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들어진 유대인
슐로모 산드 지음, 김승완 옮김, 배철현 감수 / 사월의책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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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스트가 추구한 것은 이스라엘인들이 특이한 신앙을 가지고 있기는 해도 도처에 퍼진 거주지에서 유달리 이질적인 사람들은 아니라는 것을 독일 독자들에게 납득시키는 일이었다. 요스트의 말에서 눈에 들어오는 부분이 있다. "그들은 여전히 유대인이었지만, 또한 여러 민족들 가운데 하나이기도 했다. 그들은 예루살렘에 있는 형제들을 사랑하고 형제들의 평화와 번영을 기원했지만, 그들의 새로운 고향을 더 소중히 여겼다. 그들은 피를 나눈 형제들과 함께 기도했지만, 땅을 나눈 형제들과 함께 전쟁터에 갔다. 그들은 피를 나눈 형제들에게 우호적이었지만, 그들의 고향땽을 위해서도 피를 흘렸다." 저자는 유대인들이 같은 기원을 공유하지만, 여러 유대인 공동체들이 단일한 몸체에서 갈라져 나온 일부는 아니라는 점을 지적한다. 유대인 공동체들은 지역마다 문화와 생활양식 면에서 큰 차이를 보였고, 오로지 신앙에서만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 유대인과 비유대인을 구별하게 해주는 범유대적 정치 통합체는 없었다. 따라서 근대 세계에서 다른 공동체 및 문화 집단들과 동등한 시민권을 가질 자격이 있었음에도 자기들만이 진리를 소유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같은 지역 주민임에도 통혼을 금지하는 등의 원칙만을 고집하는 집단을 국가는 보호하려하지 않을 것이라는, 그래서 고립을 자초함을 명확하게 꿰뚫고 있었다.  
 

그런데 19세기에 반유대주의 조류가 커지면서 드는 생각은, 그동안 이와 관련한 수많은 문학 작품을 짚어보면 유대인(혹은 유대교)에 대한 편견과 폄하로 인해 그들이 더 스스로를 위대한 민족이라고 위무하며 그들만의 세상을 만들어 간 것인지, 아니면 그들의 원칙으로 인해 비유대인으로부터 비호감이 됐는지에 대해서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라는 딜레마에 빠진다. 그럴듯한 답은 그 두 가지가 맞물려다는 것 밖에는 없을 것이다.  
 
 
 
 
이스라엘 건국 초기 몇 년간 지식인 엘리트들은 성서-민족-이스라엘 땅이라는 신성한 삼각구도를 구축하는 작업을 도왔고, 성서는 '다시 태어난' 국가를 건설하는 데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공무원들은 압력을 받거나 자진해서, 주민들은 기성 엘리트들을 모방하려는 마음에서 이름을 히브리 이름으로 개명했다. 교사, 작가, 평론가, 시인 등 각계의 지식층이 유대 역사를 자신들에 맞춰 해석하는 작업에 나서는 등 이념화된 현재를 만드는 데 일조했다. 또한 20세기 초 시온 정착붐이 일고 히브리어 학교들이 문을 열면서 성서는 민족 교과서가 되었고, 별도의 학과목으로 지정해 교육되었다. 그럼으로써 민족 정체성을 형성시켜줌과 동시에 그 땅에 대한 점유권을 주장함에 있어 먼저 스스로를 납득시킬 수 있었다. 이스라엘 국가 수립 이후 모든 교육 방안들은 국가 교육제도 전 분야에서 표준이 되었다. (국정교과서의 폐해가 여기에서 새삼 확인하게 될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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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진 유대인
슐로모 산드 지음, 김승완 옮김, 배철현 감수 / 사월의책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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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말과 19세기 초에 걸쳐 민족주의가 일어나자, 근대의 모든 문화를 아우르는 이데올로기이자 무엇보다 중요한 정체성이 된 이 이념이 '민중'이라는 용어를 지속적으로 활용했다. 민족의 장구함과 연속성을 강조하기 위해, 그리고 역사에서 살아남은 언어.종교 등의 문화적 요소들이 민족을 건설하는 자재로 이용되면서 민족의 역사에 활용될 수 있도록 정교하게 가공되어졌다. 19세기 민족 문화들은 '민중'과 '인종'을 자주 묶었고, 많은 이들은 두 단어로 서로 겹치거나 상화 보완해주는 말들로 생각했다. 근대성의 물결이 겉으로는 통합을 추구하고 있어도, 그 밑에서는 여전히 지속적이 하위 정체성이 끊임없이 들끓고 있었기 때문에 단일한 집단적 기원은 하위 정체성의 출몰에 대비한 안전장치 역할을 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이웃 민족과의 통혼을 걸러내는 효과적인 필터로도 기능했다.  
 

