 지켜보던 아내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하였다.

 

   전문 사냥꾼 윌슨은 노련함으로 포획물을 손에 넣은 뒤 머콤버는 위축되어 갔지만 물소 사냥에 성공한 그는 지금껏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두려움을 극복하여 나가는 것처럼 보였다. 세 마리의 물소를 잡았다고 안도하고 있던 찰나 달아나던 사자처럼 총알을 몸에 박고 숲으로 달아난 덩치가 크고 멋진 물소를 찾아 나섰던 그들을 향해 물소는 반격하여 긴장감이 더했다. 물소가 사냥꾼을 해할 수도 있다는 판단이 든 아내는 물소를 향해 쏜다는 게 그만 남편의 머리를 쏴 그를 죽음으로 몰고 말았다. ‘프랜시스 머콤버의 짧고 행복한 삶’은 성취감으로 희열에 감돌 수 있는 시간을 허락하지 못한 채 그의 짧은 생은 마감되었다.

    태어난 뭇 생명들은 영생 불멸의 꿈을 꾸기도 하지만 생사의 굴레를 벗어나기 힘들다. 죽음을 향하여 떠나는 길에 서서 생을 마감하는 날을 염두에 두지 않고 영원히 살아갈 것처럼 고군분투하며 지내느라 자연을 찾아 자신의 삶을 관조하며 성찰할 기회를 내지 못한 채 지낼 때가 많다. 어떤 방향으로 흘러 가야 할지 가늠키 힘든 상황에서 자연적 흐름의 수용은 닉이 냇물을 찾아 걸었던 것처럼 짙게 깔린 음울함을 걷어내는 길 위에서 의미 있는 삶을 발견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송어를 낚으며 아픈 상처를 치유하던 닉이 가슴이 시키는 일을 좇아 살아가던 궤도를 이탈한 것처럼 영혼의 울림에 몸을 맡기고 진정성 있는 행복을 찾아 나설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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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사랑할 것인가 - 장영희 교수의 청춘들을 위한 문학과 인생 강의
장영희 지음 / 예담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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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사서 읽을 여력이 없던 어린 시절 선배에게 물려받은 교과서는 미처 알지 못했던 세상으로 관심을 돌렸고, 친구에게 빌려 읽은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지금도 이뤄지지 않은 사랑에 아파하면서도 성숙한 삶을 이끄는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교과서를 금과옥조처럼 여기며 지내던 시절과는 달리 수 없이 쏟아져 나오는 책들 속에서 어떤 책을 선택해 읽는 게 나을지 고민케 하는 시대를 살아내느라 더 고단한 지도 모를 일이다. 고2 학생들과 문학 수업 시간에 만나면서 고 장영희 교수의 산문집을 추천 도서로 내세울 때가 많다. 생후 1년 소아마비를 앓기 시작하여 입원 치료를 위해 흰 벽 안에 갇혀서 지내는 동안 그녀가 읽은 책들은 훗날 저자가 강단에서 제자들과 만나 소통하는 시간 교감의 열매로 작용하였음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책을 읽으며 다양한 사람들의 생각을 읽으며 대리 경험하는 일은 지극히 제한적인 경험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삶을 풍요롭게 한다.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는 사랑하는 방법을 말하는 게 아니라 장영희 교수가 청춘들과 만나 온 인생에서 청춘들을 위한 문학과 인생 강의를 엮어 펴낸 것이다.

 

   누군가의 아픔과 슬픔에 공감하며 눈물을 흘릴 줄 안다는 것은 신산한 삶을 위로하고 공감하며 좀 더 인간적인 생활을 이어갈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문학 작품을 읽음으로써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여 상대와의 벽을 허물고 자아가 타자가 되는 대리 경험으로 인간적인 보편성을 획득할 수 있다는 점은 일반화되어 가고 있다. 서로를 경쟁자로 내몰아 살벌한 각축전을 방불케 하는 시대에 문학은 타인을 이해하고 서로 의지하며 사랑하는 삶을 잇는 것 무엇보다 소중함을 일깨운다. 문학을 가까이 할 필요가 있음을 저자는 그동안 경험한 세계 속으로 들어가 생각을 드러낸다. 청춘 시절에 읽은 책이 기억 속에 오래 자리하여 생각의 영역을 확장하여 미욱함이 많은 시간을 성숙함으로 채워 넣는 기능을 적절히 행하는 문학은 상상력을 바탕으로 인생의 양분으로 자리한다. 파종 시기가 따로 정해져 있는 것처럼 기억력이 좋고 시력이 괜찮은 20대에 문학을 포함한 책을 많이 읽을 필요가 있다. 책 속의 인상 깊은 구절, 등장인물의 태도 등이 어떤 동기를 부여할 때가 많은 점을 감안한다면 청춘 시절에 숨어 있는 감성을 깨우는 책들을 가까이 하며 지내는 일이 축복처럼 여겨진다.

