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세트 - 전3권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김희숙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세상에 나와 부모의 보살핌 아래 있던 이들은 성장하여 경제적 활동을 잇는 동안 숱한 인연들이 파생하는 만남 속에 인간의 다양한 얼굴들을 보게 된다자아 정체성을 드러내지 않고 본질을 숨긴 채 가식적인 만남을 잇더라도 어느 순간 한 사람의 실존적인 모습은 드러날 때가 있다신뢰하였던 이가 속물적인 면을 드러내며 자본에 잠식당하는 모습에서는 환멸을 느끼며 만남의 끈을 놓기도 하고 지금의 입지 때문에 관계를 끊지 못한 채 이어갈 때도 있다청소년 시절 이 소설을 읽었을 때는 귀공자 모습을 하고 선을 실현하는 일에 관심을 두고 지내는 고결한 알료샤에게 매료되어 그를 가슴에 품고 지낸 적이 있었다.


   술독에 빠져 지내던 이웃 아저씨는 술만 마시면 농기구를 들고 가족들 모두 죽이겠다고 설치는 바람에 대문을 걸어 잠그고 방안에 불을 끈 채 아저씨가 지쳐 스러져 잠들기를 바랐던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두려움 가득한 주사가 동네를 뒤흔들 때면 난동 부리는 아버지가 존재하지 않는 게 다행이라 여기며 일찍 아버지를 여읜 슬픔을 달래기도 했다쾌락적 욕망에 탐닉하여 방탕한 생활을 일삼는 표도르 파블로비치의 행적은 어디에서든 구원받기 힘들어 보인다그는 안정적인 생활과는 거리가 있는 식객 신세에서 벗어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모으는 탐욕적 생활에 빠져 자기 파멸을 초래하였다아버지로서 자식을 양육하기 위한 역할은 차치하고 아버지에 대한 자식들의 원망과 증오만 키워왔다.


  표도르 파블로비치는 지참금을 챙기기 위해 첫 부인과 보쌈 결혼하였지만그녀는 세 살배기 드미트리를 그에게 남겨 두고 도망쳐버려 애정 없는 결혼은 파기되었다가여운 아이를 하인인 그리고리 부부가 거둬들여 키웠는데 큰 아들에게는 아버지의 피가 많이 흘러서인지 건실한 청년으로 자라지 못했다이후 표도르는 두 번째 부인 사이에서 아들 둘을 얻었지만 이 또한 화목한 가정의 형태와는 멀었다두 번째 부인이 세상을 뜨고 영민한 아들들은 남의 손에 키워질 운명에 놓였지만친부는 이를 반색하며 수중에 남은 돈을 간수하는 일에 관심을 두었을 뿐이다.


   연어가 강물을 거슬러 올라 산란하고 죽어가듯 세 형제의 귀향은 서로 다른 의미를 담고 있었다드미트리는 방탕한 생활을 잇다 친부에게 상속된 재산을 찾기 위해 아버지를 찾았고박학한 무신론자인 이반은 드미트리 형의 부탁이 있었고알료샤는 어머니의 묘에 참배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였다선량한 알료샤의 생각과는 달리 아버지는 아내가 죽은 뒤 묘를 한 번도 찾아보지 않아 그 위치마저 잘 모르는데서 비정함의 바닥을 여지없이 드러내 씁쓸함을 더했다우연한 회동으로 한 가족이라는 공동체에 묶인 이들은 사생아로 태어나 요리사로 일하는 스메르쟈코프의 존재까지 알게 되었다.


   각자 있는 자리에서 무탈하게 지낼 수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스럽다고 스스로를 위로할 때가 있는데 정 없이 지내온 형제들 간의 형식적인 관계가 그러하다방탕한 생활로 돈을 밝히는 성향이 비슷한 아버지와 아들은 첨예한 갈등을 잇다 마찰을 빚기 일쑤였고이를 수습하는 중재자 알료샤는 지쳐갔다그는 탐욕과 어리석음으로 가득한 이들이 표독스러운 눈빛을 이글거리는 집과는 대비되는 수도원으로 들어갔지만 수도사로 가는 길에 제동을 거는 고민은 끊이지 않았다고리대금업으로 많은 돈을 모은 아버지의 재산은 상속자인 형제들에게 유산으로 남겨질 자본을 둘러싸고 형제들은 신경전을 벌이기도 하였다돈을 탐내던 드미트리는 유산을 상속받은 카체리나와 약혼한 사이지만 아버지 표도르가 빠져 있는 그루센카는 그의 사업 파트너이자 큰아들이 사랑하는 여자이다아들과 아버지가 한 여자를 사이에 두고 쟁탈하듯 서로 질시하고 반목하는 모습에서는 약육강식의 동물세계를 가늠케 한다박학다식한 무신론자 이반은 자기 편견에 빠져 타인의 생각은 수용하지 않지만 형의 약혼녀인 카체리나를 사랑하는 자신과 맞닥뜨릴 때 심리적 균열은 커진다.


