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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적인 도시 - 뉴욕 걸어본다 3
박상미 지음 / 난다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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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지를 여행하며 사적인 도시라 부를 만한 곳보다는 문명사회 이전의 향수에 빠져 과거로 회귀하는 시간 속 감상에 젖을 때가 있었다. 이와는 달리 번화한 대도시 익명성이 부각되는 뉴욕에서의 생활은 낯선 공간으로만 여겨졌다. 아직껏 가보지 못한 곳이라 동경하는 마음만 가득한 공간으로 세련된 뉴요커들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는 공간으로만 생각해 왔다. 상업·금융·무역의 중심지로 세계 경제의 동향을 파악하는데 지표로 삼을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대학· 연구소· 박물관· 극장· 영화관세계 금융의 중심지 등 미국 문화의 주류를 선도하는 거대도시에서 생활했던 저자는 자신만의 사적인 도시 뉴욕에서의 일상을 블로그에 담아 두었다가 책으로 선을 보였다.

 

 

   살기로 선택한 도시 뉴욕은 저자에게 사적인 은유로 기존의 가치들을 뒤집어 오롯이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공간처럼 비춰졌다. 한 번의 선택으로 붙박이별처럼 시골의 소재지를 벗어나지 못한 채 일상에 얽매어 살아가는 독자의 눈에 비친 저자는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미술 공부를 위해 찾은 도시 뉴욕에서 미술관을 관람하며 작품을 감상하고 청탁받은 칼럼 기사를 작성하며 즐기는 삶의 단면을 보여준다. 자기중심적으로 뉴욕을 느끼고 살았던 경험의 조각들을 맞추며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는 때, 원하는 대로 움직이며 사유하고 표현하였던 생활이 주는 의미 있는 활동들이 살아난다.

 

   미술 작품 전시장을 찾아 작품을 볼 때마다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규범적인 관람 에 머물러 있어 느낌을 표현하기 힘들 때면 작품을 보는 관점도 새롭게 배워야 함을 알아차린다. 작품을 자유롭게 감상하기 위해 미술을 보는 능력을 키워나가 마음대로 보는 감상으로 치환할 수 있는 길을 열고 싶다. 자신의 위상을 올리고 나만의 품격을 유지하며 살아갈 에너지를 공급받을 수 있는 예술 작품 관람은 시야를 확장하여 질 높은 삶을 구가하는 일상으로 이끈다. 마티스, 세잔, 고갱, 피카소 등의 작품을 수집하였고 그들을 후원하였던 거트루드 스타인은 입체적인 사물해석과 보는 각도에 따른 물체 그 자체의 탐구를 모티브로 한 큐비즘을 설명할 때 시간성을 화면에 들여놓아 다양성을 추구하였다.

 

   녹음이 짙은 센트럴파크 공원을 거닐며 그늘에 앉아 책을 읽고 여유롭게 지내는 일상을 그려보는 일만으로도 행복감이 밀려드는 것은 구체적인 공간에서 강렬하게 살아보고 싶은 소망의 발로다. 가난과 결핍을 자기 나름대로의 스타일로 변형시켜 취하여 갈 때 그 사람만의 스타일이 살아나듯 저자는 있던 것을 빼고 모자람을 즐기며 살아갈 때 흥미로운 삶을 살아가는 방편임을 밝혔다. 지난한 시간 속에서 헤어나지 못할 때 뉴욕의 맨해튼 야경의 휘황한 빛을 떠올리며 가보지 못한 곳을 밟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힌다. 단조로운 잿빛 세상을 넘어 일상을 변주하고 싶을 때 허드슨 강가에 비치는 햇살은 미답의 공간으로 눈길을 돌리게 한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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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잎이 떨어져도 꽃은 지지 않네 - 법정과 최인호의 산방 대담
법정.최인호 지음 / 여백(여백미디어)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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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소유로 널리 알려진 법정(法頂)스님이 2010311일 오후 151분께 서울 성북동 길상사에서 입적했다. 법랍 55. 세수 78

