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가지 소원 ink books 2
조 사이플 지음, 이순영 옮김 / 써네스트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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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술사는 눈속임과 날랜 손재주로 관객들의 눈을 속이며 기대감을 드높인다. 공연장에서 봤던 마술 같은 일이 현실에서 일어나는 경우를 우연이 필연을 낳는 일로 치부할 때가 있다. 아들 둘을 떠나보내고 사랑하는 아내 제니를 떠나보낸 뒤 사랑하는 가족과의 추억이 깃든 공간에 머리 맥브라이드는 홀로 남겨졌다. 친구들도 만날 수 없는 곳으로 떠나고 그의 주변에는 손자 챈스가 있지만 그는 욕심이 많은 손자를 달가워하지 않는다. 머리의 100번째 생일, 주치의 키튼 박사의 진료를 받으며 나이 들어 삶에 지친 이도 살아갈 이유를 찾을 가능이 있음을 전해 들었다.

 

   아내와의 사별 후 머리는 아내 제니를 다시 만나는 바람으로 죽음에 이르는 날을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마지막으로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는지 이런저런 생각에 휩싸였다. 언제 죽을지는 모르지만 죽음의 문턱이 가까운 100세 노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두 아들에게는 책을 읽어주지 못하였지만 누군가에게 책을 읽어준다면 보람이 있을 듯해 머리는 아동병원으로 항하였다. 간병으로 고단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보호자에게 쉼을 주고 자신이 아동에게 책을 읽어 줄 생각이 앞섰기 때문이다. 살아 움직이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여기자 사는 동안 가족에게 못해 준 것들이 떠올라 짧은 시간이더라도 행할 수 있는 일을 찾은 것이다.

 

   구겨진 포스트잇에 쓰인 메모 심장이 죽어서 내가 하늘나라에 가기 전에 하고 싶은 다섯 가지를 보며 머리는 살아갈 이유를 찾게 된다. 그 메모지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 있었다.

 1. 여자애와 키스하기(입술에)

 2. 메이저리그 야구 경기장에서 홈런치기

 3. 슈퍼히어로 되기

 4. 엄마에게 멋진 남자친구 찾아주기

 5. 진짜 마술하기

  누군가에게는 지극히 평범한 소원에 관한 메모일 수 있겠지만 산소를 마시지 않으면 1~2분을 견디지 못하는 제이슨에게는 이루기 쉽지 않은 소원이다. 심장 이식을 받지 않으면 몇 개월 살지 못하는 열 살 소년이 이루고 싶은 다섯 가지 소원이 실현되도록 도울 것이라는 꿈이 머리에게는 생겼다.

 

   가끔 찾아오는 손자는 할아버지의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홀로 힘들게 살지 말고 앞으로 요양원에서 생활하기를 바란다. 시카고 컵스 야구 선수로 활약한 머리의 상징물은 청춘 시절의 팔딱거리는 심장의 일면을 담고 있다. 세상을 떠난 아들들과 아내와의 추억이 깃든 공간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할아버지에게 손자의 말은 귓등으로도 들리지 않았다. 폐질환을 앓는 머리는 약을 복용하면서 지내고 움직임에도 불편함이 있는 늙은이이지만 산소통이 없으면 호흡이 힘든 열 살 제인스의 꿈을 실현하도록 돕고 싶었다. 삶의 이유를 찾은 머리는 쉽지 않은 일들을 실천으로 옮긴다. 모든 것이 서툰 100세 노인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머리는 제인스와 이메일로 마음을 전하며 소통하여 갔다. 제이슨의 다섯 가지 소원을 이룰 많은 방법을 강구하며 하나하나 실천해가는 모습에서는 용기 있는 100세 노인의 전범으로 여겨졌다.

 

  ‘젊음을 경험하고 싶다면, 살아야 한다, 행동해야 한다.’

  유품처럼 남은 낡은 자동차 셰비를 몰고 제인스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 치어리더에게 전략적으로 접근하여 키스하기에 성공하자 둘은 어느새 다음 계획을 위한 걸음을 떼었다. 무면허 운전을 위장하기 위해 속력을 내는 등 위험을 감수하면서 시카고에 있는 야구장에 도착하였다.

