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인사
김영하 지음 / 복복서가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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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번의 짧은 삶을 살다가는 육신은 인생의 종착역을 향해 가는 중이다. 마지막이 언제인지 알 수 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기에 지금을 허투루 보내지 않는 일상은 정체성을 찾으며 살아갈 당위성에 의미를 부여한다. 4차 산업혁명시대의 아이콘으로 떠오르는 AI·VR 기술을 살려 죽은 자와 산 자를 연결하여 애절한 그리움을 담은 프로그램에서는 기계와 인간의 공존을 환영처럼 드러냈다. 인공지능을 바탕으로 한 과학 기술은 시공을 초월한 세계를 재조명하여 단절된 세계를 이어 핍진함을 더하였다. 머지않은 미래에 인간을 닮은 로봇인 휴머노이드는 인간의 관계를 지원하며우리와 함께하다 때가 되면 작별하지 않을까 싶다.

   생명체의 죽음을 목도한 날, 평화로운 일상에는 균열이 오고 믿음의 중심부가 흔들려 종잡을 수 없는 감정들이 넘나든다. 의식이 있는 존재는 자기와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것들에 대해 생각한다. 다른 존재의 고통에도 공감할 수 있고, 자신에게 고통을 준 이들을 용서할 수도 있다. 휴머노이드이지만 인간으로 알고 살았던 철이 믿었던 세계에 균열이 생기면서 존재에 대한 회의(懷疑)는 소설 전개의 다른 국면을 맞는다

   평양의 로봇연구소 휴먼매터스 랩에서 일하는 최 박사는 휴머노이드 철이를 멸균 상태로 보호하기 위해 홈스쿨링으로 철이를 양육하였다. 인공지능의 폭주는 인류의 종말을 초래하고 말 것이라며 휴머노이드 양산을 경계하였다. 학부에서 철학을 전공한 최 박사는 인공지능의 윤리적 책임을 중시하며 인공 지능 기계가 대량으로 생산되는 시스템을 제어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무등록 휴머노이드 압류법 통과로 로봇 수용소로 납치당한 철이는,

  ‘나는 누구인가?’

  라는 생각에 빠져들면서도 전투 로봇들이 벌이는 살육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방법을 모색해야 했다.

   인간의 감정과 윤리를 가지고 있는 철이는 아버지라 여겼던 최 박사가 자신을 만들어 낸 이유가 뭔지 궁금했다. 고장 난 기계는 부분을 수리하여 쓰다 더 이상 수리가 불가능한 기계는 버려진다. 짧은 생의 대부분을 특정 공간에 갇혀 지낸 민이, 복제인간 선이를 만남으로써 철이는 자신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인도산 애완 휴머노이드인 민이는 기계의 부품처럼 수명이 다하면 폐기물로 처리되는 수순을 밟는다. 기억을 간단하게 지운 뒤 휴머노이드를 해체한 후 부품을 재활용함으로써 이를 폐기한다.

   상업적인 이유로 인간 배아를 복제하여 불법적으로 배양한 클론들을 팔아넘겨 수익을 올리는 비윤리적인 일들을 자행하는 기계문명의 검은 손은 지금도 밀거래를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인간의 유전자에서 배양된 선이는 인간에 대한 불신이 깊었다. 영적 기운이 넘쳐난 선이는 눈앞의 혼란으로 전전긍긍하는 철이에게 무한대의 관점으로 우주의 시간을 보라고 조언하였다.

  인간이 만든 모든 것을 부정하는 재생 휴머노이드인 달마의 말이 인상적이  다. 인간은 불멸을 꿈꾸었지만 결국에는 인공지능과 결합함으로써만 가능한 만큼 기계의 시간에 종속될 것이라 했다. 오직 폭력으로만 문명을 유지하는 기동타격대의 무분별한 공격에 문명의 이기 역시 파괴되었다. 기계로 조작된 삶을 살다 자율적 선택 의지 없이 폐기되는 것처럼 사유 없이 인생을 살다 결딴나서는 안 된다는 믿음이 커진다.

    손상 입은 철이의 의식을 네트워크에 연결해 활성화하는 데 성공한 최 박사는 철이 로봇 고양이 데카르트로 살기 시작토록 하였다. 사람의 몸이 육신과 영혼으로 되어 있다고 여긴 철학자 데카르트는 오직 사람에게만 있는 영혼은 모양도 없고 자유로운 유기체로 봤다. 최 박사의 바람과는 달리 철이는 개별적 신체를 가진 휴머노이드로 영원불멸의 존재로 남기를 바라지 않았다. 개별적 존재로 사라지는 삶을 선택한 철이는 마지막을 보낼 선이를 찾아 그녀의 아픔에 공감하며 소통하는 시간을 보내며 그녀와 이별한다.

   유한한 삶의 의미를 빛나게 하는 생자필멸(生者必滅) 회자정리(會者定離)의 인생 법칙에 있다. 이미 존재하는 누군가를 위해 아이를 낳아 종족을 보존하려는 결정이 이기심으로 간주하며 인류와 인공지능을 연결하는 상징적인 존재로 개발된 휴머노이드 철이는 최 박사의 이기심에서 발로되었다. 인간의 필요에 제작되고 필요 없으면 폐기 처리되는 기계로 전락하는 인공로봇들을 보면서 철이는 감정을 느끼고 사유를 바탕으로 의식하기를 바라지 않았다.

  ‘내가 누구이며 어떤 존재인지를 더 이상 묻지 않아도 되는 삶. 자아라는 것이 사라진 삶. 그것이 지금 맞이하려는 죽음과 무엇이 다를까?’

삶에 대한 주체성 없이 편의성과 효율성을 따른다며 수월성의 논리대로 세상을 살아온 것은 아닌지 반문한다.

  ‘우리는 어떤 존재로 살다 인생을 회향하여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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