   매화가 앞 다투어 피어나는 계절 생명의 불은 붙기 시작하여 부풀어 오른 꽃망울은 터지기 시작하여 온 세상을 화사하게 물들이며 춘심을 흔든다. 생명을 발산하는 계절에 건강을 회복하지 못한 법정스님은 건강을 회복하지 못하고 열반에 드셨다. 처음 비보를 들었을 때는 정신적 기둥이 뽑혀 휘청거리며 오열하는 불제자로 마음을 다잡기 힘들었다. 엄격하면서도 냉혹한 계율로 자신을 단련하면서도 타인에게는 자비를 행하며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것은 아닌지 회의하는 시간이 많았던 스님은 자기 관리에 지독한 선승이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로 절제된 생활을 이으며 부처님의 계율을 지켰다. 출가에서부터 열반에 들기까지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었던 스님의 맑고 향기로운 법음은 편법이 난무하고 부조리가 횡행하는 시대일수록 부정한 세상을 바로 잡아주는 지침으로 작용할 가르침이다.

   문학을 매개로 소통하며 교유하였던 법정 스님과 최인호 작가는 산방에서 차 한 잔을 사이에 두고 문답식으로 한담을 나눈 내용을 새롭게 묶어 출간하였다. 두 사람은 육신을 갉아먹는 암 투병으로 생존하였을 때에도 죽음이 그림자처럼 달라붙어 있어 두려웠을 텐데도 현재적 상황을 담담히 받아들이며 차안에서의 삶을 관조하였다. 태어남과 동시에 죽음을 향하여 가고 있는 인생에서 죽음을 인생의 끝으로 생각하며 생명에 집착하며 지내는 경우가 허다한데 죽음은 새로운 삶의 시작으로 여기며 삶과 죽음이 다르지 않음을 스님은 말씀하셨다. 스님이 열반에 드셨다는 소식을 접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작가는 항암 중에도 길상사를 찾아 짧은 문상을 끝내고 샘터 출판사에서 수필을 연재하던 인연으로 시작된 대화는 삶을 어떻게 귀결지어야할지 사유케 한다.

 

   산수유가 피어나는 춘삼월 호시절에 고향 친구들과 함께 구레 산수유 마을로 놀이를 떠난 날 차에서 내리고 오를 때만다,

   “아이고, 허리야. 아이고, 다리야.”

   라는 소리가 습관처럼 터져 나와 마음만큼 몸이 따라 주지 않는 나이라는 신호를 받은 셈이다. 나이 듦은 고인 물이 썩는 것처럼 정체되어 변화를 시도하지 않은 채 무사안일로 흐를 수 있음을 경계하여 스스로 성장하기 위한 물음에 답하며 지낼 수 있어야 맑은 정신으로 살아갈 수가 있다. 꽃이 피었다 지는 것처럼 노화와 더불어 죽음을 겸허히 받아들이며 지금껏 살아온 인생의 궤적을 돌아보며 허투루 살지 않기 위해서라도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살아야 한다.

   외로움에 지쳐 우울증 약을 처방받아 먹는 친구 중에는 외로움에 갇혀 헤어나지 못한 채 칩거하며 지낸다. 자기 침체를 벗어나려는 생각보다는 자신만의 벽을 둘러놓고 그 벽을 넘어서지 않으려 해 우려스럽기도 하지만 할 수 있는 일은 스스로 벽을 허물고 나올 때까지 기다려주는 수밖에 없다. 스쳐가는 바람처럼 외로움 역시 일상의 소소함을 일깨워주는 명징한 유형물처럼 받아들이고 살아간다면 불행한 일도 행복해질 수 있다. 당뇨를 앓던 최 작가 역시 산을 오르며 혈당을 관리한 덕분에 근력이 붙어 활기 있다는 말을 들었을 정도였다니 불가피한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며 살아가느냐가 중요해 보인다. 산술적인 잣대를 대고 손해 보지 않는 거래를 성사하는 일로 결혼을 생각하는 천박한 자본주의의 맹점을 비판하며 애착 없이 서로에게 아낌없이 잘해주는 사랑의 숭고한 가치를 넌지시 알려준다. 생김이 다르고 성격이 다른 유기체가 타인이 정해놓은 규범을 따르며 동일한 스펙을 쌓으며 개성을 잃어가는 시대에 나만의 능력과 빛깔로 인생을 살아가는 일이 절실하다.

