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얼굴
제임스 설터 지음, 서창렬 옮김 / 마음산책 / 2022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갖은 스트레스로 피폐해진 자신을 달래기 위해 호젓한 산길을 오를 때가 있다. 누구에게 방해받지 않는 가운데 걸음을 떼며 지난 일들을 되짚어 요동치는 마음을 조율하는 데 산행은 요긴하였다. 체력이 딸려 험준한 산은 오르기 힘들지만 오르막과 내리막이 교차하는 야산을 즐겨 찾는다. 땅의 기운을 느끼며 산을 오르는 시간은 산란한 마음을 잠재우며 내면의 울림에 공명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캘리포니아에서 교회 지붕 청소 일로 생활하는 랜드는 삶의 확고한 목표 없이 일상과 타협하며 살아가는 일에 염증을 느낀다.


   랜드는 어느 한 곳에 정착하여 안정적인 가정을 꾸려 가족들과 함께 지내는 일보다는 마음 가는 대로 행하며 살기를 바랐다. 그는 오가다 만난 여성들과 교류하며 가볍게 정을 나누면서 감정을 소진하였다. 함께 지내던 여성의 아들인 열두 살 레인과 함께 등반하던 길, 과거에 함께 산을 오르던 친구 캐벗을 만나면서 랜드는 가슴속에 사려 둔 등반에 대한 열망을 드러낸다. 그는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높이 솟은 암벽을 오르던 기억이 머리를 밀고 나설 때면 해머로 그 기억을 두드려 잠재웠지만 캐벗을 만난 후 알프스의 샤모니로 향한다. 샤모니는 알프스 산맥 중 세계적으로 유명한 등산 근거지로 쉽게 허락하지 않는 미봉을 찾는 산악인들의 베이스캠프 같은 곳이다.


   프랑스 샤모니를 찾은 랜드는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가운데 혼자 나아가는 길을 선택하였다. 산을 오를 때면 그의 내부에서 생명력은 넘쳐흘렀고 존재감 있는 주체로 변모하였다. 등반에 관심 있는 동료들과 드뤼를 비롯한 여러 암벽 등반을 시도하여 성공해 그의 명성은 높아가고 있었다. 랜드에게 등반은 스포츠 그 이상의 매력을 지닌 도전으로 거대한 암벽 등정으로 그를 이끌었다. 수단과 목적을 불문하고 높은 산을 정복하는 것은 의심스러운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캐벗은 무리한 등반을 강요하기도 하였다.


   야심찬 캐벗은 알프스의 3대 북벽인 거대한 암벽 아이거에서 샤모니로 향해 다시금 동료들과 드뤼를 비롯한 여러 암벽의 등반에 성공하면서 랜드의 명성은 높아갔다. 한편 캐벗은 알프스의 3대 북벽인 아이거에서 무리한 등반을 강행하다 스물세 살의 젊은 산악인 브레이의 추락사를 목격하였다. 브레이는 암벽 등반 중 로프가 끊어져 아이거에서 900미터 아래로 떨어져 목숨을 잃었다. 함께 등정하던 동료를 잃은 상실감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던 랜드는 자신의 아이를 가진 카트린을 사랑하지만 그녀를 떠나기로 한다. 가정을 꾸려 담당하고 살아야 할 책무에서 자유롭고 싶은 랜드는 얽매이지 않는 생활자로 남고 싶었다. 한편 카트린은 임신 16주의 몸으로 이전의 남자친구에게 돌아가기 위해 파리로 떠났다. 평범한 외양과 편안함을 좋아했던 그녀는 온화하고 이해심 많은 비강의 품을 찾아 랜드를 떠났다.


   아버지가 되고 싶지 않은 랜드는 카트린과 헤어져 홀로 등반을 시작하였다. 아이거에서 존 브레이가 죽었을 때, 랜드는 생전의 브레이는 산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삶을 사랑했다고 토로하였다. 랜드는 정신과 육체를 집중하여 어렵게 내딛는 한 걸음이 정상으로 이끈다는 것을 잘 알기에 모든 준비를 철저히 하여 산봉우리를 타야 한다고 강조했다. 산 정상과 가까운 숙소에서 머물며 기상을 살펴 등반하였다. 쉽게 정상을 허락하지 않는 거대한 봉우리들을 홀로 오르며 위험한 등반의 고통에 경의를 표하였다. 거세할 수 없는 랜드의 남성성은 고도의 집중력을 보이며 알프스 산맥의 봉우리를 올랐다.


