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세트 - 전3권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김희숙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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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세상에 나와 부모의 보살핌 아래 있던 이들은 성장하여 경제적 활동을 잇는 동안 숱한 인연들이 파생하는 만남 속에 인간의 다양한 얼굴들을 보게 된다자아 정체성을 드러내지 않고 본질을 숨긴 채 가식적인 만남을 잇더라도 어느 순간 한 사람의 실존적인 모습은 드러날 때가 있다신뢰하였던 이가 속물적인 면을 드러내며 자본에 잠식당하는 모습에서는 환멸을 느끼며 만남의 끈을 놓기도 하고 지금의 입지 때문에 관계를 끊지 못한 채 이어갈 때도 있다청소년 시절 이 소설을 읽었을 때는 귀공자 모습을 하고 선을 실현하는 일에 관심을 두고 지내는 고결한 알료샤에게 매료되어 그를 가슴에 품고 지낸 적이 있었다.


   술독에 빠져 지내던 이웃 아저씨는 술만 마시면 농기구를 들고 가족들 모두 죽이겠다고 설치는 바람에 대문을 걸어 잠그고 방안에 불을 끈 채 아저씨가 지쳐 스러져 잠들기를 바랐던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두려움 가득한 주사가 동네를 뒤흔들 때면 난동 부리는 아버지가 존재하지 않는 게 다행이라 여기며 일찍 아버지를 여읜 슬픔을 달래기도 했다쾌락적 욕망에 탐닉하여 방탕한 생활을 일삼는 표도르 파블로비치의 행적은 어디에서든 구원받기 힘들어 보인다그는 안정적인 생활과는 거리가 있는 식객 신세에서 벗어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모으는 탐욕적 생활에 빠져 자기 파멸을 초래하였다아버지로서 자식을 양육하기 위한 역할은 차치하고 아버지에 대한 자식들의 원망과 증오만 키워왔다.


  표도르 파블로비치는 지참금을 챙기기 위해 첫 부인과 보쌈 결혼하였지만그녀는 세 살배기 드미트리를 그에게 남겨 두고 도망쳐버려 애정 없는 결혼은 파기되었다가여운 아이를 하인인 그리고리 부부가 거둬들여 키웠는데 큰 아들에게는 아버지의 피가 많이 흘러서인지 건실한 청년으로 자라지 못했다이후 표도르는 두 번째 부인 사이에서 아들 둘을 얻었지만 이 또한 화목한 가정의 형태와는 멀었다두 번째 부인이 세상을 뜨고 영민한 아들들은 남의 손에 키워질 운명에 놓였지만친부는 이를 반색하며 수중에 남은 돈을 간수하는 일에 관심을 두었을 뿐이다.


   연어가 강물을 거슬러 올라 산란하고 죽어가듯 세 형제의 귀향은 서로 다른 의미를 담고 있었다드미트리는 방탕한 생활을 잇다 친부에게 상속된 재산을 찾기 위해 아버지를 찾았고박학한 무신론자인 이반은 드미트리 형의 부탁이 있었고알료샤는 어머니의 묘에 참배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였다선량한 알료샤의 생각과는 달리 아버지는 아내가 죽은 뒤 묘를 한 번도 찾아보지 않아 그 위치마저 잘 모르는데서 비정함의 바닥을 여지없이 드러내 씁쓸함을 더했다우연한 회동으로 한 가족이라는 공동체에 묶인 이들은 사생아로 태어나 요리사로 일하는 스메르쟈코프의 존재까지 알게 되었다.


   각자 있는 자리에서 무탈하게 지낼 수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스럽다고 스스로를 위로할 때가 있는데 정 없이 지내온 형제들 간의 형식적인 관계가 그러하다방탕한 생활로 돈을 밝히는 성향이 비슷한 아버지와 아들은 첨예한 갈등을 잇다 마찰을 빚기 일쑤였고이를 수습하는 중재자 알료샤는 지쳐갔다그는 탐욕과 어리석음으로 가득한 이들이 표독스러운 눈빛을 이글거리는 집과는 대비되는 수도원으로 들어갔지만 수도사로 가는 길에 제동을 거는 고민은 끊이지 않았다고리대금업으로 많은 돈을 모은 아버지의 재산은 상속자인 형제들에게 유산으로 남겨질 자본을 둘러싸고 형제들은 신경전을 벌이기도 하였다돈을 탐내던 드미트리는 유산을 상속받은 카체리나와 약혼한 사이지만 아버지 표도르가 빠져 있는 그루센카는 그의 사업 파트너이자 큰아들이 사랑하는 여자이다아들과 아버지가 한 여자를 사이에 두고 쟁탈하듯 서로 질시하고 반목하는 모습에서는 약육강식의 동물세계를 가늠케 한다박학다식한 무신론자 이반은 자기 편견에 빠져 타인의 생각은 수용하지 않지만 형의 약혼녀인 카체리나를 사랑하는 자신과 맞닥뜨릴 때 심리적 균열은 커진다.


