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나의 선택 1 - 3부 마스터스 오브 로마 3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6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술라를 상대해야 할 집정관 카르보의 수하에 있는 재무관 권한대행 베레스는 천성적으로 군인 체질이 아니었다. 노력 이상의 원대한 야망과 예술적 취향을 지닌 그가 좋아하는 곳은 돈이 있는 장소였다. 마땅한 적임자가 없어 선임 보조관들을 찾아다니는 현재, 카르보의 개인 지명으로 마지못해 재무관 대행을 맡게 된 베레스는 편을 바꿀 때가 됐다고 판단해 카르보가 폼페이우스를 처리하러 떠난 사이, 은행에서 카르보의 공적 자금 60만 세스테르티우스를 챙겨 술라에게 향했다. 
 
 


아이고, 카르보 이 양반아... . 바가지 안에서 물이 줄줄 새는줄도 모르고, 거기다 적에 대한 사전 정보도 없이 젊다는 이유로 상대를 만만하게 본 경솔함의 대가는 불 보듯 환하다. 정작 상대해야할 술라는 고사하고, 술라에게 합류하겠다는 3개 군단도 감당을 못하면서 무슨 생각인건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다 인류 - 인류의 위대한 여정, 글로벌 해양사
주경철 지음 / 휴머니스트 / 2022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시아 해상 질서가 크게 바뀌는 데는 중동 지역 정세 변화가 매우 중요한 작용을 했다. 파티마왕조 등장과 셀주크 세력이 급부상으로 국제 무역의 주도권이 페르시아만에서 홍해 방면으로 이동한다. 그래서 이곳 상인들은 기독교 세력과의 갈등 때문에 지중해보다 인도양 쪽에 치중할 수 밖에 없었다. 페르시아만이 쇠퇴하고 홍해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면서 아라비아 출신 상인들이 인도 서남부의 말라바르에 더 굳건한 토대를 구축했다. 그리고 이들은 수니 이슬람 전도에 앞장섰고, 강력한 집단 정체성을 유지했다. 이후 남서부 다른 지역들과 스리랑카에도 무슬림 아랍 상인들의 방문이 늘었고, 이로인해 인도에 아랍 혈통이 흡수됐다. 인도 너머 동남아시아 방면으로 팽창해간 이슬람은 교역과 전도를 같은 방향으로 이루었다.  



송제국과 아랍-페르시아 세계의 흐름을 연결 고리가 되어주었던 인도 촐라왕국. 촐라의 상인(길드) 세계의 특이한 점은 길드 조직이 사원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연구자들에 따르면 촐라의 11세기 경제 번영의 근간은 국가, 상인 길드, 종교 제도 등이 종합적으로 연결된 결과라고 파악한다. 예를 들면 국가가 정복한 지역을 브라만 공동체로 바꾸어가고, 이후 상업 발전으로 생긴 돈으로 사원을 짓는 식이다. 12~13세기 중엽에 촐라 상인의 교역 활동이 정점에 이른다.  



책에 실려 있는 당시 인도양에서의 교역이 이루어진 지도를 살펴보면 마치 사이사이에 매듭진 끈처럼 이어져 있다. 이렇게 자유롭고 평화로웠던 교역이 유럽의 진입으로 인해 망가졌다고 생각하면 안타까울 따름이다. 만약 명이 인도양에서 후퇴하지 않았다면, 그래서 아시아 해양 네트워크가 연합했다면 유럽의 아시아 식민화를 막을 수 있었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포르투나의 선택 1 - 3부 마스터스 오브 로마 3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6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버지가 죽은 후 스스로를 '마그누스' 칭하는 젊은 폼페이우스의 등장. 호감가는 외모, 언변과 처세술이 뛰어난 스물두 살 폼페이우스의 선택은 적중했다. 어린 아내에게 임시방편으로 결혼했다는 말을 서슴없이 내뱉는 모습은 냉정하기 짝이 없지만, 대중에게 비호감이었고 공급횡령까지 한 아버지 덕분에 일단 살고 봐야햇으니 납득 못하는 바는 아니다(그말이 이해한다는 의미는 아니고). 
 


