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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피아빛 초상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06
이사벨 아옌데 지음, 조영실 옮김 / 민음사 / 2022년 5월
평점 :
십 수 년만에 재독이다.
재독을 하리라 작심했던 이사벨 아옌데의 여성 3부작 중 두 번째로 읽는 작품이다. <영혼의 집>은 2년 전쯤? 재독을 했고, 사실 <운명의 딸>을 먼저 읽어야하는데 기회가 생겨 이 작품을 먼저 읽는다. 줄거리도 가물가물했는데 한 장 두 장 넘기니 새록새록 기억이 더듬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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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리나 델 바예는 편협하고 영혼이 가난한 가부장적인 칠레 지주 집안 태생이다. 철자법과 산수는 겨우 초보적인 수준의 교육만 받았고, 수를 놓고 기도를 하는 것 외에는 딱히 배운 게 없었음에도 그녀가 손을 대는 것은 모두 돈이 되었다.
그녀는 열여덟 살 때 펠리시아노와 사랑에 빠졌다. 당시 그는 칠레 북부의 은광 주인으로 잘생기고 야망 있는 청년이었다. 파울리나의 아버지 아구스틴 델 바예는 극우 보수당원으로서 서민 혈통에게 이끌리는 딸의 사랑을 용납하지 않았다.
파울리나가 중년에 접어들면서 남편과 육체적 관계를 하지 않아도 부부의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젊은 시절의 남편에 대한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펠리시아노는 파울리나와 달리 나이가 들면서 매력을 더해갔다. 과거 서로를 지극히 사랑해 젊은 시절 함께 도망쳤던 두 사람은 언제부터인가 서로에게 날선 신경전과 복수를 주고받았고, 펠리시아노가 뇌출혈로 쓰러져 치명적인 상처를 입을 때까지 싸움은 이어졌다. 그럼에 그들은 관계를 깨뜨리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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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사에 있어 남녀 차별이야 새로울 것도 없다할 수 있겠다만 아프리카 혹은 남미 문학에 있어 가부장적인 배경은 유독 심하다. 여성이 좀더 적극적으로 저항하는 모습은 남미 문학에서 더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소설은 시작부터 도망치듯 미국으로 이민 와 부를 축적하는 데에 절대적인 역할을 했던 파울리나의 역량을 확인할 수 있는데, 두 사람이 결혼 생활을 지속한 데에는 단순히 그런 이유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부부는 사랑, 그 이상의 무언가가 더 있어야만 유지되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두 사람만이 공유할 수 있는 그 무엇! 말이다.
그나저나 파울리나의 미다스 손, 돈을 읽을 줄 아는 감각과 수완, 부럽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