   방탕한 호색한저열한 희극배우라고 아버지를 부르는 드미트리의 마음속은 평정심과는 거리가 멀어진다악마와 신이 싸우는 전쟁터 같은 마음은 카체리나를 손에 넣고 그녀가 준비한 지참금 6만 루브를 챙기고 싶은 이반에게도 자리했다순간의 욕정에 사로잡힌 표도르가 그루센카를 집으로 유인한 사이 아버지가 마련한 돈을 손에 넣으려는 드미트리는 친부 살해범으로 몰려 법정에서 심판을 기다리고 있다자신의 수호천사라 여기는 알료샤에게 그동안 있었던 이야기를 전하며 무죄를 주장하지만 증거는 충분치 않아 배심원들의 공감을 끌어내지도 못하였다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버지 살해 현장에 있었던 증인 스메르쟈코프가 재판 하루 전에 자살하여 진실은 미궁 속으로 빠져들고 말았다.

 

  ‘아무에게도 죄를 돌리지 않기 위해 나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는 문구를 남기고 자살한 사생아는 스스로 모진 목숨을 끊으면서 카라마조프가라는 검은 얼룩으로 가린 때를 벗기려 했는지도 모른다표도르의 학대를 견디고 세상 사람들의 모멸을 겪으며 세 형제들과 수평적 관계를 이루지 못한 데서 오는 분노가 농축되어 아버지를 살해한 스메르쟈코프는 자기 파멸과 함께 다른 형제들의 파멸로 이끌었다정신적으로 쇠약한 이반은 악마의 환영을 보면서 점점 피폐해져갔고드미트리는 유형을 받고 아버지를 죽이려 했던 마음까지 단죄의 대상이라면 기꺼이 받아들이겠다며 체념했다.


   태어난 자는 반드시 죽는다는 생자필멸의 법칙에서 자유롭지 못한 인간은 여려 유형의 죽음으로 새로운 눈을 뜨게 한다유한한 인생에서 의미를 발견하며 가치 있게 살아가는 일은 영혼의 본질로 남아 세상을 사는 지혜를 길러준다스네기료프는열병으로 사경을 헤매던 아들 일류샤의 병세가 갈수록 악화되지만 손을 쓸 수도 없는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기도뿐이었다신에게 의탁해서라도 구원받고 싶은 바람이 크지만 신은 도움을 바라는 모든 이들의 청을 들어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료샤 역시 드미트리 형의 유죄 판결 후 그에게 탈출을 강권하지만 성공 가능성은 희박해 보였다수도사로 악의 수렁에 빠져 있는 이들과 함께 하려는 선의를 실현함으로써 평화로운 세상을 꿈꾸지만알료샤의 소망은 탐욕으로 얼룩진 물신주의에서 이뤄지기는 힘들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부당함을 바로 잡으려는 소수의 움직임 속에 희망은 선물처럼 올 수 있다고 믿으며 좌절의 늪에서도 새로운 이상을 꿈꾼다일류샤의 주검을 묻고 오는 길젊은 영혼들이 손을 맞잡고 애도하며 욕망에 찌들어 지낸 낡은 사고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제대로 된 꽃을 피우지도 못한 채 한 알의 밀알처럼 떨어진 어린 영혼이  싹을 틔우는 고귀한 생명체로 자라 맑은 영성으로 추악한 세상의 얼룩을 지워가길 바란다. 변해서는 안 될 부자 사이에 지켜져야 할 본연의 가치를 떠올리며 서로를 존중하며 상생하는 삶의 본질을 일깨운다. 

