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산맥 세트 (반양장) - 전10권 조정래 대하소설
조정래 지음 / 해냄 / 2007년 1월
평점 :
절판


   배우며 가르치는 보람을 일깨우는 교사로 10대 청소년들과 생활한 지 28년째교과서 밖의 책을 읽고 사유하는 표현의 효용적 가치에 비중을 두는 시간이 길어졌습니다책을 읽으며 독해력을 기르고 책 속에 빠져듦으로 집중력을 길러내는 시간은 자발적인 참여로 지속될 때 성취는 커져갔습니다도서실 운영을 맡아 도서부 학생들과 책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은 우리를 성장케 하였습니다동일한 책을 읽고 토론하는 시간은 서로의 생각을 수용하며 외연을 확장해가는 활동으로 미처 생각지 못한 일들을 돌아보게 하는 시간이기도 하였습니다문학작품을 수용하여 의미를 재구성하는 일은 간접 경험의 영역을 확대해 타인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 인간관계를 개선함으로써 복잡한 세상을 살아가는 힘을 길러줍니다.

 

   세월이 흐른 만큼 경험으로 알아가는 공부가 그 무엇보다 소중함을 일깨우면서도 직접 경험으로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에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소홀해질 때가 있습니다한계를 뛰어넘는 방편으로 책을 읽으며 지내는 일상에 만난 대하소설 <<태백산맥>>은 분단 조국의 아픔을 고스란히 전하며 통일을 염원하는 대장정에 나서서 분단국가로 동강 난 민족의 허리를 잇는 일이 소중함을 일깨웁니다여순 사건을 계기로 흑백으로 나뉘어 쫓고 쫓기는 상황에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분단국가의 아픔 너머 순수한 사랑이 펼쳐져 가슴을 쓸어내리게 하는 소설을 읽으며 태백산맥 문학관으로 떠나는 문학기행을 꿈꿔 왔습니다사제동행 독서 토론 모임을 통해 교과서 너머 세상을 호흡하는 일에 함께 하고 싶은 열망이 2013년 10월 8일 문학기행으로 모아졌습니다.

 

    문학관에 들르기 전 일본식이 가미된 현 부잣집 마당에 들러 지주와 소작농의 관계를 다룬 배우들의 공연을 보면서 작품 속에 그려진 소작농들의 아픔을 들여다볼 수 있었습니다중도 너른 들판을 차지하고도 더 많은 부를 축적하기에 혈안이 된 현 부잣집 대감에게 소작료를 지불하지 못해 딸 이쁜이를 바쳐야 했던 돌쇠 아내의 오열하는 소리 너머 관객들 사이에서는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예나 지금이나 생존에 필요한 식량을 확보하지 못한 빈농가의 식구들이 겪어야 했던 아픔은 지주들의 탐욕에 맞섰던 소작농들의 쟁의가 떠올랐습니다서너 사람들의 기름진 삶을 위해 수많은 사람들은 인간 이하의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언덕을 깎아 놓은 형상을 본뜬 태백산맥 문학관의 외관은 일제 강점기 매몰 시대를 상징하며다시 그것을 바로 세우려는 염원을 담아 건립되었다는 문화 해설사의 안내로 문학관 탐방은 시작되었습니다. 1층 전시실에 들어서면 태백산맥 10권이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을 오롯이 담은 작가의 노력이 전시된 친필 작가 노트에 고스란히 묻어났습니다퇴고를 거의 하지 않고 완성작을 선보이는 작가답게 등장인물 관계도지리산 지도배경 소개 등 어느 것 하나 놓치지 않고 정밀하게 담은 창작노트는 치열하게 글 쓰는 이의 단면이 고스란히 전해졌습니다. 4년 동안의 자료 조사에 이어 6년 간 집필한 대하소설 <<태백산맥>>은 독자들 곁으로 온 것입니다.

 

   자기네 이익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잔학한 친일 반민족 세력을 청산하지 못한 채 제국주의의 야욕에 편승하는 기회주의자들은 득실거렸습니다일제 식민 통치 종식으로 해방을 맞았지만 신탁 통치와 단독정부 수립 반대를 둘러싼 좌익과 우익의 첨예한 대립은 동족 간의 분쟁으로 많은 사상자를 낳았습니다제주도에서 일어난 4·3 항쟁 진압 명령을 거부한 군인들을 진압하는 과정에 무고한 양민까지 학살하였습니다잇달아 희생자들이 속출한 1948년 여순 사건에서부터 6·25 전쟁의 잔혹한 역사의 상흔을 <<태백산맥>>은 아우르고 있습니다탐욕스러운 지주 · 국민들의 안위를 저버리고 잇속을 채우는 권력자들에 맞서는 사회적 약자들의 연대는 차별 없는 세상 건설을 위한 일로 귀결되었습니다

 

