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어하우스
베스 올리리 지음, 문은실 옮김 / 살림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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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인 가구 증가에 따른 1인 생활 확산으로 사회 여러 면에서 변화를 가져오는데 여러 형태 중 하나가 주거 형태의 변화다. 셰어(share)와 하우스(house)의 합성어인 셰어하우스의 확산은 여럿이 집을 공유하며 개인적인 공간인 침실은 따로 사용하지만, 거실·화장실·욕실 등을 공유하는 생활 방식 확대를 의미한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야간에 일하는 간호사는 자신이 일하러 간 동안 아파트(방과 침대)를 셰어한다는 광고를 냈다. 이를 본 티피는 한 달에 350파운드를 내고 시간대를 달리하는 한 집에서의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아파트 주인인 리언은 계획된 범죄의 희생양으로 복역 중인 동생 리치의 변호인에게 줄 수임료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같은 장소에서 시간대를 달리한 티피와 리언의 한집살이는 이로써 시작되었다.

 

   실용 도서를 만드는 출판사 편집자로 일하는 티피는 저스틴과 이별 후 혼자가 되면 아주 많은 일을 할 수 있다는 말로 자기를 위로하며 고통스러운 시간을 상쇄하여 갔다. 저스틴은 첫 순간부터 티피의 마음을 사로잡아서인지 자기 본위대로 움직이며 티피와 사귀면서 둘은 숱한 다툼과 이별을 반복하였다. 딴 여자를 찾아 떠난 저스틴은 티피의 직장 동료에게 접근해서는 그녀의 행적을 찾아 나섰다. 저스틴은 용의주도한 계획으로 이뤄진 티피와의 만남은 그녀를 곤란하게 했고, 다시 그녀에게 돌아와서는 자신과 결혼해달라고 애걸한다. 출판 기념회가 열리던 유람선에서 저스틴을 마주쳤을 때부터 그녀의 집 앞에 거대한 꽃다발을 갖다 놓은 일, 다른 곳에서의 출판 기념회까지 찾아와 일을 벌였다. 그는 그녀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의도적으로 그녀를 따라다니면서 정신적ㆍ신체적 피해를 주는 스토커로 집착이 낳은 이지러진 사랑의 폐해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불가피한 고통의 시간을 좀 더 편안하게 해주는 호스피스 병동에서 일하는 리언은 변화를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티피와 다른 시간대에 같은 공간을 점유함으로써 그의 일상적인 패턴이 바뀌기 시작했다. 자신을 돌보지 않고 여러 남자와 사귀며 지내온 어머니를 보면서 허허로웠던 리언은 동생 리치와 마음을 터놓으며 형제애가 두터웠다. 그는 무장 강도 혐의를 받고 수감 중인 가공된 죄인 리치의 무죄를 입증하는 일에 관심이 쏠렸다. 속박의 시간을 보내는 리치는 전하고 싶은 내용을 편지에 담아 리언과 소통하였고 그 내용을 티피와 공유하였으며, 티피 역시 리언과 포스트잇 쪽지를 주고받는 가운데 두 사람의 일상을 담아갔다. 리언이 동생 리치를 사랑하는 것처럼 그를 사랑하지 않는 케이와는 결별을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기품 없는 말들이 무성한 시대에 상대를 떠올리며 전하는 메시지에는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 한 번 내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고 영양가 없는 말들은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히고 허공으로 흩어져버린다. 정해진 규칙을 따르며 절제하는 삶에 익숙한 리언은 포스트잇에 일상을 담으며 티피에게 자신의 심경을 전하였고 서로 다른 시간을 사는 인생을 공유해갔다. 일 마치고 들어오는 이를 배려하는 음식은 다채로운 것들로 채워졌고, 둘은 준비한 음식을 맛보며 함께하는 생활에 물들어갔다. 쪽지 하나에도 엄청난 에너지를 쏟아붓는 티피와 리언은 서로의 영역에 서서히 침범하며 그들만의 인생을 채워갔다.