20세기 전반기 이후 인종 개념이 반박되자 많은 역사가와 학자들은 '종족' 개념을 선발하여 먼 과거와의 긴밀한 유대를 확보하고자 했다. 이 용어는 문화적 배경과 혈연적 유대, 언어적 과거와 생물학적 기원을 한데 섞어주었다. 즉 하나의 역사적 가공물에 불과한 것을, 자연 현상으로 대접받기를 원하는 사실(fact)과 결부시켜 주었다는 것. 지금까지 너무나 많은 저자들이 이 개념을 매우 안이한 방식으로 사용해왔다. 종족 공동체라고 하는 것은 사실상 같은 문화적.언어적 배경을 가진 인간 집단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수많은 학자들이 '종족'에 마치 근본적인 시원적 측면이라도 있는 양 혈연적 특성을 집어넣었다. 그리하여 '종족'은 고대적 기원을 가진 실체로 인정받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특성은 '인종'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 결국 '민족'이라는 개념은 만들어진, 심지어 근대화가 시작되면서 부여된 의미라는 것인데, 자신이 속한 집단의 우월성을 자신과 동일시 하는 집단주의와 같은 선상에 있음이 전달된다. '종족' 혹은 '민족'의 개념조차 자본주의 밀접한 연관이 있으며, 이를 극대화시킨 장본인이 지식인이라는 사실에 입맛이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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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100년 전쟁 - 정착민 식민주의와 저항의 역사, 1917-2017
라시드 할리디 지음, 유강은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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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알고 싶었던 역사였기에 하나라도 놓쳐 잘못 이해할까 우려되 꼼꼼하게 읽느라고 완독까지 예정보다 시간이 더 걸렸다. 일단 표지의 지도는 워낙 유명해서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겠지만, 지도의 색깔만으로도 팔레스타인이 어떻게 변화됐는지 한눈에 알 수 있다(현대에 이토록 공격적으로 영토 확장이 가능한지 눈을 의심할 지경이다).  






 
 


영국과 근대적 시온주의자들은 팔레스타인인을 민족적.정치적 권리를 지닌 한 민족으로서 전혀 인정하지 않았다. 비슷한 시기에 중동의 다른 모든 위임통치령은 독립을 획득했는데, 왜 팔레스타인만 이런 혜택을 받지 못했을까? 그리고 밸푸어와 영국은 왜 영국의 유대인 유입을 막는 데에 팔레스타인을 희생양으로 삼았을까? 팔레스타인은 다른 독립국가들처럼 뚜렷한 실체와 중앙집권적 체제, 그리고 진정한 동맹자가 없었으며, 외견상 확고한 민족전선도 유지하지 못했다. 영국은 이러한 점을 이용해 엘리트 파벌을 형성해 이간질하고, 일부를 통치 체제 안에 흡수했다. 밸푸어는 4대 열강이 시온주의에 동조함을 밝히며, 시온주의가 옳든 그르든, 좋든 나쁘든 간에 그 오래된 땅에 거주하는 70만 아랍인의 욕망과 편견보다 시온주의의 아주 오래된 전통과 현재의 요구와 미래의 희망에 더 높은 가치를 두었다. 또한 팔레스타인인의 견해를 존중할 필요가 없으며, 그 오래된 땅에 오랫동안 거주해온 70만 아랍인을 '일시적인 거주자'에 불과하다고 단정했다. 이 모순적인 논리를 이해할 수 있나?