   ‘에스(Strong)-(Brave)-케이(Kind)’

   폭력을 일삼는 남편을 떠나온 델라는 딸 티어건에게 어떻게 살고 싶은지 스스로에게 물으며 용기 있게 어떻게 행동하고 싶은지 스스로 결정하라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티어건은 메이저리그 야구장에서 홈런을 칠 수 있는 길에 함께하였다. 머리는 이 일로 아동 유괴범으로 붙잡힐 수도 있는 위험을 감수하며 제이슨이 홈런을 칠 수 있는 길을 열었지만 제이슨은 쓰러지고 말았다. 제이슨이 시카고 병원에서 서서히 죽어가는 동안 머리는 아동 유괴범으로 구속되었다 보석으로 풀려났지만 제이슨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힘들 때마다 머리는 제임스 신부를 찾아 심경을 드러내며 이런저런 조언을 얻는다.

   ‘머리, 자신을 찾으세요. 그러면 미래의 길을 찾게 될 겁니다.’

    아동 유괴범으로 접근 금지 명령을 받은 터라 엄두도 내지 못할 때 신부의 조언은 제이슨 아빠의 집을 찾아 대화할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 지금 아이에게는 아빠가 필요함을 역설하며 하루하루가 기적 같은 삶이 이어지고 있는 아들의 처지를 말하였다. 이 일을 계기로 머리의 접근 금지 명령은 풀려 시카고 병원으로 갈 수 있었다. 의료진도 납득할 수 없을 정도로 살아있는 제이슨은 머리가 전해달라고 부탁한 1934 탑스 카드를 움켜쥐고 있었다. 다시 만난 둘은 병상에 나란히 누워 서로를 바라보며 죽음을 관조한다. 죽음이 가까워졌음을 절감한 머리는 자신의 심장을 제이슨에게 이식해달라고 애원하지만 불가하다는 의료진 말에 냉담한 반응을 보이지만 제이슨이 곧 심장이식을 받을 것이라는 소리에 기대가 컸다.

   심장 수술을 받은 제이슨은 살아나 건강을 회복 중이고 머리는 이생에서 해야 할 일들을 마친 듯 편안하게 죽음을 기다린다. 아들들이 어렸을 때 함께하지 못한 시간을 성찰하며 그 시절 아들 같은 제이슨을 온 마음으로 사랑하였다. 끊임없이 혈액을 받아들이고 내보내면서 혈액을 온몸으로 이동하는 심장은 우리를 살게 한다면 타인을 사랑하는 마음은 기적을 낳기도 한다. 100세 노인이지만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쉽지 않은 걸음을 떼는 일은 한 생명체에 대한 뜨거운 사랑의 실천이었다. 제이슨이 위험에 처한 소녀를 구하며 슈퍼히어로는 거창한 것이 아님을 증명하였듯이 누군가가 살아갈 힘을 얻는 것만으로도 삶을 지속해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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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유니콘
오드리 로드 지음, 송섬별 옮김 / 움직씨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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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치의 유대인 박해를 드러내는 홀로코스트, 자본의 노예로 삼은 흑인들, 지배적 세력을 가진 민족과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인구수가 적고 언어와 관습 등이 다른 소수 민족에 대한 차별 등이 실재하였다. 1950년 제5차 유엔 총회에서 1210일을 '세계인권선언일'로 선포했으며 유엔 회원국들은 정부 주관으로 이 날을 기념하고 있지만 인권이 유린되는 사례는 현재에도 빈번하다. 2020126일 미국 오하이오주에서는 손에 들고 있는 샌드위치를 총기로 오인 받은 흑인청년이 경찰의 총격에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극단적 인종차별이 줄어들기는 하였지만 여전히 색안경을 끼고 흑인들을 차별하는 예는 존재한다. 미국 할렘가에서 태어나 그곳을 떠나지 않은 오드리 로드는 여성들의 인권 신장을 위하여 한평생을 바쳤다.

 

   흑인, 레즈비언, 여성, 페미니스트, 시인, 엄마, 교수, 활동가 등으로 스스로를 소개하며 그녀는 자신을 하나의 정체성으로 가두려하지 않았다. 여자들이 결혼하여 자신의 이름 대신 누구 엄마로 더 많이 불리며 자식을 뒷바라지하는 헌신적인 여성에 갇혀 책임과 의무를 다하여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자발적이기보다는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남편을 내조하며 자식들을 양육하는 일을 도맡아야 한다는 압력이 자리하고 있다. 다수의 생각을 대표하는 사람들이 주류로 사회를 움직이고 있는 집단에서 소수의 생각은 배제되기 일쑤였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동성애의 사랑도 존중받아야 한다고 표명하였다.