  

 

   살다 보면 뜻하지 않은 일들로 일상의 균열이 일어나고, 되돌릴 수 없는 일은 금기의 벽을 허물어 관계가 좋아지는 기폭제가 되기도 한다. 케이와 헤어진 뒤 시간이 남아돈 리언은 욕조 안에서 속옷 차림의 티피와 마주친 뒤 셰어하우스 첫 번째 조건을 파기한 둘만의 비밀은 서로를 향한 그리움으로 작용했다.

 

 

   ‘뇌는 고통에서 스스로를 구해내려고 신기한 일을 참 많이 해. 너도 모르는 사이에 비밀을 지키려고 있는 힘을 다 쓰기도 하고…….’(212)

   청춘 시절을 함께 보낸 삼총사 티피·거티·는 서로의 인생에 깊이 관여하며 더 나은 삶을 지향하는 일에 관심을 두고 있다. 일방적인 이별 통보로 힘들어하던 티피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은 두 친구는 우정의 진가를 가늠케 한다. 리치의 무죄를 변론하는 일에 적극적인 거티는 항소심에서 결정적인 단서로 그가 무죄임을 끌어내려 온 힘을 다했다. 이전의 변호인 살과는 대조적인 거티의 모습은 일이 잘 풀려 리치가 무혐의로 풀려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에 설레게 하였다.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은 프라이어 씨는 전쟁 중 같은 연대에서 복무했던 조니 화이트를 만나고 싶은 바람이 컸다. 그를 찾아 빅토리아역에서 브라이턴역으로 가는 길에 리언과 티피는 동행하였다. 생을 마감하는 날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나 그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영면에 들고 싶은 프라이어 씨의 소망을 현실화하는데 둘은 다리 역할을 자청하였다. 마음 씀이 넉넉한 리언은 호스피스 병동에 머무르는 환자들을 정성으로 돌보는 간호사로 다친 마음을 치유하는 길에 기꺼이 나섰다. 하지만 그는 티피에게 빠져 있지만 서두르고 싶지 않은 마음이 앞서 수동적으로 다가설 뿐이다.  

  

 

   휴정 중, 출간 행사에 참석한 티피가 저스틴의 청혼을 승낙하는 장면이 찍힌 영상을 보고 리언의 기쁨과 설렘은 반감되었다. 티피의 전 남친 저스틴은 대중 앞에서 기습적으로 그녀와의 결혼을 조작하였지만 리언은 그 사실을 몰랐다. 영상에 비친 장면을 믿을 수 없는 리언은 진실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으나 리치의 항소심이 열리는 법정에서 이탈할 수가 없었다. 재판정에서 무죄 선고에 대한 희망으로 빛나는 리치의 눈은 밝게 빛났으나 리언은 백일몽을 꾸는 기분으로 그에게 기계적인 미소를 보낼 뿐이었다. 티피의 마음을 믿고 싶었지만 동영상 자료는 저스틴의 청혼을 수락하는 티피로 보일 뿐이다.

 

 

   ‘자신을 구할 사람은 자신뿐임을 상기한다. 남이 해줄 수 있는 최선은 당사자가 준비되었을 때 옆에서 도와주는 것뿐이다.’(419)

   깨어 있는 시간 티피는 대부분 리언을 생각하며 보냈고, 리언 역시 티피를 그리워하면서도 저스틴이 놓은 덫에 걸려 감정의 파고를 넘나들며 허우적거렸다. 동영상에 대한 오해로 냉각된 둘은 마침내 그 자료가 저스틴의 계략에서 나온 것임을 알아차리고 관계 회복에 나섰다. 서로에 대한 열망과 갈증을 덮고 인고하던 시간을 끝내고 사랑을 키워가는 연인으로 자리했다. 범죄를 조장하는 시스템의 희생양이 된 리치는 수감 생활을 버티기 위해 감옥에 있는 것을 받아들이면서도 언젠가는 질곡의 시간을 벗어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놓지 않았다. 항소심이 열린 후 변호사 거티의 거침없는 변론으로 리치는 마침내 무죄 판결을 받고 자유인이 되었다.

