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도에 태어난 딸은 잘하지도 않던 공부를 지속하며 입사 지원의 역량을 길러야 했다. 학점 관리에서부터 토익 점수 관리, 운전 면허증 취득, HSK 6급 등의 스펙을 쌓으며 회사의 구미에 들어맞기 위해 안간힘을 써왔지만 취업의 문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취업 정보를 망라한 사이트에 올라오는 기업에 입사 지원서를 내었지만 1단계 통과도 쉽지 않게 되자 열패감으로 자존감을 바닥을 치기 시작했다. 마음 고생하는 딸이 나쁜 생각을 할까 염려하는 사이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갔다. 이미 취업한 친구들과 함께 소통하며 지내는 시간이 불편해 외출도 꺼리며 취업에 매달린 끝에 1년 계약직으로 직장 생활을 시작해야 했다.

 

   신입사원을 채용하여 직장 생활의 커리어를 쌓을 수 있게 돕는 상사는 없고, 훈련된 경력자들을 고용해 업무에 투입하는 일이 효율적이라 여기는 기업체가 늘고 있다. 직장에서의 경력이 없으면 고용될 기회조차 주지 않는 시대에 살얼음판을 내딛는 것처럼 불안감에 싸여 일하는 90년생들의 위기의식은 커 보인다. 입사 선배는 일을 처리하는 방식을 일러주기보다는 문제를 툭 던져주고는 해결해보라는 식이라니 낯선 직장 생활에 어려움은 더 많다고 한다. 암초에 걸려 휘청거리면서도 딸은 어렵게 들어간 직장에서 경력을 쌓기 위해 노력 중이다. 평생 직업은 있어도 평생직장은 없다는 말을 현실로 받아들이며 1년 이상의 경력을 쌓아 이직하려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 지금을 견디고 있을 뿐이다. 경력의 뫼비우스의 띠라는 말처럼 경력이 없으니 취업할 수 없고, 취업 못 하니 경력을 쌓을 수도 없는 설사가상의 상황은 지속되고 있다

 

    인문계 졸업생으로 취업문을 열기 힘들다 보니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20대들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9급 공무원 시험 합격률은 최종합격까지 1.8%라니 공시족들의 암울한 현실이 그려진다. 상시 구조조정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고, 향후 불확실성을 피할 수 있는 안정성을 높이 평가한 이들은 공무원 합격증을 쥐는 순간 그동안 지불했던 인생의 기회비용을 넘어선다고 여겨서이다. 일은 시키되 고용 책임은 지지 않으려는 유노동 무책임 시대에 국가 기관이 출자하는 직장에 젊은이들이 몰려들 수밖에 없는 기현상이 벌어진다. 저성장 시대에 맞는 생존 전략을 짜고 행복하게 살아갈 계획을 수립할 때 90년대 생들은 일과 삶의 균형을 중시하는 워라밸을 우선시한다

    

    1960년대 중반 농촌에서 태어난 우리(X세대)는 새마을 운동의 정점에 퇴비증산을 장려하는 활동에 동원되어 일하며 학교 다니는 일이 몸에 배었다. 부칠 땅이 없는 집에서는 방치된 땅뙈기를 개간하여 농사를 지으며 식구들의 입에 밥풀이라도 떼어 넣을 수 있었다. 가난한 집안의 자식으로 태어난 우리는 농사일을 도우면서도 공부를 부지런히 하여 개천에서 용 났다는 말을 듣고 들어간 직장에서 30년 남짓 일하다 퇴직하는 게 일반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급속도로 변화한 시대에 평생직장이라는 말은 무색할 정도로 경력을 쌓아 자아를 계발하기에 나은 직장으로 이직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회사에 대한 충성이 곧 나의 성장이라 여기던 부모세대와는 달리 솔직하게 생각을 표현하는 90년생은 자신의 미래를 중시하며 외부로 향하던 시선을 내부로 집중한다.