 

https://blog.naver.com/nopark99/22131521375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늘의 민수 문지 푸른 문학
김혜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7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막역하게 지내는 친구의 아들, 아끼는 제자의 남편, 사춘기 갈등과 방황이 깊었던 우리 반 민수가 있어서인지 주인공 이름이 낯익다. 연재되는 웹툰을 보고 잠자리에 들 정도로 애독자들의 관심 속에 지식 정보화 사회의 만화 시장은 커졌다. 소장하고 싶은 애니메이션 영화를 적은 돈으로 다운로드하여 볼 수 있는 기회를 얻은 열다섯 살 주민수에게 날아든 저작권 위반 혐의 고지는 감당하기 힘든 계고장이었다. 아버지를 여의고 아들을 힘들게 키우는 어머니에게 벌금을 물어야 한다고 말하기에는 염치가 없었던 터라 민수는 자신의 힘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간절히 바라면 이뤄지는 법이다. 김 감독의 대학 강의를 앞두고 인터뷰가 내정된 날 민수는 경진과 함께 그곳을 찾았다. 저작권을 갖고 있는 김 감독에게 다운로드한 경위를 진솔하게 담은 편지를 적어 현안을 해결하려는 마음이 앞섰다. 김 감독과 함께 일을 하는 최 피디는 고소를 취하하는 대신 김 감독의 작업실에 들러 여름방학 동안 그의 심부름을 하면 된다고 했다. 그 내용을 문서화하여 증빙 서류를 작성한 주민수는 정해진 시간 김 감독의 작업실을 찾았다.


  유명세를 떨치는 애니메이션 감독으로 세계적인 위상을 갖는 예순두 살 김민수는 고집불통에다 무절제한 생활 습관으로 지인들의 걱정과 염려를 안고 산다. 지금껏 결혼도 안 하고 애니메이션 감독으로 한 우물을 깊게 판 김 감독은 전문적인 식견을 가지고 있지만 대중들과 어울리며 살아가는 데는 불편함이 많았다. 그와는 달리 열다섯 살 주민수는 일찍 철이 들어서인지 사려 깊게 행동하며 상대를 배려하는 모범생으로 고생하는 엄마를 실망시키지 않으려 노력한다. 카페 주인 여진을 마음에 두고도 표현에 인색한 김 피터에게 연애와 관련한 조언을 서슴지 않고 관계 발전을 위해 적극적으로 협조하는 대목에서는 미소가 번진다.


  자신이 원하는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상을 차지하는 피터 김과 함께 하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주민수는 만화를 그리며 그것을 영상에 담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웹툰 작가가 되고 싶은 민수는 맹맹과 마요를 그리면서 피터 킴의 조언을 들으며 캐릭터에 걸맞은 성격을 일관성 있게 형상화하는 일에 골몰하며 자신의 꿈을 키워갔다. 하지만 민수의 어머니는 아들의 꿈이 갖는 경제적 불확실성을 들어 아들이 공부를 열심히 하여 안정적인 직장에서 일하기를 바랐다. 그래서 어머니는 아들이 참가한 과학 캠프에서 공학 관련 지식을 폭넓게 접하고 일상에 접목하여 생각의 영역을 확장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컸다.


  고등학생 웹툰 작가로 이름 난 데보라와의 인터뷰 행사와 과학캠프가 겹쳐 작가와의 만남 자리에 가지 못한 채 울며 겨자 먹기로 드론을 만드는 일에 함께 하지만 마음이 자리를 이탈한 지 오래였다. 일이 생겨 카페 주인과의 약속이 틀어진 피터 김은 민수가 보낸 문자를 보고 그럴싸한 거짓말로 그를 캠프장에서 빼와서는 일탈의 시간을 보낸다. 그 후 일이 꼬여 욕을 얻어먹게 되었지만 두 민수는 이를 계기로 더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며 자신이 원하는 바대로 살아야 한다는 점에 공감하며 동질감을 형성했다.


  주민수는 리피-작은 피터 김-’라는 이름으로 온라인에 웹툰을 올려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여 간절히 만나고 싶은 멘토 데보라와 함께 하는 인터뷰 자리에 함께 하게 되었다. 인터뷰를 마치고 못다 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기자의 말에 피터 김과의 만남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했던 말이 영화 상영 예정작에 대한 기사로 작성돼 피터 김에게 호된 질책을 받고는 다시 만나지 못했다. 기자가 자신의 부탁을 들어줄 것이라 믿었던 자신에 대한 질책이 커질수록 김 감독에 대한 송구스러움이 눈 덩이처럼 시리게 커졌다.