  감수성이 살아 있는 아이들과 함께 하는 문학 수업은 공감지수가 놓아 소통하는 가운데 창의력을 바탕으로 정서를 표현하며 인지적 영역을 넘어 사고의 폭을 넓혀 간다. 이성적 판단을 바탕으로 한 사실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정신적 삶을 풍요롭게 하는 일에 초점을 맞추는 문학은 타인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일이 행복으로 가는 길 중 하나임을 넌지시 깨닫게 된다. 하버드 의대와 MIT공대의 교양과정에 문학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 의아스럽기는 했지만, 사람의 마음을 읽는 법을 제대로 알기 위해 문학을 가까이한다는 답변을 통해 어떻게 살아야 인간답게 살 수 있는지 가늠할 수 있는 잣대가 될 수 있다는 의견에 공감하였다. 무엇인가 가슴을 울리는 작품을 선택하여 문학 작품을 읽는 일부터 시작하라고 권하며 저자는 독서를 통해 난관을 극복해 나간 지도자들의 삶 가까이 들어가 일화 속 금언을 열거함으로써 책 읽기의 귀중함을 역설하고 있다.

 ‘책을 다 읽을 시간이 없으면 최소한 만지고 쓰다듬기도 해라, 쳐다보기도 해라. ’

   책 읽기를 강조하는 의견과는 괴리되어 보이지만 처칠은 책을 구경이라도 하는 게 책과 거리를 두고 사는 것보다는 낫다고 여겼다. 3박 4일 수학여행을 떠나며 들고 간 책 한 권에는 나이가 더 들어 피로감이 더하기 전에 꿈을 찾아 떠나는 길 위에 서서 자신을 무장하며 살아가는 일이라 위로하였다. 이동 중에 책을 다 읽고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 저자가 귀한 시간을 내어 만들어 놓은 작품을 손쉽게 읽고 내면화하는 일에 고마움과 설렘이 더한다. 깊은 생각으로 돌발적인 상화에 대처해 가는 능력을 길러주는 독서의 힘은 어떤 방향을 잡고 살아가야 할지 가늠케 하는 척도로 작용한다. 문학은 인생의 다양한 모습을 담아 인간답게 사랑하며 살아가는 일상을 여러 사례에 담아 보편성을 얻어가는 일련의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스스로 서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근성을 길러준다. 문학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치열한 삶을 통해 그들이 고난을 극복하여 그들만의 승리로 이끄는 법을 배움으로써 우리는 자신의 삶을 소중히 여기며 사랑할 수 있을 것이다.

  목적지를 향해 하루하루 살아가는 불투명한 인생길이기에 우리는 스스로 인생길을 개척하여 열어가야 하는 숙제를 안고 살아간다. 조금 뒤처지더라도 조바심 내지 말고 지금의 방황이 초래한 시행착오를 소중히 여기고 의미 있는 삶을 형성하는 과정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스무 살을 시작할 청춘에게 말하는 대목은 긍정적이다. 저자는 신체적 장애로 황폐화될 수도 있었던 자신의 삶을 사랑하여 치열하게 살았던 지난날을 떠올리며 책이 주는 힘이 컸음을 진솔하게 밝혔다.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고 외쳤던 시인의 시를 생각게 하는 내면세계의 풍요로움을 위해 청춘들이 간과해서는 안 될 일들 중에 독서와 값진 의미를 지니게 될 경험을 쌓아가는 일이 절실하다고 피력하였다. 자신의 삶에서 주인은 오로지 나뿐이라는 생각으로 스스로 안에 있는 거인을 깨울 필요가 있음을 강조하였다. 창조의 산물인 책을 가까이하며 살아가는 일은 질적인 향상을 담보할 수 있는 일로 내면을 살찌우며 세상을 지혜롭게 살아갈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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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 입학 전 아이의 3년 - 평생 공부와 인성을 좌우할 습관을 잡아라
이상화 지음 / 다산에듀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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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모는 자식들이 자신보다 더 나은 아이들로 인정받는 성원으로 자리를 잡고 생활할 수 있길 바라며 온갖 정성과 사랑으로 자식을 키운다. 큰 아이가 유치원을 졸업하고 초등학교에 들어갔을 때 엄마 퇴근 시간을 맞추기 위해 학원을 두세 군데를 다니면서 일방적인 교육에 상상력과 창의력은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갔다. 직장일로 바쁘다는 핑계를 대며 겉돌던 남편과의 불화는 딸에게 푸념을 늘어놓기 시작하여 제대로 품어주지 못한 게 지금도 가슴에 생채기처럼 남아 있다. 결혼하여 아기가 태어나 부모가 된 부부는 준비 과정도 없이 좌충우돌하며 아이를 키워 왔다. 그저 잘 먹고 잘 자는 아이의 모습에 안도하며 적절한 동기 부여로 학습 습관을 길러주지 못한 게 회한으로 남는다.