 

   커뮤니티 뿜뿌를 통해 깜짝 할인 정보를 접하고 공동구매로 필요한 물건을 비싸게 구매하지 않는 새로운 소비자로 부상한 90년생들은 그들만의 소통 창구를 형성하며 새로운 트렌드를 형성한다. 이들은 스마트 컨슈머로 고객의 요구에 적절히 대응하는 소비자 중심 경영으로 고객 만족을 높이는 소비자본주의를 형성하였다. 가족 중심적인 식생활에서 가정식 대체 식품중심으로의 식습관은 조리 과정의 편리함으로 남는 시간을 활용해 삶의 만족도를 높여 주었다. 주력 소비자로 대두되는 90년대 생들의 솔직함과 간단함을 선호하는 성향을 들어 이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고객 중심의 혁신을 꾀하여 이윤을 창출하는 기업이 늘어나는 시대에 새로운 세대에 모아진 관심도 크다

       

   불공정 행위로 직원과 협력업체에 횡포를 가하는 기업의 제품을 불매하며 공정 거래를 이뤄내는 과정은 새로운 세대의 힘을 가늠케 한다. 비정규직이라도 일하며 경력을 쌓으려는 이들의 노력을 폄하하며 근성이 없다고 무시하고 업신여기는 꼰대이기보다는 새로운 세대로의 이행을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받아들이며 이들과 공존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기성세대로 자리하길 바란다. 무책임한 참견은 삼가고 불건전한 관행을 고쳐가는 일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기성세대는 새로운 세대와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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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시로 대학을 가는 아이들이 대부분인 농어촌 지역의 고3교실에서도 EBS문제지 풀이 위주의 수업이 일반적이다. 문제풀이 기술을 앞세워 다섯 보기 중 정답일 확률이 높은 답을 찾는 빠른 길을 뚫는 게 목표인 것처럼 다른 방법은 별로 생각지 않은 수업을 행해 왔다. 문학 작품을 공부할 때면 외적인 내용을 곁들이며 처져 있는 아이들을 깨우지만 이내 아이들은 심드렁해져 고개를 숙이고 만다. 나 홀로 수업에 익숙해 한 시간 떠들고 나올 때면 밀려드는 허탈감이 컸다. 고등학교에 재직할 때는 중학교로 가서 원 없이 독서 교육 실컷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여전히 못할 이유는 도처에 자리했다.

 

   사유하며 표현하는 일에 익숙지 않은 중학생들은 물음을 던지고 함께 생각해 의견을 공유하자는 말을 피하고 싶어 하였다. 생각도 해보지도 않고 그냥 귀찮다며 모르겠다는 말을 자주 뱉는다. 자신의 의견을 드러내고 상대의 말에 귀 기울여 소통하는 힘을 생각하며 이런저런 수업을 병행했으나 만족스럽지 않았다. 수업으로 지치지 않는 교사와 배움에 힘들어하는 학생들이 마음을 바로 잡고 생각하는 배움을 실천하는 독서를 염두에 두고 매시간 책 읽고 표현하는 힘의 막대함을 역설했다.

 

   기승전책으로 불리는 국어 시간은 입시에 대한 부담 없이 기획한 수업을 시도할 수 있어 여건은 좋은 편이다. 진득하게 앉아 집중하여 책 읽기를 힘들어하지만 조금씩 시간을 늘려 가는 학생들을 보며 잘 안 된다고 시도조차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을 알아차릴 수 있다. 등교하면 도서실에서 책을 찾아 읽고 골똘히 생각하는 학생 한둘의 모습에서 희망을 떠올리며 함께 읽기는 힘이 세다는 글 속에 실린 교사들의 독서교육의 실천적 사례에 감화 받는다.