위임통치국과 국제연맹은 애초에 팔레스타인에서 무력 사용을 전제로 하고 있었다. 첫 번째 선전포고 시기에 팔레스타인인들의 공정성 호소와 대표단 파견, 민중 시위는 아무 의미가 없었던 것이다. 들은 언제든, 언제라도 총을 쏠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


저자는 안보리 결의안 242호를 보면 유엔은 팔레스타인인의 존재를 없애 버렸다고 썼는데, 나는 유엔조차도 애초에 이들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크다. 팔레스타인인들은 '원래' 나라가 없는 난민일 뿐이고, 분쟁의 당사자로 인정하지 않는다. 팔레스타인인의 문제를 다루는 방식은 그저 형식에 불과한 인도주의적인 쟁점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다. 더 기가 막힐 노릇인 건 1969년 이스라엘 총리 골다 메이어는 '팔레스타인인 같은 건 없었고 (...) 그들은 존재하지 않았다'는 선언을 한다. 팔레스타인인들의 운명을 손아귀에 쥔 강대국 사이에서 그들은 언급조차 되지 않은 채 무시당했다. 이러한 모욕을 참아낼 민족이 있겠는가? 그들은 국제사회에 자신들의 주장과 대의를 제기하기 위한 민족운동을 부활시킬 수 밖에 없었을 터다.  



1979년 1월, 팔레스타인해방기구가 미국과 접촉했다는 이유로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해방기구의 핵심 인물인 아부 하산 살라메를 암살하는데, 이스라엘의 배신감은 미국을 향해야 하는 것 아닌가? 레바논 주재 대사인 존 건서 딘을 암살 시도 표적으로 삼긴 했지만 결국 죽은 사람은 팔레스타인인이다. 민간인을 담보로 한, 팔레스타인해방기구가 어쩔 수 없이 베이루트에서 철수하기로 합의할 때까지 미국과 이스라엘, 미국의 압력에 굴복해 방관한 아랍 정권들에 의해 계속될, 그리고 전쟁 후 참혹한 학살에 대한 책임도 심판도 없는, 비열한 전쟁이 시작된다 

ㅡ 


개인적으로 결정적이자 가장 심각한 팔레스타인해방기구의 오류는, 1993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해방기구는 <원칙 선언> 합의에 따라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해방기구를 팔레스타인인들의 대표로 인정했고 팔레스타인해방기구도 이스라엘 국가를 인정했다. 그런데 이 '인정'이 팔레스타인인 입장에서 유의미한가?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국가를 인정하거나 국가의 창설을 허용하지도 않았다. 터무니없게도 팔레스타인해방기구는 자신들의 고국을 식민화하고 점령하는 국가를 인정하면서 동시에 온갖 특권을 유지한 채 사실상 땅과 사람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는 권리를 정당화해준 셈이었다. 껍데기 뿐인 이 협상의 오류가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심각한 결과를 안겨다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후 1995년 협정은 2년 전 오슬로 협정을 완벽하게 마무리하는 형상이었다. 이 협정으로 팔레스타인 땅은 누더기처럼 쪼기졌고, 이스라엘은 60퍼센트가 넘는 지역을 차지했다. 이는 이스라엘이 차지한 지역의 아랍인들은 졸지에 쫓겨나는 신세로 전락한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어처구니 없이 그어진 국경선으로 인해 팔레스타인인들은 이동 자체에 문제가 생겼다. 팔레스타인 자치 지역 사이에 이스라엘 땅이 있어 검문소를 통과해야 하는 지경이 된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단절과 압박은 점점 더 심해졌다.    



저자는 자살 폭탄 공격이 팔레스타인 민간인을 공격하고 암살한 것에 대한 보복이라고 보는 하마스의 서사를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과연 맹목적 복수 이외에 어떤 성과를 달성하려고 했는지에 대한 질문을 남긴다. 더구나 이스라엘 민간인을 겨냥한 공격은 이스라엘 사회를 와해시키는 데 치명타가 되지 않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이스라엘 사회가 가진 응집력을 무시한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나타낸다. 민간인을 향한 공격은, 팔레스타인인들이 민족 의식을 각성한 계기가 되었듯, 이스라엘에게도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간과한 결과가 아닐까싶다.    


이 즈음에서 개인적으로 드는 의문점은 이스라엘은 왜 그토록 불평등에 집착하느냐는 것이다. 저자는 불평등은 보통 안전의 욕구로 암호화되고 정당화된다고, 그래서 과거의 트라우마에 대응해서 지금까지 여러 세대가 공격적 민족주의라는 반사적 교의를 바탕으로 자라났으며 정밀하게 구축된 식민지 현실이 흔들릴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기인하다고 해석한다. 그런데 책을 읽고 나면 시온주의자들은 이미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 차곡차곡 계획을 쌓아가고 있던 것으로 보인다. 마치 사냥감(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하는 팔레스타인)을 정해놓고 오랫동안 준비를 해온 사냥꾼의 모습으로 말이다. 결과적으로 팔레스타인인들은 이 덫에 걸려든 영락없는 먹잇감 신세가 되었고. 결론은 이스라엘이 그토록 명분으로 삼는 '홀로코스트' 이전부터 팔레스타인 식민화 프로젝트가 시작되었고, 전쟁 당시 유대인 학살은 그들에게 대의적 명분을 안겨준 셈이라는 것이다(로 이해됐다).  