   3년이 흘러 고등학교 2학년이 된 민수는 바쁜 일상을 보내면서도 스토리가 있는 만화를 그리고 애니메이션 영화를 관람하며 자신의 꿈을 키워갔다. 마음에 두고 있던 보리와도 잘 지내며 함께 본 김민수 감독의 애니메이션 영화에 몰입하여 엔딩크레디트가 올라가는 시간까지도 집중하고 있을 때,

  “내 친구 민수에게

  라는 문구가 보였다. 어쩌면 김 감독이 작업실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곳으로 달려갔을 때 피터 김은 리피 김을 한눈에 알아보고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뎌 가까이 다가섰다.


   40년 넘게 벌어지는 나이 차 못지않게 성격도 판이한 두 민수가 함께 했던 시간은 경계의 영역을 걷어낸 자리에 녹아 있는 두터운 우정의 시간이었다. 한 방향을 보면서 지내온 김 감독이 자아의 본질을 회복하고 나답게 살아가는 모습에 감화를 받은 리피는 마음이 시키는 대로 실천하며 살아갈 용기를 얻었다. 아들을 위해 고생하는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려 어머니가 정해놓은 길을 따라 걸으려 했던 점을 수정하고 자신이 원하는 길을 걷기 위해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지려는 어른스러움을 읽으며 어떤 꿈을 꾸고 사는 게 행복할 것인지 반문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리의 별 - 제4회 황산벌청년문학상 수상작
강태식 지음 / 은행나무 / 2018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떤 것을 애착하지 않고 걸림 없이 살아가려는 바람과는 대비되는 삶을 잇고 있다. 귀에 거슬리는 말을 들으면 그것이 부메랑 되어 가슴 속 옹이로 박히고 만다. 적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싶은 마음에 반응을 더디게 보이면 그 사이를 참지 못하고 안달하는 친구의 영혼 없는 전화 울림에 이 지구를 잠시라도 떠나 홀로 있고 싶어진다. 오랫동안 친구라고 생각했던 이의 경솔한 행동에 상처받으며 그것도 하나 너그러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옹졸한 자신이 미워질 때 <<리의 별>>을 만났다.


  규칙적인 생활에 염증을 느끼던 이가 일상의 틀을 깨고 무뎌진 감성을 일깨우며 새로운 공간을 찾아 경험하는 여행은 기쁨을 준다. 수학여행을 계획할 때 학생들은 유원지에서 하루 종일 놀 수 있기를 바라며 놀이동산을 꼭 넣기를 바란다. 보기만 해도 아찔한 놀이기구를 타기 위해 줄을 서는 피로를 감수하면서도 순간의 스릴을 위해 두세 시간을 투자한다. 젊은 사업가 기무라 겐이치로는 상층 흡수 고가격 전략을 내세운 투자 목적으로 유원지 행성 플랜A’를 만들었다. 터무니없는 이용료를 지불하면서 행성대관람차에 오른 이들은 오염을 벗어나 찌든 심신을 달래며 황홀경에 빠져들었다.


  정체불명의 바이러스 출현으로 플랜A는 의료진조차 통제 불능의 아노미 상태로 치달았고 화려했던 시대의 막을 내렸다. ‘는 무인행성이 되어버린 플랜A에 갇혀 절대고독의 시간을 보내는 유일한 사람으로 생명의 끝을 향해 가고 있을 뿐이다. 행성대관람차에 갇힌 채 플랜A 주변의 궤도를 끝없이 돌고 있는 리는 전화로 다른 행성에 사는 타인들과 소통하며 절대고독의 시간을 소모해간다. 리와 전화로 소통한 이들의 대화 내용을 들려주며 삶의 애환을 드러내며 좋은 시절도 언젠가는 끝이 나고 만다는 점을 각인시켜 준다.


  리와 전화 체스를 두는 기무라 다로는 혼자서 차지하는 면적과 고독은 비례함을 절감하며 무한한 고독에 잠식되어 깨어나지 못할 것만 같았다. 물신주의자들은 자본주의와 손을 잡고 걷잡을 수 없는 탐욕을 내세워 재화를 얻으려는 데 급급하고 있다. 인간의 물신성 아래에 놓은 사람들은 자멸을 초래하여 인간적인 면모를 회복하기는커녕 자아의 본질을 망각한 채 시간을 보낼 뿐이다. 요금을 결제하지 않으면 그 어느 것도 이용할 수 없는 규칙이 적용되는 곳에서 돈은 많을수록 누릴 수 있는 혜택이 늘어났다.


  '나도 내가 누군지 몰라.’