 

   정시로 대학을 주로 가는 대도시의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시행하는 인문 독서 프로젝트, 자아 정체성을 찾아 진로를 탐색하는 독서, 시를 읽고 함께 하는 공부 등 어느 것 하나 놓치고 싶지 않다. 나와 다른 이를 이해하여 조화로운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주는 문학 작품 읽기는 공존과 연대의 가치를 일깨우며 공동체적 삶을 실현하는데 도움을 준다. 교과서 속 사건들이 일어난 원인과 배경, 사건 발발 후 영향 등을 중심으로 수업이 이뤄지는 역사 시간, 선생님은 그림책 읽기로 교과서 속 사건에만 머물러 있던 데서 벗어나 현재적 관점으로 통찰하는 힘을 길러주었다. 책 읽기를 싫어하는 학생들도 흥미롭게 보는 역사 만화를 읽기 교재로 삼아 지금도 되풀이되는 적폐를 새기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생각하며 일상을 보내는 일은 나은 자신과 대면하는 순간으로 이끌 것이다.

 

   방황한 시간이 길었던 국어 교사는 그 시간이 있었기에 현실의 벽과 타협하지 않고 진로를 선택하고 미래를 그릴 때가 있었다고 회고하며 수업 사례에 그 내용을 녹여냈다. 작품을 읽고 경험과 결부지어 의미를 재해석하는 과정을 통해 잃어버린 자발성을 찾아가는 일은 교사와 학생의 경계를 세운다고 소리를 지르던 우를 범하지는 않을 것이다. 관련 도서를 읽고 친구들과 책 속 의견을 나눔으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치유하며 성장하는 독서 활동 시간이길 바라며 연수 경험을 나눈 교사들의 실제 수업 사례는 함께 읽기의 힘이 끌어낸 결과물로 여겨진다. 가르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교사와 기꺼이 배우려는 학생이 서로에게 스며드는 수업을 그리며 책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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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환 글.그림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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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군가의 마음속으로 들어갈 수 없어서 보이는 대로 어림잡아 판단하여 서로 오해를 일으키는 경우가 많다. 단면만 보지 않고 다방면으로 볼 줄 아는 힘은 여러 경험과 노력을 통해 길러진다. 파란나비 피터는 반쪽붉은나비를 보고 아름다운 날개를 가지고 싶다 하니 상대는 마음속으로 들어갈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눈을 감은 피터는 창문을 통해 마음속으로 들어가 보았지만 아무것도 찾지 못한 채 숲속을 지나다 고슴도치를 만났다. 고슴도치는 몸의 가시를 비웃는 친구들 때문에 아플 때도 있지만 이를 정직하게 대면하고 사랑 받을 조건을 스스로 만들어가려 했다.

 

 

  반쪽붉은나비를 만난 피터는 마음속 깊이 들어가 그곳에 피어있는 꽃을 따먹어야 가능하다는 말을 듣고 꽃을 따 먹자 붉은 빛이 감도는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갔고 마침내 반쪽붉은나비가 되었다. 피터는 아름다운 나비를 자랑하고 싶어 길을 나섰으나 친구의 시큰둥한 반응에 친구가 잘되는 것을 진심으로 기뻐해줄 친구는 그리 많지 않음을 알아차려야 했다.

  ‘높이를 갖고 싶다고 모두들 높은 곳만 기웃거리는데 헛수고일 뿐이야. 아가도 말했지만 높이를 가지려면 먼저 깊이를 고민해야 돼. 깊이를 가지려면 여러 번 실패할 수도 있지만, 실패를 두려워하지 마.’ 65

 

  피라미드 꼭대기에 서려고 아득바득 올라서려는 욕망에 갇혀 다른 사람들을 짓밟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깊이를 갖고 싶다면 높이에 대한 열망을 내려놓고 먼저 잠재적인 가능성을 실현할 수 있는 토대를 굳건히 할 필요가 있다. 어둠의 시간을 견디며 당당히 피어나는 들꽃처럼 살아가는 일의 존엄함을 일깨운다.

