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길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19
그라치아 델레다 지음, 이현경 옮김 / 휴머니스트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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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6년에 쓰여졌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만큼 소설은 심리스릴러를 방불케 하는 쫀쫀함으로 독자의 긴장감을 조여 쥔 채 이야기를 끌고 간다. 또한 소설의 마지막은 어느 현대소설보다 세련됐다.   


사랑과 질투, 배신과 복수심이 엇갈리며 등장하는 인물들은 마치 서로에게 화살을 겨누듯 육욕과 열망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며 허우적거린다. 두 주인공 마리아와 피에트로의 감정선을 따라가다보면 독자가 힘에 부칠 지경이다. 



마리아의 심리 상태는 그야말로 뒤죽박죽이다. 처음에는 피에트로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단호한 입장을 보이더니 키스 한 번에 홀랑 넘어간 뒤로는 허영심 때문에 연인 관계를 주변에 숨기고, 급기야 몰래 결혼까지 감행하면서 한때 연인이었던 남자의 복수에 대한 두려움과 한편으로는 그가 자신을 무심하게 대하는 듯한 태도에 실망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마리아는 자신의 경솔하고 변덕스러웠던 행동들을 부끄러워하지만, 젊은 시절에 누구나 그럴 수 있다는 핑계로 후회나 반성은 하지 않는다. 


후반부에 마리아가 짧은 시간 동안 진실과 거짓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하며 격렬하게 갈등하는 장면이 대여섯 장에 걸쳐 서술된다. 이 장면을 통해 마리아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 수 있는데, 자책은 하지만 원인을 타인에게 전가하는 모습은 어떤 면에서 보편적인 우리네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소설의 중반부를 넘어서면 식상하더라도 한 번쯤 묻게 되는 질문. 마리아를 향한 피에트로의 감정은 사랑이냐, 집착이냐, 그의 자존심이냐. 무엇일까? 누군가를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을 표현하는 방식은 사람마다 제각각일터다. 사랑하는 이의 안온함을 위해 박수를 쳐주며 보내주는 이가 있는가하면, 모든 장벽을 극복하거나 타인의 희생쯤은 나몰라라 하며 쟁취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아마 피에트로는 스스로 마리아를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믿었을 터다. 마리아가 진작에 피에트로에게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하고 그녀의 진심에 대해 진솔하게 말했다면, 소설에서 보여지는 피에트로의 성향을 봤을 때 이렇게까지 파국으로 치닫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짐작해본다. 마리아를 위해 무슨 일이든 하겠다는 피에트로의 말은 희생과 사랑이 아니라 욕망과 탐욕이었다. 



드라마 <더 글로리>에서 정작 본인이 모르는 억울함이 무엇인지를 궁금해하며 답답함을 안은 채 교도소에서 남은 생을 살아야하는 연진이나 폐쇄된 공간에서 살아 있는 동안 자신이 쥐도 새도 모르게 언제, 어떻게 죽을지 모르는 공포에 떨어야 하는 죄수 '3724'처럼, 마리아야말로 남은 생이 지옥 아닌 지옥이 될 것이고, 죽음에 이르러서야 해방될 것이다. 


애초에 니콜라가 피에트로를 채용하지 않았다면, 피에트로가 로사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았다면, 훔친 고기 한 점을 먹지 않았더라면, 마리아가 다시 돌아온 피에트로를 외면했다면 그들의 인생 행로는 달라졌을까. 쓸데없는 가정이다만.  