 

 

 

  풍족하지 않은 환경에서 나고 자란 저자는 자식에게 유형의 자산보다는 무형의 독서습관을 유산으로 남기려고 생활 속에 실천해 갔다. 도서관 가까운 곳으로 이사하여 아들과 함께 도서관에 들러 책을 함께 읽으며 사고력과 이해력을 키워나갔다. 저자는 재혁이 아기 때부터 동화책을 읽어주고 그림책을 함께 읽으면서 관련 내용을 아들에게 물으며 사고를 확장해 나갔다. 이분법적인 폐쇄적 질문법에서 벗어나 생각의 말미를 주는 개방적 질문으로 자신의 생각을 스스로 정리하고 표현하는 과정을 통해 독서 욕구를 충족해 갔다. 부모가 함께 자식 교육에 참여하는 가정의 자식들이 학습효율성이 더 높다는 연구 보고에서처럼 가난한 아빠 는 아들의 공부 습관을 굳히고 인성을 기르기 위해 3년 공을 들였다.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 책을 통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 가는 능력을 기르고 어떤 상황에 놓이더라도 슬기롭게 타개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

 

 

  동영상 강의를 듣겠다며 컴퓨터 앞에 앉아 있던 아들이 친구와의 채팅에 빠져 있던 것을 발견하고 훈계를 늘어놓으며 질책하지만 아이는 잘못한 게 없다는 표정이다.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한 가지를 선택하였을 때 몰입하여 성취감을 높이는 경우 희열은 더한다. 아이와 함께 책을 읽으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 속에 부모와 자식 간의 신뢰는 쌓이고 미지의 영역을 알아가는 동안 즐거움과 기쁨을 심어주는 일로 아빠가 아들에게 붙여 준 독서습관은 의미 있는 활동이다. 초등학교 입학 3년 전부터 교과 학습을 충실히 이행하고 능력을 발휘하는 데 큰 힘을 주는 공부 습관은 쉽사리 길러지는 게 아니다. 재혁 군의 부모는 자식을 잘 키우기 위해 여러 책을 참고하며 가정에 부합하는 활동으로 연계하여 아들만의 좋은 습관을 길러 왔다. 아이의 부름에 다정히 대답하며 아이와 유대를 쌓으며 교감하는 아버지와 아들의 정은 더욱 두터워져 어떤 어려움도 잘 헤쳐 나갈 바탕으로 작용할 듯하다.

 

 

  머릿속 호기심이 지적 욕구를 더하여 초등 입학 후 아들에게 공부하라는 소리 한 번 내지 않았고, 사교육 하나를 받지 않고서도 다양한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재혁 군은 아버지가 아들에게 물고기를 잡아다 건네는 대신 아들이 물고기를 잡을 수 있는 법을 가르쳐 줘 부모 세대가 멸하더라도 스스로 자신의 삶을 책임질 수 있는 그릇으로 아들을 키웠다. 바쁜 생활이지만 아이와 함께 놀이 위해 시간을 내고, 휴일이면 도서관에 들러 책을 읽으며 사고의 폭을 확장하여 스스로 앞가림을 할 수 있는 아이로 자식을 가르쳤다. 단점까지도 긍정적으로 봐서 장점으로 화할 수 있는 자질을 길러 온 아빠는 넉넉지 않은 가정에서 자식에게 물려 줄 유산은 독서교육에서 길러진 문제해결능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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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풍당당 - 성석제 장편소설
성석제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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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마루 고개를 넘어 아랫마을로 생리대를 사러가는 새미를 따라 나선 준호는 몸집과 나이에 비해 정신연령이 턱없이 낮아 생떼를 부리면 누구도 말릴 수 없을 정도다. 산길을 걸어가는 새미를 눈여겨 본 조직 폭력배 정묵의 수하인 세동과 명철 역시 하나의 가족을 이루고 살아가고 있지만 강마을 식구들처럼 서로를 배려하는 정적인 유대는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두목인 정묵 앞에서는 그의 명령에 복종함으로써 자신의 안위를 돌봤지만 정묵의 눈 아래서 벗어나 욕망을 좇던 세동을 준호가 혼내줌으로써 새미 남매는 조직 폭력배들과 막설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고 말았다.