 

   결단의 벼랑 끝에 언제나 선 채 우리 아이들의 꿈이 우리의 죽음을 닮아 가지 않도록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침묵하지 않기로 다짐한다. 한 생명체로 홀대받지 않기 위해 짓누르는 압제의 사슬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라도 침묵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시인은 말한다.

   ‘그리고 말을 할 때 두려워한다

   우리의 말이 들리지 않을까 봐

   환대받지 않을까 봐

   하지만 우리가 침묵한 때에도

   우리는 여전히 두렵다.

 

   그러니 말하는 게 낮다

   우리는 애초 살아남을 운명이 아니었음을

   기억하면서.’ -살아남기 위한 기도-

   시인은 칙칙한 물이 고인 둥그런 웅덩이 같은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침묵을 강요하는 이들에 맞서 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침묵함으로써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억압과 차별을 묵인하여 발걸음이 무거운 이들의 행동을 조장해온 셈이다. 침묵을 언어와 행동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우리는 그 자리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시인이 생전에 인터뷰한 내용 중, 자신의 침묵은 스스로를 지켜 준 적이 없다고 말하며 우리의 침묵도 우리를 지켜주지 않을 것이라 항변했다.

 

   유니콘의 뿔에는 사악한 힘을 막고 어떠한 질병도 고칠 수 있다고 전한다. 민간에 전승되는 유니콘의 흰 색과 대비되는 검정 색을 붙인 블랙 유니콘은 시적 화자를 대변하는 동물로 자유롭지 않지만 가만있지 못하고, 부정한 일들을 겪을 때마다 수그릴 줄 모른다. 지금껏 주류에게 끌려 다니며 정체성을 드러내지 못하고 조롱과 멸시를 받아온 블랙 유니콘은 부자연스런 죽음의 실체를 폭로하고 부정에 맞서 정의를 바로 세우려 한다.

   ‘다들 알고 싶어한다

   색이 없는 하늘

   우리가 미친 게 아니라고 충고해 줄

   해도 달도 없었던 옛 시절이 어땠는지’ -옛 시절-

   정체성을 드러내며 역할을 수행하기보다는 권력의 그림자로 지내며 갖은 피해를 감내하며 해와 달도 없었던 옛 시절은 하늘 아래 모두가 해와 달을 보면서 희망을 노래할 수 없었다. 암흑기를 지나 여명을 향한 태동을 거치는 것처럼 짙은 어둠 속에 빛나는 등불로 시인은 언어의 노래로 불운한 시대에 맞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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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상을 잘 모셔야 후손이 잘 된다.’

   는 말을 어려서부터 들어왔다. 팔순이 가까운 어머니는 스물 둘에 시집와서 지금까지 선조들의 제사를 지냈다. 제삿날을 앞두고 어머니는 재래시장을 찾아 신선한 식재료를 구매하여 깔끔히 손질하여 제수 음식을 장만하였다. 부정 타면 안 되니 언행을 삼가고 정성을 모아 제사를 지냈다. 제사 음식을 나눠 먹으며 함께해온 동네 어른들은 어머니가 조상을 잘 섬겨 자식들이 잘 된 것이라며 입을 모을 때면 어머니 입가에는 미소가 번졌다. 하지만 바쁜 올케를 대신하여 상차림에 필요한 음식을 준비할 때면 심통이 날 때가 있다. 얼굴도 모르는 증조할머니 제사를 챙기면서 고달프게 일할 필요가 있는지 회의가 들었다. 볼멘소리를 늘어놓는 딸에게 그런 소리 하지 말라며 타박을 주는 어머니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제사 지내는 문제를 쟁점으로 한 TV토론 참여자로 나온 시선은 오랫동안 한 집안의 풍습으로 여기며 지내온 제사를 강경하게 반대하였다. 시선은 사후에 본인의 제사는 지내지 말라는 말까지 남길 정도로 마음 없이 형식만 남은 제사를 겉치레로 여겼다. 입버릇처럼 제사를 지낼 필요가 없다던 그녀가 이승을 뜬 지 십 년이 되었지만 자식들은 지금껏 어머니 제삿날을 챙기지 않았다. 자식들은 피안의 세계로 떠난 어머니 마음을 생각하여 제사를 지내지 않은 일은 생전 그녀의 소신을 지켜주는 일이라 생각해 왔다.