ㅡ 


포도를 수확하고, 포도주를 만드는 과정, 마리아와 프란체스코의 결혼식 장면 등은 샤르데냐 섬의 서정성과 문화를 충분히 드러냈고, 무척 아름답게 그려졌다. 5월 목초지에서 보내는 마리아 부부의 일상도 경험해보고 싶은 삶의 모습이다. 생계를 위한 혹은 필요에 의한 노동이 아닌 노동은 얼마나 한가롭고 낭만적으로 보이는지.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피에트로가 마리아에게 다짐했던 "당신에게 해를 입히지 않겠다"라는 말이 새삼 떠오른다. 사비나도, 피에트로도 사랑했던 사람에게 해를 입히지는 않았다. 거만함과 위악이 마치 부러 쓴 가면인 양 허세를 부리며 양심적인 듯 괴로워하지만 결국 제 이기심과 자기합리화로 무장한, 그래서 세상이 늘 자기 편이라고 자만해 타인의 감정 따위는 모르쇠로 일관했던 마리아, 당신이야말로 가장 큰 유죄. 그리고 어리석고 또 어리석은 욕망과 사랑에 스스로를 던져 악의 길을 선택한 피에트로 역시 유죄. 이 난장판같은 복수극에서 진정한 승리자는 연적에게 지옥을 선사한 사비나일지도... .



351.

어떤 의사도 그들의 질병을 고칠 수 없듯이 어떤 판사도 그들에게 이미 내려진 형벌보다 더 큰 형벌을 선고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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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딜 수 없는 사랑
이언 매큐언 지음, 한정아 옮김 / 복복서가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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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읽은 이언 매큐언의 작품이 <스위트 투스>였지싶다. 사실 속죄만큼 임팩트 있는 작품을 만났다고 말하기에는 다소 아쉬운 점이 있었는데, 이 소설은 <속죄>를 쓴 무렵에 쓰여졌다고 하니 기대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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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확인 홀
김유원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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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수리 삼총사라고 불리는 희영, 필희, 은정을 중심으로 그들의 가족과 주변인물까지 이야기가 확장되는 연작 형식의 장편소설이다.  
 






동거 - 파혼 - 은둔 - 돌봄 노동으로 이어진 오십 평생 끝에 가까운 사람 하나 없이 홀로 남은 외로움, 처음 해 본 사랑에 미쳐 두 딸을 두고 집을 나온 것에 대한 죄책감과 그리움, 커다란 상실로 인해 기쁨도 절망도 없이 분노만 짓누르며 살아온 자의 심술궂은 복수심, 유년시절의 불안을 성인이 되어서도 안고 살며 과거를 잣대로 현재를 재단하고 앞서 불행을 예감하며 벗어나지 못하는 트라우마, 행복한 가정에 대한 염원 등 굴곡진 삶을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가 잔잔하게 펼쳐진다.  


학교 폭력이든, 노사 협상이든, 공권력이 작용하는 현장이든, 늘 약자들에게서 원인을 찾는 이상한 나라에서 사회의 약속을 일일이 의심하지 않고, 사법부와 경찰을 믿을 수 있는 세상을 바라는 것은 너무 큰 욕심이려나.  


마흔이 훌쩍 넘어서까지 부정과 비극이 세상의 이치라고 믿으며 예측 가능한 영역에 보이지 않는 울타리를 친, 자신을 복수의 도구로 여기고 십대부터 스스로를 단단하게 벼리며 살아온 이의 황폐함. 울다가 죽을 매미가 마치 자신같아서 제발 매미의 울음 소리 좀 들어달라고 울부짖는 중년의 여성은 여전히 어린 아이의 작은 어깨처럼 애처롭다. 마음에 난 구멍은 무엇으로 메워야 할까. 때로는 누군가의 오지랖이 다정할 때가 있지 않나. 소설 속에서 등장하는 몇몇의 오지랖은 긴 사연을 동반하지 않아도 무척 감동스럽다.


은수리에서 시작한 소설은 은수리에서 끝난다. 희영이 찾아간 은수리에 은정이 돌아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두 사람을 통해 내가 더 위로받는 기분이었다.  




사족
생뚱맞지만 나는 가끔 도시든 시골이든 고향이 있는, 더 정확히 말하자면 부모가 살던 집에서 대를 이어 살아가는 친구들이 부럽더라. 그런 집은 그들만의 이야기가 여전히 살아있으니까.  




※ 출판사 지원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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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어떻게 읽는가 - 조지 손더스의 쓰기를 위한 읽기 수업
조지 손더스 지음, 정영목 옮김 / 어크로스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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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작품 혹은 작가에 대한 비평이 아니다. 실린 작품들을 예시로 들어 실질적으로 소설을 쓰고자 하는 이들에게 가르침을 주고자 한다.  