  유령처럼 투명 인간이 된 기분으로 지내던 이들에게 누군가가 보내는 대화의 시도는 순간을 영원처럼 살게 하는 찰나의 위력을 발휘한다. 주체할 수 없는 고독을 견디기 위해 전화를 건 리는 통신 판매원 도리스 브라운의 마음을 움직였다. 아들 마리오를 찾는 로드리게스, 플랜A의 존폐여부를 결정지을 행성심사대의 구성원인 박사들, 알코올중독자 양 웬리는 자아 정체성 회복과는 거리가 멀어졌다. 수많은 이들과 관계를 형성하며 지내는 지구인의 고독은 광활한 우주에 한 점에 지나지 않는 ''와의 통화를 통해 고독을 덮어갔다. 우주의 행성에 홀로 갇혀 자신의 호흡수와 맥박수를 헤아리며 종국을 향하는 리의 모습을 떠올리며 혼자 지내야 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힘들어질 것이라는 생각이 커진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잊힌 행성 플랜A에서 홀로 수십 년을 버티며 살고 있는 ''의 모습에서 고독에 몸부림치는 우리의 모습이 겹쳐져 처연함을 더한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도 들어줄 대상이 없어 입을 다문 채 냉가슴을 앓는 이들은 피폐해져가는 심신을 부여잡고 이성을 앞세워 살아갈 뿐이다. 머리로 이해득실을 따지며 물신주의로 치닫기보다는 유대와 협력을 통한 상생의 노력을 기울일 때 고독은 조금씩 밀려날 것이다. 소통의 부재로 단절된 삶을 사는 현대인들이 불편함을 감수하더라도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대화하며 편견과 아집에서 벗어날 때 가슴으로 소통하고 교감하는 사람으로 자리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태백산맥 세트 (반양장) - 전10권 조정래 대하소설
조정래 지음 / 해냄 / 2007년 1월
평점 :
절판


   배우며 가르치는 보람을 일깨우는 교사로 10대 청소년들과 생활한 지 28년째교과서 밖의 책을 읽고 사유하는 표현의 효용적 가치에 비중을 두는 시간이 길어졌습니다책을 읽으며 독해력을 기르고 책 속에 빠져듦으로 집중력을 길러내는 시간은 자발적인 참여로 지속될 때 성취는 커져갔습니다도서실 운영을 맡아 도서부 학생들과 책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은 우리를 성장케 하였습니다동일한 책을 읽고 토론하는 시간은 서로의 생각을 수용하며 외연을 확장해가는 활동으로 미처 생각지 못한 일들을 돌아보게 하는 시간이기도 하였습니다문학작품을 수용하여 의미를 재구성하는 일은 간접 경험의 영역을 확대해 타인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 인간관계를 개선함으로써 복잡한 세상을 살아가는 힘을 길러줍니다.

 

   세월이 흐른 만큼 경험으로 알아가는 공부가 그 무엇보다 소중함을 일깨우면서도 직접 경험으로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에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소홀해질 때가 있습니다한계를 뛰어넘는 방편으로 책을 읽으며 지내는 일상에 만난 대하소설 <<태백산맥>>은 분단 조국의 아픔을 고스란히 전하며 통일을 염원하는 대장정에 나서서 분단국가로 동강 난 민족의 허리를 잇는 일이 소중함을 일깨웁니다여순 사건을 계기로 흑백으로 나뉘어 쫓고 쫓기는 상황에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분단국가의 아픔 너머 순수한 사랑이 펼쳐져 가슴을 쓸어내리게 하는 소설을 읽으며 태백산맥 문학관으로 떠나는 문학기행을 꿈꿔 왔습니다사제동행 독서 토론 모임을 통해 교과서 너머 세상을 호흡하는 일에 함께 하고 싶은 열망이 2013년 10월 8일 문학기행으로 모아졌습니다.

 

