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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에서 헤엄치기
토마시 예드로프스키 지음, 백지민 옮김 / 푸른숲 / 2021년 6월
평점 :
"우리는 겁도 없이 자유롭게, 찬란한 어둠에 파묻힌 채 헤엄쳤다."
여기 세상으로부터 인정받기 힘든 사랑이 있다. 그런 사랑을 하는 사람들 앞에는 두가지 선택지가 있다. 힘겹더라도 이 사랑을 이어갈 것인지, 아니면 이 사랑을 마음속에만 담아두고 헤어지면서 다른 사랑을 찾아갈 것인지.
만약 두사람의 마음이 첫번째와 같다면 힘들겠지만 계속 함께 행복할 수도 있다. 만약 두사람의 마음이 두번째와 같다면 떨어져 있더라도 서로를 그리워만 하면서 행복하게 살 수 도 있다. 그런데 만약 두 사람의 선택이 서로 다르다면 어떻게 될까? 그걸로 끝인 걸까?
사회주의 국가인 폴란드에서 태어난 주인공 "루드비크"는 어린시절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알게 된다. 현재에도 동성애자로 살아가긴 쉽지 않은데, 당시 사회주의 체제에서 자신의 성정체성을 밝히고 살아가는건 더욱 힘들었다. 자신을 숨기고 살 수밖에는 방법이 없었던 "루드비크"
대학생이 된 "루드비크"는 농활에 가서 "야누시"라는 청년을 보고 첫눈에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망설이다가 어렵게 어렵게 자신의 마음과 같은 책 <조반니의 방>을 그에게 빌려주게 되고, 결국 "야누시" 역시 그에게 마음이 있음을, 그 역시 동성애자임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 둘은 둘만의 여행을 떠나면서 사랑을 확인하게 된다.
하지만 둘은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랐음을 서서히 깨닫게 된다. 사회주의 체제를 잘 이용하면서 이곳에 적응하며 살면 된다고 믿는 "야누시", 하지만 자신을 억압하는 체제를 벗어나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서 자유를 꿈꾸며 살고 싶어하는 "루드비크".
["가끔 어디 다른 곳에 있었더라면 좋았겠다는 생각 해본 적 없어?"] P.83
"루드비크"는 "야누시"에게 함께 떠나자고 한다. 하지만 "야누시"는 이를 거부한다. 그리고 "야누시"는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숨기고 출세를 위해 권력자의 딸인 "하니아"와 결혼을 한다. "루드비크"는 "야누시"의 "루드비크"에 대한 마음이 진심이었는지 아니었는지 확인하지 못한 채 큰 좌절을 앉고 미국으로 떠난다.
[그렇긴 해도 이제는 우리도 각자의 거짓말들로 무한정 속여 나갈 수만은 없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늦든 빠르든 그 거짓말들의 시꺼먼 속을 직면해야만 할 때는 찾아오니까. 우리는 그 직면의 시기를 고를 수는 있으나, 직면의 여부를 정할 수는 없다. 그리고 직면의 시기를 늦추면 늦출수록 고통스럽고 불안해지기만 할 뿐이다.] P.283
"야누시"는 진심으로 "루드비크"를 사랑했었을까? 자신의 정체성을 바꾸면서까지, 사랑을 포기하면서까지 그가 갖고 싶어했던 것은 무잇이었을까? 그런데 그의 선택을 누가 비난할 수 있을까?
[그동안 쭉 나는 그녀를 사랑했냐고 네게 물어봐야지 하는 마음이 있었다. 딱 그 질문 하나만큼은 물어보지 못해서 후회가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야 질문의 답이 어느 쪽이었든 아무런 상관이 없었음을 나는 깨닫는다.] P.284
[남들이 언제나 우리가 받고 싶어 하는 것을 줄 수는 없는 노릇이라던 네 말은, 본인이 바라는 방식으로 사랑해달라고 남한테 요구할 수는 없는 것이라던 네 말은 옳았으므로, 그 누구도 그렇게 해주지 않았다고 해서 비난받을 수는 없는 것이다.] P.284
자신이 태어난 곳을 포기하고, 사랑했던 사람에게 버림받으면서 떠나야 했던 "루드비크"의 마음은 어땠을까? 조국과 고향으로 부터 버림받은 그에게 남은 것은 회한 뿐이었다.
[아마도 그날 밤 내가 너를 보았다는 걸 너는 까맣게 몰랐으리라. 너는 그 음악이 기억날까? 네가 잊은 것이나 내가 놓친 것이 있을까? 당연히 내 기억력에도 한계는 있다. 자인하지 않는 사이 공란에 색을 칠할 수도, 극적으로 꾸며내거나 수정할 수도 있으리라. 감정에 한해서는 사진처럼 정확한 기억력이란 없는 듯싶으니. 그래도 현재로서는, 좋든싫든 이것이 나의 진실이다.] P.156
퀴어소설을 즐겨 읽지는 않지만, 이 책을 읽어보니 퀴어소설 이라는 장르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표현하기에는 최적의 장르라는 생각이 든다. 사랑을 하는 자신들을 제외하고는 누구에게도 인정받기 힘든 그들의 사랑은 대부분 실패로 끝나지만, 그래서 더 극적인 느낌이 든다. 공감이 된다.
사회주의라는 억압된 체제 속에서, 그 속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했던 "루드비크"에게 새로운 사랑이 오기를 바래본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렇게 쉽게 헤어지지 않길 바래본다.
Ps. <동반자, 김동률>
https://youtu.be/iuLggP9j5cY
내 살아가는 모습이 혹 안쓰러워도
힘없이 쥔 가냘픈 끈 놓아주오
가슴에 물들었던 그 멍들은 푸른 젊음이었소
이제 남은 또 다른 삶은 내겐 덤이라오
긴 세월 지나 그대의 흔적 잃어도
이 세상 그 어느 곳에서 살아만 준 대도
그것만으로도 난 바랄 게 없지만
행여라도 그대의 마지막 날에
미처 나의 이름을 잊지 못했다면
나즈막히 불러주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