   랜드는 드뤼에서 사투를 벌이던 이탈리아인 조난자 두 명을 구하면서 산악계의 영웅적인 인물로 대두된다. 그는 세간에 자신이 얼려지는 것을 원치 않았지만 명성을 얻어 의인 등반가로 여러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일을 은근히 즐겼다. 그는 이후에도 그랑드조라스의 북벽인 워커 등정에 도전하였지만 빙벽에 달라붙어 암벽을 오르기가 쉽지 않았다. 여차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의지는 고갈되었고 급기야는 얼어붙은 암벽에서 퇴각하였다. 준비가 덜 되어 용기가 부족했다고 말한 랜드는 샤모니를 떠나 미국으로 가서 쉬고 싶어 했다.


   미국으로 돌아가기 전 랜드는 생물학적 아버지로서 아들을 한 번 보고 싶어 카트렌을 찾았다. 아버지가 되고 싶지 않았던 그가 고향으로 가기 전 아들을 보고 싶은 마음이 뭔지 명확히 알 길은 없지만 아들 얼굴은 보고 떠나려는 마음이 강했다. 지금 프랑스를 떠나면 언제 다시 샤모니를 찾을지 기약할 수 없기에 아들을 눈에 담아가고 싶었던 듯하다


   아들 장을 본 뒤 고향을 찾은 그는 암벽 등반 중 추락하여 척추손상으로 휠체어에 의지하여 지내는 캐벗을 찾았다. 10년 동안은 등반이 자신의 삶에서 가장 중요하였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며 등반에 매달렸던 시간을 회고하였다. 비범한 일에 도전하며 성취를 얻어 자존감을 키워가는 일이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는 아니라는 점을 알아차리면서도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는 등정의 매력은 야성이 지닌 마성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평범한 사람들이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고산을 목숨 걸고 오르는 산악인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등반길에 오르기까지 많은 경비를 부담하면서 변화무쌍한 기상 악천후를 견디며 조심스레 한 발 한 발 내디뎌야 하는 노정이 펼쳐질 때가 있기 때문이다. 극한의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등반은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위험 요소가 곳곳에 자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프를 묶고 빙벽에 피켈을 꽂는 이유는 무엇일까?

  에베레스트 도전의 화신인 조지 말로리는

  “왜 목숨을 걸고 에베레스트에 오르고 싶어 하십니까?”

  라는 물음에,

  “산이 거기에 있으니까.”

라고 답하였다. 많은 산악인들이 산이 내게로 올 수 없으니 자신이 산으로 간다고 하였다. 쉽지 않은 등정에 도전하며 오롯이 집중하며 빙벽을 오르는 순간 수수로 위험을 선택하였지만 고초를 겪으며 정상을 확인함으로써 맛볼 수 있는 인생의 희열이 있기 때문에 고독한 등정의 길에 나선다. 폭풍우에 휩싸여 한 치 앞을 헤아리기 힘들고, 번개가 봉우리를 때리던 공포를 견뎌야 하는 극한 상황에 굴하지 않고 용기 내어 암벽을 오르는 산악인들의 고독한 선택은 자신만이 짊어지고 가야 하는 삶의 화두처럼 보여 숙연해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 시대의 지성 이어령과 ‘인터스텔라’ 김지수의 ‘라스트 인터뷰’
김지수 지음, 이어령 / 열림원 / 2021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웅혼한 기개로 동물 세계를 호령하는 호랑이해 벽두에 맞닥뜨린 혈육의 죽음은 안타까움과 분노, 서글픔과 무상감으로 가슴 한복판에 처연한 블랙홀을 만들었습니다. 예기치 않은 죽음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다 서너 달이 지나서야 산 자는 어떻게든 살아내야 한다는 당위성을 안고 정신을 차렸습니다. 시한부 선고를 받고 암 투병 중인 이어령 선생님의 마지막을 담으려는 기자의 걸음은 갈기갈기 찢어진 마음을 봉합하여 미답의 길을 걷게 합니다. 단순한 전쟁의 신이 아니라 법과 정의를 지키는 신 티르에서 유래한 화요일 기자는 스승을 찾아 물음표와 느낌표 사이를 오가며 죽음 앞에서도 담대한 어른을 만났습니다.