이스라엘이 이토록 극악스러운 이유는 성스러운 땅이라는 신앙적 의미를 넘어서 다른 식민국과는 달리 돌아갈 곳이 없어서이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든다. 처음 아메리카에 발을 딛고 원주민들을 잔혹하게 몰아냈던 유럽인들도 따지고 보면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사람들 아니었던가. 그렇게 따지고 보면 어제의 피해자가 오늘의 가해자가 된다는 원리는 어쩜 이렇게도 찰떡같이 들어맞는지.  


우리가 생각해봐야 할 것은 '테러'다. 테러를 옹호하겠다는 것이 아니고, 정당하다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다만 정식으로 인정받은 국가가 없으니 군대가 없어 테러리스트가 된 이들을 비판없이 무조건 비난만한다면, 국가의 이름을 걸고 대규모 정규 군대를 이끌고 무방비 상태, 그것도 국가의 보호를 전혀 받을 수 없는 난민 위치에 있는 수백, 수천의 민간인을 학살하는 것은 어떤 명분으로 정당한가. 그들이 테러리스트가 될 수 밖에 없었던 근본적인 원인을 짚어야한다는 것이다. 현재 미국에도, 이스라엘에도, 일본에도, 한국에도, 유럽의 어느 나라에도 테러리스트를 자처하는 '국민'은 없다. 대의적 명분없이 가족과 함께 먹고 살 만한 사람이 테러리스트가 되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팔레스타인 전쟁 100년사는 그 어떤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상황이다. 저자는 비교적 냉철하게 정황을 들여다보고 비판하는데, 그들의 입장에서 제3자이자 독자에 불과한 내가 더 감정이 올라와 읽었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제3국의 국민일 뿐인 내가 이 책을 읽는다고 해서 팔레스타인인들에게 큰 도움이 되는 일은 거의 없다. 그러나 적어도 테러리즘에 가려 그 이면을 놓치고 일방적으로 비난을 가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협상과 타협, 공존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막무가내로 독선적인 이스라엘을 상대로 여전히 쉽지 않은 길이겠지만, 저자의 바람대로 팔레스타인인들이 마땅히 누려야 하는 해방을 간절히 기원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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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수업 - 불교철학자가 들려주는 인도 20년 내면 여행
신상환 지음 / 휴(休)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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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나 답사를 다닐 때 근처에 성당이나 사찰이 있으면 가능한 들러보려고 한다(물론 답사 일정에 성당이나 사찰이 있는 경우도 많다). 불교는 나에게 익숙한 종교가 아니다. 등산과 답사가 계기가 된 사찰 방문은 종교와 무관한 안온함을 주기는 하지만 불교에 대해서 아는 바는 상식 수준을 넘지 못한다.   


제목이 <인도 수업> 이지만, 절반 정도의 분량이 티벳과 불교 이야기다. '불교 수업'에 더 가까운 책이 아닐까 싶은데, 그럼에도 제목이 <인도 수업>인 까닭은 인도에서 이야기가 시작되고, 저자가 어디에서 무슨 얘기를 해도 결론은 인도에 대한 이야기로 마무리를 짓기 때문인 듯하다. 인도에서 20년 수학한 저자가 인도, 티벳, 투르크 여행기를 불교와 접목시켜 서술한다.  








 
인더스강은 기원전 3세기 인도 정복 전쟁을 펼쳤던 알렉산더 대왕이 그리스어로 '인도스'라고 불렀고, 페르시아인들은 '힌두스'라고 불렀다. 이러한 과정을 겪으며 오늘날 인더스강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인도인들을 부르는 '힌두'가 생겨났다고 하네. 인도에는 국어 즉 national language가 없다. 이는 인도의 역사.인종.지형 등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애초부터 '나라말'을 생각하기에는 그 규모가 컸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너무 다양했던 것. 이처럼 인도의 언어와 어원, 역사, 문화의 유래와 현재 인도인들의 삶 등을 여행자가 아닌 현지인의 입장에서 이야기한다. 