   자신의 고달픔은 감수하고 조직의 이익에 봉사하는 일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민초들의 활약은 목숨을 거는 행동으로 이어졌습니다인간답게 살아갈 평등한 세상을 꿈꾸며 사사로운 안위와 행복은 뒤로 한 채 산으로 들어가 해방구에서의 빨치산들의 활동과 이들을 추적하여 진압하려는 토벌꾼들의 줄달음은 긴장 속에 이어집니다비정하리만치 참혹한 주검을 목도하며 서로를 겨냥하는 반목과 질시는 무차별 탄압으로 목숨을 앗아가는 일도 서슴지 않았습니다이념으로 무장한 채 사상적 지도자가 주창하는 대로 움직이며 살벌한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분규 너머에도 사랑이라는 원초적인 감정은 싹텄습니다.

 

   양조장 집 넉넉한 가정에서의 편안한 삶과는 거리를 둔 정하섭은 작은 스탈린 염상진과 함께 하는 조직원으로 활동하며 사상적 삶을 실천하였습니다박꽃 같은 여자는 사랑해서는 안 될 그와 정을 나누고 사랑으로 잉태한 생명을 옥에서 낳는 기박한 운명 속에서도 그와의 정신적 합일을 지향했습니다갖은 고문과 학대가 질곡의 시간 속에 묶일수록 정하섭을 향한 소화의 사랑은 외경심으로 굳어졌습니다감염성 열병으로 운신하기 힘든 상황에 놓인 손승호에게 낡은 담요를 내밀며 아픔을 나누려는 박난희동지애로 결속된 이지숙은 어깨 총상으로 치료 중인 안창민에게 수혈하며 그의 건강 회복을 도왔습니다이승에서 못다 한 사랑을 저승으로 유예할 수밖에 없던 천점바구와 김혜자는 비련의 사랑으로 갈무리되었습니다

 

    ‘귓밥이잘되야부렀소밥도 안 태이게 혀준 귓밥달고 댕기먼 머헐 것이요무겁기만 허제.’

전투 중 총상으로 자신의 귓불이 날아간 줄 몰랐던 외서 댁은 짓밟힐수록 맹렬히 일어나는 들풀처럼 강한 생명력을 드러냈습니다.

   ‘지주나 부자들은 인권평등을 방해하는 우리의 적이다!’

   사범학교를 졸업한 재원이었지만 교단에서 후학들을 양성하는 일보다는 자신의 신념과 이상을 실천하는 일이 염상진은 가치 있다고 보았습니다사사로운 감정을 넘어서는 당략에 부합하는 빨치산 대장으로 활동하다 생을 마감한 그의 의연함은 개인의 서사를 넘어섭니다대장의 뜻을 따르며 갖은 고초를 달게 받는 혁명가로 빨치산들이 자멸하는 과정에서도 끝까지 살아남은 하대치는 신봉하던 이념의 가치가 곤두박질치는 와중에도 흔들림 없이 새로운 역사를 잇는 주체로 오롯이 자리합니다분단국가로 동강 난 민족의 허리를 잇는 일이 소중함을 알고 통일 주체로 나서 화합의 시대로 이끌어야 할 사명이 살아남은 자에게는 남아 있습니다.

 

   이념의 소용돌이 속에 상충하던 이들은 갖은 고초를 겪으며 형용하기 힘든 주검으로 피안의 세상으로 갔습니다사선을 넘나드는 위기 상황 속에서도 인간의 힘으로 뒤바꾸어야 할 역사적 진보를 이들은 염두에 두었습니다어둠을 밝히는 촛불처럼 살다 죽어간 이들은 살아남은 자들에게 역사의 주인으로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길 위에 서야 한다고 말합니다.

 

   질곡의 시대 광복의 기쁨을 누리기도 전, 첨예한 좌우익의 대립은 숱한 사상자를 내고 한국 전쟁으로 분단의 고착화를 야기하였습니다. 서로를 향한 반목과 질시에서 벗어나 통일된 나라를 세우기 위한 정신적 기틀을 놓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여깁니다. 지난 역사의 아픔을 덮기보다는 드러내 겪어보지 못하였던 민족적 아픔을 이해함으로써 정치적 악순환이 일어나지 않도록 할 당위성이 우리에게는 있습니다. 벌교읍을 포근히 감싸고 있는 제석산은 오늘도 빨치산과 토벌대원들의 총격전으로 피 흘리며 죽어간 이들의 혼령을 안고 역사적 아픔을 치유하는 길 위에 서라고 말합니다. 여러 산줄기가 이어져 산을 형성하듯 자아 정체성을 찾아가는 청소년 시기를 함께 하는 교사로 역사적 사건 이면에 자리한 사실을 바탕으로 한 작품을 공유합니다. 도서실 수업 시간 학생들과 더불어 책을 읽고 작품 속 등장인물들의 삶을 바탕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고민하는 과정에 삶의 희망을 발견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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