 

 

   감성이 풍부하면서도 절제력이 뛰어난 리언은 닫힌 창으로 세상을 볼 때가 있었다. 프라이어 씨는 많은 세월이 흐르는 동안 가슴이 시키는 일을 뒤로 한 채 살아온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지금 만나고 싶은 사람을 놓치지 않는 적극성을 띨 필요가 있다고 리언에게 충고했다. 상대에게 사랑하는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며 한 발짝 다가서서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함께 성장하는 길을 모색할 때, 너와 나의 사랑은 우리 사랑으로 발아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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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론과 진화론은 종교와 과학이라는 다른 입장에서 보는 논리적 대립으로 평행선을 그으며 논쟁이 진행되어 왔다. 과학과 종교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다루고 이해하는 사유 체계이지만 명백히 다른 근본 원리에 입각하고 있다. 영적인 믿음으로 이상적인 삶을 추구하는 종교와 현실적으로 증명이 가능한 자연 현상을 다루는 과학은 양립하기 힘든 것처럼 보여 왔지만 사유 체계를 구성하는 영역으로 상호보완적인 관계로 인식하여 시간적인 소모를 줄이는 게 바람직하다는 이들의 견해가 있다. 종교적 핵심인 믿음은 두뇌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진실이라고 간주하는 모든 인지나 감정으로 정의 내리는 인지신경학자는 믿음의 기원까지 올라가 신에 근거한 신앙 체계를 뇌의 중요 요소로 확립하여 믿음으로써 존재하는 인간으로 이끌어 냈다. 진화론을 중심으로 한 과학은 기존의 자연 현상과 이론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두되, 객관적으로 증명된 것만을 명확히 있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현대진화론과 유신론ㆍ무신론 논쟁의 정점에 서 있는 도킨스 교수는 <<만들어진 신>>에서 종교의 편협함, 맹신, 잔인함, 악습과 편견에서 나오는 극단주의의 폐단을 지적하며 신을 만들어진 망상이라고 말하여 유일신을 믿는 종교인들에게 비난을 받기도 했다. 그는 현재 환경에 더 잘 맞는 유전자를 지닌 개체가 더 많은 자손을 남기고, 이로 인해 시간이 흐르면서 개체군에 유전적 변화가 일어난다고 보았다. 이 변화는 그 생물의 환경에 대한 적응도를 향상시키기 위해 개체는 자연선택에 의해 진화하는 데서 기인한 것으로 여겼다. 자연선택은 모든 생명체가 실제로 살아남는 것보다 더 많은 자손을 낳고, 이 자손들의 형질이 각기 다르다는 것을 전제한 뒤 환경에 더 적합한 개체가 살아남게 되고, 살아남은 생명체의 형질이 유전을 통해 자손에게 전달된다는 것이다. 종교에 대한 진화론적 연구를 새롭게 열어 보이려는 윌슨 교수는 자연사적 정보를 통해 진화론의 강력한 기초는 금욕주의적 수행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자이나교뿐 아니라 특정 종교를 연구하는 발판으로 작용할 수 있음을 드러냈다. 가설을 많이 내세워 자신의 논리를 펴고 있지만 설득력 있는 실례를 제시하지 못하는 밈 가설을 이론적 가능성으로 간주하였다.  

 

  우주는 생명체만을 위해 이상적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물리 현상을 말한다. 진화론을 취하는 과학은 인간이나 종교가 만들어낸 법칙이 아니라 자연의 원리에 부합하여야 하며, 자연과학의 결과와 이론은 실제로 검증할 수 있어야 하며, 그 연구 결과는 언제나 잠정적이며 바뀔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고, 비판할 수 있어야 함을 전제한다. 알렉산더 교수는 과학적 설명은 생물학적 다양성이 생겨난 방식을, 신학적 설명은 그 원인을 기술하는 상보성을 들어 통합 상보성 모델을 적용하는 일이 과학과 종교의 대척점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문화인류학자 겔너는 현대의 이데올로기적 권위자를 종교적 근본주의자, 엄격한 계몽주의자, 상대주의자라는 세 범주로 나눌 수 있지만 상대주의적 관점에서 타인의 세계를 이해하여 사회의 공적 역할에 충실해야 함을 주장했다.