 

   큰딸 명혜는 한 달에 한 번 남매들이 모여 점심을 먹는 자리에서 엄마 제사를 지내야겠다고 선언했다. 이 말을 듣고는 여러 말이 오갔지만 남매들은 어머니 사후 10주기를 맞아 시선이 젊은 시절을 보낸 하와이에 모여 제사를 지내기로 했다. 자식들은 어머니가 싫어하던 방식의 제사가 아니라 하와이에서 살았을 때의 의미를 찾아 그 순간들과 연결된 물건들을 제사상에 올리기로 하였다. 특별한 제사를 준비하기 위해 한국과 미국에 흩어져 살던 가족들이 하와이로 모여들어 심시선이 살았던 시간들을 불러낸다. 그녀는 분쟁에 휘말려서도 좀처럼 자신의 의견을 굽히지 않은 강렬한 인물로 대중의 가벼운 사랑과 소수의 미움을 받고 살았다. 아들과 딸을 편애하지 않았고, 데려온 자식을 대할 때에도 차별 없이 대한 어머니였기에 자식들은 서로 배가 달라도 친밀하게 지낼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목적인 확실한 자식들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할 필요 없는 하와이에서 어머니가 지냈던 시간을 반추하며 그들만의 방식으로 심시선의 사후 십 년을 애도한다. 화가로 살아갈 길을 열어줄 것처럼 다가온 마티아스는 시선을 감정적으로 고문하며 자신의 곁에 머무르기를 바랐다. 그녀는 자아 정체성을 파괴하는 그의 압력을 피해 새로운 삶을 설계한다. 애방의 도움으로 요제프 리와 심시선은 파리로 가 자기 변신을 꾀하며 예술가로서의 삶을 살아갈 힘을 얻었다. 한국 미술계에 안착한 시선은 모국어로 표현하며 생활하는 삶을 선택함으로써 요제프 리와의 사랑을 접어야 했다. 남편이 독일로 돌아간 이후 그녀는 세 아이를 키우기 위해 글을 썼다.

 

   어머니는 생활의 조각들을 모아 글을 쓰며 자식들을 키우느라 힘들었을 텐도 내색하지 않았다. 그녀는 타인과 비교하지 않으며 아들과 딸에 대한 차별 없이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해가기를 바랐다. 손녀들은 자신에게 무게 중심을 두고 시대 너머를 보며 지낸 할머니로 기억하며 그녀와의 만남을 추억하였다. 누군가의 마음속에 오래 남아 어떤 고비가 올 때마다 그 사람을 떠올리며 힘을 낸다는 것은 숭고한 일이다. 여행지로 각광받는 하와이에서 박동 넘치는 다양한 활동을 연상하며 찾은 이들에게 이주민들의 아픔이 서려 있는 공간에서 공동체를 이뤄 제 빛깔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도 곁들여 이주민의 애환을 드러냈다.

 

   어머니 제삿날 제수 음식 대신 자식들은 마련한 물건들을 상에 올려놓으며 그들만의 방식으로 어머니와의 인연에 감사하는 의식을 치렀다. 두꺼운 종이에 붙인 레후아꽃, 등산화 밑창에 끼여 있던 작은 화산석 자갈, 블록 탑, 팬케이크 등을 상에 올렸다. 자식들은 하와이에서 보낸 어머니 삶의 의미를 규정하며 그동안 생각해 낸 것들을 시도하며 결과물을 찾았다. 병약하다고만 여기던 우윤은 수차례 도전 끝에 큰 파도를 타며 성공적으로 실리콘 물병에 포말을 담아 할머니 제사상에 올리며 새로운 길을 모색하였다.