   정보의 홍수에 휩쓸려 맥을 추리지 못한 채 살아가는 인터넷을 비롯한 디지털 문명의 부속품으로 전락하여 인간적인 면모를 잃어가는 현실은 안타까움을 더한다. 복잡한 세상에서 단순하게 살 필요가 있을진대 필요 이상의 것을 취하며 더 갖지 못해 안달하는 자본주의의 우울한 폐해에서 벗어나 스스로가 주인 역할을 충실히 해낼 때 실수하게 되더라도 흔들림이 많은 시대에 중심을 바로 세우고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속력을 내며 달리느라 챙기지 못하였던 마음을 헤아리며 거짓 없는 태도로 조금은 더디 가더라도 여유롭게 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남을 바꾸려 들기보다는 스스로 변화의 물꼬를 틔워갈 때 질적인 성장을 담보로 하는 내적인 성숙은 점진적으로 이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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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쓰는가]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한창훈의 나는 왜 쓰는가
한창훈 지음 / 교유서가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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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봄 제주도 올레 길을 걸으며 파도에 부서지는 포말을 말없이 바라보며 유한한 인생도 어느 순간 스러져 자연으로 순환하리라는 생각에 미치자 외로움이 더한다. 지금은 친구들과 함께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해안선을 따라 걷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할 수 있는 일들은 줄어듦을 알아차리게 된다. 거문도 섬에서 나고 자라 작가를 직업으로 삼아 뱃사람이라면 으레 행할 일련의 일들과 작품 활동을 병행하는 이로 바다를 배경으로 질펀한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인심 좋은 작가가 건네는 막걸리 한 사발 쭉 들이키며 일상의 일을 전하며 오늘과 내일이 별반 달라질 것 같지 않은 일상이 융해되어 있다.

  

  섬을 여행하다 보면 육지에서 보던 풍광과는 다른 고독이 묻어난다. 점점이 떠 있는 섬들처럼 바람이 불고 비가 거세게 내리면 한정된 공간에 고립되어 자신만의 방법으로 고독과 친해지는 법을 배우며 사는 이들이다. 변방의 섬과 겨울 바다의 강요로 배가 묶일 때는 하는 일 없이 술과 더 친해지는 풍경이 되풀이 된다. 갈치 배를 타던 형의 푸념은 어획량보다 인건비가 더 들어가는 것뿐 아니라 나이 들어가면서 험한 뱃일을 계속 할 수 있을는지도 가늠하기 힘들 정도니 글을 읽는 동안에도 어부의 헛헛한 마음에 짠해졌다.

   

   바람이 바뀌고 찾아오는 어종에 따라 변하는 바다를 생업의 터전으로 삼고 사는 이들은 바다의 주기를 시간으로 삼아 움직인다. 작가가 거문도로 들어와 살기까지 생업뿐 아니라 활동 영역을 확장해 생활해 온 터전인 여수, 부산, 서울 등에서 경험한 일은 창작의 질료로 쓰여 행간과 줄글 사이에 녹아 있다. 누군가의 삶을 이해하고 그 사람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일이 쉽지 않은 시대에 작가는 이들과 가까이에서 음식을 나누고 대화하는 가운데 만난 사람들이 소개된다. 속인의 눈으로는 특별할 게 없는 생활인들이지만 자신이 몸담고 있는 분야에서는 전문성을 띠는 독특함으로 살아났다.

 

   자신과 인연을 맺고 사는 이들에 대한 애정은 삶을 관조하며 쓴 글 곳곳에서 묻어난다. 가까이 지낸 생활인들부터 문단의 거목들과 교유하고 소통하는 현장을 생생하고 역동적으로 담아 평범함이 변주한 또 다른 삶의 진수를 보여준다. 음식 솜씨가 좋은 방이 이모가 고향으로 돌아와 식당을 열고 주린 돈벌이보다는 배고픈 이들의 배를 채워줌으로써 가출한 아들이 어디에서든 굶지 않고 살아갈 수 있길 바라는 모정은 선업을 쌓게 하였다.