    문학관에 들르기 전 일본식이 가미된 현 부잣집 마당에 들러 지주와 소작농의 관계를 다룬 배우들의 공연을 보면서 작품 속에 그려진 소작농들의 아픔을 들여다볼 수 있었습니다중도 너른 들판을 차지하고도 더 많은 부를 축적하기에 혈안이 된 현 부잣집 대감에게 소작료를 지불하지 못해 딸 이쁜이를 바쳐야 했던 돌쇠 아내의 오열하는 소리 너머 관객들 사이에서는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예나 지금이나 생존에 필요한 식량을 확보하지 못한 빈농가의 식구들이 겪어야 했던 아픔은 지주들의 탐욕에 맞섰던 소작농들의 쟁의가 떠올랐습니다서너 사람들의 기름진 삶을 위해 수많은 사람들은 인간 이하의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언덕을 깎아 놓은 형상을 본뜬 태백산맥 문학관의 외관은 일제 강점기 매몰 시대를 상징하며다시 그것을 바로 세우려는 염원을 담아 건립되었다는 문화 해설사의 안내로 문학관 탐방은 시작되었습니다. 1층 전시실에 들어서면 태백산맥 10권이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을 오롯이 담은 작가의 노력이 전시된 친필 작가 노트에 고스란히 묻어났습니다퇴고를 거의 하지 않고 완성작을 선보이는 작가답게 등장인물 관계도지리산 지도배경 소개 등 어느 것 하나 놓치지 않고 정밀하게 담은 창작노트는 치열하게 글 쓰는 이의 단면이 고스란히 전해졌습니다. 4년 동안의 자료 조사에 이어 6년 간 집필한 대하소설 <<태백산맥>>은 독자들 곁으로 온 것입니다.

 

   자기네 이익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잔학한 친일 반민족 세력을 청산하지 못한 채 제국주의의 야욕에 편승하는 기회주의자들은 득실거렸습니다일제 식민 통치 종식으로 해방을 맞았지만 신탁 통치와 단독정부 수립 반대를 둘러싼 좌익과 우익의 첨예한 대립은 동족 간의 분쟁으로 많은 사상자를 낳았습니다제주도에서 일어난 4·3 항쟁 진압 명령을 거부한 군인들을 진압하는 과정에 무고한 양민까지 학살하였습니다잇달아 희생자들이 속출한 1948년 여순 사건에서부터 6·25 전쟁의 잔혹한 역사의 상흔을 <<태백산맥>>은 아우르고 있습니다탐욕스러운 지주 · 국민들의 안위를 저버리고 잇속을 채우는 권력자들에 맞서는 사회적 약자들의 연대는 차별 없는 세상 건설을 위한 일로 귀결되었습니다

 

   자신의 고달픔은 감수하고 조직의 이익에 봉사하는 일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민초들의 활약은 목숨을 거는 행동으로 이어졌습니다인간답게 살아갈 평등한 세상을 꿈꾸며 사사로운 안위와 행복은 뒤로 한 채 산으로 들어가 해방구에서의 빨치산들의 활동과 이들을 추적하여 진압하려는 토벌꾼들의 줄달음은 긴장 속에 이어집니다비정하리만치 참혹한 주검을 목도하며 서로를 겨냥하는 반목과 질시는 무차별 탄압으로 목숨을 앗아가는 일도 서슴지 않았습니다이념으로 무장한 채 사상적 지도자가 주창하는 대로 움직이며 살벌한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분규 너머에도 사랑이라는 원초적인 감정은 싹텄습니다.

 

   양조장 집 넉넉한 가정에서의 편안한 삶과는 거리를 둔 정하섭은 작은 스탈린 염상진과 함께 하는 조직원으로 활동하며 사상적 삶을 실천하였습니다박꽃 같은 여자는 사랑해서는 안 될 그와 정을 나누고 사랑으로 잉태한 생명을 옥에서 낳는 기박한 운명 속에서도 그와의 정신적 합일을 지향했습니다갖은 고문과 학대가 질곡의 시간 속에 묶일수록 정하섭을 향한 소화의 사랑은 외경심으로 굳어졌습니다감염성 열병으로 운신하기 힘든 상황에 놓인 손승호에게 낡은 담요를 내밀며 아픔을 나누려는 박난희동지애로 결속된 이지숙은 어깨 총상으로 치료 중인 안창민에게 수혈하며 그의 건강 회복을 도왔습니다이승에서 못다 한 사랑을 저승으로 유예할 수밖에 없던 천점바구와 김혜자는 비련의 사랑으로 갈무리되었습니다

 

    ‘귓밥이잘되야부렀소밥도 안 태이게 혀준 귓밥달고 댕기먼 머헐 것이요무겁기만 허제.’

전투 중 총상으로 자신의 귓불이 날아간 줄 몰랐던 외서 댁은 짓밟힐수록 맹렬히 일어나는 들풀처럼 강한 생명력을 드러냈습니다.

   ‘지주나 부자들은 인권평등을 방해하는 우리의 적이다!’