티벳은 궁금하지만 검색으로 아는 게 전부인 곳이다. 먼저 새롭게 안 사실, 티벳학이라고 하는 것은 티벳의 문화.역사 등을 공부하는 것이고, 티벳 불교는 이 기운데 불교를 전문으로 다루는 것이고, 티벳 밀교는 티벳의 현밀쌍수의 전통 가운데 밀교를 강조하며 수행하는 것 등을 가리킨다(티벳 불교와 밀교는 다르다). 그럼 여기서 현밀쌍수는 무엇인가? 이런 식으로 아는 건 없고 궁금증은 못 참아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자료를 찾느라 읽는 시간만큼이나 검색하고 다른 책을 들추는 데 시간이 들었지만, 그 과정도 꽤 재미있었다. 


대승 불교가 대중들에게 널리 퍼지게 된 배경이 '시장의 요구' 때문이었다고. 티벳의 불교 전래는 불교적 세계관을 그 문화적 원형으로 삼고 출발했다. 당시 주나라에서는 사후 문제를 언급하면 은나라의 귀신 숭배 사상과 겹쳐 소위 이단으로 낙인이 찍히게 되었는데, 중국에 전래한 불교가 커다란 마찰 없이 도교의 개념을 빌어 중국 문화와 융합될 수 있었던 것은 '사후 문제의 결여'라는 빈자리를 채워줄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에는 그만한 이유가 다 있다더니!) 


인도-티벳 불교의 전통을 이해하는 핵심은 '세간의 진리'와 '수승한 의미의 진리' 이다. 일체 부자성에 근거를 둔 언설로 표현 불가능한 연기 실상의 세계와 언설로 된 희론의 세계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일체 부자성=연기=공성' 이라는 항상 움직이는 세계를 언어.개념.정의 등으로 고정하는 언설의 세계로 전환하는 순간, 오류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거 이해하는 데 시간 좀 걸렸다) 


중국 불교가 소의경전(Root text Buddhism)이라면, 티벳 불교는 주석불교(Foot note  Buddhism)이다. 그러나 기도와 신행, 대승의 근간인 자비심과 공성을 강조하는 것은 공통분모다.  


티벳 불교에서의 밀교는 생활 그 자체를 뜻한다. 신행의 근간이 되는 진언과 염송은 밀교의 전통인데 대승 불교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이니 티벳 불교=밀교로 취급할 필요는 없다. 밀교는 스승과 제자 간의 법의 전승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제례 의식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중국이나 티벳의 밀교는 공통점을 지녔으나 티벳 불교는 '티벳 불교'의 특징을 지닌다. 이외에도 티벳 불교와 비티벳 불교의 차이, 티벳 불교가 세계로 퍼져나갈 수 있었던 이유, 그리고 티벳의 간략한 역사 등 티벳(불교)에 대한 궁금증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었다 


'자유 티벳'을 향한 불교의 불살생 언칙에 따른 비폭력 투쟁을 계속하는 티벳 불교와 만가지 단점에도 불구하고 유일무이에 가까운 한국의 호국 불교의 위대함은, 방식은 다르지만 맥락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2장 티벳 이야기]를 읽고는 나름 진심 뿌듯했다는.  



[4부 투르크 이야기]는 그야말로 여행 에세이 느낌이 물씬 나는 부분인데, 읽다보니 몇 년 전에 읽은 유홍준 교수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중국편 중 '실크로드의 오아시스 도시' 가 생각났다. 중복되는 내용이 많지는 않지만 그때 기억을 되짚어 가며 읽는 것도 꽤 괜찮은 읽기였다. 파미르 고원 , 톈산 산맥, 키르기스스탄의 오시, 카자흐스탄의 북아랄해, 투르케스탄의 아흐멧 야사위의 대영묘, 사마르칸트 등 두 달에 걸친 중앙아시아 여행기. 이렇게 긴 여행 일정이 가능하다니 그저 부러울 따름이다.  


비록 일부나마 내가 이 책이 아니면 어디서 불교 경전을 쉽게 만날 수 있을까 싶다. 나에게는 불법을 따라가는 생소한 여행기였지만, 내 나름의 의미가 있었다. 불교를 철학적으로 접근해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종교학으로는 엄두가 안나고). 