저자는 20여년간 대학에서 러시아 단편 소설 수업을 했다. 그가 수업에서 가르쳤던 단편들이 마치 오랜 친구같고, 그 수업을 통해 인생에서 가장 좋은 순간과 귀중한 깨달음을 얻었기에, 강의 내용보다 현저하게 적은 분량으로나마 이 책을 출간한 이유를 밝힌다.


그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마음의 방향을 뒤로 돌려 경험을 살펴보고,느껴진 감정이나 의문 등을 짚어보는 등 다양한 읽기 훈련의 방식을 제안한다. 특히 내용을 읽다보면 그야말로 제목에서 전해지듯 쓰는 입장에서 독서를 하는 방식, 그리고 소설 쓰기에 있어 유의해야 하는 것들에 대한 글이다. 저자는 이 책에 실린 작가와 작품들을 통해 이와같은 부분들을 구체적이고 심도있게 설명해간다.  


소설에 있어서의 사건, 인물, 문장, 플롯, 사실과 진실, 확장, 제한된 사고를 허무는 힘있는 사고와 이야기, 인과성, 전환, 생략의 미학, 절제의 예술, 앞선 요소들을 접목할 줄 아는 기술적 수단 등을 들면서 소설 쓰기에 대해 강의하는데, 이처럼 다각적 독법을 흥미로워하는 나로서는 그의 서술이 실린 단편들만큼이나 재미있는 읽기 과정이었다.  


저자는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과 인물들 간의 관계 설정, 그리고 사건과 상황들을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짚으며 오히려 독자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써 작품에 대해 다시 한 번 사색할 수 있는 시간을 준다. 이야기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겉으로 보이는 결론이 아니라 이야기를 읽는 과정에서 일어난 독자의 마음속 변화에 있다. 


맺음말에서, 만일 이 책에서 다뤘던 작품들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실제 눈앞에 나타난다면 문학적 표현물로서 좋아하는 것처럼 그들을 좋아하게 될지를 묻는다. 이 책을 읽는 독자 각각의 생각이 어떨지 나도 궁금하다(나는 '단지 알료샤'를 지금처럼 좋아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여전히 인생을 소설에 바치고 싶다는 조지 손더스. 완독 후 교수로서의 조지 손더스가 얼마나 위트있는 사람인지 알겠더라는. 이렇게 재미있는 사람이 <바르도의 링컨>을 썼다는 게 의외라는 생각도 들고.


조지 손더스는 소설이 하는 일이 정확히 무엇이냐고 묻는다. 소설은 마음의 상태에 점진적 변화를 일으키고, 그 변화는 한정적이지만 진짜라고 말한다. 또한 그 변화가 '전부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아닌 것은 아니다'라고 얘기하는데, 이 말이 가장 적절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작은 변화들이 독자들의 도덕적 무기가 되고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될어줄 것이라고. 그러니 계속 쓰시라. 계속 읽을테니.    




사족.
저자의 투르게네프의 평가를 읽고 있자니 그에게 유난히 박했던 나보코프가 생각난다.  




258.
독자는 작은 차다. 작가의 임무는 트랙을 따라 주유소들을 배치하여 독자가 계속 읽고 마침내 이야기의 끝에 다다르게 하는 것이다. 주유소들은 무엇일까? 기본적으로는 작가적 매력의 표현이다. 정직성, 위트, 강력한 언어, 유머의 분출. 무엇이든 독자가 계속 가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것. 세상의 어떤 것을 정말로 보게 해주는 그것에 관한 간결하고 함축적인 묘사. 내적 리듬을 타고 통과할수 있는 몇 줄의 대사. 모든 문장이 잠재적으로 작은 주유소다. 



※ 출판사 지원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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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확자 수확자 시리즈 1
닐 셔스터먼 지음, 이수현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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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우리는 법에 따라 우리가 죽이는 무고한 이들을 기록해야 한다. 





 


 
지구 밖에 건설한 식민 행성의 재난으로 인류는 지구 밖으로 나갈 수 없다. 지구라는 유한한 세계에 갇힌 인간이 해야 하는 것은 인구 수를 조절하는 것. 그래서 죽음을 독점하고 배급하며 관장하는 수확령이 만들어졌다.  