  아름다운 날개로 곳곳을 날아다니는 나비를 보며 아픔은 더했고, 다른 나비들의 혹평에 싸움을 하며 파란나비의 날개를 찢어놓기도 했던 피터는 위로 받고 싶은 대상을 찾아 나섰다. 키 큰 나무를 만나 불행의 원인은 나와 다른 것과의 비교에 있음을 직시하고 아픔을 있는 그대로 수용한 자리에서 성장을 위한 걸음을 떼는 것이 중요함을 일깨웠다. 진심으로 누군가의 문제를 짚어주고 스스로 돌아볼 수 있는 질문을 던져주는 친구도 위로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키 큰 나무의 말은 아픔을 떠안고 넘어설 힘을 실어준다.

 

  고정관념의 성에 싸여 현상 이면의 본질을 헤아리지 못한 채 독단에 빠지는 경우를 대면할 때마다 참혹한 슬픔을 이해하고 일어서는 것처럼 말하곤 하지만 침묵한 채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된다. 욕망이나 이중성을 함부로 깔보지 말라는 표범나비의 말은 세상을 움직이는 힘은 욕망에 기인함을 함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갈은 꼬리 끝에 독을 만들어 자신을 지켜 나갈 상징을 만들어두고 있다고 하였지만 그 상징으로 스스로를 쓰러뜨릴 수도 있음을 기억해야 함을 말했다.

 

  피터와 사랑에 빠진 분홍나비는 바람에 나뭇가지가 흔들며 춤을 추는 모습을 보고 나무와 바람은 서로에게 슬픔을 주기도 하지만 서로에게 행복을 주기도 하니까 소통하는 것이라 했다. 생각의 차이를 인정하고 상대에게도 행복을 줄 수 있을 때 소통은 시작됨을 기억해야 한다. 아파도 아프지 않은 척, 관심이 있어도 관심 없는 척, 욕을 하면서도 욕하지 않은 척하며 가면을 쓰고 사는 우리는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에 끌려 진실을 가두고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냇물이 흘러 강물을 만나고, 강물이 바다로 흘러가며 만나는 숱한 사물들과의 부딪힘을 안고 사는 동안 누군가의 아픔을 달랠 줄 따뜻한 말이나 행동은 괴로움을 덜어 새롭게 시작할 힘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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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지 소녀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76
앨리스 먼로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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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흐름에 따른 삼라만상의 변화는 세월의 더께만큼이나 다양한 소리를 내며 다가온다. 자욱한 먼지 속에 피어난 벚꽃은 탄성을 몰고 오는 튀밥처럼 튀어 올라 화사함을 더한다. 열악한 환경에서도 생명을 움틔우는 몸짓은 활기를 더하고 지쳐 있던 마음까지 바로 세우는 힘이 있다. 태어난 지 오래지 않아 어머니를 여의고 새어머니와 이복동생, 아버지와 함께 생활하는 로즈는 가난한 지역의 누추한 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바라며 타인의 눈에 나지 않으려 애를 쓰지만 역부족이었다. 로즈는 순종적인 태도를 취하다가도 자신의 생각을 피력해 자신의 입지를 공고히 하려는 뜻을 비치고 이를 트집 잡은 새어머니 플로는 초반에 기선 제압이라도 하려는 듯 로즈의 언행을 문제 삼았다. 이를 빌미삼아 딸을 잔혹하게 매질하던 아버지는 아내의 눈치를 살피며 과장된 연기도 서슴지 않았다.

 

어둡고 흐릿한 공간에서 생활하는 일을 플로는 역겹게 여기며 가족은 무너져 내릴 것 같은 헛간에서 놀음하는 공동체로 안정적인 생활과는 거리가 있었다. 가정이라는 울타리는 사랑으로 서로의 부정적인 면까지 포용하며 지낼 수 있어야 하는데 로즈는 안온한 분위기와는 먼 비루한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은 갈망을 더했다. 예민한 감수성에 결핍을 견디기 힘든 사춘기 시절 변두리 학교에 다닐 때에도 도처에 자리하는 폭력의 표적에서 비껴나려는 노력은 본심을 숨기고 체제에 순응하며 버텨내야 했다. 재래식 변소를 들락거리며 배설하고, 아이들 사이의 위계질서를 따르며 살아남는 법을 터득한 로즈는 연기하며 살아가는 생활에 젖어갔다.