  ‘기다리면 올 것은 온다. 견디느냐 못 견디느냐의 차이뿐이다.’

  진정성은 감동으로 돌아오는 것이라 일깨워주기라도 하는 듯 그 아들은 한식 조리사로 돌아와서는 자신의 일을 스스로 개척해보고 싶었다고 말하였다니 부모 의존형인 청춘들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술과 낚시를 좋아하던 방이 이모부와의 소통은 일상 속 의미를 찾아가는 즐김으로 섬 생활에 윤기를 더하였다

   

   결핍을 견디며 사는 법을 터득한 이들은 필요 이상을 소비하지 않아도 살아가는데 지장이 없음을 안다. 권력의 중심 과잉된 욕망의 도시와는 떨어져 지내지만 더딘 변화를 미덕으로 여기며 살아온 항구 주변에 깃들어 사는 이들의 삶은 질박한 사람들의 실재하는 풍경으로 꿈틀거렸다. 끝도 모를 수평선을 말없이 바라보며 침묵을 견디고 거대한 파도와 강풍을 감내하는 상황이 벌어질 때도 고립할 수 있는 근간이 있어야 섬에서의 일상을 이어갈 수 있을 것 같다. 익명의 도시 생활에 염증을 느끼고 섬에 왔다가 며칠을 보내다 밀려드는 고독을 달랠 길이 없어 도심으로 회귀하는 이들이 흔하다. 섬으로 들어왔다 섬을 떠나는 사람, 평생 섬을 지키며 사는 사람, 욕망을 찾아 도시로 나갔다가 섬으로 회귀하는 사람들의 일상성이 갖는 비문학적 삶 하나하나가 문학을 키우는 질료라는 말에 공감하며 경험의 소중함을 일깨운다.

 

   욕 안 듣고 살 수 있는 직업을 생각하던 중 예술가를 떠올렸던 작가는 그 중에서도 타자를 이해하고 그들의 삶에 관심을 기울이며 서술하는 소설가를 생각하고는 좋고 감동적인 것을 잘 쓰면 되겠다고 토로했다. 글 쓰는 기교보다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궁리하며 시선을 주변인들에게 돌렸는지도 모른다. 가난과 추위가 시인의 길라잡이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이는 유용주는 시로써 자신을 구원하고자 했던 것을 넘어 상처 입고 살아가는 영혼들을 구원하려 했는지도 모른다. 물질적인 산술적 잣대를 대지 않는 교원대 졸업생을 아내로 맞은 시인의 지난한 삶은 신산함을 넘어선다. 무력감에 젖은 청년에게 관촌 수필로 살아갈 힘을 줘 힘들 때마다 꺼내어 읽는다는 조문객의 일화는 누군가를 가까이에서 지켜보지 않았다면 알 수 없는 일일 것이다.

 

   이밖에도 문단에서 교유하며 살아가는 이들과의 인연은 숨겨진 시간 속에 녹아 빛을 발하였다. 여전히 저자는 거문도에서 글을 쓰고 틈틈이 낚시를 하여 회를 떠 술을 곁들이다 충동적인 섬 여행에 동참하는 이들을 반기며 그들의 이야기에 길을 기울이며 지낼 것이다. 유명을 달리한 이들의 빈 자리에는 바람이 불어 그들의 영혼을 불러내고 침묵 속에 느리게 움직이며 무료한 시간을 달래며 사는 곳 한 바퀴를 돌며 걸어가는 작가의 뒷모습은 고독을 가족으로 받아들이며 살아야 할 섬사람들의 숙명이 더께처럼 어깨에 내려앉아 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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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얼떨결에 시작한 평가단 활동의 연임으로 15기 평가단으로 활동하는 영예를 안았다.

5월의 봄은 실종된 지 오래라 여름의 더위는 성큼 다가서 엄습한다.

덥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아이들을 보면서 갈수록 인내심이 고갈된 아이들이

많아지는 듯해 아쉬움이 더할 때가 있다.

세태가 변하였는데 전통적인 수법으로 더위를 식히려는 생각에 젖어 지내는

경직된 사고로 기운 것은 아닌지 반문한다.