 

  자신이 선택하는 대로 생각하고 믿으며 행동할 자유가 있지만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것을 전제로 부정적 관점에서 편견을 가지고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 의심할 자유를 원한다면 다른 사람들의 믿을 자유 또한 인정해줘 무신론자의 자유는 유신론자의 자유와 밀접하게 엮여 있음을 킹 목사의 연설문을 인용하여 그 뜻을 명확히 하였다. 수양과 도덕에 초점을 맞추고 공공의 선을 향한 신념이 강한 불교에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는 종교학과 강사 히로코 카와나미는 2007년 미얀마 불교 승려들의 반정부 시위를 억압적인 군사정권에 맞서 사회적 안녕과 윤리적 기초를 마련하는 일을 예로 들었다. 인과 관계의 상호관계를 믿으며 업을 역동적인 원리로 보아 공덕을 쌓고 지혜와 연민을 키워가려는 불교에 대한 바른 이해로 고통의 조건을 수용한다는 오해를 풀어가려는 움직임은 다원적인 측면을 인식하는 게 중요한 종교의 가치를 일깨운다. 과학자들은 모든 것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으며 어떤 경로로 연결되었는가를 파악하느라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부족들 간의 지위 경쟁, 폭력, 전통적 전쟁의 인류학에 대한 광범위한 고찰을 저서에 담은 마쉬너 교수는 길고 추악한 역사를 공유하는 전쟁과 종교를 들어 종교 자체가 전쟁의 직접인 원인은 아니며 궁극적으로는 종교가 전쟁을 촉진하는 것으로 봤다. 종교는 인간이 내집단과 외집단, 우리와 그들을 분류하는 근본적 수단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기 위해 불가피한 수단으로 기능함을 역사 속에서 살피고 있다. 20세기 후반 종교적 사리사욕이 없는 물리학자들 사이에서 새로 부활한 설계론은 생물 진화의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의 출현에 초점을 맞추고는 신만이 이에 대한 유일한 답이라고 주장한다. 과학 자체로 신의 선물이라 칭했던 슈발리에는 과학이 어떻게 신의 권능을 가리키는지 살펴 볼 것을 촉구하여 과학과 신앙 간의 대화가 풍부히 오가는 것을 다윈의 유산에서 그 의미를 찾았다. 마이클 오브라이언은 문화의 진화를 파악하기 위한 유일한 접근법으로 다윈의 진화를 들어 진화론은 자연계를 설명하는 강력한 수단을 제공하는 것으로 믿음의 문제인 신앙과는 별개로 인정하여 종교와 과학이 배타성을 띠기보다는 모두 의미 있는 유효한 체계로 이해했다.

 

  종교의 기원은 인과성에 대한 믿음이 진화한 데 있으며 인과성에 대한 믿음의 기원은 도구 사용에 있다고 본 월프트 교수는 중요한 사건에 대한 설명을 제공하여 어려움을 해결해 온 종교 활동은 개인의 안녕과 낙관주의를 향상시켜 인간의 생태적 삶을 진화해 왔다고 봤다. 초자연적인 작용인(作用因)에 대한 믿음을 종교적 사유의 방식으로 여기는 이들의 인지적 유연성이 인간 사회 내에서 불가피한 현상으로 종교는 만들어졌다. 과학은 인간의 삶을 물질적으로 편안함을 제공하지만 종교는 인간의 삶을 심리적으로 안정하게 해주며 질적으로 향상시켜준다.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종교와 과학이 창조론과 진화론이란 논쟁에서 벗어나 마음을 열고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면서 인류의 행복한 미래를 위해 공동의 선을 추구할 필요가 있다. 언어와 공감을 가능케 했던 진화상의 거대한 도약인 거울신경세포는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며 상호 관련성이 있는 인간으로 교감한다는 게 은유에 불과할 수 있지만 서로 다른 영역이 공존하는 틀을 마련하는 토대가 될 것이다.