   앞에 쓴 글에 대한 공허와 실패를 딛고 매번 다시 시작하는 글쓰기를 숙명처럼 여기며 죽을 때까지 글을 쓰고 싶었던 선생님은 각혈하듯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에 남아 있는 자들에게 들려주었습니다. 매주 화요일 저자는 생사를 건네주는 스승 곁에서 삶 속의 죽음, 죽음 곁의 삶을 조명하며 불가피한 인간의 죽음에 대한 배움을 전합니다. 선생님은 3월이면 자신은 이 땅에 없을 것이라며 죽음을 숙고하면서 죽음과 놀이하듯 삶을 마감하였습니다. 죽음이 무엇인지 알게 되면 삶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는 선생님은 죽음을 기억하며 살기를 바랐습니다.


  시한부 삶을 선고받은 이들은 일반적으로 부정·분노·타협·우울·수용5단계를 거치며 생존에 대한 갈증을 돋우며 여러 방법을 찾곤 합니다. 항암 치료를 거치며 이를 능가할 대증치료법을 찾아 나서는 경우가 있지만 선생님은 여느 암환자들과는 확연히 달랐습니다. 두려움 없이 죽음을 이성적으로 받아들이고 꿀벌이 스스로 꿀을 만들기 위해 화분으로 꽃가루를 옮기는 것처럼 작가로서의 소명을 다하였습니다. 인간의 지혜가 아무리 뛰어나도 어쩔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짐을 알아차리고, 자신이 감내하여할 것들을 수용하는 과정은 겸허한 태도로 삶을 살아가는 데 있음을 일깨웁니다권력자 앞에서도 당당하였던 디오게네스의 단호함은 강자 앞에서 비굴하지 않았던지 성찰케 합니다.


  선생님은 신을 믿지 않았으면서도 감당하기 힘든 극한의 상황에 놓인 딸의 불행을 목도하며 딸의 소망을 들어 세례를 받고 기독교인으로 살았습니다. 의식이 혼미해진 상황에서도 생명력이 용솟음쳤던 선생님은 방황하여 길을 잃게 되더라도 남의 신념대로 살지 말기를 당부하였습니다. 선생님은 다 채우면 허무해지는 물독보다는 우물 안에 두레박을 던져 물을 비워내는 지적 보헤미안으로 한곳에 정주하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숨을 편안하게 쉬기도 힘들의 생과 죽음이 교차되는 때에도 약물치료를 거부하고 죽음과 함께 생활하다 영면하기를 바랐습니다. 항암 치료를 마다한 채로 기력을 다해 글을 쓰고 강연하며 죽음까지 기록할 다큐멘터리를 찍었습니다.


   죽음은 동물원 철창을 나온 호랑이가 내게 덤벼드는 기분이라는 말로고통을 수반하는 공포임을 자각하면서도 죽음 역시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며 선생님은 인생을 갈무리하였습니다. 자신의 힘으로 이뤘다고 생각한 모든 것이 선물이었다고 회고하는 선생님의 한마디는 겸허하게 삶과 죽음을 수용하는 통찰적인 시선을 투영하고 있었습니다. 죽음의 그림자가 생존 에너지를 뒤덮어 자신을 짓누르는 상황에서도 선생님은 글을 쓰고 말로 전하면서 찰나를 살더라도 자기만의 문양을 수놓으며 살았습니다. 큰딸이 먼저 갔던 그 길을 따라 간 선생님은 이 세상 소풍 끝내고 온 것처럼 즐거운 인생이었다고 말하였을 것입니다.