 

   어머니를 줄기로 뻗어 나온 가지인 자식들은 서로 적당한 거리를 두고 생활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가운데 함께해야 할 일은 힘을 합치며 그들만의 방식대로 삶의 빛깔을 드러낸다. 자본의 힘에 눌려 중심까지 버리고 사는 속물들, 극단의 이기주의로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이들이 득세하는 추악한 시대를 살면서도 일상의 긍정적인 의미를 발견하며 자식들은 현재를 살고 있다. 위선을 떨치고 소신을 지키며 살았던 어머니의 혼이 자식들에게도 보이지 않는 에너지를 보내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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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에 복무하다 - 리영희 평전
권태선 지음 / 창비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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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일 500명 이상의 코로나19 확진자 발생으로 흉흉한 소식이 함께하는 2020년 말입니다. 엄습하는 불안감으로 외출은 삼가고 집에서 글을 읽으며 흐트러진 마음을 다잡습니다. 대학 시절 사회과학 도서를 읽고 학우들과 함께 토론하며 새로운 세계를 접하기 시작할 때, 처음으로 읽은 전환시대의 논리는 가히 충격적이었습니다. 자국의 이익에 사로잡혀 베트남 전쟁을 부추기며 야욕을 구체화하한 미국의 극악한 이기주의를 가늠할 수 있었습니다. 베트남 전쟁에 파병된 한국군들의 민간인 살상, 중국 사회주의에 대한 통찰력 있는 연구와 재해석, 일본의 군국주의화 등을 접하며 분단으로 고착화된 이념의 대립에서 벗어나 통일 한국의 기틀을 마련하는 일이 중요하게 여겨졌습니다.

 

   안개 속처럼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정국에 인터넷 신문 기사로 코로나19 관련 소식을 확인하며 일과를 시작합니다. 진실 보도인 것처럼 위장한 기사 내용을 믿고 따랐다 낭패를 보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혼란스러운 국제 정세와 범국가적인 재난을 틈타 가짜 뉴스를 남발하여 특수를 누리려는 이들도 있습니다. 기자로서의 전문성이 떨어지는 기레기로 불리는 이들은 검증되지 않은 허위 사실과 과장된 기사로 저널리즘의 수준까지 떨어뜨리고 있습니다. 어떤 외압에도 굴하지 않고 진실을 밝혀내기 위한 투쟁의 일선에서 복무하다 그로 인한 고난으로 점철된 생애를 보낸 고 리영희의 일대기를 담은 글에는 칼보다 강한 펜의 힘을 일깨웁니다. 선생은 기자 시절 취재를 하거나 외신을 번역해 기사를 작성할 때, 확인에 확인을 거듭해 진실에 대한 확신이 섰을 때라야 글을 완성했습니다. 과학적으로 검증된 진술에 입각한 진실만을 보도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었습니다.

 

   자유에 따른 책임을 다하고자 자신의 앎을 삶 속에서 실천한 지성인으로 선생이 살았던 시대의 우상과 맞서 싸우며 한평생 진실에 복무하였습니다. 수업 시대, 연마 시대, 실천 시대, 성찰의 시대 네 부분으로 구성된 <<진실에 복무하다>>를 읽으며 사상의 은사를 넘어선 인간미 가득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평안북도 삭주군에서 자란 선생은 진실을 알리는 일을 천명으로 받아들이고 기득 계층의 이해관계를 떠나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었습니다. 선생은 아버지의 의협심과 어느 누구에게도 굽힐 줄 몰랐던 어머니의 성정을 닮았습니다. 독립군으로 활동한 머슴 문학빈과 평등사상으로 진취적인 기풍이 흐르는 외삼촌을 공경하며 이들의 의로운 정신으로 선생의 내면은 차올랐습니다. 생존문제 해결을 위해 한국해양대학교에 진학한 후 여순반란 사건을 진압군으로 투입되었을 때, 목격한 수많은 주검들 옆에 통곡하는 이들의 눈물에 담긴 의미를 궁구했습니다.

