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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의 밥도둑
황석영 지음 / 교유서가 / 2016년 3월
평점 :
아침을 챙겨 먹지 못한 채 허둥대며 등교한 아이들은 4교시 종이 채 울리기도 전에 급식소로 달려 나간다. 3학년부터 밥을 먹는 게 통념처럼 자리한 지 오래지만 급식소까지라도 빨리 달려가 줄을 서야 직성이 풀리는지 달음질을 하다 고꾸라지는 일도 있어 안전하게 걸으라고 하지만 한 끼를 해결하려는 절박한 마음은 달리기로 시작된다. 오늘의 식단 차림표를 챙기며 마음이 통하는 이들과 함께 둘러앉아 도란거리며 음식을 나누는 자리는 정겨운 광경이다. 뭐가 그리도 좋은지 친구의 말에 웃어젖히던 아이는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고는 머쓱해한다.
먹기 위해 사는 것처럼 행동하지 말라고 아이들에게 말하지만 음식을 섭취하며 생활을 유지하는 일 못지않게 지인과 만나 한 끼를 함께 나누는 소통의 자리는 인간관계를 두텁게 하는 자리이다. 홀로 지내는 노인들의 괴로움 중 하나가 혼자 눈을 뜨고 끼니를 마련하여 텔레비전 을 보면서 밥을 먹는 일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나이 들어도 누군가와 함께 밥을 나눌 이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일흔이 넘은 엄마는 지금도 딸이 좋아하는 들깨 탕을 쑤어 맛보게 하는 일로 농한기를 보낼 정도로 한사람을 떠올리며 그리워하게 하는 것 중 하나가 음식이라는 생각에 미치지만 엄마가 좋아하는 음식은 딱히 떠오르지 않으니 그동안 엄마를 생각지 않고 지낸 시간이 회한으로 차오른다.
사람 사이의 관계를 형성하는데 큰 축을 형성하는 음식은 지난한 세월 속 추억을 환기하는 매개로 현재를 살아갈 무형의 힘을 준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생생한 현장 기록인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를 숨죽여 보면서 촉발된 관심은 한 개인의 역사까지 확장되어 옥중 생활과 유형의 땅인 제주도에서의 삶, 베트남 전쟁 참전, 행자 생활 등에서 맛보고 익힌 음식으로 이어졌다. 군대에 입영하면서 거세당한 자유는 정해진 대로 훈련하며 끼니를 해결하는 생활에 젖게 했지만 가족의 면회 때마다 맛보는 별미는 주림의 시간을 채우는 일로 맞바꿀 수 있었지만 과식 사고로 목숨을 잃는 경우도 있었다니 안타까움은 더했다. 규율을 중시하는 사회에 염증을 느끼면서도 옥중 생활에서의 별미인 김치 부침개는 수인(囚人)의 마음에 그리움을 심어준 사랑이었다.
나이 들수록 연정을 나누었던 이들에 대한 그리움은 쇠약해진 몸과 마모된 삶의 조각들을 이어 붙여 삶의 활기를 줄 때가 있다.
“너만 먹어!”
라며 누룽지를 건네 준 여아에서부터 호박시루떡을 건네 준 소녀, 양념 없이 진한 소금물을 부어 만든 장아찌 맛을 알려준 그녀 등은 노년의 삶을 위무한다. 암 투병 중에 돌아가신 어머니가 먹고 싶다던 녹두 빈대떡 모양의 노티는 밥을 적게 먹어도 포만감을 주었던 장떡으로 결핍의 시간을 버티게 한 음식이었다. 지방마다 음식 조리법과 맛이 다른 이유는 기후와 풍토를 포함한 자연 조건에 따랐기 때문이다. 추운 지방에서는 제사를 지내고 남은 음식을 그릇에 담아 비벼 먹을 때 뜨거운 국물을 부어 먹었던 것처럼 망명자로 나라 밖에서 생활하며 맛본 갖가지 수프는 가족과 떨어져 지냈던 시절에 비견할 만한 음식에 대한 향수를 더한다.
특별한 날 가정에서 음식을 나누기보다는 외식으로 번거로움을 피하자는 의식이 확산되어 함께 할 이들을 위해 정성을 다하던 때의 풍경은 기억 속에 가물가물해진다. 제철에 맛볼 수 있는 그 지역의 토박이 음식을 준비하며 밥을 같이 먹던 시간은 추억을 되새기며 지친 영혼을 달래주는 영혼을 나누는 시간이었다. 숙원이었던 자퇴와 가출을 병행하였던 10대의 정점에 저자는 범어사에 머물며 여러 가지 푸성귀로 싸 먹던 쌈밥들의 다양한 맛을 떠올리며 여러 경험이 잣는 쌉쌀함과 싱그러움이 공존하는 인생을 돌아보게 한다. 고봉밥을 먹어치우는 밥도둑 짱둥어탕과 떡갈비, 쌀밥 반찬의 진수인 지역의 젓갈 등이 즐비한 남도 음식은 팔순이 넘은 외숙모가 정성스레 차려준 밥상을 떠올리게 한다.
각박해진 세상살이에 소통할 시간이 줄어들어서인지 음식 만들기에서부터 음식을 맛보는 방송으로 시청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으며 먹는 즐거움과 음식을 함께 나누는 시간의 의미를 조명하는 경우가 늘어난다. 방송을 타게 되면 음식점은 때 아닌 특수를 누리기도 하지만 점점 평준화되어 가는 음식 맛에 씁쓸한 반응을 보이는 고객들도 늘어나는 추세다. 결핍으로 이어지던 시대 썩어가는 생물을 응용하여 만든 음식으로 이웃들과 나누어 먹던 감자떡의 추억은 고향 친구들이 생각날 때면 떠오르는 명물로 자리한다. 작가로 살기를 바랐던 저자가 보낸 시간 속 세월은 부침(浮沈)의 인생에 걸맞은 경험이 변주한 음식의 나눔으로 <<밥도둑>>은 지난 추억의 장터로 사람 사는 냄새를 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