 

#과학책추천#현대과학종교논쟁#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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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직지 1~2 세트 - 전2권 - 아모르 마네트
김진명 지음 / 쌤앤파커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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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직지 축제장을 찾았을 때, 직지로드란 교황청비밀문서 수장고에서 충숙왕에게 보낸 것으로 추정되는 편지가 전시되어 그 내용이 궁금했다. 박병선 박사의 노력으로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보관됐던 직지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이라는 것이 세계 학계에 공식적으로 알려진 후 직지 관련 연구가 계속돼 고무적이다. 직지가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 이전에 유럽으로 전파되었을 가능성을 소설에 담은 <<직지>>는 한글 사용을 둘러싼 한국인의 문화적 정체성을 드높이는 계기를 마련했다.

 

    ‘바티칸 수장고 공개의 제 문제-계량학적 관점에서

    라는 논문을 쓰고 직지를 연구하던 전형우 교수는 직지가 유럽으로 전파됐다는 주장을 폈다. 이후 전 교수가 피살된 현장에서 그는 누군가에게 피를 빨리고 귀가 잘려 나간 채로 창에 찔려 있었다. 기묘한 피살사건을 추적하는 김 기자는 라틴어 전공자가 해석한 편지를 바탕으로 전 교수가 고의로 무엇을 왜곡하거나 진실과 동떨어진 해석을 내놓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미궁에 빠진 전 교수 죽음의 용의자를 찾아 나서는 길이 녹록치 않았지만 김 기자는 굴하지 않았다. 이 메일을 주고받던 카레나 씨를 찾아 아비뇽까지 갔다.

 

    전 교수의 피살 사건과 관련해 알 수 없던 카레나는 조선 세종 때 한글을 비밀리에 주조하던 양승락의 딸이었다. 한글창제를 반대했던 보수적인 정치권력과 결탁한 명나라 환관들에게 아버지는 비명횡사했다. 아버지를 여읜 은수는 겨우 목숨을 부지했지만 명나라 사신단의 행렬에 함께하여야 했다. 명나라로 가던 중 유겸을 도와 그의 양녀로 들어가게 되지만 환란이 덮쳐 로마로 향하는 수도자의 마차에 오르는 운명에 놓인다. 이후 청동이나 납으로 글자를 만든 다음 먹이나 염료에 묻혀 종이에 찍는 시연을 보임으로서 은수는 필사의 중심지인 마인츠로 보내졌지만 그곳에서 결박을 당한 채 빛 한 줄기 들어오지 않는 지하에 감금되었다.

 

    사람들이 쉽게 글자를 대하고 책을 읽는다면 세상의 질서가 무너지고 궤변의 지옥에 빠질 것이라는 우려를 담은 편지를 바티칸 교황이 대주교에게 보내 은수(요안네스)를 악마의 대리인으로 단죄하려 했다. 금속활자를 만든 것이 악마의 지시라는 사실을 실토하라고 종용당하면서도 그녀는 금속활자를 포기하지 않아 화형에 처해질 위기에 놓였다

 

     ‘요안네스를 살려주십시오. 천억 권의 책을 만들 사람입니다.’

    간청이 받아들여져 형 집행을 피한 요안네스는 고르드 수녀원으로 보내졌다.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난 은수는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도 마음대로 책을 보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바랐다. 쿠자누스는 카레나를 본 후 그녀를 사랑하게 되면서 함께할 뜻을 비치었지만, 카레나는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위해 둘의 사랑을 희생하기로 했다.

 

