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유니콘
오드리 로드 지음, 송섬별 옮김 / 움직씨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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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치의 유대인 박해를 드러내는 홀로코스트, 자본의 노예로 삼은 흑인들, 지배적 세력을 가진 민족과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인구수가 적고 언어와 관습 등이 다른 소수 민족에 대한 차별 등이 실재하였다. 1950년 제5차 유엔 총회에서 1210일을 '세계인권선언일'로 선포했으며 유엔 회원국들은 정부 주관으로 이 날을 기념하고 있지만 인권이 유린되는 사례는 현재에도 빈번하다. 2020126일 미국 오하이오주에서는 손에 들고 있는 샌드위치를 총기로 오인 받은 흑인청년이 경찰의 총격에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극단적 인종차별이 줄어들기는 하였지만 여전히 색안경을 끼고 흑인들을 차별하는 예는 존재한다. 미국 할렘가에서 태어나 그곳을 떠나지 않은 오드리 로드는 여성들의 인권 신장을 위하여 한평생을 바쳤다.

 

   흑인, 레즈비언, 여성, 페미니스트, 시인, 엄마, 교수, 활동가 등으로 스스로를 소개하며 그녀는 자신을 하나의 정체성으로 가두려하지 않았다. 여자들이 결혼하여 자신의 이름 대신 누구 엄마로 더 많이 불리며 자식을 뒷바라지하는 헌신적인 여성에 갇혀 책임과 의무를 다하여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자발적이기보다는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남편을 내조하며 자식들을 양육하는 일을 도맡아야 한다는 압력이 자리하고 있다. 다수의 생각을 대표하는 사람들이 주류로 사회를 움직이고 있는 집단에서 소수의 생각은 배제되기 일쑤였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동성애의 사랑도 존중받아야 한다고 표명하였다.

 

   결단의 벼랑 끝에 언제나 선 채 우리 아이들의 꿈이 우리의 죽음을 닮아 가지 않도록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침묵하지 않기로 다짐한다. 한 생명체로 홀대받지 않기 위해 짓누르는 압제의 사슬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라도 침묵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시인은 말한다.

   ‘그리고 말을 할 때 두려워한다

   우리의 말이 들리지 않을까 봐

   환대받지 않을까 봐

   하지만 우리가 침묵한 때에도

   우리는 여전히 두렵다.

 

   그러니 말하는 게 낮다

   우리는 애초 살아남을 운명이 아니었음을

   기억하면서.’ -살아남기 위한 기도-

   시인은 칙칙한 물이 고인 둥그런 웅덩이 같은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침묵을 강요하는 이들에 맞서 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침묵함으로써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억압과 차별을 묵인하여 발걸음이 무거운 이들의 행동을 조장해온 셈이다. 침묵을 언어와 행동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우리는 그 자리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시인이 생전에 인터뷰한 내용 중, 자신의 침묵은 스스로를 지켜 준 적이 없다고 말하며 우리의 침묵도 우리를 지켜주지 않을 것이라 항변했다.

 

   유니콘의 뿔에는 사악한 힘을 막고 어떠한 질병도 고칠 수 있다고 전한다. 민간에 전승되는 유니콘의 흰 색과 대비되는 검정 색을 붙인 블랙 유니콘은 시적 화자를 대변하는 동물로 자유롭지 않지만 가만있지 못하고, 부정한 일들을 겪을 때마다 수그릴 줄 모른다. 지금껏 주류에게 끌려 다니며 정체성을 드러내지 못하고 조롱과 멸시를 받아온 블랙 유니콘은 부자연스런 죽음의 실체를 폭로하고 부정에 맞서 정의를 바로 세우려 한다.

   ‘다들 알고 싶어한다

   색이 없는 하늘

   우리가 미친 게 아니라고 충고해 줄

   해도 달도 없었던 옛 시절이 어땠는지’ -옛 시절-

   정체성을 드러내며 역할을 수행하기보다는 권력의 그림자로 지내며 갖은 피해를 감내하며 해와 달도 없었던 옛 시절은 하늘 아래 모두가 해와 달을 보면서 희망을 노래할 수 없었다. 암흑기를 지나 여명을 향한 태동을 거치는 것처럼 짙은 어둠 속에 빛나는 등불로 시인은 언어의 노래로 불운한 시대에 맞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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