뷔히너 전집 열린책들 세계문학 247
게오르그 뷔히너 지음, 박종대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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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
만일 신이 인간을 만들지 않았다면, 농민과 칠장이, 구두장이, 의사는 무엇으로 먹고살 수 있겠습니까? 신이 인간에게 부끄러운 감정을 심어 주지 않았다면, 재다사는 무엇으로 먹고살 수 있겠습니까? 신이 인간에게 서로를 때려죽일 욕구를 장착하지 않았다면, 군인은 무엇으로 먹고 살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의심하지 맙시다.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는 이렇게 고상하고 사랑스럽습니다. 



주인공 보이체크는 서른 살이고 육군 보병 소속이라고 되어있지만, 내용을 따라가보면 이 사람이 군인이 맞나 싶을 정도로 뭔가 어설프고 불안정해 보인다. 그는 끊임없이 누군가로부터 멸시당하고 훈계를 듣는다. 그런데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으라는 말도 있건만, 훈계를 늘어놓는 대위나 교수도 상황에 맞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당장 먹고 사는 것이 우선인 사람에게 도덕과 미덕을 따지는 대위의 말은 공염불에 지나지 않는다. 박사는 노상방뇨를 한 후 인간의 본능에 대해 얘기하는 보이체크에게 인간은 자유로우며, 인간이 아름다운 건 자유롭게 의지를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억지스러운 말을 갖다 붙인다.  


교수와 대위의 억지스러운 잔소리는 보이체크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를 극단으로 몰고 간 원인이 과연 마리의 난잡한 남자 관계 때문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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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피아빛 초상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06
이사벨 아옌데 지음, 조영실 옮김 / 민음사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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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오 치엔은 캘리포니아 차이나타운의 중의다. 동서양 의학을 접목시켜 인정받는 의사였으나 인종과 이민자 차별에 의해 종합병원에서는 고용되지 못했다. 차이나타운에서 명성이 자자한 덕분에 그는 차이나타운의 어린 매춘 노예들을 빼돌려 캘리포니아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새로운 생활 터전을 마련해 주는 일을 할 수 있었다. '당들'에게는 거슬리는 일이었지만, 그들도 타오에게 진료를 받을 수 밖에 없는 처지라 그가 경찰을 끌어들이지 않는 한 묵인했다. 유일하게 타오를 공공의 위험인물로 여기는 사람은 샌프란시스코에서 제일 성공한 포주인 '아 토이'였다. 그에게는 손익의 문제가 아니라 원칙의 문제였다. 이는 타오에게도 마찬가지였지만.  


영국과 칠레 혼혈인 엘레사와 중국인 타오의 결합을 온전히 받아들일 사람은 거의 없었다. 두 사람은 은밀하게 불교식으로 결혼식을 올렸고, 두 자녀 럭키와 린은 서류상 사생아로 올라가 있었다. 중국인을 개처럼 받아들이는 미국에서 살아가기 위해 두 아이들은 어머니의 성 소머스를 물려받았다. 타오는 평생을 미국 땅에서 보냈어도 죽은 뒤 몸은 홍콩에 묻히기를 소망했다.  


타오는 의원을 운영하고, 엘리사는 찻집을 경영하면서 경제적으로 어려움 없이 살았다. 하지만 타오의 수입은 대부분은 중국인 일용 노동자들이나 매춘부 소녀들을 구하는 데 쓰였기 때문에 엘레사의 수입이 가족을 부양했다. 엘리사는 아이들이 미국이라는 나라에 동화되어 중국인이나 히스패닉계가 겪는 제약을 격지 않고 살기를 바랐다. 인종 때문에 배척당한다는 사실을 아주 일찍부터 깨달은 린은 그녀의 바람대로 성장했지만 럭키는 자기 혈통에 대한 자긍심으로 어머니의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타오는 참 매력적인 인물이다. 인내가, 정의가, 사랑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이다. 엘리사 역시 타오가 가진 신념과 낯선 문화에 대한 이해와 수용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부부의 한평생은 살면서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이해와 배려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두 사람을 보면서 새삼 깨닫는다. 참 아름다운 부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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뷔히너 전집 열린책들 세계문학 247
게오르그 뷔히너 지음, 박종대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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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혁명은 중단되어야 하고 공화정이 시작되어야 해. 헌법에는 의무 대신 권리가, 도덕 대신 안녕이, 처벌 대신 정당방위가 들어가야 해. 또한 모든 개인은 그 자체로 인정받아야 하고, 자신의 본성을 실현할 수 있어야 해. 개인이 똑똑하건 똑똑하지 않건, 교육을 받았건 받지 못했건, 선하건 악하건 상관없이 국가는 그걸 보장해야 하네. (...) 인간은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즐길 수 있어야 해. 물론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타인을 희생시키거나, 타인의 즐거움을 방해해서는 안 되겠지. (에로 드 세셸) 



얼마 전에 읽었던 <헤르만 헤세의 책이라는 세계>에서 헤세가 추천한 뷔히너의 세 작품이 모두 들어있는 책이다. 이름만 들어본 작가였는데, 헤세가 무려 세 작품이 추천했으니 궁금해 한 번은 읽어봐야지 했다.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읽기를 시작한다.  