2042년, '클라우드'는 '선더헤드'로 진화했고, 세상의 모든 정보가 선더헤드의 무한에 가까운 메모리 속에 담겨 누구나 접속할 수 있게 되었으며 죽음을 정복했다. 무한한 지식을 얻었고, 불사의 삶이 가능해진 완벽한 세상에서 개선은 필요없다. 교육도, 연구도, 배움도 모두 불필요해져버린 세상. 


인류의 가장 큰 성취는 죽음을 정복한 것이 아니라 행정부를 끝장낸 것. 선더헤드가 정치가 아닌 행정을 도맡자 부정부패가 사라졌다. 생태와 공존을 기반으로 한 세계법이 정립됐다. 다만 인구 조절을 위해 사람을 죽여야한다는 결정이 내려졌고, 선더헤드에게 권위가 넘어가지 않은 조직은 수확령, 단 하나뿐이다. 인간의 생명을 결정하는 것을 기계한테 내줄 수 없다는 판단에서 내려진 결정이었다.  


수확자의 일은 중요하다. 그렇다면 그들은 어떻게 선택되는가.
수확자가 될 첫 번째 조건은 수확자가 되고 싶은 마음이 없어야 한다. 이 직업의 역설은 이 일을 하기 싫어하는, 즉 살해하기를 가장 싫어하는 사람들만이 해야 한다는 것이다. 수확자들 본인도 그들이 죽이는 이들이 무고하다는 사실을 안다. 그리고 동시에 유죄임을 안다. 수확자는 죽음의 도구일 뿐이고, 도구를 휘두르는 것은 이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다. 죽는 '그'가 아니면 내가 죽을 수 있으므로. 따라서 모두가 공범이며, 그 책임을 공유한다. 


수확자는 경외의 대상이자 동시에 공포의 대상이다. 수확자의 지위는 법 위에 있지만, 법을 거역하고 산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법 규칙을 넘어서는 도덕성을 요구한다. 수확자 수습생은 역사, 철학, 과학을 공부함으로써 영구적으로 생명을 빼앗는 책임을 맡기 전에 생명의 본질과 삶의 의미를 깨우치며, 수확자에게는 겸손, 청렴이 강요된다. 보편적 삶을 살아가는 이들보다 더 많은 배움의 양을 요구하는 수확자 수습생. 


문득 이토록 막강한 권력을 현재 세계 곳곳의 정치인들에게 주어진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가 그럴리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확자의 가장 중요한 자질과 요건이 남다른 도덕성이라지 않은가. 


수확자라는 직위는 벗어날 수 없는 굴레다. 그리고 선더헤드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수확자들은 지구에서 가장 강력한 사람들이자 가장 취약한 사람들이다. 수확자가 받는 징계는 마치... 시시포스 같더라. 



법에 따라 사람을 죽이는 것을 '거둔다'라고 표현하며 수확자들이 사회를 위해 대단히 중요한 봉사를 한다는 사실을 어린시절부터 교육시킨다. 수확자들의 기록은 왜 인간이 이런 일을 해야 하는지를 증언하는 공공 기록이다. 그 기록에는 행동뿐 아니라 수화자들의 감정도 기록한다. 그들에게도 회한, 후회, 슬픔이 있다. 그렇지 않으면 괴물과 다를 게 무언가. 


수확자들은 권력과 폭력이라는 인간의 본성을 경계한다. 그리고 좋은(?) 수확자들은 자기 일을 좋아하게 될까봐 우려한다. 아무리 합법적이라고 해도, 고결한 명분이 있더라도, 무작위로 선정한 사람을 죽이는 트라우마는 그들을 늘 괴롭힌다.  


수확령은 세계에서 유일한 자치체제다. 선더헤드는 수확령에 간섭하지 않지만, 세상에 존재해야 할 수확자의 숫자는 제시한다. 전 세계에서 연간 약 5백만 명을 거둔다. 수확 시대 이전의 사망률에 비하며 극히 적은 수치다. 여기서 독자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다. 합법적 '살해'가 범죄와 사고로 인한 죽음의 수치보다 적다면 수용할 수 있는가?