   사범학교를 졸업한 재원이었지만 교단에서 후학들을 양성하는 일보다는 자신의 신념과 이상을 실천하는 일이 염상진은 가치 있다고 보았습니다사사로운 감정을 넘어서는 당략에 부합하는 빨치산 대장으로 활동하다 생을 마감한 그의 의연함은 개인의 서사를 넘어섭니다대장의 뜻을 따르며 갖은 고초를 달게 받는 혁명가로 빨치산들이 자멸하는 과정에서도 끝까지 살아남은 하대치는 신봉하던 이념의 가치가 곤두박질치는 와중에도 흔들림 없이 새로운 역사를 잇는 주체로 오롯이 자리합니다분단국가로 동강 난 민족의 허리를 잇는 일이 소중함을 알고 통일 주체로 나서 화합의 시대로 이끌어야 할 사명이 살아남은 자에게는 남아 있습니다.

 

   이념의 소용돌이 속에 상충하던 이들은 갖은 고초를 겪으며 형용하기 힘든 주검으로 피안의 세상으로 갔습니다사선을 넘나드는 위기 상황 속에서도 인간의 힘으로 뒤바꾸어야 할 역사적 진보를 이들은 염두에 두었습니다어둠을 밝히는 촛불처럼 살다 죽어간 이들은 살아남은 자들에게 역사의 주인으로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길 위에 서야 한다고 말합니다.

 

   질곡의 시대 광복의 기쁨을 누리기도 전, 첨예한 좌우익의 대립은 숱한 사상자를 내고 한국 전쟁으로 분단의 고착화를 야기하였습니다. 서로를 향한 반목과 질시에서 벗어나 통일된 나라를 세우기 위한 정신적 기틀을 놓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여깁니다. 지난 역사의 아픔을 덮기보다는 드러내 겪어보지 못하였던 민족적 아픔을 이해함으로써 정치적 악순환이 일어나지 않도록 할 당위성이 우리에게는 있습니다. 벌교읍을 포근히 감싸고 있는 제석산은 오늘도 빨치산과 토벌대원들의 총격전으로 피 흘리며 죽어간 이들의 혼령을 안고 역사적 아픔을 치유하는 길 위에 서라고 말합니다. 여러 산줄기가 이어져 산을 형성하듯 자아 정체성을 찾아가는 청소년 시기를 함께 하는 교사로 역사적 사건 이면에 자리한 사실을 바탕으로 한 작품을 공유합니다. 도서실 수업 시간 학생들과 더불어 책을 읽고 작품 속 등장인물들의 삶을 바탕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고민하는 과정에 삶의 희망을 발견하고 싶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포 아이 고 - 내 남편의 아내가 되어줄래요
콜린 오클리 지음, 이나경 옮김 / arte(아르테) / 2015년 7월
평점 :
절판


  마흔 고개를 넘으면서 회복 탄력성은 떨어져 생기 있게 움직이며 지내던 30대와는 달리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변화를 자주 느끼던 중 생애 전환기 건강 검진 대상자에게 통지되는 안내문을 받았다. 국민 건강의 질적 향상을 도모하고 질병 치료에 드는 비용을 줄이기 위해 국가 차원에서 행하는 검진을 받기 위해 인근 도시의 종합병원으로 향하였다. 같은 연배의 검진 대상자들은 검진 표를 들고 순번대로 움직이며 검사에 응하였다. 위내시경 수면 검사를 받고 깨어났을 때 담당 의사는 위에 용종이 발견되어 그것을 따로 떼어내 조직 검사를 해야 한다며 그 결과는 열흘 뒤에나 알 수 있다고 하였다. 생각지도 못한 조직 검사는 비극적인 상상을 불러일으켜 평정심을 유지하기는커녕 극심한 공포에 짓눌려 결과가 나오기까지 애간장을 졸여야 했다. 암으로 판명되어 항암 치료를 받는 고통보다 어린 자식들이 눈에 밟혀 잠을 이루지 못했던 시간이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낸다. 결과는 우려할 만한 일이 아니라 다행이었지만 서른도 안 된 데이지의 암 재발은 불가항력적으로 감내해야 하는 재앙처럼 여겨졌다.