이성과 감성의 조화를 위해 일상의 리듬을 찾아 균형 있는 삶을

살아가는 일이 필요한 때 메마른 가슴을 촉촉이 적셔 줄 에세이들로

6월 신간 평가단 추천 도서를 뽑아본다.

 

 

 

어려서부터 할머니 손 잡고 뒷산 등성이를 타고 오르며 무명의 어둠을 밝히려는 할머니의 간절한 기도를 들은 적이 있다. 함께 살던 아들을 가슴에 묻고 살아온 세월에 공양미 이고 가서 참배할 부처님마저 안 계셨다면 할머니는 가슴의 응어리를 숙명처럼 안고 살았을 것이다. 자식을 교통사고로 잃은 박완서 작가는 그 일이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느냐며 그저 감내할 뿐이라고 말하였다.

계율을 지키며 사는 게 맞지만 절에 안 나오면 지옥 간다는 말로 옥죄지 않고 마음이 고달플 때 사찰 대웅전 좌복에 앉아 참선하고 108배 수행하는 일로 위로를 얻을 때가 많다. 

번뇌 망상을 넘어 삼독심을 버리고 살아가려는 움직임에 마음 속 등불은 환해진다.

 

 

 

 

 

청빈한 생활과 검약함을 선택하여 살다가신 두 분의 편지글을 보는 것만으로도 설레는 일이다. 교육자로 아동 교육에 심혈을 기울이며 오염된 우리말을 바르게 쓰는 일게 열정적이었던 이오덕 선생님과 강아지똥으로 더 유명한 종지기 권정생 선생님은 내면의 가치를 지키며 살아가는 삶의 소중함을 일깨운다.

질병의 고통을 끊고 지내는 천상에서 잘 계시는지요?

 

 

 

 

예술가 헤세는 다양한 재능을 발휘하며 누구보다 성장을 위한 고뇌를 담은 작품들을 남겼다. 한 세계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자신의 테두리를 벗어나려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질적인 성장을 도모하며 따뜻한 감성을 지닌 노년으로 살다가고 싶은 마음에 헤세의 작품은 미처 알지 못한 세계를 돌아보게 한다.

 

 

 

 

 

 

 

 

 

 

소설가 손홍규가 지난 2008년부터 3년 반 동안 일간지에 연재했던 칼럼 〈손홍규의 로그인〉을 묶은 산문집이다. 당시에 썼던 180여 편의 글 중에서 138편을 가려 엮었다. 사람과 공동체에 대한 우직하고 따뜻한 애정, 그리고 부조리한 사회를 보는 날카로운 시선과 진실한 주장을 담은 글이라니 궁금증이 더한다. 편견을 부정적으로만 볼 일이 아니다.

 

 

 

 

 

 

 

 


 

 

 

 

 

청춘의 핵심적 태도인 열정과 도전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그녀의

삶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 뛰는 설렘을 준다.

전문계 고교에서 처음으로 독서 골든벨을 울린 여학생이란 이력에

더 관심이 가는 것은 독서욕에 대한 갈망이 집약되어서이다.

자기애를 넘어 인류애로 확장해 나간 그녀의 사랑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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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여름 열기를 식히기 위해 강물에 퐁당 뛰어들어 친구들과 멱을 감으며 물장구치는 열다섯 소녀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집안일과는 거리를 두고 애오라지 친구들과 어울려 놀이에 빠져 지냈던 때도 어리다는 이유로 용인되던 일들이 많았고 공부보다는 자연이 더 친숙한 시절이 있었다. 친구들과 함께 강과 들판으로 몰려다니며 자연을 놀이 삼아 지냈던 시절 서산으로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때면 하루해가 짧다고 아쉬워하는 철부지 열다섯 소녀에 지나지 않았다. 별일 아닌 데도 크게 웃으며 깔깔거리던 소녀들과 비껴난 자리 눈 먼 아버지 곁을 지키는 열다섯 살 심청이 손을 재게 놀리는 장면이 연상된다. 결핍은 한 사람의 삶을 불편하게 만드는 요인이기도 하지만 곡절을 겪으며 성장하게 만드는 동인이기도 하다. 눈 먼 아버지의 눈을 띄우기 위해 인당수에 몸을 던짐으로써 아버지의 욕망을 실현시키려 했던 딸은 효녀의 표상으로 남아 있다. 고대 소설 심청전과 채만식의 현대 소설 심봉사를 탐독하여 읽고 고전으로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전통적 소재를 재해석하여 작가는 연인 심청을 창조하였다.