 

아들로 태어나 별다른 노력 없이 특권을 누리며 인정받고 지내는 남동생과 달리 딸로 태어난 로즈는 안정적인 생활을 갈구하며 누추한 환경의 굴레에서 벗어나기를 욕망했다. 장학금으로 대학을 다니는 로즈는 누군가의 후원이 없으면 학업을 지속하기도 힘든 상황이라 학비와 용돈 걱정 없이 생활하기는 힘들었다. 그녀는 욕망의 끈이 닿지 않을 공간으로 머무르는 시선을 거두면서도 걱정 없이 자신이 추구하는 이상을 실현하며 살아가는 일을 가슴에 품고 지냈다.

 

결핍으로 점철된 그녀와는 달리 가진 게 많은 패트릭을 만나 사랑을 가장하며 만남을 이어갔다. 남루한 생활을 잇는 처지에서도 영민함을 지닌 로즈에게 끌린 소심한 역사학도 패트릭은 그녀를 사랑했다. 그는 백화점 소유주의 아들로 중산층 가정의 자제로 그와 결혼한다면 안정적 생활로 진입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어 보였다. 가진 것이 없어 자립을 꿈꾸기도 힘든 고단한 생활과 결별하고 싶은 바람이 큰 그녀는 이른 나이에 고심하지 않고 패트릭과의 결혼을 선택하였다. 이후 그는 그녀를 위해 역사 공부는 팽개치고 백화점 후계자가 되기로 마음먹고는 심신을 단련하기보다는 집의 외장을 화려하게 꾸미고 사람들을 초대해 집을 자랑하였다.

 

네가 가난해서 나는 좋아. 너무 사랑스러워. 거지 소녀 같잖아.”

라는 패트릭의 말은 파경을 배태하고 있었다. 거지 소녀는 패트릭이 좋아하는 이미지에 불과하였다. 인간적인 모습과는 거리가 먼 중산층의 속물근성에 환멸을 느끼면서도 그 경계선에 발을 들여놓고 안정적인 생활을 잇고 싶은 마음을 버리지 않았다. 사랑의 축복으로 귀결되는 결혼 생활과는 멀어진 가정은 파경으로 치달았고 로즈는 성적 일탈을 감행하며 자유로운 사랑을 구가하였다. 가난한 생활로 검소하고 소박하게 살아온 조슬린 부부와 소통하며 갖지 못한 부분을 공유해왔지만 조화로운 관계를 유지하지 못했다. 정서적으로 공감하며 지내고 싶은 남자와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그가 떠나는 게 두려워 마음을 정리하는 편지를 썼으나  췌장암을  앓다 죽은 사이먼의 소식을 듣고 망연자실했다. 


'넌 도대체 네가 뭐라고 생각하니?'

 사이먼의 소식을 전한 이의 말이었지만 아무것도 모른 채 임의대로 판단하고 해석한 로즈는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으로 여겨진다. 가난했던 시절  중산층의 속물근성을 경멸하던 조슬린은 부자가 된 뒤 중산층의 속물근성을 띠어 상황에 따라 다르게 반응하는 이들의 내재적 욕망을 떠올릴 수 있었다. 여러 지역을 떠돌며 고독하게 지냈던 시간들을 정리하고 살던 집으로 돌아왔을 때, 새어머니 플로는 스스로를 건사하기 힘든 상황에 놓여 있었다.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으면서도 플로는 타인의 도움을 받는데 반감을 드러내며 고집을 드러냈다. 지금껏 자신을 지탱해 준 정신적 근간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그녀는 요양원으로 가면서도 정신만은 챙기려 애썼다.