첫 작품은 <당통의 죽음>. 제목을 읽고 아마 조르주 당통에 대한 이야기지싶었는데, 맞다. 희곡은 마라의 죽음 이후 당통과 로베스피에르의 대립이 절정에 다다르는 시점에서 시작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자코뱅 클럽에서 하나로 시작되었으나 분열되어 지롱드당과 자코뱅당의 대립만으로도 모자라 자코뱅당 내에서 극좌파에 해당하는 산악파까지, 정치 파벌과 참혹한 살육은 끝을 모른다. 신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단두대에 세우고, 계급과 신분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밧줄에 목을 매단다. 피가 피를 부르는 싸움에 시민들까지 다 때려죽이기에는 단두대의 칼날이 너무 느리다고 외친다. 아비는 고주망태, 무기력한 어미, 매춘으로 부모를 먹여살리는 어린 딸. 이 아귀다툼 와중에 곤두박질치는 건 민초들의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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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피아빛 초상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06
이사벨 아옌데 지음, 조영실 옮김 / 민음사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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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리나의 장남 마티아스 로드리게스 데 산타 크루스는 유럽의 유명 박물관을 모두 섭렵하여 예술에도 일가견이 있고 고전 시인이라면 누구의 시든 한 편쯤 읊을 수 있을 만큼 문학에 조예가 깊었으며 집 안의 서재를 이용하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댄디하게 말끔한 차림새와 자유로운 영혼까지, 그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최고의 배필감이라고 여겼지만 정작 본인은 독신주의자라고 선언했다. 그러면서 성적 욕망을 해결하기 위해 거리낌없이 직업 여성을 찾았다.  


마티아스는 시를 무척 좋아하고 시구의 아름다움에 감동해 눈물을 흘리기도 했으며 비관적이고 음울한 광기에 매료되어 그림을 그리기도 했는데, 이런 면에서 세베로와는 아주 달랐다. 서른 살이 되도록 결혼하지 않는 마티아스 때문에 골치를 앓고 파울리나와 펠리시아노. 그러나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달라도 너무 다른 사촌지간이다. 이성적이고 지극히 현실적이며 보이는 것을 믿는 세베로, 지나치다싶을만큼 감성적이고 스스로를 학대하고 위악을 덮어쓰며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마티아스. 두 사람이 전혀 다른 인생의 행로를 걷게 되리라는 것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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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피아빛 초상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06
이사벨 아옌데 지음, 조영실 옮김 / 민음사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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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 시절에 존경하는 아버지의 죽음으로 실의에 빠져 있던 세베로 델 바예는 어찌할 바를 모르던 어머니에 의해 카톨릭 학교로 보내진다. 그러나 적응하지 못하고 돌아온 아들을 어머니는 다시 군대에 보냈고 그는 예비역 장교로 제대했지만, 여전히 충동적으로 일을 저지르고 다녔다.  


당시 비타협적인 이데올로기 투쟁을 겪고 있었던 칠레는 젊은이 사이에 퍼져나가는 자유주의를 용납하지 않았다. 귀족이자 극우파였던 델 바예의 집안에서 보헤미안처럼 거리를 떠돌아다니는 세베로를 그냥 놔둘리 없었고, 집안의 어른들이 나서서 그를 미국에 있는 파울리나 고모에게 보내기로 합의한다. 그런데 벌로 보내는 미국행이었건만 세베레는 쾌재를 부른다. 보수주의자가 사탄이라고 믿으면서 칠레를 변화시키고 정화하고 싶었던 세베로는 미국에서 새로운 사상을 접하고 싶었던 차였다.  


세베로가 미국에 도착하자 파울리나는 그를 군대로 보내버리라는 집안의 지시와는 다르게 조카가 원하는대로 변호사 공부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해준다. 몇 년이 지나지 않아 세베로는 파울리나가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성장한다.  


ㅡ 


세베로도 보통내기는 아니다. 할아버지의 밀서를 뜯어서 먼저 읽고 바다에 던져버리고 위조해서 고모에게 보여주다니. 그 고모에 그 조카라서 그런가. 단박에 위조 편지를 알아챈 파울리나도 평범치 않고, 자기의 경험을 토대로 조카를 이해해주는 모습이 멋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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