   만족할 수 없는 욕구를 충족하며 이루고 싶은 세계를 동경하고 욕망하는 삶을 지속하는 인생에서 어떠한 선택 결정권도 없이 문제를 끌어안고 살아야 하는 인간이 감당하고 인내해야 하는 슬픔은 삶이 지속될수록 쉽게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기본적인 욕구조차 해결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현재에 존재하지 않는 것들을 취하려는 욕망에 눈이 멀어 분별력 있게 행동하지 못하는 심학규를 보면서 어른답게 살기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하며 행간을 좇아 읽어갔다. 그는 스무 살에 눈이 먼 이후에도 양반의 후예라는 허세에 갇혀 출세를 위한 과거 공부에 매달리며 사서삼경을 매일 읽고 외워 보지만 뜻한 만큼의 효용적 가치를 실현하기는 어려웠다. 가난한 살림에 끼니조차 해결하기 힘든 일상에 불만을 드러내기보다는 통찰력 없이 행동하는 아버지를 불쌍히 여기며 심청은 삯바느질을 해서라도 양식을 얻어와 정성껏 아버지를 봉양하였다. 색정에 물들고 색욕에 눈멀어 주색잡기를 가까이 하는 아버지를 못마땅해 하면서도 아버지를 원망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로 받아들이며 측은해 하는 딸이기도 하였다.

   양반인 아버지와 노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운명의 굴레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천대받고 살아가는 청년 윤상과 어머니의 목숨과 바꿔 세상 밖으로 나온 심청은 슬픔의 테두리 안에서 서로 의지하며 자랐다. 지체 놓은 이들은 가진 권력과 돈으로 서로를 이용하며 살아갔지만 청과 윤상은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고 도우며 부족함을 채워 성장하는 가운데 공동 운명체로 화합하며 살아가는 사랑을 그려 왔을 것이다. 하지만 연정을 품고 사는 이들의 바람과는 달리 운명은 헤살을 놓아 이별의 시간을 배태하여 결별을 예고했다. 심청이 아비의 삶을 멍에처럼 짊어지고 사느라 자신의 내밀한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지낼 수가 없었다. 공양미 삼백 석에 하나뿐인 목숨을 제물로 바쳐야 했던 심청의 마음을 되돌리기에는 이승의 질긴 인연의 사슬이 동여맨 밧줄처럼 옴쭉 달싹 못하게 하였다. 연기의 법칙에 따라 육도 윤회하는 세계관에서는 인간으로 태어나 이승에서 생활하기도 어렵다고 하였다. 죽음으로써 육체는 현세에서 사라져 없어지는 현세적 부속물이고, 이승에서 지은 과보에 따라 윤회하는 순환의 틀에서 관계가 형성된다. 이승으로 오기 전 연인이었던 심청과 심학규는 천상의 규범을 어겨 인간 세상으로 내쳐져 부모와 자식의 인연을 맺고 효심이 지극한 심청이 아버지에게 정성을 다하는 생활로 현세적 삶을 이어갔다.

   양반의 피를 물려받았지만 떳떳하게 내세울 수 없는 출생의 결함으로 넓은 세상으로 나가 역량을 발휘한 기회를 박탈당한 채 살며 버텨야 했던 일상에서도 현재의 괴로움을 감내하며 살아갈 힘은 사랑에서 뻗어 나왔다. 어릴 적부터 심청이 곁에서 그녀의 일상을 지지하고 외로움을 함께 나누는 버팀목으로 자리했던 윤상은 일찍 철이 들어 앞가림을 잘하는 심청에게 울타리로 작용했다. 오늘 가진 것보다 내일 가질 것을 꿈꾸는 아버지를 대할 때마다 마음이 아팠지만 심청은 아버지의 바람을 들어주기 위해 스스로의 욕망은 내려놓고 푸른 물을 들인 무명천에 사랑하는 이의 옷을 지어 그에게 건네고는 이별을 고해야 했다. 옹색한 처지였지만 심청이 곁에 있어 마음이 푼푼하였던 시절을 떠올리며 뜻을 만들기도 전에 운명적인 이별이 사랑을 이루지 못하게 한 고통의 원천이었다.