ㅡ  


소설의 시작에서 등장하는 패러데이처럼 의무보다는 연민을 선택하는 숭고한 수확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초능력 꼬마 소녀가 밀폐된 공간에서 수 마리의 늑대를 상대로 잔혹한 핏빛 대결을 벌였던 영화 <마녀>의 한 장면을 연상케하는 로언의 훈련 장면에서 보여지듯 고결한 소명을 폭력과 살인 욕구를 분출하는 데 이용하는 빌런 수확자도 있다. 수확자 수습생을 선택하는 과정이나 수확자가 수확을 거부하는 부분에서도 잔인한 딜레마가 따라온다.  


수확령에서도 사소한 다툼이 있고, 부패와 규정을 악용하는 사태는 갈수록 잦아진다. 정의와 고결한 소명을 혐오하고 적대시하고, 연민과 관용을 약점으로 보며, 수확자가 새로운 군주이자 권력자라고 믿는 자가 있는 한 수확자의 허울을 쓴 살인광은 언제든 나타날 것이다. 이미 초창기부터 수확령의 폐해를 우려한 최초의 최고위 수확자 프로메테우스의 예감이 과하지 않은 이유는 수확자, 그들이 보통의 인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패러데이는 두 제자에게 '절대 인간성을 잃지 마라'고 말했다. 인간성을 잃으면 살해 기계에 지나지 않게 되므로.  



그동안 읽어왔던 미래소설과는 확연히 다른 결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기존 작품들이 기계화, 인간성 상실, 인공지능의 장악 등 대체로 현대 사회를 반추하며 디스토피아적 요소를 부각했다면 수확령이 인간의 목숨을 거둔다는 설정을 제외하면 오히려 외형상 유토피아에 가깝다고 해야할까. 그러나 완벽한 세상에서 언제 닥쳐올지 모를 죽음에 대한 두려움, 사라져가는 앎을 향한 열정과 지적 욕구, 생명에 대한 연민과 사랑의 부재. 


죽음이 당연한 운명이 아니라 예외가 되어버린 세상에서 인간은 어떤 목적을 위해 살아가는 것일까? 끝도 없는 회춘을 거듭하면서 수백 살을 살면서 얻고자 하는 건 무엇일까? 선더헤드는 모두가 동등한 재산을 갖게 할 수 있음에도 인간의 지루함을 덜기 위해 어느 정도 경제적 불평등을 허용한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분투할 수 있도록. 또한 선더헤드는 수확령을 간섭하지 않는다. 무시하는 걸까, 경멸하는 걸까? 인간이 아닌 디지털에게서 당하는 경멸과 무시는 어떤 기분이 들게 할까? 


선더헤드는 빌런이 아니다.
그런데 왜? 기분이 별로... .



이 미래소설은 현대 사회의 사람들이 가장 바라는 원초적인 것들이 성취된 후에 모습을 그리고 있는데, 인구 조절 문제로 인해 인위적으로 생명을 거둔다는 설정만 제외하면 여러 면에서 정치, 행정, 복지 등 완전한 사회 구조를 이루고 있는 듯 보인다. 그러나 어떤 구조적 환경에서도 인간의 악의와 선의는 대치하게 마련이고, 이를 군더더기 없이 흥미롭게 그려낸 듯 하다.  


세 권 연작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개인적으로 각 권마다 하나의 에피소드가 완성되어 깔끔하게 마무리된 점이 좋았고, 사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수확자 퀴리의 「수확 일기」 였다. 몇몇 수확자들의 일기가 등장하는데, 독자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는 지점이다.  


끝으로, 무조건 재밌다. 




170.
평균 나이가 1천 살에 가까워지면 삶이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 우리 모두가 모든 예술과 과학에 능한 르네상스의 아이들이 될까? 숙달할 시간은 충분하니 말이다. 아니면 지루함과 독창성 없는 일과가 지금보다 더 우리를 좀먹어, 무한한 삶을 살아갈 이유가 줄어들고 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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