 

   1950년 봄 안동중학교 영어교사로 부임했으나 한국 전쟁으로 유엔군 연락장교단 후보생으로 생활하며 자국의 이익만 우선시하는 미국의 실체를 파악했습니다.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국제 관계를 조명하며 중공군 참전 이후 적을 알기 위해 중국 공부를 시작해 1970년대 독보적인 중국 전문가로 자리했습니다. 7년의 통역 장교 생활은 선생을 정치사회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는 비판적 지식인으로 담금질하였습니다. 자본주의 체제의 비인간성과 참혹한 전쟁 등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적 인식과 대안을 생각하며 진실에 복무하는 기자의 길을 걸었습니다. 풀브라이트 장학생으로 미국에서 현장 실습을 하며 보낸 6개월은 대한민국의 민주적 미래를 만들어가기 위해 필요한 언론의 사명에 대한 인식을 바로 세우는 계기로 작용합니다. 비민주적인 독재 정치로 권력을 쥐고 누리는 이승만 정권 타도만이 민주주의 회복으로 나아가는 길임을 언론 매체에 기고했습니다. 선생은 이후 조선일보 외신부장을 역임하며 굴욕적인 한일회담을 철회해야 한다는 글을 써 한일회담 반대운동의 배후로 몰려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돼서도 언론의 사명은 진실을 전달하는 데 있음을 명확히 했습니다.

 

   국제문제를 면밀히 살피며 시대의 흐름을 선취한 사람으로서 현실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열망이 컸던 선생은 현지인 입장에서 베트남 전쟁의 진실을 파헤쳤습니다. 미국과의 밀약으로 얻을 수 있는 특혜를 염두에 둔 한국군의 베트남 파병을 결정한 박정희 정권의 실체를 드러낸 기고문은 외압을 불렀습니다. 민주수호국민협의회를 결성해 군사 독재 정권의 장기 집권을 저지하려는 민주화 운동에 발을 담그기 시작하며 진실에 복무하겠다는 다짐으로 들어섰던 기자의 삶을 마감했습니다.

   ‘사실과 사실을 꿰어 진실을 찾아낼 수 있어야 하고, 그를 위해서는 깊이 있는 탐구가 있어야 한다.’

   권력을 비호하기 위해 사실을 왜곡하는 기자들을 비판하며 한양대 신방과 교수로 들어선 선생은 국제문제에도 깊은 관심을 기울이고 탐구하는 학자로 왜곡된 역사적 사실을 파헤쳐 진실을 알렸습니다. 한국 전쟁 이후 평화를 최우선 가치로 삼아온 선생은 한반도의 전쟁 재발을 막기 위해 반전 평화의 한시를 써서 지인들에게 돌리기까지 하였습니다. 북한과 미국이 핵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는 상황에서 감행된 부시의 이라크 침략으로 한반도에 전쟁의 화근이 생길 수도 있음을 우려했습니다. 선생의 우려대로 미국이 한국군의 이라크 파병을 요청하였고, 노무현 정부를 파병을 결정을 비판하는 시위에 동참한 선생은 정부의 미국에 대한 환상에 사로잡혀 있음을 드러내며 파병 철회를 촉구하였습니다. 유신헌법을 개정한 박정희는 대통령 긴급조치 9호를 발동해 극우 반공 체제 확립을 위해 민주 인사들을 수감하는 반인륜적 패악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억눌린 자에게는 예의를 차리지만 권력에 기대어 거들먹거리는 사람을 그냥 보아 넘기지 않았습니다. 출옥 후 아내의 지적정치적 성장에 대한 경의를 표하며 40년 넘게 함께한 길동무인 아내를 향한 그만의 표현법이었을 것입니다. 젊은 시절에는 가정보다는 사회를 앞세운 전체주의적 성향이 강한 민족주의자로 사르트르와 루쉰에게 배운 지식인의 책임을 가족들에게도 강요하며 엄혹하게 대했던 일들, 자기 성찰로 새로운 것을 찾으려 했습니다. 젊은 날의 리영희는 이성의 지배를 통해 동물적 요소를 길들일 수 있다고 믿었지만 냉전 종식과 사회주의권의 붕괴를 겪으며 인간의 이성을 과대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하였습니다.

 

​   일제 식민지 시대에 변방에서 태어난 선생은 해방의 공간에서 자유를 만끽하기도 전에 625전쟁을 겪으며 서슬 퍼런 유신 시대와 독재정권의 불온한 시대를 살아왔습니다. 언론과 대학이 권력의 시녀 역할을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비롯된 불의에 대한 의분은 선생의 삶을 지탱해 온 바탕이지만 그의 건강을 해치는 적이기도 하였습니다. 어떤 외압에도 흔들리지 않는 강단으로 시대를 깨우는 언론인이자 올곧은 학자의 길에 충실하였습니다. 2000년 뇌출혈로 쓰러져서도 강제 휴식기 몸의 감각을 되살리는 재활 운동뿐 아니라 그동안 읽고 싶어도 읽지 못했던 책들을 보며 지냈습니다. 선생은 젊은 시절 외부적 현상과 변화에 대응해온 남의 삶에서 조금은 명상적인 나의 삶을 다짐하였지만 외부로 향하는 시선을 돌리는 일이 쉽지 않았습니다.