   아무리 애를 써 봐도 철벽처럼 다가오는 운명은 헤쳐 나갈 수 없음을 잘 알고 있는 이들은 현세에서는 타인의 목숨을 구하고 내세에는 자신의 삶을 구원하리라는 바람을 안고 살아간다. 아버지 심학규는 심청이 인당수 제물을 자청한 대가로 받은 공양미를 욕구에 이끌려 허랑방탕한 생활로 재산을 탕진하고 급기야는 몽운사에 올리기로 한 공양미까지 축내며 몹쓸 병까지 얻어 건강을 회복하기 힘든 상황에 놓였다. 윤상은 사리분별 못하는 늙은이 때문에 죽어가야 하는 심청의 희생을 막아 보려 애원하여 보기도 하였지만 뜻을 이룰 수 없었다. 그녀는 누구보다도 목숨을 값어치 있게 쓰는 일의 숭고함을 알고 이타적 사랑을 실천하는 일에 적극적이었다. 그녀의 생명을 앗아간 바다를 일터로 삼아 노동하며 물 위에 떠 있는 연꽃을 발견하여 왕에게 바쳤다. 화중군자라 불리는 연꽃은 진흙에 물들지 않은 정갈함을 지닌 꽃으로 고매한 정신을 표상하여 가까이 하는 이들이 많았다. 꽃을 사랑하던 왕은 일상의 탄력을 잃을 때 화사한 이미지로 기쁨을 주는 꽃으로 위로를 받을 때도 있었다. 연꽃 속에 요정처럼 자리한 심청을 보고 왕은 아리따운 처녀를 왕비로 삼았고 연꽃을 바친 일을 계기로 윤상은 경계가 삼엄한 궁에서 궁지기의 삶을 시작하게 되었다.

   심청은 왕비로 간택된 뒤 궁궐에서 윤상과 재회한 뒤 그와의 못다 한 사랑에 괴로워하며 속내를 털어놓아 보지만 이들의 재회는 윤상을 지옥으로 밀어 넣어 치명상을 입게 하였다. 희빈 정 씨의 흉악한 고문을 모질게 버티며 권력자들이 술수를 부릴 때에도 윤상은 굴복하지 않고 의연하게 대처하였다. 죽을 것 같은 고통 속에서도 현재와 미래를 살피어 생각의 방향을 정한 뒤 죽음을 받아들임으로써 심청을 지켜주었다. 불의 힘을 빌려 자백을 받아내려는 희빈 정 씨의 극악한 형벌을 안간힘으로 버티며 심청과 내통한 일을 자백하지 않은 윤상은 굳건한 마음으로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기꺼이 자기희생을 감수하였다. 윤상은 궁지기로 들어와 멀찍이 떨어져서라도 왕의 아내로 발탁된 심청의 모습을 가슴에 담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만족하며 신분의 벽을 넘어설 수 없는 인연의 한계를 수용하였다. 그는 송나라로 향하던 뱃전에서 인당수로 뛰어들려 했던 심청을 지켜주지 못한 회한으로 그녀의 안위를 염려하고 남은 생의 행복을 빌어주는 넉넉한 사랑을 발현하였다. 모진 고문 아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버티며 주검으로 사랑을 지켜낸 윤상의 지순한 애정은 극악무도한 정 희빈을 자기 파멸로 이끌었다.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으로 맹인들을 위한 잔치를 연 연회에서 심청은 노쇠한 몸으로 병약해져 곧 생명이 다할 것 같은 현실의 아버지를 보면서 안타까움은 배가 되었다. 꿈속에서 본 훤칠하고 글을 잘하는 풍류가 아버지를 그리워하였던 심청은 개안하였지만 안쓰러운 유기체로 사위어가는 촛불 같은 모습에 그의 목숨을 부지하게 도와달라는 기도를 올렸다. 생명을 다해 아버지의 눈을 띄우기 위해 희생하였던 심청이 이제는 사위어가는, 아버지의 생명의 불을 지피기 위해 정성을 들였다. 아버지의 건강 회복을 바라며 생명을 지켜달라고 기도하는 동안 사랑해온 윤상은 죽음으로 치닫는 단말마의 고통에 시달리려야 했다. 이승에서의 모든 짐을 홀로 짊어지고 참혹한 고통에 형장의 이슬로 스러지면서까지 윤상은 사랑하는 여인 심청을 지켰다. 상여가 나가는 날 망자의 혼은 심청이 머무는 공간 앞에 머물다 그녀의 다정한 소리를 듣고 움직여 이승에서의 못다 한 사랑의 한을 갈무리하는 것처럼 비춰졌다.