   삶이 지속되는 시간에도 죽음을 기억하며 유일한 존재로 자리매김한  자신이 타자를 있는 그대로 있게 함으로 더불어 발전하는 생활을 꿈꿔왔습니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선생님은 품위 있게 죽음을 받아들이며 지금 선택한 일에 집중하였습니다. 죽음으로 내몰린 낭떠러지에서 인문학적 통찰을 일깨운 선생님 덕분에 시야를 확장하여 자신을 돌아보고 정진할 수 있는 힘을 얻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생각지 않은 문자를 받고 확인용 글을 쓴다.

여성 화학자로 괄시를 당하면서도 꿋꿋이 일하며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는 그녀의 나날이 다채로웠다. 

일상에서 만나는 화학적 반응을 흥미진진하게

담은 레슨 인 케미스트리1~2권을 읽고 쓴 리뷰대회에서 2등에 입상한 모양이다.

제세공과금 22,000원을 결제하고 백화점 상품권 도착을 기다린다.

상품권은 딸 손에 들어가겠지만........

뭔가를 성취했다는 점에서 기록으로 남긴다.

 

 

LG퓨리케어 360˚ 공기청정기 플러스

문*라anim****@hanmail.net


신세계 상품권 10만 원 기프티콘

C*********Gfac****@naver.com
김*ki****@naver.com
김*회monja****@hanmail.net
노*주no****@chol.com
명*별eunst****@naver.com
박*우win****@naver.com
심*형onlye****@naver.com
유*정3a****@hanmail.net



댓글(4)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얄라알라 2022-08-31 15: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립니다

자성지 2022-09-01 09:10   좋아요 0 | URL
축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scott 2022-08-31 17: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립니다 ^^

자성지 2022-09-01 09:11   좋아요 1 | URL
스콧 님의 해박한 지적 성찰을 통해 배움의 물꼬를 틀 때가 있습니다. 독자 선정 위원회 활동할 때 눈에 띄는 글 보고 탄성을 내곤 하였습니다.
 
작별인사
김영하 지음 / 복복서가 / 2022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 번의 짧은 삶을 살다가는 육신은 인생의 종착역을 향해 가는 중이다. 마지막이 언제인지 알 수 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기에 지금을 허투루 보내지 않는 일상은 정체성을 찾으며 살아갈 당위성에 의미를 부여한다. 4차 산업혁명시대의 아이콘으로 떠오르는 AI·VR 기술을 살려 죽은 자와 산 자를 연결하여 애절한 그리움을 담은 프로그램에서는 기계와 인간의 공존을 환영처럼 드러냈다. 인공지능을 바탕으로 한 과학 기술은 시공을 초월한 세계를 재조명하여 단절된 세계를 이어 핍진함을 더하였다. 머지않은 미래에 인간을 닮은 로봇인 휴머노이드는 인간의 관계를 지원하며우리와 함께하다 때가 되면 작별하지 않을까 싶다.

   생명체의 죽음을 목도한 날, 평화로운 일상에는 균열이 오고 믿음의 중심부가 흔들려 종잡을 수 없는 감정들이 넘나든다. 의식이 있는 존재는 자기와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것들에 대해 생각한다. 다른 존재의 고통에도 공감할 수 있고, 자신에게 고통을 준 이들을 용서할 수도 있다. 휴머노이드이지만 인간으로 알고 살았던 철이 믿었던 세계에 균열이 생기면서 존재에 대한 회의(懷疑)는 소설 전개의 다른 국면을 맞는다

   평양의 로봇연구소 휴먼매터스 랩에서 일하는 최 박사는 휴머노이드 철이를 멸균 상태로 보호하기 위해 홈스쿨링으로 철이를 양육하였다. 인공지능의 폭주는 인류의 종말을 초래하고 말 것이라며 휴머노이드 양산을 경계하였다. 학부에서 철학을 전공한 최 박사는 인공지능의 윤리적 책임을 중시하며 인공 지능 기계가 대량으로 생산되는 시스템을 제어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무등록 휴머노이드 압류법 통과로 로봇 수용소로 납치당한 철이는,

  ‘나는 누구인가?’