    카레나는 금속활자를 세상에 널리 퍼트리는 것을 도와달라고 쿠자누스에게 부탁하자 금속활자를 배울 사람으로 구텐베르크를 그녀에게 소개해 주었고, 구텐베르크는 성경을 인쇄하였다. 구텐베르크의 신전인 엘트빌레 수도원의 중요한 구성원인 피셔 교수는 조용히 해결할 일을 세상사의 관심사로 부각시켜 수도원 측으로부터 파문을 당한 뒤, 결국 그는 전 교수의 범인으로 상징적 사형에 처해졌다. 삶을 포기하려던 찰나 힘없는 백성들이 보여준 따뜻한 마음과 불의에 맞서는 정신은 직지와 연결되어 새 글자 한글에 담은 약한 사람과의 동행'을 보인 지식혁명으로 이어진다. 모진 위험 속에서 새 글자를 만든 국왕, 그 글자를 금속활자에 담아 모든 사람들에게 나눠주겠다던 아버지의 바람을 지키려 한 카레나, 직지 연구에 혼을 바친 전 교수 등이 있어 우리 문화의 씨앗은 탐스러운 열매를 거두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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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발자국 - 생각의 모험으로 지성의 숲으로 지도 밖의 세계로 이끄는 열두 번의 강의
정재승 지음 / 어크로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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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난 돌이 정 맞는다며 튀는 행동을 삼가고 평준화된 생각에 순응하며 그럭저럭 지내는 삶을 표준화하던 시대는 막을 내렸다고들 하지만 여전히 사회적 통념을 답습하는데 익숙하다. 혁신 교육을 주창하면서도 우리 교육은 획일화된 정량평가로 성취를 높이는 일에 주안점을 두어왔다. 공식을 암기하여 5개 중에 정답 1개를 맞히는 문제풀이 중심의 정답 찾기 교육에서 벗어나 자기 논리를 정립하는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익숙지 않은 길이더라도 근원적인 물음을 던지고 질문에 대한 답을 스스로 찾아가는 과정 속에 지적 호기심은 앎의 지평을 넓혀주는 욕망을 충족하는 과정으로 귀결될 것이다.

 

  통찰력 있는 생각으로 문제를 해석하여 재구성하는 논리를 펴 자신만의 관점을 새롭게 하는 교육으로 옮겨가는 과정에 나만의 관점에서 논리적 해답을 제시하는 능력이 존중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독서를 통한 사고력 신장과 어휘력 향상은 삶을 사유하며 철학하는 교육과도 연계된다. 숱한 선택의 갈림길에서 의사결정을 한 뒤 발자국을 찍으며 걷는 걸음은 삶의 궤적으로 개인의 역사를 이루고 나가서는 인류의 역사로 모아진다. 계획을 수립하고 조직적으로 움직이며 시행착오를 줄이려는 노력이 앞서 실행에 옮기지도 못하고 정해진 시스템을 따라야할 때가 많았음을 경험으로 알아차린다.

  복잡한 현대사회에서도 원시부족사회 때 유용했던 전략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선택하여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확신이 들면 의사를 결정하고 결정한 대로 우직하게 밀고 나가는 의사결정의 전형적인 패턴에서 벗어나는 게 우선이다. 70% 확신이 들면 의사를 결정하고 실행에 옮기고, 실행 중 잘못됐다고 판단되면 끊임없이 의사결정을 조정하는 게 나은 결정을 위한 방편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나이 들수록 인지적 유연성은 떨어지고 자기 객관화와 멀어지는 게 보편적이다. 자신의 신념을 회의하고 의심하되, 다양한 시도를 통해 세상을 배우려는 가운데 자기 객관화는 정례화 될 것이다.

  정해진 길만을 걸으며 난관에 직면했을 때 슬기롭게 헤쳐 나가지 못하는 오류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탐험가의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 집단적 선택을 따르며 안전성을 취하기보다는 집단적 선택의 범주를 이탈하여 시도하며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할 필요가 있다.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며 놓쳐서는 안 될 의사결정을 끌어내는 사람으로 결정 장애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다. 습관의 틀을 벗어나려는 노력은 기존의 지식을 활용하여 새로운 고침으로 습관 뇌 영역을 관장하여 갈 수 있는데 삶의 진폭을 넓혀가는 일은 일상에서 시도되어야 한다. 오지 않은 미래를 통제하고 싶은 욕망보다는 현재적 삶을 사는데 필요한 즐거움을 발견하며 지낼 때 우리는 일과 삶의 균형을 찾아갈 것이다.