 

   반공을 최우선 가치로 삼아온 역대의 군사 정권은 선량한 국민들에게 해악을 끼친 사건들을 일으킨 장본인으로 어떤 반성도 하지 않는 정권을 비판하였습니다. 새로운 자료와 통계정보를 수집하는 데 많은 시간을 들인 선생은 새로운 정보와 통찰을 담은 글을 써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과열 경쟁으로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자본주의의 폐단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의식화된 시민집단의 역량과 시민집단과의 연대 확대와 강화를 전제하였습니다. 국민들의 알 권리를 충족할 진실한 기사를 작성하는 일을 언론인의 사명으로 알고 정의롭지 못한 시대에 타협하지 않는 의지로 평생을 지켜 온 선생님의 길을 마음에 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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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매, 밥 됩니까 - 여행작가 노중훈이 사랑한 골목 뒤꼍 할머니 식당 27곳 이야기
노중훈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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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근하지 않는 토요일 늦잠을 자는 호사를 마다하고 잠자리에서 일어나 라디오를 켠다. 여행을 떠나지 못하는 시대에 주파수로 떠나는 여행을 선택하고 MBC라디오 '노중훈의 여행의 맛'을 듣는다. 방송을 들은 지 오래지 않아 방송 진행자와 소통하지는 못하였지만 오랜 청취자들과는 맛집을 찾아 함께 음식을 나누며 소통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정감 있는 대화를 나누며 같은 자리에 앉아 음식을 함께 먹는 일은 관계 형성에 도움을 준다. 여행 작가로 여러 공간을 찾아 의미를 발견하며 책으로 엮은 할매, 밥 됩니까는 인연의 결과물이다.

    40년 전 이승을 뜬 할매는 귀가 어두운 상황에서도 할매를 부르며 달려오는 손녀 소리를 잘도 알아듣고 반응하였다. 공부하느라 애썼다며 거친 손으로 손녀의 얼어붙은 볼을 부비며 등을 다독이며 온기를 선물하였다. 밥을 짓고 반찬을 만들어 따스한 밥 한 그릇을 내놓던 할머니를 떠올리며 저자의 발품 따라 관록이 붙은 할머니가 운영하는 식당으로 향한다. 애틋한 그리움이 덩이째 몰려드는 추억에 흠뻑 젖어 여행 작가가 사랑한 할머니 식당 27곳은 즉석 식품과 MSG를 넣은 음식과는 거리가 있는 건강한 한 끼로 충분했다.

 

   생선을 노릇노릇 굽기 위해서는 프라이팬에 얹은 고기를 자주 뒤집어서는 안 된다는 할머니 말이 귓가에 쟁쟁한 것처럼 연륜만큼이나 일상에 배어 있는 손맛을 찾아 작가는 길 위에 섰다. 사는 것이 녹록치 않은 시간을 견디며 지내느라 힘든 서로에게 밥 한 술에 김장 김치 한 가닥 얹어 주며 고단한 시간을 공유했던 시절을 불러내 추억 속 음식을 찾아 작가는 떠난다. 어느 순간부터 요리 시연을 보이며 음식을 만드는 모습, 이름 있는 식당을 찾아 맛있게 먹는 이들 등을 담은 방송이 뜨자 너도나도 먹는 방송에 열광하며 지낼 때가 있다.

 

    생계유지를 위한 식당 운영이지만 인정 많은 할머니들은 욕심 내지 않고 지난세월의 궤적을 녹여 감칠맛이 더하는 음식을 만들어 낸다. 길 위에 서서 어딘가로 향하는 여행 작가는 언젠가는 추억 속에 자리할 할머니들의 식당을 찾아 사람들의 질박한 삶을 살뜰히도 녹여낸다. 식당을 찾는 손님들이 낮은 식당 문턱을 넘어 칼제비 한 그릇을 시켜 먹으며 살아가는 일상을 공유하는 소통의 시간은 서로에 대한 힘을 돋운다. 한곳에 오래 머물러 단골들이 주로 찾는 식당은 규모가 작고 허름하지만 켜켜이 쌓인 사람 냄새로 가득하였다.