 

 상대방에게 인정받기를 원하고 가난한 지역에서의 불안에서 도피해서라도  안정적인 생활을 바랐지만 행복한 생활로 이어지지 않았다. 어떤 남자 때문에 떠나야 했고, 어떤 남자에게 버림받는 게 두려워서 편지를 쓰고 치욕을 느끼면서 또 다른 희망을 품는 아이러니는 로즈 자신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여러 경험 속에 기대가 꺾이며 맞닥뜨린 실망과 좌절로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일 때도 있었지만 바닥을 딛고 일어서는 노려도 스스로 행할 때 의미 있음을 알아차리고 타인의 태도에 머물러 있던 시선을 거두었다. 원래 살던 곳으로 돌아온 로즈는 새어머니 플로의 삶을 통해 인간은 소멸을 향해 가는 유기체임을 일깨우며 그림 속 이미지에서 탈피해 스스로 주인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으리라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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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능률도 오르지 않는 책을 붙들고 책상 앞에 앉아 있느니 차라리 의미 있는 곳으로 답사를 다녀오자고 벼르던 차 한민족 역사 기행을 고등학생인 딸과 다녀왔다. 민족의 성산 백두산과 고구려·발해·항일운동 유적지를 순례하는 78일 간의 일정을 소화해내는 일이 쉽진 않았지만 곳곳에 스민 우리의 웅혼한 민족혼에 전율하였다. 우리 민족의 뿌리를 찾아가는 답사로 기억 속에 지리멸렬하게 웅크리고 있는 역사에 대한 이해를 드높이는 계기로 작용했다.


  연변 회룡시 들판에 방치된 나철, 서일, 김교헌 대종교 세 지도자의 묘지를 찾아 벌초를 하고, 다례를 올리고 참배하며 민족 지도자들의 숭고한 애국심에 숙연해졌다. 미처 인지하지 못하였던 대종교인들이 국권을 빼앗긴 나라의 주권 회복을 위해 홍익인간의 이념을 살려 민족종교인 대종교를 창시하고, 청산리전투 등 무장투쟁을 전개하는 독립운동 과정에서 30만 신도 중 10만 명이 목숨을 바쳤으나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니 아쉬움이 더했다.


   1905년 을사조약을 발판으로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장악한 일제는 통감부를 설치하고 통감을 주재시켜 이른바 보호정치를 시행하다 1910년에는 조선총독부를 세워 조선을 식민지화하였다. 대한제국을 일본에 강제로 병합시키고 동화정책(同化政策)을 내세운 무단통치로 공포 정치를 방불케 했다. 조선 총독은 막강한 지위와 권한을 가지고 항일 세력을 진압하고 러시아를 방어하며 대륙 진출을 준비했다. 접촉하고 있는 이웃 나라의 형세가 자국의 주권선 안위와 긴밀하게 관련 있는 이익선 확보를 위한 전초지로 조선을 공략했다. 동일 조상, 타율성론, 정체성론, 임나일본부설 등으로 내선일체를 주창하며 일본의 무력 진압으로 강요된 동화는 궁극적으로는 조선의 황국신민화를 부추겼다.


  충량한 신민 육성을 위해 식민지 교육을 강화하기 위해 국어를 일본어로 삼고 천황에게 충성하는 마음을 기르기 위해 수신 과목을 필수 교과로 삼았다. 영국의 동인도 회사를 모방한 동양척식주식회사법을 공포하여 조선의 토지와 자원을 빼앗아 일본의 이익을 실현해갔다. 강제병합 협력자로 작위를 받은 을사오적과 경술국적에 이름을 올린 정미칠적은 친일의 삶을 본격화하였다. 일본의 토지조사 사업으로 소작농은 늘어났고, 소작농 위에 군림하는 지주와 일본의 주구들은 자신의 이익을 앞세워 조선인들의 삶을 피폐하게 해 간도와 하와이 등지로 이주해 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굶주림에서 허덕이던 민중들이 조국을 떠나 삶의 터전을 마련하고 독립운동자금을 마련하는데 힘을 보태며 일본의 노예처럼 살기보다는 일본의 압제에서 벗어나 사람답게 살고 싶은 바람을 일으켰다. 상하이를 독립운동의 무대로 삼아 독립을 위한 항전의 방편으로 망명을 선택한 이들도 늘어났다. 신민회는 국권회복·공화제 실현을 궁극적 목표로 삼고 구습을 타파하고 실업을 장려하는 교육 진흥 등을 내세웠다. 맹렬히 일어난 의병항쟁은 계몽 운동가들을 각성시켜 비밀 결사를 조직해 민족의식 교육과 독립군 양성 활동의 불씨로 작용했다.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안중근에 이어 이재명은 매국노 이완용을 칼로 가격했으나 실패하여 24세에 사형대에 올랐다.