  라는 생각에 빠져들면서도 전투 로봇들이 벌이는 살육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방법을 모색해야 했다.

   인간의 감정과 윤리를 가지고 있는 철이는 아버지라 여겼던 최 박사가 자신을 만들어 낸 이유가 뭔지 궁금했다. 고장 난 기계는 부분을 수리하여 쓰다 더 이상 수리가 불가능한 기계는 버려진다. 짧은 생의 대부분을 특정 공간에 갇혀 지낸 민이, 복제인간 선이를 만남으로써 철이는 자신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인도산 애완 휴머노이드인 민이는 기계의 부품처럼 수명이 다하면 폐기물로 처리되는 수순을 밟는다. 기억을 간단하게 지운 뒤 휴머노이드를 해체한 후 부품을 재활용함으로써 이를 폐기한다.

   상업적인 이유로 인간 배아를 복제하여 불법적으로 배양한 클론들을 팔아넘겨 수익을 올리는 비윤리적인 일들을 자행하는 기계문명의 검은 손은 지금도 밀거래를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인간의 유전자에서 배양된 선이는 인간에 대한 불신이 깊었다. 영적 기운이 넘쳐난 선이는 눈앞의 혼란으로 전전긍긍하는 철이에게 무한대의 관점으로 우주의 시간을 보라고 조언하였다.

  인간이 만든 모든 것을 부정하는 재생 휴머노이드인 달마의 말이 인상적이  다. 인간은 불멸을 꿈꾸었지만 결국에는 인공지능과 결합함으로써만 가능한 만큼 기계의 시간에 종속될 것이라 했다. 오직 폭력으로만 문명을 유지하는 기동타격대의 무분별한 공격에 문명의 이기 역시 파괴되었다. 기계로 조작된 삶을 살다 자율적 선택 의지 없이 폐기되는 것처럼 사유 없이 인생을 살다 결딴나서는 안 된다는 믿음이 커진다.

    손상 입은 철이의 의식을 네트워크에 연결해 활성화하는 데 성공한 최 박사는 철이 로봇 고양이 데카르트로 살기 시작토록 하였다. 사람의 몸이 육신과 영혼으로 되어 있다고 여긴 철학자 데카르트는 오직 사람에게만 있는 영혼은 모양도 없고 자유로운 유기체로 봤다. 최 박사의 바람과는 달리 철이는 개별적 신체를 가진 휴머노이드로 영원불멸의 존재로 남기를 바라지 않았다. 개별적 존재로 사라지는 삶을 선택한 철이는 마지막을 보낼 선이를 찾아 그녀의 아픔에 공감하며 소통하는 시간을 보내며 그녀와 이별한다.

   유한한 삶의 의미를 빛나게 하는 생자필멸(生者必滅) 회자정리(會者定離)의 인생 법칙에 있다. 이미 존재하는 누군가를 위해 아이를 낳아 종족을 보존하려는 결정이 이기심으로 간주하며 인류와 인공지능을 연결하는 상징적인 존재로 개발된 휴머노이드 철이는 최 박사의 이기심에서 발로되었다. 인간의 필요에 제작되고 필요 없으면 폐기 처리되는 기계로 전락하는 인공로봇들을 보면서 철이는 감정을 느끼고 사유를 바탕으로 의식하기를 바라지 않았다.

  ‘내가 누구이며 어떤 존재인지를 더 이상 묻지 않아도 되는 삶. 자아라는 것이 사라진 삶. 그것이 지금 맞이하려는 죽음과 무엇이 다를까?’

삶에 대한 주체성 없이 편의성과 효율성을 따른다며 수월성의 논리대로 세상을 살아온 것은 아닌지 반문한다.