 

   사람들의 입맛이 일정하지 않아 맛의 균질성을 따질 수는 없지만 오랜 시간이 흘러도 찾고 싶은 한두 개 쯤은 있을 것이다. 선암사에서 송광사로 오르는 산길을 따라 걷다 보면 만나는 보리밥집이다. 다리에 힘이 없어 산행이 힘들어지기 전 조계산을 찾을 이유 중 하나는 24년 넘게 한 자리에서 제철 나물과 보리밥을 정찬으로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밥을 먹고 가마솥 뚜껑을 열고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숭늉으로 속을 데우면 산행의 피로가 확 풀리고 만다. 저자 역시 동네 터주 대감처럼 한 곳에 오랫동안 식당을 열고 장사하던 할머니들이 자취를 감추기 전 식당을 찾아 밀착 취재하며 할머니들의 구수한 입담을 생생하게 기록하였다. 음식을 준비하는 할머니와 주고받는 이야기에는 삶의 희로애락이 국수사리처럼 말려 있었다. 수돗물을 담아 끓여낸 맹물 국수, 갓 맛이 나는 냉이를 얹는 갓냉이 국수, 갈비 포를 뜨는 것에서부터 직접 띄우는 청국장까지 노부부가 자체 해결하는 명성숯불갈비 등 찾고 싶은 식당들이 늘어난다. 많이 먹는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국수를 만들어 준 비산국수집 할머니는 서울에서 왔다는 저자의 말에 국수 값에서 1,000원을 빼고 계산을 하였다니 그 인심에 웃음이 난다.

   ‘많이 줘도 아깝지 않고 행복해. 나중에 편안하게 갈 것 같아.’

   넉넉지 않은 가정 형편에 아이들을 배불리 먹이고 자식들이 커가는 모습을 보는 낙으로 살았다는 주인의 말에서는 베풀며 사는 기쁨이 깊숙이 자리한 듯하다.

 

   아날로그 감성이 살아있는 방송에 심취할 수 있는 라디오 프로그램에 초대 손님으로 나가 여행 이야기를 들려주다 라디오 방송을 진행한 저자는 라디오에 빚진 것이 많다고 여긴다. 자신의 영역을 넘어 방송으로 소통한 청취자들에게 무엇이더라도 보은하고 싶은 마음에 애청자를 만나 밥 한 끼를 하였다. 39년째 순창의 작은 식당-칠보 식당-을 지키는 할매의 요리법 전수는 간간이 이어졌고, 다시 찾았을 때에는 후한 대접으로 식객을 전율케 하였다. 메뉴판 없이 가까운 시장에서 그날그날 장을 봐서 형편에 맞게 음식을 내는 성원식품이 각박한 서울에 온기를 뿜어내는 듯하다. 밤이 깊어가는 시간 성원 식품의 단골은 소주 한 병에 김치전을 곁들이며 출출한 배만 채우는 것이 아니라 헛헛한 마음까지 달래고 온다니 마음이 따뜻해져 온다.

   점심시간에만 문을 열었다 닫는 정희식당은 3인 이상 주문과 전화 예약을 필수로 영업을 하는 식당이다. 가자미 찌개와 갈치 찌개를 주된 요리로 하는 17첩 한정식으로 만찬을 준비하는 식당 할매는 돈을 벌려는 생각은 접은 것처럼 보인다. 가자미 찌개 1인분에 1만 원인데 직접 손질하여 만든 반찬 가짓수가 열 가지가 넘는다니 놀라워 꼭 한번 찾고 싶어진다. 기술을 가르쳐준다고 해도 하려는 사람이 없다는 삼복당 제과점 주인의 말에는 안타까움이 묻어난다. 무성한 잎을 달고 서 있다 떨어지는 잎들처럼 생명의 불꽃이 사위어가는 인생의 황혼에 접어든 할매들의 손맛은 여행자의 취재 글에 남아 우리는 음식에 공을 들이며 인생의 희로애락을 녹여낸 할매들을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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