최고 귀족임에도 가문의 덕을 볼 수 없는 야심만만한 젊은 청년에게, 전쟁은 출생의 갈증을 해소할 창구이자 기회로 보였을 것이다. 창으로써 집정관의 고관 의자에 앉겠다는 폼페이우스의 야망.
 


그렇다면 앞으로 호적수가 될 카이사르는 어떻게 지내고 있으려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다 인류 - 인류의 위대한 여정, 글로벌 해양사
주경철 지음 / 휴머니스트 / 2022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중국은 이슬람권과 해상 루트를 통해 직접 연결되는데, 당대에 이르러서 인도양 네트워크에 본격적으로 편입하고 15세기 명대 초에는 해양력이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른다. 7세기 중국 남부에는 판관의 통제 아래 샤리아를 따라 살아가는 공동체가 형성되었고 중국 당국은 이를 허용했다. 당시 남부 여러 지역에 번영하는 이슬람 공동체들이 잘 유지되었다. 광저우의 경우 약 천여 명의 페르시아.아랍 상인들이 살고 있었고, 이곳의 랜드마크는 화이성 모스크다. 중국과 이들이 조화로운 파트너십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같은 가치의 공유와 상호 신뢰가 근간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8세기에 시박사 제도가 도입된 후 심각한 부패가 발생하고 이로인해 부당함을 느낀 외국 상인들의 봉기와 그로인한 학살 사건이 일어난다(이때 첫 봉기와 학살의 배경이 된 사건이 '안사의 난', 두 번째가 '광저우 대학살' 사건이다).  
 
 
황소의 난 이후 광저우가 황폐화되고 당이 몰락한 후 중국이 정치적.군사적으로 혼돈을 겪는 동안 무슬림 상인들은 중국을 떠나 동남아시아로 갔다. 이 시기에 아랍.페르시아 세계 또한 거대한 혼란에 빠졌다. 이 두 세계가 다시 안정된 후 교역이 재개되는데, 이전과는 다르게 일부를 제외한 무슬림 상인은 동남아시에 근거지를 두고 중국을 멀리에서 연결하는 방식으로 변화했다. 직항로 대신 분절화가 이루어진 것이다. 이후 중국과 아랍-페르시아 선박은 중간 지점인 동남아(칼라반도)에서 조인해 중개 교역을 이어갔다. 
 
 

세계 4대 문명 중 현재까지 그 위세를 떨치는 나라가 중국이다. 그들이 이토록 장구한 세월 동안 위기를 겪으면서도 그 세를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수용'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다 인류 - 인류의 위대한 여정, 글로벌 해양사
주경철 지음 / 휴머니스트 / 2022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인도양 세계사에서 중요한 것은 서기 1세기 중에 스리랑카섬(타프로반)을 알게 됐다는 점이다. 스리랑카는 인도양 서부 세계와 중국.인도양 동부 세계가 만나는 핵심 지점이라서 이 섬을 연결하면 인도 벵골만 뿐만 아니라 중국 방면까지 항해가 가능해진다. 물론 1세기에 동남아시아로 가는 항해가 곧바로 시작된 것은 아니다. 


지중해 세계와 인도양 세계가 해상 교역을 하려면 홍해를 거쳐야 한다. 그런데 홍해의 항해 여건이 매우 좋지 않은데다가 오랫동안 홍해 교역을 할 요인이 크지 않았고 기술적 문제 때문에 한동안 활성화되지 못했다. 이 두 세계의 해상 교역의 중계 역할을 한 곳이 아덴과 서코트라섬이다. 지중해와 인도양 상인들이 이 두 중간 지점에서 만나 거래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618년 중국에는 당제국이, 622년은 이슬람교가 성립된 원년이다.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사건이라는 것만큼이나 흥미로운 것은 중국과 이슬람 세계가 활발하게 교류했다는 점이다.  



읽으면서 새삼 느껴지는 부분은 고대부터 페르시아를 비롯한 아랍, 이슬람 문화는 다방면에서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을 지속적으로 유지했다면 중세를 거쳐 근대까지 세계의 권력 구조는 달라지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