   방탕한 호색한저열한 희극배우라고 아버지를 부르는 드미트리의 마음속은 평정심과는 거리가 멀어진다악마와 신이 싸우는 전쟁터 같은 마음은 카체리나를 손에 넣고 그녀가 준비한 지참금 6만 루브를 챙기고 싶은 이반에게도 자리했다순간의 욕정에 사로잡힌 표도르가 그루센카를 집으로 유인한 사이 아버지가 마련한 돈을 손에 넣으려는 드미트리는 친부 살해범으로 몰려 법정에서 심판을 기다리고 있다자신의 수호천사라 여기는 알료샤에게 그동안 있었던 이야기를 전하며 무죄를 주장하지만 증거는 충분치 않아 배심원들의 공감을 끌어내지도 못하였다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버지 살해 현장에 있었던 증인 스메르쟈코프가 재판 하루 전에 자살하여 진실은 미궁 속으로 빠져들고 말았다.

 

  ‘아무에게도 죄를 돌리지 않기 위해 나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는 문구를 남기고 자살한 사생아는 스스로 모진 목숨을 끊으면서 카라마조프가라는 검은 얼룩으로 가린 때를 벗기려 했는지도 모른다표도르의 학대를 견디고 세상 사람들의 모멸을 겪으며 세 형제들과 수평적 관계를 이루지 못한 데서 오는 분노가 농축되어 아버지를 살해한 스메르쟈코프는 자기 파멸과 함께 다른 형제들의 파멸로 이끌었다정신적으로 쇠약한 이반은 악마의 환영을 보면서 점점 피폐해져갔고드미트리는 유형을 받고 아버지를 죽이려 했던 마음까지 단죄의 대상이라면 기꺼이 받아들이겠다며 체념했다.


   태어난 자는 반드시 죽는다는 생자필멸의 법칙에서 자유롭지 못한 인간은 여려 유형의 죽음으로 새로운 눈을 뜨게 한다유한한 인생에서 의미를 발견하며 가치 있게 살아가는 일은 영혼의 본질로 남아 세상을 사는 지혜를 길러준다스네기료프는열병으로 사경을 헤매던 아들 일류샤의 병세가 갈수록 악화되지만 손을 쓸 수도 없는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기도뿐이었다신에게 의탁해서라도 구원받고 싶은 바람이 크지만 신은 도움을 바라는 모든 이들의 청을 들어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료샤 역시 드미트리 형의 유죄 판결 후 그에게 탈출을 강권하지만 성공 가능성은 희박해 보였다수도사로 악의 수렁에 빠져 있는 이들과 함께 하려는 선의를 실현함으로써 평화로운 세상을 꿈꾸지만알료샤의 소망은 탐욕으로 얼룩진 물신주의에서 이뤄지기는 힘들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부당함을 바로 잡으려는 소수의 움직임 속에 희망은 선물처럼 올 수 있다고 믿으며 좌절의 늪에서도 새로운 이상을 꿈꾼다일류샤의 주검을 묻고 오는 길젊은 영혼들이 손을 맞잡고 애도하며 욕망에 찌들어 지낸 낡은 사고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제대로 된 꽃을 피우지도 못한 채 한 알의 밀알처럼 떨어진 어린 영혼이  싹을 틔우는 고귀한 생명체로 자라 맑은 영성으로 추악한 세상의 얼룩을 지워가길 바란다. 변해서는 안 될 부자 사이에 지켜져야 할 본연의 가치를 떠올리며 서로를 존중하며 상생하는 삶의 본질을 일깨운다. 

 

https://blog.naver.com/nopark99/221315213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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