  ‘우리는 어떤 존재로 살다 인생을 회향하여야 할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가족이라는 착각 - 얽매이고 상처받은 가족을 치유하는 마음 기술
이호선 지음 / 유노라이프 / 2022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1세기로 오면서 다양한 가족 형태가 생겨났지만 일반적인 가정의 가족은 유전적 조합으로 이뤄진 형태이다. 태어나 살다 보니 맏이로 집안일을 도맡아 지내야 했다. 십 리를 걸어다니며 아침을 준비하여 밥상을 차리고 설거지하며 동생을 돌보는 일은 내 몫이었다. 생계를 전담하던 홀어머니를 대신해 아홉 살 때부터 시작된 집안일은 50대 중반을 넘긴 지금도 계속 된다.


  선택보다는 유전적 조합으로 이뤄진 가정의 가족을 떠올려 본다. 애증의 그림자를 짙게 드리운 채 갈등 요소들이 도처에 자리해 불만을 터뜨리지만 현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서로 다른 자아가 만나 각자의 몫을 드러내며 욕심을 버리지 못한 채 욕구를 채우려는 이기적 발상을 보인다. 맞벌이하면서 육아를 전적으로 책임져야 했던 30년 전이 떠오른다. 공동 육아를 그렇게 부르짖어도 자신이 몸 담고 있는 직장이 우선이었고, 연계한 친목 모임이 우선이었다. 


  결혼은 미친 짓이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힘들었던 시간을 뒤로 하고 지나온 시간을 반추하니 모든 것이 허허롭다. 결혼 면허라는 소설에서 부르짖듯 결혼을 위한 자격증 취득이 우선적으로 이뤄져 공동 육아에 나설 용기가 없는 사람들은 결혼을 안 하는 것이 맞을 듯하다. 출생률이 1명 이하로 떨어진 우리나라 인구 정책에는 반하지만.........30대 중반에 결혼한 제자들은 하나같이 딩크로 살겠다는데 그 이유가 바로 자녀 양육 문제에 있다고 하였다. 어렵게 가정을 이뤄 자녀들을 제대로 키울 자신이 없어 자신 같은 부당함을 겪게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 이유였다. 


   나와는 다른 사람이 만나 가정을 이뤄 가족으로 살아가는 일이 쉽지 않다. 문화적 차이를 포함한 환경적 차이는 친인척을 포함한 가족까지 아우르는 일들을 병행하기 힘들다. 엄연히 가른 개체인 구성원인데 가족이라는 이유로 타인의 생각을 저버린 채 어떤 일을 강요하는 일은 생기지 않아야 한다. 가족이라라고 편하게 생각하여 그것도 못해 주냐고 말하기 전에 상대의 입장에서 그 사람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내가 아닌 타인인 제3자로 여기며 적정한 ‘거리 두기’는 필수이다. 내리 사랑이라는 명분으로 의존적인 자식으로 키우는 것은 아닌지 살펴봐야 한다. 자식을 믿으며 자립할 능력을 길러주는 일은 더더욱 필요한 때이다. 나이 마흔이 넘어도 부모에게 기생하는 자식들이 많기 때문이다.


  여고 동창으로 만나 지금껏 우정을 쌓고 지내는 친구와는 같은 길을 걷는 교육 동지이다.

초드학교 보건교사로 일하는 친구는 내 뜻대로 안 살아지는 것이 인생이라며 정퇴냐 명퇴냐를 두고 서로 대화할 때가 있다. 

 "친구야, 나는 교직에서 물러날 수 있을 때 나올 수 있게 자식이 내 발목을 안 잡아야 할 텐데......옆에 선생님 보면 명퇴를 하고 싶어도 자식 때문에 못하고 스트레스로 힘든 것 보면 자식이 무섭더라고......."

 라는 친구의 말에 공감하며 자식들 역시 냉정한 사랑을 베풀며 적정 거리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 가족이라고 너무 많이 관여하여 지치는 관계가 아닌 서로 성장하는 건강한 관계 회복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한 번뿐인 인생 하고 싶은 일하면서 노년을 보낼 수 있게 가족이라는 테두리에서 벗어나 홀로 걸어갈 남은 생을 생각하니 지금에 충실한 삶에 답이 있을 뿐이다. 오지 않은 미래 당겨 걱정하지 말고, 이미 지나가버린 시간 끌어다 후회하지 말고 현재에 충실하하는 선지식의 감로법을 새기며 가족을 떠올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