​♤ 출판사 지원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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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옙스키의 명장면 200
석영중 지음 / 열린책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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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도스토옙스키에 관해 예리한 글, 심오한 글, 웃기는 글, 무서운 글은 쓸 수 있지만 따뜻한 글을 절대 못쓴다고 얘기한다. 그 치열함에서 따뜻함보다는 위로를 받았다는 저자가 고른 2백 개의 구절 혹은 장면이 실려있다. 불안, 고립, 권태, 권력, 고통, 모순, 읽고 쓰기, 아름다움, 삶, 사랑, 용서, 기쁨 등 열두 개의 주제별로 나누어진 도스토옙스키를 단편적으로나마 만나본다.


책을 본격적으로 읽기 전에 일단 가볍게 훑어보니 다행(?)스럽게도 대부분 읽은 작품이라 더 반가웠다. 서문에서 도스토옙스키의 족적을 찾아 러시아, 카자흐스탄, 독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체코, 오스트리아, 스위스를 둘려본 저자의 순례가 간단한 에피소드처럼 쓰여 있는데, 로마사를 따라 답사 순례를 하고 싶은 나로서는 무척 부러운 부분이었다. 그리고 도스토옙스키를 읽고 나면 다른 작가는 조금 심심하게 느껴진다는 저자의 말에 충분히 공감하는 바다.   
 



'고통'이 도스토옙스키 문학 전체를 아우르는 핵심 화두라는 첫문장에서 그동안 읽은 그의 작품들을 되짚어보니 납득이 된다. 저자는, 인간은 타인의 고통과 자신의 고통이 스쳐 지나가듯 만나는 지점에서 성장한다고 썼는데, 이에 촛점을 맞춰 인용된 글들을 읽어갔다. 자신의 가난보다 더 극한의 가난에 시달리는 이웃의 고통을 목격하는 마카르, 족쇄에서 두 발이 그냥 빠질 정도로 앙상한 죄수의 고통, 벼랑 끝에 내몰렸으나 돌아갈 곳을 상실한 자의 고통, 어린 자식을 잃은 부모의 슬픔과 고통, 굶주림의 고통 등. 이러한 고통들을 의식하려고 하지 않는 순간, 우리는 공감력을 잃어버린 소시오패스가 되고 만다. 무엇보다 악으로 변질되는 슬픔이야말로 가장 고통스러운 부분이라는 마지막 문장에서 우리가 놓아서는 안 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금 깨닫는다.  


'고통은 조건과 상관없이 우리가 수용하는 방식에 따라 우리의 격을 달라지게 한다'는 저자의 글에서 '일단 멈춤' 모드가 된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여기에 인용된 글은 <지하로부터의 수기>인데, 아마 '고상한 고통'을 염두에 두고 쓴 문장인 것 같다. 이론적인 것이 아닌 실제적인 면에서 저자가 말한 고통의 수용 방식과 내가 수용하는 고통의 방식의 차이에 대한 생각들이 길어진다.  


<악령>을 통해 고통의 종착역인 죽음을 극복할 때 인간은 신의 경지에 이를 것이며 그 세상이 얼마나 끔찍할지를 얘기하는 대목에서 일련의 미래 소설들에서 영생이 또 다른 고통의 시작임을 일관되게 주장하는 바와 상통한다. 위로받을 수 없다는 사실만이 위로가 되는 그런 고통이 인생에는 있다는 저자의 글이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아 깊게 와닿는다.




마음에 드는 책을 발견하여 완전히 몰입해서 읽는 것과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는 것은 것의 같은 것이 아닐까라고 짐작하는 저자. 그런가...? 책은 읽는 대상일 뿐만 아니라 경우에 따라 여러 매개체로 전환된다. 때로는 사랑으로, 때로는 추억으로, 때로는 아픔으로, 떄로는 위로로 다가온다. 책 자체보다 책을 소유했던 사람 혹은 그와의 관계 맺음에서 오는 여러 감정들에 따라 달라진다. 독서라는 행위 역시 모든 이에게 긍정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하물며 글쓰기야 말해 무엇하랴. 저자는 <가난한 사람들>의 마카르가 존재하기 위해 썼고, 씀으로써 존재했다고 얘기하는데, 도스토옙스키야말로 그러하지 않았을까.  


