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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녀 ㅣ 창비세계문학 37
쿠라하시 유미꼬 지음, 서은혜 옮김 / 창비 / 2014년 10월
평점 :
˝‘한자‘로 사랑했던 거야, ‘히라가나‘로 사랑했던 거야?˝
이런 작품을 쓰는 작가는 도대체 어떤 생각을 가지고 글을 썼을까? ˝쿠라하시 유미꼬˝의 <성소녀>를 책을 읽고나서 든 생각이다. 이 책의 주요 소재는 ‘근친상간‘이다. 솔직히 이런 소재의 책을 거의 읽어본 적이 없어서 읽기 전에는 걱정반 기대반 이었는데, 읽다보니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을 정도로 몰입해서 읽었다.
여주인공인 ˝미키˝는 어머니와 함께 운전을 하고 가면서 자동차 사고를 일으키고, 이 사고 때문에 그녀의 어머니는 사망하고, 그녀는 과거의 기억 일부를 잃어버리게 된다. 정말로 기억을 안하는건지, 못하는 건지는 의심이 가지만...
그리고 ˝미키˝는 자동차 사고를 당하기 전까지 쓴 노트가 있었는데, 이 노트를 남주인공인 K에게 보내게 되고, K에게 이 노트의 해독을 부탁한다. 그리고 K는 이 노트를 읽게 되는데, 이 노트에는˝미키˝와 ‘파파‘라고 불리는 한 중년 남성과의 연애 이야기가 쓰여져 있다. 노트에 쓰여진 ‘파파‘라는 사람은 ˝미키˝의 어머니가 젊었을때 만나던 애인이고, 명시되지는 않았지만 노트에서는 왠지 ˝미키˝의 생물학적 아버지라는 분위기가 풍긴다. 그렇다면 ˝미키˝의 노트는 일기(사실)일까? 소설(허구)일까?
그리고 ˝미키˝는 왜 ˝K˝에게 이 노트의 해독을 부탁한 걸까? 사실 ˝K˝는 동네 친구들과 함께 강도짓을 하거나 윤간을 하는 망나니 같은 인물로, 아나키스트적인 성향이 강한 남자이다. 그런데 그의 또다른 특징중 하나는, ˝K˝는 그의 누나를 사랑하며 누나와 ‘근친상간‘의 관계라는 것이다. K와 누나 모두 고아였을 확률도 있기 때문에 생물학적 남매사이는 아닐지도 모르지만, 어쨋든 어렸을때부터 함께 자란 두 남매가 커서는 근친상관의 관계가 되고, 결국 K의 누나는 집을 나가게 된다. 그리고 K의 망나니 같은 삶은 계속 된다.
˝미키˝와 ˝K˝ 두 사람은 같은 아픔을 가지고 있었기에 서로에게 끌렸던 걸까? 그렇게 그 둘은 육체적인 관계는 없지만 정신적인 유대감을 통해 상대방에게서 구원을 찾는다. 이후 ˝미키˝는 자동차 사고 이후 쓴 두번째 노트를 ˝K˝에게 보내게 되고, 이 두번째 노트에는 그동안에 있었던 모든 진실들이 쓰여있었고, 이야기는 다소 충격적인 방향으로 전개된다. 소설보다 더 끔찍한 현실이란...
[그건 아마, 인간이 결코 그 이유를 알 수 없으니 나쁜 짓인 거겠죠. 이해하기 어려운 금지가 곧 규정인 것이고, 그렇게 금지되어 있는 것이 악이라고 이름 붙는 거겠죠?] P.132
나는 보통 책을 읽고 나면 이 책의 교훈이 뭔지에 대해 생각해 보는데, 이 책을 읽고나서는 생각해 보지 않았다. 일단 소재가 워낙 충격적이어서 ㅎㅎ 그런데 독특한 구성과 개성넘치는 문체, 그리고 흥미로운 소재여서 그런지 책 자체를 너무 재미있게 읽었다. 하긴, 책 읽고 재미있으면 되지 꼭 교훈을 찾을 필요는 없겠지?
최근에 즐겨찾기 시작한 <창비세계문학> 시리즈 내용도 유니크하고, 표지도 정말 마음에 든다.