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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풍당당 - 성석제 장편소설
성석제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4월
평점 :
산마루 고개를 넘어 아랫마을로 생리대를 사러가는 새미를 따라 나선 준호는 몸집과 나이에 비해 정신연령이 턱없이 낮아 생떼를 부리면 누구도 말릴
수 없을 정도다. 산길을 걸어가는 새미를 눈여겨 본 조직 폭력배 정묵의 수하인 세동과 명철 역시 하나의 가족을 이루고 살아가고 있지만 강마을
식구들처럼 서로를 배려하는 정적인 유대는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두목인 정묵 앞에서는 그의 명령에 복종함으로써 자신의 안위를 돌봤지만 정묵의 눈
아래서 벗어나 욕망을 좇던 세동을 준호가 혼내줌으로써 새미 남매는 조직 폭력배들과 막설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고 말았다.
자연적 질서와 섭리를 따르며 필요 이상의 것을 탐하지 않고 지내던 강마을에 이방인들의 침입은 마을 주민들이 더욱 결속하여
한 식구로 자리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상처입고 병들어 시들어가는 생명을 살리는 재주가 뛰어났던 소희는 남편 인생의 조화(造花)로 살았던 지난날을
뉘우치며 정체성을 잃고 지내다 강마을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부잣집의 적장자로 태어나 부러울 게 없이 지내다 자멸의 길로 접어든 영필은 지난한
방랑 끝에 머물고 싶은 땅을 찾아 강마을에 안착하였다. 영필은 소희를 사랑하고 있지만 그녀의 마음을 강요하지 않았고, 강마을에서 마주 보고 사는
사람들과의 일상을 소중하게 여기며 하루하루 감사하며 지냈다.
성도착증 환자인 남편의 볼모로 정신적, 신체적 피해를 벗어나기 위해 강물에 몸을 던졌다 구조된 이령은 강마을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였다. 먹는
것을 찾는 감각이 뛰어난 여산은 인분을 농사일에 이용함으로써 화장실을 천연비료 생산 공장으로 변신시켰고, 조폭들과의 싸움에서는 화장실 구덩이를
시의 적절히 활용하여 승리로 이끈 마을의 해결사였다. 행동대원 세동이 불구의 상태에 놓이자 조폭의 자존심에 타격을 입었다고 판단한 전국구
조폭들은 궁벽한 강마을을 접수하여 불행을 초래한 이를 색출해 응징하려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마을의
어머니 격인 소희는 피는 섞이지 않았어도 한 가족으로 묶인 점을 되짚으며 조폭들의 습격에 불안해하던 새미를 온기로 품었다. 위압적인 조폭들의 침입에 맞서 정면 돌파하기는 힘들다고 여긴 마을 사람들은 잠시 마을을 비웠다가 돌아오자는 말에 흔들리지
않은 소희는 그동안 그녀가 강마을에서 안착한 과정 을 술회했다. 척박한 곳을 일궈서 밭을 만들고 씨앗을 뿌려 열매를 거두기까지 어느 것 하나
허투루 버리지 않고 거름으로 썼던 것처럼 소희는 자연물과 영혼이 연결된 강마을에서 조폭들과 맞서 나갔다. 자연의 가르침대로 손에 든 견고한
무기는 없지만 자연 속에서 얻은 '말벌의 정예 전투원', '고추 잿물 폭탄', '십 년 묵은 분뇨 폭탄' 등으로 조폭들을 초토화해서는 스스로
물러가게 했다.
조폭들과의 싸움이 정점에 이르렀을 때 여산과 정묵이 지도자로서 책임을 지고 접전에 들어갔을 때 준호의 입에서 새어 나오는
통렬한 울음은 여산을 아버지라고 여기며 그를 지지했기 때문이다. 마음을 하나로 모아 집중하여 여산을 지지했던 마을 사람들은 피를 나누 형제,
자매들보다 더 끈끈한 이들로 한솥밥을 나눠 먹는 식구로 자리했다. 누군가와 함께 대화를 나누며 밥을 먹을 때 그 짧은 시간이 소중한 순간으로
인식되기까지 강마을 사람들은 지난한 시간 속에 에둘러 궁벽한 생활이지만 행복을 조금씩 알아가는 마을에 안착할 수 있었다. 말없이 모든 것을
끌어안고 흘러가는 강줄기처럼 강마을 사람들 역시 자연적 질서를 거스르지 않고 서로 돕고 배려하며 질박한 삶을 이어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