 

  하나의 사상이나 생각에 빠져들지 않고 생각의 주체로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세상과 연결하는 경험을 즐기며 창의적인 인간을 지향하는 호모루덴스로 살다가고 싶다. 우물 안 개구리를 벗어나 드넓은 세상과 호흡하며 살아가는데 여행과 독서는 일상에 에너지를 불어넣는다. 남과 다른 각도에서 문제를 바라보고 뇌 전체를 두루 사용할 때 창의성은 통찰력 있는 연결고리로 이어진다. 얼마나 많은 데이터를 저장하여 두었는가가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시대의 성쇠를 좌우할 수 있다니 판단의 주체가 되지 못하는 인공지능을 도구로써 잘 이용하는 게 필요하다. 나와 유사한 사람들이 가상공간에서 회합을 다지고 인터넷 연결로 정보를 공유하는 시대에 과학기술을 잘 이해하고 능숙하게 활용하는 일이 절실하다.

 

 

  뇌 과학을 연구하는 저는 신경과학적으로 뇌는 체중의 2%를 차지하지만 에너지의 23%를 쓴다고 한다. 뇌를 쓰면서 사는 일은 그만큼 에너지를 많이 쓴다는 셈인데 뇌의 인지적 에너지가 충만할 때를 생각하여 창조적인 일을 하는 게 우선이다. 일하면서도 스마트폰을 만지고, 책을 읽다 말고 영상에 빠져드는 경우 등을 흔히 겪으면서 남들과 다른 관점으로 세상을 보면서 나만의 지도를 그리고 잘 살고 있는지 물어본다. 다양한 생각을 수용하고 생각의 주체로 서는 이들과 협업함으로써 집단 지성의 긍정성을 확인하고 공유해 갈 때 자기 객관화와 혁신은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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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공주 세라 - 어린 시절 읽던 소공녀의 현대적 이름 걸 클래식 컬렉션 1
프랜시스 호지슨 버넷 지음, 오현아 옮김 / 윌북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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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어가 산란을 위해 강물을 거슬러 태어난 하천으로 돌아오는 것처럼 지난시간들에 새겨진 추억은 아련한 그리움을 부른다. 구멍 난 신발에 해진 옷을 입고 지내면서도 명작만화로 나온 소공녀를 보면서 힘들고 지치는 시간도 언젠가는 지나갈 것이라 믿었다. 결핍으로 궁색한 생활의 연속이었지만 비굴해지지 않기 위해 자신을 단련하는 일은 자존감 있게 생활하는 행태로 모아졌다. 외로움을 달래줄 피붙이 같은 인형 에밀리에게 말을 걸며 무정물에게 감정을 불어넣는 상상력이 풍부한 세라는 비루한 현실을 그녀만의 방식으로 극복했다.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 사랑을 독차지하며 인도에서 풍족하게 살던 세라는 학교에 갈 나이가 되자 영국으로 건너와 민친 여학교에 입학한다. 민친 교장은 똑똑하고 야무진 세라가 풍부한 상상력으로 시야를 넓히는 이야기가 거슬리지만 그녀가 재력가의 딸임을 알고 학교 전시용으로 이용할 생각에 특별대우를 해준다. 교장의 속물적인 행동을 의아해하는 학생들도 타인에게 친절하고 상냥한 세라의 배려에 호감을 갖기 시작했다.

 

많은 일이 우연하게 일어나.’(54)

지금껏 자신에게 근사한 일들이 많이 생긴 것, 원하는 모든 것을 들어주는 아빠의 존재도 우연으로 돌리며 세라는 가진 것을 여러 사람들과 나누었다. 심성은 곱지만 두뇌 회전이 더딘 아이들에게 놀림 받는 어민가드의 친구가 되어 그녀의 프랑스어 공부를 도와주었고, 엄마가 없는 응석받이 로티를 수양딸로 삼아 그녀를 따뜻하게 감싸주었다. 세라는 모두가 멸시하는 하녀 베티에게 음식을 나눠주었고, 막일을 수행하느라 힘든 베티가 쉴 수 있도록 배려하였다. 영특한 세라는 자신을 시샘하던 라비니아의 비아냥거림에도 휘둘리지 않는 의연함으로 민친 학교의 학생으로 신임을 얻어갔다.