격하게 와 닿은 문장, "독서는 삶의 균형을 잡아 주는 경험이지 삶을 대신하는 경험은 아니다.(p182)"



​도스토옙스키에게 있어서 아름다움이란 영혼이 아름다운, 영원을 향한 깊은 응시다. 이는 그의 몇 작품만 읽어도 아주 잘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미시킨이 말한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하리라"는 나스타시야의 외모적 아름다움이 아닌 것처럼, 특히 <백치>의 미시킨과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알로샤로 대변하는 궁극의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성찰이 없는 내면의 인간은 결코 아름다울 수 없다. 이러한 아름다움에 무감각한 사람, 해학이 없는 사람을, 저자는 위험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사랑은 도스토옙스키가 가장 많이, 가장 집요하게 파고들었던 개념이다. 정말 그의 소설에서는 어떤 형태든 '사랑'이 절대적 위치에 있다. 사랑이야말로 얼마나 섬세한 감정인지. 사랑할수록 우리는 타인을 인정하고, 더 잘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사랑은 누군가를 변화시키는 가장 큰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게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보상에 대한 생각이 아주 미미하게 개재해도 그 사랑은 의미를 상실한다는데, 현실에서 그러한 사랑이 가능할까? 저자의 말대로 소설 속에서나 가능한 사랑이다. 사랑에 대한 평가는 사랑이 깨어졌을 때만 가능하다는 저자의 말에 슬그머니 웃음이 난다. 사랑을 평가하겠가고 그 사랑을 일부러 깰 수 없는 노릇이니까. 집착은 사랑이 아니다. 사랑에 목숨 걸지 마시길. 로고진(아니면 드미트리)처럼 된다. 더하여 로고진의 사랑을 사랑이라 할 수 있겠나. 그리고 그런 무서운 사랑, 반길 사람 아무도 없을 것이다.


도스토옙스키가 지향하는 사랑은 '실천적 사랑'이다. 주변의 소외자, 약한 자들에 대한, 완벽한 자기희생을 통한 사랑의 완수. 그러나 도스토옙스키도 이러한 변함없는 사랑은 불가능하다고 수차례 강조했다고 한다. 그래서 저자는 우리가 짚어할 부분은 실천적 사랑의 성공이 아니라 그 가능성에 대한 믿음이라고.  




우리는 타인을 어디까지 용서할 수 있는가. 도스토옙스키는 작품을 통해 우리에게 묻는다. 그는 종교적인 차원에서의 용서, 그리고 법과 원칙적인 차원에서의 용서를 명백히 구분했다. 눈에 들어오는 용서에 대한 해석은, 연민과 동정심을 구분해야 하는 것과 범죄자를 구제하는 것은 동정심이 아니라 그로 하여금 스스로를 인간으로 깨닫게 해주는, 동료 인간의 인간적인 대접이라는 것이다. 범죄자가 스스로 죄를 뉘우칠 때에 용서와 갱생의 선순환이 시작될 수 있다는 말씀이다. 저자가 인간과 세상을 바라보는 보편적인 시선에 대해 얘기하면서 인간의 도리를 지키는 일이 가장 어려운 일인 것 같다는 글에서 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가장 많이 인용된 작품은 <죄와 벌> <악령>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지하로부터의 수기> <죽음의 집의 기록>이다. 발췌한 문장들을 읽자니 새록새록 기억이 나면서, 저자의 첨언을 읽는 즐거움까지 보태졌다.  


책을 다 읽고나니 정말 200개의 장면을 뽑아내는데 엄청 고생하셨겠다는 생각이 든다. 뽑아놓은 글을 읽어도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그 많은 작품들 중에서 테마에 맞춰 일일이 찾아냈을 수고와 도스토옙스키에 대한 애정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중간 중간에 저자가 가장 좋아하는 구절이나 깊게 각인되어 있는 장면, 혹은 대목들이 있는데, 앞으로 좋아하는 작가들의 작품들을 읽으면서 구절 혹은 장면들을 수집해 놓는 것도 의미있는 작업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을 읽지 않은 독자들이 선뜻 손을 내밀기에는 거리감이 있을 수 있으나 기승전결이 있는 책이 아니라서 읽는 데에 무리가 없다. 가볍게 도스토옙스키를 만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고, 무엇보다 저자의 글이 참 좋아서 그것만으로도 읽어보라고 권해주고 싶은 책이다. 개인적으로 사이사이 읽게 될 책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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