   자연적 질서와 섭리를 따르며 필요 이상의 것을 탐하지 않고 지내던 강마을에 이방인들의 침입은 마을 주민들이 더욱 결속하여 한 식구로 자리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상처입고 병들어 시들어가는 생명을 살리는 재주가 뛰어났던 소희는 남편 인생의 조화(造花)로 살았던 지난날을 뉘우치며 정체성을 잃고 지내다 강마을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부잣집의 적장자로 태어나 부러울 게 없이 지내다 자멸의 길로 접어든 영필은 지난한 방랑 끝에 머물고 싶은 땅을 찾아 강마을에 안착하였다. 영필은 소희를 사랑하고 있지만 그녀의 마음을 강요하지 않았고, 강마을에서 마주 보고 사는 사람들과의 일상을 소중하게 여기며 하루하루 감사하며 지냈다.

  성도착증 환자인 남편의 볼모로 정신적, 신체적 피해를 벗어나기 위해 강물에 몸을 던졌다 구조된 이령은 강마을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였다. 먹는 것을 찾는 감각이 뛰어난 여산은 인분을 농사일에 이용함으로써 화장실을 천연비료 생산 공장으로 변신시켰고, 조폭들과의 싸움에서는 화장실 구덩이를 시의 적절히 활용하여 승리로 이끈 마을의 해결사였다. 행동대원 세동이 불구의 상태에 놓이자 조폭의 자존심에 타격을 입었다고 판단한 전국구 조폭들은 궁벽한 강마을을 접수하여 불행을 초래한 이를 색출해 응징하려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마을의 어머니 격인 소희는 피는 섞이지 않았어도 한 가족으로 묶인 점을 되짚으며 조폭들의 습격에 불안해하던 새미를 온기로 품었다. 위압적인 조폭들의 침입에 맞서 정면 돌파하기는 힘들다고 여긴 마을 사람들은 잠시 마을을 비웠다가 돌아오자는 말에 흔들리지 않은 소희는 그동안 그녀가 강마을에서 안착한 과정 을 술회했다. 척박한 곳을 일궈서 밭을 만들고 씨앗을 뿌려 열매를 거두기까지 어느 것 하나 허투루 버리지 않고 거름으로 썼던 것처럼 소희는 자연물과 영혼이 연결된 강마을에서 조폭들과 맞서 나갔다. 자연의 가르침대로 손에 든 견고한 무기는 없지만 자연 속에서 얻은 '말벌의 정예 전투원', '고추 잿물 폭탄', '십 년 묵은 분뇨 폭탄' 등으로 조폭들을 초토화해서는 스스로 물러가게 했다.

  조폭들과의 싸움이 정점에 이르렀을 때 여산과 정묵이 지도자로서 책임을 지고 접전에 들어갔을 때 준호의 입에서 새어 나오는 통렬한 울음은 여산을 아버지라고 여기며 그를 지지했기 때문이다. 마음을 하나로 모아 집중하여 여산을 지지했던 마을 사람들은 피를 나누 형제, 자매들보다 더 끈끈한 이들로 한솥밥을 나눠 먹는 식구로 자리했다. 누군가와 함께 대화를 나누며 밥을 먹을 때 그 짧은 시간이 소중한 순간으로 인식되기까지 강마을 사람들은 지난한 시간 속에 에둘러 궁벽한 생활이지만 행복을 조금씩 알아가는 마을에 안착할 수 있었다. 말없이 모든 것을 끌어안고 흘러가는 강줄기처럼 강마을 사람들 역시 자연적 질서를 거스르지 않고 서로 돕고 배려하며 질박한 삶을 이어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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