 

   스물세 살의 데이지는 불의한 사고로 다친 팔을 치료하던 종 종양을 발견해 종양 절제술 이후 항암 치료를 끝내고 무탈한 일상을 회복하여 부부는 신혼의 행복을 찾아갈 것처럼 보였다. 수의사로 동물들을 치료하고 돌보며 수의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잭과 심리학 석사 과정을 밟고 있는 데이지는 타자에 대한 관심과 애정으로 이해의 폭을 넓히는 일에 적극적이었다. 학위 논문을 완성하고 대학원을 졸업한 뒤 부부는 사랑의 열매인 아기를 가지려고 했지만 가혹한 운명의 신은 예고 없이 유방암 재발과 다른 기관으로 암이 전이돼 길어야 4~6개월이라는 시간을 유예했다. 그동안 미뤄두었던 계획을 행할 수 없는 시간이 긴박하게 다가선 만큼 부부는 걷잡을 수 없는 감정의 파고를 억누르며 성숙한 언행으로 하루하루를 보내야 했다.

 

   암 재발을 막기 위해 했던 일련의 활동들이 무위로 돌아가 허탈감에 젖을 새도 없이 데이지는 햇빛에 스러지고 말 이슬처럼 사위어갈 목숨을 부지하려고 안간힘을 쓰기보다는 홀로 남겨질 잭을 위해 그의 아내를 구하는 계획을 실행하였다.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전문가이지만 아내의 손을 필요로 하는 일이 많은 남편의 성향을 이해하고 부족함을 채워 줄 새 아내를 구하는 일은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선고였다. 남편의 새 아내에게 필요한 자질을 챙기며 온라인 커뮤니티에 남편의 사진을 올리는 아내의 비통함에 전율할 수밖에 없었다.

 

  ‘잭이 혼자 남으면 어떻게 될까?’

  데이지의 염려와 고민은 치료 불능의 상태에 이르고 만 자신의 고통에 귀착하기보다는 홀로 남을 남편의 원활한 생활에 집중되어 있었다. 생자필멸(生者必滅)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유한한 인생에 대한 통찰로 생에 집착하기보다는 스스로 남은 삶을 정리하면서 살아남은 자를 배려하는 데이지의 넉넉한 마음은 남편의 새 아내를 구하는 요건에서도 드러났다. 그녀는 교감하며 지내던 케일리와 함께 잭에게 걸맞은 아내를 구해주기 위해 정성을 다하는 모습이 웃음을 자아낼 때도 있지만 기저에는 슬픔의 깊이가 더한다. 시한부 삶을 선고받은 뒤 데이지는 돌연한 교통사고로 남편을 여의고 딸을 키워냈던 그녀의 외로움을 통찰하며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리는 성숙함을 보였다.

 

   고작 스물일곱! 공부 때문에 미루어 두었던 일들이 줄지어 서있는 원하는 바를 접고 오로지 한 가지 일을 계획하는 동안 데이지의 바람은 잭이 잘 지낼 수 있는 있는 방안을 찾는 일에만 집중하였다. 곁에 있을 것이라 여겼던 한 사람이 사라지고 난 뒤의 불가피한 현실을 준비할 수 있도록 그를 밀어내는 그녀의 행동은 남은 정을 떼려는 의도처럼 비춰져 처연함이 더했다. 심사숙고하여 잭의 배우자로 결정한 패멀라는 남편과 함께 강아지 구조대에서 자원봉사 활동을 벌여온 사이다. 둘의 친밀함을 토대로 상상해내는 세상은 자신이 채울 수 없는 단란한 가족의 일상이 갖는 쓰라린 즐거움이었다.

 

   생명적 유기체는 누구든 태어남과 동시에 죽음으로 향하는 여정에 놓여 있음은 부인할 수가 없다. 이틀이 멀다하고 접하는 부음(訃音) 중에서도 젊은 생명이 제 빛을 발하기도 전에 세상과 결별하였다는 소식은 헛헛함에 휩싸이게 한다. 스물 셋에 간암으로 세상을 떠난 제자의 상가를 찾았을 때 남은 식구들과 친구들은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오열하는 진풍경은 눈 뜨고 볼 수 없는 참척의 광경이었다. 다양한 죽음을 목도하면서 슬픔에 젖을 때마다 불가항력적인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며 살아가야할지 고민한다. 순연한 흐름으로 죽음을 수용하며 남은 자들을 배려하는 넉넉한 사랑은 견지하지 못하게 되더라도 불평을 늘어놓기보다는 푸념을 거두고 현실을 받아들이는 일부터 시작하고 싶다. 데이지와의 짧은 결혼 생활을 그리워하고 추억하며 살아갈 잭의 입가에 번지는 엷은 웃음은 인연의 고리로 잔잔한 울림을 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