   몸이 불편하더라도 살아 있기 때문에 통증을 느끼며 생활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한 채 가지지 못한 부분을 갈구하며 또 다른 무엇인가를 바라왔다. 부지기수의 이별을 겪으며 삶은 알고 있던 이들과 이별하며 고독을 배워가는 통과의례처럼 여겨진다. 청춘 시절에는 몰랐던 부분들이 새로운 얼굴로 떠올라 지금 있는 자리에서 정성을 다하며 사는 일의 소중한 가치를 일깨워준다. 죽을 고비를 넘긴 심학규는 무명의 어둠을 밝혀내는 마음의 눈을 뜨고 그동안 헛된 욕망에 사로잡혀 살아왔던 점을 뉘우치며 속죄양 의식을 실천이라도 하듯 세속을 등지고 유랑하는 삶을 선택하였다. 선택할 수 없는 탄생으로 슬픈 운명적 삶을 살면서도 궤도 내에서 수정하는 생활로 변혁을 꾀하였던 윤상은 죽음을 다짐하고 선택한 길에 충실함으로써 현생에서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의 고귀한 가치를 승화하여 갔다. 유랑의 길을 선택한 아버지를 떠나보내고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떠올리며 선업을 쌓아 복을 짓는 일로 자기 구원을 실현했던 왕비 심청은 약자들을 향한 사랑을 생생하게 표하며 슬픔으로 어두웠던 마음도 씻어내어 자기 정화를 넘어 이타적인 사랑을 구가하였다.

사랑하는 사람과 만나지 날라. 미워하는 사람과도 만나지 말라.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지 않음은 괴로움이다. 미워하는 사람과 만남도 괴로움이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들지 말라. 사랑하는 사람을 잃음도 재앙이니까. 사랑과 미움이 없는 사람은 집착이 없으리.’

   법구경에 나오는 구절이 떠오른 것은 평범한 이들이 실천하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윤상을 떠나보내고 상실의 아픔에 젖기보다는 생자필멸의 법칙을 받아들이며 범속한 삶을 초탈하여 애욕을 넘어서는 사랑을 실천하는 일로 이승에 존재하지 않는 이를 그리며 남은 시간을 보내는 심청의 마음을 가늠키는 힘들다. 풍요로운 현실에 안주하여 사사로운 이익을 대변하며 살기보다는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사랑을 베풂으로써 이타적 삶을 잇는 심청은 자비의 화신처럼 여겨진다. 마음 좋은 귀덕 어멈이 갓난아기 심청에게 젖을 나누어 주었고 좀 더 자라서는 일감을 챙겨주고 끼니를 해결할 수 있게 돕고 홀로 남은 심 봉사가 애욕에 눈이 멀어 애랑에게 넘어 갔을 때도 그의 건강을 살피며 보살피는 자비 행을 실천하였다. 탐심을 버리고 애착 관계를 벗어나 무상 보시를 행하며 살아갈 때 큰 과보를 얻어 궁극적으로는 너와 나를 포함한 우리들이 갈증 많은 세상을 지혜롭게 열어나갈 때 우주에 존재하는 삼라만상과 조응하는 삶을 구현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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