   191931일 종교 세력을 중심으로 구성된 민족대표는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독립을 위한 비폭력 대중화를 표방하였지만 강경한 진압으로 사상자가 속출하여 폭력적 혁명으로 전화했다. 4월이 지나 만세 운동은 잦아들었지만 이를 통해 조선 민중은 각성하여 외세의 도움 없이 조국의 독립을 이뤄야 함을 명확히 했다. 윌슨 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에 따른 파리 강화 회의에 임시정부 인사들은 조선의 독립을 거론해달라고 요청했으나 강대국들의 외면으로 조선 문제는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국권 회복을 위한 움직임은 여러 단체로 파생됐다.


   3·1 만세 운동으로 무단통치가 실패하자 하라 내각은 문화 통치로 내선 융화를 내세우며 조선인이 일본인처럼 생각하고 말하는 일본 신민을 기르는 동화 교육의 목표로 삼았다. 총독부는 참정론·자치론·문화 운동 등을 앞세워 민족운동 진영 분열을 조장하였고, 결성된 친일 단체에는 활동지원금을 후원하며 일본은 제국주의의 야욕을 채워갔다. 거세게 짓밟을수록 강하게 일어나는 들불처럼 독립군들은 정의를 실천하는데 목숨을 아끼지 않았다.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에서 잇달아 대패한 일본은 그 앙갚음으로 우리 민족 수만 명을 학살하는 '경신참변'을 낳았고, 이는 의열단의 항일 무장 투쟁으로 이어졌다. 일본의 보복성 탄압이 거세어도 걷잡을 수 없이 번진 조선의 독립운동은 최후의 일인이 최후의 일각까지 싸울 것임을 선언하고 대중적인 운동으로 발전해갔다.


   2019년은 국권 피탈 후 자주 독립을 염원하며 3·1 만세 운동이 걷잡을 수 없이 맹렬하게 일어난 지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외침으로 얼룩진 민족의 역사에 신식 무기로 무장한 일제의 탄압에 맞서 백성이 주인 되는 대한민국 수립 운동을 위한 대응은 전략상 문제를 낳기도 하였지만 지난한 시간 지속적인 항일 투쟁의 역사로 이어졌다. 1910년 국권 피탈 후 무단통치와 시작된 저항 세력은 나라를 되찾기 위해 국경을 넘었고, 강도짓을 일삼는 일본과 그 주구를 궤멸하기 위해 폭탄을 던졌으며 대중을 각성시켜 독립운동으로 이끌었다.


   3·1 만세 운동 후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돼서도 옥중 만세운동을 주도한 유관순은,

  “내 손톱이 빠져나가고, 내 귀와 코가 잘리고, 내 손과 다리가 부러져도 그 고통은 이길 수 있사오나 나라를 잃어버린 그 고통만은 견딜 수가 없습니다.” 라고 말하며 흔들림 없는 투쟁 의지를 보이다 일본 경찰의 지독한 고문으로옥중에서 사망했다. 강대국의 침략으로 주권을 잃은 민족의 장래를 걱정하기보다는 권력을 쥐고 흔드는 외세에 붙어 자신의 영화를 추구한 이들의 후손들이 기득권으로 자리하고 있는 지금, 나라의 진정한 국권 회복을 위해 친일 잔재 청산은 해결해야 할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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