 

 

세라의 열한 살 생일 잔칫날, 전시용 학생 세라의 후원자 크루 대위의 사망 소식을 들은 민친 교장은 장삿속을 드러냈다. 수백 파운드를 들여 세라의 생일파티를 열어준 민친 교장은 어떤 보상도 받을 수 없는 상황에 분개하며 무일푼 비렁뱅이로 전락한 세라를 부리면서 이용할 생각을 구체화했다. 궂은일을 해본 적이 없는 그녀에게 일어난 삶의 변화는 가혹하였다. 시련에 좋은 점이 어디 있는지 궁금해 하는 어먼가드에게,

그렇지만 모든 일에는 우리가 모르는 좋은 점이 있을 거야.’(145)

라며 세라는 다락방에서 생활하며 끼니를 걸러도 불평하지 않고 심부름을 다녔고, 벌로 일을 더 시켜도 반항하지 않고 맡은 일을 묵묵히 수행하였다.

 

다락방 창가에서 멋진 저녁놀을 보며 무언가 낯선 일이 벌어질 때처럼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이 순간을 즐기려는 긍정성을 드러냈다.

처음엔 저도 학생이었어요. 그것도 특실 기숙생이요. 그런데 지금은…‥.’(304)

기숙학교 잔심부름을 하면서 춥고 배고픈 날들에도 공주처럼 행동하려고 애썼던 세라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전 공주처럼 행동하려고 애썼어요.’(309)

인도에서 이사 온 커다란 덩치에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큰 가족네의 행복한 모습을 보며 세라는 상상의 날개를 펴며 혹독한 겨울을 견뎌 나갔다.

 

만약 내가 공주라면, 내가 공주라면 말이야. 공주 자리에서 쫓겨나 가진 게 없을 때에도, 나보다 더 가난하고 배고픈 사람을 만나면, 그들과 늘 함께 나눠야 해. 언제나 그래야 해.’(217)

배고픔을 감내하며 자신보다 더 배고파하는 아이에게 갓 구운 빵을 건넸다. 세라는 굶주린 자신의 영혼을 위로하고 절망에서 스스로를 구해내려고 숱한 이야기를 지어냈다.

 

추운 겨울 누추하고 옹색한 다락방에 거의 매일 새로운 무엇이 다락방에 놓이는 일이 벌어졌다. 갖가지 신기하고 값진 물건들이 가득한 방으로 변모한 다락방은 마법을 부린 듯 상상 속의 일들이 현실화되었다. 이웃인 람다스와 캐리스퍼드 씨가 착하고 상냥한 세라를 돕기 위해 특별히 준비한 이벤트로 마법이 나날이 아름다운 삶이 펼쳐졌다.

 

불운과 행운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게 삶이라는 것을 알려주기라도 하듯 크루 대위의 동업자이자 친구인 캐리스포드 씨가 간절히 찾는 아이가 세라였음이 밝혀졌다. 세라 아버지의 판단과는 달리 다이아몬드 광산 사업으로 큰 수익을 올린 캐리스포드 씨는 세라에게 그 몫을 남겼다. 아이의 돈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가 아이가 무일푼 되었을 때 세라를 함부로 대해온 경박함을 질타하는 어밀리아의 말은 민친 교장의 노기를 돋우었다.

 

큰돈을 받게 된 세라를 놓칠세라 민친 학교 학생으로 복귀하기를 바랐지만 캐리스포드 씨는 교장의 청을 거절하였다. 마법 같은 일이 현실이 되어 지금과는 사뭇 다른 가족과 생활하며 새로운 꿈을 꾸는 세라는 최악의 상황에도 굴하지 않는 삶의 의지로 힘든 시간을 다스렸다. 빵 집 앞에서 자신보다 더 굶주린 소녀에게 갓 구운 빵을 건네 허기를 면하게 해준 세라는 앤을 데려와 함께 생활할 정도로 타인을 돕고 배려하며 지친 영혼을 구원했다.

 

 

   '본 리뷰는 출판사 경품 이벤트 응모용으로 작성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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